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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빌보드를 ‘부수다’|신동아

大衆文化 探究

케이팝, 빌보드를 ‘부수다’

防彈少年團 빌보드 1位의 숨은 意味

  • 入力 2018-06-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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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人이 만든, 韓國人이 부른, 世界人의 音樂

    • 반짝 人氣 넘어 ‘브랜드’가 된 그룹

    • 邊方에서 中心까지, 防彈少年團이 흘린 피, 땀, 눈물

    • 韓國型 팬덤의 世界化, 글로벌 ARMY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5月 28日, 防彈少年團의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차트에 1位로 進入했다는 消息이 傳해졌다. 그날 저녁, 日本人 音樂關係者와 자리를 함께했다. 防彈少年團 所屬社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榜示革 代表와 切親이기도 한 그는 내게 自身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그가 房 代表에게 보낸 祝賀 메시지에 對한 答狀이 찍혀 있었다. 

    “우리가 歷史를 만들고 있다.” 

    짧은 文章 안에 많은 意味가 담겨 있었다. 防彈少年團의 1位 記錄은 비(非)英語圈 앨범으로는 12年 만, 韓國 앨범으로는 史上 最初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 意味는 더욱 크다. 12年 前 빌보드 頂上에 오른 팝페라 그룹 일 디보의 ‘Ancora’는 TV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사이먼 코웰이 製作한 音盤이다. 소니 뮤직을 통해 配給됐다. 卽 美國 메이저 音盤社의 資本과 시스템에 依해 만들어진 音盤이다. 團地 팝페라라는 장르 特性上 音樂家의 國籍이 美國이 아니었을 뿐이다.

    防彈少年團이 새로 쓴 歷史

    反面 ‘LOVE YOURSELF 轉 ‘Tear’’는 徹底히 韓國 資本에 依해 製作됐다. 모든 멤버가 韓國人임은 勿論이고 프로듀싱을 包含한 製作 過程 一切가 韓國 시스템을 거쳤다. 卽 이 音盤의 빌보드 ‘征服’은 單純히 ‘非英語圈 言語’ 音盤을 넘어 ‘非英語圈 製作’ 音盤이 美國 市場의 頂點에 우뚝 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도 白人, 黑人, 히스패닉이 아닌 東洋 靑年들의 音盤이 말이다. 

    빌보드는 世界 音樂 市場의 나스닥이다. 차트를 통해 보여주는 팝 市場의 同鄕이자, 大衆의 無意識을 읽는 指標다. 이 차트는 但只 美國 市場뿐만 아니라 월드뮤직 차트 等 100個를 훌쩍 넘는 數많은 下位 차트를 통해 世界 大衆音樂의 흐름을 장르別, 地域別로 보여준다. 인터넷이 登場한 以後 音樂 市場이 블록化, 로컬化함에 따라 英美圈 팝이 世界市場에 미치는 影響力이 줄었지만 빌보드의 權威는 如前하다. 그것은 이 차트가 單純히 人氣 順位만 提示하는 게 아니라 大衆이 音樂을 듣는 方式의 變化를 集計에 反映하기 때문이다. 



    이番에 防彈少年團이 1位로 進入한 ‘빌보드 200’은 앨범 차트다. 애初에는 純粹한 音盤 販賣量만으로 順位를 集計했지만 現在는 다운로드와 스트리밍까지 反映한다. 各各의 要素가 서로 다른 加重値를 갖는다. 스트리밍 1500回가 音盤 1張 販賣와 같은 比重을 갖는 式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인 ‘핫100’ 選定에는 좀 더 複雜한 基準이 適用된다. 다운로드, 스트리밍, 美國 內 라디오 選曲과 申請 回數, 유튜브 照會 手까지 反映한다. 過去에는 술집 주크박스에서 再生된 回數, 그보다 最近에는 싱글 音盤 販賣量도 重要 指標였다. 그러나 디지털 時代의 到來와 함께 옛말이 됐다. 이렇다 보니 韓國 차트나 아이튠즈 차트에 비할 바 없는 全體 흐름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1958年 처음으로 차트를 發表하기 始作한 以來 빌보드가 世界 最高 자리를 지켜온 理由다.

    원 히트 원더 넘어 ‘브랜드’가 되다

    이렇게 變化한 빌보드 시스템을 太平洋 건너 韓半島에서 體感한 때는 2012年 ‘江南스타일’ 때였다. 머나먼 世上이라고만 생각하던 빌보드에서 싸이의 ‘江南스타일’李 每週 階段을 오르는 모습은 뭐랄까, 雪嶽山이 全部라고 생각하던 時代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韓國 山岳人의 登頂期와도 같았다. 지난 世紀에 ‘배철수의 音樂 캠프’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海外 팝스타가 每週 벌이는 激戰에 귀를 기울이던 때에는 想像도 할 수 없던 이런 일은 빌보드 集計 方式의 變化 德에 可能했다. 放送과 音盤 販賣量이라는 옛 基準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유튜브 照會 數라는 새로운 基準이 더해졌기에 ‘江南스타일’의 드라마가 쓰일 수 있었다. 卽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代辯되는 뉴미디어 革命이 世界 大衆音樂의 地形圖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始發點이 ‘江南스타일’이었다. 

    그 배턴을 이어받은 者, 바로 防彈少年團이다. 그들은 훨씬 빠르고 剛하게 달려왔다. 먼저 防彈少年團의 빌보드 進入史를 살펴보자. 初期 그들은 防彈少年團의 이름을 國內外에 알리기 始作한 2015年 ‘화양연화’ 시리즈의 두 番째 作品인 ‘화양연화 Pt.2’로 빌보드 171位, 後續作 ‘화양연화 Young Forever’로 101位에 올랐다. 2016年 正規 2輯 ‘WINGS’는 이들이 始動 걸기를 마치고 本格 疾走를 始作했음을 世上에 알렸다. 이 앨범은 빌보드 26位까지 올랐으며 韓國 大衆音樂 音盤으로는 처음으로 英國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國內에서도 뭔가 尋常치 않은 反應이 일기 始作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7年 始作한 새로운 聯作 시리즈 ‘Love Yourself 承 ‘Her’’는 빌보드 200에서 7位까지 올랐으며 핫100에서는 ‘DNA’로 67位를, ‘Mic Drop remix’로 28位를 찍었다. 이 앨범의 成果로 그해 빌보드 어워드에서 소셜미디어 部門을 受賞했다. 그리고 ‘LOVE YOURSELF 轉 ‘Tear’’로 結局 頂上에 오르고야 말았다. 

    이 過程에서 注目해야 할 것이 있다. ‘江南스타일’과의 差異點이다. 2012年으로 記憶을 돌려보자. 그해 유튜브는 ‘江南스타일’李 支配했다 해도 過言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照會 數가 100萬, 1000萬 單位로 달라져 있었다. 마침내 最多 照會 數 記錄을 更新했고, 그 結果가 핫100 2位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싸이의 後續曲人 ‘젠틀맨’과 ‘行오버’의 成果는 ‘江南스타일’에 비하면 부끄러운 水準이었다. 말 그대로 원 히트 원더였다. 왜 그랬을까. 이 신드롬의 主人公은 嚴密히 말해 싸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래와 뮤직비디오였다. 이는 ‘江南스타일’李 한 해를 强打한 히트 商品이었을 뿐 싸이 自身을 브랜드化하는 데는 失敗했다는 얘기다. 

    反面 防彈少年團의 成功 過程은 그들 自身을 브랜드化하는 過程이기도 했다. 인정받는 브랜드는 大部分 緻密한 企劃과 資本, 마케팅 等의 플랜이 뒷받침될 때 誕生한다. 勿論 그렇지 않은 境遇도 있다. 自救策으로 始作한 試圖가 大衆의 欲望과 맞아떨어지고 時代와 만나 뜻하지 않은 成功을 거두기도 한다. 防彈少年團은 어쩌면 後者일지도 모른다.

    中小 奇劃社의 이름 없는 新人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차트 빌보드는 5월 28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방탄소년단 3집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고 알렸다. [빌보드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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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界 最高 權威의 音樂 차트 빌보드는 5月 28日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防彈少年團 3輯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1位에 올랐다고 알렸다. [빌보드홈페이지 캡처 ]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05年 設立됐다. JYP의 프로듀서였던 榜示革 代表가 設立했다. 初期에 이 會社의 이름을 알린 팀은 2AM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매니지먼트 契約이었을 뿐, 이 팀의 所屬社는 如前히 JYP였다. 그 後 防彈少年團이 데뷔하기까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이렇다 할 成果가 없었다. 이 會社 所屬 音樂人보다 榜示革 代表 이름이 훨씬 더 알려져 있었을 程度다. 防彈少年團이 데뷔한 2013年은 이미 SM, YG, JYP 3社 以外에도 큐브, FNC等 굵직굵직한 奇劃社가 事實上 市場을 掌握하고 있는 狀況이었다. 群小 企劃社 所屬, 그것도 新人이라면 活動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放送 出演도 다른 會社에 밀리기 일쑤고, 音源 流通社의 弘報 惠澤도 많이 받지 못한다. 아이돌이 內需産業에서 輸出産業이 되면서 戰略的으로 끼워 넣는 海外 멤버도 이들에겐 焉敢生心이었다. 

    아무리 아이돌 팬層의 年齡帶가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基本的으로 아이돌은 10代 文化다. 特히 보이 그룹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10代 文化에서 全 年齡層을 커버하는 認知度를 쌓으려면, 卽 邊方에서 出發해 중원을 占領하려면 셋 中 하나의 코스를 거쳐야 한다. 첫째, 메가 히트曲을 통해 音樂界 흐름을 바꿔놓는 것. 둘째, 藝能 프로그램에 出演해 大舶을 치는 것. 마지막이 ‘逆輸入’ 코스를 밟는 거다. 장르를 莫論하고 海外에서 注目할 만한 成果를 거두면 國內에서 評價가 확 올라가기 마련이다. 아이돌 音樂이 國內에서도 케이팝이라 불리게 된, 그리하여 演藝面뿐 아니라 文化面에도 登場하게 된 決定的 契機가 2011年 SM타운의 파리 公演 아니었던가. 

    그러나 防彈少年團은 事實 이 셋 모두를 쉽게 노릴 狀況이 아니었다. 練習生 時節부터 팬덤을 構築하고 始作하는, 데뷔 前부터 몇 달値 放送 스케줄을 잡고 出發하는 大型 企劃社 所屬 아이돌이 ‘이겨놓고 싸우는’ 형국이라면 防彈少年團은 正말 처음부터 始作해야 했다. 그들이 擇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代案이 없었다. 音源 데뷔가 2013年 10月이었던 反面, 이미 2012年 末부터 블로그와 트위터를 開設하며 SNS 活動을 始作했다. 그들의 스토리가 始作되는 건 바로 여기서부터다.

    防彈少年團만의 力動性

    요즘 같은 時代, 엔터테인먼트 業界에 발을 들이면서 SNS 채널을 만들지 않는 境遇는 없다. 問題는 무엇으로 채우느냐다. 大部分은 公式 뮤직비디오, 千篇一律的인 人事말, 活動 弘報에 그친다. 放送을 비롯한 올드 미디어의 附屬 플랫폼에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防彈少年團은 쉴 틈 없이 콘텐츠를 쌓아 나갔다. 

    그들이 自身을 ‘보여주기’ 위해 첫 番째로 集中한 킬링 포인트는 바로 ‘칼群舞’다. 2016年 末, 홍콩에서 열린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參席했을 때다. ‘난다긴다’ 하는 아이돌이 한자리에 모였다. ‘불타오르네’를 비롯한 여러 히트曲을 부른 防彈少年團의 舞臺를 그날 처음으로 봤다. 衝擊이었다. 平素 아이돌의 公演에 그다지 好感을 갖는 便이 아니었음에도, 壓倒的이라 하기 充分했다. 다른 參加팀들의 舞臺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但只 춤을 잘 추기 때문은 아니었다. 힙합과 EDM을 基盤으로 하되 록的인 裝置를 잘 녹여내는 그들의 音樂에 맞는 力動的 刺戟이 꿈틀댔다. 種類는 다르되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刺戟이었다. 10代 後半, 當時 音樂 좀 듣는 親舊들이라면 必須的으로 들었던 헤비 메탈의 그것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音樂人을 만나 그때의 所懷를 이야기했다. 그는 말했다. 

    “요즘 애들한테는 防彈少年團이 우리 때 메탈이야.” 

    퍼포먼스는 視角에 呼訴한다. 人間의 모든 感覺 中 視覺은 가장 卽刻的이고 腦에서 차지하는 領域도 크다. 무엇보다 言語를 뛰어넘는다. 괜히 뮤직비디오의 登場이 라디오를 죽였다는 게 아니다. 餘他 韓國 아이돌보다 防彈少年團의 按舞는 力動的이다. 7名도 充分한 것 같은데 많은 백댄서까지 動員해 스케일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動作은 손끝 하나까지 合이 딱 맞는다. 디테일이 暴發한다. 스케일과 디테일, 그리고 파워가 만나 形成되는 스펙터클, 防彈少年團이 世界的 팬덤을 構築한 첫 番째 同人이다. 

    유튜브의 큐레이션이건 親舊 推薦을 통해서건 防彈少年團의 뮤직비디오나 放送 出演 映像을 한番 본 사람들은 感歎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2015年을 전후해 유튜브에서는 ‘리액션 비디오’가 流行했다. 뮤직비디오, 映畫 等을 처음 視聽하는 이의 反應을 보여주는 이 비디오에서 防彈少年團의 映像은 큰 話題가 됐다. 리액션 映像을 보던 이들 亦是 防彈少年團의 스펙터클을 보고 같은 表情을 지었다. 케이팝에 關心 없던 北美圈에 BTS(防彈少年團)라는 이름이 알려지는 契機였다.

    스스로 플랫폼이 되다

    하나의 人氣 商品이 브랜드가 되려면 忠誠度 높은 顧客이 있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産業이라면 繼續해서 良質의 즐길 거리를 提供하는 것이 必須다. 그것이 들을 距離든 볼거리든. 칼群舞에 反해 防彈少年團에 好奇心을 느낀 이들을 팬덤의 가두리養殖場으로 끌어들인 건 바로 그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厖大한 콘텐츠였다. RM을 비롯한 멤버들의 自作曲을 일찌감치 선보이고, TV 出演이 豫定돼 있으면 그에 앞서 유튜브에 放送局 複道에서 按舞를 練習하는 映像을 올렸다. 公式 活動이 없을 때도 멤버들의 자잘한 日常 및 音樂과 팬에 對한 가볍고 眞摯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했다. 모든 콘텐츠는 오직 防彈少年團 公式 計定을 통해서만 선보였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V-앱 等 漸漸 채널이 늘어나고 콘텐츠가 쌓여갔지만 그 어떤 內容도 멤버들의 個人 計定으로 分散하지 않았다. 팬이 모이는 窓口를 單一化한 것이다. 選擇과 集中이다. 

    사람의 外貌에 反하면 그 사람을 알고 싶은 好奇心이 생기고, 남이 모르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게 普遍的 心理. ‘類似戀愛’에 가까운 아이돌 産業에서 防彈少年團은 華麗한 舞臺와 민낯의 日常을 濾過 없이 팬들에게 提供했다. 放送 等 旣存 콘텐츠보다 自體 콘텐츠가 壓倒的으로 많았다. 이는 著作權 等의 理由로 發生할 수 있는 進入障壁을 낮추는 效果를 거뒀다. 또한 後作業 等의 時間을 줄여 그들의 行動 時點과 팬들의 疏通 時點에 時差가 發生하지 않는 利點도 있었다. 世界 各國으로 뻗어나가는 팬덤은 구글 飜譯機를 돌려 자국어 字幕을 입혀가며 防彈少年團의 콘텐츠를 多國籍化했다. 糊口之策으로 擇한 太初의 活動 方向이 어느덧 그들 스스로를 플랫폼으로 만든 것이다. 

    뛰어난 퍼포먼스가 있고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疏通이 있다. 그다음에는? 메시지다. 모든 뛰어난 브랜드는 비주얼과 스토리, 그리고 메시지가 있는 法 아니겠나. 音樂人을 二分法으로 나눌 수 있다면 아이돌과 아티스트다. 아이돌이 音樂 ‘産業’을 代表한다면 아티스트는 ‘音樂’ 産業을 代表한다. 아티스트라는 稱號를 얻으려면 自己 音樂을 直接 創作할 수 있어야 한다. 防彈少年團은 데뷔 때부터 스스로의 音樂을 直接 만들어왔다. 아이돌 시스템이라고 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統制權을 相當 部分 所有해온 것이다. 남이 만들어준 노래와 내가 만든 노래에서는 必然的으로 眞情性의 傳達이라는 側面에서 差異가 생긴다. 

    듣는 사람에게도 差異가 있다. 防彈少年團은 自身들의 音樂에 自己 또래가 共感할 수 있는 內容을 담는다. 深奧하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뻔한 사랑 노래는 아니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地域을 超越해 靑春이라면 겪는 問題들이다. 發現하는 自我를 둘러싼 苦悶, 學校 生活에서 겪는 疏外感 等等 말이다. 防彈少年團의 팬들은 그들이 幻想 속이 아닌, 現實 속에서 自身들을 위해 노래한다고 여기기 始作했다. 어쩌면 밀레니얼 世代에게 防彈少年團의 메시지는 예전 너바나, 투팍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防彈少年團의 歌詞를 哲學的으로 分析한 冊이 나온 건, 그저 商術에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

    밀레니얼 世代의 히어로

    [스포츠동아]

    [스포츠동아]

    防彈少年團은 이 세 過程을 거쳐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單純한 케이팝 스타 자리를 넘어 밀레니얼 世代의 히어로가 됐다. 그들의 成功 移轉, 틴 팝을 代表하던 저스틴 비버와는 다른 ‘아티스트’로서의 뉘앙스를 간직한 채. 

    防彈少年團의 충성스러운 팬덤은 ‘ARMY(軍隊)’라는 公式 名稱에 맞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그들과 함께 行動했다. SNS를 하나 업데이트할 때마다 #BTS라는 태그를 달고 周邊에 防彈少年團을 알렸다. 韓國 아이돌 팬덤의 單純한 消費를 넘어 應援과 忠誠을 아끼지 않는 獨特한 文化가 世界 防彈少年團 팬덤으로 擴散됐다. 旣存 北美圈 팝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類型이었다. 防彈少年團이 빌보드 어워드에서 2年 連續 ‘톱 소셜 아티스트’ 部門을 受賞한 背景에는 SNS의 廣闊한 草原을 칭기즈칸의 軍隊처럼 누비고 다닌 ARMY의 活躍이 있다. 그들과 함께 防彈少年團은 마침내 빌보드 頂上에 旗발을 꽂을 수 있었다. 

    빌보드는 意外로 保守的이다. 애初 빌보드 메인 차트는 컨트리, 스윙 等 오직 白人 音樂을 다루는 차트로 始作했다. 로큰롤의 時代를 거치며 黑人과 白人이 한 차트에 머물 수 있었다. 時間이 흘러 히스패닉 人口가 增加하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라틴系 뮤지션이 市場에 編入됐다. 그러나 東洋人의 자리는 나지 않았다. 디 라이트, 린킨 파크 等 白人 中心 팀의 멤버로 머물렀을 뿐이다. LA 僑胞들이 中心이 된 그룹 ‘파 이스트무브먼트(Far East Movement)’가 ‘Like A G6’로 2016年 빌보드 핫100 頂上을 밟은 데 이어 防彈少年團은 빌보드 200의 1位에 올랐다. 防彈少年團의 眞正한 成果는 그들의 앨범에 韓國語 歌詞가 包含됐으며 美國 國籍을 가진 멤버가 한 名도 없다는 點에서, 무엇보다 영미圈에서 製作되지 않은 앨범으로 처음 빌보드의 壁을 ‘부쉈다’는 데서 더 큰 意味를 가진다. 케이팝의 宣傳이라는 말로는 不足하다. 팝 市場의 패러다임 시프트多. 防彈少年團은, 歷史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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