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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今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新東亞

“只今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을(乙) 中 을’ 代理技士 25時

  • 박은경 | 客員記者 siren52@hanmail.net

    入力 2014-10-22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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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全國에 줄잡아 20萬 名. 最近 發生한 ‘代理技士 暴行事件’에서 보듯 代理運轉 技士들은 ‘을(乙) 中 을’의 生活을 이어간다.
    • 하지만 一 ‘代理(代理)’라고 人生마저 代理人 건 아니다.
    • 오늘도 밤길을 누벼야 하는 고달픈 그들의 눈물 어린 哀歡과 속내.
    “지금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서울의 代理技士 集結地 中 한 곳인 一名 ‘江南 교보타워 射距離.’

    子正 넘은 時刻, 한 代理運轉 技士가 발을 동동 구르며 焦燥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피 같은 時間이 10分을 넘어 30分을 지난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갈 즈음 저만치 거나하게 醉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自身에게 다가오자 代理技士는 “다른 記事를 불러라. 가겠다”며 돌아선다. 그때 무리 中 한 女性이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名銜을 내민다. 마지못해 名銜을 건네받은 代理技士는 “國會議員이 뭔데?”라며 못마땅한 表情으로 대꾸한다.

    9月 17日 불거진, 歲月號 慘事 遺家族 等이 連累된 一名 ‘代理技士 暴行事件’의 顚末을 그동안 言論報道를 통해 알려진 內容으로 簡略히 再構成한 場面이다.

    날이 밝고 事件 消息이 알려지자 瞬息間에 온 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 들썩였다. 波長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一波萬波로 번졌다. 事件을 맡은 서울영등포警察署 홈페이지엔 不實한 初動 對應과 搜査를 叱咤하는 사람들의 憤怒에 찬 글이 暴注했다. ‘힘없으면 잡아가서 밤새 調査하고 힘 가진 사람은 代理技士를 패고도 乘合車 태워 警察署로 모시고 와 調査도 하지 않고 보내고, 그렇게 處理하는 것이 警察의 平素 正當한 일處理 方式인가?’ ‘警察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初動措置부터 잘못됐다. 國會議員은 峭法的 存在인가? 法 適用도 身分에 差別을 두는가? 檢察에서 直接 搜査하라!’….

    事件 搜査가 20餘 일을 넘기면서 ‘國家情報院 介入’ 等 各種 陰謀論이 登場했는가 하면 理念 對決로 치닫는 樣相마저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事件의 實體를 둘러싸고 兩側의 熾烈한 攻防이 벌어졌고, 最近 새정치민주연합 金炫 議員이 被疑者 身分으로 바뀌면서 事件에 對한 關心과 熱氣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特히 國民의 公憤을 산 건 金 議員이 우리 社會 ‘을(乙) 中 을’인 代理技士에게 名銜을 건네며 自己 身分을 誇示한 點이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말로 特權意識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자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所謂 힘 있고 權力 있는 이들의 行態를 그동안 질리도록 봐온 國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聲討하고 나섰다.

    “네가 뭔데 깨워? ○새끼야!”



    이番 事件과 關聯해 누구보다 憤怒가 暴發한 이들은 20萬 名을 헤아리는 全國의 代理技士다. 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인터넷 카페 ‘달빛記事’와 ‘밤이슬을 맞으며’는 最近 하루 訪問者 數가 1萬 名을 넘어섰다.

    그곳에서 鬱憤에 찬 代理技士들의 글을 發見하는 건 어렵지 않다. ‘歲月號 遺族代表 暴行事件 20萬 代理技士 憤怒한다!’ ‘歲月號 遺家族이 代理技士를 恭遜하지 못하다고 暴行! 歲月號 遺家族이 벼슬 되었다.’ ‘國會議員님! 庶民 中 庶民인 代理技士를 集團暴行하고도 나는 잘못 없네, 나는 모르쇠로 一貫하며 雙方暴行이라니…’ ‘暴力은 地位 高下를 莫論하고 絶對 龍仁돼선 안 됩니다. 代理技士 暴行事件도 連累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이 쏙 빠지도록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關聯業界에 따르면, 20萬 名의 代理技士 中 ‘投 잡’을 뛰는 사람이 折半 以上이다. 40代 後半의 1年次 代理技士 鄭某 氏는 “이 일을 하면서 硏究員으로 大學에 講義를 나가는 사람도 봤고, 덤프트럭 2臺로 個人 事業을 하는 이도 봤다. 某 大學病院 職員도 있었다. 30代 中盤의 一般 職場인 中에도 투 잡을 하는 알뜰한 親舊들이 있다. 흔히 代理技士를 ‘人生 막장’으로 여기지만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周圍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平凡한 이들”이라고 했다. 鄭氏 亦是 貿易業으로 繁昌해 中國까지 進出했다가 2000年代 中盤 詐欺를 當해 事業에 失敗한 境遇다.

    代理技士를 ‘業(業)’으로 삼은 이들 中엔 鄭氏처럼 事業에 失敗한 最高經營者(CEO)나 명예퇴직한 大企業 任員, 無名俳優 等 前職(前職)李 實로 다양하다. 어느 날 갑자기 社會制度卷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밑천 없이 맨몸으로 뛰어드는 곳이 바로 代理運轉業界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三寸, 親舊, 同僚인 平凡한 이들임에도 一部에선 마치 처음부터 代理技士였던 것처럼 代理技士를 無視하고 함부로 對하며 얄팍한 特權意識을 숨기지 않는다.

    “代理技士에게 國會議員이란 職業은 아무런 意味가 없다. 그들이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淸掃夫나 國會議員이나 우리한텐 똑같은 손님일 뿐”이라는 40代 後半 代理技士 李某 氏는 젊은 時節 大企業에 다니다 辭表를 내고 海外留學길에 올랐다고 한다. 3年 뒤 歸國해 다시 職場生活을 始作했지만 40代 初盤에 會社에서 밀려나 6年째 代理技士 生活을 한다.

    李氏는 代理技士 生活 初盤에 當한 몇 件의 受侮를 只今도 잊지 못한다. 그는 “30代 中盤의 男子 會社員 손님이었다. 目的地를 처음부터 正確히 가르쳐주지 않고 잠이 들었기에 집 隣近에 가서 깨웠다. 그랬더니 ‘네가 뭔데 자는 사람을 깨워? ○새끼야!’ 하면서 辱을 하고 내 멱살을 잡고 車에서 끌어내렸다. 한番은 運轉 中에 中年 男子 손님이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보라기에 難堪해서 못한다고 했더니 自己가 노래를 부르면 點數를 매겨달라고 했다. 某 會社 社長이고 靑瓦臺에 緣줄도 있다면서 좋은 데 취직시켜주겠다기에 나중에 連絡해봤더니 ‘뻥’이었다. 손님 中에 代理技士를 下人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種種 있다”며 씁쓸해했다.

    두들겨 패고, 車바퀴로 깔고…

    5年 前 代理技士 生活을 접고 釜山에서 職場生活을 하는 마흔 살 김준석 氏는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代理技士 草創期 時節, 恒常 記事를 부르다 이젠 불리는 處地가 되고 보니 그때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代理技士 生活 동안 인터넷 블로그에 每日 日記를 올려 人氣를 끈 그도 잊지 못할 受侮를 겪은 記憶이 있다.

    “한番은 職場同僚 3名이 車를 타고 市內 外郭의 閑寂한 地域으로 가달라면서 中間에 2名을 내려달라고 했다. 中間에 經由地가 있으면 時間이 더 걸리고 市內까지 나오는 交通費도 있어 平素 代理費에서 3000원 程度를 더 불렀다. 그러자 運轉 中 ‘왜 代理費를 비싸게 부르냐? 車를 세우라’고 하더니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렸다. 그中 한 名에게 甚하게 暴行當했는데 내가 쓰러지자 逃亡갔다. 警察에 申告해 나중에 加害者들이 다 잡혔는데 내가 合意를 안 해줬다. 나이 좀 든 이들 中엔 가끔 ‘야,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虛勢를 부리기도 했는데, 過去 社長 노릇을 했거나 高位公職者처럼 社會에서 한가락 하다 隱退한 境遇가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나 行動은 그냥 흘려버려야지 一一이 對應하면 代理技士 生活 못한다.”

    50代 中盤의 代理技士 金某 氏와 李某 氏를 만난 건 代理技士에게 一週日 中 피크(peak)라는 ‘불금(불타는 金曜日)’과 맞물린 土曜日 새벽 12時 10分, 서울 江南의 한 패스트푸드店에서였다. 金氏는 “事實 代理技士 暴行은 非一非再하다. 왜 이番 事件만 가지고 시끄럽게 떠드는지 모르겠다. 4年 前 술 醉한 손님이 是非 끝에 代理技士를 暴行하고 車에서 끌어내려 車바퀴로 밀어버린 事件마저 있다. 當時 警察은 不拘束 搜査가 原則이라며 故意로 死亡事故를 낸 加害者를 拘束하지도 않았다. 그땐 只今처럼 言論이 떠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事件은 2010年 6月 26日 밤 9時 30分頃 京畿 남양주시 별내면 서울外郭循環道路 갓길에서 벌어졌다. 是非 끝에 술에 醉한 車主 朴某(當時 41歲) 氏가 代理技士 李某(當時 52歲) 氏를 暴行하고 車에서 끌어내린 뒤 自身이 直接 運轉을 해서 李氏를 넘어뜨렸고 車바퀴로 再次 깔고 지나가 死亡케 한 事件이다. 不拘束 搜査를 받던 朴氏는 事件 發生 한 달 만에 李氏를 暴行하고 乘用車로 치어 숨지게 한 嫌疑(特加法上 逃走車輛)로 拘束됐다.

    代理技士 스마트폰은 ‘동냥 通’

    金氏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던 李氏는 “집이 忠北 淸酒인데 서울까지 오는 ‘콜’을 잡아 한 時間 前 손님을 내려주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는 “代理技士 暴行事件을 보는 視角과 反應은 代理技士들 사이에서도 다르다. 悲憤慷慨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單純한 事件을 言論이 擴大했다는 쪽도 있다. 代理技士 處地에선 暴行당하는 게 워낙 흔해 該當 事件이 平凡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아마 只今도 어디선가 손님한테 얻어맞는 代理技士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代理技士 經歷 4年次인 金氏는 “職場生活과 事業을 다 해봤지만 如意치 않아 代理技士 일을 始作했다. 代理를 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은 그나마 自信感이 있으니 나와서 熱心히 일하는 것이다. 남의 次인 만큼 아무나 運轉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인터뷰 中임에도 그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콜을 잡기 위해 秒 單位로 여러 個 뜨는 ‘오더(일감)’를 確認하는 中이었다. 그런데 特異하게도 金氏의 스마트폰은 3代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代理運轉 프로그램 3個의 오더를 한꺼번에 確認하려고 板 위에 스마트폰을 붙여놓은 건데, 直接 만들었다”며 웃었다. 그걸 보던 李氏가 金氏의 말에 씁쓸히 덧붙였다. “代理技士 스마트폰은 동냥 桶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동냥 桶이 많을수록 돈도 많이 들어올 것 아닌가.”

    두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찾은 新論峴驛, 一名 ‘江南 교보타워 射距離’는 代理技士 集結地로 손꼽히는 곳이다. 每日 새벽 2~3時면 數百 名의 代理技士가 陣을 치고 콜을 기다린다. 그들을 겨냥한 다양한 露店商도 四거리 코너마다 深夜 亂廛을 펼친다. 特히 魚묵 布帳馬車엔 1000~2500원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 代理技士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魚묵에 이어 소시지를 먹던 50代 初盤의 한 代理技士는 “돈 버는 사람은 여기(魚묵 布帳馬車) 社長님밖에 없다. 돈벌이가 안되니 갑갑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布帳馬車 건너便 道路엔 ‘PDA 充電器’ ‘携帶폰 배터리’라는 文句가 쓰인 1t 트럭이 駐車해 있고, 바로 옆 人道엔 携帶電話 充電器와 代理技士가 즐겨 使用하는 숄더백, 携帶電話 줄 等을 파는 雜貨店이 막 露店을 펼치며 開始 準備를 하고 있었다. 時刻이 子正을 넘어 새벽 1時를 向하자 10餘 名에 不過했던 代理技士가 50~60名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 中 손님의 콜을 받고 달려가는 記事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거시기도 예쁠 것 같다”

    “지금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손님의 ‘콜’을 기다리며 虛飢를 달래는 代理技士들.

    隣近 버스停留場에서 20分째 스마트폰 2臺를 손에 들고 서성이는 20代 後半의 한 男性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아직 오늘 첫 콜을 못 잡았다. 平素 같으면 只今이 ‘불금’ 피크 時刻이라 엄청 바빠야 하는데 사흘 連休라서 그런지 손님이 영 없다. 代理技士들도 다른 날보다 훨씬 적게 나온 것 같다”며 아쉬운 表情을 지었다.

    大學 卒業 後 未就業 狀態인 그는 用돈을 벌려고 7個月 前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甲(甲)질’하는 손님을 서너 番 接했다. 大企業 幹部라고 큰소리치면서 ‘취직시켜줄 테니 찾아오라’고 한 손님이 있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名銜 한 張만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젊은 놈이 사람을 못 믿는다’며 막 火를 냈다. 웬만큼 배우고 地位 좀 있는 사람한테서 險한 辱을 듣고 無視當하니 나중에 會社 들어가서 그런 上司 만날까봐 怯난다”고 털어놨다.

    最近엔 女性 代理技士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은 代理技士를 對하는 우리 社會의 否定的 視角에다 女性이라는 理由가 더해져 손님들에게 性醜行을 當하는 等 더욱 劣惡한 處地에 놓여 있다.

    1990年代 後半 外換危機 때 男便과 運營하던 食堂을 접고 代理技士로 나선 50代 初盤의 朱某 氏는 “젊은 男子 손님 中엔 ‘5萬 원만 주면 같이 있어줄게’ 하는 境遇도 있는데, 한 대 쥐어박고 싶다”고 말했다. 朱氏는 自身의 後輩가 4年 前 겪었다는 일을 들려줬다.

    “中年 男子 손님이 高速道路에서 繼續 後輩의 다리를 만지면서 추근댔다고 한다. 到底히 運轉을 할 수 없어 車를 세우자 따라 내려서 繼續 그러기에 警察을 불렀다고 했다. 性醜行으로 告訴했지만 借主는 證據가 없어 풀려났다.”

    朱氏는 性醜行犯의 境遇 ‘證據 내놔라’며 발뺌하면서 警察 調査를 避하는 境遇가 많은데 그럴 땐 正말 몰래 錄音이라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特權’에 무너지는 ‘人權’

    40代 中盤의 8年次 女性 代理技士 安某 氏는 “잘났다는 人間들이 더 우리를 女子라고 얕보고 無視한다. ‘왜 女子가 오느냐?’고 是非를 걸거나 콜센터에 電話해 다른 技士로 바꿔달라고 할 때도 많다. 甚至於 ‘생긴 게 곱상해서 거시기도 예쁠 것 같다’ ‘잠자리 잘할 것 같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羞恥心과 侮辱感이 확 치밀어 오르지만 웃으면서 弄談으로 받아넘긴다. 싸워봤자 힘으로 男子를 이길 수도 없고 警察署에 가봤자 證據도 없기 때문이다. ‘合意下에 그랬다’는 人間들도 가끔 있다. 그나마 요즘은 블랙박스를 단 車가 많아 예전보다 性醜行이 줄었다.”

    그동안 우리 社會는 ‘特權’에 依해 ‘人權’李 無視되는 境遇를 數없이 目擊했다. 그럼에도 最近 박희태 前 國會議長의 골프場 캐디 性醜行 論難에서 보듯 잊을 만하면 한 番씩 事件이 터져 國民을 질리게 만든다.

    하정철 白石大 敎授(法學)는 이렇게 診斷한다.

    “美國에선 自己紹介書(cover letter)를 쓸 때 첫머리를 ‘○○한테서 當身네 會社 이름을 들었는데…’라는 文句로 始作한다. 그 權威를 모두가 認定하기 때문이다. 萬若 우리나라에서 履歷書 첫머리에 特定 人物을 言及한다면 當場 ‘落下傘’이라며 亂離가 날 것이다. 똑같은 狀況에서 全혀 다른 解釋과 樣相이 나타나는 건 그동안 우리 社會 特權層이 ‘甲질’을 통해 스스로 權威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社會共同體 維持에 必要한 最小限의 常識과 良識을 지키지 못하고 法秩序마저 가볍게 여기는 特權層은 이미 均衡感覺을 喪失했다.”

    河 敎授는 “第2, 第3의 代理技士 暴行事件을 막고 社會 憤怒를 觸發하지 않으려면 그들이 그릇된 特權意識을 내려놓고 均衡感覺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繼續되는 景氣不況으로 하루 꼬박 8時間씩 밤길을 달려도 한 달에 150萬 元祖車 벌기 힘든 代理技士가 많다. 熱心히 일해도 希望이 보이지 않는 狀況에서 代理技士 暴行事件까지 겹치자 김종용 全國代理技士協會長은 “只今 代理運轉 業界는 暴風前夜 雰圍氣”라고 귀띔했다.

    現在 4000餘 名의 會員을 둔 協會는 代理技士 暴行事件 後 두 次例 聲明을 發表했다. 9月 27日 두 番째 聲明을 통해 加害者들의 眞正한 謝罪와 人間的 和解를 促求한 金 會長은 “代理技士는 恒時 暴行과 事故 危險에 露出된 사람들이다. 이番 事件 亦是 代理技士와 손님 간 私的 紛爭에서 始作된 일이 一波萬波 擴大됐다. 같은 代理技士이자 會長으로서 慘澹한 心境”이라고 했다.

    4年째 代理技士 生活을 하는 金 會長은 2011年 日本 大地震 때 큰 損害를 보고 事業을 접었다. 貿易業體 社長이던 그는 “한창 事業이 잘돼 中國에 工場을 세우고 日本에 追加 注文을 낸 狀況에서 大地震이 發生했다. 그때 稅關을 通過한 物件이 실린 컨테이너가 쓰나미에 휩쓸려 痕跡도 없이 사라졌다. 物件 값은 이미 支拂했는데, 天災地變이라 保險 惠澤도 못 봤다”고 했다.

    그는 “손님의 甲질보다 代理運轉業體의 甲질에 憤痛을 터뜨리는 代理技士가 더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業體들의 甲질은 代理運轉業界의 根本 시스템과 風土의 問題다. 現在 代理運轉과 關聯한 法이 없다보니 代理運轉 業體, 代理運轉 프로그램 會社, 콜센터 等이 代理技士를 相對로 橫暴를 부리는 境遇가 많은 것.

    罰金 額數 높이는 ‘똥콜’

    “代理運轉을 하면 시스템上 代理技士의 個人 信用情報가 共有된다. 내가 A業體에 所屬돼 있어도 거기에 登錄된 情報를 B, C 業體가 共有한다. 甚至於 콜을 申請한 손님에게도 내 이름과 住民登錄番號까지 오픈된다. 또 ‘充電金’이란 게 있는데 오더를 받으려면 미리 假想計座에 一定 額數의 돈을 넣어둬야 한다. 代理技士가 콜을 받아 뛸 때마다 業體가 거기서 手數料를 떼는데 남은 充電金額은 代理技士 돈임에도 業體들이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한다. 손님의 抗議가 들어오거나 콜을 取消하면 件當 罰金을 물리는데, 業體 側이 罰金 額數를 높이려 ‘똥콜’을 만들기도 한다. 똥콜은 代理技士들이 忌避해서 오래된 오더를 말하는데, 자칫 競爭的으로 오더를 잡다보면 똥콜이 걸릴 때가 많다. 그 밖에 터무니없이 높은 手數料, ‘프로그램 쪼개기’ 等에 對한 不滿도 많다. 政府와 國會가 나서서 代理運轉 關聯 法 制定과 制度 改善을 서둘러야 한다.”

    代理技士를 하려면 代理運轉 業體에 加入하고 每달 1萬5000원 程度 使用料를 내는 프로그램을 사야 한다. 프로그램을 통해 일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 加入한 프로그램이 많을수록 일감이 豐富해지기 때문에 代理技士들은 可能한 限 여러 個의 프로그램을 利用하려고 한다. 그들이 大槪 2臺 以上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理由다. 프로그램 會社들은 그 點을 노려 프로그램 쪼개기를 통해 收益을 올린다. 金 會長은 “그렇게 쪼갠 프로그램은 於此彼 같은 會社 것이라 비슷하다”고 했다.

    代理運轉 業體마다 若干씩 差異는 있지만, 代理技士가 代理費를 받으면 業體가 가져가는 手數料는 件當 平均 20%. 하지만 手數料 外에 每달 내야 하는 保險料와 프로그램 利用料, 콜 取消에 따른 罰金 等을 包含하면 實際 代理技士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 例를 들어 하루 10萬 원을 벌면 그中 代理技士가 實際 가져갈 수 있는 돈은 5萬~6萬 원에 不過하다는 것.

    40代 中盤의 2年次 代理技士 全貌 氏는 “새벽 3~4時에 일 끝나고 親한 同僚끼리 모여 앉아 燒酒 한盞 하다보면 ‘下水溝 人生’ ‘밑바닥 人生’이라며 自嘲하는 이가 많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짓밟히고 무시당해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온갖 醜態로 甲질을 하며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는 손님을 接하면 瞬間 車를 壁에 처박아버리고 싶을 때마저 있다. 殺人衝動을 느끼기도 한다. 언젠가 한番 손님한테 ‘네가 얼마나 等神짓을 했으면 겨우 代理技士냐? 平生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것보다 ‘代理技士 主題에…’같이 人間的으로 侮蔑感을 주는 손님을 만날 때면 正말 感情을 추스르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고단한 잠

    取材 中 만난 많은 代理技士는 이番 代理技士 暴行事件에 對해 “謝過 한마디면 조용히 끝날 일”이었다며 입을 모았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場面을 渴求하는 게 아닐까.

    代理技士가 발을 동동 구르며 焦燥하게 携帶電話를 들여다본다. 저만치 술 마신 한 무리의 사람이 다가오자 “다른 記事를 불러라. 가겠다”며 돌아선다. 그때 무리 中 한 女性이 그에게 “30分이나 기다리게 해서 未安하다. 기다린 時間만큼 돈(待機非)을 더 줄 테니 그냥 가자”며 (名銜 代身) 自動車 키를 내민다.

    土曜日 새벽 2時 半 넘은 時刻. 新論峴驛 周邊 取材를 마치고 深夜버스에 올랐다. 함께 탄 10餘 名의 乘客 中 4~5名이 代理技士로 斟酌됐다. 그中 40代 後半과 50代 後半으로 보이는 男子 두 名이 나란히 座席에 앉아 낡고 금이 간 携帶電話 液晶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對話를 나눴다.

    男子1 : “에이, 1萬 원짜리 콜밖에 안 뜨네. 오늘은 일도 영 안되고 氣分도 別로네. 똥콜만 안 떠도 좋겠는데.”

    男子2 : “마지막 콜 뛴 게 2萬 원(代理費)에 대방동(目的地)이었는데, 아파트 地下 2層 駐車場까지 내려가 車를 파킹해줬더니 이놈이 갑자기 代理費를 1萬 원 깎자는 거야. 마흔 中盤이나 됐을까? 나보다 어려 뵈는 놈이 이래라저래라 온갖 걸 다 시키며 種 부리듯 해놓고 그깟 돈 몇 푼 된다고 깎자니, 나 원 참 더러워서. 運轉하는데 어깨도 툭툭 치고 말이야. 性質대로 확 牌버리는 건데….”

    憤을 못 삼킨 ‘男子2’의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男子1’의 머리가 車窓에 부딪히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窓밖으로 形形色色 불 밝힌 漢江 다리들이 보이고 어두운 물결 위에 비친 絢爛한 照明이 어지럽게 일렁이며 춤을 췄다. ‘男子2’는 鍾路2街에서 ‘男子1’李 내릴 때까지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Interview | 전선영 용인대 敎授

    “初等學生 水準만 돼도 特權意識 사라질 것”


    “지금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時事 칼럼니스트로도 活動 中인 전선영(寫眞) 龍仁大 라이프디자인學科 敎授는 비뚤어진 特權意識에 依한 權力 行使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社會的 物議는 非但 우리나라만의 問題가 아니라 全 世界的 現象이라고 말한다.

    -잊을 만하면 特權層의 ‘甲질’李 도마에 오른다. 理由가 뭘까.

    “지난해 5月 某 粉乳會社 營業社員이 代理店主한테 暴言을 퍼부은 事件이 公開되면서 ‘甲-을’ 論爭이 뜨겁게 벌어졌다. 그즈음 美國 캘리포니아대 哲學 敎授가 쓴 冊이 國內에 出刊됐는데, 副題가 ‘不道德한 特權意識과 獨善으로 우리를 욱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 冊에 ‘골칫덩이(asshole) 理論’이 나온다. ‘골칫덩이’는 特權意識에 젖어 自身은 특별하니까 社會的 慣習을 잘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을 일컫는다.

    權力感이 充滿해지면 남에게 嚴格하고 自身에게 寬大해지는 屬性이 생긴다. 그래서 深刻한 잘못을 저질러도 自己正當化할 可能性이 높다. ‘나는 나쁜 일을 좀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權利를 附與하기 때문이다.”

    -‘代理技士 暴行事件’에 對해 많은 사람이 公憤을 느끼는데.

    “人間은 他人에게 함부로 無視되거나 暴行當해선 안 되는 神聖不可侵한 存在다. 그 事件에서 加害者들이 看過한 게 바로 그 點이다. 2011年 나온 ‘社會的 弱者에 對한 初等學生들의 認識’이라는 碩士論文(著者 鄭美京)에 따르면, 10名 中 8~9名의 아이가 ‘불쌍하다’ ‘도와주고 싶다’ ‘잘 對해줘야 한다’고 認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社會가 그동안 그런 初等學生 水準의 論議만 이끌어냈어도 弱者에 對한 特權意識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特權意識을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을까.

    “國內外 많은 硏究結果에 따르면, 特權意識을 完全히 뿌리 뽑을 순 없다고 한다. 하지만 더 나은 來日을 꿈꾸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改善하려고 努力하면 나아지는 게 또한 人間이다. 人格體는 自己 選擇과 意志的 行動에 對해 책임지는 存在다. ‘人間이 尊嚴하다’는 말뜻을 深思熟考해 價値觀을 定立하고 實踐에 옮기도록 努力해야 한다. 올바른 行動은 올바른 價値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前 敎授는 “映畫 ‘親舊’에서 同數(장동건 分)가 樽石(유오성 分)의 다리 밑을 기는 場面이 나오는데, 동수는 씻을 수 없는 恥辱을 느끼고 復讐의 칼날을 간다. 아마 暴行당한 代理技士도 그런 侮辱感을 느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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