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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年次 癡呆患者 保護者 井星旗 氏의 吐露|新東亞

인터뷰

11年次 癡呆患者 保護者 井星旗 氏의 吐露

“이러다 내가 먼저…個人이 堪當할 수 없다”

  • 入力 2018-07-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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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年째 癡呆 老母 돌보는 67歲 아들

    • 집에서 看病하다 쓰러져 應急室 실려 간 적도

    • 每日 ‘사랑의 粥’ 直接 만들어 療養院 찾아가

    • “療養保護士 서비스, 最短 8時間은 돼야”

    손수 만든 죽을 어머니에게 먹이고 있는 정성기 씨. [지호영 기자]

    손수 만든 죽을 어머니에게 먹이고 있는 井星旗 氏. [지호영 記者]

    5月 中旬, 늦봄 햇살 아래 선 예순일곱 井星旗 氏는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이따금 京畿 부천시 송내동 아파트에서 始興市 烏耳島까지 往復 54km를 自轉車로 달린다는 事實이 믿기지 않았다. 아파트 玄關 앞에 묶어놓은 오래된 自轉車를 보기 前까지는 그랬다. 

    “憂鬱하다고 느낄 때마다 突破口를 찾으려고 애씁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지칠 때까지 自轉車를 타요. 그저 無念無想에 젖어 自轉車 페달을 밟습니다.” 

    鄭氏가 입가에 稀微한 微笑를 띠며 말했다. 初面의 訪問客을 17坪 남짓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그는 이제 막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늦은 點心食事를 마친 참이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齒科技工소 여러 곳을 돌며 物件을 配達하고 있다. 일은 大衆交通을 利用해 하러 다닌다. 勤務時間은 平日 午前 8時 30分부터 午後 1時까지. 月給은 大略 30萬 원이라고 한다.

    午前엔 알바, 午後엔 癡呆患者 수발

    “어머니에게 들어가는 한 달 費用이 200萬 원에 가까워요. 療養費, 藥값, 食費, 公課金, 管理費 等等 해서요. 다른 家族들이 보태줘서 生活을 꾸려가고 있지만, 어머니 食事 準備에 들어가는 食材料만도 적은 돈이 아니다 보니….” 

    鄭氏가 말끝을 흐렸다. 癡呆 老母를 돌보는 일은 비(非)癡呆 老母를 모시며 사는 것과 分明 달랐다. 안房 門짝에 걸어놓은 安全손잡이, 접이式 沐浴椅子, 박스째 들여놓은 老人用 기저귀와 患者營養食, 1人用 卓子…. 그는 “이러고 삽니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鄭氏는 2008年부터 昨年까지 이 집에서 癡呆 어머니 전정금(94) 氏를 돌봤다. 지난해 4月 그가 呼吸困難으로 쓰러져 手術을 받게 되자, 어머니는 仁川 南區의 한 療養院으로 居處를 옮겼다. 어머니가 집을 떠난 지 1年이 넘었지만, 癡呆 患者 用品은 그의 집에 그대로 남아 있다. 



    文在寅 政府는 오는 9月부터 ‘癡呆國家責任制’를 施行한다. 癡呆 醫療費의 90%를 健康保險으로 保障하고, 癡呆支援센터를 擴大하는 等 癡呆 患者 및 그 家族의 負擔을 덜어주는 것이 政策의 主要 方向이다. 

    지난 10年間 鄭氏의 삶은 癡呆 患者 및 그 保護者의 現實을 加減 없이 드러낸다. 그는 2016年 어머니에게 해드린 三時 세끼 ‘밥床 日記’를 묶어 ‘나는 每日 엄마와 밥을 먹는다’(헤이북스)를 펴냈다. 冊은 밥床 日記의 形式을 빌렸지만, 苦痛과 消盡 속에서 絶叫하는 癡呆 家族의 日常이 切切하게 드러난다. 鄭氏는 冊의 에필로그에서 “父母가 病이 날 수도 있고 내 몸이 성치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들을 回避하지 않고 肯定的으로 準備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적었다. 

    鄭氏는 “癡呆를 바라보는 우리 社會의 視線이 바뀌기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應한다”고 말했다. 

    “事實 아들 立場에선 어머니의 健康 狀態를 이렇게 公開해도 되는지 苦悶됩니다. 하지만 老人 癡呆 患者는 繼續 增加하고 있어요. 우리 社會가 癡呆 患者와 그 家族의 實相에 對해 直視할 必要가 있습니다. 그래서 告白聖事하듯 제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鄭氏는 아내, 子女들과 함께 지내던 서울 성북구 보문동 自宅을 비워두고 지난 2008年 이곳, 富川 아파트로 居處를 옮겼다. 癡呆 判定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다. 鄭氏의 아버지도 癡呆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 臨終을 지키지 못해 不孝를 저질렀다는 응어리진 마음을 갖고 있었다. 當時 醫師는 어머니가 “길어야 1年 사실 것”이라고 했다. 또다시 한(恨)을 남길 순 없다는 생각에, ‘1年쯤이면’ 하는 마음으로 自身이 어머니 수발을 들겠다고 自請했다.

    ‘징글맘’과의 징그러운 時間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사용하던 이동식 좌변기.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어머니 물품을 치우지 않았다. [지호영 기자]

    癡呆를 앓는 어머니가 使用하던 移動式 坐便器. 어머니를 療養院에 모신 지 1年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어머니 物品을 치우지 않았다. [지호영 記者]

    그렇게 그가 ‘징글맘’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와의 징그러운 時間이 始作됐다. 그 歲月이 자그마치 10年이 넘는다. 그사이 어머니는 腦와 身體 機能이 많이 退行했다. 日本語를 驅使할 程度로 明晳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숟가락 놓고 바로 돌아앉아 “배고프다”는 말을 反復한다. 斟酌조차 어려운 行動을 하거나 怪聲을 지를 때도 많다. 用便 處理는 잊어버리기 일쑤. 化粧室이든 居室이든 어디서나 거침없이 옷을 내리고 “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難堪하기가 이를 데 없다. 한밤中에 서너 時間씩 獵奇的인 行動을 하며 怪聲을 질러대는 일도 不知其數다. 

    “어머니가 깨어 있는 동안에 제가 主로 하는 일은 밥을 먹이는 것이에요. 밥 먹지 않는 時間에는 數도 없이 化粧室을 드나듭니다. 어머니는 便器에 앉아서 한 時間이고 두 時間이고 노래를 부르곤 해요. 癡呆 老人들은 精神이 돌아오면 端雅한 姿勢로 어진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지만, 精神이 흐려지면 엄청난 醜態를 보여요. 極과 極을 오가는 거지요.” 

    癡呆를 앓는 그의 어머니는 새벽 1時부터 하루를 始作한다. 덩달아 鄭氏도 새벽 1時에 잠에서 깬다. 밤잠 못 자는 癡呆 老人 保護者의 日常. 이런 阿鼻叫喚 속에서 數年間 지내다 보니, 鄭氏 몸도 頂上 軌道에서 벗어났다. 

    “睡眠 不足은 健康에 致命的이에요.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흐릿해지고 손가락도 痲痹되고 腹痛도 甚해집니다. 이러다 어머니보다 내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鄭氏가 呼吸困難으로 應急室에 간 것은 지난해 4月. 그가 癡呆 老母를 모신 지 햇數로 꼭 10年이 되던 해다. 肺氣腫. 手術을 받기 위해 20日間 入院해야 했다. 그가 意識을 잃은 사이 鄭氏 동생들은 富川 아파트에서 버스로 40分 걸리는 仁川 南區의 한 療養院으로 어머니를 보냈다. 

    “人生이 둥그런 圓이라면, 어머니는 한 바퀴를 빙 돌아 먹고 자고 用便을 보는 것이 全部인 아기처럼 原初的 本能만 남은 段階에 到達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多幸이죠. 그 原初的 本能이 아직은 어머니가 人間임을 證明하는 셈이니까요.” 

    요즘 어머니 狀態가 어떤지 묻는 質問에 鄭氏가 내놓은 答辯이다. 그는 主人이 1年 넘게 자리를 비운 안房 門을 열었다. 房 한구석에는 原木으로 만든 移動式 坐便器 한 臺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壁에 걸린 額子 하나가 눈에 띄었다. 學士帽를 쓴 어머니의 大學 卒業 寫眞이다. “이건 어머니 影幀으로 使用하려고요.” 鄭氏가 가리킨 다른 寫眞 속 어머니는 곱고 端雅해 보였다.

    어머니 전정금 씨의 대학 졸업 사진.

    어머니 전정금 氏의 大學 卒業 寫眞.

    時計바늘이 午後 2時를 가리켰다. 鄭氏가 부엌 싱크臺 선반에서 바가지를 꺼냈다. 오늘 저녁 어머니가 드실 ‘사랑의 粥’을 만들 時間이다. 鄭氏는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食醋 몇 방울 떨어뜨린 뒤 그 물에 시금치를 씻는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둔 洋銀냄비엔 쌀뜨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 표고버섯과 멸치로 국물을 내어 어머니가 좋아하는 시금치된醬국을 끓인다. 完成한 시금치된醬국과 밥, 애호박새우젓볶음, 豆腐조림을 믹서에 넣어 곱게 간다. 밥을 基本으로 하되, 날마다 다른 국과 飯饌을 섞어 갈아서 만드는 사랑의 죽은 요즘 어머니의 株式이다.
     
    齒牙가 不實한 老人들은 菜蔬를 攝取하기 힘들다. 질긴 것을 잘 씹지도 못한다. 軟하고 단 飮食만 偏食하는 境遇가 많다. 그러다 보니 營養 不均衡으로 皮膚病과 비타민 缺乏症이 생겨 苦生하게 된다. 鄭氏 어머니가 딱 그러하다. 

    “老人들의 죽음은 거의 大部分 營養 不足과 肺炎 等이 原因이거든요. 어머니에게 죽을 드리는 건 次善策으로 生存을 延長하기 위한 最後의 方法이자, 延命을 爲한 마지막 選擇이에요.” 

    鄭氏는 큰 保溫甁에 죽을, 작은 保溫甁엔 맑은 된醬국물만 덜어 담는다. 患者營養食과 우엉車道 챙긴다. 이것들을 背囊에 차곡차곡 담으니 그 무게가 7㎏. 鄭氏가 짊어진 十字架의 무게다. 그는 特別한 事情이 있지 않은 한 平日이든 週末이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療養院으로 어머니 食事를 配達한다. 

    鄭氏가 지난 10年間 直接 開發한 508가지 料理 가운데는 齒牙가 不實한 어머니를 위해 만든 ‘고구마샐러드’가 있다. 牛乳에 菜蔬 等을 갈아 넣어 嬰幼兒 離乳食과 비슷하게 考案해 만든 ‘牛乳菜蔬수프’도 있다. 이 레시피들은 ‘消化를 시킬 餘力만 있다면 콧줄 食事(醫療用 튜브를 코로 連結해 食事하는 方法) 말고 最大限 飮食을 直接 攝取해야 生存에 도움이 된다’라는 鄭氏의 信念에 따라 만들어졌다. 

    癡呆는 무서운 疾病이다. 身體的 異常이나 痛症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急激하게 죽음에 이르는 疾病도 아니다. 癡呆患者는 하루 終日 精神이 오락가락한다. 癡呆가 重症으로 進行됐을 境遇 제精神이 돌아온 狀態는 하루 中 두세 時間도 안 된다. 

    그런 患者를 옆에서 수발하는 家族은 지칠 수밖에 없다. 甚한 스트레스로 精神的, 內科的 疾患이 發病하기도 한다. 鄭氏는 癡呆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10年間 모셨다. 그 긴 歲月 동안 그는 單 하루도 마음 便하게 家族과 旅行을 간 적도 없고, 제대로 外食을 해보지도 못했다. 慶弔事 參席은 고사하고 親舊들과 술盞을 기울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그는 “빠르게 變하는 世上 속에서 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섬이 돼버린 氣分”이라고 말했다.

    “하룻밤이라도 푹 자봤으면…”

    정성기 씨는 매일 직접 어머니에게 먹일 죽을 만든다. [지호영 기자]

    井星旗 氏는 每日 直接 어머니에게 먹일 粥을 만든다. [지호영 記者]

    特히 그를 限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것은 經濟的 어려움이었다. 2008年부터 癡呆 어머니를 모시기 始作한 그는 休職과 移職을 거듭하다가 2009年부터는 아르바이트 外 經濟活動을 접고, 親舊를 만나는 等의 社會活動을 끊었다. 所得이 없어도 三時 세끼는 먹어야 하고, 管理費나 公課金을 내야 한다. 그가 느낀 家長으로서의 自愧感과 敗北 意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社會的 孤立感과 過去에 對한 悔恨이 밀려올 때면 죽음을 앞둔 것 같은 두려움과 人生에 對한 虛無感에 휩싸이곤 했다. 그는 “비록 내가 選擇한 生活이지만, 겪을수록 느끼는 것은 癡呆는 個人이 堪當할 수 없는 問題라는 點”이라고 吐露했다. 

    “政府에서 癡呆國家責任制를 擧論하는 것을 보고 大體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施設에 모시고 싶어도 우리나라에서는 癡呆 患者 等級 判定을 받는 것이 무척 힘들거든요. 重症 癡呆 患者라도 MRI(磁氣共鳴映像)에 異常이 없다고 나오기도 하고요. 저희 어머니는 日本語를 할 줄 안다는 理由로 癡呆患者 等級 判定에서 세 番이나 떨어졌습니다. 民間 療養센터에 찾아가 狀況을 說明하고 醫師 診斷을 받아 2014年에야 겨우 老人長期療養認定書를 받았어요. 等級 判定을 받지 못하면 費用 負擔이 크기 때문에 患者 家族이 患者를 施設에 모실 엄두를 내기 어려운 境遇가 많아요. 政府가 이를 모를 理 없을 텐데, 이 問題를 解消하지 않고 어떻게 國家가 癡呆를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理解가 되지 않습니다.” 

    癡呆, 中風 等으로 혼자서는 日常生活을 遂行하기 어려운 老人들은 家庭으로 訪問하는 療養保護士로부터 身體 및 家事 支援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療養保護士 서비스에 對해 鄭氏는 이렇게 말했다. 

    “現在 平日에 家庭 訪問하는 療養保護士의 勤務時間이 3時間입니다. 이 程度로는 保護者가 마음 便히 쉴 수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어요. 그마저 平日 夜間과 週末, 公休日에는 療養保護士 도움을 받을 수가 없고요. 政府가 癡呆 患者 家族에게 正말로 必要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苦悶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療養院에 가시기 前 제 所願은 單 하룻밤이라도 잠을 푹 자는 거였어요. 그보다 더 懇切했던 것은 한 달에 單 하루만이라도 療養保護師가 最短 8時間 以上 도우미 活動을 해주는 것이었고요.” 

    鄭氏가 療養院에 到着한 건 午後 3時. 그는 곧장 背囊을 내려놓으며 어머니 食事를 準備했다. 保溫甁에 담아온 따뜻한 죽을 푸드파우치에 덜어 어머니 입으로 가져간다. 100g의 죽을 精神없이 吸入한 어머니가 이어 完全營養食과 우엉車를 攝取한다. 後食은 초콜릿 세 알. 집에서 時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 배고파!”를 외치던 어머니는 多幸히 療養院 生活에 適應한 듯 보였다. 

    “療養院에선 看護師가 할 일을 看護助務士가, 看護助務士가 할 일을 療養保護師가 한다고 해요. 休日이면 看護師는 고사하고 看護助務士조차 없는 療養院도 있다고 하고요. 日本은 療養保護師가 直接 기저귀를 차고 하루를 보내는 實習 過程을 運營한다던데….”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丁氏와 그의 어머니가 只今까지 만난 療養保護師가 10名이다. 그는 “10名의 療養保護士는 性格도, 性品도, 하는 일도 제各各 달랐다”며 “우리나라는 療養保護師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對한 基準이 없다. 癡呆 患者와 保護者가 療養保護士의 性品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맞는 일이냐”고 反問했다. 

    10年 넘게 癡呆 患者인 父母를 直接 모셔온 그는 이러한 일을 그 누구에게도 쉽게 勸하지 못한다. 患者와 保護者, 둘 다 큰 傷處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癡呆 患者를 療養院에 보내는 것이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萬若 어머니에게 癡呆가 처음 찾아왔던 때로 되돌아간다면, 저도 선뜻 어머니를 손수 돌보겠다고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癡呆 患者를 療養院으로 보내는 時期를 무엇으로 判斷할 수 있을까. 그는 “大便을 혼자 가눌 수 있느냐를 基準으로 삼고 判斷하는 게 좋다”며 “用便을 못 가눈다면 療養院으로 모시는 게 癡呆 患者에게도, 家族에게도 좋다”고 助言했다. 

    이제 鄭氏의 어머니는 原初的인 本能만 가진 狀態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아직 이 世上을 떠나기 싫으신지 熱誠的으로 飮食을 찾는다. 鄭氏로서는 지치고 힘이 들다가도, 그 놀라운 本能的 意志에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어쩌면 스스로 十字架를 짊어졌다고, 世上 사람들이 鄭氏를 向해 혀를 察知度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아이 같은 웃음을 짓고 계시잖아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에스겔 16:6)’고 하시는 聖經 말씀대로 오늘도 그 길을 걸을 수밖에요.”

    인터뷰 |  洪龜齡 中央癡呆센터 專門委員 
    “癡呆安心센터 弘報 時急”  

    [김도균 객원기자]

    [金度均 客員記者]

    現在 우리나라 癡呆 患者는 72萬 名으로 推算된다(2017년 基準). 癡呆 患者와 함께 사는 家族은 約 270萬 名. 保健福祉部가 이들 家族을 對象으로 調査한 結果, 憂鬱 障礙를 앓고 있는 家族이 75% 以上으로 把握됐다. 病看護에 지친 一部 癡呆 患者 家族은 自殺, 親族 殺人 等 極端的 選擇으로까지 치닫는다. 

    洪龜齡 漢陽大(看護學部) 敎授는 “이것이 癡呆 患者와 保護者의 現實”이라고 말했다. 洪 敎授는 中央癡呆센터 專門委員이자 한국치매협회 理事로도 活動하고 있다. 

    癡呆 患者의 保護者들이 癡呆 等級 判定의 不合理性을 聲討한다. 

    “老人長期療養保險은 65歲 以上 高齡이나 老人性 疾病 等의 事由로 혼자서 日常生活을 遂行하기 어려운 老人 等에게 療養保護士를 보내 身體活動 또는 家事活動 支援 等 長期療養서비스(給與)를 提供하는 制度다. 이러한 背景에서 等級 判定을 위한 50餘 個 調査 問項이 主로 身體 및 認知 機能 區分에 焦點이 맞춰져 있어 癡呆 判定 等級 받기가 매우 어렵다.” 

    國家가 勸奬하는 癡呆 等級 判定 節次는 뭔가. 

    “누군가 癡呆가 疑心될 때 그 保護者가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이 等級 判定이다. 國民 大多數는 國民健康保險公團부터 찾는다. 勿論 工團 調査 等의 節次를 통해서도 신청일로부터 30日 以內에 癡呆 等級 判定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自己 地域 癡呆支援센터를 찾기를 勸한다. 現在 全國 17個 市·道 地域에 廣域癡呆支援센터가 있고, 그 밑에 252個 自治區 癡呆安心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癡呆 選別 檢査를 받은 後, 그 結果에 따라 센터가 該當 地域 大學病院에 申請者에 對한 癡呆 等級 判定 檢査를 依賴한다. 中央癡呆센터가 365日 運營하는 癡呆相談콜센터(1899-9988)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國民 大多數가 癡呆 等級 判定 節次를 잘 모른다. 對國民 弘報가 時急하다. 無作定 工團을 찾아가면 時間만 버리는 狀況이 벌어질 수 있다.”  

    暴力的 癡呆 患者 위한 施設 必要  

    一部 療養院에선 看護師가 할 일을 看護助務士가, 看護助務士가 할 일을 療養保護師가 도맡는다(국민건강보호법에 根據하는 療養病院과 달리 療養院은 老人福祉法에 根據해 運營되기 때문에 醫療 專門人力 構成에서 療養病院과 差異가 있다). 

    “現在 우리나라는 65歲 老人이면 所得과 相關없이 給與를 支援받는다. 事情이 나은 老人에게까지 支援金을 支給하는 것이 맞는지 再檢討해야 한다. 차라리 이 費用을 專門 人力을 充當하는 데 使用하는 것이 合理的이라고 생각한다. 人件費 負擔을 理由로 看護師를 看護助務士로 代替하면 適正 水準의 서비스 質을 擔保할 수 없다.” 

    癡呆 患者 家族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豫想치 못한 患者의 精神行動症狀(BPSD·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이다. 

    “그러한 癡呆 患者는 施設에 短期間 入所해 治療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問題는 우리나라에 이런 施設이 없다는 事實이다. 療養院이나 療養病院에선 이러한 癡呆 患者를 堪當하지 못한다. 癡呆 患者를 抑制臺에 묶어두거나 藥物로 管理하는 것은 限界가 분명하다.” 

    癡呆 患者를 돌보는 保護者에 對한 情緖·肉體 管理 또한 時急하다. 

    “全國 2007個 週·夜間 保護所(www.nid.or.kr/info/facility_list.aspx)에는 癡呆 患者 家族에 對한 支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이들 保護所가 都市 地域에 集中돼 있어 안타깝다. 農村 地域 等으로 擴大해야 한다. 癡呆 患者의 家族뿐만 아니라 看護 서비스를 提供하는 人力을 위한 情緖 支援, 相談 서비스도 國家 次元에서 이뤄져야 한다.” 

    올해 9月부터 施行되는 癡呆國家責任制를 評價한다면. 

    “복지부가 올해 1月부터 旣存 1~5等級인 癡呆等級體系에 認知支援等級(6等級)을 追加, 身體 機能이 良好한 癡呆 患者까지도 保險 惠澤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다. 健康保險을 適用해 MRI(磁氣共鳴映像) 檢査 같은 檢査 費用 負擔을 緩和(上級綜合病院 基準으로 100萬 원→ 40萬 원 以下로 減少)한 것이나 式材料費와 기저귀(平均 6萬~10萬 원) 支援 惠澤을 擴大한 것도 바람직하다. 地域別 癡呆 서비스 提供機關, 專門人力 確保, 서비스 質 等 自願 인프라의 隔差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도 深度 있게 論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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