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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水準이 國民所得에 比例하는 까닭|新東亞

世界를 向한 熱情과 挑戰 | 송상현 回顧錄 |

나라 水準이 國民所得에 比例하는 까닭

  • 入力 2018-07-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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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大統領과 나는 英語本과 스페인語本 刑執行協定에 署名했다. 아뿔사. 나중에 確認하니 英語本에는 없는 內容이 스페인語本에 들어 있는 게 아닌가. 外交 文書를 變造하는 作態에 어안이 벙벙했다. 國際刑事裁判所 所長으로 世界 各國에 出張을 가 받은 印象은 사람들의 態度나 水準이 1人當 國民所得과 大體로 比例한다는 것이다. 내가 訪問한 나라를 흉보려는 게 아니라 韓國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指標이기에 되돌아본다.
    2010년 5월 내전 피해가 큰 우간다의 글루를 방문했다.

    2010年 5月 內戰 被害가 큰 우간다의 글루를 訪問했다.

    내가 國際刑事裁判所(ICC) 所長으로 當選된 2009年 3月 10日부터 2年 남짓 해온 일을 回顧해본다. 2009年 所長으로 當選되자마자 東南아시아 出張을 떠났다. 아시아·太平洋 地域이 國際刑事裁判所 會員國 數가 가장 적어 그대로 放置할 수 없었다. 泰國과 인도네시아를 먼저 다녀온 後 네팔 라오스 방글라데시 等을 訪問했으나 네팔과 라오스는 事實上 共産黨 一黨獨裁여서 로마조약에 加入할 可能性이 낮았다. 

    2010年 방글라데시라는 大魚를 낚았다. 내가 물밑에서 繼續 進行한 會員國 배가 努力이 結實을 본 것이다. 2011年엔 말레이시아 필리핀 몰디브를 會員國으로 確保했다. 체코, 몰도바 等 東유럽 國家가 꾸준히 加入했으며 아프리카의 세이셸과 카리브海의 그레나다度 合流했다. 

    2011年에는 튀니지가 加入해 마그레브(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아프리카 北西部 一帶) 地域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집트, 카타르와 接觸하면서 아랍 國家의 로마조약 批准을 위해 努力 中이다.

    生命의 危險 무릅쓴 아프리카 出張

    國際刑事裁判所 所長으로서 唯一하게 ICC 管轄 犯罪가 일어난 나라와 地域을 찾았으며 現場事務所를 訪問해 우리 職員들을 慰勞했다. 아프리카는 會員國 數가 가장 많은 反面 ICC에 關한 잘못된 知識이나 過剩 期待를 土臺로 우리를 非難하는 일이 非一非再해 참 다루기 어렵고 神經을 써야 하는 地域이다. 生命의 危險을 무릅쓰고 訪問해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2009年 6月에는 國際刑事裁判所를 支持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始作으로 탄자니아, 보츠와나, 레소토를 訪問했다. ICC가 手段의 現職 大統領에게 拘束令狀을 發付한 것과 關聯해 西歐의 앞잡이라느니, 二重 잣대로 處罰한다느니 하는 非難이 아프리카에서 거세게 일어날 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넬슨 만델라의 精神에 따라 大體로 國際刑事裁判所를 支持해왔으며 보츠와나度 ‘王따’를 무릅쓰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强力하게 ICC에 對한 支持를 闡明했다. 레소토度 보츠와나와 見解가 같았다. 다만, 보츠와나·레소토가 너무나 작은 나라여서 아프리카에서 影響力이 弱하다는 게 欠이었다. 

    南아메리카 地域 巡訪을 끝내고 數個月 뒤 現地 職員들이 危險하다면서 反對하는데도 콩고民主共和國, 우간다 等을 訪問했다. 各 나라 高位層과 戰爭犯罪로 被害를 입은 住民에게 國際刑事裁判所를 올바르게 알리고 戰爭 탓에 疲弊해진 이들을 慰勞하기 위한 旅程이었다. 病을 옮기는 모기와 細菌, 유엔에서 빌린 낡은 飛行機와 헬리콥터의 墜落 危險, 叛軍의 狙擊 危險, 飮食과 宿泊施設의 不便함을 무릅쓰고 訪問을 强行했다. 

    2010年은 國際刑事裁判所가 誕生한 지 7年째 되는 해다. 로마조약은 7年마다 回顧와 展望을 하는 ‘리뷰 콘퍼런스’를 開催하도록 規定하고 있다. 何必이면 戰爭 犯罪가 發生한 우간다가 이 會議를 開催하겠다고 한 게 마뜩지 않았으나 5月 31日부터 6月 12日까지 우간다에서 열린 리뷰 콘퍼런스는 盛況裏에 마무리됐다. 

    나는 CICC, PGA, HRW 等 世界的 NGO와도 좋은 關係를 維持해왔으며 그들을 利用하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아 國際刑事裁判所의 位相을 强化하고자 努力했다. 유엔, EU(유럽聯合), OAS(美洲機構), La Francophonie(前 프랑스 植民地 國家들의 聯合), Commonwealth(前 英國 植民地 國家들의 聯合)와의 關係 强化에도 힘을 쏟아 이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오랫동안 껄끄럽던 AU(아프리카聯合)와도 ICC 關聯 會議를 共同으로 主催하는 等 조금씩 關係를 改善하고 있다. 

    國際刑事裁判所 會員國들은 여러 가지로 ICC에 隨時로 干涉하고, 付託하고, 問議한다. 그러나 나는 헤이그에서 열린 會員國들의 各種 行事에 빠짐없이 參席했다. 行事를 主催한 나라에서는 參席者가 적더라도 國家元首汲引 ICC 所長이 參席해주면 아주 크게 生色이 난다. 나는 이처럼 ICC를 擔當하는 國家와 外交官들의 마음을 얻으려 努力했고 成果도 거뒀다.

    安保理, ICC에 ‘리비아 事態’ 回附

    韓國에서 年末 休暇를 보내고 2011年 1月 9日 헤이그로 돌아왔다. ICC 會員國들이 헤이그 駐在 大使를 통해 보낸 자그마한 膳物이나 카드가 事務室에 쌓여 있다. 特記할 것은 會員國이 아닌 러시아, 이란, 中國, 사우디, 臺灣의 臺詞들도 膳物과 카드를 보낸 點이다. 個人的으로 親分을 쌓은 이들이 보낸 것이어서 반가웠다. 

    1月 12日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女王의 新年賀禮式에 아내와 함께 參席했다. 우리 內外는 新年賀禮式마다 恒常 韓服에 두루마기를 입었다. 韓國大使 夫婦와 권오곤 ICTY(舊유고슬라비아國際刑事裁判所) 裁判官도 때대로 韓服을 입어 어느 해에는 韓國 傳統 衣裳을 입은 貴賓 夫婦가 3쌍인 境遇도 있었다. 女王은 참으로 知的 好奇心이 많은 분이어서 나에게 ICC에 關해 많은 質問을 했다. 

    3月 東南아시아를 다시 찾았다. 最初의 아시아 出身 所長으로서 在任 中 아시아 國家를 效果的으로 說得해 더 많은 나라가 로마規定을 批准하도록 해야 할 責務가 있었다. 그것은 한便으로 後任者의 負擔을 줄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出張 日程이 나온 後 내 祕書室의 對外關係擔當팀(external relations team)李 바빠졌다. 批准 可能性이 가장 높다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訪問하기로 決定하고 이 機會에 한 나라쯤 더 들르자고 한다. 내가 브루나이에 勤務한 적이 있는 한명재 公使에게 付託해 이 나라를 追加하기로 했다. 

    出張길에 오르기 前 유엔 安全保障理事會가 滿場一致로 國際刑事裁判所에 回附한 리비아 事態를 어느 豫審 裁判部에 配定할지 나로서는 퍽 苦悶했다. 迅速하게 決定해야 하는데 休暇 中인 副所長 한 분이 스키場에서 長距離 電話를 걸어와 順序대로라면 豫審 1部로 當然히 가야 할 事件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詭辯을 한참 늘어놓았다. 自己가 屬한 豫審部가 世界 言論의 注目을 받는 事件을 맡겠다는 欲心에서다. 所長段의 一員인데도 自身의 利害關係에 따라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꼴이 꼭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副所長과 함께 그를 說得해 豫審 1部에 事件을 配當했다.

    50歲 ‘總角 大統領’ 아키노

    2010년 3월 15일 디푸 모니(왼쪽) 방글라데시 외무장관과 회담했다.

    2010年 3月 15日 디푸 牟尼(왼쪽) 방글라데시 外務長官과 會談했다.

    3月 5日 午後 12時 KLM 803篇을 타고자 事務室을 떠났다. 空港에서 急하다고 職員이 들고 온 書類를 決裁하고 12時間 넘게 飛行해 마닐라 空港에 到着한 것은 3月 5日 午前 9時 半이다. 生面不知인 이혜민 臺詞가 親切하게도 이기성 書記官과 함께 空港에 出迎했다. 警護팀 護衛를 받으면서 移動해 空港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피텔(Sofitel)에 投宿했다. 필리핀 上院 議事堂 바로 옆에 位置한 호텔인데 마닐라 中心部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다. 房에서 보이는 마닐라灣(Manila Bay)의 景觀이 氣가 막히게 좋다. 

    移動할 때마다 따라붙은 警護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수고하는 모습에 未安하기도 하다. 複雜한 市內 交通을 헤치면서 一行을 先導하는 오토바이 搭乘 警察官 2人, 自動車 앞座席에서 密着 警護하는 軍 將校, 別途의 SUV車輛에 搭乘한 軍人들을 비롯해 10餘 名이 나를 警護한다. 

    필리핀의 가장 큰 放送局인 ABS가 生放送 인터뷰를 提案했다. 出張 目的이 國際刑事裁判所의 存在를 알리는 데 있으므로 言論 弘報 機會를 놓쳐서는 안 된다. 豫想 質問 中 하나는 유엔 安保理가 리비아 事態를 ICC에 回附한 狀況에서 리비아에서 일하는 필리핀 勞動者들의 安全 問題와 關聯된 것이었다. 앵커의 質問이 날카롭고 다양했는데 觀戰하던 周邊에서 내가 答辯을 잘했다고 評價해 氣分이 좋았다. 

    3月 7日 마침 그곳에 온 濠洲 外務部 最高法律顧問인 리처드 路와 朝餐 모임을 가졌다. 헤이그와 뉴욕에서 이따금 만났고 지난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國際刑事裁判所 리뷰 콘퍼런스에서도 面談한 사이다. 來年 2月 시드니에서 開催되는 ICC 10周年 記念 세미나에 그를 招請했다. 이 세미나에 太平洋 섬나라 16個國을 참석시켜 波及 效果를 極大化하겠다고 나의 腹案을 밝히니 그가 全的으로 同意한다. 

    필리핀 上院에서의 日程은 후안 폰세 엔릴레 議長을 만나는 것으로 始作됐다. 1986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大統領을 逐出하는 國民革命이 成功할 때 國防長官으로서 決定的 役割을 한 사람이다. 나와 面談할 때 87歲였는데 나이에 비해 아주 健康했으며 國際刑事裁判所에 對한 質疑도 아주 銳利했다. 그와 對話한 後 上院 外交委員會가 主催한 公聽會에 參席해 필리핀이 ICC에 加入해야 하는 理由를 力說했다. 

    午後 1時 30分으로 豫定된 베니뇨 아키노 3歲 大統領과 面談하기 위해 大統領宮으로 急하게 車를 몰았다. 大統領宮은 市內 中心街의 너른 땅에 자리 잡았다. 椰子樹를 비롯한 各種 樹木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警護가 嚴했다. 

    아키노 大統領은 50歲의 獨身이다. 上院議員이던 父親을 空港에서 暗殺로 잃고 大統領에서 退任한 어머니까지 癌으로 잃은 點이 나의 할아버지(古下 송진우)를 연상시켰다. 言論에 따르면 50歲의 總角인 그가 몰래 宮을 빠져나가 女子親舊와 밤을 보내고 오는 일이 잦은데 이것이 파파라치에게 捕捉돼 恒常 시끄럽고, 最近에는 中古 포르셰 自動車를 산 것이 입초시에 올랐다고 한다.

    30個 家門이 政府 要職 獨占

    아키노 大統領의 祕書室長은 80歲가 넘은 분이다. 어머니가 大統領으로 일할 때 奉職하다가 退職한 분을 다시 불러들였다고 한다. 大統領 祕書로서 잘 보살펴주었고 그 또한 아저씨라고 하면서 따랐다고 한다. 

    아키노 大統領이 市內에서 午餐 後 나를 만나러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2時 15分이 돼서야 會談이 始作됐다. 會談場 配置를 보니 大統領 周圍에 國防長官, 法務次官, 外務部 高位官吏 等 政府 要因과 함께 NGO 人士들도 陪席한다. 아키노 大統領은 내게 批准同意案에 2月 28日 署名했고 以後 節次에 따라 上院에서 決定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國際刑事裁判所 現況을 熱心히 說明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國際刑事正義’의 重要性을 刻印시켰다고 생각한다. 

    아키노 大統領이 인도네시아를 國賓 訪問次 떠나야 할 時間이 돼 會談이 終了됐다. 좋은 印象에 아무리 大統領이라고 하더라도 父母도 안 계시고 結婚도 안 한 處地라 惻隱하다는 생각도 든다. 上院으로 되돌아가 上院議員 여러 明과 一一이 人事한 後 外交委員會에서 演說했다. 

    필리핀은 어느 家門 出身인지가 立身하는 데 매우 重要하다고 한다. 30個假量의 家門이 世襲으로 돌아가면서 政府 要職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革命으로 쫓겨난 마르코스의 아들이 上院議員이고 그의 惡名 높은 母親 이멜다는 下院議員이라고 하니 氣가 찰 노릇이다. 

    上院에서의 日程을 마치고 記者會見을 한 後 리셉션에 參席하고자 由緖 깊은 ‘클럽 필리피盧’로 向했다. 1986年 마르코스 政權을 무너뜨린 後 民衆의 힘으로 當時 上院議員이던 코라손 아키노를 大統領으로 推戴한 歷史的 場所다. ‘클럽 필리피盧’의 壁에는 코라손 아키노의 就任式을 西洋의 宗敎化처럼 그려놓은 그림이 걸려 있다. 

    이튿날 午後 7時 말레이시아航空 MH705를 타고 말레이시아의 首都 쿠알라룸푸르에 到着했다. 市內 한복판에 位置한 호텔에 旅裝을 풀었다.

    ‘알자지라’가 親北韓敵이라니…

    말레이시아 公式 日程의 첫날인 3月 9日 國會議事堂을 찾았다. 英國式 議員內閣制 國家다. 王은 9個 注意 族長이 모여 選擧를 거친 後 5年씩 돌아가면서 맡는다고 한다. 

    議會에서 열린 國際 議員 세미나에서 내가 演說한 後 討論이 무르익는 過程에서 몰디브 代表(野黨 代表 議員)가 일어나 “政府가 6個月 前 批准案을 國會에 上程했으나 내가 屬한 野黨의 反對로 審議를 못하고 있다”면서 “國際刑事裁判所醬의 演說을 듣고 나니 몰디브의 加入이 반드시 必要하다. 내가 率先해 反對를 撤回하겠다”고 宣言했다. 望外의 所得이라고나 할까. 나의 演說을 有心히 듣고 보니 로마조약 加入이 自己네 나라에 꼭 必要하다고 생각돼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이었다. 

    3月 10日 午前 말레이시아 大學에서 講演했다. 數百 名이 모였다. 國際刑事裁判所의 機能과 重要性에 對해 밝힌 後 學生들과 愉快한 討論을 했다. 젊은이들과 疏通하면 언제나 氣分이 爽快해진다. 講演 後에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알자지라’ 放送과 인터뷰했다. 이 言論과 對談을 길게 한 것은 生前 처음이다. 

    알자지라 所屬 記者는 곧 서울支局을 開設한다면서 나에게 好感을 表示했다. 며칠 前 서울에서 政府 官僚에게 인터뷰를 要請했는데 알자지라가 친(親)북한적이며, 아랍 미디어여서 會見 要請을 拒否한다는 答을 들었다고 한다.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資金力을 바탕으로 한 影響力이 큰 放送社다. 믿을 만한 言論 媒體로 成長하고자 BBC, 뉴욕타임스(NYT) 等 一流 言論의 中堅 言論人을 스카우트해왔다. 水準 높은 媒體로 쑥쑥 커나가는데 그 記者가 傳한 韓國 官僚의 말을 듣고는 한 대 얻어맞은 氣分이 들었다. 韓國 官僚들이 先入觀 탓에 事故가 固定돼버린 例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유럽에서는 NYT, CNN보다 유로뉴스, BBC가 影響力이 훨씬 크다. 알자지라度 深層 報道와 多面 分析을 통해 視聽者가 急速히 늘었으며 影響力도 크게 增大했다. 韓國에서는 이러한 變化를 感知하지 못하는 듯하다. 官吏나 輿論 主導層이 無條件 美國의 NYT와 CNN에 依存하는 傾向이 强하다. 政策 結晶子나 輿論 主導層이 美國에서 工夫한 境遇가 많아 美國 言論에 影響을 받는 것 같다. 

    알자지라에 이어 말레이시아 新聞 ‘더 선’과 인터뷰했다. 어제 호텔에서 내가 바람맞힌 터라 더 誠實하게 對談에 應했다. 자크히아 코野라는 이름의 記者인데 베일로 머리를 端整하게 가리고 이슬람 스타일 옷을 아주 깔끔하게 입었다. 講演이 大歡迎을 받은 것은 勿論 記者들과의 對話도 無難하게 마무리됐다. 이제 政府 要因들을 만나 談判할 일만 남은 것이다.

    官僚 水準도 國民所得에 比例

    나즈리 압둘 아지즈 말레이시아 法務長官을 豫防했다. 어제 만나기로 했는데 議會 日程이 길어져 그가 約束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해 5月 28日 우간다 캄팔라의 아프리카 法律救助會議에서 만나 人事한 일이 있다. 그는 國際刑事裁判所 支持者이므로 批准 與否를 再論할 必要는 없었다. 그가 麾下 檢察總長을 說得할 수 있는지 再確認했다. 로마조약 批准은 이 나라의 政治的 力學 關係가 달린 問題였다. 

    午後 5時에는 나집 라작 總理를 만났다. 라작 總理는 風采가 좋은 데다 仁慈하고 有識했다. 그는 다음 週 水曜日 閣議에 上程해 批准案을 통과시킨다고 말했다. 各國 政府 最高責任者들의 말과 行動이 다른 것을 하도 많이 經驗했기에 100% 安心한 것은 아니지만 總理의 人品과 約束을 믿었다. 

    當時 基準으로 필리핀의 1人當 國民所得은 2000달러, 말레이시아는 7000달러 水準이다. 國民所得이 그 나라의 水準을 어느 程度 나타내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는 필리핀보다 秩序가 잡혀 있었으며 官僚들의 言行이 多少 一致하는 듯 보였다. 말레이시아는 生活水準도 낮지 않았다. 赤貧(赤貧)은 存在하지 않는 듯했다. 이슬람 律法을 嚴格하게 지키는 것 같으면서도 外國人 觀光客을 誘致하려는 目的인지 寬大한 面도 있었다. 

    3月 11日 生前 가본 일 없는 브루나이를 訪問하고자 空港으로 向했다. 東南亞 出張을 나서는데 오직 두 나라만 訪問하면 出張費를 效率的으로 쓰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우겨 追加한 나라다. 午後 3時 50分 브루나이 首都 반다르스리브가완에 到着했다. 김대식 臺詞가 公館員을 데리고 出迎해주었다. 容貌 端正하고 점잖게 생긴 분인데 印象이 좋다. 내가 말레이시아에 있는 동안에도 헤이그나 마닐라에 連絡을 繼續 取해 내 日程과 趣向 等을 물어보는 等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이슬람 國家에서 金曜日은 公休日인 터라 訪問 첫날 公式 日程은 없었다. 土曜日인 이튿날 午前 10時부터 外交部, 法務部 高位職이 모인 자리에서 國際刑事裁判所에 關한 說明과 質疑應答을 했다. 法務部에 勤務한다는 王의 둘째 따님이 臨席하기를 기다린 後 이슬람 聖職者가 祈禱를 한 다음 내가 講演을 했다. 1時間 남짓에 걸친 모든 行事가 끝난 다음에도 같은 聖職者가 祈禱했다. 質疑應答이 끝난 後 間食이 나왔다. 公主와 헤드테이블에 同席했다. 머리를 베일로 싸맸지만 귀엽게 생긴 公主는 微笑만 지을 뿐 別로 말을 하지 않았다.

    “國際刑事裁判所의 아버지여! 더욱 健康하소서”

    11時 半께 行事가 終了된 後 王의 동생으로서 第1外務長官을 맡고 있는 무함마드 볼키에르 功過 會談하러 外務部로 移動했다. 王의 동생은 키가 작고 머리가 희끗한 1947年生 紳士였다. 英國에서 敎育을 받았으나 나에게는 말레이語로 얘기했다. 音色이 갈라진 듯한 發音이었다. 나중에 김대식 大使에게 들으니 王族들은 四寸과 結婚해 遺傳的 問題點이 있는 境遇가 있는데 音聲이 異常한 것도 그런 影響일 수 있다고 한다. 

    반다르스리브가완 市內에는 깨끗하고 잘 지어진 建物이 櫛比하다. 特히 모스크가 雄壯하고 規模가 크다. 點心을 먹은 後 女性 閣僚인 法務長官을 만났는데 態度가 融通性이 있으면서 溫和했다. 로마조약에 關한 大綱의 知識도 갖췄으나 말레이시아로부터 傳染된 論理, 卽 王의 免責 等과 關聯한 法的 問題點을 鸚鵡새처럼 言及해 失望스러웠다. 3月 13日 브루나이를 出發해 이튿날 아침 5時 30分 네덜란드 스히폴 空港에 到着했다. 

    5月 12~20日 訪問한 트리니다드토바고와 콜롬비아는 國際刑事裁判所와 이런저런 因緣이 얽힌 나라다. 카리브共同體(카리콤·14個國)가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主催한 ICC 세미나에 參席하고자 訪問한 것이지만 이 세미나는 트리니다드토바고 政府가 心血을 기울여 組織한 會議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首都는 포트오브스페인(Port of Spain)이다. 포트오브스페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카리콤 會員國 代表들이 參席한 가운데 國際刑事裁判所의 機能과 役割에 對해 演說하고 로마조약 批准 節次와 關聯해서도 發言했다. 

    1989年 冷戰 終熄 後 유엔 總會에서 國際刑事裁判所 創設을 提議함으로써 數十 年間 冬眠 狀態였던 論議를 부활시킨 이 나라의 前 大統領 아서 로빈슨이 세미나에 參席해 感慨가 無量했다. 내가 演說에서 그를 ‘國際刑事裁判所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웠더니 곧 사람들이 그 말을 따라 했고 現地 新聞에서 大書特筆했다. 로빈슨 前 大統領이 會議場에서 卽席으로 한, 自己의 哲學과 回顧를 담은 演說은 참으로 印象的이었다. 똑똑한 精神力에 비해 80代 中盤의 나이를 勘案하더라도 걷지도 못하고 身體的으로 不便한 것이 異常해 病患 中인지 물었더니 어느 분이 1990年 이슬람軍隊의 쿠데타로 執權한 軍部의 6日 天下에서 總理로서 衝擊을 받은 後遺症이라고 귀띔한다. 로빈슨 前 大統領은 내가 2003年 네덜란드에서 裁判官 就任式을 할 때 現職 大統領으로 參席했고 그가 寄贈한 金箔의 記念牌는 只今도 裁判所 建物 15層에 걸려 있다. ICC 大法廷은 그의 이름을 따서 ‘로빈슨 룸(Robinson Room)’이라고 불린다. “國際刑事裁判所의 아버지여! 더욱 健康하소서”라고 祈願했다.

    극성스러운 콜롬비아 言論

    ‘코파 에어라인’ 航空機를 타고 포트오프스페인을 떠나 파나마를 거쳐 콜롬비아에 到着했다. 밤에 체크인 하는데 호텔 職員이 白人인 내 對外補佐官 마티아스(핀란드 出身)가 보스이고 有色人人 나는 隨行員인 줄 알았는지 그에게는 應接室이 딸린 10層의 큰 스위트룸을 주고 나는 6層의 작은 房을 配定했다. 마티아스가 일을 바로잡아 房을 제대로 바꾸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나로서는 큰 經驗이다. 더구나 앞으로 함께 일할 大英帝國 大使 出身 英國人 祕書室長과 同伴 旅行할 때에는 이런 일이 더 자주 發生할 것이다. 

    콜롬비아 政府가 짜놓은 日程은 殺人的이었다. 長官들과의 面談을 하루에 7~8個씩 잡아놓았다. 보통의 出張 때는 現地 情報를 詳細히 把握한 뒤 高位職들과 面談에 나섰는데 이틀 내내 틈이 거의 없다. 

    8時 朝餐에 맞춰 하루 日課를 始作하려는데 6時부터 現地 言論社의 인터뷰 要請 電話가 불이 나게 울린다. 寢臺에서 첫 電話를 받았는데 웬걸 라디오放送記者다. 5分만 하자던 인터뷰가 35分이 걸렸다. 繼續 電話가 걸려온다. 應對를 멈췄더니 호텔 職員이 房으로 찾아온다. 房門을 두드리면서 重要한 情報가 있으니 電話를 꼭 받으란다. 世上에 이렇게 無禮한 境遇가 있나. 호텔 職員도 내 房으로 電話를 걸어 많은 電話가 繼續 걸려오는데 안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不平한다. 겉은 一流 호텔인데 이렇게 主客이 顚倒된, 서투른 호텔은 처음 본다. 그야말로 氣가 막히다. 通常의 호텔은 投宿客이 누군지와 房 電話番號를 投宿客 本人 同意 없이 가르쳐주지 않는다. 콜롬비아 外交官의 答辯이 傑作이다. 記者들이 호텔 職員을 買收한 것 같다는 것이다. 

    國際刑事裁判所醬의 訪問이 關心을 끄는 것은 좋은 現象이나 가는 곳마다 記者들이 구름같이 몰려서 寫眞을 찍어대고 인터뷰를 要請한다. 大槪의 記者들은 別 準備도 없이 寫眞 한 컷을 찍으면 그냥 달아난다. 

    첫 公式 日程은 大法院長 豫防이다. 司法府 首長을 訪問하는데 外務部 職員들이 따라붙었다. 面談에까지 參席하는 것은 不適切하다는 點을 慇懃히 暗示했으나 알아듣지 못했는지 莫無可奈로 따라온다. 司法權 獨立에 對한 槪念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大法院長은 24名의 大法官을 모두 法服을 입혀서 大會議室에 召集하고는 나를 紹介했다.

    協定書 ‘變造한’ 콜롬비아

    콜롬비아 言論은 내가 到着하기도 前부터 國際刑事裁判所가 콜롬비아의 司法制度와 正義 및 平和를 위한 各種 프로그램 運營을 評價하고자 訪問하는 것이라고 事實과 다른 報道를 내보냈다. 그래서 나는 후안 마누엘 산토스 大統領과 刑執行協定에 함께 署名하고, 안데스 大學에서 公開 講演하는 單 두 가지 目的으로 訪問했노라고 가는 곳마다 强調했다. 

    大法院과 憲法裁判所는 100餘m 떨어졌는데 수많은 記者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待機하는 것을 보고는 自動車로 移動했다. 憲法裁判所長은 프랑스에서 工夫한 사람이다. 憲法裁判所 日程을 마친 後 하이라이트라고 할 大統領과의 會談을 위해 大統領宮으로 갔다. 조금 前 만난 大法院長과 憲法裁判所長 및 여러 閣僚는 勿論 記者들이 房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앞서 만난 司法府 首長들은 올 必要가 없는데 왜 왔는지 疑訝했다. 司法府 首長들이 大統領의 脾胃를 맞추러 온 것 같았다. 

    나는 大統領과 單獨會談을 하면서 엊그제 水害로 死亡하거나 罹災民이 된 분들을 慰勞하는 말을 먼저 건넸다. 그러곤 우리 裁判所의 現況을 簡略하게 브리핑하고 意見을 交換했다. 別室로 移動해 모든 參席者와 記者들이 보는 앞에서 산토스 大統領과 나는 刑執行協定의 英語本과 스페인語本에 署名하고 交換한 다음 握手했다. 記者들의 質問은 省略하기로 했다. 산토스 大統領과 午餐을 하면서 다시금 콜롬비아의 6·25戰爭 派兵에 感謝했으며 戰爭 犯罪가 다시는 再發하지 않도록 하고자 國際刑事裁判所가 出帆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政府가 잡아놓은 빡빡한 日程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쉴 새 없이 政府 高位官僚들을 만났다. 그런데 移動 中 마티아스가 同乘한 콜롬비아 外交官에게 抗議한다. 署名한 協定 原本을 헤이그 本部에 送付했는데 英語本에 없는 表現이 스페인語本에 들어 있다는 連絡이 바로 온 것이다. 人生을 살다가 別일을 다 본다지만 어이없었다. 더욱 寒心한 것은 自己네들이 한 짓의 深刻性을 모르는 듯한 態度다. 外務部 官吏들이 大統領과 나를 속인 셈이 아닌가. 重大한 外交的 缺禮를 犯해놓고 向後 어떻게 이 問題를 마무리할지 그들의 態度가 궁금하다.

    ‘大英帝國 大使’ 出身 祕書室長

    앞서 言及했듯 國際刑事裁判所 所長으로서 世界 各國에 出張을 가 받은 印象은 사람들의 態度나 水準이 大體로 1人當 國民所得과 比例한다는 것이다. 내가 訪問한 나라를 흉보려는 게 아니라 韓國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指標이기에 되돌아본다. 

    콜롬비아의 境遇 外交 文書를 變造하고 相議도 없이 面談 日程을 잡았다 말았다 하는 態度, 警護員이나 運轉技士들의 건성건성 일하는 모습, 各 部處 長官들의 엉성한 準備 等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韓國 外交官들이 先進國 水準으로 깔끔하게 일處理를 잘하는지 궁금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왔다. 린 파커가 내 祕書室長으로 일을 始作한 지 3個月이 넘었다. 大英帝國 大使로서 사람을 부리고 위에서 큰소리만 치다가 國際刑事裁判所腸 祕書室長으로 손수 많은 일을 하게 된 그가 어떻게 處身할지 궁금했다. 나는 感情을 보이지 않고 그의 自尊心과 判斷을 尊重하려고 努力했다.
     
    린은 只今껏 이런저런 施行錯誤를 겪었다. 누구나 長短點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한 面에서 失手를 하더라도 다른 面에서는 도움을 주는 境遇도 있다. 長短點을 全般的으로 檢討해 사람을 適材適所에 配置하는 게 리더십의 重要한 一部일 것이다. 大英帝國의 엘리트인 린의 處地에선 잘 알지도 못하는 아시아 國家에서 온 사람 밑에서 祕書室長 노릇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린은 옥스퍼드大 法科 出身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60歲 前에 英國 外務部를 退職해 國際刑事裁判所로 옮겨왔는데 얼마간 마음을 가다듬는 過程이 必要했을 것이다. 그는 ICC의 裁判部, 檢察部, 行政處 3個 機關의 葛藤에 잘 對處했다. 부드럽고 協調的인 態度로 말썽 많은 裁判官들과의 關係 改善에도 成果를 거뒀다. 綜合的으로 살펴보면 祕書室長을 잘 求한 셈이었다.

    ICC 分擔金 滯納한 韓國 어이할꼬

    2011년 5월 12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 사무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2011年 5月 12日 네덜란드 헤이그 國際刑事裁判所 事務室에서 撮影한 寫眞이다.

    2011年 11月 28日 出勤하자마자 作心하고 김황식 國務總理에게 電話를 걸었다. 韓國이 그해치 國際刑事裁判所 分擔金을 滯納해 내 立場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國際刑事裁判所 分擔金 中 滯納額이 450萬 유로였는데 最高額 滯納國인 스페인이 이番 週 140萬 流路를 完納하면 韓國이 最高 滯納額 國家로 우뚝 선다. 12月 11日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ICC 當事國總會 때 이 같은 事實이 알려지면 國際的 亡身을 當할 뿐 아니라 議決權도 停止된다. 이기철 大使 等이 外交部 長官과 外交部 本部에 促求했는데도 돈이 없다면서 措置하지 않아 할 수 없이 總理에게 電話限 것이다. 韓國이 낼 돈이 105萬 유로인데 果然 完納해줄지 궁금했다. 

    國會에서 豫算을 통과시킬 때 國際機構 分擔金을 한몫에 承認해준다. 그러나 外交部가 이를 執行하는 過程에서 몫을 나눠 미리 納付하지 않고 中間에 이런저런 用途로 다 써버리고는 年末에 돈이 없다고 발을 뻗고 滯納하기 일쑤라고 한다. 豫算 管理를 이렇게 하면 國際 活動에 얼마나 支障을 주는지 韓國 政府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유엔의 各種 分擔金 中에도 積滯가 있다고 들었는데 韓國 政府는 ICC 分擔金마저 滯納하고 버틸 생각인가. ICC 訴狀을 輩出한 國家가 동냥을 못 주나마 쪽박이라도 깨지 않았으면 좋겠는 생각이 들었다. 結局 合理的이고 節次를 尊重하는 김황식 總理가 大統領과 相議해 分擔金을 完納해줬다고 들었다. 

    12月 12日 뉴욕에서 열리는 國際刑事裁判所 當事國總會에 參席하는 길에 서울에 들렀다. 12月 9日 世界人權宣言記念日에 政府가 나에게 주기로 한 無窮花大勳章을 받는 記念式에 參席하기 위해서다. 元來 過去에는 이런 最高의 訓長은 大統領이 直接 靑瓦臺에서 授與하고 午餐을 내는 法인데 主務官廳인 國家人權委員會가 그렇게 하라고 아무리 靑瓦臺에 上申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고 한다. 

    大統領은 勿論 祕書室長과 首席祕書官들도 自由貿易協定(FTA), 豫算 및 其他 事案과 關聯해 野黨의 거센 攻勢에 萎縮돼서인지 人權에는 關心조차 없다고 한다. 참 가엽고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리더십이다. 政治나 經濟에 關한 問題는 한마디 더 하나 안 하나 利害關係로 움직이지만 人權의 重要性에 關해서는 大統領으로서 한마디 하면 自身의 이미지를 世界的으로 改善하는 效果가 있을 텐데 그런 計算조차 못할 뿐만 아니라 本人이나 그의 參謀들이 人權에 對한 認識이 全無하다. 이럴 거면 勳章을 現地 公館으로 傳授해 授與하도록 할 것이지 바쁜 사람을 韓國에 오게 만들어놓고 國家人權委員會에 授與를 미루는지 답답하다. 

    任期 말이어서 마음의 餘裕가 없는지 判斷이 흐려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韓國은 經濟成長만 내세우고 人權, 法治, 민주 等 人類의 普遍的 價値를 無視하면서 倨慢한 態度를 繼續 보이다가는 언젠가 한番 國際社會에서 크게 망신당할 날이 있을 것 같아 늘 조마조마하다. 人類의 普遍的 價値인 人權에 對해 大統領은 勿論 政府의 高位官僚가 하나같이 認識이 없으니 國際社會의 責任 있는 一員으로서 尊敬받는 나라로 국格이 格上되기는 遙遠한 것 같다.

    走馬燈 같은 70年 삶

    2010년 1월 20일 국제형사재판소 신규 재판관들이 선서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2010年 1月 20日 國際刑事裁判所 新規 裁判官들이 宣誓式을 마치고 記念撮影을 했다.

    12月 12日 第10期 國際刑事裁判所 當事國總會가 뉴욕에서 開幕했다. 이안 카마 보츠와나 大統領의 演說이 아주 强力하고 印象 깊었다. 나비 筆레이 유엔人權最高代表는 시리아 事態를 ICC에 回附하라고 유엔 安保理에 促求했다. 

    開幕한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裁判官 選擧가 遲遲不進하다. 새로 任命할 6名 裁判官 中 3名만 決定됐다. 裁判官 選擧가 미뤄지는 바람에 12月 19日까지도 豫算 審議가 難航을 거듭했다. 

    12月 21日은 내 生日이다. 每年 生日을 記念하지만 70回는 남다른 意味가 있다. 70回 生日에 客地에서 숨죽이며 豫算案 審議 結果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날 當事國總會 末尾에 當事國總會 議長인 티나 인텔만(에스토니아 大使 出身)李 오늘이 내 生日이라고 公表하는 게 아닌가. 當事國 代表들이 拍手로 祝賀해줘 감격스러웠다. 會議를 마치자 수많은 臺詞가 生日을 祝賀한다면서 握手를 請한다. 美國 代表團과 各種 NGO 代表들이 追加로 3年間 나와 함께 일하기를 願한다고 反復해 말해 흐뭇했다. 

    어느덧 滿 70歲가 됐다. 살아온 歲月이 比較的 덤덤하게 走馬燈같이 지나간다. 同時에 내가 果然 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하는 疑問도 든다. 아버님은 일흔이 갓 넘으셔서 걸리신 深刻한 腦卒中으로 5年 班을 植物人間으로 계시다가 돌아가셨으니 나도 그처럼 얼마 못 살고 갈지, 아니면 어머니는 90歲까지 사셨으니 나도 그만큼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누가 사람의 앞일을 알 수 있으랴. 

    回顧해보면 올곧은 環境에서 태어나 돈이나 家庭事에 複雜하게 얽매이지 않은 채 살았다. 판·檢査, 辯護士, 官僚가 될 수도 있었지만 敎授로 赴任한 後 學問的 業績의 成就에만 全力을 기울였고 그 나름대로 相當한 業績을 認定받았다. 넉넉한 家庭에서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父母님의 勤儉節約 德澤이고, 育兒나 家庭의 大小事에 깊이 關與할 必要 없이 學問 活動에만 專念한 것은 主로 아내의 德澤이다. 아이들도 잘 자라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法學 敎授로서 權力 周邊을 기웃거리지 않으면서 學問的·道德的·人間的 姿勢를 바로 하는 데 힘썼다. 그 結果로 적어도 法曹界에서는 龜鑑이 되는 名聲과 信賴를 쌓았다고나 할까. 學問 分野에서는 擔當인 商法과 民事訴訟法은 勿論이고 韓國에서 처음으로 海上法을 講義하고 國際去來法, 知的財産權法, 企業倒産法, 法律構造, 法經濟學 等을 韓國學界에 導入했다. 또한 弟子들과 關係를 敦篤하게 維持하면서 年年歲歲 定期的으로 만나 아름다운 關係를 維持하는 것은 참으로 큰 祝福이요, 資産이다. 隱退를 얼마 안 남겨놓은 어느 날 國際機構에 進出하는 幸運을 잡았고, 最近에 불꽃같이 일어나는 새로운 國際法秩序人 國際刑事正義 시스템에 便乘해 國際刑事裁判所의 初代 裁判官으로 勤務하다가 同僚들의 推戴로 그 國際機構의 所長으로 選出됐다. 

    人類 平和와 正義의 實現에 자그마하게나마 寄與하면서 分에 넘치는 榮光을 차지했으므로 살아오면서 도움을 주신 많은 분에게 感謝한 마음이 그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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