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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未來黨 닻 올린 安哲秀 全 國民의黨 代表|新東亞

인터뷰

바른未來黨 닻 올린 安哲秀 全 國民의黨 代表

“韓國 政治史는 ‘第3黨 殘酷史’… 安住하면 죽는다”

  • 入力 2018-03-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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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YS도 못 한 嶺湖南 統合…“旣得權 兩黨 構造 깬다”

    • 바른政黨? “딴말하거나 머리 굴리는 사람 없더라”

    • 民平黨 創黨 重鎭? “役割 없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 文 政府, 디지털 時代에 아날로그 事故로 ‘政策 混線’

    • “無條件 北韓에 잘해주는 게 햇볕政策 아니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2月 13日 바른未來黨이 닻을 올리면서 2個月 넘게 끌어온 國民의黨 盆唐·統合 事態가 一段落됐다. 2016年 4·13 總選에서 38席을 確保하며 ‘綠色바람’을 일으켰던 國民의黨은 統合 反對派 一部가 離脫했지만 바른政黨과 統合하며 30席의 新生 政黨이 됐다. 國會는 더불어民主黨-自由韓國黨-바른未來黨의 ‘新 3黨 交涉團體 體制’로 本格 再編되면서 새로운 政治 實驗을 豫告한다. 

    願했든 願하지 않았든 新 3黨 體制를 만든 當事者는 安哲秀 全 國民의黨 代表다. 2012年 ‘安哲秀 신드롬’을 일으키며 彗星처럼 登場한 그는 지난 5年間 非難과 讚辭를 同時에 받으며 韓國 政治史의 邊方과 中心을 오갔다. 統合에 反撥한 一部 議員들이 民主平和黨을 創黨하면서 議席數는 줄었지만, 挑戰과 應戰 속에 自身의 政治結社體를 탄생시켰다는 點은 評價받을 만하다. 國民의黨 前(全)黨員 投票에서 73.56% 贊成으로 合黨을 決意한 2月 11日 午前 서울 도화동 ‘싱크탱크 未來’에서 그를 만났다. 投票 結果가 發表되기 前이었지만, 밝게 웃는 모습에 開票 結果를 斟酌할 수 있었다. 

    全黨員 投票가 끝났다. 

    “現在 開票 中인데 投票率은 20.1%였다. 생각보다 높았다. 아시겠지만 普通 大韓民國의 政黨 黨員들은 本人 意思와 關係없이 (政黨에) 加入되는 等 여러 問題가 있어 一般的으로 全黨員 投票를 하면 5% 程度 (投票率이) 나온다. 政黨 活動에 關心이 많은 權利黨員이 投票하면 20% 程度 나온다. 全黨員 投票에서 20%면 宏壯한 거다.”

    統合 過程에서 만나본 바른政黨 人士들은 어땠나.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많더라. 政策的인 面도 있지만 뒤에서 딴말하거나 머리 굴리는 사람은 없었다.” 

    全黨員 投票는 어떤 意義가 있을까. 



    “黨의 모든 權力은 黨員으로부터 나온다는 點은 民主主義 社會의 基本이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부터 全黨員 意思를 먼저 물었고, 投票를 통해 (바른政黨과) 合當하는 大韓民國 첫 事例가 됐다. 그동안 韓國 政治史에서 黨 對 黨 統合은 例外 없이 黨 代表끼리 密室 合意를 한 뒤 ‘動員된 黨員들’의 追認을 받았다. 두 番째는 大韓民國의 첫 東西和合 事例라는 點이다. 아시다시피 국민의당은 湖南에, 바른政黨은 嶺南에 基盤을 둔 政黨이다. 嶺湖南에 基盤을 둔 政黨이 統合하는 건 歷史上 처음이다. 해보니까 DJ(김대중 前 大統領)나 YS(김영삼 前 大統領)가 이 일을 못 한 理由를 알겠더라. 힘들었지만 宏壯히 값진 일이었다. 歷史的으로 큰 劃을 그었고, 全國에서 參與할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었다.”

    “‘큰 그릇’을 만들었다”

    ‘큰 그릇’에 무엇을 담으려고 하나. 

    “처음 政治 始作할 때 ‘왜 政治 經歷이 全혀 없는 나 같은 사람을 國民께서 불러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理由는 政治가 해야 할 役割을 못 했다는 데 있었다. 바꿔달라는 거였다. 政治판에 들어와 보니 가장 時急하게 바꿔야 할 問題는 旣得權 兩黨 構造였다.” 

    美國도 兩黨 構造인데…. 

    “우리 國會는 競爭이 안 된 거다. 金浦-濟州 路線에 大韓航空-아시아나航空만 있을 때는 競爭은 하지 않으면서 料金만 올랐지만 第3, 第4의 航空社가 就航하니 料金도 싸지고 顧客 滿足度가 높아졌다. 우리나라 巨大 兩黨制度 이와 같다. 競爭은 하지 않고 相對 失手에 따른 反射利益만 얻으려고 했다. 國民을 위한 奉仕보다는 ‘權力 주고받기’를 한 거다. 그러다 보니 熱心히 議政 活動을 해도 權力者에게 줄 서서 ‘服務’하지 않으면 다음 總選에서 公薦을 받지 못했다. 國民 눈치를 볼 必要가 없기 때문이다. 國民들은 이러한 構造的 問題를 깨라고 4·13 總選에서 國民의黨이라는 第3黨을 만들어줬다. 바른未來黨 創黨도 그 延長線上이다.” 

    그 延長線上이다? 

    “韓國 政治에서 第3黨은 外延 擴張을 안 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지난 大選 以後 심지연 敎授(現 경남대 名譽敎授)의 ‘韓國政黨政治社’를 耽讀했다. 그中에서도 제3당 歷史를 主로 봤는데, 지난 數十 年間 韓國 政治는 ‘第3黨 殘酷史’였더라. 韓國에서 3黨은 짧으면 1年, 길어도 11年을 넘지 못했다. 國民이 힘들게 第3黨을 만들어줬지만 糖이 사라지는 데 時間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理由는 뭔가. 

    “全國的인 選擧를 앞두고 自慢에 빠지거나 外延을 擴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黨이 繼續 3等하면 사라져”

    國民의黨度 自慢에 빠졌다고 診斷했나. 

    “3黨이 繼續 3等하면 사라진다. 熱心히 해서 2黨, 1黨이 되면 3黨으로 떨어진 黨은 다시 2黨 하려고 努力한다. 最小限 이러한 競爭 構圖가 마련돼야 多黨制가 維持된다. 나도 지난 大選으로 打擊을 입었고, 6月 全國同時地方選擧를 앞두고 있었다. 우리도 外延을 擴張하지 못하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고, 結局 合黨이라는 變化의 成果를 냈다. 第3黨이 살아남고 多黨制를 지키려면 (合黨은) 必須라고 생각했다.” 

    2013年 11月 새정치연합을 創黨하며 勢몰이에 나섰다가 2014年 3月 민주당과 合當(새정치민주연합)을 宣言했다. 當時 ‘虎狼이窟(民主黨)에 들어가 보니 虎狼이가 없었다’며 自信感을 보였지만 7·30 再·補選 責任을 지고 代表職을 내려놓으며 自肅 期間을 가졌는데. 

    “虎狼이窟(民主黨)로 간다고 했을 때는 事實 力量이 不足했다. 民主黨 內部에서 싸워보려고 했지만 意志만 갖고 되는 게 아니더라. 勢力이 必要한 일이었다.” 

    獨自的으로 多黨制를 할 순 없었나. 

    “獨自的으로 未來를 準備하는 데 未洽했던 건 事實이다. 國民이 總選에서 40席 가까운 規模(38席)의 黨을 만들어줬고, 政黨 得票率(26.7%)에서도 민주당(25.5%)을 앞서다 보니 朴槿惠 政府에서 ‘安哲秀 죽이기’ ‘국민의당 죽이기’가 始作됐다. ‘總選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덮어 씌우니 내가 책임지고 辭退할 수밖에 없었다(서울고법 刑事2部는 지난해 6月 總選에서 弘報業體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嫌疑로 起訴된 박선숙, 김수민 議員의 1審 無罪 宣告에 對한 檢察의 抗訴를 棄却했다). 黨 信賴가 떨어져 外延을 擴張하지 못하다 보니 大選에서도 冷靜한 評價(大選 3位)를 받았다. 그래서 지난해 8月 黨 代表에 나섰고, 革新을 하려고 第2創黨委員會를 만들기도 했고 結局 (바른政黨과) 統合의 길로 들어섰다. 黨 대표되고 나서 人材 迎入에 나섰는데, ‘實力 있는’ 분들은 現在 國民의黨과 바른政黨으로 나뉜 狀態에선 제3지대 候補로 出馬하면 百戰百敗라며 한숨을 내쉬더라. 그래서 統合을 생각했다. 朴槿惠 政府나 文在寅 政府나 兩黨制가 좋겠지만….”

    統合을 생각한 理由

    ‘창당 주역’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2월 13일 창당 출범 버튼을 누르고 있다. [뉴스1]

    ‘創黨 主役’인 安哲秀 全 國民의黨 代表와 劉承旼 바른未來黨 共同代表가 2月 13日 創黨 出帆 버튼을 누르고 있다. [뉴스1]

    왜 그렇게 생각하나. 

    “민주당은 우리가 없으면 選擧에서 ‘촛불勢力 vs 積弊勢力’ 對決로 몰아갈 수 있어 宏壯히 便하다. 韓國黨은 ‘文在寅 政府는 틀림없이 亡한다’고 보고 참고 견디면 모든 果實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그 過失을 우리가 가져갈까 끊임없이 죽이려고 한다. 그래서 제3당이 버티는 게 쉽지 않다. 어쨌든 이番 合黨은 韓國 政黨史를 통해 얻은 結論이었고, 나 나름대로 歷史的 認識을 가지고 推進했다. 4次 産業革命 時代를 對備하는 길이기도 하다.” 

    4次 産業革命과 多黨制의 相關關係는 뭔가. 

    “4次 産業革命의 核心 키워드는 ‘分權’이다. 1, 2, 3次 革命은 蒸氣機關, 電氣, IT 革命이었고, 이는 한 가지 技術에 따른 革命이었다. 未來 豫測이 可能했고, 國家 主導는 效率的이었다. 그러나 只今은 未來自動車 技術과 人工知能(AI) 技術이 各各 發展하다가 합쳐지면서 自律走行車를 만드는 時代다. 수많은 技術이 同時에 發展하고 豫測 不可能한 技術이 합쳐지는 ‘融合革命’ 時代다. 이때는 現場에 있는 분들에게 權限과 責任을 줘 對應하도록 해야 한다. 國家主義로는 안 된다. 그런 面에서 文在寅 政府는 宏壯히 憂慮스럽다.” 

    文在寅 政府도 中央集權的 國家主義라고 보나? 

    “박근혜 政府와 理念만 다를 뿐 國家主義 政府라는 點에선 다를 게 없다. 디지털 時代에 아날로그 思考方式을 가진 사람들이 政策을 펴다 보니 暗號貨幣 問題 같은 各種 政策 混線이 생긴다. 이제 大統領 權限도 縮小하고 國會도 多黨制로 가고, 地方分權 時代를 만들어야 한다. 英國의 윈스턴 처칠은 ‘過去와 現在가 싸우면 未來를 잃어버린다’고 했다. 두 黨이 싸우느라 大韓民國이 한걸음도 못 나갔다.” 

    統合 過程에서 湖南 重鎭議員들의 反撥이 컸다. 結局 脫黨해 民平黨을 創黨했는데. 

    “湖南 重鎭議員 全員과 訣別한 건 아니고, 朴柱宣 國會副議長, 金東喆 院內代表, 주승용 前 院內代表처럼 合理的이면서 問題 認識을 같이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은 우리 黨을 바로 서게 하고 湖南이 疏外받지 않게 努力한다. 다만 (국민의당 脫黨 後) 民平黨 創黨을 主導한 一部 重鎭들은 個人의 政治的 立地를 위해 湖南을 고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湖南에서도 孤立을 願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지난해 내가 黨 代表 出馬할 때도 말리더라. 프로野球 韓國시리즈에서 3連霸를 하고, 마지막 競技가 될 수 있는 4次戰(地方選擧)李 열리는데 ‘다음에 登板하라’고 하더라. 黨이 사는 게 더 重要하는 생각에 黨 代表로 出馬했고 統合 旗발도 들었다.” 

    지난 5·9 大選 過程에서 安 候補가 保守層 有權者의 代案으로 急浮上했을 때 支持率 1位에 올랐다가 이른바 ‘朴智元 上王론’(案 候補가 大統領이 되면 朴智元 代表가 幕後 實勢가 될 거라는 論理) 等으로 支持率이 下落했다. 따라서 湖南 重鎭과 訣別한 理由는 嶺南 保守層 攻掠을 위한 手順이라는 分析, 或은 湖南 重鎭이 主導하는 意思決定 過程에서 疏外됐다는 分析이 있다. 

    “그렇지 않다. 나는 끝까지 함께 가려고 했다. 오히려 그분들(湖南 重鎭議員들)李 統合黨(바른未來黨)에 가면 自身들의 政治的 立地가 줄어들고 役割이 없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脫黨을 해서) 湖南을 고립시키고 있다. 湖南에서도 잘 알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湖南 重鎭들이 黨 意思를 決定했다는 건 事實이 아니다. 그분들은 反對로 自身들이 疏外됐다고 생각할 거다(웃음). 내가 黨 代表 時節 自身들의 意見이 反映 안 되고 (내가) 黨을 이끌어가니까….”

    “人身攻擊을 繼續하더라”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民平黨과 뜻을 함께하는 一部 比例代表 議員(박주현·李相敦·장정숙) 黜黨 問題는 어떻게 되나. 

    “地域區 國會議員 選擧는 國民이 出馬者를 보고 뽑지만, 比例代表는 黨을 보고 뽑는다. 그래서 地域區 議員은 脫黨을 해도 議員職이 維持되지만 比例代表는 脫黨하면 後順位 比例代表가 議員職을 承繼하는 거다. 除名을 해서 比例代表 議員職을 維持시키는 건 國民 常識에 맞지 않다. 所信을 지키려면 脫黨해서 일을 하면 된다. 個人的, 政治的 理由 外에는 說明이 안 된다. 내가 (一部 比例代表 議員들에게) 섭섭하게 한 적도 없다.” 

    한때 ‘케미’를 자랑한 朴智元 民平黨 議員은 連日 安 代表를 批判하는데…. 

    “요즘 보면 政治·政策的으로 批判하는 게 아니라 人身攻擊을 繼續하더라. 그런데 批判에도 一貫性이 없다. 나는 드러내 놓고 反박하진 않았다. 記者들이 ‘民平黨이 20席 確保가 可能하다’는 朴 前 代表 發言에 對해 묻기에 ‘只今까지 (朴 前 代表가) 한 말 中에 그대로 된 게 別로 없잖아요’라고 對應한 程度다. 政治的 立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安 代表와 함께 오래 政治를 한 사람이 없다’는 批判도 있다. 

    “繼續 (함께 政治를) 하는 사람들은 報道가 안 돼 그런 거 같다(웃음). 처음 政治를 할 때는 혼자였지만 只今은 한 政黨을 構成할 程度로 周邊에 사람이 많다. 個人的·政治的 利害 때문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게 내가 뭐라고 하겠나.” 

    一部 湖南 議員들과는 사드(THAAD·高高度미사일防禦體系) 配置와 DJ 햇볕政策 繼承을 놓고 葛藤이 있었는데.
     

    “一貫되게 그렇게 덮어 씌우는 거다. 無條件 北韓에 잘해주는 게 햇볕政策이 아니다. 햇볕政策의 基本은 튼튼 安保와 韓美同盟이 前提돼야 하는데, 只今처럼 北韓이 核實驗을 하면서 大陸間彈道미사일(ICBM) 完成 直前 段階인 狀況에서는 美國과 共助하며 北韓을 對話의 場으로 剛하게 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願하는 時期와 條件에 맞게 協商을 始作하려면 强하게 制裁해야 한다.”

    “外交的으로 宏壯한 缺禮”

    2月 9日 平昌 冬季올림픽 開幕式 直前 열린 頂上級 晩餐에서 美國 마이크 펜스 副統領은 中途 退場했다. 北側 人士와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表現한 것으로 解釋됐는데. 

    “나도 現場에 있어 잘 안다. 北韓의 平昌올림픽 參加는 좋은 일이지만 美國은 平昌올림픽과 北韓 非核化 問題는 別個라는 認識이 確固하다. 올림픽과 北核 解決은 따로 區分해야 한다. (文在寅 大統領) 마음은 알겠지만, 리셉션場이든 어디든 北韓과 美國을 만나게 하려는 건 外交的으로 宏壯한 缺禮다. 核實驗 以後 國際社會가 (南北 選手團) 共同 立場을 바라보는 視角도 過去와 宏壯히 다르다. 나는 現 政府에 가장 큰 問題는 外交·安保 分野라고 본다. 現在의 外交·安保팀은 北核 協商이나 4强(强) 外交 經驗이 不足하고, 相當數 大使도 아마추어 選擧功臣을 임명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問題가 發生한다.” 

    6·13 地方選擧에서 廣域團體長 出馬說이 나오는데. 

    “大田 名譽市民이어서 그런지 大田市長 出馬 얘기도 나오더라(웃음). 統合이 마무리되기 前까진 去就는 全혀 苦悶하지 않고 있다. (出馬 與否는) 次期 指導部와 黨에 必要한 게 뭔지 論議하고 決定하겠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12年 9月 政治를 始作했으니 5年 5個月 程度 됐는데 20~30年 政治를 한 거 같다(웃음). 짧은 時間에 엄청나게 많은 經驗을 했다. 이 經驗을 가지고 未來를 열어 나가는 데 役割을 할 責任도 있다. 그러한 使命感으로 熱心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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