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國進步勢力硏究’ 펴낸 言論인 남시욱|新東亞

인터뷰

‘韓國進步勢力硏究’ 펴낸 言論인 남시욱

“僞裝된 進步가 安保·統一問題 左之右之하면 國家的 災殃”

  • 入力 2018-10-03 17: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社會民主主義 흐름 끊기고 舊態依然·敎條的 左派 得勢

    • 急進的 左派前衛組織 構成員이 政治人으로 成長해 進步政黨 活動

    • 成功한 政權 되려면 僞裝된 進步의 그릇된 理念·思想과 訣別해야

    • 保守 候補로 金東兗 經濟部總理 괜찮다는 사람 있어

    남시욱(80) 花亭平和財團 理事長이 ‘韓國進步勢力硏究’ 改正增補版을 펴냈다. 初版이 나온 後 9年 만이다. ‘韓國進步勢力硏究’는 2005年 처음 펴내고 2011年 增補한 ‘韓國保守勢力硏究’와 짝을 이룬다. ‘韓國進步勢力硏究’ ‘韓國保守勢力硏究’는 知性界를 깨우는 力作이면서 理念과 思想 側面에서 韓國 現代 政治를 敍述한 統社(通史)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1938年 慶北 義城에서 태어난 남 理事長은 서울大 政治學科를 卒業하고 1959年 동아일보 收拾 1期 記者로 言論界에 投身해 社會部·政治部 記者, 도쿄特派員으로 일했다. 東亞日報 出版局長·編輯局長·論說室長·常務理事를 歷任했다. 文化日報 社長,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會長을 지냈다. 高麗大, 世宗大 夕座敎授로 後學을 養成했다.

    ‘박종철 拷問致死’ 探査報道 陣頭指揮

    1987年 6月 抗爭 때 民主化를 이뤄낸 周易은 市民 모두일 것이나 東亞日報 探査報道가 방아쇠 구실을 했다. 南 理事長은 現代史 分水嶺이 된 ‘박종철 拷問致死 事件’ 探査報道 司令塔이다. 동아일보 編輯局長으로서 拷問致死 事件 眞實을 파헤친 一連의 報道를 陣頭指揮했다. 

    1985年 ‘신동아’ 7月號에 ‘다큐멘터리 光州, 그 悲劇의 10日間’이라는 題目의 記事가 실린다. 이른바 ‘報道指針’이라는 全斗煥 政權의 言論 統制가 서슬 퍼럴 때 일이다. 出版局長이던 南 理事長이 ‘신동아’ 編輯長에게 出庫를 指示함으로써 光州民主化運動의 眞實을 記述한 르포르타주가 빛을 봤다. 

    박종철 拷問致死 事件이 일어나기 6個月 前 ‘富川警察署 性(性)顧問 事件’이 터졌을 때 ‘남시욱 出版局長’은 非常한 覺悟를 다졌다. ‘신동아’ 編輯長에게 性拷問 事件 顚末과 顧問을 告發하는 記事를 실으라고 指示했다. 



    1986年 ‘신동아’ 9月號에 ‘特別企劃 拷問’李 揭載됐다. ‘拷問, 人類文明의 數値’(한상범 東國大 敎授) ‘權力과 拷問’(金尙喆 辯護士) ‘부천서 事件 是非의 詩말’(황호택 記者), ‘世界的 베스트셀러 ‘顧問은 이제 그만’ 緊急 入手-아르헨티나 軍事政權의 拷問 實態’ 等 企劃記事 4件이 실렸다. 

    ‘남시욱 出版局長’은 拷問 特輯을 連거푸 내보내다가 1987年 1月 1日子로 編輯局長 發令을 받는다. 그로부터 보름 만에 서울 남영동 對共分室에서 박종철 君이 拷問을 받다 死亡한다. “執拗한 追跡 끝에 그 全貌가 밝혀진 大河드라마 같은 事件”(남시욱 理事長)李 始作된 것이다. 

    南 理事長은 言論人으로서 굵직한 足跡을 남기면서 學術 및 著作 活動 또한 旺盛하게 펼쳤다. 著書로 ‘抗辯의 季節’ ‘體驗的 記者론’ ‘인터넷時代의 取材와 報道’ ‘6·25戰爭과 美國’ 等이 있다. ‘韓國進步勢力硏究’ ‘韓國保守勢力硏究’는 60代 後半에 始作해 只今껏 舛錯한 畢生의 力作이다.

    理念·思想으로 探究한 韓國現代史

    ‘韓國進步勢力硏究’ 改正增補版에서 5部 ‘北核과 安保危機 時期’는 完全히 새로 쓴 것이다. 狂牛病 波動, 통합진보당 解散, 朴槿惠 彈劾, 文在寅 執權을 追加했다. ‘韓國進步勢力硏究’는 1945年 光復 直後부터 文在寅 政權까지 進步를 標榜한 政黨과 團體가 主唱한 主張과 理念을 淡淡한 文體로 敍述한다. 

    進步를 標榜한 政黨, 團體, 政權에 對한 評價는 매우 節制돼 있다. 保守 知識人으로서 正體性이 드러난 대목으로는 趙素昻의 社會黨, 曺奉巖의 進步黨 等 ‘反共을 土臺로 한 進步’를 敍述한 部分을 꼽을 수 있다. 韓國 政治에서 保守와 進步가 올곧게 定立하지 못한 까닭을 分斷·戰爭 탓에 社會民主主義, 民主社會主義 勢力이 成長하지 못한 데서 찾았다. 

    南 理事長은 ‘韓國進步勢力硏究’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이 冊은 2009年 初版이 發刊된 以後 只今까지 9年 동안 進步勢力이 걸어온 발자취를 追加 說明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동안 이 冊이 讀者들로부터 많은 關心의 對象이 되고, 때로는 過分한 評價까지 받게 된 理由는 무엇보다도 國民들이 韓國 政治에 莫强한 影響力을 行使하기 始作한 進步左派勢力의 實相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特히 蘇聯圈 崩壞 後 近 20年이 지났음에도 不拘하고 왜 韓國에서는 西歐式 溫乾한 社會民主主義勢力은 萎縮되고, 反對로 이 地球上 類例없는 김일성 世襲王朝에 同調하는 親北-從北勢力이 판을 치고 있는지 國民들이 궁금해했던 탓이라고 著者는 判斷하고 있다.” 

    8月 31日 花亭平和財團(서울 서대문구 忠正路驛에서 남 理事長을 만났다.

    初版이 나온 後 9年 만에 改正增補版을 냈습니다. 

    “지난해 北核 問題로 國家 危機 狀況이 造成됐습니다. 危機 狀況에서 左派 政權이 들어섰고요. 進步 政權 3期가 出帆한 後 不安感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進步 政權 3基를 分析하다 보니 박근혜 彈劾도 다뤄야 했고요. 最近 9年間 進步勢力의 浮沈이랄까 動向, 걸어온 길을 追加했습니다.”

    新聞記者의 깡마른 글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敍述이 ‘드라이’ 합니다. 評價는 自制하고 事實만 쓰려 한 듯 보입니다.

    “글쓰기와 關聯한 平素 持論이 그렇습니다. 新聞記者의 깡마른 글이 좋아요. 筋肉을 붙이지 않고 뼈대만 쓰는 겁니다. 評價를 넣으면 事實이 歪曲될 수 있어요.” 

    趙素昻의 社會黨, 曺奉巖의 進步黨을 다룬 部分이 特히 印象 깊었습니다. 

    “民族解放을 强調하는 이들이 黨權을 잡은 韓國의 進步政黨은 西유럽式 社會民主主義·民主社會主義 政黨이 決코 아닙니다.” 

    民主社會主義와 社會民主主義는 어떻게 다른지요. 


    “社會民主主義는 資本主義가 社會主義로 履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議會民主主義的으로 變化를 追求합니다. 民主社會主義는 마르크스주의 世界觀을 抛棄하고 市場經濟를 受容합니다. 1951年 獨逸 社會민주당, 英國 勞動黨이 主導한 社會主義인터내셔널(SI) 프랑크푸르트 宣言과 1959年 獨逸 社會民主黨이 採擇한 고데스베르크 綱領을 통해 西歐 左派政黨은 社會民主主義에서 民主社會主義로 轉換을 宣言합니다.” 

    保守와 進步는 두 날개입니다. 

    “人類는 어떤 價値를 追求해야 하는지 끝없이 論爭했습니다. 한쪽에는 自由, 다른 쪽에는 平等이 있습니다. 自由만 追求하면 不平等이 深化합니다. 사람의 能力이 제各各이지 않습니까. 優秀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요. 優勝劣敗(優勝劣敗·强한 者는 蕃盛하고 弱한 者는 衰滅함)라는 말이 있잖아요. 動物의 世界가 아닐진대 優勝劣敗의 世上이 돼선 안 되죠. 그렇다고 平等에만 傍點을 찍으면 自由가 拘束됩니다. 史上·理念 論爭이 自由와 平等의 調整을 두고 끊임없이 展開될 수밖에 없습니다. 經濟 政策으로 說明하면 成長, 分配를 두고 論爭하는 게 代表的이죠.”

    戰爭이 남긴 敵愾心

    韓國에서 保守主義와 進步主義는 어떻게 始作됐는지요. 

    “1919年 3·1運動을 거치면서 民主共和制, 自由民主主義의 길이 成立합니다. 傳統的 自由民主主義와 民主共和制를 지키자는 흐름이 保守主義입니다. 1917年 러시아 革命이 일어납니다. 人民民主主義, 프롤레타리아 獨裁를 主唱한 이들은 自由民主主義를 부르주아民主主義라면서 排斥합니다. 强調하건대 保守主義는 變化하지 않겠다는 理念이 아닙니다. 自由民主主義와 民主共和政의 價値를 지키면서 發展해나가겠다는 思想입니다. 進步主義는 保守主義보다 過激하게 變化를 追求합니다. 近代國家에서는 自由, 平等은 衝突하기도 하고 서로 補完하기도 합니다. 成長을 中心으로 하느냐, 分配를 中心으로 하느냐에 따라 政權이 保守黨, 進步黨으로 왔다갔다 하는 거죠. 그런 가운데서 發展이 이뤄집니다. 韓國은 戰爭을 벌이면서 서로를 죽였습니다. 正常的 西歐式 民主主義를 아직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은 分斷과 戰爭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趙素昻의 社會黨, 曺奉巖의 進步黨을 敍述한 대목의 行間에서 아쉬움 或은 안타까움이 느껴지더군요. 


    “朝鮮共産黨에서 남로당으로 이어지는 路線에 선 이들은 自由民主主義를 認定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칸 데모크라시(美國式 民主主義)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大韓民國 自體를 否認합니다. 分斷國家가 成立되는 過程에서 激烈한 理念 論爭이 불거졌습니다. 不幸하게도 建國 以後 2年 만에 6·25戰爭이 일어나고요. 서로를 죽였으니 敵愾心이 어땠겠습니까. 溫乾한 社會民主主義, 民主社會主義라고 해도 普通 사람이 볼 때는 그놈이 그놈, 草綠은 同色이 돼버린 겁니다. 曺奉巖이 死刑宣告를 받은 進步黨 事件은 一種의 政治 裁判이었습니다. 死刑을 宣告하기에는 너무도 貧弱한 證據를 갖고 有罪 判決을 낸 後 執行해버렸습니다.” 

    趙素昻의 社會黨은 鮮明한 社會民主主義 路線을 내걸었다. ‘韓國進步勢力硏究’는 曺奉巖의 進步黨과 21世紀 민주노동당의 綱領을 比較한다. 進步黨은 蘇聯과 北韓을 批判하면서 6·25戰爭의 責任을 北韓과 蘇聯에 돌리는 反面 민주노동당은 分斷과 戰爭의 責任을 ‘米(美)帝國主義’에 돌린다.

    “軍事獨裁 反作用으로 過激한 學生運動 團體 登場”

    1950年代 後半 서상일의 민혁당, 정화암의 민사당으로 이어진 社會民主主義 흐름은 고정훈의 民主社會黨, 김철의 社會黨으로 이어졌다. 1980年代 접어들어 民族解放 系列 主思派가 貰를 얻는다. ‘左派 民族主義’ 흐름은 韓國을 美國의 植民地로 여기면서 北韓이 主張하는 聯邦制 統一에 傾倒된다. 

    曺奉巖은 ‘反共을 土臺로 한 左派’라고 하겠습니다. 

    “民主社會主義나 社會民主主義 勢力이 正常的으로 發展하지 못한 것은 戰爭과 分斷 탓입니다.” 

    南 理事長은 ‘韓國進步勢力硏究’에 이렇게 썼다. 

    “전대협과 한총련은 表面上으로는 各 大學 總學生會 代表로 構成된 組織이지만 單純한 學生組織이 아닌, 急進的 左派前衛組織이다. 讀者들은 이들 組織 出身 人士들이 나중에 政治人으로 成長해서 進步政黨에서 活動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讀者들은 또한 解放 後에 活動한 남로당 系列, 甚至於는 빨치산 出身 人物들이 얼마 前까지 左派陣營에서 相當한 役割을 한 것도 發見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政權을 中道左派로 規定하면서 문재인 政權의 이념적 자리매김은 留保했다. 김대중 政權은 韓國的 第3의 길을 追求했으며, 노무현 政權은 柔軟한 進步를 自任했다는 게 그의 評價다. 1980年代 ‘急進的 左派前衛組織’ 構成員들이 문재인 政權의 中樞가 된 것에는 憂慮를 나타낸다. 

    “李承晩 政權 때는 大韓民國 體制를 威脅할 程度의 反體制 事件은 없었습니다. 1960年代 末, 1970年代를 거치면서 反體制 事件이 생겨납니다. 인민혁명당, 統一革命黨, 南朝鮮民族解放戰線이 代表的이죠. 越南式 共産化를 하겠다는 一團의 젊은이들이 祕密 結社를 組織하는데, 남베트남에서 結成된 베트콩(베트남民族解放戰線)과 比肩할 수 있습니다. 1970年代까지만 해도 極少數 革命 分子가 그런 생각을 共有했습니다. 1980年代 전두환 新軍部 獨裁政權이 氣勝을 부립니다. 軍事獨裁에 對한 反作用으로 過激한 學生運動 團體가 登場합니다. ‘언더 組織’이 表面的으로는 穩健한 看板을 내걸고 地下에서 革命을 圖謀합니다. ‘韓國은 왜 이 模樣일까’ 討論하면서 共産主義 理論에서 비롯한 ‘植民地班資本主義論’ ‘新植民地國家獨占資本主義論’ ‘中進國資本主義論’을 두고 社會構成體 論爭을 벌입니다. 그 結果 韓國을 神(新)植民地로 規定하는 同時에 反(反)外勢 民衆革命을 志向하는 地下組織이 힘을 얻습니다. 이들이 ‘언더’에서 學生運動圈을 背後操縱하고요. 전두환을 帝國主義의 傀儡로 規定하고 韓國 經濟는 美國에 收奪당한다는 것이었죠.”

    “大韓民國 否認하는 戰鬪的 勢力”

    박현채가 쓴 ‘民族經濟論’이 代表的입니다. 

    “박현채는 빨치산 出身으로 完全히 共産主義者입니다. 社會構成體 論爭에서는 안병직 서울大 敎授가 有名했습니다. 안병직은 나중에 右派로 路線을 轉換합니다. 南美에서 從屬理論이 힘을 얻습니다. 韓國이 가진 問題가 무엇인지 論爭하는 過程에서 韓國 經濟가 美國 經濟에 永遠히 從屬되도록 構造化되고 있다는 論理가 나옵니다. 韓國이 美國의 植民地라는 論理가 그렇게 形成됩니다. 안병직에게 直接 들은 얘기인데 韓國 經濟가 亡하는 건 時間問題라고 여길 때 朴正熙가 死亡했답니다. 全斗煥 政權 時期 經濟가 好況이어서 異常하다고 생각하던 때 日本에 交換敎授로 갔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學者들과 討論했답니다. ‘韓國은 從屬國家, 植民地國家’라고 했더니 다른 나라 學者들이 美國 디트로이트의 自動車 工業이 거덜 나고 있는데 韓國이 무슨 從屬國家냐면서 ‘新興工業國’ ‘新興産業國’이라고 하기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맞다는 結論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急進的 左派前衛組織은 三均主義自認 趙素昻과 進步黨을 創黨한 조봉암에서 비롯한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1980年代 접어들어 學生 運動圈이 바깥世上을 봅니다. 민혁당을 創黨하는 김영환은 潛水艇을 타고 北韓에 가 김일성을 만납니다. 主體思想에 反해 平壤에 갔는데 金日成이 主體思想을 몰라 失望했다고 나중에 밝히더군요. 新軍部 獨裁 아래 靑年들이 疾風과 怒濤의 時期를 겪습니다. 그 過程에서 進步가 西歐처럼 成長보다 分配를 重要視하고 民主主義, 人間의 尊嚴性, 人權에 價値를 두는 게 아니라 大韓民國을 否認하는 戰鬪的 勢力이 됐습니다.” 

    韓國 社會의 問題點을 解決할 代案을 北韓에서 찾은 ‘急進的 左派前衛組織’도 1987年 民主化에 寄與했습니다.
     
    “맞아요. 같이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문익환, 金壽煥을 비롯한 나이 많은 이들이 役割을 잘 했습니다. 民主憲法爭取國民運動本部가 中心을 잘 잡았고요.”

    ‘解放前後事의 認識’ 프레임

    文在寅 大統領은 리영희가 쓴 ‘轉換時代의 論理’를 삶에 影響을 끼친 冊으로 꼽습니다. 執權 側 86世代가 아직도 ‘解放前後事의 認識’ 프레임으로 世上을 본다는 指摘도 있습니다. 

    “젊어서 進步主義에 빠지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마흔이 넘어 그대로이면 바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가 ‘韓國進步勢力硏究’를 펼쳤다. 563쪽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씌어 있다. 

    “1960年代 以後 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 한완상 백낙청 等 많은 進步的 知識人들이 左派運動에 影響을 줬다. 송건호 等이 쓴 ‘解放前後事의 認識’ 리영희의 ‘轉換時代의 論理’ 조정래의 ‘太白山脈’은 가장 많이 읽혔다. 노무현 政府에서 國務總理를 지낸 李海瓚은 自身의 學生 時節과 그가 愛讀한 著書에 對해 다음과 같이 썼다. 

    ‘캄캄했던 그 時節 社會科學 冊이 貴하기도 했지만 維新政權의 言論·學術 統制 德分에 事實 읽을 만한 冊은 더욱 貴했다. 그래도 젊은 學徒들에게 分斷時代의 歷史意識과 社會科學的 視角에 影響을 주고 마침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冊들은 있었으니, 송건호 先生님과 리영희 先生님을 비롯해 박현채 先生님의 冊 亦是 그런 種類에 屬한다. 

    個人的으로 나는 송건호 先生님의 ‘韓國民族主義硏究’에서 民族을 배웠고, 리영희 先生님의 ‘偶像과 理性’에서 外交·政治를 배웠으며, 박현채 先生님의 ‘民族經濟論’에서 經濟를 배웠다. 나는 只今도 나의 젊은 時節에 影響을 준 冊을 꼽으라면 이 세 분의 冊을 말하는 데 躊躇하지 않는다’.” 

    周知하듯 文在寅 政權 核心에 86世代 運動圈이 布陣했습니다. 成熟도 하고, 때도 묻고, 事故도 變化했겠으나 情緖로서의 反美나 親北을 憂慮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韓國保守勢力硏究’에 두 가지 民族主義에 對해 敍述한 게 있습니다. 큰 나라들의 民族主義로 ‘帝國主義的 民族主義’가 있습니다. 西洋 帝國主義 勢力의 侵略 被害를 입은 이들의 民族主義는 ‘防禦的 民族主義’ ‘抵抗的 民族主義’입니다. 美國이 帝國主義 勢力이라는 論理가 먹혀들어가는 背景에는 이런 淵源이 있습니다. 國會議員 전희경과 大統領祕書室長 任鍾晳이 主思派 論爭을 벌이던데요. 公職을 맡았다면 생각이 過去와 어떻게 다르다고 公式的으로 밝히는 게 조금은 必要하다고 생각합니다.”

    “웰빙 政黨에서 自己 利益 챙기는 假짜 保守”

    ‘韓國進步勢力硏究’ 5部 ‘北核과 安保危機 時期’의 마지막 小題目은 ‘假짜 進步勢力이 安保·統一問題 左之右之하면 國家的 災殃’이다. 680~681쪽에 이렇게 씌어 있다. 

    “西區民主國家들의 進步左派勢力은 正統 社會主義에서 社會民主主義로, 그리고 民主社會主義로 進化했다. 近來에는 보비오의 自由主義的 社會主義(Liberal Socialism)와 기든스의 ‘第3의 길’도 登場했다. 그러나 韓國의 舊態依然하고 敎條的인 左派勢力은 先進國의 進步左派勢力과는 너무도 距離가 멀다. 文在寅 政府가 成功한 政權이 되려면 하루速히 政府와 與黨에 둥지를 틀고 있는 假짜 進步勢力, 僞裝 進步勢力의 그릇된 理念과 思想과 訣別해야 한다. 文在寅 自身의 말처럼 나라가 잘되려면 眞正한 保守勢力과 眞正한 進步勢力이 協力하고 競爭해야 한다.” 

    文在寅 政府는 스스로를 ‘3期 民主政府’라고 일컫습니다. 

    “獨善的이고 傲慢한 態度입니다. 1987年 民主化 以後 登場한 保守政府는 非民主的 政權이라고 暗示하는 잘못된 態度예요. 스스로를 民主政府라고 부를 때 그 民主政府는 常識的 意味에서 獨裁를 하지 않은 政府, 專門的 意味에서는 自由民主主義를 守護하는 政府가 民主政府입니다. 憲法과 그 核心 價値인 自由民主主義 政治 秩序와 市場經濟 秩序를 守護할 때 文在寅 政府는 비로소 民主政府가 될 資格이 있습니다.” 

    文在寅 大統領은 保守勢力을 ‘眞正한 保守勢力’과 ‘僞裝된 保守勢力’으로 區分합니다. 

    “오직 權力에 迎合할 뿐 아무런 理念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保守인 양하는 勢力이 僞裝된 保守라는 게 文在寅의 생각입니다. 國家權力을 私益 追求 手段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假짜 保守로 이들이 經濟도 망치고 안報道 망쳤다는 論理입니다. 假짜 保守勢力이 있어요. 웰빙 政黨에서 自己 利益 챙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假짜·僞裝 保守勢力과 假짜·僞裝 進步勢力이 政治판을 左之右之하면 國家에 災殃이 된다는 點을 銘心해야 합니다.” 

    ‘眞正한 進步勢力’과 ‘僞裝된 進步勢力’은 어떻게 나뉩니까. 

    “내가 말하는 假짜 進步勢力이란 뭐냐? 民主主義, 人權, 人間의 尊嚴性 等 進步의 價値를 實際로 具現하려고 하지 않는 勢力입니다. 北韓 人權 問題를 提起하면 事事件件 어깃장을 놓습니다. 正確히 알 수는 없으나 北韓의 政治犯 收容所에 數十萬 名이 收容됐다는 것 아닙니까. 北韓 人權에 입 닫는 이들은 眞正한 進步勢力이 아니에요. 眞正한 進步가 아니라 탈을 쓴 僞裝 進步입니다.” 

    補修政治家 潰滅 直前까지 갔습니다. 

    “박근혜를 批判도 하고, 評價도 한 사람으로서 任期 1年을 남겨놓고 내쫓을 만큼의 罪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民主主義 自體를 破壞했다거나 拷問을 했다거나 엄청나게 腐敗해 돈을 막 챙긴 것은 아니죠. 魔鬼 같은 女子에게 바보처럼 當한 것인데 그것은 朴槿惠의 責任이죠. 바른말 못 하는 사람들로 祕書陣을 꾸린 것도 잘못이고요. 朴槿惠의 沒落과 더불어 自由韓國黨의 前身인 새누리黨이 崩壞한 것입니다. 새누리黨이 둘로 쪼개지지 않았으면 國會에서 彈劾案이 可決되지 않았죠.” 

    補修政治家 回復할 수 있을까요. 

    “大統領이 될 可能性이 있는 指導者가 나타나면 됩니다.”

    “낮은 段階 聯邦制 目的은 美軍 撤收시키는 것”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눈에 띄는 人物이 없습니다. 

    “任鍾晳 같은 50臺가 與圈 候補로 擧論될 텐데 保守陣營에서도 그보다 젊으면 젊었지 늙은 사람이 나오면 되겠느냐는 얘기가 있더군요. 프랑스 大統領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사람을 例로 들 수 있겠습니다. 마크롱이 經濟産業長官을 지냈습니다. 經濟에 一家見이 있는 사람이죠. 나는 一面識도 없는데 金東兗 經濟副總理가 保守 候補로 괜찮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野黨이 제대로 해야죠. 只今 잘하지 못합니다. 銳利하고 당찬 理論家가 나와야 해요. 理論으로 武裝해야 합니다.” 

    韓國에서도 穩全한 意味의 座·右派 政黨이 競爭하는 때가 올까요. 

    “文在寅 政權이 잘해야 해요. 憂慮하는 바가 있으나 그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너무 純眞하거나 國際 情勢에 어둡거나 假짜 進步勢力한테 휘둘리면 問題가 생깁니다.” 

    ‘韓國進步勢力硏究’에서 김대중-김정일 頂上會談 結果物인 6·15 南北 共同宣言 中 ‘南과 北은 나라의 統一을 위한 南側의 聯合提案과 北側의 낮은 段階의 聯邦制案이 서로 共通性이 있다고 認定하고 앞으로 이 方向에서 統一을 志向해 나가기로 했다’는 部分을 批判했더군요. 

    “그 대목은 完全히 엉터리예요. 韓國은 聯合制, 北韓은 聯邦制를 主張해왔습니다. 낮은 段階 聯邦制가 무슨 뜻이냐? 聯邦制에서는 外交·國防權을 聯邦政府가 갖습니다. 낮은 段階 聯邦制는 外交·國防權度 얼마間 그대로 두자는 것입니다. 낮은 段階에서 높은 段階로 간다는 뜻을 包含하고 있고요. 聯合制는 1民族 2國家입니다. 眞實한 意味에서 聯邦制를 한다면 韓國이 꿀릴 게 없습니다. 人口가 北韓의 2倍이니까요. 그런데 北韓 사람들은 工作을 해 社會를 분열시킵니다. 낮은 段階 聯邦制의 目的은 美軍을 撤收시키는 거예요. 美軍 撤收 時 南北 間 戰爭이 일어나면 內戰입니다. 終戰宣言·平和協定도 美軍 撤收와 連結됩니다. 中國 또한 美軍 撤收를 願합니다. 大韓民國이 當面한 安保와 政治 狀況이 危重합니다. 政權을 쥔 進步勢力은 責任의 莫重함을 잊어서는 안 돼요.”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