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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깊어가는 內憂外患 (內憂外患)|新東亞

中國 改革開放 40年 시리즈 下

中, 깊어가는 內憂外患 (內憂外患)

  • 入力 2018-09-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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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國이 올해로 改革開放 40周年을 맞는다. 改革開放 以後 中國의 超高速 經濟成長은 實로 눈부실 程度다. 1970, 80年代 韓國의 超高速 成長이 ‘漢江의 奇跡’이라면 中國 改革開放 40年의 成果는 ‘中國의 奇跡(中國的奇蹟)’이다. 中國은 이제 量的 成長뿐 아니라 質的 發展에서도 超一流 段階에 들어섰다.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이라는 ‘中國의 꿈(中國夢)’을 實現하기 위해 ‘中國特色社會主義’라는 旗幟를 내걸고 經濟 章程(長征)을 始作한 中國, 改革開放 40年 사이에 얼마나 變했을까? 駐韓 中國大使館(邱國洪·추궈훙 大使) 招請으로 동아일보를 비롯한 言論社 記者와 中國 專門 學者 11名으로 構成된 ‘中國 改革開放 40周年 成果 探訪團’(團長 김진호 단국대 敎授)의 一員으로 7月 22日부터 28日까지 一週日間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宣傳(深) 等 中國 改革開放의 象徵 都市들을 둘러봤다. 中國 改革開放 40年의 成果와 展望을 上·下 시리즈로 照明한다.
    改革開放 40年, 中國 經濟는 如前히 急成長勢다. 每年 7%에 가까운 急速 成長에 來年이면 1人當 國內總生産(GDP)李 待望의 1萬 달러를 突破할 게 確實視된다. 14億 中國 人民이 共産黨 獨裁가 갈수록 强化되고 있음에도 크게 抵抗하지 않는 것도 이런 經濟 成果에 起因한다. 

    하지만 中國 人民들의 社會的 不滿은 漸次 커지고 있다. 中國 人民의 不滿은 過去와 다르다. 改革開放 初期만 하더라도 基本的인 欲求가 充足되지 않은 데 對한 不滿이 大部分이었지만, 所得이 1萬 달러에 가까워진 只今은 ‘풍요로운 生活(美好生活)’에 對한 欲求가 如前히 充足되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末 年間 所得 6200위안(韓貨 約 102萬 원·韓 달 生活費 9萬 원 以下) 以下의 絶對貧困 人口는 約 3000萬 名. 中國 政府는 共産黨 創建 100周年이 되는 2021年의 한 해 前인 2020年까지 絶對貧困 人口를 모두 탈출시킨다는 計劃이다. 

    하지만 絶對貧困 人口가 모두 없어진다고 해서 社會的 不滿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特히 貧富 隔差 擴大에 따른 相對的 剝奪感은 漸次 社會 不滿의 主要 原因으로 登場하고 있다. 中國 政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0月 18日 시진핑(習近平) 中國 共産黨 總書記 兼 國家主席은 第19次 黨 大會 報告를 통해 “中國特色社會主義가 新時代에 접어들었다”며 “우리나라의 社會 主要 矛盾은 이미 날로 커지는 人民들의 풍요로운 生活에 對한 欲求와 充分하거나 公平하지 않은 發展 사이의 矛盾”이라고 强調했다.



    政治, 社會 不滿 漸次 睡眠으로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사직한 리천젠 중국 베이징대 위안페이 학원 상무부원장. 그는 2013년 중국 정부가 “외국에 있는 인재 1000명을 모셔오자”는 천인계획에 따라 귀국한 세계적인 생명공학 학자다(왼쪽). 쉬장룬 칭화대 교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석직 임기제 철폐를 비판하며 “임기제를 회복시켜라”고 요구했다. 칭화대는 시 주석의 모교다.

    思想의 自由를 부르짖으며 辭職한 리천젠 中國 베이징大 위안페이 學院 常務副院長. 그는 2013年 中國 政府가 “外國에 있는 人材 1000名을 모셔오자”는 賤人計劃에 따라 歸國한 世界的인 生命工學 學者다(왼쪽). 쉬장룬 칭화대 敎授는 시진핑 中國 國家主席의 主席職 任期制 撤廢를 批判하며 “任期制를 회복시켜라”고 要求했다. 칭화대는 시 主席의 母校다.

    올해 8月 4日 中國 상하이(上海)에서는 둥野五蟲(董瑤瓊·女) 氏가 시 主席의 얼굴이 그려진 ‘中國의 꿈(中國夢)’ 宣傳 立看板에 먹물을 끼얹었다. 둥氏는 自身의 行動을 트위터로 中繼하면서 “시진핑 獨裁 暴政에 反對한다. 나를 잡아가라. 잡으러 오길 기다리겠다”고 말했다가 連行돼 精神病院에 强制 收監됐다. 이 事件 以後 中國 全域에서는 軍事作戰을 彷彿케 하는 詩 主席 肖像畫 除去 作戰이 벌어졌다. 模倣 示威를 源泉 封鎖하기 위한 措置다. 

    學者 等 知識人들의 反撥도 漸次 커지고 있다. 올해 3月 22日엔 中國 最高大學인 베이징(北京)大 위안페이(元培)學院의 어웨이亂(鄂維南) 院長과 리천젠(李簡) 常務副院長, 張旭東(張旭東) 副院長 等 3名의 敎授가 辭職書를 提出했다. 리 敎授는 웨이신(微信)에 올린 辭退의 辯을 통해 “不撓不屈의 抗爭을 展開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最小限 個人의 尊嚴과 思想의 自由를 지키기를 願한다”며 “베이징대의 精神을 繼承하고 國民의 尊嚴을 지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리 敎授는 이어 “모두 官邊學者가 되기를 拒否하고 꼿꼿이 일어서자”고 促求했다. 리 敎授는 2013年 中國 政府의 ‘天人(千人)計劃’에 따라 美國에서 歸國한 有名한 生命科學 學者다. 中國 共産黨에는 ‘뼈아픈 抵抗’이라 아니할 수 없는 셈이다. 

    쑨원狂(孫文廣) 前 산둥(山東)大 敎授는 8月 初 ‘美國의 소리(VOA)’ 放送 프로그램에 出演해 인터뷰 途中 自宅 門을 부수고 들어온 公安에 끌려갔다. 쑨 敎授는 시 主席의 아프리카 5個國 巡訪과 大規模 海外 援助 및 次官 政策과 關聯해 “中國에 貧困人口가 차고 넘치는데 구태여 外國에 나가 돈을 撒布할 必要가 있느냐”며 批判의 목소리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미운 털이 박혔다. 1994年 退任한 그는 2008年 노벨平和賞 受賞者인 류사誤報(劉曉波) 等 303名과 함께 中國 人權宣言文에 該當하는 ‘08憲章’에 署名한 적이 있다. 

    知識人들의 批判은 甚至於 시 主席의 母校에서도 나오고 있다. 칭화(淸華)帶의 쉬장룬(許章潤·56) 敎授는 올해 7月 自由主義 系列의 싱크탱크 톈쩌(天則)經濟硏究所 웹사이트에 올린 ‘現在 우리의 두려움과 期待’라는 題目의 글에서 “執權者의 國家 運營 方式이 最低線을 넘어 時代 흐름에 逆行하고 있다”며 “最近 1年 사이 中國 政治社會의 退潮가 深刻해지고 中國 民衆이 두려움을 갖는 水準에 이르렀다”고 批判했다. 쉬 敎授는 中國 共産黨의 主席 任期制 撤廢를 批判하며 “任期制를 회복시켜라”고 要求했다. 

    시진핑 主席에 對한 過度한 宣傳과 禮讚에 對해서는 中國 共産黨 內部에서도 “時代에 逆行하고 있다”는 批判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日本 아사히(朝日) 新聞은 올해 8月 4日 中國 高位 指導部의 여름 休養地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열린 黨 指導部와 各界 知識人들이 參席한 座談會에서 시 註釋에 對한 個人崇拜가 지나치다는 指摘이 剛하게 提起됐다고 報道했다.

    集團示威 20倍 以上 急增

    一般 市民들의 集團示威도 急增하고 있다. 1990年代 初 年 1萬 件 以下이던 集團示威(群體性 事件)는 2005年 8萬7000件을 넘어서더니 2010年엔 20年 前에 비해 20倍 以上 늘어난 18萬5000件으로 急增했다. 이 中 100인 以上이 參與한 集團示威 亦是 2010年 163件, 2011年 172件, 2012年 209件으로 漸次 增加하는 趨勢다. 이런 集團示威 統計는 시진핑 執權 첫해까지만 나왔을 뿐 以後엔 統計조차 公開되지 않고 있다. 急增하는 群體性 示威가 中國 共産黨 執權 街道에 否定的 影響을 끼치고 있다는 判斷에서다. 

    集團示威가 가장 頻發하는 곳은 광둥(廣東)省 等 經濟가 發達한 곳이다. 2000年 初부터 2013年 9月 末까지 中國 全域에서 日語는 100인 以上 群體性 示威 871件 가운데 267件(30.7%)은 광둥省에서 發生했다. 群體性 示威가 經濟的으로 貧困한 西部나 奧地에서보다 잘사는 地域에서 더 많이 發生한다는 事實은 中國 共産黨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集團示威의 가장 큰 原因은 勞使 紛糾로 全體의 30%에 達한다. 다음은 政府의 不當한 法 執行(174件)이다. 勞使 紛糾와 政府 管理의 不當한 法 執行이 中國 集團示威의 2大 原因이라는 事實은 中國 共産黨의 持續的 執權을 威脅하는 重大한 要素다. 

    社會不安의 또 다른 原因은 地域 間 隔差다. 지난해 中國人 1人當 國內總生産(GDP)은 8836달러. 하지만 베이징(北京) 市民의 1人當 GDP는 1萬8860달러로 全國 平均의 2倍가 훨씬 넘는다. 상하이(上海) 亦是 1萬8216달러. 장쑤(江蘇)省 住民 亦是 1萬5670달러. 하지만 가장 못사는 中國 西部 地域인 간쑤(甘肅)省 住民은 所得이 아직 全體 平均의 折半도 안 되는 4287달러다. 少數民族이 많은 윈난(雲南)省 亦是 1人當 GDP는 지난해 겨우 5000달러를 넘었다. 

    地域 間 所得 隔差가 4倍가 넘다 보니 地域 間 違和感이 생기는 것은 當然하다. 中國 政府는 最近 20餘 年間 西部對開發 等을 통해 奧地 開發에 集中 投資했지만 地域 間 所得 隔差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所得分配의 不平等度를 나타내는 脂膩係數 亦是 2015年 以後 다시 오르는 趨勢를 보이고 있다. 中國의 脂膩係數는 2000年代 들어 0.4를 넘어선 뒤 줄곧 惡化됐다. 하지만 2008年 0.491로 頂點을 찍은 뒤 2105年까지는 7年 連續 改善되는 樣相을 보였다. 中國 政府는 2000年 들어 脂膩係數가 0.4를 넘자 10年 以上 脂膩係數 統計數値를 發表하지 않고 숨겨오다 2012年 0.474까지 떨어지자 2013年 1月 12年 만에 過去 12年의 數値까지 同時에 發表했다. 

    하지만 脂膩係數는 시진핑 主席 執權 3年째인 2016年부터 反轉해 다시 오르기 始作했다. 지난해 脂膩係數는 0.467로 所得의 兩極化와 貧富 隔差의 代물림이 社會不安의 主要 要因이 되고 있다.

    美中(美中) 貿易葛藤 갈수록 泰山

    中國 政府의 또 다른 골머리는 戰略的 競爭과 摩擦이다. 現在 두드러지게 밖으로 드러난 것은 貿易 摩擦이다. 核心 原因은 中國의 엄청난 對美 貿易黑字다. 中國 상무부 統計에 따르면 2017年 中國의 對美 貿易黑字는 2757億 달러. 하지만 이는 홍콩을 통한 對美 輸出 實績은 뺀 數値다. 이를 包含해 美國 政府가 發表한 資料에 따르면 지난해 美國의 對中 貿易赤字는 無慮 3752億 달러. 2002年 1031億 달러로 1000億 달러를 突破한 以後 美國의 貿易赤字는 2005年(2023億 달러) 2000億 달러臺, 2012年엔 3151億 달러로 3000億 달러를 넘었다. 最近엔 中國의 對美 貿易黑字 規模가 美國의 全體 對外 貿易赤字 中 折半 規模지만 過去엔 美國 全體 貿易赤字額의 80%, 甚至於 130%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對中 貿易赤字만 없다면 美國이 貿易黑字를 記錄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美國의 憂慮는 單純히 大衆 貿易赤字 規模가 全體 貿易赤字의 折半을 넘을 程度로 엄청나다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美國의 對中 貿易赤字 가운데 가장 큰 部門은 컴퓨터 等 電子製品으로 無慮 1673億 달러에 達한다. 기계류, 衣類 等 웬만한 製造業은 모두 中國産이 美國 市場을 휩쓸고 있다. 美國의 對中 輸出品은 콩 等 農産物과 오일, 가스, 林産物 等이 主宗을 이룬다. 貿易 內容으로만 보면 마치 美國이 後進國이고 中國이 先進國 같다. 

    도널드 트럼프 美國 大統領이 大衆 貿易報復을 宣言하고 올해 7月과 8月 各各 340億 달러, 160億 달러 等 總 500億 달러의 中國産 製品에 對해 無慮 25%의 高率 關稅를 매기면서 貿易 逆調 打開에 나섰지만 올해 1~7月 貿易赤字는 지난해 3160億 달러보다 많은 3380億 달러로 7% 가까이 늘었다. 美中 間 貿易戰爭이 앞으로 더욱 深化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中華民族偉大復興)’

    中國 政府는 시진핑 主席 執權 以後 ‘中國의 꿈(中國夢)’과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을 集中 强調하고 있다. 시진핑 黨 總書記는 지난해 10月 18日 中國 共産黨 第19次 全國代表大會(黨 大會) 開幕 演說에서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을 無慮 32次例나 소리 높여 외쳤다. 69次例나 言及한 ‘中國特色社會主義(中國特色社會主義)’에 이어 가장 많이 나온 單語다.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이란 뭘 말하는 걸까? 시 主席은 지난해 第19次 黨 大會 報告書에서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을 實現하는 것은 近代 以後 中華民族의 偉大한 夢想(夢想·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中華民族이란 漢族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中華民族은 하나의 民族이 아니다. 最多 民族인 한족(漢族)을 비롯한 56個 民族을 모두 包含한다. 

    ‘中華民族의 偉大한 復興’의 最終 目標는 ‘社會主義 現代化 强國’ 建設이다. 후진타오(胡錦濤) 執權 時期엔 社會主義 中國이 出帆한 지 100年이 되는 2049年까지 ‘社會主義 現代化 國家’를 이룩한다는 目標를 내세웠지만 시진핑은 ‘國家(國家)’를 ‘强國(强國)’으로 바꿨다. 이는 單純한 單語의 交替가 아니다. 1人當 國民所得(GDP)이 現在 美國과 같은 5萬 달러 以上 되는, 單純히 先進國이 되는 것을 넘어 綜合 國力과 國際的 影響力 等 多方面에서 ‘世界의 先頭에 서는 指導國家’가 되겠다는 꿈을 明確히 한 것이다. 시 主席은 나아가 ‘祖國 統一 完成’과 ‘世界平和의 擁護와 共同 發展의 促進’이라는 2가지 任務를 21世紀 中葉까지 實現해야 할 中國 共産黨의 歷史的인 3가지 任務라고 明示했다. 

    시진핑이 執權한 以後를 ‘新時代’라고 規定하는 것도 過去와 다른 方式이다. 마오쩌둥(毛澤東)李 社會主義 中國을 建設해 中國을 서게 했다면(站起來), 덩샤오핑(鄧小平)은 經濟 發展의 始動을 本格的으로 걸어 富裕한 社會로 가는 길을 提示했고(富起來), 시진핑은 世界 最高의 强大國으로 가는 길(强起來)을 提示했다는 것이다. 시진핑 思想이 마오 및 덩의 班列에 오른 것도 이 같은 背景에서다.

    帶同(大同)社會 建設

    ‘復興’이란 다시 일어나 興한다는 뜻이다. 왜 中國은 부흥이란 用語를 使用할까? 核心은 過去 歷史 속에선 잘사는 나라였다는 뜻이 內包돼 있다. 英國의 經濟史學者 앵거스 매디슨의 統計資料에 따르면 書記 1年 中國의 GDP는 유럽 30個 나라의 總合 144億3300萬 달러보다 훨씬 많은 268億2000萬 달러 水準이었다. 勿論 當時 統計는 推定値이지만 産業革命 以前 時期 中國의 GDP는 유럽 全域의 GDP보다도 많았다. 産業革命 初期이던 1820年까지만 해도 英國(362億3200萬 달러)은 中國 GDP(2286億 달러)의 15.8%에 不過했다. 美國은 125億4800萬 달러로 中國의 5.5% 水準이었다. 當時 中國의 GDP는 世界 全體의 33% 水準으로 有史 以來 中國의 GDP는 22~33% 水準으로 推定됐다. 

    이런 中國의 位相이 急速度로 떨어지기 始作한 것은 1842年 阿片戰爭 以後다. 1870年 世界의 17.1%를 차지한 中國의 GDP는 1900年 11.1%, 1950年엔 4.6%까지 떨어졌다. 計劃經濟 時節 中國은 經濟 發展을 위해 발버둥 쳤지만 1978年 中國의 GDP는 世界의 1.75%까지 떨어졌다. 中國으로서는 恥辱이었다.

    中, ‘팍스 시니카(Pax Sinica)’ 열 수 있을까

    하지만 改革開放으로 經濟의 基本 틀을 바꾸면서 中國 經濟는 다시 徐徐히 일어서기 始作했다. 1980年(1.71%), 1990年(1.60%)까지만 해도 世界 經濟規模의 1%臺 水準이던 中國의 經濟 規模는 1990年代 들어 急激한 上昇勢를 타면서 2000年 3.6%, 2010年 9.2%로 上昇하더니 2017年엔 15.3%까지 치고 올라왔다. 中國이 世界 經濟 規模의 22~33%를 차지했던 歷史上 記錄을 回復할 날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中國 經濟는 如前히 S字 成長曲線의 中盤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도 中國 經濟의 急速한 膨脹은 繼續될 것이라는 얘기다. 中國의 1人當 GDP가 2萬 달러, 나아가 3萬 달러를 突破할 때까지는 高速 成長勢를 維持할 可能性이 적지 않다. 經濟 規模로만 보면 美國 經濟 總量의 2倍 卽 40兆 달러까지는 設令 年間 成長率이 漸次 낮아진다 하더라도 꾸준히 擴張勢를 이어갈 可能性이 높다. 

    19世紀와 20世紀 前半期는 英國에 依해 世界 秩序가 主導되는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 時代였다. 20世紀 中盤 第2次 世界大戰이 끝난 뒤 只今까지 約 70年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時代였다. 

    그렇다면 中國은 社會主義 中國 建設 100周年이자 社會主義 現代化 强國을 建設하겠다는 21世紀 中葉에 自國에 依해 世界의 平和 秩序가 維持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時代를 열 수 있을까? 

    시진핑 中國 國家主席은 副主席 時節이던 2012年 2月 美國을 訪問해 ‘新型大國關係’를 力說했다. 第1의 霸權國家인 美國과 第1의 新興大局人 中國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世界를 主導하자는 主張이었다. “歷史上 霸權의 移動은 恒常 武力 衝突로 나타났지만 美國과 中國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며 “새로운 中·美 關係를 設定하자”고 提案했지만 美國은 冷淡하게 拒絶했다. 오히려 美國은 中國을 潛在的인 霸權 挑戰 國家로 보고 中國을 옥죄기 始作했다. 

    現在 中國은 果然 美國의 霸權에 挑戰할 能力을 갖췄을까? 아직은 멀었다는 것이 專門家들의 支配的인 分析이다. 지난해 中國의 GDP는 美國의 63.2%. 中國이 美國의 GDP를 追越하는 時期를 大略 2026~2028年으로 보고 있다. 2050年이 되면 中國의 GDP는 美國의 2倍에 이를 수도 있다.

    核彈頭 裝着 미사일 美 700 vs 中 20

    하지만 經濟 總量이 2倍에 이른다고 軍事力을 包含한 綜合 國力이 꼭 1位에 올라서는 것은 아니다. 美國은 1872年 GDP 1071億 달러로 1058億 달러에 그친 英國을 第쳤지만 美國이 英國을 代身해 霸權을 잡은 것은 第2次 世界大戰 以後였다. 第2次 世界大戰이 끝난 1945年 美國의 GDP는 1兆6448億 달러로 英國의 3470億 달러의 5倍에 가까웠다. 

    게다가 中國과 美國은 軍事力 隔差가 아직도 크다. 가장 强力한 武器인 核武器 保有 數字는 中國 260期, 美國 7100期로 美國이 中國의 27倍에 이른다. 特히 戰爭이 勃發했을 때 美國은 2000餘 個의 核彈頭로 武裝한 700餘 個의 미사일 攻擊 手段을 갖고 있지만 中國은 40個의 核彈頭를 裝着한 20個의 미사일만 保有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全 世界 空軍力의 54%, 海軍力의 63%를 保有한 美國의 軍事力에 對抗할 만한 나라는 아예 없다. 經濟 規模가 美國을 追越했다고 해서 綜合國力이 美國을 凌駕하기엔 턱없이 不足한 셈이다. 

    中國에서도 이런 點을 勘案해 中國이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린 것 아니냐는 自省도 나온다. 里샤오(李曉·55) 지린(吉林)大 敎授는 “日本이 美國과 30年間 貿易紛爭을 벌인 結果 ‘잃어버린 20年’을 겪게 됐다”며 “米·中 間 衝突은 最短 50年, 甚至於 더 오랜 時間이 걸릴 수도 있다”고 警告했다. 

    김진호 단국대 敎授는 “中國이 美國의 霸權에 挑戰할 醫師는 아직 없어 보인다”며 “中國은 美國과 協力하면서 自國의 位相과 影響力을 提高하는 ‘로키 戰略’을 相當 期間 持續할 것”이라고 豫想했다.

    中의 北核 解法 3原則과 3底線

    北核 解法과 關聯해 中國이 一貫되게 主張해온 것은 3原則이다. 北核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서는 1. 韓半島 非核化 2. 韓半島의 平和와 安定 守護 3. 對話와 協商을 통한 解決이라는 3原則을 堅持해야 한다는 主張이다. 1番은 目標이고 3番은 方法論이며 2番은 1, 3 達成 與否와 相關없이 主張하는 바다. 中國은 外交部 代辯人을 통해서나, 韓國에 中國 外交部 高位 幹部를 보내 數없이 이를 强調했다. 

    ‘韓半島 非核化’라는 第1 原則은 中國 政府가 努力하면 充分히 해낼 수 있다고 主張한다. 또 그럴 意思도 있다고 말한다. ‘韓半島의 平和와 安定 守護’라는 第2原則 亦是 中國은 그렇게 할 能力이 있으며, 맘만 먹으면 充分히 해낼 수 있다고 主張한다. 하지만 ‘對話와 協商을 통한 解決’이라는 마지막 原則은 中國이 達成하는 데 限界가 있으며, 有關 國家의 努力 없이는 達成하기 어려운 原則이라고 말한다. 

    中國 政府는 3原則의 順序와 關聯해 ‘韓半島의 非核化 堅持’를 맨 앞에 내세우는 게 一般的이지만 가끔은 ‘韓半島의 平和와 安定 守護’를 더 앞에 내세울 때도 있다. 非核化보다 韓半島에서 戰爭이 勃發하지 않게 막는 걸 더 重視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中國은 또 어느 것이 더 優先이냐는 質問에는 ‘缺日不可(缺一不可)’라는 立場이다. 卽 어느 하나 抛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中國은 北核 問題가 1990年代 불거진 것은 맞지만 北韓의 核武裝은 金日成 執權 時代부터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1965年 10月 金日成이 黨과 軍人 高級幹部가 모인 會議席上에서 “오래지 않은 將來에 우리는 核武器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 中國 政府는 注目한다. 特히 1967年 김일성은 民族保衛省 會議에서 “우리는 이미 核武器 開發에 着手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고 中國 媒體들은 傳한다. 卽 北韓의 核 問題는 單純히 北美(北美) 葛藤을 넘어서 北韓 內部政治와 結付된, 歷史的 淵源이 깊은 問題라고 把握하고 있다. 

    中國은 北韓이 核 開發에 나선 理由로 크게 4가지를 꼽는다. 먼저 政治大國, 軍事大國, 經濟大國이라는 北韓의 一貫된 國內政治 需要에 따라 核 開發이 비롯됐다고 본다. 둘째 韓國과의 統一 問題에서 主導權을 잡고, 셋째 美國의 核 威脅에서 벗어나며, 마지막으로는 經濟的 實利 等을 챙기기 위한 手段이라고 보고 있다. 北韓의 核武器 開發 理由를 셋째와 넷째에만 注目하는 우리와 確然히 다른 視角을 보이고 있다.

    “北, 自發的 核 抛棄 可能性 거의 없어”

    中國은 北核 問題 解決에서 3原則을 主張하지만 實際로는 ‘3底線(三底線)’을 더 重視한다. 3底線은 어느 境遇에도 中國이 許容할 수 없는 原則을 말한다. 첫째, 어떤 狀況에서도 北쪽이든, 南쪽이든 核武器를 가질 수 없다는 原則이다. 自體 製造는 勿論이고 남의 나라 核武器를 들여와 配置하는 것도 許容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卽 中國의 韓半島 非核化는 但只 北韓만 겨냥한 게 아니라 韓國과 美國까지 겨냥한 非核化라는 點을 分明히 하고 있다. 둘째, 武力을 使用한 核 問題 解決은 絶對 容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戰爭(生戰)이든, 亂離(生亂)든 決코 容納할 수 없다는 原則이다. 마지막은 韓半島 核 問題 解決에 中國의 正當한 國家 安全 利益은 어느 境遇에도 有效한 保障을 받아야 한다는 原則이다. 

    北核 問題에 對해 中國이 겉으로 말하는 3原則보다 3저선을 보면 北核 問題를 바라보는 中國 立場이 좀 더 明確히 드러난다. 

    한便 中國은 北核 問題를 果然 平和的으로 解決할 수 있다고 보고 있을까? 4·27 南北 頂上會談과 6·12 北·美 頂上會談을 코앞에 둔 時點, 中國의 高位 外交 管理는 “北韓이 核을 抛棄할 可能性은 거의 없다”며 “南北 頂上會談이 이를 10% 以上으로, 美·北 頂上會談이 50% 以上으로 올려주기를 期待한다”고 밝혔다. 北核 問題에 깊숙이 介入해온 中國 外交部 官吏 亦是 “北韓이 스스로 核을 抛棄할 可能性은 거의 없다”며 悲觀論을 폈다. 恒常 ‘對話와 協商을 통한 平和的 解決’이라는 以上(理想)을 말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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