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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婚式場에서下|신동아

‘혼밥判事’의 한끼

結婚式場에서下

더불어 떠들썩하던 잔칫날의 記憶

  • 정재민 前 判事, 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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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1-02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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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裁判은 傷處로 始作해서 傷處로 끝난다. 當事者들 傷處에 비할 순 없지만 判事도 傷處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飮食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鬱寂함의 조각이 커피 속 角雪糖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慰勞를 받는다. 그러면서 “判事는 判決로 말한다”고 해서 法廷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便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이날 知人의 結婚式에서는 新郞과 新婦가 함께 入場했다가 팔짱을 끼고 나갔다. 家庭法院에 온 事件 中에는 그렇지 않은 境遇가 많다. 結婚式 前날 破婚해 賀客을 돌려보내거나 어느 한쪽이 豫期치 않게 式場에 나오지 않는 境遇가 적지 않다. 나도 結婚式 前날 아내가 結婚式場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한바탕 亂離가 난 일이 있다. 내가 株式 投資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아내가 처음 알게 됐기 때문이다. 代替 株式 投資家 무슨 罪인가. 내가 前科가 있다거나, 숨겨놓은 子息이 있다거나, 필로폰을 服用하고 있었다는 것도 아니고, 但只 옛날에 經驗上 株式을 사본 적이 있을 뿐이다. 알고 보니 아내에게 事緣이 있었다. 匠人이 예전에 장某 모르게 株式 投資를 하다가 IMF 外換危機가 와서 財産을 크게 잃었던 것이다. 어찌어찌 달래서 無事히 結婚式을 치렀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自己도 株式 投資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가장 安全하다고 할 수 있는 OO電子 株式을 고작 한두 週 事故서는 美國 證市는 勿論 유럽 證市까지 보면서 물타기를 언제 해야 할지 隨時로 내게 물어보았다. 오히려 내가 아내의 株式 投資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먹고산다는 것

    나는 豫備 新郞이던 男子가 豫備 新婦를 相對로 損害賠償을 請求한 事件을 裁判한 일이 있다. 豫備 新郞의 主張은 豫備 新婦가 아무런 理由 없이 結婚式場에 나타나지 않아 結婚 費用과 精神的 慰藉料에 該當하는 損害가 發生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裁判을 해보니 理由가 없지 않았다. 被告人 豫備 新婦의 말에 따르면 相見禮 자리에서 前菜 料理로 해파리冷菜가 나오자마자 豫備 媤어머니가 自身의 父母에게 不動産은 얼마나 있는지, 子息들한테 얼마나 물려줄 것인지 물었다. 親庭어머니가 줄 것이 없다고 하자 豫備 媤어머니는 낯빛이 굳어지면서 “며느리 職場도 변변찮은데 그럼 애들이 大體 뭘 먹고사느냐”고 詰難했다. “뭘 먹고사느냐”는 말 때문에 豫備 神父는 그다음부터 나오는 料理는 거의 먹지 못했다고 한다. 

    豫備 媤어머니도 할 말이 많았다. “먹을 거 안 먹고” 모은 돈으로 子息 앞으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주었는데 豫備 新婦 側은 婚需도, 豫斷도, 禮物도 너무 싸구려만 해왔다는 것이다(한복도 물빨래가 되는 것을 했다고 한다). 法廷에서는 두 어머니의 代理戰이 펼쳐졌다. 다툼의 壓卷은 金목걸이였다. 新婦 어머니는 딸아이 親舊들은 굵은 다이아몬드 半指와 목걸이 세트를 받고도 新郞에게 10돈짜리 金목걸이를 해주었는데 豫備 新郞이 “아, 글쎄, 15돈도 아니고 20돈을 해달라”고 했다면서 氣가 막힌다는 表情을 지었다. 그러자 豫備媤어머니는 自己 맏아들은 30돈짜리 金목걸이를 받았다고 받아쳤다. 

    豫備 新郞이 15돈짜리 金목걸이를 해달라고 했다면, 아니 아예 銀목걸이를 해달라고 했다면, 두 사람은 無事히 結婚해 幸福하게 살면서 나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느 한쪽이 잘못했다고 하기 어려웠다. 損害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은 人之常情 아닌가. 오래前 家庭法院에는 相對方에게 “돈을 너무 밝힌다”고 손가락질하는 境遇가 많았지만 요즘은 드물다. 누구나 돈을 밝히기 때문이다.

    各自圖生, 혼밥의 時代

    IMF 外換危機 以後 雰圍氣가 急變했다고들 한다. 公務員 試驗 競爭率이 暴騰하고, 全國의 醫大 커트라인이 서울大 다른 과 위로 치고 올라가기 始作했다. 白頭血統이 아니라 俳優 金正恩이 “富者되세요!”라고 내놓고 德談하는 TV 廣告가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그 뒤로 20年 동안 줄곧 먹고사는 것이 가장 重要한 問題가 됐다. 요즘 IMF 外換危機 때 못지않게 어려워지고 있다. 各自圖生의 時代다. 各自 알아서 먹고 살아남아야 한다. 食口(食口·밥을 같이 먹는 이들)를 챙길 餘裕가 없다. 혼밥의 時代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雰圍氣가 아니었다. 經濟的으로 늘 쪼들리던 父母님은 날더러 큰 人物이 되라고 했을 뿐 富者가 되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그러나 큰 人物이 되면 自動으로 富者가 되던 時節이다). 學校 先生님들도 돈이 最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그래도 寸志는 받던 時節이다). ‘民族 中興의 歷史的 使命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초등학생 때부터 방울토마토 같은 입으로 暗誦하던 國民敎育憲章의 첫 줄) 사람 體面上 어릴 때부터 밥값을 N分의 1로 나누어 計算하는 것을 苟且하게 여겼다. 그래서 나는 돈이 얼마나 重要한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 못했다(지금은 너무 잘 알고 또 좋아하지만). 結婚할 때도 돈 問題로 幸여 感情이 傷할까봐 나는 兩家 父母에게 金錢的 도움을 一切 받지 않고 아내에게 모든 結婚 費用을 合한 것보다 많은 돈을 먼저 送金하고 結婚 準備를 始作했다. 當時에는 아내가 꽤나 感動한 表情이었으나 結婚 後 自身이 뭔가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준 모든 돈이 마이너스 通帳으로 낸 빚이어서 夫婦가 함께 오랫동안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新郞과 新婦는 式場에서 退場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幣帛室로 갔다. 幣帛은 元來 婚禮를 다 끝내고 新婦가 親庭을 떠나 媤家로 가면서 하던 儀禮다. 新婦는 親庭에서 精誠으로 準備한 대추, 밤, 술, 과일 等을 차려놓고 媤家 食口들에게 큰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그러면 媤父母는 대추를 며느리 치마幅에 던져주면서 잘 살라고 德談을 한다. 다른 媤家 어른들도 절을 받고 德談을 하고 절값을 준다. 

    요즘은 節次가 번거롭고, 韓服도 마련해야 하고, 市가 親知에게 절값 負擔을 지운다는 理由로 幣帛을 省略하는 境遇가 많다. 家庭法院에서는 幣帛으로 인한 葛藤 事例도 많이 볼 수 있다. 幣帛을 굳이 하려고 해서 생긴 紛爭이 있는가 하면, 幣帛을 省略하려고 해서 생긴 紛爭도 있다. 이런 境遇에는 幣帛을 굳이 하려는 사람끼리, 안 하려는 사람끼리 各 事件의 配偶者들을 서로 바꾸어 仲媒해주고 싶은 心情이다. 

    나는 結婚式 때 幣帛을 하지 않았다. 代身 結婚式을 마친 뒤에 丈母가 直接 마련한 幣帛 飮食을 들고 本家 어른들을 찾아가서 人事했다. 대추를 김밥처럼 여러 겹으로 말거나 곶감을 菊花꽃처럼 피워놓은, 精誠이 가득 든 飮食이었다. 

    예전에 나는 밥 얻어먹는 것을 유난히 不便해했다. 밥을 얻어먹으면 身世를 졌다는 負擔感이 컸다.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오지랖 넓은 干涉을 해도 참아야 하고 뭔가를 要求하면 어느 程度 들어줘야 할 것 같은 負擔感이 느껴졌다. 내 自由意志의 날개에 조금의 무게만 더해져도 훨훨 날아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무거운 이불을 덮은 것처럼 不便해졌다. 그렇다고 好意를 每番 拒絶하기도 어려우니 一旦 얻어먹고는 재빨리 더 많은 量과 값으로 되갚음으로써 그 이불을 걷어차버리곤 했다. 그래서 ‘金英蘭法’을 歡迎했다. 

    그럼에도 내가 꼼짝없이 過度한 身世를 지게 된 사람이 두 사람 있다. 한 분은 어머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어린 時節부터 밥을 無數히 얻어먹었다. 只今은 안 계시니 되갚을 수도 없다. 또 다른 사람이 아내다. 지난 10餘 年 동안 많은 밥을 얻어먹었다. 내가 地方 勤務하느라 週末夫婦를 한 時間이 길고, 밖에서 사 먹는 날도 많고, 아내만 料理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도 조금은 하지만, 그래도 남에 비하면 比較가 不可能할 程度로 많은 밥을 얻어먹어버렸다. ‘金英蘭法’李 夫婦 사이에도 適用된다면 監獄에 相當히 오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조금 禮儀에 맞지 않는 말을 해도 귀에 거슬려 거북해하면서 아내한테는 別의別 辱을 다 먹어도 그러려니 하는 것도 얻어먹은 밥의 量과 無關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아내에게 辱을 하고도 멀쩡할 수 있도록 앞으로 熱心히 밥을 해줄 생각이다.

    잔칫날 술床을 待接하는 姿勢

    新郞新婦가 幣帛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밥을 먹으러 披露宴場으로 갔다. 클래식 音樂이 흐르는 優雅한 雰圍氣의 西洋式 食堂이었다. 一般 뷔페가 아니라서 氣分이 좋아졌다. 뷔페는 먹을 것이 많은데도 정작 먹을 것이 없고, 그런데도 結局 過食하게 된다. 

    검은 正裝 조끼를 입은 男性 從業員이 큰 圓形 테이블로 나를 案內했다. 다른 사람과 조금 떨어져 앉으려고 했더니 딱딱한 말套로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낯선 어른 바로 옆에 딱 붙어서 앉았다. 從業員이 또 다른 낯선 사람을 내 옆에 앉히려고 할 때 나는 그에게 知人 두 名이 오는 中이라 두 자리를 더 맡아두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從業員이 이番에도 딱딱한 態度로 그럼 5分만 기다리겠다며 마음을 不便하게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案內하면서도 마치 4分 59秒가 된 것처럼 자꾸만 내 쪽을 쳐다보았다. 

    多幸히 暫時 뒤 知人이 어린 아들 손을 붙잡고 들어왔다. 食事는 괜찮았다. 洋松栮 수프도, 미니 샐러드도, 다진 生鮮에 허브를 올린 前菜 料理도 맛있었다. 그런데 이番에는 女性 從業員이 뾰로통한 表情과 音聲으로 飮料水가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錚盤을 든 채, 마치 찹쌀떡, 메밀묵 長壽 같은 發聲으로 “飮料水 드視이이일 뿐!” 하며 클래식 音樂이 흐르는 테이블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보름달 같은 흰 접시 위에 草綠色 初生달 같은 멜론이 나왔다. 다섯 조각으로 칼질이 돼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어른이 두 조각을 連方 먹었다. 그 옆의 어른이 또 두 조각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한 조각이 남았다. 나와 知人은 먹지 않고 知人의 初等學生 아들이 먹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하나 더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곁을 지나가던 찹쌀떡, 메밀묵 長壽 같은 從業員에게 멜론을 조금 더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從業員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한 사람에 한 조각이라고 했다. 

    내가 高等學生 때 故鄕에서 四寸 누나 結婚式이 열렸다. 結婚式이 다 끝나고 新郞新婦가 新婚旅行을 떠난 뒤 큰아버지 집에서 別途로 잔치 같은 것이 열렸다. 마당에 놓인 平牀에 親知와 洞네 사람 數十 名이 북적거리며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담이 없는 집이어서 사람이 隨時로 찾아오고 또 떠나갔다. 큰아버지는 氣分 좋게 술을 받아 드시느라 얼굴이 幣帛 대추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愉快한 騷亂과 즐거운 奔走함이 범벅된 場面이었다. 

    그런데 行色이 허름한 아저씨 한 분이 마당 안으로 들어와서 쭈뼛쭈뼛 두리번거렸다. 눈빛이 또렷하지 않고 發音도 正確하지 않았다. 親知도 아니고 洞네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웠다. 率直히 말해 乞人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程度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가가서 例를 갖추고 人事하더니 平牀 한쪽에 앉히고는 작은 술床을 그의 앞에 놓고서 술을 따라주고 한동안 말相對를 해주셨다. 그의 얼굴에 차츰 和色이 돌았다. 나는 아버지가 乞人일지 모르는 사람을 잔치를 祝賀해준 한 名의 손님으로 尊重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달리 보였다. 品位 같은 것을 느꼈다. 婚主가 高級 호텔 禮式場에서 비싼 호텔 料理를 待接할 때 생긴다는 品位와는 달랐다. 돌아보면 그것은 우리 아버지가 特別히 禮儀가 발랐다기보다는 그 時節 그 洞네의 文化였던 것 같다. 잔칫날은 누구나 좋은 마음으로 待接하는 그런 날이고 그래서 잔칫날이었다. 

    잔칫날 초라한 낯선 사람에게 작은 술床을 待接하고 말동무가 돼주는 姿勢. 그것이 眞짜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15돈짜리 金목걸이보다 離婚을 막는 祕訣일지 모르겠다. 그것이 眞짜 幣帛인지 모르겠다. 팔굽혀펴기 50番이 아니라 10番 할 程度의 誠意라면 可能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에는 勿論 職場에도, 社會에도, 政治에도 1年에 한두 番씩은 그런 薰薰하고 興盛스러운 잔칫날이 있으면 좋겠다. 그間의 不和를 덮어두고 서로 飮食을 먹이면서 말동무가 돼주는 날.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前職 判事이자 現 行政府 公務員. ‘사는 듯 사는 삶’에 關心 많은 作家. 쓴 冊으로는 에세이 ‘只今부터 裁判을 始作하겠습니다’, 小說 ‘보헤미안랩소디’(第10回 世界文學賞 大賞作) 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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