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月 10日 北韓에 抑留돼 있던 韓國系 美國人 3名이 풀려나 美國으로 돌아갔다. 이날 送還者들을 맞이하러 空港까지 나간 도널드 트럼프 美國 大統領 곁에는 韓國系로 보이는 中年 女性 通譯官이 서 있었다. 이 女性은 6月 12日 싱가포르에서 열린 北·美 頂上會談 때도 目擊됐다. 36分間 이뤄진 兩國 頂上의 ‘一對一 會談’ 現場에 美國 側 人士로 唯一하게 陪席한 이연향 美國 國務部 通譯局長이다.
美國 最高의 韓國語 外交 通譯官으로 손꼽히는 李 局長은 그동안 韓美 外交 現場에서 主로 일해왔다. 5月 22日 워싱턴 D.C.에서 열린 韓美 頂上會談 通譯을 맡았고, 버락 오바마 前 大統領, 힐러리 클린턴 前 國務長官, 조지 W 부시 前 大統領 等을 遂行하기도 했다. 最近 北·美 間 疏通이 活潑해지면서 그의 業務 領域이 더욱 擴大된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局長이 韓國외대 通飜譯大學院을 卒業한 國內派 通譯 專門家라는 點이다. 그는 2010年 國內 言論과 한 인터뷰에서 “元來는 大學 卒業 뒤 放送社 PD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女子라는 理由로 願書조차 받지 못했고 結婚 뒤 專業主婦로 지냈다. 둘째 아이가 세 살이 됐을 때 通飜譯大學院에 進學하면서 通譯 일을 始作한 것”이라고 밝혔다. 以後 그는 韓國에서 일하는 동안 ‘애 엄마가 왜 일을 하느냐? 男便이 집에서 노느냐?’는 質問을 숱하게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6年 美國 캘리포니아州 몬트레이通飜譯大學院 韓英科의 提案을 받고 渡美해 大學 講壇에 서면서부터 그의 커리어는 坦坦大路를 걸었다. 李 局長은 美國에서 많은 韓國語 通譯士를 길러냈고, 美國 國務部와 因緣을 맺으면서 外交 通譯도 本格的으로 始作했다. 2004年 暫時 韓國에 돌아와 梨花女大 通飜譯大學院 敎授를 맡기도 했지만, 只今은 다시 渡美해 ‘歷史의 現場’에 서는 쪽을 擇한 狀態다.
트럼프 大統領은 싱가포르 北·美 頂上會談이 끝난 뒤 “김정은을 白堊館으로 招請했고 나도 어느 時點이 되면 平壤을 訪問할 것”이라고 밝혔다. 北·美 頂上 間 만남이 잦아지면 韓國 言論에서 李 局長을 볼 機會도 많아질 展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