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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準備 안 된 大統領들, 죄다 財閥에게 속았다”|신동아

“準備 안 된 大統領들, 죄다 財閥에게 속았다”

정운찬 前 總理가 말하는 韓國 經濟, 韓國 政治

  • 최호열 記者 │honeypapa@donga.com

    入力 2014-10-16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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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이노믹스’, 方向 잘 잡았지만 方法 틀렸다
    • 世宗市 問題, 只今이라도 再檢討해야
    • 創意性 抹殺하는 帝王的 大統領制
    • 保守-進步 넘나드는 第3黨 나와야
    “준비 안 된 대통령들, 죄다 재벌에게 속았다”
    정운찬(68) 前 國務總理는 政府를 떠난 지 몇 年이 지났지만 如前히 政治權과 言論의 안테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서울대 總長, 國務總理를 지내 行政 經驗이 豐富한 데다, 韓國을 代表하는 經濟學者이면서 同伴成長委員長을 歷任하는 等 우리 社會의 가장 큰 苦悶인 低成長과 兩極化 問題를 解決할 適任者로 꼽히기 때문이다. 더구나 機會가 있을 때마다 새누리당과 새政治民主聯合 兩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만큼 保守와 進步 理念으로부터 자유롭다. 언제든 次期 大選 版圖를 뒤흔들 破壞力을 가진 潛龍(潛龍)의 한 사람이다.

    서울大 隣近에 있는 (寺)同伴成長硏究所에서 그를 만났다. 2012年 3月 同伴成長委員長을 辭退한 그는 같은 해 6月 (寺)同伴成長硏究所를 열었다. 同伴成長을 平生 話頭로 삼은 셈이다. 그는 따뜻한 微笑로 記者를 맞았다.

    “‘白手 過勞死’ 實感합니다”

    ▼ 어떻게 지냅니까.

    “지난해부터 서울대에서 다시 講義를 맡았습니다. 1學期에는 産業經濟세미나, 2學期엔 金融經濟세미나를 합니다. 理論 講義뿐 아니라 經營人, 金融專門家 等 現場에 있는 분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 時間도 갖습니다.”



    그의 講義는 인터넷 受講申請 接受 始作 10秒 만에 마감되는 것으로 有名하다. 如前히 學生들에게 人氣가 있는 模樣이다.

    ▼ 講義는 앞으로도 繼續할 計劃인가요.

    “當分間은 學生 가르치는 일을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 講義 外에 다른 일은.

    “午前 10時까지 이곳에 出勤해 午後 6時에 退勤합니다. 一週日에 한 番 以上 同伴成長을 主題로 外部 講演을 나가고요. 사람을 좋아해서 많이 만나고, 한 달에 한番 同伴成長을 主題로 포럼을 運營하고, 外部에서 同伴成長에 對한 硏究 依賴가 들어오면 팀을 꾸려 硏究도 하고요. 白手가 바빠서 過勞死 한다는 말을 實感합니다.(웃음) ‘同伴成長 傳道師’를 自任했으니 當分間은 이 일에 注力할 생각입니다.”

    話題가 자연스럽게 ‘同伴成長’으로 이어졌다.

    ▼ 지난 大選 때만 해도 ‘經濟民主化’ ‘同伴成長’이 話頭였는데, 只今은 쏙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새 다 잊은 模樣입니다. 與黨은 한 마디도 안 하고 野黨도 關心이 없어요. ‘野黨마저 그러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다른 일로 너무 바쁘다’고 하더군요.(웃음) 政治權이 아직도 그 深刻性을 모르는 模樣입니다.”

    韓國 經濟를 흔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主導하는 ‘戰車經濟’라 부른다. 三星, 현대, LG, SK 等 4大 財閥이 올리는 年 賣出額이 國內總生産(GDP)의 60%에 肉薄한다. 그래서 經濟民主化, 同伴成長을 理由로 大企業을 너무 옭죄面 안 그래도 어려운 經濟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는 憂慮도 있다. 鄭 前 總理의 意見은 달랐다.

    “우리 經濟가 몇몇 大企業에 左之右之 되는 게 非正常이죠. 正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三星, 현대가 잘못돼도 좋다는 건 絶對 아닙니다. 지난 60年 동안 선(先)성장 後(後)分配 論理로 大企業 中心 成長을 하면서 兩極化가 심해졌으니 이걸 바로잡자는 거예요.”

    ▼ 다른 나라 事情은 어떤가요.

    “우리처럼 大企業 中心으로 發展한 나라는 거의 없어요. 日本도 大企業 中心으로 發展했지만 中小企業도 튼튼합니다. 臺灣은 아예 中小企業 中心이어서 한두 業種이 휘청해도 큰 問題가 없는데, 우리는 財閥 한 곳에 問題가 생기면 나라 全體가 큰 打擊을 받습니다. 脆弱한 經濟 構造죠.”

    ▼ 大企業 中心 成長이 兩極化를 심화시켰다고 보는 理由가 뭔가요.

    “過去 大企業 中心 成長政策 論理가 ‘큰 企業이 成長하면 작은 企業도 그 惠澤을 받아 成長한다’였어요. 一種의 落水效果를 期待한 거죠. 그게 可能하려면 大企業과 中小企業이 공정한 去來를 해야 합니다. 不公正去來에서는 落水效果가 생기지 않아요. 또한 大企業이 國內에서 事業을 하지 않고 海外에 工場을 지으면 國內 經濟엔 落水效果가 생길 수 없어요.”

    ▼ 최경환 經濟副總理가 推進하는 經濟政策은 어떻게 보는지요.

    “家計에 直接 所得이 가도록 해 ‘所得 主導 成長’을 誘導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噴水效果라고 합니다. 家計所得이 늘어나면 消費가 늘고, 消費가 늘면 生産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先進國에서는 오래前부터 이 政策을 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라도 이 政策을 펴는 것은 意味가 있다고 봅니다. 基本 方向은 잘 잡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盧 政府 때 財閥 힘 키워”

    ▼ 어떤 點이….

    “大企業에 社內留保金이 너무 많으니까 配當을 많이 하도록 誘導하겠다고 하는데, 大企業 株式은 大部分 外國人, 機關投資者들이 가졌어요. 個人投資者 亦是 株式 配當으로 먹고살 程度면 이미 쓸 거 다 쓰고 사는 사람입니다. 配當을 늘린다고 國民 消費가 더 늘眞 않아요. 또한 賃金을 올리도록 誘導한다고 하는데, 企業으로선 賃金을 한番 올리면 내리기가 힘드니까 쉽지 않죠. 設令 임금이 올라 所得이 늘었다 해도 家計負債가 1000兆 원이 훨씬 넘어요. 돈이 생겨도 消費로 이어지기 힘든 構造죠.”

    ▼ 解決方法이 있다면.

    “消費보다 投資를 促進하는 게 더 重要합니다. 經濟가 發展하려면 生産能力이 擴充되고 生産物에 對한 需要가 늘어야 합니다. 1970年代 初盤부터 1997年까지 家計所得과 企業所得 모두 年 平均 8%씩 늘었는데, 2005年부터 只今까지를 보면 家計所得은 年 1~2% 增加한 反面 企業所得은 年 19%씩 늘어났어요. 그런데 投資가 거의 안 됐어요. 그만큼 企業留保金이 쌓여 있는 狀態죠. 그 規模가 250兆 원에 達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 朴槿惠 大統領도 그렇고 前任 大統領들도 企業의 投資를 誘導하기 위해 規制改革을 實施했지만 別 效果가 없었습니다.

    “規制를 없애면 企業이 投資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利潤이 남는다면 規制에 關係없이 投資하는 게 企業의 屬性입니다. 投資할 곳도 없는데 投資를 하라니까 規制 핑계를 대는 거죠. 歷代 大統領이 다 그렇게 속았어요. 特히 盧武鉉 前 大統領은 財閥改革을 제대로 한 最初의 大統領이 되겠다고 宣言했지만 財閥의 힘이 가장 커진 때가 그때입니다. 某 財閥企業 傘下 經濟硏究所의 硏究 結果를 財閥政策으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나오지 않습니까?”

    ▼ 왜 그랬던 건가요.

    “제가 弄談으로, 經濟政策을 左右하는 經濟 官僚들이 留學 가서 工夫를 빨리 끝내려다보니 冊을 끝까지 안 읽고 앞 部分만 읽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經濟學 冊 大部分이 앞에는 效率만 이야기하고 問題點은 뒤에서 다루거든요.(웃음)”

    ▼ 企業들이 投資를 하지 않는 理由가 뭔가요.

    “大企業은 天文學的인 餘裕資金을 가졌지만 投資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고, 中小企業은 投資할 곳은 많은데 돈이 없어 못하는 實情입니다. 우리나라 大企業은 核心 尖端技術이 不足해요. 우리나라 R·D(硏究開發) 支出은 世界 5位이고, GDP(國內總生産) 對比로는 이스라엘에 이어 두 番째로 높습니다. 그런데도 核心 尖端技術이 없다는 건 硏究(R)가 아니라 開發(D)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外國에서 硏究한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製品을 開發한 것이죠. 이젠 우리도 開發에서 硏究로 가야 합니다.”

    “참 탐욕스러운 大企業”

    그는 現在의 經濟危機 脫出 解法을 大企業이 아닌 中小企業 育成에서 찾아야 한다고 强調했다. 그래서 ‘同伴成長’ 政策이 重要하다는 것.

    “大企業으로 흘러갈 돈이 中小企業으로 흘러가도록 誘導하기만 해도 現在의 經濟危機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大企業과 中小企業 間에 不公正去來가 日常化해 있습니다. 口頭 注文, 어음 決濟, 技術 奪取, 納品價 후려치기 等은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日本의 大企業과 中小企業 間 去來를 보면 본받을 게 많아요. 日本 企業에 納品하는 親舊가 있는데, 가끔씩 알 수 없는 돈이 大企業으로부터 入金되기에 알아보니까 政府補助金이 나오면 그 돈을 納品業體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합니다. 公正去來를 넘어 相生(相生)을 하는 거죠. 獨逸에서도 原資材 價格이 오르면 卽刻 部品價格에 反映해 下都給業體 納品價格을 올려줍니다. 우리도 이런 相生 文化가 必要합니다.”

    ▼ 大企業 超過利益 共有制를 主張한 것도 그런 理由에서….

    “超過利益의 相當部分이 下都給業體에 納品價를 후려치기한 結果입니다. 下都給業體가 허리띠를 졸라 價格을 낮췄기 때문에 大企業이 돈을 더 많이 번 것이니 같이 나누는 게 當然한 것 아닐까요.”

    ▼ 同伴成長委員長 時節 推進한 ‘中小企業適合業種’ 選定에 對해 大企業들이 不滿이 많은 模樣입니다.

    “1979年 이미 ‘中小企業 固有 業種’李 指定된 바 있습니다. 노무현 政府 때 없앤 걸 제가 ‘固有’를 ‘適合’으로 바꿔 살려냈습니다. 申請한 230餘 個 業種 中에서 레미콘, 豆腐, 된醬, 간醬, LED照明 等 82個를 選定했습니다. 法的 强制性은 없지만, 國民이 지켜보니까 大企業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즘 大企業이 77個 業種을 풀어달라고 言論 플레이 하는 것을 봤습니다. 참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 中小企業適合業種 選定으로 오히려 外國 大企業에 國內 市場을 내주게 됐다는 主張도 있던데요.

    “LED照明 市場을 世界的 企業인 필립스가 蠶食한다고 例로 드는데, 필립스코리아는 우리나라에서 低位技術로 만드는 LED照明을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中小企業에서만 만드는 게 效率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適合業種 指定을 取消하면 中小企業은 다 亡하고 兩極化는 더 甚해집니다. 그러면 經濟가 더 活力을 잃고 社會不安, 社會破綻으로 이어져 結局 大企業도 亡할 수밖에 없어요.”

    “준비 안 된 대통령들, 죄다 재벌에게 속았다”

    정운찬 前 總理는 스승 趙淳 前 副總理(오른쪽)로부터 均衡, 中庸, 調和를 배웠다고 말했다.

    ▼ 同伴成長委員長 할 때 一定 規模 以下의 公共發注는 中小企業만 入札할 수 있도록 했죠.

    “過去엔 大部分 大企業이 落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落札받은 大企業은 中小企業에 다시 下都給을 줍니다. 中間에서 利潤만 남기는 거죠. 그래서 차라리 中小企業에 直接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中小企業이 크게 德을 본다며 고맙다는 電話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公正去來, 中小企業 保護, 支援을 통해 大企業으로 흘러갈 돈을 中小企業으로 흘러가도록 하면 中小企業이 그 돈으로 投資를 하고 生産을 늘리고 雇傭을 늘리게 된다. 그러면 職員 所得이 늘어나 消費 需要가 늘게 돼 景氣沈滯를 緩和하고 持續成長을 이룰 수 있다”고 强調했다.

    “最低賃金부터 올려야”

    全 世界的으로 피케티 論爭이 한창이다. 프랑스 經濟學者 토마 피케티는 올해 出刊한 著書 ‘21世紀 資本’에서 “所得不平等이 擴大되고 있는데, 經濟成長率보다 資本收益率이 더 높은 게 原因”이라며 “富의 再分配가 必要하다”고 力說했다.

    “그 冊을 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 피케티의 硏究 方法이나 枝葉的인 部分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只今 全 地球的으로 不平等이 問題가 된다는 걸 認識하는 게 重要하다고 봅니다. 그것조차 認定하지 않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未來學者 자크 아탈리는 “21世紀는 利己的 利他主義 世界가 될 것”이라고 했다. IT技術이 發達한 21世紀엔 누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仔細히 알게 된다. 이 때문에 富裕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對해 關心을 가지지 않으면 抵抗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不安感 때문에 自身을 지키기 위해 남을 돕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利己的 目的으로 利他主義를 實現한다는 이야기다.

    ▼ 世界的으로도 兩極化가 深刻한 模樣입니다.

    “美國에서도 3年 前 ‘월스트리트를 占領하라’는 運動이 벌어졌죠. 그런데 3個月쯤 지나면서 示威가 사라졌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富者들이 示威를 意識해 寄附를 많이 했기 때문이죠. 조지 소로스, 마이클 블룸버그, 워런 버핏, 빌 게이츠 等이 나서서 巨額의 寄附를 하고 同僚 富者들에게도 寄附를 督勵하자 兩極化에 對한 憤怒가 누그러진 거죠. 유럽은 以前부터 兩極化에 對한 問題意識을 갖고 있었고요. 그에 비해 우리는 아직 未洽합니다.”

    ▼ 우리나라 貧富隔差는 얼마나 甚하다고 보는지요.

    “피케티의 말처럼 유럽이나 日本보다는 甚하지만 美國보다는 덜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美國보다 더 深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美國은 遺産相續으로 富者가 된 境遇가 20% 程度고 나머지 80%는 自手成家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거꾸로 自手成家는 20%밖에 안 되고 相續 富者가 80%나 됩니다. 相對的 剝奪感이 더 큰 거죠.”

    ▼ 所得不平等을 解消할 根本的인 方法이 있다면.

    “非正規職 問題를 解決해야 하고, 中小企業 임금이 大企業의 70~80%는 되도록 誘導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最低賃金을 引上하는 게 效果가 있습니다. 來年부터 時間當 5600원 程度를 適用하도록 定해졌는데, 너무 낮은 水準입니다. 症勢도 必要하다고 봅니다.”

    ▼ 症勢라면 富裕稅를 말하는 건가요.

    “富裕稅를 만들기는 正말 힘듭니다. 累進稅를 修正하자는 거죠. 累進稅率을 더 擴大한다든지, 課標 區間을 더 늘린다든지, 여러 方法을 苦悶할 必要가 있습니다.”

    理念에서 實用으로

    話題를 社會로 돌렸다. 歲月號 沈沒 等 어이없는 事件·事故, 指導層의 各種 醜態와 非理들을 보며 ‘이게 正常的인 社會인가’ 하는 自愧感이 들 程度다.

    “歲月號 慘事를 보며 세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하나는 우리 社會의 基礎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番째는 어느 位置에 있든 最善을 다해 일하는 文化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세 番째는 믿음의 社會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美國의 盧(老)辯護士가 辯護士가 된 아들에게 忠告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醜한 사람’ 3가지 스타일이 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一旦 좋은 사람으로 看做하고 對해라, 그러면 그 사람이 背信할 일이 別로 없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더라는 內容인데, 참 共感이 갔습니다. 一旦 믿는 社會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 우리 現實은 理念對立까지 더해져 오히려 不信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작은 것부터 信賴를 쌓기 위한 試圖를 해야 합니다. 徙木之信(徙木之信)이란 말이 있습니다. 中國 陳(秦)나라 政治家 商鞅이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세우고 이를 옮기는 者에게 金 10個를 주겠다고 했지만 百姓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금 50個를 내걸었고, 한 사내가 나무를 옮기자 卽時 賞金을 줘 거짓이 아님을 證明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法을 公布했습니다. 새로운 法에 對해 百姓의 不平이 많았습니다. 이때 太子가 그 法을 어겼는데, 商鞅이 太子의 補佐官과 그의 스승을 處刑하자 百姓도 믿고 기꺼이 法令을 遵守하게 됐다고 합니다. 指導者가 먼저 작은 일에서부터 믿음을 주는 게 必要합니다.”

    ▼ 政治權이 便 가르기를 부추긴다는 指摘이 많은데요.

    “助長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結果的으로 不信, 分裂을 일으킨 面이 있다고 봅니다. 政治權에서부터 不正, 불의, 腐敗가 없어져야 합니다. 또한 理念 싸움으로부터 脫皮해야 합니다. 오늘날 理念으로 싸우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事實 完全한 補修, 完全한 進步란 없습니다. 事案別로 어떤 것은 保守的일 수 있고 어떤 것은 進步的일 수 있는 거죠.”

    인터뷰 中에 그가 한 말이 있다. 座·右, 進步·保守의 二分法的 思考를 超越해 實用과 原則을 志向하는 그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는 어릴 적 美國이 援助한 옥수수가루로 아침엔 옥수수가루떡을, 저녁엔 옥수수粥을 먹으며 자랐어요. 그래서 美國을 批判할 수는 있지만 反美를 主張할 수는 없어요. 北韓에 食糧을 支援해야 하는 것도 같은 理由입니다. 北韓 住民의 마음을 사야 나중에 統一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武力統一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정운찬 前 總理는 旣存 政治權 候補들에 비해 깨끗한 이미지와 ‘經濟專門家’라는 長點이 浮刻되며 2007年과 2012年 大選 有力 候補로 擧論되곤 했다. 하지만 두 番 모두 出馬를 公式化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게 정운찬의 限界”라는 말까지 나왔다.

    “言論에서 推測하고 앞서나간 거지 제가 選擧에 나간다고 군불을 땐 적은 없어요.(웃음) 2007年엔 國民이 제게 願하는 게 뭐였는지도 몰랐고요.”

    “준비 안 된 대통령들, 죄다 재벌에게 속았다”

    정운찬 前 總理는 同伴成長이 兩極化와 低成長을 解決할 代案이라고 强調했다.

    準備 안 된 大統領들

    ▼ 2012年엔 出馬를 어느 程度 準備하지 않았나요.

    “全혀요. 그해 2月 大統領에게 同伴成長委員會 豫算과 人力을 늘려야 한다고 두 番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알았다’고만 하더군요. 그만두란 이야기구나 싶어 그만뒀죠. 그리고 6月에 只今의 同伴成長硏究所를 만들었어요. 그걸 두고 말이 많았는데, 저는 뭘 計算하고 行動하는 性格이 못돼요.”

    ▼ 뜻을 펼칠 생각은 안 해봤나요.

    “恩師인 趙淳 先生이 ‘나라 經濟를 살릴 工夫를 한 사람이 直接 해야지 남에게 맡기면 되냐’고 剛하게 勸誘했는데, 政治란 게 쉽지 않더라고요. 내가 大統領감인가, 大統領으로 일할 準備가 돼 있나 생각해봤습니다. 金大中 前 大統領은 準備가 돼 있었지만, 나머지 大統領들은 準備가 안 돼 있어 失敗했다고 봅니다.

    金 前 大統領은 個人的으로 만난 적은 두어 番밖에 없지만 尊敬합니다. 제가 新聞에 쓴 글을 보고 마음에 들었던지 한 番 본 일도 없는 제게 韓國銀行 總裁, 靑瓦臺 經濟首席, 金融監督委員長 等을 提案했습니다. 繼續 拒絶했더니 그럼 講義라도 해달라고 해서 처음 만났습니다. 準備 안 된 大統領이 나라를 이끌면 國民을 疲困하게 합니다. 우리 國民의 底力은 어마어마합니다. 그걸 活用할 수 있는 準備된 指導者가 必要하다고 봅니다.”

    2007年과 2012年 大選과 關聯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묻자 虛心坦懷하게 들려주더니 ‘오프 더 레코드’로 해달라고 要請했다. 이처럼 그는 뭘 숨기거나 남을 속일 줄 모르고, 相對를 믿고 보는 게 몸에 밴 듯했다. 그게 職業政治人으로서는 短點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人間’ 정운찬의 長點이 아닐까도 싶다.

    ▼ 지난 7·30 補闕選擧 때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動作을 出馬 提議를 했죠.

    “同伴成長 일을 하기에도 너무 바빠 國會에 들어갈 餘裕가 없다고 辭讓했어요. 몇 番 더 찾아왔기에 ‘亂 동작구에 살아본 적도 없다’고 했더니 ‘每日 동작구를 지나가잖아요’ 하더군요.(웃음)”

    “同伴成長은 내 使命”

    ▼ 앞으로도 政治權의 러브콜이 있을 법한데요.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重要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重要하다’는 金大中 前 大統領의 말이 答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番도 政治를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뭘 計劃하고 圖謀하는 性格이 아니거든요. 살다보니 서울대 總長이란 責任이 주어졌고, 國務總理란 役割이 주어졌습니다. 只今 내게 주어진 使命은 同伴成長 文化 造成과 擴散이라고 생각합니다. 只今 이걸 안 하면 우리 社會가 무너질 것 같아요.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봅니다.”

    ▼ 同伴成長에 特別히 愛着을 갖는 理由가 있나요.

    “아버지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셔서 正말 어렵게 자랐습니다. 初·中學校 時節 도시락을 먹어본 적이 없을 程度입니다. 中·高等學校도 進學할 處地가 아니었는데 3·1運動의 民族指導者 34人 가운데 한 분이라 불리는 스코필드 博士가 도와줘서 可能했습니다. 月貰가 모자라 漸漸 山洞네 꼭대기로 올라가는 어려움도 겪었고요. 스코필드 博士가 1960年代에 이미 ‘韓國 社會는 貧富隔差가 漸漸 甚해질 것이다. 貧富隔差 解消에 努力하라’며 제게 相對 入學을 勸했습니다. 經濟學科에 다니면서 趙淳 先生에게 배운 것도 均衡, 中庸, 調和였고요.”

    ▼ 萬若 同伴成長을 위해 일할 자리가 주어진다면.

    “뭐든지 할 用意가 있습니다. 지난 6·4 地方選擧 前에 朴元淳 서울市長이 ‘同伴成長과 經濟民主化를 위한 協約’을 맺자, 서울市 經濟顧問團을 맡아달라는 提案을 해왔습니다. 誤解를 사기 딱 좋으니 選擧 後에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選擧가 끝나자마자 다시 提案을 하더군요. 顧問團을 맡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MOU(諒解覺書)만 맺었죠. 그러자 ‘정운찬이 새政治民主聯合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與黨 廣域團體長과도 MOU를 맺어야겠어요.(웃음)”

    ‘首都 分列’의 副作用

    ▼ 李明博 政府 때 總理를 受諾한 것도 同伴成長, 兩極化 解消를 위해서였나요.

    “總長이 되기 前까지만 해도 個人的으로 李明博 大統領을 잘 몰랐어요. 2002年 서울대 總長이 되고, 그가 서울市長이 돼서 처음 만났죠. 前任 市長이 서울대 앞에 高架道路를 만들겠다고 해서 敎授와 學生들이 크게 反對했어요. 그걸 地下化해달라고 建議하러 찾아갔죠. 이 市場은 이미 그때부터 큰 꿈이 있어서인지 大學에 奬學金과 硏究費를 많이 줬어요. 그 일로 몇 番 만났는데, 2006年 서울市長에 出馬하라는 거예요. 서울을 國際金融都市로 만들고 싶은데, 金融專門家인 내가 適任者라고 생각한다면서. 國際金融은 저보다 어윤대 고려대 總長이 專門家라고 推薦했더니 ‘아, 그럼 古代-高對잖아’ 하더라고요.

    그 뒤에도 이런저런 자리를 맡아달라고 네댓 番 勸했어요. 總理 提案이 왔을 때는 더 以上 辭讓하는 게 未安하기도 했고, 當時 北韓 核實驗, 글로벌 金融危機, 兩極化, 低成長 等 韓國 社會 問題를 解決하는 데 一翼을 擔當하겠다는 생각에 承諾했습니다.”

    ▼ 2009年 9月 總理에 就任한 後, 10個月 만에 自意 半 他意 半 물러났습니다.

    “世宗市 問題는 너무 안타까웠어요. 大統領 속마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指名받을 때는 世宗市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어요. 제가 世宗市 修正案을 國民投票에 부치자고 세 番이나 提案했어요. 그런데 스태프들이 國論이 分裂된다느니, 國民投票에서 否決되면 그 瞬間 레임덕이 온다느니 해서 反對가 甚하더군요. 그런데 結果的으로는 國會에서 否決되면서 레임덕이 왔잖아요.”

    ▼ 只今도 世宗市 移轉은 잘못됐다고 생각하나요.

    “歷史的으로 볼 때 全 世界에서 首都가 나눠진 境遇는 거의 없습니다. 只今도 서울과 世宗市로 나눠진 탓에 생기는 問題가 深刻합니다. 長官들이 모여 차분하게 重要한 意思決定을 할 餘裕가 없어요. 같은 部處의 人士들이 한 時點에 한 場所에서 만나는 일도 드물죠. 只今이라도 再檢討해야 합니다. 原點으로 되돌리는 方法도 있고, 靑瓦臺와 國會, 行政府를 全部 世宗市로 옮기는 方法도 있어요. 둘 다 費用이 많이 들겠지만 잘 計算하고 國民의 意見을 들어 다시 判斷해야 한다고 봅니다.”

    ▼ 總理 時節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운 政策은 없나요.

    “하나는 低成長, 兩極化 解決을 위한 同伴成長입니다. 좀 더 했더라면 具體的인 政策을 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敎育 問題입니다. 한 나라의 敎育政策이 大入과 關聯한 ‘3不政策’(寄與入學·本考査·高校等級制 禁止)밖에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2009年 12月부터 8次例에 걸쳐 5時間씩 敎育改革에 關한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推進한 게 3話(化)政策이었습니다. 大學自律化, 高校多樣化, 學歷要件緩和가 그것이죠. 그걸 좀 더 具體化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 學歷要件 緩和를 위해 規制를 287個 없앴습니다. 그 結果 高校만 卒業하고도 就職할 길이 넓어졌죠.”

    聯政의 美學

    ▼ 우리 政治의 가장 큰 問題가 뭐라고 보는지요.

    “우리 社會의 가장 큰 問題가 創意性이 不足하다는 겁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고, 나와도 收容되기가 힘들어요. 이걸 살려줘야 하는 게 政治人데, 只今처럼 勝者가 모든 것을 獨食하는 帝王的 大統領制에서는 그럴 틈이 없습니다. 趙淳 先生의 말처럼 議員內閣制가 한 方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現在 政治構造로는 누가 大統領이 되든 帝王的 大統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只今 같은 兩黨構圖에서 內閣制를 하면 서로 싸우느라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요.

    “第3의 政黨이 必要합니다. 2012年 제가 제3지대 連席會議를 만들자고 提案한 적이 있어요. 直接 連絡한 것은 아니지만 박찬종 氏도 나오고, 안철수 氏도 나오고 李仁濟 氏도 나오라고 한 셈이죠.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 場을 만들자는 提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反應을 안 하더군요.(웃음)

    政治 理念을 떠나 民生을 위한 第3의 政黨이 必要합니다. 그래서 어느 政黨도 過半 議席을 獲得하지 못하는 多黨制가 된다면 제1당은 第3黨과 戀情을 해야 하고,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政策에 反映되지 않을까 합니다. 獨逸 等 유럽 先進國을 보면 戀情을 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受容하지 않습니까.”

    조심스럽지만 斷乎한 그의 말을 들으며 머지않아 그가 政治權에 ‘改憲’과 ‘政界改編’이란 話頭를 던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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