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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守의 張子房 尹汝雋 “‘狂氣’로 公薦한 韓國黨 初選議員 大幅 바꿔야”|신동아

保守의 張子房 尹汝雋 “‘狂氣’로 公薦한 韓國黨 初選議員 大幅 바꿔야”

“每番 같은 類만 充員하니 黨이 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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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19-12-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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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代 總選 ‘彈劾 逆風’ 當時 水準의 非好感度

    • 彈劾 立場 整理에 엉거주춤하니 支持度가 저 模樣

    • 平生 檢査만 한 黃, 鍾路 地域區 出馬 엄두도 못 낼 것

    • 劉承旼, 獨自 路線 旗발 들면 젊은 層 呼應 相當할 것

    • 永遠히 朴槿惠에 묶여서 黨에 무슨 將來 있겠나

    • 文, 스스로 支持 基盤 縮小해 困境…自業自得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모르겠어요. 제가 눈이 어두워서 안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保守의 張子房(張子房) 尹汝雋(81) 前 環境部 長官이 ‘모르겠다’는 單語를 連거푸 뱉었다. 次期 大選에서 與黨 候補와 互角之勢(互角之勢)로 맞설 保守野黨 候補가 보이느냐는 質問을 했을 때였다. 그는 ‘理解할 수 없다’는 表現도 연신 쏟아냈다. 不可解(不可解)의 對象은 마찬가지로 보수다. 張子房의 할아버지가 와도 ‘모른다’ ‘理解 못 한다’만 反復하다 말끝을 흐리게 만든 勢力. 韓國 政治의 時計바늘을 거꾸로 돌려버린 酒類 保守. 바로 自由韓國當이다. 

    逆走行한 韓國黨과 달리 尹 前 長官은 八旬의 나이에도 正走行하고 있다. 그는 2019年 인터뷰 專門雜誌 ‘IVE(아이브)’ 創刊에 關與했다. 몇 年 前 “79世와 79年生이 같이 일하면 재밌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그거 재밌겠다” 싶어 始作했단다. 創刊號에 直接 인터뷰語로도 나섰을 程度니 그의 熱情도 普通은 아니다. 只今도 1週日에 두 番 서울 강남구에 있는 IVE 事務室에 들러 諮問에 應한다. 

    德分에 尹 前 長官은 九重宮闕에서 알 수 없는 밑바닥 民心에 如前히 밝다. 이런 逸話도 있었단다. 

    “‘曺國 事態’ 當時 젊은 親舊들에게 文在寅 大統領과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批判的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 親舊들이 ‘長官님 말씀 다 맞는데요, 韓國黨은 더한 勢力 아니에요?’ 이래요. 뭐라더라. ‘腐敗의 著作權을 가진 政黨’이라던가.(헛웃음)” 



    數十 年 前부터 그의 業(業)은 民心을 읽는 것이었다. 그는 1966年 동아일보 ‘신동아’ 記者로 社會生活을 始作해 國會議長 公報官, 大統領祕書室 公報祕書官, 公報首席, 政務長官 補佐官(次官級), 環境部 長官, 한나라당 汝矣島硏究院長 等을 지냈다. 權力의 深層에서 民心에 對한 銳敏한 感覺을 키워온 保守 元老가 30~40臺와 부대끼며 벼려낸 感受性이 궁금했다. 2019年 12月 9日 서울 西大門區 동아일보 忠正路社屋에서 그를 만났다.

    韓國黨 非好感度 65%

    -韓國黨에 對한 非好感度가 65%에 達합니다.(한국갤럽 11月 調査 基準) 總選에서 도리어 ‘韓國黨 審判論’이 提起될 것이라는 分析까지 나오는데요. 歷代 第1野黨 中 이 程度로 ‘拒否反應’을 일으키는 境遇가 있었습니까? 

    “17代(2004年) 總選 앞두고 한나라당이 ‘彈劾 逆風’을 맞아 거의 瀕死 狀態에 빠졌어요. 羞恥는 正確히 記憶 안 나는데, 그때 한나라당에 對한 國民의 非好感度가 이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았을 거예요. 그것 말고는 다른 前例는 못 찾아보겠어요.” 

    그는 17代 總選 當時 한나라당 選擧對策本部 副本部長이었다. 慘敗가 豫想되던 한나라당은 121席을 確保해 起死回生했다. ‘天幕黨舍’를 꾸려 選擧를 이끈 朴槿惠 當時 한나라당 代表는 一躍 ‘選擧의 女王’으로 떠올랐다. 

    -當時 天幕黨舍가 效果를 내 期待보다 宣傳했죠. 

    “김형오 事務總長이 選擧對策本部長이었는데, 地域區 판勢가 어려웠어요. 副本部長인 제가 代理해서 選擧를 치렀죠. 主務局長이 輿論調査 結果를 土臺로 報告하기를 ‘比例代表 包含 51席밖에 못 얻는다’고 그래요. 앞이 컴컴했죠. 메신저를 拒否하는 狀況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내놔도 拒否합니다. 朴 代表에게 ‘이番 選擧는 戰略 없이 치러야겠습니다’라고 했죠. ‘죽을罪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한 番만 機會를 주십시오’ 이렇게 세 마디만 하시라 말씀드렸어요. 

    朴 代表가 씩 웃더니 ‘짤막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時間을 節約해 한 군데라도 더 갈 수 있겠네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每日 아침 遊說 日程을 아주 過할 만큼 짜서 드렸어요. 그런데도 (朴 代表가) 한 番도 힘들다는 얘기 없이 日程을 다 消化했지요. 選擧 막판에 가서는 朴 代表에게 ‘改憲 沮止線을 달라’는 메시지를 追加하시라고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이게 먹혔는지 121席을 얻었죠.” 

    2004年 5月 16代 國會 任期 終了 後 尹 前 長官은 朴 代表의 挽留에도 脫黨屆를 提出하고 黨을 떠났다. 尹 前 長官에 따르면 그해 여름 朴 代表가 다시 連絡해 와 서울 麻布에서 點心 食事를 했다고 한다. 그 뒤로 두 사람의 因緣은 좋은 模樣새로 이어지지 않았다. 

    “朴 代表가 大統領 候補가 되기 前 黨 代表로 보여준 모습에 너무 失望해 言論을 통해 公開的으로 批判했어요. 지나치게 垂直的이고 閉鎖的인 리더십이라 大統領이 되면 個人도 나라도 不幸해질 거라고 했죠. 選擧 끝난 後 가까운 議員들이 電話해 弄談으로 ‘長官님 移民 가셔야 할 것 같다’고 그랬죠(웃음).” 

    -只今 朴 前 大統領이 處한 狀況을 個人的으로는 안타깝게 보시겠습니다. 

    “人間的으로는 안됐죠. 그러나 大統領으로서 犯한 過誤는 씻을 수 없는 것이고, 그에 對한 代價는 當然히 支拂해야죠.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彈劾 政權의 國務總理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 협의체가 2019년 12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상정을 예고했다. 같은 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좌파독재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自由韓國黨을 除外한 與野 ‘4+1’ 協議體가 2019年 12月 13日 國會 本會議에서 패스트트랙으로 指定된 公職選擧法 改正案 上程을 豫告했다. 같은 날 國會 로텐더홀에서 黃敎安 韓國黨 代表는 “左派獨裁 完成을 위한 議會 쿠데타가 臨迫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민 동아일보 記者]

    -最近 韓國黨에서도 垂直的 리더십 論難이 있습니다. ‘絶對皇政(絶對黃政)’이라는 말까지 도는데요. 

    “黃敎安 代表는 彈劾당한 大統領 밑에서 法務長官과 國務總理를 지낸, 胎生的인 限界가 있지요. 그러면 代表가 되는 過程에서나 就任 以後에라도 正말 革新的인 變化를 보였어야 해요. 그런데 朴 前 大統領 彈劾에 對한 立場 整理를 黨도 안 하고 代表도 안 하잖아요. 엉거주춤 넘어가려는 것처럼 보이니까 國民들이 좋게 받아들일 理가 없죠. 그러니 支持度가 恒常 저 模樣이지.” 

    -그런데도 黃 代表는 親政體制를 確立하고 있는 模樣새인데요. 

    “黃 代表는 一生을 公安檢事로 보냈으니 嚴格한 垂直的 秩序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잖아요. 平常時 民主主義的 素養을 쌓을 수 있는 環境에 있질 않았지요. 그렇게 體質이 굳어 있는 狀況에서 民主化 時代에 政黨의 代表로 왔단 말이에요. 換骨奪胎가 今方 되겠습니까? 本人은 本人대로 힘들 거고, 黨은 黨대로 彼此 힘들겠죠.” 

    -黃 代表가 就任 後 보여준 大部分의 勝負手가 場外鬪爭이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보세요? 

    “黃 代表가 꼭 場外鬪爭을 하려고 마음먹어서라기보다는, 院內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院外 活動에 置重할 수밖에 없는 理由도 있겠죠. 또 兩大 政黨이 極限的으로 부딪쳤잖아요. 國會는 痲痹됐고. 그러니 場外鬪爭을 黃 代表의 리더십 問題라고만 하기는 어려워요.” 

    -過去 이회창 總裁도 여러 次例 場外鬪爭에 나섰죠. 

    “아휴, 場外鬪爭 말도 마세요. 제가 集會에 每番 參與하면서 市民들의 反應을 有心히 살폈어요. 그러고 나서 李 總裁한테 ‘黨員 動員해 集會하는 것 아무 意味 없습니다. 돈 들고 힘만 들지. 지나가는 어떤 市民도 눈길 안 줍니다. 時代가 바뀌었기 때문에 野黨도 鬪爭 方式을 바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래도 안 바뀌더라고요.” 

    -20年 前에도 市民 反應이 좋지 않았네요. 

    “只今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안 먹혀요. 場外鬪爭하고 甚至於 代表가 初겨울 날씨에 天幕 치고 悲壯한 覺悟로 斷食까지 했는데 支持率 올라갔습니까?” 

    -젊은 親舊들은 韓國黨이 판·檢査, 腸·次官, 將軍만 많은 ‘웰빙 正當’ 같은데 밖에서 鬪爭하니 더 異常해 보인다고 하더군요. 

    “語塞하죠. 그게 몸에 밴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민주당에 있는 所謂 民主鬪士들은 그 鬪爭이 몸에 익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企劃도 잘하죠. 여기(韓國黨)는 (場外鬪爭이) 體質에 안 맞아요.” 

    -軍部政權 時節 ‘六法當(陸法黨)’이라는 말이 있었잖습니까. 只今 韓國黨 人的 構成이 陸法堂에 考試 出身 官僚만 더한 水準으로 보이는데요. 

    “제가 이회창 總裁 계실 때도 같은 問題를 提起했어요. 그런데 自己랑 같은 文化를 가진 사람이 便하잖아요. 그렇게 서로 좋아하게 돼 있어요. 國民으로부터는 漸漸 멀어지는 거고.” 

    -野黨 指導者들의 言語가 너무 貧困한 건 아닐까요? ‘左派獨裁’라는 表現이 21世紀型 野黨에 맞는 슬로건이냐는 指摘도 나옵니다만. 

    “相對方을 프레임에 묶으려고 規定해서 던지는 말인데, ‘左派獨裁’라는 말은 이미 國民에게 食傷하지요. 그렇게 規定할 테면 그 나름의 論理가 있어야 해요. 왜 左派라 하는 것이며 왜 獨裁라고 하는 것이냐. 論理는 없고 規程만 해버리면 누가 承服하려 하겠습니까.”

    狂氣의 公薦

    尹 前 長官은 1998年 이회창 總裁의 政務特報로 任命됐다. 以後 2000年 16代 總選에서 總選企劃團長과 選對委 綜合調整室長을 맡아 改革 公薦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때 各 系派 보스인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氏가 모두 公薦에서 탈락했다. 當時 日刊紙에는 公薦 發表가 있던 날에 빗대 尹 前 長官을 두고 ‘金曜大虐殺의 元兇’이라는 表現이 登場했다. 

    -2000年 16代 總選 때 ‘公薦 물갈이’를 主導하셨잖아요. 

    “제가 主導한 건 아니고 李 總裁가 決心해서 하신 거니 그분 作品이죠.” 

    -只今의 韓國黨 構造上 그와 같은 ‘公薦 물갈이’가 可能하겠습니까? 

    “黃 代表가 大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 한 마디 나눠본 일이 없어 判斷하기가 어려워요. (다만) 20代 總選 때 李漢久 當時 公薦管理委員長이 했던 公薦은 저는 말이 안 되는 公薦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當時 李 議員이 보여준 모습은 狂氣였어요. 李 議員이 平素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분이 그 뒤에 公職을 또 한 것도 아니고 大體 왜 그랬을까요? 

    “그건 모르겠어요. 朴 大統領에게 大體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저렇게 狂氣를 부리는지 正말 納得이 안 가더라고요. 그때 公薦을 새로 받은 사람들이 只今 다 初選이잖아요.” 

    -只今은 ‘親黃 初選 그룹’이라고 불리죠. 

    “그 사람들 大幅 바꿔야 해요.” 

    그러면서도 尹 前 長官은 “野黨은 數的으로 많이 바꾸기가 어렵다. 자칫 밖으로 나가 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이렇게 敷衍했다. 

    “16代 總選 公薦 때 兩大 派閥 보스를 다 쳤으니 亂離가 났죠. 黨을 나간 분들이 민국당 만들어 總選에 나섰지만 地域區에서 單 한 名의 當選者도 못 냈어요. 正말 國民이 무섭고 한便으로 고맙구나 생각했지요. 이회창이라는 사람이 政治改革 하겠다는 約束을 지키기 위해 그 힘든 걸 했고 國民이 認定한 겁니다. 首都圈 40臺가 全幅的 支持를 했어요. 그 德에 DJ(김대중 前 大統領) 就任 2年 만에 치른 選擧였는데도 한나라당이 第1黨이 된 겁니다.” 

    -그래도 韓國黨은 現役議員 33% 以上을 컷오프(公薦審査 前 脫落)하고 競選 때 17%를 交替하는 等 現役議員 折半을 바꾸겠다고 發表했는데요. 

    “數値가 적은 건 아닙니다만, 大槪 選擧 때마다 40%臺의 交替率을 보였어요. 問題는 交替率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을 充員하느냐가 核心이지요. 그동안 40%씩 여러 番에 걸쳐 사람을 바꿨는데도 왜 黨이 全혀 안 바뀌었습니까. 똑같은 類의 사람을 充員해서 그래요. 價値觀과 思考方式이 같으면 行動樣式도 같아진다고요. 그래도 過去에는 元喜龍, 南景弼, 鄭柄國처럼 改革的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議員들이 있었죠. 勿論 그들도 (한나라당이) 與黨이 된 後에는 民心을 反映한 소리를 했다가 靑瓦臺가 언짢은 氣色을 하면 쏙 들어가 버리고 몇 番 그랬다고요. 제가 한番 그들(남원정)李 하는 朝餐모임에 가서 대놓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當身들이 무슨 改革 勢力이냐.’ 그랬더니 ‘그 말 認定한다’ 그러대요. 그런데 以後에는 그나마도 싹 다 없어졌잖아요.” 

    이 대목에서 尹 前 長官은 “戰略도 없고 政策도 없고 어젠다度 없고 이슈도 못 만들면서 뭣 하러 野黨 하나”라며 혀를 차듯 덧붙였다. 

    “國民에게 支持할 動機를 못 주면서 그냥 ‘飯(反)文在寅 뭉치자’고만. 權威主義 時節에야 國家를 暴力이라고 생각했으니 無條件 反對만 하면 認定해줬죠. 只今은 그런 時代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如前히 그런 式이니….”

    鍾路의 黃敎安과 大邱의 劉承旼?

    -黃 代表가 總選에서 鍾路에 나가느냐 마느냐로 말이 많습니다. 

    “黃 代表의 鍾路 出馬가 現實性이 있을까요? 選擧는 안 해본 사람에겐 正말 어려운 일이에요. 게다가 平生 行政府에만 있던 사람이 國會議員 地域區 選擧에 나간다는 건 엄두 내기가 어려울 거예요. 黨 代表니까 總選 全體를 指揮해야 한다는 名分도 있고. 또 鍾路에 나가더라도 當選이 쉽지 않을 걸요? 現役인 정세균 議員이 없더라도 只今 鍾路 地域 有權者들이 黃 代表에게 그렇게 絶對的인 支持를 보낼 것이냐에 對해서는 疑問이에요.” 

    -유승민 議員은 大邱 出馬 意思를 밝혔는데요. 

    “글쎄요. 大邱를 固執하는 모습이 國民 立場에서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大邱도 選擧가 宏壯히 어렵다는 거잖아요. 本人은 아마 어려우니 도망갔다는 認識을 주는 게 죽기보다 싫겠죠. 그건 理解해요. 그런 認識이 많이 作用하지 않았나 싶어요.” 

    -2016年 總選의 境遇, 湖南 基盤의 國民의黨이 出現했음에도 민주당이 中道 票心을 攻掠해 首都圈 壓勝을 거둬 第1黨이 됐습니다. 韓國黨을 두고도 嶺南에 얽매이기보다는 首都圈에 勝負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助言이 많은데요. 

    “首都圈 勝負를 하려면 首都圈 有權者에게 支持받을 수 있는 候補를 내세우고 黨의 모습부터 바뀌어야죠. 只今 모습으로 首都圈에서 어떻게 이기겠어요?” 

    -2016年 民主黨은 김종인 代表를 電擊的으로 迎入해 勝利했잖습니까. 그런 構圖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勿論 當時 민주당의 勝利는 金鍾仁 效果라고 봐야죠. 劇的인 드라마였고. 그런데 韓國黨은 生來的으로 그런 드라마를 못 만드는 體質이에요. 늘 現實에 安住하려 하니까요. 定期國會 끝나면 바로 選擧 치를 판인데 아직도 黨의 모습을 보면 選擧에서 이기겠단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政權이 民心을 잃어 自身들이 反射利益 볼 거라는 便한 計算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程度로 總選 앞둔 野黨치고는 正말 太平해 보여요.” 

    -유승민 議員은 新黨을 만들어 保守의 새집을 짓자고 합니다. 

    “柳 議員이 只今까지 해온 行步를 보면 조금 理解를 못 하겠어요. 왜 韓國黨과 그렇게 합치려고 애를 써요? 獨自的으로 갈 생각을 해야지. 그 재주와 知識을 갖고 韓國 現實을 보면 國民에게 呼訴하고 싶은 이야기가 宏壯히 많을 텐데요. 巨大한 轉換期를 맞아 自身이 생각하는 國家의 未來를 提示하고, 支持하는 사람들을 모아 나서면 相當한 呼應을 받으리라 期待했는데 끝끝내 안하더라고요. 新聞 보면 늘 ‘蟄居한다’ ‘電話 안 된다’고 나와요. 

    그랬다가 懸案 있을 때 잠깐 나와 懸案에 對한 멘트만 하고 또 들어가고. 아니, 政治를 안 할 생각이면 몰라도 할 생각이면 왜 저렇게 하는지 理解 못하겠다는 생각을 여러 番 했어요. 近來 와서 獨自 路線을 가겠다고 말은 해서 두고 볼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안 믿더라고요.” 

    尹 前 長官과 인터뷰하고 사흘 뒤인 2019年 12月 12日, 유승민 議員을 비롯한 바른未來黨 非黨權派 議員들은 新黨名을 ‘새로운保守黨’으로 確定했다.

    保守統合이냐 劉承旼 獨自 旗발이냐

    -保守統合이 이루어지리라 보시는 것 같네요. 

    “요새 겉으로 드러나는 黃 代表의 모습을 보면 統合에 썩 熱意가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패스트트랙이 어떻게 結論 나느냐 두고 볼 생각이겠죠. 定期國會 끝난 後 統合 與否를 決定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고. 심지연 경남대 政外科 名譽敎授가 쓴 ‘韓國政黨政治社’라는 冊이 있어요. 거기에 ‘危機와 統合의 政治’는 韓國 政治의 特徵으로 構造化돼 있다고 나와요. 이게 世界的으로 類例가 없는 現象이에요. 政治權이 自己刷新과 反省, 變化된 時代 狀況에 符合하는 政策의 提示를 통해 支持를 獲得하려 하기보다는 離合集散이라는 政治的 談合을 통해 손쉽게 支持를 動員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沈 敎授는 이런 現象이 相當 期間 持續되리라 봤어요. 그렇게 보면 保守統合 可能性이 크죠.” 

    -保守統合보다는 유승민系가 改革保守 旗발을 내걸고 獨自路線을 追求하는 게 長期的으로는 韓國 保守에 더 좋은 것 아닌가요? 

    “勿論이죠. 흔히 中道라고 불리는 카테고리에 이른바 改革保守 性向 有權者가 相當히 있어요. 그 支持를 確保할 수 있으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지요. 勿論 외마디 口號 갖고 될 일은 아니지만 學界나 政治權에서 도움 받으면 되잖아요. 큰 方向은 다 나와 있다시피 하니 旗발 들고 呼訴하면 젊은 層의 相當한 呼應이 따르리라 봐요. 總選에서 第1黨은 못 되더라도 宏壯히 重要한 政治的 基盤을 形成할 수 있지요. 이를 발板으로 大權에 挑戰하면 저는 勝算이 充分하다고 봐요. 그런데 理由는 모르겠으나 안하는 거죠.” 

    -前에 없는 새로운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完全히 새로운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前例가 없지 않습니까. 

    “요즘 時代 特性을 過去와 같이 보면 안 되죠. 只今 눈앞에 보이는 假想現實(VR)李 前에 생각했던 일이 아니잖아요. 제 欲心 같아서는 40代 中에서 IT(情報技術) 關聯 創業을 해본 經驗이 있는 사람들을 中心으로, 政治 關聯 分野에서 일해본 比較的 젊은 世代가 結合하고 그 뒤에 김종인 氏 같은 政治元老가 울타리 노릇을 하는 方式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勢力이 만들어진다면 暴發的인 人氣를 끌 거예요.”

    朴槿惠라는 山

    -韓國黨은 오랫동안 國政을 책임져온 保守政黨 系譜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이 짙은데요. 

    “民主化 以後에도 우리 國會가 責任 있는 國政 運營을 해본 經驗이 없어요. 民主化 運動의 象徵的 存在인 YS와 DJ 두 분도 在任 中 帝王的 大統領이라는 評價를 받았어요. 國政은 大統領이 左之右之하고 與黨은 大統領을 追從하는 사람들만 充員해 構成했잖아요. 只今 與黨이라고 다릅니까? 民主鬪士라고 하는 사람이 櫛比하게 많은데 제 목소리 내는 사람 있어요? 다 앞장서서 大統領과 靑瓦臺만 追從하기 바쁜 모습이잖아요. 與黨 議員들이 스스로 大統領 下手人 役割에 滿足하다 보니 力量이 咸陽·培養될 餘地가 없죠.” 

    그는 이 대목에서 다시 이회창 前 總裁를 經由했다. 

    “李 總裁가 1997年 8月 31日 全黨大會에서 總裁가 됐어요. 巨大 政黨 總裁가 됐으니 저 같은 사람이 있어 뭐 하겠어요. 그래서 總裁께 ‘저는 이제 제 갈 길 가겠습니다’ 했더니 ‘좀 도와달라. 어떻게 黨에서 情勢 分析이 됐건 對策이 됐건 종이 한 張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國政 運營 經驗이 많다고 하는 政黨도 野黨이 되면 종이 한 張 生産할 能力이 없는 거예요. 過去엔 늘 行政府에 身世 졌거든.” 

    -與黨 때는 官僚의 도움을 받다 보니…. 

    “政府가 法을 만들면 表紙만 바꿔 議員 立法으로 냈단 말이에요. 그런 게 體質化됐지. 스스로 생각하고 判斷해본 일이 없거든. 그러다 猝地에 野黨 되니 아무것도 못하는 거지.” 

    -保守가 박근혜라는 山(山)을 넘지 않고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朴槿惠라는 産을 避할 생각을 하면 避해지지 않죠. 다른 걸로 덮어버리면 되잖아요.” 

    -덮어버린다면? 

    “‘朴槿惠 彈劾’이라는 問題를 韓國黨이 正面으로 다룬 일이 없어요. 彈劾이 ‘公共性을 喪失한 指導者에 對한 名譽革命이었던 것’이냐. 아니면 一部 사람들이 主張하듯 ‘正常的 節次로는 執權이 어려운 이른바 革命 勢力에 依해 執權의 手段으로 利用된 것’이냐. 피 터지는 論爭을 통해서라도 黨內에서 이 問題를 整理했어야죠. 그랬어야 朴槿惠라는 人物을 歷史 속으로 보낼 수 있어요. 革命 勢力이 利用했다고 여긴다면 朴槿惠 名譽回復을 위해 鬪爭할 것인지, 公共性을 잃은 指導者에 對한 名譽革命이었다고 여긴다면 國民에게 謝罪하고 懺悔하든지 決定해야죠. 어떤 過程도 안 거쳤단 말이에요. 그런 狀況에서 彈劾 政權의 總理를 지낸 분을 全黨大會에서 黨員들이 選出했어요. 國民들이 그 黨에 어떤 期待를 하겠습니까. 本質的인 딜레마예요. 그러면서 만날 親朴 對 非朴이래. 永遠히 朴槿惠한테 묶여 있어갖고 黨에 무슨 將來가 있겠어요. 쳐다보면 正말 寒心해요.” 

    -保守가 2016年 總選, 2017年 大選, 2018年 地方選擧까지 세 番 連續 敗했는데요. 

    “그렇게 일부러 하기도 어려워요.”

    自業自得

    윤여준 전 장관은 “한국당이 ‘박근혜 탄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조영철 기자]

    尹汝雋 前 長官은 “韓國黨이 ‘朴槿惠 彈劾’ 問題를 正面으로 다루지 않는 以上 未來를 期約할 수 없다”고 했다. [조영철 記者]

    -只今 韓國의 權力 秩序는 ‘進步로 기울어진 運動場’이라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現 執權層이 中道로 分類되던 國民 一部를 包攝해 外延을 擴張한 건 事實이죠. 韓國 社會 헤게모니를 一旦 掌握했다는 點은 認定해야죠. 그러나 政權 잡은 後 2年 半 동안 進步의 能力과 道德性도 밑천이 드러났잖아요. 繼續 進步로 기울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죠.” 

    이와 關聯해 尹 前 長官은 大統領 4人의 人事 方式을 比較線上에 올렸다. 

    “제가 靑瓦臺 公報首席 할 적인데, 이회창 當時 前 總理가 (靑瓦臺를) 다녀갔어요. 제가 YS께 ‘李 前 總理가 나중에 却下 말 안 들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랬더니 ‘괜찮아. 걱정하지마. 選擧 치르고 보자고’ 이러시더라고요. 只今 文 大統領 같으면 어림 半 푼어치도 없는 일이죠. 朴 前 大統領에게도 想像도 할 수 없는 일이고. DJ도 마찬가지죠. 김중권 初代 祕書室長이 6共 때 政務首席이에요. 政治는 그렇게 自己 支持 基盤을 擴大하는 거예요. 文 大統領은 (陣營을) 反對로 딱 갈라서 縮小志向的으로 가버렸잖아요. 그러니 權力 基盤이 漸漸 脆弱해져 只今 저렇게 困境에 處한 것 아닙니까? 自業自得이죠.” 

    -韓國의 未來와 國際 秩序에 對한 識見을 두루 갖춘 經世家가 保守 陣營에 보이지 않습니다. 

    “只今은 經世家를 길러내는 時代가 아닌 것 같아요. 社會가 細分化됐고 學問 分野도 갈수록 微視的으로 쪼개져요. 또 經驗이 蓄積되지 않고 斷絶돼요. 大統領 5年 하고 나가면 後任者가 前任者를 반드시 斷罪하잖아요. 斷絶의 政治가 人物을 못 키우는 나쁜 結果를 가져온 셈이죠. 또 政黨이 사람 기르는 機能을 全혀 안 해요. 政黨이 늘 國民에게 嫌惡의 對象이 되다 보니 大選 앞두고는 斬新한 人物을 어디선가 데려와요. 그러면 그 사람이 選擧를 치르는데, 그조차 政黨이 아닌 캠프가 치러요. 大統領 當選되고 나면 執權黨은 完全히 無力化시키고 캠프 中心으로 論功行賞이 이뤄지죠. 이런 構造에서는 人物이 클 수가 없지요.” 

    2020年 大韓民國 報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彈劾당한 前職 大統領인가, ‘텃밭’ 地域區인가. 混沌의 時代일수록 基本으로 돌아가야 한다. 尹 前 長官은 인터뷰 내내 “進步건 保守건 大韓民國 憲政(憲政) 秩序 內에 存在해야 한다”고 여러 次例 强調했다. 지켜야 할 것이 憲政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保守가 아닌 反動(反動)일 뿐이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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