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遁走曲 80年代|新東亞

李文烈 長篇小說

遁走曲 80年代

第1部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9回. 언젠가는 가야 할 그날

  • 入力 2018-03-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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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電話를 받은 사람은 바로 손 記者였다. 

    “나요. 그냥 듣기만 하시오. 거기 내 冊床 서랍에 말이요….” 

    “그렇게 陰謀的으로 목소리 가라앉히지 마세요. 只今 우리 部署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어요. 또 누가 있다고 해도 先輩님과 제가 通話하는 게 무슨 들켜서는 안 되는 엄청난 陰謀도 아닐 거고요.” 

    孫 記者가 무엇 때문인지 사뭇 상냥한 後輩로서만이 아닌 목소리로 그렇게 받았다. 그제야 自身의 지나친 配慮를 負擔스러워하는 그女가 에둘러하는 핀잔임을 알아차리고, 얼른 말套를 가벼운 弄談調로 바꾸어 받았다. 



    “알겠소. 알았어요. 어쨌든 거기 내 서랍 맨 위에 흰 封套가 하나 있을 거요.” 

    “金曜日 아침에 出勤은 않고 밖에서 웬 事務室 서랍 속의 封套는. 아, 여기 뭔가 얄팍한 게 하나 있네요. 왠지 辭表 한 張 달랑 들어 있을 것 같은.” 

    그사이 서랍을 열어보았는지 그女가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러나 그에게는 뜨끔한 推測을 하게 하는 말을 보태 그렇게 받았다. 그女가 벌써 封套 속까지 알고 하는 소린 줄 알고 잠깐 唐慌한 그가 짐짓 事務的인 語調로 말했다.

    “어쨌든 이따가 部長님 돌아오시거든 그걸 좀 傳해주시오.” 

    “벌써 9時 半인데 出勤하지 않으실 거예요? 封套 안에 든 게 뭔지 모르지만, 出勤해서 先輩님이 直接 部長님께 드리시는 게 나을 텐데요.” 

    “實은 여기가 東大邱 高速터미널이고, 나는 只今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오.” 

    “무슨 日로 上京하시는지 모르지만, 그럼 돌아와서 部長님께 드리세요. 늦어도 다음 月曜日엔 出勤하실 거 아니에요?” 

    “아마 그 月曜日에도 出勤하지 못할 것 같아 그렇소.” 

    그가 애써 좀 前의 뜨끔한 느낌을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잠깐 電話 受話器로도 느껴질 만큼 싸늘한 靜寂에 이어 孫 記者가 그보다 더 메마르고 뒤틀린 語調로 대꾸했다. 

    “그럼 조금 전 제가 잘 본 거네요. 지난番 서울 다녀오고 나서부터 한 週日, 왠지 여기저기 눈치 보고, 이것저것 재고 견주시는 것 같더라니. 하지만 그럴수록 여기 이 封套는 先輩님이 돌아오신 뒤 部長님이나 局長님께 直接 提出하시는 게 좋겠네요.” 



    “사람의 進退가 그래서야 너무 窮塞하지 않겠소? 小學(小學)에도 쓸고 닦고 사람 맞은(灑掃應對) 다음에는 들고 남(進退)의 禮節이던데. 물러날 때가 들 때보다 더 嚴重하다던가.” 

    “하이고, 對策 없는 우리 라오스슝(老師兄), 文字 쓰지 마시고, 그렇다면 當場이라도 部長님이나 局長님께 바로 電話하시죠. 그런 일에 曖昧한 後輩 끼워 넣지 마시고. 저는 애初부터 거기 끼일 必要도 없고, 또 끼고 싶지도 않아요.” 

    孫 記者가 이番에는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말套가 빠를 뿐만 아니라 文章과 文章, 區와 節 사이를 最大限 빨리 이어 그렇게 말하고는 電話까지 찰칵 끊어버렸다. 그 소리를 무슨 肉重한 자물쇠 소리처럼 들으며 그는 야릇한 困惑에 빠져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아니 孫 記者와 내가 ‘예’ ‘아니오’로 單純하게 끝낼 主題를 이렇게 뒤틀리고 비뚤어진 말로 길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 

    얼마 뒤 9時 45分 서울行 高速버스가 들어와 車에 오른 뒤에도 그는 조금 前 그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아니 孫 記者가 내게 이런 式으로 對해도 되게 됐지. 2基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職場 先輩고, 나이도 대여섯은 많을 텐데, 알던 鄭 보던 情 없이…. 하지만 高速버스가 미처 大邱 市街地를 빠져나오기도 前에 그는 그리 오래地圖 않은 記憶 속에서 이미 그女에게 그 비슷한 語調와 語法을 들은 적이 있음을 퍼뜩 떠올릴 수 있었다.

    2. 

    지난 4月 中旬 좀 늦은 社內 붕어낚시 始釣會(始釣會) 때였다. 한 보름 前부터 그해따라 유난히 搖亂한 參加 督促이 있어서였던지, 出發 前날 最終 點檢에서 記者는 거의 全員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編輯局 쪽 參加 希望者만 50名에 가까웠다. 그 바람에 그 時調會는 新聞社가 버스 두 臺를 專貰 내어 모두가 함께 떠나는 巨創하고 호기로운 行事가 되었다. 

    그사이에도 두어 番 社內(社內) 始釣會 또는 納會(納會) 같은 게 있었으나, 入社 뒤 첫 두 해는 마음에 餘裕가 없어 낚시를 나가지 않을 때라 參席하지 못했고, 前해인 1979年은 늦깎이 登壇의 분주함 탓에 그런 사내 行事에 參加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봄 始釣會는 달랐다. 그는 編輯局에 公告文이 나붙을 때부터 參與를 다짐하고, 오래 싸말아두어 못쓰게 된 낚시道具까지 그 무렵 쏟아지는 新型으로 改備해두었다. 

    이番에도 參席하지 않으면 나는 野遊會와도 같은 이런 사내 行事에 한 番도 끼어보지 못하고 이 新聞社를 떠나는 꼴이 날 수도 있다. 나서 처음으로 遺跡(流謫)의 느낌 없이, 그리고 그동안 잠깐씩 스쳐갔던 學校나 兵營에서와는 달리, 푸근한 所屬感에 자못 按酒까지 하며 3年이나 몸담았던 곳에 對한 禮儀가 아니다, 그런 난데없는 鑑賞 때문이었는데, 아마도 그때 이미 그는 어떤 漠然한 豫感 以上으로 作別 儀式을 豫備하고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入社 後 처음으로 함께 野外로 나가는 셈인 그는 元來 그저 모든 것 훌훌 털고 同僚 先後輩들과 어울리며 그날 하루 無辜한 붕어 입이나 째고 돌아올 作定이었다. 그때 이미 그해 新春 始釣會는 編輯部 솜씨로 ‘새봄맞이 애먼 붕어 입 째기 모임’으로 名稱이 矯正되고, 그 行事에 對한 期待도 거기 어울리는 愉快한 集團 野遊會 같은 것으로 確定되어갔다. 

    하지만 그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그의 몸과 마음은 그런 愉快한 野遊會에 어울리는 狀態가 아니었다. 于先 그 週日 마감해야 되는 原稿가 있어, 그걸 다 쓰고 封緘한 原稿封套를 서울 雜誌社에 登記 速達로 부치라고 아내에게 맡기고 집을 나선 時間부터가 그랬다. 그때가 벌써 아침 6時, 고스란히 날밤을 새운 몸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한 아침 물가에서 으스스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기보다는 따뜻한 이부자리에 들어 밤새 혹사당한 몸과 마음부터 쉬게 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그 아침의 審査도 밤샘으로 지친 몸 못지않게 처져 내려 애初부터 愉快한 붕어 입 째기 行事는 글러버린 일이 되어 있었다. 前날 初저녁 出版社에서 온 갑작스러운 通報 때문이었다. 

    “지난 年末에 낸 中短篇集에서 短篇 하나 빠지고 3月에 새로 發表하신 短篇 하나가 代身하게 되었어요.” 

    저녁床을 물리고 담배 한 臺를 느긋하게 피울 餘裕가 없어, 담배를 문 채 아직도 最小限 서른 枚 以上은 더 써야 하는 連載 原稿를 막 始作하려는데 서울의 出版社 編輯部 古參 女職員이 電話를 걸어 그렇게 알려왔다. 

    “아니, 무슨 일이오? 이 밤에 집으로. 또 무슨 檢閱 같은 것에 걸리기라도 했어요?” 

    그女의 말이 너무 난데없어 그가 되는 대로 그렇게 묻자, 平素에도 굳은 얼굴인 그女가 自身의 表情처럼이나 抑揚 없는 목소리로 對答했다. 

    “週間님은 거기 들어간 短篇 ‘謝過와 다섯 兵丁(兵丁)’을 빼고 지난달 月刊 ‘自由文學’에 發表한 ‘알 수 없는 일들’을 代身 넣었으면 하더군요.” 

    “아니, ‘謝過와 다섯 兵丁’이 뭐 어떻다고, 그게 왜….” 

    그가 그렇게 反問하다 제풀에 질려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 그거다. 맞아, 그걸 거야…. 그러는데 그 編輯部員이 如前히 抑揚 없는 말套로 툭툭 내던지듯 말을 이었다. 

    “國軍이 어떻게 國軍을 죽일 수 있나? 또는 國軍이 어떻게 國軍에게 죽을 수 있나? 大韓民國 小說에서. 뭐 그러는 것 같던데요.” 

    그랬다. ‘謝過와 다섯 兵丁’에서 죽은 다섯 兵士는 國軍이었고, 6·25 때 熾烈한 洛東江 防禦線에 投入돼 밤마다 거세지는 北韓軍의 마지막 攻勢를 피투성이 陣地戰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엔軍의 攻襲 때문에 北韓軍의 攻勢가 뜸한 낮 時間에 暫時 電線을 빠져나와 진지 附近 果樹園으로 내려갔다. 不實한 普及에 배가 고팠거나 入隊 前의 장난氣가 發動해 풋沙果 署理를 나왔거나. 어쨌든 그렇게 해서 풋沙果를 실컷 따 먹고 남은 것은 戰鬪服 주머니와 알鐵帽 가득 담아 果樹園을 나오는데, 때마침 獨戰(督戰) 任務로 電線 後方을 巡察 中인 憲兵 分組(分曹)에 摘發돼 果樹園 앞 江邊 아카시아 숲속에서 戰線離脫과 民弊(展示掠奪)의 罪目으로 卽決處分되었다. 곧 또 다른 大韓民國 國軍인 憲兵에게 죽었다…. 그가 後悔라기보다는 무언가 엄청난 狼狽를 當한 心境으로 그렇게 作品의 導入部를 떠올리고 있는데, 이제는 느긋하게까지 들리는 느린 목소리로 그 編輯部 女職員이 말을 이었다. 

    “戒嚴司 檢閱 쪽 指摘이라는데요. 그 作品 빼지 않으면 그게 실린 先生님 中短篇集 1刷 3版은 納本 畢證을 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나요.”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첫 冊 ‘人間의 大地’에서 合本으로 실린 中篇 ‘戰線의 노래’를 廢棄하고 자잘한 短篇 세 篇으로 메우는 바람에 멀쩡하게 잘 나가던 冊 半病身 만들어 놓은 게 이제 몇 달 됐다고, 또 내 冊에 손을 臺? 안 되겠소. 盧 部長에게 그 作品은 뺄 수 없다고 그래주시오. 作品 一部를 削除하거나 修正 補完해 國軍 손에 國軍이 죽지 않게 하면 되지 않소? 아, 좋아요. 方法이 생각났소. 그 憲兵들 차라리 몰래 盜講한 北韓軍 便衣隊(便衣隊)로 바꾸지 뭐. 그들이 우리 憲兵 服裝으로 그 다섯 國軍 兵士를 沒殺시킨 것으로 바꾸겠다고 해주시오.” 

    元來 그 短篇의 素材는 6·25 때 甚한 熱病 때문에 멀리 避難을 가지 못해 錦湖江邊의 果樹園에서 不安하게 9月 反共(反攻)을 맞아야 했던 넷째 姨母의 目擊談에서 얻은 것이었다. 

    오래前에 그 얘기를 들은 그는 國軍 兵士 다섯이 我軍 憲兵隊에게 射殺된 事例의 진기함에다 그 죽음의 원통함이나 한스러움의 크기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怪奇性에 着眼해, ‘어셔가(家)의 沒落’ 같은 短篇으로 構想해보았다. 죽은 지 20年이 넘는 해 8月 下旬 한낮까지 그 現場을 떠도는 그들 다섯 幽靈을 舊式의 怪奇나 幻想 티를 내지 않게 불러내어 지난 6·25戰爭의 苛酷함과 非情함의 一面을 돌이켜본다는 意圖였다. 

    그런데 갑자기 我軍의 非情한 自害나 自虐을 暴露한 檢閱의 對象으로 廢棄될 판이라니 섬뜩하고도 荒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그 編輯部 職員의 느릿한 말套가 어깃장이나 놓는 것처럼 妙하게 사람의 意識을 긁어대는 데가 있어 그렇게 받았지만, 말해놓고 보니 쓸데없이 오기를 부린 듯해 슬며시 後悔가 뒤따랐다. 

    그 憲兵들을 몰래 浸透한 北韓軍 便宜대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 變化할 狀況 處理는 얼마나 窮塞할까. 結局 그래서 만들어진 그들 세 北韓軍 特功組와 다섯 國軍兵士의 遭遇는, 非正規的이기는 하지만 交戰 雙方 間의 上典(相戰)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 다섯 兵士의 죽음은 값싼 政訓敎材 以上의 敎訓과 感動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그들을 20年이 넘도록 원통함이나 한스러움으로 이 世上을 떠돌게 할 수 있을까, 그런 諮問(自問)李 前날 밤 初入을 한 時間이나 갉아먹었고, 그 아침 밤새운 脫稿의 홀가분함까지도 부질없고 無望한 作業 뒤의 疲勞와 脫盡으로 바꿔놓았다. 아니, 그 以上 그 개고(改稿)가 그 時刻 以後 가장 먼저 해야 할 執筆 作業이 되면서, 그의 글쓰기가 漸漸 더 깊이 질척한 近代的 監視와 處罰의 構造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에 憂鬱해지기까지 했다. 참으로 나쁜 때에 글쓰기를 始作했다. 어쩌면 緣坐制보다 더한 새로운 監視와 處罰의 機制가 作動하기 始作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强迫에 億눌리자 더는 愉快한 그날의 社內 園遊會에 어울리는 氣分일 수 없었다.

    그가 新聞社 뒤便 空터에 이르러 보니 아직 出發 時刻까지 15分 넘게 남았는데도 버스는 두 對 모두 居之半 차 있었다. 그는 編輯局 사람들에게 配當된 先頭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히터 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썰렁했고, 그만큼 雰圍氣도 즐거운 野遊會를 앞둔 車 안 같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아직 떠나기도 前에 뒷座席에 실려 있던 麥酒 箱子가 버스 가운데로 옮겨지고, 要領 좋은 사람들이 주머니칼에 달린 오프너로 麥酒甁을 따 종이컵과 함께 돌리면서 雰圍氣는 조금씩 薰薰하게 풀려갔다. 밤샘으로 깔깔해진 입맛 때문에 아내가 끓여내 온 全鰒粥마저 몇 술 못 뜨고 나선 그 말고도, 반갑게 그 종이컵을 받아 드는 사람이 드문드문 생겨나더니, 한 時間 남짓 돼 버스가 크고 오래된 貯水池가에 섰을 때는 벌써 목소리에 麥酒 맛이 밴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몇몇은 낚시 가방도 풀지 않고, 시골 運動會 本部席처럼 쳐놓은 못가의 天幕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으면서 아예 初場부터 모두에게 대놓고 宣言했다. 

    “마, 우리는 女多書 속부터 좀 풀고 갈란다. 抄出(初出)이든 越尺(越尺)이든, 賞은 꾼들이나 받아가라 캐라. 우리는 여기서 술이나 낚지 머.” 

    그 時調會에 꼭 參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와는 달리, 그도 처음부터 거기에 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리 잡은 廚房器具 옆 卓子 쪽으로 가는데 孫 記者가 어디서 알아보고 와서 낚시 가방끈을 당겼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先輩는 거기 끼면 안 돼요. 낚시大會에 왔으면 낚시부터 해야지.” 

    그 말에 그도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 그들 속에 끼어들지 않고 編輯部 사람들이 몰려가는 못가 쪽으로 가 낚시道具를 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떠서인지 아니면 나누어준 지렁이 미끼가 잘못된 건지 30分이 지나도 입질 한 番 없었다. 그래서 미끼나 떡밥으로 한番 바꿔볼까 하고 떡밥가루가 담긴 비닐封紙를 꺼내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工務局 職員 하나가 北部 地域 사투리로 말렸다. 

    “떡밥은 안 되니데이. 大會 때는 모든 參加者가 똑같이 껄깽이(지렁이)만 미끼로 써야 하는 게 規則李氏데이.” 

    그 말에 마지못해 始作하려던 떡밥 반죽을 그만두고 다시 아무렇게나 갈아 낀 지렁이 미끼를 던지고 나니 그때부터 낚시는 더욱 시들해졌다. 그런데 저만치서 따로 낚싯대를 드리우며 이따금 그가 앉은 쪽을 살피고 있던 孫 記者가 갑자기 悲鳴 같은 소리를 질렀다. 

    “왔어요. 뭔가 찌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에이고, 이거 어떻게 해요?” 

    아버지 낚시 가방을 메고 왔다더니 그게 事實인 듯했다. 곁에서 낚시하던 先輩 記者가 自身의 代를 받침臺에 얹어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孫 記者에게 다가갔고, 周邊에 있던 몇몇 젊은 記者도 구경 삼아 몰려들었다. 그리고 越尺까지는 몰라도 손바닥보다는 훨씬 커 보이는 그 붕어를 끌어내느라 작은 騷動이 벌어졌는데, 그에게는 문득 그게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낚시터에서 빠져나갈 機會처럼 여겨졌다. 들고 있던 낚싯대를 슬그머니 받침臺에 얹어놓고, 泰然히 本部 天幕 쪽으로 갔다. 

    술 鬼神이라는 게 있고, 사람이 거기 씌는 수가 있다면, 그날 그가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孫 記者에게 끌려가듯 마지못해 자리를 뜬 곳으로 돌아가니, 거기 남아 있던 다섯은 벌써 벌겋게 달아 解酲술의 境界를 벗어나고 있었다. 아직 풀지 않은 낚시 가방을 발밑에 그대로 둔 채 調理臺 곁 椅子를 차지했는데, 調理臺에는 몇 접시 나물 按酒까지 놓여 있었다. 그제야 한 時間 前보다 뭔가 달라져 있는 것 같아 살펴보니, 紅扇루 秋 마담이 낯익은 아주머니 두엇과 함께 와 있었고, 天幕 곁으로는 드럼桶을 잘라 만든 移動用 火덕에 적어도 50人分 들이는 될 커다란 洋銀솥 하나가 걸려 있었다. 

    “點心을 벤또(도시락)로 하고 보니 茅島 치워(추워) 떨지 싶은지, 肉개醬을 끓이겠다고 내한테 함 봐달라 안 카나? 그래서 아는 아주무이 둘 데리고 왔구마는.” 

    秋 마담이 그런 說明으로 알은체를 代身했다. 그도 대꾸 代身 물었다. 

    “보니 찌께다시(쓰키다시)까지 가져오신 것 같은데 紅扇名酒(紅仙銘酒)는요?” 

    “그것도 저기 雙둥이 아부지가 當付해 한 徐 말 따라왔으이 걱정 마소.” 

    그러면서 눈짓하는 쪽을 보니 조금 前에 함께 낚시터로 나간 編輯部長이 벌써 돌아와 거기 남아 있던 술꾼 속에 끼어 있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雙둥이도 畸形兒의 一種이라고 氣勢 좋게 우기는데, ‘아이고, 내가 바로 雙둥이 아부진데 이거 우야꼬?’ 하던. 

    어쨌든 그날 그는 그 貯水池를 떠날 때까지 낚싯대 곁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못가에 풀어놓은 낚시 가방도 部署 同僚가 챙겨줄 만큼 돌아보지 않고 ‘工場’ 母酒꾼들 사이에서 낮술에 醉해갔다. 그러다가 午後 5時 閉會式을 하고 市內로 돌아가 ‘工場’ 앞에서 解散한 다음에는 다시 ‘뭉친’ 最後의 決死隊 대여섯과 附近 술집을 돌면서 차츰 遺體離脫 狀態로 들어갔다. 

    어찌어찌 通禁 時間에 맞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記憶에 남은 것은 新聞社 附近 이따금 들르는 큰 맥주홀과 그 한구석에 크게 틀어놓은 24인치 텔레비전 畵面이었다. 키 크고 豐滿한 몸매에 金髮 染色을 한 華麗한 얼굴의 大型 歌手가 노래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 畵面을 記憶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女가 聲量 豐富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의 歌詞 때문이었던 듯하다. 언젠가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世上의 끝’이라고 하던가, 그 무렵 流行하던 美國 노래를 飜案한 歌詞의 한 句節로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이 길을, 이 떠남을 豫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그女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모른다, 回想이 거기에 이르자 그는 다시 으스스한 氣分으로 그 始釣會 다음 날 아침을 떠올렸다.

    아침 10時쯤 그가 어머니의 걱정을 들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니 몸 狀態가 영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데 特히 등짝과 갈비뼈 附近에는 숨쉬기가 거북할 만큼 우리韓 疼痛(疼痛)까지 남아 있었다. 呻吟을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浴室로 간 그는 먼저 洗面臺 위의 거울부터 보았다. 얼굴에도 여기저기 尋常찮은 痛症이 느껴져 그쪽도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거울 속에서 마주 보고 있는 얼굴은 스스로도 보기에 놀랍고 또 민망스러울 만큼 慘澹했다. 


    兩쪽 눈두덩은 붓거나 멍들어 元來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中에도 왼쪽 眼球는 시뻘겋게 充血까지 되어 있었다. 于先 浮氣라도 가라앉혀볼까 해서 찬물을 얼굴에 끼얹다가 화들짝 놀라 化粧紙로 물氣를 닦아냈다. 얼굴 어디에 제법 깊이 있는 擦過傷이 있어 물氣가 닿자 찌르는 듯한 아픔으로 反應한 것 같았다. 

    그때 浴室 門을 열고 들어온 아내가 浴湯 옆에 쌓인 옷가지에서 그가 前날 낚시터에 입고 나갔던 軟푸른色 점퍼의 등짝을 펼쳐 보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기 이런 게 찍혀 있었어요. 都大體 어제 밤에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登板 쪽에 큼직한 신발자국이 여러 個 찍혀 있었다. 統一化와 스펀지 運動靴 자국이 섞인 것 같았다. 그걸 보자 오른쪽 갈빗대 쪽과 등짝이 갑자기 욱신거렸다. 自身도 모르게 오른쪽 갈빗대 쪽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그를 차가운 눈길로 보던 아내가 가만히 門을 닫고 나갔다. 

    아내가 목소리 한番 높이지 못하고 浴室을 나간 것은 안房에서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의식해서였던 듯하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手巾으로 얼굴을 半쯤 가리고 안房으로 돌아가 이부자리 속으로 다시 발을 들이미는데 머리맡에 앉아 허옇게 흘겨보던 어머니가 아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歎息하듯 始作했다. 

    “니가 사람을 어예 以來 燭數(促壽)를 시키노? 그래 술 먹고 댕기다가 잘못 엎어지믄 늙은 에미도 에미지만, 저 눈알 새카만 妻子息은 어옐래? 하이고, 참 寒心타 寒心해. 아무리 저잣거리 모티(모퉁이)라 카지만, 니 그래도 名色 得名(得名)韓 文士 아이라? 學識도 重要하고 人品도 重要하지만, 行檢(行檢)이라 카는 것도 있데이. 行檢을 제대로 못 닦으믄 學識도 人品도 말캉 헛게(헛것)라는 거 情(정히) 모를라? 그런데 이게 무슨 꼬라지로?” 

    어머니의 말속에 옛날 文字가 많이 섞이는 걸로 보아 밤새 별러온 訓戒인 듯했다. 못 견디게 괴로운 量해서 訓戒가 더 오래 繼續되는 것은 避했지만, 어머니가 火김에 끊은 穀氣(穀氣)를 다시 잇게 하는 데는 그날 午後 다시 깨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뒤늦게나마 洞네 外科病院에 가서 應急加療를 받고 온 뒤였다. 

    하지만 그 봄 始釣會 때 일로 가장 호되고 매몰차게 그를 몰아댄 것은 이튿날 아침 겨우 出勤해서 만난 孫 記者였다. 붓고 멍들고 긁혔든, 쑤시고 결리고 욱신距離든, 겉으로는 찢어진 곳도 터진 곳도 부러진 곳도 없어 흔한 絆創膏 한 張, 眼帶(眼帶) 하나 덧대지 못한 얼굴로 느지막이 出勤해보니 編輯部 사람들이 한쪽으로는 놀라면서도 한쪽으로는 빙글거리며 그런 그를 맞았다. 

    “億,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그래도 용하네. 게라 판은 어지러워도 와리꼬미 하나 地帶로 안 옇(넣었)구마는.” 

    그런데 그때 제자리서 젖은 新聞紙에 머리를 박고 水星 色鉛筆로 무언가를 그려가고 있던 孫 記者가 흘끗 그를 돌아보았다. 

    “先輩님, 그제 낚시터에서….” 

    그女가 그러면서 그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흑, 하는 짧고 얕은 悲鳴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갈 때는 같은 버스를 탔는데, 올 때는 車 안에서 孫 記者를 본 記憶이 안 나, 그 일을 묻는 줄 알고 그가 공연히 더듬거리며 對答했다.

    “올 때는 아마도 다른 버스에 묻어 탄 模樣이오. 낮술에 醉해도 애비는 알아보기로 했는데, 그만.” 

    그래놓고 보니 왼고개를 틀고 있는 孫 記者 옆모습에 왠지 찬바람이 도는 듯했다. 머쓱하면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 그가 다시 내키지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못마땅하다고 사람 말하는데 그렇게 뒤통수를 들이대면 쓰겠어요? 꼭 눈 맞추자는 것도 아니니, 고개라도 돌리고 얘기해요.” 

    그러자 그女가 낮지만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正말 先輩님 얼굴 마주 보아줄 수가 없네요. 아니, 끔찍해요. 慘酷해. 그 얼굴 다 나을 때까지 절 마주 볼 생각 마세요. 아니 제가 보지 않게 해주세요.” 

    목소리가 낮고 速度가 빠르기는 해도 조금만 귀 기울이면 옆자리 사람들은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女의 말이 끝나자 그는 먼저 周圍부터 둘러보았다. 編輯部 데스크에는 部長 말고도 先輩가 셋이나 더 앉아 있었지만 孫 記者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굳이 辨明이나 解說, 撫摩가 必要한 狀況이 되지 않은 걸 多幸으로 여기며, 그도 그쯤에서 얘기를 멈췄다. 

    孫 記者는 正말로 그 뒤 그의 얼굴이 正常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와 얼굴을 마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열흘 가까이 지나 얼굴의 멍과 浮氣가 빠지고 왼쪽 눈의 터진 실핏줄까지 다 걷힌 뒤에야 겨우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點心을 같이 먹고 들른 工場 近處 茶房에서 孫 記者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듯 불쑥 말했다. 

    “先輩는 自身이 그렇게 미우세요? 아니면 世上이 그렇게 진저리 치도록 싫은 거예요?” 

    그러나 말套에는 아직도 가시가 남아 있었다. 그가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보여요? 왜? 술 때매? 함부로 나를 내돌린다고?” 

    “그렇게 빙글거리지 마세요. 다시 火가 나려고 그러네.” 

    “빙글거리는 게 아니야. 나야말로 묻고 싶네. 내가 무엇으로 그렇게 孫 記者 審査를 건드렸는지.” 

    그제야 그도 正色을 하면서 물었다. 그러나 孫 記者가 잠깐 쏘아보듯 그를 보다가 對答 代身 反問했다. 

    “先輩님은 或是 사람들이 先輩님을 得意와 自足感에 신나서 살 거라고 推測하리라고는 보지 않으세요?” 

    “그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한 1年 남짓 實속 없이 付黃한 이름에다 冊 卷 좀 팔았다고….” 

    “그럼 그들을 위해서라도 좀 신나는 척해주세요. 그렇게 五萬相 찌푸리고 지내다가 술만 생기면 다시 깨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마셔대지 말고.” 

    “어이쿠, 이거 만만찮은 伏兵을 만났네. 내가 그렇게 걱정거리 先輩가 된 거요?” 

    “제가 收拾 時節 調査部 資料室을 몇 달 드나들었는데요, 읽을 만한 冊이 있어 貸出해 보면 冊 뒤 圖書管理 封套의 貸出者 카드의 마지막 貸出者는 언제나 先輩님이었어요. 하루는 神奇해서 한나절 資料室에서 冊은 읽지 않고 여기저기 貸出카드만 뽑아보았는데, 神奇하게도 그 太半에 先輩님의 署名이 있었어요.”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資料室 거기서 빌려다 읽어볼 만한 冊은 많아야 5000~6000卷을 넘지 않을 거요. 내가 이 新聞社에 들어온 지는 4年이 넘었고, 거기다가 줄곧 編輯部에만 처박혀 있어 하루 한 판 짜고는 달리 가 있을 만한 곳도 없었지. 또 貸出카드에 署名이 돼 있다고 해서 꼭 그 冊을 다 읽었다는 保障도 없고. 孫 記者 先輩 騎手들 가운데도 그 카드 署名 보고 속은 사람 많았소.” 

    “사람의 말을 眞摯하게 들어주세요. 사람이 저마다 所重하게 품는 引上도 尊重해주시고요.” 

    다시 차가워진 목소리로 그렇게 길게 말꼬리를 끌던 孫 記者가 갑자기 탁, 소리 나게 門을 닫듯 말을 맺었다.
    “여기 머무시는 게 못 견디게 지루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들키지 않게 自制해주세요. 팝송 歌詞처럼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올 때까지는요.”

    3. 

    “아이고 오셨어요? 오늘은 누굴 만나시게?” 

    드나들기 始作한 지는 이제 한 해 半 남짓이지만 워낙 수다하게 다녀선지 水位가 그를 알아보고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저, 人事擔當하시는 분. 2層 總務局에.” 

    “아, 張 部長님요? 조금 前에 點心 드시고 올라가시는 것 같았어요. 어서 올라가 보세요.” 

    守衛가 그러면서 2層으로 올라가는 層階 쪽으로 이끌 듯 손짓을 했다. 이 사람도 내가 앞으로 한 食口가 될지 모른다는 걸 느끼기라도 한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層階를 오르다 보니, 늘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그도 느낌이 새로워지는 데가 있었다. 그게 언제까지 일는지는 몰라도 이제부터는 이 新聞社가 ‘우리 工場’李 되는구나. 아니, 이곳도 大邱의 新聞社처럼 自身들이 勤務하는 곳을 굳이 ‘工場’이라고 부를까. 

    그런데 2層 層階站을 지나 열려 있는 編輯局 쪽으로 발을 내디디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뒤따라오며 소리쳤다. 

    “드디어 왔군. 이 作家. 같이 들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文化部長이 2層 化粧室 쪽에서 허리춤을 추스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서 낮술이라도 한盞 걸쳤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어제 政治部 黃 次長에게 들었어. 드디어 이 作家도 우리 會社로 온다며? 그래 身體檢査는 했어? 고려병원 健康檢診 말이야.” 

    “아, 예. 只今 그것 때문에 오는 길입니다. 人事 擔當하시는 張 部長님께 檢診依賴서 받아가야 한다면서요.” 

    그가 그렇게 말을 받으며 文化部長과 함께 編輯局으로 들어서는데, 文化部長이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몸을 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아, 張 部長 저기 있네. 저리로 가서 依賴書 받아 어서 病院으로 가봐요. 아무리 形式的이라지만, 그래도 檢診에 두 時間은 걸릴걸. 面接이 4詩라니까 서둘러야 할 거요.” 

    “面接이요? 그럼 제가 오늘 面接試驗을 보러 온 겁니까? 編輯 經營 兩쪽 어른들 한꺼번에 뵙고 人事드리려 온 게 아니고?” 

    그가 후끈 달아오르는 氣分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文化部長이 自己 데스크 쪽으로 가면서 선선하게 그 面接의 性格을 바꾸어주었다. 


    “아, 그래요. 面接試驗이 아니고 幹部들과의 相見禮. 뭐, 實은 그거나 저거나 마찬가집니다만.” 

    그런데 그 말의 餘韻이 妙했다. 

    그가 人事擔當 部署 쪽으로 가니 張 部長이라는 사람이 健康檢診 依賴書가 든 書類 封套를 내밀며 慇懃히 재촉했다. 

    “좀 서두르셔야겠습니다. 택시를 잡아탄다 해도 高麗病院까지 오가는 時間도 있고, 또 會長님이나 社長님이 워낙 時間에 嚴格한 분들이 돼나서요. 編輯局長과 主筆도 곧 만만한 분들이 아니고…. 午後 4時 面談 時間은 지키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데 그 말套가 또 그의 豫想과는 달랐다. 어딘가 黃 先輩가 말하는 따 놓은 堂上 같은 스카우트가 아니라 特別銓衡을 앞둔 新參 職員 對하는 듯한 데가 있었다. 그 바람에 高麗病院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보낸 10餘 분은 自身이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서 新春文藝 親庭이 되는 新聞社로 갑자기 마뜩잖은 느낌이 드는 相見禮를 하러 오게 된 經緯를 떠올려보게 했다.

    지난番 ‘除隊兵 列車’ 日로 上京했을 때였다. 그는 出版社 社長과 保安隊 권창동 氏 쪽, 그리고 이른바 高位處 出入 黃 先輩 모두 세 사람에게 事件 經緯를 알아봐 달라는 付託을 미리 해놓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난데없는 空輸部隊 下士官들이 왜 그런 方式으로 出版社를 찾았으며, 光州事態 以後 一般에게 豫想되는 行態와는 全혀 다른 方式의 그런 個別的 報復 威脅을 하고 갔고, 그런데도 벌써 닷새가 다 돼가도록 왜 아무 後續 行爲가 없는가, 따위를 알아달라는 것이었는데, 세 곳 모두 아주 漠然한 豫測뿐, 시원하게 經緯를 알려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답답해하며 演劇 ‘人間의 大地’ 리허설을 앞두고 있는 劇團 ‘前衛(前衛)’ 附近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黃 先輩가 出版社를 통해 만나자는 傳喝을 보내왔다. 亦是 높은 곳에 出入하는 쪽이 다르구나 하면서 新聞社 옆 茶房으로 가니 黃 先輩가 무엇 때문인가 조금 上氣된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래, 좀 알아보셨어요? 都大體 그 親舊들 어디 所屬이랍디까? 왜 그랬대요?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엄포를 놓고 어째서 只今까지 全혀 움직임이 없답니까?” 

    그가 黃 先輩에게 궁금하다 못해 이제는 답답하기까지 한 일의 內幕부터 먼저 물었다. 黃 先輩가 뜻밖의 對答으로 그의 말門을 막았다. 

    “그 얘기는 九重宮闕 깊은 곳에 처박힌 나로서는 알아볼 길이 없다. 그거 말고 너와 조용히 만나 할 말이 있어 왔다.” 

    그래놓고 그가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椅子를 그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앉으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야, 너 왜 아직 거기서 그러고 살아? 이제 조금씩 답답할 때도 되지 않았어?” 

    “예?” 

    “嶺南 政權이니, 大邱慶北 權力이니 어쩌고 하지만 大邱는 아직도 이 나라의 邊方이다. 그런데 거기 처박혀 深刻한 世上 얘기한다며 눈치 없이 써대니 무슨 꼴을 안 當해? 前에 한番 말한 적 있지만, 너 그러지 말고 서울로 올라 와라. 뭘 해도 여기가 中央이고 中心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그동안 틈나는 대로 알아봤는데, 너 여기 와서 제대로 作家 노릇 해보지 않을래?”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作家 노릇 하는 건데요?” 

    黃 先輩가 하는 말이 하도 난데없어 그가 자꾸 反問으로 받게 되었다. 그러나 黃 先輩는 自己가 하고 싶은 말에 바빠 그걸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原稿料만으로 살아가는 게 不安하다면 너, 新聞社를 서울로 옮겨보는 게 어때? 世上 구경도 다시 하고.”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뭐, 안 될 것도 없죠.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울까요. 地方 新聞社에다 나이 서른 다 돼 入社한 大學 中退 學歷으로.” 

    “그렇지만 네겐 天下의 이불휴란 後光이 있잖아? 요즘도 作家와 記者 겸하는 사람 많아. 當場 우리 新聞社 主筆도 그렇잖아. 아직도 大學入試 國語試驗에 그 사람 小說 句節이 나온다던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只今으로서는 알 수 없는 앞날의 일이고…. 요새는 모두 作家와 記者의 일을 別個로 치던데요.” 

    “걱정 마. 내가 다 알아봤어. 너를 써주겠다는 데가 있어. 記者 經歷까지 認定해주며.” 

    “그런 데가, 있어요?” 

    “實은 우리 新聞社야. 내가 局長에게 여러 番 우겼지. 예전에 그랬듯 우리에게도 外部로부터의 새로운 輸血이 必要하다고. 報道文으로서가 아니라 새롭고 힘찬 論說로서의 筆力 補充이. 네가 이리로 옮겨 먼저 學術 文化 쪽으로 얼마間 出入하다 論說室로 들어가는 길을 眞摯하게 議論해봤다.” 

    黃 先輩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보탰다. 

    “實은 내게도 네가 가까이 있는 게 곧 必要하게 될지 모르겠고….”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아마도 내게 곧 身分 變動이 일어날 것 같다. 올해 안에. 何如튼,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于先 우리 新聞 編輯局長과 主筆부터 만나봐라. 그다음에는 總務局 人事擔當에게도 들렀다 가고. 우리 洞네로 옮기는 데 必要한 書類나 節次는 人事擔當 張 課長 그 親舊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리 번거롭지 않을 게다.” 

    “그럼 空輸部隊 아이들 問題는요?” 

    “알아낸 건 없다마는 틀림없는 것은 여태 그들이 네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公算이 크다는 點이다. 아직도 그들은 外出 外泊조차 自由롭지 못하다고 들었다. 只今은 숨을 죽이고 눈치를 봐야 하는 時間이란 뜻이겠지. 保安隊든 安企部든 警察局이든 그런 일로 公式的인 搜査에 들어가거나 特別한 監視, 査察, 追跡을 始作한 境遇도 있는 것 같지 않고.” 

    黃 先輩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그를 데리고 新聞社로 갔다. 그리고 編輯局長과 主筆을 만나게 해주더니, 마지막으로 總務局 人事擔當 張 課長에게 데려다주고는 다시 어디론가 총총걸음으로 나가버렸다. 人事擔當과의 일은 그날부터 一瀉千里로 進行되었다. 大邱로 내려온 그는 이틀 뒤 먼저 履歷書에 著書 目錄, 身元保證書 따위를 添附해 보내고, 一週日이 지난 只今은 날까지 받아 新聞社가 定한 綜合病院에서 入社 身體檢査(綜合健康檢診)를 받는 것에 이어 新聞社 幹部 經營陣과 相見禮까지 치르러 서울로 올라온 길이었다.


    4. 

    高麗病院은 그의 經驗으로 이 나라에서 大學病院 말고는 처음 보는 大型 綜合病院이었다. 3, 4層은 되는 여러 個의 甁동이 웬만한 邊두리 大學 建物보다 컸다. 그래도 그 病院 이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그 病院에 所屬된 高明한 醫師 한 사람이 故鄕 出身 秀才였기 때문이었다. 本館 受付에서 물어 檢診 專門 病棟을 찾아가니 平日인데도 分科마다 줄을 서야 할 만큼 檢査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黃 先輩의 귀띔이나 新聞社 人事擔當은 그 檢診이 慣例的인 또는 形式的인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檢査가 始作된 지 10分도 안 돼 그것도 제법 嚴正한 基準이 있는 人事 節次임을 알아차렸다. 內科에서 外科, 精神科 해서 이어지는 檢事 動線(動線)은 서둘러야 겨우 2時間 안에 通過할 수 있을 만큼 빡빡하게 짜여 있어, 午後 4時까지 新聞社에 돌아갈 수 있는 時間을 남겨놓고 檢査를 마쳤을 때는 옅으나마 이마에 津땀이 흐를 程度였다. 

    艱辛히 4時를 넘기지 않고 新聞社에 到着하니 2層 層階站까지 나와 있던 人事擔當이 재빨리 그를 3層 會議室로 案內했다. 10坪을 크게 넘지 않을 크기였지만, 가죽을 씌운 古風의 椅子들과 두꺼운 原木 卓子가 重厚한 雰圍氣를 풍겼다. 房 안에는 그가 이미 알고 있는 編輯局長과 亦是 서로 얼굴은 알아볼만한 主筆이 먼저 와 椅子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고개 숙여 人事하고 自身의 자리로 策定된 듯한 모퉁이 椅子에 앉는데, 헛기침 소리와 함께 正裝을 한 두 中年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몸집이 있고, 머리가 조금 벗겨진 初老의 紳士였다. 까맣고 좁은 넥타이나 自然스럽게 구겨진 洋服에 비해 잘 닦인 구두가 파이프만 물리면 처칠 같은 英國 紳士를 聯想케 했는데, 아마도 創業 2歲인 言論그룹 會場 같았다. 그와 같이 온 사람은 初老에 접어든 마른 몸매에 褐色 正裝을 입었는데, 깡마른 얼굴이나 볼에 깊게 골진 주름살 같은 것이 공연히 까다로울 것 같은 先入觀을 주는 사람이었다. 들은 대로라면 新聞社 社長職을 맡고 있는 元老 言論人 같았다. 

    人事擔當 課長이 그 둘을 부축하듯 윗자리로 案內해 앉히고 編輯局長과 主筆도 各其 제자리를 찾아 앉자, 다시 人事擔當이 準備해 온 書類를 그 네 사람 앞에 펼쳐놓고 會長 뒤로 가서 섰다. 

    “이番에 經歷職으로 補充할까 하는 이휴 氣者니다. 地方 新聞社에서 4年째 勤務하며 여러 面으로 能力을 認定받고 있는데, 政治部 黃 次長이 特히 推薦했습니다.” 

    編輯局長이 그렇게 그를 紹介하자 自己 卓子 앞에 펼쳐진 書類를 들여다보던 社長이 깐깐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자, 履歷書에는 編輯記者로 되어 있네. 인정받는 能力이라면 編輯記者로서의 能力인가?” 

    “그보다는 基本 筆力 쪽인 것 같습니다. 昨年에 우리 新春文藝에 小說로 登壇했는데, 벌써 베스트셀러에 들어간 冊이 두 卷입니다.” 

    “잘 팔리는 冊이라는 게 우리가 必要한 筆力을 保證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제 個人 見解입니다만, 이不休 氏의 境遇에는 例外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랄까, 簡單히 말해 文章만 해도 豐盛하고 힘次期 그지없습니다.” 

    그때 會長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보자, 이 新聞 이거 가톨릭 新聞 아닌가? 解放 前 ‘南銑(南鮮)一步’인가 뭔가 하는 經濟誌를 가톨릭 財團이 引受해 만든.” 

    “맞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新聞은 아닙니다. 經濟誌는 더욱 아니고. 地方新聞이지만 4·19 때는 바른 소리 하다가 御用團體한테 테러까지 當한 적이 있지요.” 

    이番에는 社長이 나서 그렇게 바로잡아주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程度 成果를 거뒀다면 오히려 小說에 專念해보지 그래, 우리 主筆이 저기 있지만 사람마다 兩쪽 모두를 겸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데 깐깐한 그 목소리가 妙하게 그의 心思를 건드렸다. 이건 相見禮가 아니고 面接이다, 나는 서울의 大新聞社에 스카우트된 게 아니라 面接試驗에 支援한 것 같다, 그러자 自身도 모르게 불쑥 뒤틀린 對答이 나갔다. 

    “實은 서울에 올라와 小說 한番 제대로 써보고 싶어 履歷書를 냈습니다. 하지만 記者로서의 本分에도 疏忽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에 마주하고 있던 다섯 사람 모두가 一齊히 그를 바라보았다. 特히 元老 小說家이기도 한 主筆은 그에게 무슨 눈짓까지 보냈으나, 그는 그걸 제대로 解讀할 겨를이 없었다. 

    “小說 제대로 써보기 위해 우리 新聞社로 옮기고 싶다, 그것 참 별난 支援 事由구먼.” 

    社長이 알아보게 차가워진 表情으로 그렇게 말하며 自己 앞에 있는 그의 履歷書를 다시 훑어보았다. 속으로는 이미 그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編輯局長과 主筆은 굳은 얼굴로 말이 없었고, 會長만 아무 表情 없는 얼굴로 가만히 그를 건너다보았다. 그때 特히 그에게 好意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編輯局長이 몇 가지 記者로서의 能力이나 强點을 保證해줄 만한 履歷을 물어 異常하게 꼬여가는 雰圍氣를 바로잡아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暫時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다 다시 自己 앞에 놓인 履歷書를 훑어보던 會長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어째 入學과 轉學은 수다한데 卒業은 國民學校 빼면 하나도 없네. 그것 참.” 

    그 말을 듣자 그는 잠깐 難堪해졌다. 對答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區區하고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때 會長 곁에서 말없이 書類를 뒤지고 있던 社長이 方今 會長이 指摘한 곳을 훑다가 눈을 번쩍 뜨듯 한 곳을 凝視하더니 그를 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大學을 그만둔 게 1970年度 2月로 되어 있는데, 自退로 되어 있군. 普通 쓰는 中退와 무엇이 다르오?”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自退書를 내고 떠났습니다. 나중에 한番 돌아가 볼까 싶어서 알아본 적이 있는데, 果然 制的이나 退學하고는 다르더군요.” 

    “그 電解가 三選 改憲 反對 데모가 한창이라 除籍 退學이 많았는데, 或是 그런 쪽과는 關聯이 없소?” 

    그렇게 始作되면서 그에게 한동안 그 面接은 慇懃히 짜증 나면서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新聞같이 되어갔다. 編輯局長과 主筆이 間間 끼어들어 雰圍氣를 바꾸려고 試圖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解職 記者들 가운데 그 무렵 學番이 많아서, 또는 무슨 투위(鬪委) 委員長도 그 學番이지, 하며 妙하게 눈을 번쩍이는 걸 보고 마침내 참지 못한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제가 무얼 잘못 헤아린 것 같습니다. 新聞記者 職業을 效率 높은 作家의 副業으로 여기거나 新聞社를 專業 作家 後援機關으로 錯覺한 것 같아 罪悚합니다. 無知와 無禮도 사죄드리고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무언가 사뭇 憫惘하고 또 未安해하는 느낌으로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던 主筆이 그런 그의 옷깃을 잡듯 하며 처음으로 嚴한 목소리를 냈다. 

    “이不休 作家, 나도 있는데 이거 너무 氣高萬丈한 거 아뇨? 집안에 일꾼을 하나 불러 써도 이것저것 알아보고 쓰는 法, 그래도 이만한 新聞社 記者를 뽑는 일인데 오죽하겠소? 앉아요. 앉아서 이 어른들 물음마저 듣고 充分하게 答한 뒤에 일어나도록 하시오.” 

    信念을 위해 火刑(火刑)도 마다 않은 14世紀 英國의 洋服공 바드非 이야기로 1950年代 우리 社會에 섬뜩한 衝擊과 感動을 준 大 先輩의 나무람에 퍼뜩 精神이 들었으나,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그는 한 番 더 恭遜하게 머리 숙여 어른들 앞을 물러나는 例를 다하고 조용히 그 會議室을 벗어났다. <繼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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