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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현 經濟社會發展勞使政委員會 委員長 “主人公은 勞使 政府 입은 내가 막겠다”|신동아

인터뷰

문성현 經濟社會發展勞使政委員會 委員長 “主人公은 勞使 政府 입은 내가 막겠다”

  • 入力 2018-03-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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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노총 參與로 勞使政 對話 開始

    • ‘門戰鬪’는 누구?…민주노총·民主勞動黨 만든 勞動運動 1世代

    • “勤勞時間·最低賃金 除外한 4代 어젠다에 集中할 것”

    • 政府 가이드라인? “안 된다”

    • “隔差 解消 없이 未來 없다는 共感帶 確認”

    • “激하게 싸워온 사이라서 오히려 合意 쉽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신동아’ 1985年 6月號에 실린 ‘大學生 勞動運動의 現場’ 技士는 서슬 퍼렇던 時代, 勞動 現場에 僞裝 就業한 大學生(或은 大卒者)들에 對한 深層 報道다. 이 記事에 登場하는 ‘서울大 出身 문성현 氏’는 서울大 經營學科 71學番으로 大學 卒業 後 高卒로 僞裝해 工場에 就業했다. 當時 文氏는 大卒者인 것이 들통나 會社로부터 “固定間諜”이란 攻擊을 받지만, 同僚들의 全幅的 支持로 勞組委員長에 選出된다. 한 同僚는 이렇게 말한다. 

    “文型은 平素 人間關係가 敦篤한 사람이다. 只今이라도 會社에서 問題 삼으면 數百 名이 나서서 保護해줄 것이다.” 

    2月 8日 ‘신동아’가 33年 만에 文氏를 다시 만났다. 문성현(66) 經濟社會發展勞使政委員會 委員長이다. 勞動運動 1世代의 代表 格인 그는 지난 歲月 勞動運動을 하다 數도 없이 拘束됐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세우는 데 主導的인 役割을 한 人物이다. 全國勞動組合協議會 事務總長, 민주노총 金屬聯盟委員長, 민주노동당 黨代表 等을 지냈고, 민주노총 金屬聯盟委員長이던 2009年, “政府가 一方的으로 밀어붙이는 社會的 對話는 困難하다”며 민주노총의 勞使政위 脫退를 主導한 當事者이기도 하다. 그의 別名은 ‘門戰鬪’. 

    그랬던 그가 1月 31日 호스트가 돼 勞使政代表者會議를 主宰했다. 그와 함께 김주영 韓國勞總 委員長, 김명환 民主勞總 委員長,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會長, 박용만 大韓商工會議所 會長, 金榮珠 雇傭勞動部 長官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민주노총이 8年 2個月 만에 復歸한, 實로 오랜만의 ‘完全體’ 對話의 자리였다.

    “感慨無量했다”

    드디어 민주노총이 勞使政 테이블에 컴백했습니다. 



    “個人的으로 感慨無量했습니다. 人事말에서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멀고도 險했고, 넘은 산 건넌 江은 높고도 險했다’고요. 누가 저보고 時人이라고 하는데, 適切한 表現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민주노총이 實質的으로는 (勞使政위 社會的 對話에) 처음 온 것이라 여깁니다. 1998年 勞使政위가 新設됐을 때 민주노총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參與했습니다. 當時 國際通貨基金(IMF)李 民主勞總 사람을 만나 “앞으로 있을 構造調整에 민주노총이 參與하지 않으면 救濟 金融을 안 주겠다”고 했어요. 勞使政위에 안 가면 민주노총이 모든 責任을 뒤집어쓸 狀況이었던 거죠. 민주노총이 眞情性을 가지고 社會的 對話에 參與하겠다는 意志를 보인 건 이番이 처음이나 다름없습니다.” 

    眞情性을 가졌다? 


    “김명환 委員長이 그럽디다. 요즘 날마다 스스로에게 ‘나는 왜 社會的 對話를 하려고 하나’ 하고 묻는다고요. 그만큼 眞情性과 責任感을 갖고 있는 거죠.”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韓國勞總은 御用 소리를 들으면서도 社會的 對話에 죽 參與해왔습니다. 最近 2年餘間은 參與하지 않았지만, 김주영 委員長은 일찍부터 누구보다도 積極的으로 社會的 對話의 再開를 提案해왔습니다. 率直히 財界는 不便할 수 있어요. 文在寅 政府가 勞動 政策 드라이브를 건 狀況이니까. 하지만 박병원, 박용만 會長 두 분 다 어쨌든 勞使가 같이 問題를 풀어가야 한다는 狀況 認識을 제대로 하고 계십니다. 저보다 돈이 많은 분들이지만, 제가 밥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인터뷰 이틀 前인 2月 6日 民主勞總은 定期 代議員大會를 열고 社會的 對話를 包含한 重層的 交涉에 臨한다는 案件을 可決했다. 交涉 活動 中 社會的 對話는 빼자는 修正 案件이 올라갔으나 贊成率이 30%에 不過해 原案이 그대로 通過됐다. 

    민주노총 立場이 달라진 건가요. 

    “제가 민주노총을 만든 사람입니다. 只今 생각하면 우스운 勞動 彈壓을 지난 30年間 참으로 많이 겪었습니다. 複數勞組 禁止, 3者 介入 禁止, 政治活動 禁止…. 勞動者의 當然한 權利가 保障되지 않으니 總罷業 總力鬪爭을 벌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저, 門戰鬪도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鬪爭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民主勞總 全員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이番에 社會的 對話를 하지 말자고 한 30%는 只今도 ‘交涉 테이블에 갔다가 자칫하면 當한다’고 여깁니다. 나머지 70%도 無條件 積極的으로 社會的 對話를 하라는 건 아니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제는 社會的 對話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程度의 생각일 거라고 봅니다.” 

    어느 時點에서 門戰鬪가 달라진 겁니까. 

    “大·中小企業 間, 正規·非正規職 間 對立이 極端的이 되면서부터요. 勞組 活動이 個別 企業 勞組로만 흐르면 兩極化 構造가 惡化될 뿐입니다. 大企業 勞組만 賃金을 올리고 中小·零細企業 勞組는 그러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社會的 勞使關係, 社會的 對話가 切實해지는 겁니다. 이런 點에서 民主勞總도 언젠가는 社會的 對話 자리에 올 것이라 確信하고 기다렸습니다. 따로 說得 作業을 벌인 건 없어요.”

    ‘鬪爭’과 ‘對話’의 투트랙

    이番에 開始된 勞使政代表者會議는 勞使政위 本會議와는 別途의 트랙이다. 兩大 勞總의 强力한 要求에 따라 最大 懸案인 最低賃金 算入範圍 및 勤勞時間 短縮 等의 勤勞基準法 改正 問題는 다루지 않는다. 代身 社會的 對話機構 改編 方案, 社會的 對話機構에서 論議할 議題 選定, 業種別 協議會의 設置·運營 等을 論議하기로 했다. 

    最大 懸案을 다루지 않는다고요. 

    “時計바늘을 되돌려 지난해 6月로 가봅시다. 그때 勞使政위가 稼動됐다면 兩大 懸案이 法的 機構로 가기 前에 勞使政위에서 熟議期間을 가졌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只今은 最低賃金은 最低賃金委員會로, 勤勞基準法 改正은 國會로 넘어갔습니다. 

    싸울 건 싸우고 對話할 건 對話하자는 겁니다. 夫婦싸움을 하더라도 살림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賞與金을 最低賃金 算入範圍에 넣을 거냐 말 거냐, 休日勤勞手當 重複割增을 150% 或은 200%로 할 거냐는 事實 對話가 不可한 事案입니다. 누구는 利得을, 누구는 損害를 보는 게 明確하니까요. 그런데 이 事案들 말고도 勞使가 머리를 맞대야 할 問題들이 있습니다. 그것에 對해선 對話를 하자는 겁니다. 싸울 日課 對話할 일을 섞지 말자는 것. 여기에 兩大 勞組가 同意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대단한 局面 轉換이고, 우리 社會가 成熟했다는 證據라고 봐요.” 

    그러면 最低賃金과 勤勞時間 短縮 問題 말고, 뭘 가지고 對話합니까? 

    “△良質의 일자리 創出 △社會兩極化 解消 △勞動 3權 保障 △4次 産業革命과 低出産·高齡化 等 時代的 課題를 議題로 꼽았습니다. 이거, 政府가 내놓은 거 아닙니다. 勞使가 對話하자고 提案한 議題예요. 첫 會議 때 이런 議題에 合意했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論議해나갈 겁니다.” 

    勞使政委 改編은 어떤 方向으로 進行됩니까. 

    “아직 具體的으로 決定된 건 없습니다만, 文在寅 大統領도 言及한 바 있듯이 靑年, 女性, 非正規職, 中小企業 等 多樣한 主體가 參與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個人的으로는 當事者 原則을 제대로 反映하고 싶습니다. 勞組 代表를 오래 해왔는데, 정작 當事者들이 眞情으로 願하는 것을 제대로 代辯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하루하루가 切實한 이들은 次善이라도 實現되길 바라는데, 上級團體 代表란 사람은 최선만 主張하다 結局 아무것도 안 한 셈이 되곤 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瞬間부터 ‘내가 內 運動만 해왔구나’ 하고 切實하게 省察했습니다.”

    利潤과 賃金은 같은 뿌리

    1월 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석한 6명의 노사정 대표들. 문성현 노사정위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부터). [변영욱 동아일보 기자]

    1月 31日 勞使政代表者會議에 參席한 6名의 勞使政 代表들. 문성현 勞使政委 委員長, 박병원 韓國經塚 會長, 김명환 民主勞總 委員長, 김주영 韓國勞總 委員長, 金榮珠 雇傭勞動部 長官, 박용만 大韓商議 會長(왼쪽부터). [변영욱 동아일보 記者]

    對話의 速度는? 

    “勞使 兩쪽 모두 하루빨리 正常的인 勞使政 對話 機構를 만들자고 합니다. 韓國勞總은 50日 內로 論議를 끝내자고도 하고요. 그런데 좀 아쉬운 게 있습니다. 다들 바빠서 그런지 實務協議 日程을 잡기가 힘들더라고요. 좀 더 奮發해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제 冊床에서 名牌도 치울 겁니다. 누구든 와서 일 보시라고요. 勞使政委 事務室에 북카페 같은 空間 만들어서 저는 거기에 있으려고요.” 

    文 委員長은 이番에 勞使가 社會的 對話에 參與한 背景으로도, 이番 對話를 통해 반드시 成果를 내야 할 事案에 對해서도 ‘社會兩極化 解消’ 問題를 들었다. 勞使政 各 主體 모두가 ‘隔差 解消 없이 韓國의 未來는 없다’는 危機意識을 切實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隔差 解消를 위해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가 勞總 委員長이라면 할 말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現在는 勞使政 委員長이니까, 입 다물어야죠.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勞使 스스로 찾고 合意해야 합니다. 政府가 섣불리 가이드라인을 내면 안 돼요. 社會的 對話가 政府 政策을 正當化하는 手段이 돼선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政府는 政策 意志가 있지 않겠습니까. 

    “참아야죠. 촛불 以後의 大韓民國은 그래야 합니다. 지난해 촛불運動을 보세요. 國民들이 週中엔 일하고 週末에 촛불 들고 나와 평화로운 方法으로 示威를 했습니다. 엄청난 變化고 發展이에요. 옛날 運動圈은 쇠파이프와 火焰甁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데…. 이제 勞使政 對話에서도 政府는 가만히 있고, 勞使가 主導的으로 對話하며 合意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眞情으로 意味 있는 合意가 돼요. 社會的 對話에서 제가 할 役割은, 政府한테 ‘말 좀 하지 말라’고 하면서 勞使의 防波堤가 돼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노동운동 1세대 출신으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이끌게 된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박해윤 기자]

    勞動運動 1世代 出身으로 勞使政 社會的 對話를 이끌게 된 문성현 勞使政委員長. [박해윤 記者]

    勞使가 果然 合意까지 갈까, 민주노총이 이番에도 또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진 않을까 하는 憂慮의 視線이 많습니다. 

    “勞使는 胎生的으로 다른 存在입니다. 企業은 利潤을, 勞動者는 賃金을 벌기 위해 일합니다. 그러나 그 利潤과 賃金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勞使는 胎生的으로 다르지만 宿命的으로 같이 갈 수밖에 없는 關係예요. 부동이화(不同而和·다름을 認定하되 和睦을 꾀한다)의 精神, 톨레랑스(tolerance)의 精神으로 勞使가 함께 가야 합니다. 이런 精神이 勞使政위를 허브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再開된 勞使政 對話에서 눈에 보이는 成果가 없다면 國民의 失望이 적지 않을 텐데요. 

    “이番엔 勞使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全部 다 合意할 수 없다면 一部만 合意하고, 나머지는 다음으로 넘겨가며 繼續 對話해나갔으면 해요. 各 個別 企業 및 勞使 單位로는 部分的 合意를 30餘 年間 해오지 않았습니까. ‘올해 賃團協(賃金 및 團體協約)에선 요것만 合意하고 나머지는 來後年으로 미루자’ 하는 式으로요. 그런 個別的 經驗을 勞使政 테이블로 갖고 오면 되는 거예요. 지난 30年間 熾烈하게 싸워온 勞使라서 오히려 合意가 수월할 수 있습니다. 勞使가 서로를 正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文 委員長은 2時間 가까운 인터뷰 동안 SK이노베이션 事例를 數次例 言及하며 隔差 解消를 위한 社會的 連帶가 可能할 것이란 期待를 내비쳤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勞使 合意로 賃金引上率을 物價에 聯動하기로 하는 한便 職員 給與 1%에 會社가 같은 金額을 매칭 積立하는 方式으로 相生寄附金을 만들어 協力業體 處遇 改善에 使用하기로 했다. 지난 2月 5日에는 이렇게 造成된 基金 43億 원 中 折半을 68個 協力社에 傳達하는 行事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文 委員長도 參席했다. 그는 “어제 民主勞總 事務金融勞組 代議員大會에서도 賃金引上分 一部를 出演해 社會年代記金을 만든다는 안이 通過됐다”며 “이러한 相生의 努力이 앞으로 퍼져나갈 것이란 希望을 갖는다”고 말했다.

    勞使 相生基金에서 希望 본다

    平素 全泰壹 풀빵 精神을 强調하십니다. 

    “전태일은 裁斷師, 요즘으로 치면 잘 나가는 正規職이었어요. 먹고살 만했습니다. 하지만 車費를 아껴 ‘시다’, 그러니까 같이 일하는 非正規職들에게 풀빵을 사주곤 했어요. 이러한 連帶 精神이 現在 우리에게 必要하다는 點에서 하는 말입니다. 大企業 勞組가 아니라 大企業 勞使의 責任과 役割을 强調한 말로 理解해줬으면 합니다. 어느 朝餐 모임에 講演하러 가서 企業人들에게 전태일 評傳을 나눠드린 것도 전태일의 풀빵 精神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이제는 勞動者 전태일을 連帶의 精神을 象徵하는 社會的 全泰壹로 새롭게 理解했으면 해요.” 

    2時間 가까운 인터뷰의 마지막 質問으로 오랜만에 再開된 勞使政 社會的 對話에 臨하는 覺悟를 물었다. 그는 “文在寅 이 兩班이 大統領이 된다면 꼭 하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게 隔差 解消 問題”라고 했다. 1980年代 勞動運動을 하다 拘束됐을 때 故(故) 盧武鉉 前 大統領과 文在寅 大統領이 辯論을 맡아준 因緣이 있는 그는 2012年 大選 때 문재인 민주당 候補 캠프에 合流했다. 

    “제가 勞動運動을 하면서 隔差 解消 問題에 네 番 失敗한 사람입니다. 민주노총에선 大企業까지 參與하는 眞正한 産別勞組를 만드는 데 失敗했고, 민주노동당에선 非正規職 處遇를 改善하는 社會連帶賃金 政策을 펴는 데 失敗했습니다. 둘 다 大企業 正規職 勞組의 反對를 이기지 못했어요. 2010年 昌原市長 候補로 出馬했을 때는 ‘中央政府 最低賃金보다 1000원을 더 주겠다’는 원 포인트 公約을 내세웠지만 落馬했고, 非正規職의 正規職化 資源 마련을 위한 勞使政連帶基金法을 制定하겠다며 2012年 總選에 나섰다가 또 떨어졌어요. 이番에는 누구보다도 社會的 大妥協을 이뤄내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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