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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武鉉 國精院이 大豐그룹 <북한 외자유치기관=""> 對南事業 도와줬다”|신동아 </북한>

“盧武鉉 國精院이 大豐그룹 <북한 외자유치기관=""> 對南事業 도와줬다”

‘大豐그룹 副總裁’가 털어놓은 大豐그룹 興亡史, 그리고 對南事業

  • 송홍근|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carrot@donga.com

    入力 2011-04-20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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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盧武鉉 國精院’과 大豐그룹 커넥션
    • 뉴욕필 平壤 公演 成事機(成事記)
    • 박철수 <대풍그룹 총재=""> , 뉴욕필 平壤 公演 成事로 北韓에서 認定받아
    • 大豐그룹이 포스코, 鑛業資源公使와 論議한 事案은…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文化界에서 잔뼈가 굵은 이 初老(初老)의 紳士가 最近 4年間 都大體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親北主義者로 몰려 겪은 苦痛이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抑鬱함을 풀고자 그間의 일을 털어놓으렵니다.”

    그는 2007年부터 大豐그룹 副總裁 職責을 갖고 活動했다. 大豐그룹이 어떤 곳인가.

    北韓은 지난해 1月20日 大豐그룹을 國家開發銀行의 外資誘致 窓口로 指定했다. 大豐그룹 理事長은 김양건 統一戰線部長, 總裁는 在中同胞 박철수가 맡았다.

    大豐그룹 副總裁가 4年間 일을 함께 한 朝鮮族 박철수는 國家開發銀行 副理事長에도 任命됐다. 김정일의 統治資金을 管理하는 39號 室長을 지낸 전일춘이 國家開發銀行 理事長.



    박철수는 2009年 8月부터 2010年 1月까지 이어진 南北 頂上會談 論議 때 한 軸에 서 있었다. 2009年 10月 임태희-김양건의 싱가포르 會同을 居間한 것. 韓國에선 한나라당 附設 汝矣島硏究所 C 博士, 對北事業家 Y氏가 斡旋했다.

    뉴욕필 平壤 公演 成事機

    배경환(59) 前 大豐그룹 副總裁는 文化界에서 ‘큰일 저지르기’로 所聞난 人士다. 그의 履歷에서 2000年 推進한 平壤音樂會를 除外하면 ‘政治’나 ‘北韓’이라는 單語를 찾긴 어렵다.

    그가 企劃·製作해 2003年 서울올림픽主競技場에서 公演한 ‘아이다’는 韓國 公演 歷史上 最大 規模로 記錄돼 있다. 말 60匹, 코끼리 10마리, 駱駝 6마리, 1000名의 엑스트라가 動員됐다. 2003年 5月29日子 ‘東亞日報’는 2回 公演의 製作費가 60億원이라고 報道했다. 이밖에도 서울演劇祭 民營化 企劃主管, 大鐘賞映畫祭 民營化 企劃, 靑龍映畫賞 企劃製作, 춘사映畫第 企劃製作, 예술의전당 野外舞臺 運營, 듀란듀란 來韓公演 企劃 等의 일을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大豐그룹 副總裁 職責을 가졌을까.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平壤 公演을 推進하면서 박철수와 함께 일했습니다. 大豐그룹은, 本部가 平壤에 있었지만, 홍콩에 法人을 登錄한 會社였어요. 當時에는 副理事長이던 박철수가 北韓에서 가진 位相도 只今처럼 높지 않았고요. 理事長은 中國系 홍콩人 고계인이었습니다.”

    배 前 副總裁는 뉴욕匹 平壤 公演(2008年 2月26日)의 企劃者다. 박철수는 이 公演이 成事되면서 北韓에서 能力을 인정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박철수는 中國同胞로서 北韓 高位職에 오른 最初의 人物.

    “뉴욕필 平壤 公演은 北韓과 美國 사이의 일입니다. 中間에 韓國 사람이 끼면 模樣이 語塞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北韓 當局이 大豐그룹 副總裁 帽子를 씌워준 것입니다. 只今은 外資誘致 機關으로 格上됐지만, 當時엔 그런 곳이 아니었어요. 홍콩法人人 터라 誤解받지 않고 活動했죠. 駐中 韓國大使館에도 事情을 밝혔습니다. 大使館에선 北韓과 美國 사이의 일이니 도와줄 것도, 막을 까닭도 없다,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뉴욕필 平壤 公演을 契機로 大豐그룹에 參與한 그는 最近 4年間 大豐그룹이 遂行한 南北·北美·北中 間 이벤트에 발을 깊숙이 담갔다. 大豐그룹과 韓國企業을 이어주는 役割도 했다.

    그가 證言한 뉴욕匹 平壤 公演 成事機(成事記)와 大豐그룹 浮沈史(浮沈史)는 南北關係·北美關係가 얼마나 비틀려 있고, 卽興的으로 움직이는지를 傍證한다. 뉴욕필 平壤 公演 幕前幕後(幕前幕後) 및 大豐그룹과 國精院 間 주고받기, 大豐그룹과 韓國企業의 協商은 그間 알려지지 않은 祕話(秘話)다.

    배 前 副總裁와의 인터뷰는 2月22日, 3月17日, 4月1日, 4月8日 네 次例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해 2月16日 김정일 生日 파티 때는 박철수가 州탁(메인테이블)에 앉았어요. 우리랑 寫眞도 같이 찍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金正日 生日 때는 박철수가 招待받지 못했더군요.”

    박철수가 사라진 까닭

    김일성·김정일 生日잔치에 해마다 參席하는 在美同胞 P氏는 박철수의 位相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철수는 지난해 3月 朝總聯機關紙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國家開發銀行의 1次的인 登錄資本은 100億달러로 設定하고 앞으로 段階的으로 늘려나갈 計劃이다. 앞으로 다른 나라의 成功經驗, 先進技術, 先進經營, 管理方法을 國家의 實情에 맞게 積極 받아들이기 위한 窓口도 마련해 國際拷問段을 組織하겠다. 外資 誘致를 통해 먹는 問題와 鐵道·道路·港灣·電力·에너지 事業을 同時에 推進한다. 最大 4000億달러 外資誘致를 推進하고 있으며, 이를 爲해 法과 制度를 손질하고 있다.”

    北韓 當局도 國防委員會 委員長 命令 ‘朝鮮大風國際投資그룹의 活動을 保障할 데 對하여’, 國防委員會 決定 ‘國家開發銀行을 設立함에 對하여’를 發表해 박철수와 大豐그룹에 힘을 실어줬다.

    結果는? 나빴다.

    大豐그룹은 注目할 만한 成果를 내놓지 못했다. 大風(大風)을 일으키기는커녕 虛風(虛風)만 내지른 꼴이 됐다. 國家開發銀行은 失敗했고, 박철수의 役割도 줄었다는 게 情報當局의 判斷이다.

    只今부터 배 前 副總裁의 證言을 통해 大豐그룹 속으로 들어가보자.

    ▼ 朝鮮新報 인터뷰에 실린 박철수의 抱負는 虛荒해 보입니다. 北韓 當局이 박철수의 虛風에 속은 것 아닌가요.

    “虛風을 쳤다기보다는 잘해보려고 했는데 南北關係가 梗塞되고, 유엔 制裁가 이어지면서 失敗한 것으로 봐야죠.”

    ▼ 뉴욕필 얘기부터 해보죠. 왜 推進한 겁니까?

    “韓半島의 現實에서 社會·國家에 寄與할 일을 찾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박철수와 함께 推進한 프로젝트는 모두 나름의 意義를 갖고 있어요. 뉴욕필이 平壤에 갔다는 것 自體가 一大 事件 아닌가요. 뉴욕필이 平壤에 간다? 公演企劃者로 욕심나는 일이죠. 박철수에게 뉴욕匹 얘기를 꺼낸 게 2006年 12月입니다. 北韓이 1次 核實驗(2006年 10月)을 한 直後예요. 뉴욕필이 平壤에 들어가면 平和 무드가 造成되지 않겠습니까? 平壤이 뉴욕필을 받을지, 美國이 뉴욕필을 보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뉴욕필 平壤 公演을 推進하면서 韓國大使館에 나와 있는 情報機關 사람에게 알렸거든요. 자칫하면 容共(容共)과 關聯해 誤解받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大義名分을 갖고 한 일인데, 色眼鏡을 낀 사람들이 나를 두고 左派라고 몰아붙이니 抑鬱하죠. 勿論 個人的인 部分도 一部 있었지만….”

    ▼ 個人的인 部分은 비즈니스 側面을 말하는 건가요.

    “企劃하는 사람이 投機를 할 순 없죠.”

    ▼ 박철수와 因緣은 어떻게 맺었나요.

    “北韓이 核實驗하기 서너 달 前에 처음 만났습니다. 박철수가 잘나갈 때가 아니에요. 對北 貿易 일을 했거든요. 뉴욕필 公演을 擧論하면서 北側에 알아봐달라고 要請했어요. 뉴욕필이 뭔지도 잘 모르더군요. 文化的으로 美國을 象徵하는 團體라고 說明해줬어요. 政治 感覺을 갖춘 親舊니까 말귀를 곧바로 알아듣더군요. 平壤 들어가서 그 親舊가 일을 어떻게 處理했는지는 모릅니다. 2007年 秒에 黨4號室 所屬 人士가 베이징으로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뉴욕필을 왜 招請해야 하는지 說明해달라고 하더군요. 글로 적어서 줬어요.”

    ▼ 혹하게끔 썼겠군요.

    “그랬죠. 뉴욕필을 불러서 손해날 게 없다, 뉴욕필은 美國을 代表하는 藝術團體로서 外交的으로 尖兵 役割을 한다, 美國이 뉴욕필을 보낸다면 北美關係에서 象徵的 意味가 크다, 關係 正常化 意志를 國際社會에 傳하는 것이다, 뉴욕필을 보내놓고 뒤로 허튼짓 하지 않는다, 美國을 믿어도 되는지 알아보는 手段도 된다고 說明했죠.”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 惑했겠네요.

    “利益이 돈으로 換算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고도 說明했습니다. 뉴욕필을 통해 關係 改善 意志를 보이면 유럽 國家들과의 關係 正常化와 經濟 協力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죠.”

    ▼ 뉴욕필에 意思 打診은 했습니까?

    “그쪽과는 接觸조차 안 했죠. 平壤 公演을 하겠느냐고 느닷없이 물으면 미친 사람 取扱했을 겁니다.”

    “積極 推進하라”

    北韓 當局은 뉴욕匹 平壤 公演에 好意的 態度를 보였다.

    “積極 推進하라는 指示가 내려왔답니다. 그때부터 甲·乙 關係가 바뀝니다. 命令이 내려오면 完遂해야 하는 시스템이니까….”

    그는 北韓 內閣이 確認書를 發行해야 일을 推進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社會·文化團體 文書가 아닌 正規 政府機關 文書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게 나와야 내가 움직인다, 國際社會는 政府 文書가 아니면 믿지 않는다고 傳했습니다. 中繼放送은 韓國 放送局이 해야 한다는 但書도 달았고요. 桶彌縫남(通美封南)李 아닌 桶美通南(通美通南)을 圖謀하는 行事여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北韓 當局도 確認書를 發行하기에 앞서 배 前 副總裁에게 確認을 要求했다.

    “2007年 3月 김계관 外務省 副相(現 外務省 第1副相)李 뉴욕을 訪問합니다. 김계관이 美國에 머무를 때 뉴욕匹 쪽에서 確認해주게끔 해달라고 北側이 要請했어요.”

    김계관은 3月1~7日 뉴욕을 訪問했다. 2·13 베를린合意 以後 一時的으로 北美間 薰風이 불 때다.

    ▼ 뉴욕필과는 接觸도 안 했다면서요.

    “2月27日인가, 28日에 김계관이 뉴욕에 가려고 베이징에 나왔어요. 박철수가 나보고 김계관을 만나보랍디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내가 왜 만나느냐고 했죠.”

    ▼ 確認은 어떻게 해줬습니까?

    “뭘 어떻게 確認해주느냐, 始作도 안 했는데, 文書가 나와야 始作한다고 事實대로 말했어요.”

    北韓 內閣 文化性은 2007年 6月18日 文化相 강능수(現 內閣 副總理) 署名이 담긴 確認書를 發給했다. 文化性은 國文·英文으로 各各 確認書를 作成했다. 文件에 담긴 內容은 이렇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文化性은 朝鮮藝術交流協會와 홍콩大豐國際投資그룹 사이에서 交涉되고 있는 美國 뉴욕필하모닉樂團의 平壤 訪問 公演을 歡迎하고 이에 同意하면서 이 事業의 履行을 朝鮮藝術交流協會와 홍콩大豐投資그룹에 委任하여 朝鮮藝術交流協會가 美國 뉴욕필하모닉樂團과 그 同行成員들의 平壤 訪問 詩 그들의 安全과 便宜, 公演을 圓滿히 保障하도록 協力할 것을 確認한다.’

    文化性이 이 文書를 發給하기까지의 迂餘曲折(迂餘曲折)은 工作을 聯想케 한다. 때로는 웃음도 나온다.

    “뉴욕에서 김계관에게 確認해줄 게 없다고 얘기해도 搖之不動입디다. 在美僑胞 C氏를 통해 잭 프리처드 韓美經濟硏究所 小腸 쪽과 連結이 됐어요. 對北 特使로 일했던 사람인데, 韓美經濟硏究所 쪽에서 유엔 北韓代表部에 電話하게끔 했습니다.”

    ▼ 그렇게 確認이 된 거군요.

    “C氏 말로는 잘 處理했다는데 電話했는지 確言할 수는 없어요. 北側 얘기는 確認이 안 됐다는 거예요. 電話를 했다는데 못 받았느냐고 물었죠. 代表部 構造가 電話는 證明이 못 된대요. 公式 記錄으로 認定을 안 한답니다. 메일이나 팩스로 文書가 들어와야 正式으로 報告된다는 겁니다. 박길연 유엔 駐在 北韓代表部 大使(現 外務省 副相) 連絡處를 주면서 뉴욕에서 그쪽으로 確認해주라고 거듭 要求하는 겁니다. 確認書가 없으면 일을 始作하지 못하고, 뉴욕에서 確認이 돼야 確認書를 내주겠다니 답답한 노릇이었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妙案을 생각했죠. 善意의 便法이었어요.”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유엔 駐在 北韓代表部 P慘事가 뉴욕匹 行事 擔當者로 決定됐다. 外務省이 뉴욕필 招請 行事를 主管하는 것으로 北韓 當局이 交通整理韓 것이다. 배 前 副總裁는 P慘事에게 존 스트라익이라는 美國人을 뉴욕匹 公演을 맡고 있는 에이전트라고 紹介했다. P慘事는 스트라익과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平壤 公演을 論議했다.

    “존 스트라익은 내가 만든 加工의 人物입니다. 美國에서 主로 쓰는 e메일 어드레스를 만들어 스트라익 名義로 P慘事한테 e메일을 보냈습니다. 實際로 나와 메일을 주고받은 건데…, 如何튼 스트라익 德分에 2月부터 要求한 確認書가 6月에 나왔습니다.”

    “核問題는 擧論하지 말라”

    北韓 當局은 뉴욕匹 房門을 2007年 6月7日 承認했다. P慘事는 유엔駐在 北韓代表部 名醫의 文件을 스트라익에게 보냈다. 이 文件은 “北韓 政府가 뉴욕匹 平壤 訪問을 承認한 事實을 알려주게 돼 榮光이고 기쁘다”라는 文章으로 始作한다..

    P慘事는 스트라익에게 文件을 보낸 날 駐中 北韓大使館에서 大豐그룹을 擔當하는 K慘事에게도 “當局이 뉴욕匹 平壤 訪問을 承認했다”는 事實을 알렸다. K慘事는 이를 배 前 副總裁에게 알렸다. 강능수 文化相 名義의 確認書는 그로부터 11日 뒤 나왔다.

    ▼ 確認書를 들고 뉴욕필에 接觸했겠군요.

    “자린 메타 뉴욕필 社長이 指揮者인 主賓 메타 동생이에요. 韓國의 스태프가 그쪽으로 接觸했어요. 처음엔 스케줄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다시 要請했더니 明確하게 答을 안 주고 時間을 끕디다. 아마도 美國 國務部와 協議에 들어갔겠죠. 뉴욕필은 普通 여름休暇 때 外國 투어에 나서는데, 確認書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時機를 놓친 側面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욕필이 錦湖아시아나文化財團과 契約을 맺고 서울 公演을 해왔거든요. 平壤 公演은 收益을 못 내지 않습니까. 서울 公演이 함께 이뤄져야 企劃者가 돈을 벌 것 아닙니까. 平壤과 서울을 잇는 투어가 成事돼야 公演이 더욱 빛을 보고요. 그러려면 錦湖아시아나文化財團의 諒解를 얻어야 했습니다.”

    그는 中繼權 販賣와 서울 公演 入場料 收益으로 利益을 남기려고 했다. 大豐그룹과 MBC는 2007年 9月 뉴욕匹 平壤公演과 關聯한 諒解覺書를 맺었다.

    “MBC가 錦湖아시아나文化財團과 協商했어요. 平壤 公演은 몰라도 서울 公演은 그쪽에서 許諾해야 했으니까요.”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뉴욕필은 2007年 12月11日 뉴욕에서 記者會見을 열고 이듬해 2月26日 平壤에서 公演을 한다고 發表했다. 박길연 當時 유엔駐在 北韓大使는 記者會見에 參席해 “核問題는 擧論하지 말아달라, 北美 友好 增進을 위해 뉴욕필을 招請했다”고 밝혔다.

    “뉴욕필 記者會見 며칠 前에 박철수를 통해 메시지가 왔습니다. ‘國家를 위해서 英雄的인 일을 해줬다. 只今부터는 國家 次元에서 일을 進行하겠으니 지켜봐달라’는 겁니다. 김계관이랑 크리스토퍼 힐이 만나 公演을 論議했다는 겁니다. 뉴욕필이 國務部에 問議했고, 國務部가 나선 거죠. 放送社하고도 連結해놓았는데, 世上에 이런 境遇가 있느냐고 抗議했죠. 일 잘했다고 稱讚받았다면서 ‘曺國이 큰 功勞를 認定하고 있다’고 박철수가 그럽디다. 박철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北韓이 나의 祖國도 아니고, 韓半島의 平和를 위해 한 일인데, 功勞 認定 같은 건 必要 없다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박철수가 自己가 사람을 잘 써서 公演이 成事됐다고 北韓에서 말했답니다. 뉴욕필 記者會見을 보고 하도 氣가 막혀서 베이징에서 記者會見을 하려고 했어요. 企劃者로서 時間과 努力을 投資한 일 아닙니까? 美國과 北韓 兩쪽을 相對로 國家가 이럴 수 있느냐고 抗議하려고 했어요. 2000年 平和音樂會 때는 김대중 政權과 北韓이 公演에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2000年에도 그런 일을 겪었는데, 이番엔 北韓과 美國에 當한 꼴이었습니다. 報道資料까지 다 만들어놓고 記者會見을 準備했습니다.”

    當時 言論報道에 따르면 平壤 奉化豫劇場에서 2000年 4月5日 열기로 한 ‘平和를 위한 國際音樂會’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參與해 話題가 됐다. 樂團이 平壤에 들어가 最終 練習하는 狀況에서 公演 날짜를 며칠 앞두고 北韓 當局으로부터 公演을 미루라는 通報가 왔다.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오케스트라가 平壤에 들어가서 練習하고 있는데 公演을 나중에 하라는 겁니다. 6月15日 金大中-김정일 頂上會談 開催 發表와 時期가 맞물리면서 韓國 政府와 北韓 當局이 公演을 取消한 거예요. 北韓 當局이 道義的으로 나에게 未安해야 할 일이 두 番이나 있었던 겁니다.”

    ▼ 記者會見은 왜 안 했습니까?

    다들 하지 말라고 합디다. 駐中 韓國大使館에서도 말렸습니다. 베이징이란 곳이 外國人이 함부로 記者會見 하는 곳이 아니랍디다. 月曜日 午前에 記者會見 하려던 것을 日曜日 午後에 접기로 決定했습니다.”

    뉴욕필 平壤 公演은 全世界 言論의 注目을 받았다. 北美關係 正常化가 秒읽기에 들어갔다거나, 韓國의 새 政府 出帆에 맞춰 北韓이 桶彌縫남에 나섰다는 式이었다. 甚至於 美國이 뉴욕匹 公演을 통해 李明博 政府에 메시지를 傳했다는 式의 論評도 있었다.

    뉴욕필 騷動(騷動)은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 한番 한 것이 뉴욕에 暴風을 불러일으킨다는 나비效果(Butterfly effect)를 聯想케 한다. 사람들이 놀라거나 興奮해 시끄럽게 법석거리고 떠들어 대는 일의 始作은 複雜하지 않고 簡單할 때가 많다.

    ▼ 뉴욕필 프로젝트를 始作할 때 비즈니스 側面이 컸어요? 아니면 名分이 더 컸어요?

    “北微關係 改善은 南北 모두에 좋은 것 아닌가요. 아시아나航空이 뉴욕匹 團員을 싣고 平壤-서울을 直航으로 運行했어요. 그것도 南北關係에서 象徵的인 事件 아니었나요.”

    ▼ 中繼權料는 받았습니까.

    “約束했던 돈의 5分의 1밖에 못 받았습니다.”

    ▼ 왜요?

    “MBC에선 오현창 當時 글로벌社業本部長이 責任者였습니다. 이番에 江原道知事 選擧 나온 최문순이 社長이었고요. 뉴욕필이 나를 끼고 契約하는 데 難色을 표했다는 겁니다. 美國 政府가 企劃者는 빼고 契約하라고 했다고 뉴욕필 쪽에서 밝혔답니다. 迂餘曲折 끝에 一部만 받았습니다.”

    ▼ 公演이 이뤄졌으니 열매는 맺었네요.

    “그런 셈이긴 한데, 道理에 어긋나는 일이…. 내 處地에선 理解는 해도 容納은 안 됐어요. 내가 무슨 큰 榮譽를 얻고, 큰돈을 벌자는 건 아니었지만….”

    ▼ 氣分이 傷했다는 거군요.

    氣分 傷하지 않겠습니까. 氣分 傷하는 程度가 아니지. 功勞를 認定하겠다, 報答을 해주겠다고 北側이 얘기했지만, 그게 다 酬酌으로 보입디다.”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 公演 當日에는 氣分이 어땠습니까?

    “그때는 다 받아들였을 때니까…. 如何튼 時期가 絶妙했어요. 새 政權에서 平和 무드가 이어지리라는 걸 豫想케 하는 行事였다고나 할까요. 結果는 反對로 갔지만…. 그런데 새 政府 人士들이 뉴욕匹 서울 公演에 參席을 안했더군요. 左派 政權 때 企劃해 이뤄진 일이라고 여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原則을 强調하는 李明博 政府 對北政策이 옳다고 봅니다. 땡볕인지, 햇볕인지 하는 게 南北關係를 오히려 非틀리게 만든 側面이 커요. 그럼에도 政治와 經濟, 政治와 文化는 分離해서 接近해야 하지 않을까요. 文化 交流, 經濟 交流가 政治를 앞서가는 例가 많습니다. 美國과 中國의 핑퐁 外交街 그렇지 않았습니까. 勿論 營利 目的도 있었지만, 내가 그린 큰 그림과는 結果가 달랐습니다.”

    배 前 副總裁는 뉴욕匹 平壤 公演 석 달 뒤인 2008年 5月 訪北했다. 平壤이 約束대로 報答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勅使(勅使) 水準의 待接을 받았다고 한다. 朝鮮白虎貿易會社 名義로 發行한 招請狀엔 이렇게 적혀 있다.

    ‘朝鮮白虎貿易會社는 平壤牡丹峯巧藝團의 海外巡廻 公演問題를 討議하기 위하여 貴社의 부리社長 박철수 先生과 文化擔當 副總裁 배경환 先生을 5月 中에 平壤에 招請합니다.”

    ▼ 平壤에 가서 어떤 일을 했습니까?

    “北韓 巧藝團은 美國이나 유럽에서도 成功할 수 있습니다. 서커스라는 게 萬國共通인데다, 北韓 國籍이라는 點이 興味를 刺戟하거든요. 平壤에 갔더니, 최문순 社長, 그러니까 當時는 최문순 議員이죠. 그 사람도 平壤에 와 있다는 겁니다. 平壤 사람들이 최문순을 만나보라는 거예요. 單칼에 싫다고 했습니다.”

    ▼ 왜 안 만났습니까?

    “뭣 하러 만납니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박철수, 최문순이 뉴욕필 公演 受惠者죠. 나는 새 政府 들어선 뒤 左派 人士로 誤解받아 뒷調査를 받는 等 苦生하고 있고요.”

    ▼ 平壤牡丹峯巧藝團의 海外巡廻 公演은 어떻게 됐습니까?

    “北美·유럽·韓國公演을 推進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죠. 韓國 公演은 南北關係가 梗塞되는 바람에 試圖조차 할 수 없었고요. 유럽 出張을 여러 番 갔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公演을 準備했는데, 글로벌 經濟危機가 터지면서 스폰서를 求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中國에 머무르면서 ‘大豐그룹 副總裁’ 資格으로 聯合뉴스와 數次 인터뷰했다. “2006年 10月 北韓의 核實驗 以後 北美 間 緊張이 最高潮에 達했을 때 北韓에 뉴욕필의 平壤 公演을 電擊 提議, 성사시킴으로써 韓半島 緊張 緩和의 물꼬를 트는 解決士 役割을 해 注目받았다”고 연합뉴스는 그를 紹介했다. 記事엔 다음과 같은 內容이 담겼다.

    “記事를 막아달라”

    “北韓 當局이 國際 經濟 體制에 編入하고자 積極的으로 外資 誘致에 나서고 있다.”

    “大豐그룹이 中國 國家開發銀行과 投資基金 造成에 關한 合意를 맺었다.”

    “平壤-라진 鐵道保守, 空港事業, 國家開發銀行에 韓國이 投資해볼 만하다.”

    ▼ 聯合뉴스 인터뷰를 읽어보니 大豐그룹 副總裁로서 뉴욕匹 公演만 推進한 게 아니던데요. 國家開發銀行 設立을 비롯해 여러 일에 關與했더군요. 搜所聞해보니 韓國企業과 大豐그룹을 連結하는 일도 했던데요.

    “그랬죠.”

    ▼ 只今부터 大豐그룹의 對南事業 얘기를 해보죠. 韓國 言論이 100億달러 誘致說을 報道한 적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지난해 頂上會談을 하느니, 마느니 할 때 大風그룹이 100億달러를 誘致했다는 報道가 韓國에서 나왔죠. 그게 訛傳된 거요. 內容이 뭐냐 하면 中國 國家開發銀行에서 北韓 몫으로 100億달러를 配定했다는 겁니다. 北韓이 外資를 誘致했다는 게 아니고요. 中國企業이 北韓에 投資할 때 中國 國家開發銀行이 좋은 條件으로 貸出해준다는 內容이에요.”

    ▼ 박철수가 100億달러의 資本金으로 國家開發銀行을 세우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100億달러는커녕 10億달러도 北韓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只今 박철수 處地가 곤란한 거요. 抱負는 괜찮은데, 結果物이 없으니….”

    ▼ 박철수 立地가 北韓에서 弱해졌나요?

    “데미지가 當然히 크지 않겠어요. 大豐그룹이 뭐하는 곳입니까? 外部에서 投資를 誘致하는 곳이잖아요. 박철수가 資本을 誘致할 곳이 事實上 中國, 韓國밖에 없습니다. 特히 重要한 곳이 韓國이고요. 韓國에서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박철수는 詐欺꾼이라는 式으로 否定的인 報道가 쏟아졌지 않습니까. ‘신동아’도 그렇게 썼고요. 그 渦中에 나도 左派 人士라는 式으로, 都賣金으로 넘어갔고요. 對南事業 總責인 김양건 統一戰線部長이 왜 大豐그룹 理事長을 맡았겠습니까? 金孃件이 責任者가 된 건 對南 事業을 잘 해보라고 박철수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解釋해야 해요. 그런데 只今 南北關係가 어떻습니까. 뱉어놓은 말을 박철수가 지킬 수 없게 된 거죠. 두 달 前, 그러니까 2月에 박철수가 獨逸 슐츠財團을 데리고 平壤에 들어갔는데, 그것도 成果物은 없었어요.”

    박철수가 推進한 對南事業 中 結果物이 나온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中國企業의 北韓 鑛山 投資에선 一部 成果를 거뒀다고 한다. 박철수가 韓國 言論의 否定的인 記事를 막아달라고 그에게 付託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KBS ‘取材파일 4321’이라는 프로그램에서 大豐그룹 取材를 세게 했어요. 베이징까지 날아와 否定的인 內容으로 박철수를 인터뷰하고 그랬거든요. 나보고 記事를 막아달랍디다.”

    ▼ 어떻게 했습니까?

    “日曜日에 베이징에서 서울로 들어왔어요. 이튿날 取材파일 4321쪽 사람을 만났는데, ‘어제 放送했는데요’라면서 웃더라고요. 인터넷으로 放送을 봤더니 完全히 박살을 내놓았더군요. 北韓이 大豐그룹을 띄웠잖아요, 保證한 곳이니 믿고 投資하라고요. 그런데 韓國 言論에 박철수가 된통 當했지 않습니까.”

    國精院과 大豐그룹

    ▼ 對南事業에서는 成果가 있었습니까?

    “그건 내가 다 알죠. 거의 모든 일에 나도 關與했으니까. 北韓에서 보기엔 박철수가 일을 아주 잘 한다고 느꼈을 거예요. 포스코, 鑛物資源工事 같은 큰 곳과 北韓을 連結해줬으니까요.”

    ▼ 大豐그룹과 特定會社가 接觸했다더라는 式의 報道는 있었지만, 具體的으로는 全혀 알려지지 않은 얘긴데요.

    “노무현 政府 때는 別別 일이 다 있었어요. 國精院하고 大豐그룹도 서로 關係를 맺었고…. 左派 政權 때는 南北 輕俠과 關聯해 韓國 政府가 積極的으로 도와줬어요. 情報機關도 只今과는 態度가 正反對였고요. 政權이 바뀌면서 박철수가 成果를 내진 못했지만….”

    ▼ 포스코와는 어떻게 接觸했나요.

    “박철수가 中國 資本으로 北韓 鑛山을 開發하려고 했습니다. 中國 鐵鋼會社 2곳과 MOU(諒解覺書)를 맺었습니다. 鐵鋼은 國家基幹産業 아닙니까? 박철수에게 포스코와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提案했습니다. 統一 後 未來를 對備해서 韓國 鐵鋼會社가 좋지 않겠느냐고 助言했죠. 박철수가 助言을 받아들이고, 北側에 意思를 打診했습니다. 성진製鋼聯合企業所에 南北 合作으로 製鐵所를 建設하고 北側이 포스코에 鐵鑛石과 無煙炭을 提供하는 事業이었습니다. 베이징 韓國大使館에 나와 있는 國精院 人士가 포스코와의 連結을 도와줬습니다. 大豐그룹과 國精院을 잇는 다리 役割을 내가 했어요.”

    ▼ 그랬군요.

    “내가 얘기한 것을 國精院이 포스코에 傳했습니다. 北韓 當局은 포스코가 파이낸스 工法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北韓 第2經濟委員會 局長한테서 大豐그룹 쪽으로 連絡이 왔어요. 파이낸스 公法 槪念圖를 포스코로부터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파이낸스 公法은 쇳물을 生産할 때 코크스와 鐵鑛石을 事前 處理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포스코가 世界 最初로 稼動한 新技術이다. 鐵鑛石과 無煙炭 埋藏量은 많지만 코크스가 나지 않는 北韓에는 要緊한 製鐵法이다. 第2經濟委員會는 北韓에서 軍需産業을 管掌하는 곳이다.

    ▼ 正確하게 언제 일인가요.

    “뉴욕필하고 同時에 進行했으니 노무현 政府 마지막 해(2007年)예요. 國精院 職員에게 北韓이 파이낸스 公法 槪念圖를 願한다면서 제2경제위원회 局長이 보내온 文件을 건넸습니다. 자칫하면 내가 産業스파이로 몰릴 일 아닙니까? ‘이런 거 줘도 되느냐’ ‘안 되는 것 아니냐’ ‘알아서 해라’라고 國精院 쪽에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資料를 보내온 겁니다. 박철수가 槪念道를 받아서 北韓大使館에 넘겼어요.”

    ▼ A4 用紙 몇 腸이었나요?

    “나는 못 봤어요. 디테일한 內容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아요. 國精院이 포스코 쪽에 얘기해 포스코가 大豐그룹에 傳해준 겁니다. 그 일이 있은 뒤 포스코 中國 總責任者인 김동진(當時 포스코차이나 總經理)李 만나자고 連絡이 왔습니다. 나, 大豐그룹 理事長이던 고계인, 박철수, 김동진이 포스코차이나 總經理 事務室에서 會議를 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성진製鋼聯合企業所에 合作 製鐵所를 짓고 포스코가 鐵鑛石, 無煙炭을 가져가는 條件으로 論議가 進行됐습니다. 포스코 쪽에서 鐵鑛石·無煙炭 샘플을 보내달라는 式으로 大豐그룹에 要求事項이 많았어요. 그 뒤로는 그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했죠.”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2008年 2月26日 동평양大劇場에서 열린 뉴욕匹 平壤 公演.

    이와 關聯해 포스코 側은 “北側과 無煙炭, 鐵鑛石 導入 關聯 協議를 하면서 北側이 파이낸스 公法 關聯 資料를 要請해와 포스코차이나에서 報道資料 水準의 基礎資料를 北側에 提供한 일은 있다”고 밝혔다.

    이 에피소드는 政權의 性向과 南北關係 變化에 따라 情報機關의 役割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事例라고 하겠다. 2007年은 盧武鉉-김정일 頂上會談이 열린 해다.(10월2~4일)

    배 前 副總裁와 포스코의 說明대로 디테일한 內容이 담기지 않은, 報道資料 水準의 基礎 事案이 담긴 文件이라면 北韓으로 資料가 넘어갔다고 해도 問題될 것은 없으나 國精院이 株主가 存在하는 私企業에 要請해 技術 關聯 資料를 北韓에 넘겨주게 했다면 問題 삼을 만한 일이다.

    國精院 代辯人室은 이와 關聯해 “事實 無根이다. 關聯 部署에 問議한 結果 그런 事實이 全혀 없다”고 밝혔다.

    參考로 北韓은 2009年 ‘主體鐵’ 生産 體制를 完成했다. 輸入에 依存하는 重油와 코크스 代身 北韓에서 調達한 原料로 만든 鐵鋼이다. 2009年 성진製鋼聯合企業所에 主體鐵 生産體系를 처음 完成한 後 黃海製鐵, 金策製鐵 等에 이 生産體系를 導入한 것으로 傳해졌다. 金正日은 성진製鋼聯合企業所를 찾아 “自體의 技術로 主體鐵 製鋼法을 完成한 것은 核實驗 成功보다 더 偉大한 勝利”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09年 12月20日 報道했다.

    平壤 10萬戶 建設 프로젝트

    大豐그룹은 2012年 强盛大國 進入을 위해 推進한다는 平壤 10萬戶 建設事業에도 韓國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아파트 10萬戶 建設은 장성택이 맡아 推進하는 事業입니다. 2012年 强盛大國 進入과 關聯해 進行하는 것인데, 박철수가 그 프로젝트를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10萬戶를 지으려면 돈이 들 것 아닙니까? 박철수는 北韓鑛山 開發權을 南側에 提供하고, 韓國 資本과 技術을 誘致하려고 했어요. 鑛物資源工事가 4個 會社와 컨소시엄을 構成해 와서 大豐그룹 베이징 事務室에서 MOU를 맺었습니다. 일이 進行되려면 鑛山이 經濟性이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 아닙니까. 調査團을 보내는 問題가 論議되다, 南北關係가 梗塞되면서 프로젝트가 中斷됐습니다.”

    ▼ 鑛物資源工事 件도 國精院이 連結해준 겁니까?

    “아닙니다. 프로젝트가 進行되고 있다는 건 國精院도 알고 있었죠. 내가 이야길 안 해도, 鑛業資源工事가 國精院에 알립니다. 國精院에 안 알리고 北韓과 어떻게 일을 합니까? 나는 駐中 韓國大使館에 關聯 事實을 얘기했고요. 몰래 하고 그런 것 없습니다. 그러니까 只今 떳떳이 얘기하는 거죠. 내가 鑛物資源公社 쪽에 닿는 人脈이 있어서 박철수와 連結해줬습니다.”

    이와 關聯해 鑛物資源公社는 “北韓 鑛山 開發과 關聯해 大豐그룹과 意向書를 맺고 調査團 派遣을 準備했으나 事業을 中斷했다. 實際로 北韓으로 實査團을 派遣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大豐그룹은 노무현 政府와 北韓에 오징어를 人道的으로 支援하는 事業을 論議한 적도 있다. 人性失業 강종원 前 代表의 說明.

    “人性失業이 南大西洋에서 오징어를 잡는데 노무현 政府 마지막 해에 값이 暴落했습니다. 全世界的으로 오징어가 너무 많이 잡혔어요. 2007年 K氏를 通해서 박철수를 만났습니다. 韓國 政府가 우리가 잡은 오징어를 購買한 뒤 北韓에 人道的으로 支援하는 事業을 박철수와 論議했습니다. 李在汀 當時 統一部 長官도 論議에 參與했고요. 盧武鉉 大統領 任期가 얼마 안 남은 데다, 支援 額數도 相當해서 成事되지는 않았고요.”

    ▼ 南北經協에는 왜 발을 담갔나요? ‘專攻’도 아니지 않습니까.

    “박철수와 나, 駐中 北韓大使館 K氏를 北韓에선 베이징 3총사라고 부릅니다. 뉴욕필 公演을 準備하면서 因緣을 맺어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2004年부터 中國을 根據地로 일을 해왔습니다. 中國에서 보면 北中關係가 다르게 보입니다. 中國이 北韓을 隸屬化하려는 게 빤히 보여요. 죽지 않을 만큼 支援하고, 投資는 적게 하면서 알맹이만 빼가려고 합니다. 韓國이 北韓 經濟를 先占해야 해요.”

    “노무현 국정원이 대풍그룹 대남사업 도와줬다”

    배경환 前 大豐그룹 副總裁가 2003年 서울올림픽主競技場 特設舞臺에 올린 ‘아이다’.

    ▼ 北韓에 關心을 가진 때는 언제부터인가요.

    “전두환 大統領 時節인 1985年 南北 交流 雰圍氣가 있었습니다. 조용필이 最高의 歌手일 때인데, 當時에는 放送局에서 노래 부르는 것 外에 公演이 別로 없었어요. ‘北韓同胞에게 秋夕膳物 보내기 조용필 慈善公演’을 準備했습니다. 政府 許可를 못 받아서 不遇이웃돕기 慈善公演으로 바꿔 進行했습니다. 그때부터 北韓에서 公演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앞으로는 北韓 쪽을 쳐다보지도 않겠군요.

    “實際로는 保守派인데, 左派로 낙인찍히면서 不便한 게 많아요. 不快하기도 하고요. 情報當局에서 뒷調査했다는 所聞도 있고요. 中國 國立오페라團에서 ‘아이다’를 높게 評價했습니다. 베이징올림픽主競技場에서 ‘아이다’를 올리려고 해요. 서울 公演보다 規模를 더 키울 겁니다. 김정일 國防委員長도 招請하려고요. 하하. 統一部에 事業 承認을 要請해놓은 다른 件도 있습니다. 南北 演奏者가 오케스트라를 結成해 世界的 指揮者를 데려와 6者會談에 參與하는 6個國에서 平和音樂會를 여는 企劃입니다. 오케스트라의 하모니가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政治가 못하는 일을 文化가 할 수 있어요.”

    못 말리는 男子

    ‘못 말리는 男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게 되는 일인가요?”라고 묻지는 않았다

    大豐그룹이 北韓에서 株價를 높이고, 박철수 같은 人士가 高位職에 올랐다는 事實을 통해 北韓 當局의 水準을 斟酌해볼 수 있다. 大豐그룹이 벌인 一連의 活動은 앞서 살펴봤듯 해프닝的 要素가 적지 않다.

    北韓 當局은 박철수를 能力이 出衆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鑛物資源公社 等과 함께 일을 進行했으니 말이다. 앞서 言及했듯 李明博 政府의 實勢 政治人과 北韓의 對南總責이 싱가포르에서 만날 때 박철수가 居間 노릇을 했다. ‘國會議員 임태희 特報’ 名銜을 갖고 活動한 對北事業家 Y氏와 박철수는 2009年 8月 베이징에서 만났다. 임태희-김양건 만남은 2009年 10月 이뤄졌다. 北韓 當局이 보기엔 박철수가 적지 않은 일을 한 것이다.

    그間 南北 交流에선 韓國 政府 對 北韓 當局으로 이뤄진 시스템 代身 秘線, 特使, 아마추어가 활개치곤 했다. 時間이 걸리더라도 南北 間 協商·交流의 原則을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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