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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灣은 只今도 中 海洋進出 막는 美 불鍼航母|新東亞

臺灣은 只今도 中 海洋進出 막는 美 불鍼航母

新東亞-未來年 年中企劃 中·국·痛 | 문흥호 漢陽大 中國問題硏究所長 |

  • 入力 2018-10-03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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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最高 境地 오른 兩岸 交流… 强者가 弱者 包容한 結果

    • 南北도 兩岸처럼 經濟的으로 win-win할 迂廻路 찾아야

    • “中 6個로 쪼개진다” 臺灣이 꾼 白日夢

    • 獨立도, 統一도 바라지 않는 美 “카드로 남아 있으라”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문흥호(60) 漢陽大 國際大學院 敎授는 量案(中國-臺灣) 關係에 穿鑿해온 中國 政治 硏究者다. 한양대 政外科를 卒業하고 臺灣 푸싱江(復興崗) 政治硏究所에서 碩士學位, 한양대 大學院에서 博士學位를 받았다. 統一硏究院 中國 擔當 責任硏究員, 美國 오리건대 政治學科 招聘敎授, 現代中國學會 會長, 한양대 國際學大學院長을 歷任했으며 한양대 中國問題硏究訴狀을 맡고 있다.

    ‘自由中國’에서 ‘타이완’으로

    最近에는 ‘東아시아의 共營(共榮) 네트워크 構築과 韓半島 平和體制 確立’을 對主題로 한 中長期 硏究 課題를 進行하면서 中國과 南北韓, 中國과 臺灣 關係를 深度 있게 硏究한다. 主要 著書로는 ‘13億人의 未來-中國은 果然 하나인가?’(1996) ‘中國의 對外戰略과 韓半島’(2006) ‘北韓, 어디로 가는가?’(2010) ‘中華傳統과 현대中國’(2012) ‘韓國-臺灣 關係史 1949~2012’(2015) 等이 있다. 

    中國과 臺灣은 하나인 듯 둘이며 둘인 듯 하나다. 兩岸 關係는 美·中, 中·日 關係뿐 아니라 中國의 臺(對)韓半島 政策에도 影響을 미친다. 美國의 對(對)臺灣 政策 또한 東아시아를 요동치게 하는 變數다. 7月 27日 한양대(서울 城東區)에서 그와 大膽했다. 

    兩岸 關係 硏究에서 尊敬받는 學者로서 最近엔 韓國 新南方·新北方 政策과 中國 一帶一路(一帶一路)를 連繫하는 政策 硏究에 關心을 쏟고 있습니다. 

    “1980年代 初 臺灣에서 工夫했습니다. 只今처럼 ‘타이완’이 아니라 ‘中華民國’이라고 일컬을 때입니다. 過去 兩岸 關係는 中國 大陸 共産黨과 臺灣으로 물러난 國民黨 關係를 가리켰습니다. 우리에게 共産黨은 敵, 國民黨은 親舊였죠. 國民黨이 大韓民國臨時政府를 도와주기도 했고요.” 

    ‘自由中國’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죠. 認識이 只今과 많이 달랐습니다. 韓國人이 中國을 訪問할 수 없을 때예요. 어릴 적부터 ‘中國’을 工夫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中國 留學은 不可能했습니다. 美國, 홍콩, 臺灣에서 中國을 硏究하는 게 代案이었죠.” 

    첫 學術論文도 兩岸 關係를 다뤘더군요. 



    “장제스(蔣介石) 總統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1988年 1月 死亡합니다. 終身職이니 죽어야 執權이 끝나는 것입니다. 장징궈 事後 中國-臺灣 關係가 어떻게 될지 論文으로 썼습니다.” 

    그가 中國-臺灣 關係에 關心을 둔 것은 兩岸 關係에 빗대 南北 關係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장징궈가 죽기 直前 統制를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1987年부터 中國과 臺灣이 頻繁하게 接觸해요. 그해 11月부터 親戚 訪問(探親)을 始作합니다. 예전에는 共産黨과 談判·協商하는 게 不法이었어요.” 

    國民黨은 1949年 以來 不接觸·不談判·不干涉 3不 政策을 固守하면서 共産黨과 對話에 應하지 않다가 1987年 11月 3寸 以內의 親族 訪問을 許容했다. 經濟 實利와 外交 孤立을 避하고자 交流 擴大에 나선 것이다.

    “남북도 迂廻路 찾아 交流 늘려야”

    “只今이야 離散家族 相逢 行事를 이따금 하지만 南北은 오랫동안 헤어진 家族 生死도 確認하지 못했습니다. 中國-臺灣 간 親戚 房門을 지켜보면서 南北 指導者들이 이런 것도 解決하지 못하냐는 생각이 들었죠. 장징궈가 民間 交流를 擴大하는 모습을 보면서 南北 關係와 兩岸 關係가 어떤 差異가 있는지 硏究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只今도 離散家族 相逢 때마다 몇 名이 만날지, 며칠間 만날지를 두고 지루한 政治的 論議가 이어집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는 1991~1995年 統一硏究院에서 일했다. 

    “1991年은 南北 關係가 매우 좋을 때입니다. 12月 13日 南北基本合意書가 採擇됩니다. 高位級會談을 始作한 後 15個月 만에 南北이 和解 및 不可侵, 交流協力과 關聯한 基本 文書에 合意한 겁니다. 基本合意書 採擇 18日 뒤인 12月 31日 韓半島 非核化 共同宣言이 發表되고요. 統一硏究院에서 臺灣의 前例를 우리가 어떻게 벤치마킹할지 硏究했습니다. 兩岸이 人的 交流에서 南北보다 크게 앞서 있었거든요.” 

    現在도 量案 間 經濟 交流는 一角에서 臺灣 經濟의 中國 從屬을 憂慮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活潑합니다. 

    “南北과 兩岸 交流 協力을 比較하면 하늘과 땅 差異입니다. 南北은 離散家族 相逢도 政治的 問題가 생기면 ‘올 스톱’ 됩니다. 中國-臺灣 交流는 政治와 經濟가 따로 놀아요. 政治·理念으로 對立하는 狀況에서 南北이 經濟·社會的으로 윈윈(win-win)할 迂廻路를 어떻게 만들지가 제 關心事입니다. 思想이 달라 結婚할 수는 없으나 둘 다 利益을 보는 方法을 살피는 것입니다. 經濟와 政治가 따로 노는 中國과 臺灣은 이런 部分에서 最高 境地를 이뤘다고 봐요.” 

    南北 關係와 兩岸 關係는 닮은 듯하나 構造나 背景이 크게 다릅니다. 

    “매우 다르죠. 中國人은 兩岸 關係와 南北 關係를 比較하면 못마땅해합니다. 量案은 한 나라거든요. 中華人民共和國이 1971年 10月 第26次 유엔 總會에서 採擇한 決議 2758에 따라 中國을 代表하는 唯一한 合法 政府로 인정받습니다. 臺灣은 中國의 不可分한 一部分으로 確定되고요. 또한 中華人民共和國은 中華民國을 代替해 유엔 安全保障理事會 常任理事國이 됐습니다.”

    ‘同時에 그리고 各各’ 유엔 加入한 南과 北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韓國과 北韓은 1991年 9月 第46次 유엔 總會에서 ‘同時에 그리고 各各’ 유엔에 加入했다. 

    “中國에 臺灣은 ‘하나의 中國’에 屬한 地方政府입니다. 대만성(省)일 뿐이죠. 國家 對 國家가 아니라 中央政府-地方政府 關係라고 中國人은 認識합니다.” 

    1895年 淸日戰爭 以後 日本이 臺灣을 割讓받았다. 日本은 대만성을 廢止하고 總督府를 設置했다. 臺灣이 靑(淸·1616~1912)에 復屬된 것은 1685年이다. 푸젠성 臺灣部로 存在하다 1885年 臺灣省으로 昇格했다. 

    “中國과 臺灣이 나뉜 건 內戰 탓입니다. 共産黨, 國民黨이 數十 年間 戰爭을 치렀습니다. 內戰 渦中에 日帝에 맞서고자 合作도 했고요. 共産黨이 內戰에서 勝利했는데 臺灣을 解放하지 못한 겁니다. 臺灣과 中國 사이에 臺灣이 管轄하는 진먼다오(金門島)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10㎞밖에 떨어지지 않았어요. 푸젠성에서 눈으로 빤히 보이는데도 海軍力이 不足해 臺灣 本土는커녕 진먼도도 占領하지 못했습니다. 

    國際法上 南北은 主權國家 關係인 反面 中國과 臺灣은 한 國家지만 共産黨 統治權이 臺灣에 미치지 못합니다. 臺灣은 그들 나름대로 總統도 뽑고 總理도 있고 長官도 있습니다. 經濟力도 相當하고요. 1人當 國內總生産(GDP)李 2萬6000달러(2018年 IMF 基準)에 達해요. 要컨대 兩岸 關係는 한 國家도 아니면서 다른 國家도 아닌 어정쩡한 狀態입니다. 國際法이 規定하는 規範과 現實에 乖離가 있습니다.” 

    南北 및 兩岸 關係에서 가장 큰 外部 要因은 美國입니다. 

    “南北 및 兩岸 關係에서 美國은 무엇인가? 또 다른 제 硏究 主題입니다. 兩岸 關係가 設定되는 데 中國과 臺灣보다 큰 役割을 한 나라가 美國이에요. 當事者보다 美國이 左之右之한 게 더 많습니다. 南北 關係에서도 美國의 影響力이 韓國보다 작다고 할 수 있을까요.” 

    兩岸 및 南北 關係에서 美國 要因이 過去보다는 弱해졌죠. 

    “그렇기는 합니다. 中國 要因이 커지다 보니 過去보다 弱해졌죠. 過去에는 100個의 臺灣 問題가 있다면 90個를 美國이 左之右之했습니다. 只今은 70個 程度 될까요. 只今도 兩岸 問題에 介入하지만 過去처럼 함부로는 못 합니다.”

    各自票술(各自表術) ‘하나의 中國’

    兩岸 關係는 美·中 霸權 競爭과 맞물려 있습니다. 

    “中國 指導者가 누구든 臺灣 問題에서 美國에 밀리면 宏壯한 打擊을 입습니다. 主權, 領土 問題인 同時에 革命 完遂라는 側面에서 對內的으로 臺灣 問題는 宏壯히 커요. 東아시아 國際政治에서도 臺灣은 매우 重要합니다. 中國의 負傷과 美國의 中國 牽制가 부딪치는 最前線이에요.” 

    南北은 政治的 接觸은 頻繁했으나 民間 및 經濟 交流는 不足한 反面 量案은 政治 交流는 거의 없으나 民間 및 經濟 交流는 더할 나위 없이 活潑합니다. 

    “臺灣은 政治的으로는 中國과 對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特히 國民黨이 그렇죠. 大陸에서 속았으면 됐지 또 속을 수는 없다는 투예요. 共産黨이 말하는 統一戰線에 속아 臺灣으로 쫓겨왔다는 認識입니다. 國共內戰 當時 國民黨 狀況을 보면 客觀的 認識은 아니지만 政治的으로 共産黨과 만나지 않겠다는 原則이 剛합니다. 經濟的으로는 엮이는 게 유리하니 臺灣은 海峽交流基金會, 中國은 海峽兩岸關係協會를 組織해 兩岸이 疏通합니다. 民間團體지만 實質的으로는 中國 國家主席과 臺灣 總統이 最側近이나 信賴하는 이를 任命해 代理합니다. 政治的으로 만나지 않으면서도 만나는 것과 같은 迂廻路를 만든 거죠.” 

    中國과 臺灣이 맺은 ‘92年 合意(九二共識)’가 兩岸 關係에서 뼈대 노릇을 합니다. 

    “92年 合意, 그러니까 ‘92共識’에서 公式은 컨센서스(consensus·共感帶)라는 뜻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中國이 하나라는 것은 너도 認定하고, 나도 認定하는 거 아니야.’ 이런 脈絡에서 ‘中國은 오로지 하나’라는 原則에 合意한 겁니다.” 

    中國과 臺灣이 認識하는 ‘하나의 中國’은 어떻게 다릅니까. 

    “地球上에서 ‘中國은 하나’라는 것은 같습니다. 中國과 臺灣은 ‘하나의 中國’ 原則에 合意하면서 解釋은 各自票술(各自表術)하기로 했습니다. 臺灣이 얘기하는 하나의 中國은 中華民國, 中國이 얘기하는 하나의 中國은 中華人民共和國입니다. 92公式을 통해 中國은 臺灣이 獨立國家가 아니라는 點을 確認한 反面 臺灣은 ‘中華民國’ 名稱을 使用하는 준(準)독립 狀態를 維持합니다. 臺灣式으로 말하면 ‘中國은 하나야, 그런데 내가 말하는 中國은 中華民國, 네가 얘기하는 中國은 中華人民共和國이야’가 된 건데요. 韓半島에서 이 같은 方式으로 合意가 可能할까요. 제가 弄談으로 中國人 아니면 할 수 없는 合意라고 말하는 까닭입니다.”

    “中國의 包容이 交流·協力 土臺 노릇”

    언뜻 보기에 中國이 讓步한 模樣새입니다. 

    “中國이 훨씬 크니 讓步한 거죠. 臺灣도 一部 물러섰습니다. 國民黨은 中華人民共和國을 認定하지 않았어요. ‘共匪(共匪)’라고 일컬었습니다. 1992年 中國 國力은 只今보다 弱하지만 兩岸 關係가 交流·協力으로 나아가게 된 키워드는 中國의 包容입니다. 中國이 讓步하지 않았다면 現在와 같은 交流·協力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互惠 및 對等의 交流 原則에서 中國이 恒常 讓步했거든요. 답답한 게 南北은 讓步를 아예 안 하려고 합니다. 對等, 互惠가 第一 重要해요. 南쪽에서 離散家族 100名이 가면 北쪽에서도 100名만 와야 합니다. 數十萬 名이 順序를 기다리는데 다른 事案으로 다투면서 離散家族 問題를 連繫합니다. 餘裕 있는 쪽에서 讓步하지 않으면 難局이 突破되지 않아요. 요즘엔 北韓이 核武裝을 했기에 다르게 볼 수 있으나 過去에 北韓은 絶對的 弱者였습니다. 中國은 왜 讓步했을까요. 南北 關係에서도 弱者 處地를 配慮하는 게 必要해요. 네가 降伏하기 前까지 너하고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윽박질러서 뭘 얻습니까? 中國이 臺灣을 經濟的으로 옥죄겠다고 마음먹으면 只今 當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臺灣이 經濟의 40%를 中國에 依存하거든요. 中國이 臺灣 企業에 宏壯한 特惠를 줍니다. 臺灣 觀光業도 中國 德分에 먹고살아요.” 

    臺灣 現 執權黨인 民進黨은 國民黨과 달리 獨立에 傍點을 찍습니다. 

    “그렇습니다. 차이잉원(蔡英文) 臺灣 總統이 ‘92公式’을 한 次例도 肯定的으로 言及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兩岸 關係 및 統一에 對해 中國은 共産黨 一黨 支配이기에 見解가 單一하지만 臺灣은 多黨制 國家로서 中國 大陸을 바라보는 視角 自體가 分裂돼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툰 關係가 回復될 때 第一 重要한 것은 構成員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統一할 必要가 없다는 것과 언젠가 統一하자는 것은 다르지요. 

    臺灣은 獨特한 歷史를 가졌습니다. 1895年 日本 植民地가 된 後 1945年 中華民國으로 歸屬됩니다. 韓半島에서 獨立은 民族이 解放되는 宏壯히 기쁜 일이었는데 臺灣은 조금 달랐어요. 親日 淸算이라는 게 臺灣에서는 只今도 論難이 되지 않아요. 日本에 좋은 感情을 가졌거든요.

    ‘獨立’에 傍點 찍은 民進黨

    8월 19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NASA 소속 우주비행사 마이클 핀과 함께 존슨우주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현직 대만 총통이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기관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차이잉원의 NASA 방문에 반발했다.

    8月 19日 美國 텍사스州 휴스턴 美國 航空宇宙局(NASA)을 訪問한 차이잉원 臺灣 總統(오른쪽)李 NASA 所屬 宇宙飛行士 마이클 핀과 함께 존슨우주센터 內部를 둘러보고 있다. 現職 臺灣 總統이 美國 聯邦政府가 運營하는 機關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中國은 차이잉원의 NASA 訪問에 反撥했다.

    日本이 敗亡한 時點은 內戰이 激해지면서 國民黨이 共産黨에 밀릴 때입니다. 國民黨 政府는 臺灣을 後方 兵站基地로 活用했습니다. 日本 植民地 때도 없던 餓死者가 1946~1947年 나타납니다. 內戰에서 敗北한 敗殘兵들이 臺灣으로 들어왔는데 어땠겠습니까. 規律도 없고 엉망이었습니다. 臺灣 사람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았고요. 17世紀부터 臺灣으로 移住한 漢族이지만 臺灣 사람인 原住民은 ‘祖國에서 왔다더니 日本보다 더하네’라고 생각했죠. 

    國民黨이 臺灣을 掌握하고자 無理數를 둔 게 1947年 2·28事件입니다. 臺灣에서 일어난 蜂起를 國民黨이 鎭壓하면서 虐殺이 일어납니다. 1949年 5月부터 장징궈 執權期인 1987年 7月까지 戒嚴令이 이어집니다. 40年 가까이 戒嚴이 이어지다 보니 臺灣人들은 戒嚴令을 숨 쉬는 空氣처럼 여기고 살았죠.” 

    臺灣에 元來부터 살던 이들은 中國 本土에서 건너온 사람을 外姓人(外省人)이라고 일컫고 自身들은 本省人(本省人) 或은 耐性인(內省人)이라고 規定했다. 外姓人이 高位職을 獨占하다시피 하면서 葛藤의 골이 깊어졌다. 

    “民進黨이 2008年 臺灣 歷史上 처음으로 政權 交替를 이뤄냅니다. 천수이볜(陳水扁) 總統이 2000~2008年 執權하는데 政治를 잘 못했습니다. 이념적으로 臺灣 獨立만 强調하다 逆風을 맞았으며 經濟 管理에도 잘못이 많았어요. 美國은 臺灣이 獨立하는 것을 決코 바라지 않습니다. 統一도, 獨立도 안 된다는 게 美國이 가진 생각이에요. 워싱턴이 카드로 使用할 狀態로 남아 있으라는 거죠. 천수이볜이 美國에도 골칫덩어리가 되면서 워싱턴과 베이징이 同時에 國民黨 政府를 願하는 狀況이 演出됐습니다. 마잉주가 政權을 되찾아와 國民黨이 2008~2016年 執權합니다. 2016年 차이잉원이 勝利하면서 民進黨이 다시 執權黨이 됐고요. 獨立 支持 勢力이 가진 꿈은 싱가포르처럼 되는 것입니다만 中國과 美國이 그렇게 해줄 理가 없죠.” 

    民進黨度 臺灣 사람들이 中華民族 一員이라고 여깁니까. 


    “否定합니다. 천수이볜 執權期 대만사(史)를 새로 編纂합니다. 차이잉원이 2012年 總統 選擧에 나왔을 때는 當選하기 어려웠습니다. 2016年에는 왜 當選됐느냐? 親美主義者로 스스로를 規定합니다. 臺灣 사람들에게 美國은 할아버지 格입니다. 美國의 다리를 붙잡아야 한다고 여겨요. 차이잉원은 속으로는 徹底한 獨立主義者지만 천수이볜의 前轍을 밟지 않고자 自制하고 있습니다. 中國과 經濟 關係를 망쳐서도 안 되고요. 臺灣 사람들은 차이잉원이 臺灣의 生存 空間을 넓혀 준(準)독립국가로서의 位相을 强化하리라고 期待했는데 中國 壓力으로 首校國이 繼續 줄어듭니다. 中南美와 아프리카 地域에서 修交國을 繼續 잃고 있죠. 最近엔 經濟 또한 그다지 좋지 않아 支持率이 떨어지는 形局입니다.” 

    美國 觀點에서는 中國이 浮上함에 따라 臺灣의 價値가 더 커졌겠습니다. 


    “올해 3月 美國 議會가 臺灣旅行法을 통과시킵니다. 美國과 臺灣의 高位 公職者가 자유롭게 相對 國家를 訪問할 수 있게 된 거죠. 美國은 또 國防授權法을 통해 臺灣과 軍事 交流를 强化하기로 했습니다. 窮地에 몰린 차이잉원을 美國이 도와주는 模樣새예요. 美國재대萬協會(American Institute in Taiwan)가 臺灣 駐在 美國大使館 구실을 하는데 廳舍를 宏壯히 크게 增築했어요. 臺灣의 潛水艦 國産化 作業을 美國이 돕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앞서도 言及했듯 南北 關係에서와 마찬가지로 兩岸 關係에서도 가장 重要한 外的 變數는 美國이죠. 兩岸 關係에서 美國 要因은 東아시아 地域 情勢 全般의 問題와 關聯되기에 매우 複雜합니다. 그런데 中國도 똑같습니다. 臺(對)美國 關係 延長線上에서 臺灣을 다루려 합니다. 特히 시진핑 主席 執權 以後 中華民族主義 情緖가 高調됩니다. 臺灣에 對한 中國의 經濟的 影響力도 나날이 커지고요.

    美國-中國-臺灣 ‘愛憎의 三角關係’

    “美國, 中國, 臺灣은 愛憎의 三角關係예요. 늘 變합니다. 國共內戰 때 美國이 國民黨을 돕습니다. 全幅的으로 支援했는데도 國民黨이 敗北하죠. 國民黨이 臺灣으로 쫓겨난 後 트루먼 政府는 領事 1名만 남기고 外交官을 모두 撤收시킵니다. 美國이 보기에 國民黨이 얼마나 寒心했겠습니까. 장제스를 살린 게 6·25戰爭입니다. 冷戰 時期 美國은 臺灣을 두고 永遠히 沈沒하지 않는 航空母艦이라는 말을 公公然하게 썼어요. 中國과 美國이 修交하고 베이징이 改革·開放에 나서자 臺灣의 戰略的 價値가 평가절하됩니다. 事故나 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투였죠. 그때는 링거만 꽂은 狀態로 長期 療養하라는 것이었는데 只今은 補藥을 먹여야 하는 狀況이 됐습니다. 

    地圖를 펼쳐봅시다. 캄차카에서 홋카이도를 거쳐 日本 列島, 臺灣으로 이어지는 船이 中國의 海洋 進出을 막습니다. 베트남 港口를 美軍이 쓴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필리핀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臺灣은 南中國海로 가는 中間 地點에 있습니다. 東아시아 霸權 競爭에서 宏壯히 重要한 곳이죠. 只今도 美國에 臺灣은 永遠히 沈沒하지 않는 航空母艦이에요. 美國재대萬協會 武官이 예전에는 豫備役이었는데 現役이 된 지 오래입니다. 진먼다오의 레이더 基地가 中國의 一擧手一投足을 들여다봅니다. 美國이 이런 臺灣을 왜 버리겠습니까. 불鍼航母를 維持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臺灣에는 美軍이 駐屯하지 않습니다. 國防授權法은 臺灣에 武器를 파는 手段이기도 합니다. 中國을 牽制하는 데 臺灣만 한 카드가 없어요. 美國이 引渡-太平洋 戰略을 强調하는 狀況에서 臺灣의 戰略的 價値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臺灣 獨立宣言 時 武力 使用 法으로 規定한 中

    臺灣이 獨立을 宣言하면 中國이 軍事的으로 介入합니까. 

    “戰爭하지 않으면 시진핑이 權座에서 내려와야 해요. 臺灣旅行法이 通過되자 中國 空軍이 臺灣을 向해 武力示威를 했습니다. 美國도 만만하게 볼 수 없을 만큼 中國이 커졌어요. 驅逐艦 몇 臺? 航空母艦 몇 臺? 中國이 劣勢인 건 맞죠. 그렇더라도 中國은 臺灣 獨立을 決코 放置하지 않습니다. 臺灣이 獨立을 宣言하면 武力을 使用한다고 法으로도 規定해놓았고요. 美國이 臺灣을 지키고자 派兵할까요. 宏壯히 어려울 겁니다. 勿論 美國이 派兵할 可能性이 0%라고 보지는 않아요. 앵글로색슨만큼 戰爭을 통해 自身의 利益을 지켜온 民族을 찾기도 어렵죠.” 

    共産黨 執權이나 經濟에 深刻한 問題가 일어났을 때 中國이 臺灣을 突破口로 使用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臺灣을 카드로 볼 때 80%는 美國이 쥐고 있다고 봅니다. 中國 內部 問題 탓에 臺灣에 介入한다? 可能性이 높지 않습니다.” 

    中國은 美國과 對等한 位置에 서면 自然스럽게 臺灣을 吸收할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時間은 中國 便이라고 簡單하게 說明하면 서운하니 中國이 不利한 部分을 꼽아봅시다. 中國 內部에서 混亂이 일어나는 것을 變數로 따져볼 수 있습니다. 1988~2000年 執權한 리덩후이(李登輝) 總統은 中國이 6個로 쪼개지기를 바랐습니다. 蘇聯, 東유럽 社會主義가 무너질 때 臺灣은 ‘蘇聯도 무너지는데, 中國 저까짓 거야’ 하면서 꿈에 부풀었죠. 中國이 統合돼 있으나 광둥共和國, 푸젠共和國, 상하이共和國 같은 側面이 있긴 해요. 1990年代 初盤 臺灣 學者가 푸젠, 광둥, 貯藏과 臺灣을 묶어 統一하자고 主張한 적도 있습니다. 希望事項일 뿐이죠. 中國에 混亂이 오더라도 分裂될 것 같지 않아요. 時間은 어쨌든 中國 便입니다. 可能性은 낮으나, 美國이 中國과 一戰을 벌이는 狀況이 演出되면 時間이 臺灣 便일 수도 있습니다.” 

    中國이 엄청난 經濟 危機에 빠지는 시나리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럴 可能性은 稀薄한 것 같아요. 臺灣 經濟가 中國에 依存하는 形局이라 中國 經濟에 危機가 오면 臺灣 經濟도 함께 날아갑니다.” 

    韓國은 1992年 中國과 修交하면서 ‘하나의 中國’ 原則을 受容합니다. 하루아침에 靑天白日旗가 내려가고 五星紅旗가 휘날렸습니다. 韓國과 臺灣 間 交流 現況은 어떤지요. 

    “臺灣이 寒流를 擴散한 據點입니다. ‘꿍따리샤바라’를 부른 클론이 臺灣에서 脚光받은 게 韓流의 始作이에요. 人口 2350萬 名은 中國 어떤 性(省)보다도 적습니다만 臺灣으로부터 連結되는 네트워크를 決코 無視할 수 없습니다. 通商 分野에서 臺灣은 交易額 5, 6位를 오가는, 韓國의 宏壯히 重要한 貿易 파트너입니다. 臺灣과는 國交를 맺을 수 없으니 民間 次元에서 할 수 있는 最大限을 해야 합니다. 海外市場에서 競爭하는 側面도 있는데 相互 補完하는 部分도 많습니다. 윈-윈 할 길을 찾아야죠. 우리는 美國만큼 힘이 없기에 中國의 利害關係를 無視하고 臺灣과 交流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現實입니다만, 中國을 刺戟하지 않으면서도 할 게 많은데 그만큼 못 하고 있어요.”

    뿌리 깊은 臺灣의 ‘反韓 感情’

    臺灣의 反韓(反韓) 感情을 어떻게 봅니까. 

    “國民黨 語法으로 말하면 ‘우리가 없었으면 大韓民國臨時政府가 어떻게 可能했느냐?’ ‘너희가 銃 한 자루가 있었느냐, 우리가 다 해줬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버리고 斷交했느냐’는 겁니다. 反韓 感情의 뿌리가 宏壯히 깊습니다. 韓國에 서운함이 많은 거죠. 反韓 感情에는 一種의 大國 意識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도왔는데 모두가 變해도 너희는 變하지 말아야지’라는, 韓國人은 理解하기 어려운 情緖인데 歷史的으로 中國이 韓半島를 바라볼 때의 大國 意識이 國民黨을 통해서도 이어집니다. 國民黨 사람들한테는 自身들이 中國이거든요. 이 같은 認識이 아래世代로도 移入됐습니다. 韓國이 서운하게 한 것은 事實입니다. 斷交하면서 大學, 硏究所들도 臺灣과 緣을 끊고 中國으로 달려가기 바빴죠. 斷交 以後 臺灣이 北韓에 接近합니다. 北韓과 關係 發展을 圖謀해 韓國에 復讐하려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97年 臺灣에서 나온 核廢棄物을 北韓에 보내 處理하는 合意까지 맺습니다. 서울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사람들이 平壤을 뻔질나게 드나들더군요. 核廢棄物 以前은 霧散됐으나 國家 間 關係가 이렇습니다.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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