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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대로는 再執權 어렵다”|신동아

“한나라당 이대로는 再執權 어렵다”

鄭柄國 文化體育觀光部 長官의 作心 吐露

  • 정현상│東亞日報 新東亞 記者 doppelg@donga.com 윤필립│是認, 濠洲專門 저널리스트 phillipsyd@hanmail.net

    入力 2011-04-20 1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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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只今은 한나라당과 保守의 危機
    • 個人 人氣에 意志해도 안 돼
    • 작은 失手 막아야 平昌 冬季올림픽 誘致
    • 文化界, 더 以上 理念 葛藤 없게 하겠다
    • 17個 海外 韓國文化院 複合文化空間으로
    “한나라당 이대로는 재집권 어렵다”
    豪宕한 웃음소리는 如前하다. 단단한 體軀에 옷맵시도 남다르다. 印象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쓴 度數 없는 뿔테 眼鏡이 썩 잘 어울린다. 鄭柄國 文化體育觀光部(以下 文化部) 長官은 親和力이 좋다. 김영삼 前 大統領이 그를 政界에 入門시킬 때도 誠實性과 謙遜함, 그리고 親和力에 높은 點數를 주었다고 한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木蓮 꽃을 피우던 4月1日 서울 鍾路區 와룡동 文化部 執務室에서 만난 鄭 長官은 濠洲 시드니 出張 準備로 무척 바빠 보였다. 이날 저녁 7時 飛行機를 탈 豫定인데, 懸案 報告받느라 女裝을 채 꾸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鄭 長官은 就任 뒤 “答은 現場에 있다”며 부지런히 現場을 訪問하고 있다. 이番 시드니 訪問도 시드니 한국문화원 開所式에 參加하는 것뿐 아니라 現場에서 韓國文化院의 方向을 다시 點檢하려는 게 目的이었다.

    “얼마 前까지만 해도 韓國文化院은 先進國 中心 行政을 폈습니다. 그러나 先進國에서 우리 文化를 傳播하는 것은 事實 波及效果가 別로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相對的으로 文化가 劣惡한 나라에 우리 文化院이 나가 있으면 先進文明을 받아들이려는 그들의 欲求를 채워주고, 그것을 통해 國家 間 交流도 擴大할 수 있을 겁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國家 브랜드 價値도 向上될 수 있고요. 産業的 側面에서도 시너지 效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公館 槪念이 剛했던 韓國文化院을 複合 文化施設로 탈바꿈시키고자 합니다. 單純히 行政뿐 아니라 展示館, 圖書館, 專用劇場, 傳統 飮食店, 액세서리 가게, 오디오 가게 等을 마련해서 現地 市民들도 文化院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破格的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就任한 지 갓 두 달이 지났지만 그는 이처럼 베테랑 長官의 面貌를 보인다. 2000年 議員 배지를 달자마자 國會 文化體育觀光放送通信委員會(以下 門防衛)를 支援했고, 11年 동안 같은 常任위를 固守했던 德分이다. 그는 實際로 文化에 對한 該博한 知識과 熱情을 갖췄다. 서울과 시드니에서 여러 次例 한 이番 인터뷰에서도 그는 文化部 懸案과 政局에 對해 거침없이 所信을 밝혔다. 特히 現在 한나라당의 位相과 關聯한 質問에서 그는 “한나라당이 改革하지 않으면 再執權은 어렵다”며 强度 높게 批判했다. ‘신동아’는 文化部 長官으로서의 그와 政治人(그는 如前히 競技 楊平·加平 地域區 國會議員이다)으로서의 그를 나눠서 들여다봤다.

    이番 인터뷰는 就任 뒤 雜誌媒體와 하는 첫 公式 인터뷰다. 올해 11月號로 創刊 80周年을 맞이하는 ‘신동아’에 對해 그는 “대단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雜誌에 對한 그의 關心은 특별하다. 1次 인터뷰에서 雜誌振興政策에 對해 說明할 때 그는 一週日 뒤 發表할 內容을 記者에게 미리 브리핑했다.



    잡지 振興 5個年 計劃 마련

    “雜誌가 危機를 맞이했고, 斜陽産業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危機는 機會일 수도 있어요. 技術이 急激하게 發達하면서 媒體環境이 빅뱅이라고 할 程度로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雜誌뿐 아니라 종이新聞度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部門이 없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特히 雜誌와 關聯해서는 저희가 相當히 긴 時間 동안 關係者와 專門家들로부터 意見을 收斂해 雜誌産業 振興 5個年 計劃을 마련했습니다.”

    4大 課題 16代 細部事業으로 構成된 이番 計劃에 따라 文化部는 5年間 ‘雜誌産業 振興 인프라 構築’에 44億원, ‘雜誌 콘텐츠 品質 提高 및 디지털化 支援’에 240億원, ‘流通構造 改善 및 讀者 底邊擴大’에 77億원, ‘글로벌 競爭力 强化’에 71億원의 事業費를 支援할 計劃이다.

    ▼ 公演場에 자주 가는 것으로 아는데, 特別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지요?

    “公演이라면 다 좋아합니다. 또 그게 일이기도 하고요. 特히 演劇을 좋아하지만, 演劇 映畫 뮤지컬 콘서트 等 장르를 莫論하고 現場에 가는 것을 즐깁니다. 展覽會에 가는 것도 즐겨서 一週日에 한 番은 꼭 時間을 내지요. 外國 出張을 가면 그 地域의 博物館도 빼놓지 않고 들른답니다.”

    “한나라당 이대로는 재집권 어렵다”

    鄭柄國 長官(앞줄 오른쪽에서 네 番째)李 4月4日 濠洲 시드니 타운홀에서 열린 韓國文化院 開院 祝賀公演에 參加했다.

    ▼ 準備된 文化部 長官이랄 수 있겠군요. 2000年 以後 國會 門方位에서 줄곧 活動해왔는데, 特別한 理由가 있는지요?

    “文化藝術에 關心을 갖게 된 것은 어릴 때의 經驗 때문입니다. 電氣가 들어오지 않는 競技 楊平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初等學校 5學年 때 서울로 轉學했는데, 그때 文化的 衝擊을 크게 받았습니다. 月曜日에 學校에 가면 學級에서 한두 名은 꼭 音樂會나 映畫를 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 經驗이 없었던 저는 相對的 剝奪感을 느꼈지요. 그러다 中 2學年 때 學校에서 團體로 鳴動 國立劇場으로 俳優 전양자氏 主演의 演劇 ‘巫女圖’를 보러 갔습니다. 그 演劇으로 相當한 感動과 衝擊을 받았습니다. 以後 意圖的으로 演劇을 보러 다녔고 文化에 對해 눈을 뜨기 始作했지요. 事實 우리 社會가 産業化와 民主化를 거쳐 先進化로 가는 過程에서 발板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文化입니다. 그래서 저는 初選 國會議員이 되었을 때 左顧右眄하지 않고 門防衛를 支援했고, 여기(長官 자리)까지 오게 된 겁니다.”

    ▼ 人事聽聞會 때 가장 印象的인 文化長官으로 朴趾源 前 長官을 꼽았는데요. 實際로 그런 長官이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國內外에 롤모델(role model: 模範이 되는 사람)로 여기는 이가 있는지요?

    朴趾源 前 長官, 롤모델은 아니다

    “朴趾源 前 長官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그런 얘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經驗한 그 많은 長官 가운데서도 그래도 意味 있는 일을 하신 분이 朴趾源 前 長官이라는 겁니다. 朴 前 長官은 當時 처음으로 國家 豫算 가운데 文化部 豫算을 1% 넘게 確保했습니다. 그것은 相當히 意味 있는 業績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初代 長官이었던 이어령 前 長官이 相當히 創意的이고 文化의 틀을 크게 定立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 程度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無窮無盡하게 냈고, 變化하는 技術의 메커니즘을 正確하게 꿰뚫어보면서 椄木하는 것을 보고 相當히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就任한 지 이제 두 달을 갓 넘겨서 좀 이른 質問이 될 수 있겠지만, 어떤 長官으로 記憶되고 싶은지요?

    “무엇을 하기보다는 文化, 뭐라고 해야 될까….”

    鄭 長官은 엄지와 中指를 딱딱 튕기면서, 적합한 單語를 찾는다.

    “于先 文化의 힘, 藝術의 힘을 제자리에 찾아주는 長官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뜻이 무엇인지요?

    “지난 10餘 年間 文化界 關聯 活動을 하면서 藝術은 참 强하다는 것을 切感했습니다. 그 剛한 힘은 나라와 言語 宗敎 文化가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疏通시킵니다. 그래서 藝術의 힘이 社會的 統合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게 또 잘못 利用되면 社會를 分裂하고 葛藤을 誘發하는 要因이 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가 그런 狀況에 處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 部分을 제자리로 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創作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이쪽저쪽 눈치 보지 않고 創作에 專念해서 消費者인 國民이 그것을 滿喫할 수 있는 狀況을 만드는 게 제 役割이라고 생각합니다.”

    進步 性向 團體長들과 法的 和解

    ▼ 葛藤이란 이념적인 對立을 말하는가요?

    “創作하는 분들이 理念을 갖는 건 自由이겠죠. 또 그들의 作品을 選擇하고 보는 것도 國民의 自由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그것을 政治人들이 利用하고, 그렇게 해서 藝術人들을 분열시켜왔습니다. 藝術作品이 分裂의 機制가 된 側面이 있습니다. 그것은 國民에게나 國家에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藝術의 社會統合的 機能은 根本的으로 只今까지 이 政府나 過去 政府가 해온 基調와 相當히 다를 겁니다. 그동안 反復되면서 골이 깊어진 것을 回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創作하는 이들은 藝術性만으로 評價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가 어디에 屬해 있고 누구와 親하다는 것 때문에 藝術人의 浮沈이 決定되는 것을 없애고 싶어요.”

    ▼ 그런 事例로, 유인촌 前 長官 때 解任됐던 進步 性向의 傘下機關 團體長들과 法的 和解를 準備하는 건가요?

    “3月 末 韓國文化藝術委員會가 김정헌 前 委員長에 對한 損害賠償 請求訴訟에서 大法院 上告를 取下했습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더 以上 이런 葛藤局面은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藝術은 藝術로 勝負를 거는 그런 文化界, 그런 世上을 만들겠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 한동안 空席이었던 映畫振興委員會 委員長으로 김의석 監督이 選任됐는데요. 選任 背景도 그런 次元에서 理解할 수 있나요?

    “葛藤과 分裂이 가장 두드러졌던 分野가 映畫界입니다. 그래서 이番 人選 때 어떻게 하면 그런 葛藤을 統合하고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를 苦悶했습니다. 그래서 人事 聽聞 過程에서 映畫界 新舊, 左右 人士들을 고루 만나서 그들의 意見을 들었습니다. 映畫界를 統合 調整할 수 있고, 世界的으로 競爭力 있는 映畫를 만드는 데 寄與할 수 있으며, 映畫系 現實에 精通한 사람을 찾았는데, 最善은 아니지만 應募者 가운데 最適의 選擇이었다고 생각합니다.”

    藝術映畫 專用館 强하게 誘導

    ▼ 映畫界의 또 다른 懸案은 무엇인지요?

    “映畫는 藝術이자 産業이기도 합니다. 映畫界가 産業的 次元에서 글로벌 競爭力을 갖추려면 藝術的 基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獨立映畫나 藝術映畫 製作 시스템을 效率的으로 支援하고, 그것이 産業으로 連結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映畫 市場의 限界를 어떻게 克服할 것인지에 對해서도 苦悶하는데요. 共同製作 支援센터를 만들어 支援하는 方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映畫 製作을 위해 일하는 스태프의 勞動條件은 限界에 逢着했습니다. 그분들의 勤務環境이나 與件을 改善하지 않고는 映畫 發展을 期待할 수 없다고 봅니다. 大企業은 映畫 基盤을 닦기 위해 再投資에도 나서면 좋겠습니다. 獨立映畫나 藝術映畫를 만들어도 上映館을 찾을 수 없으니 멀티플렉스에서 專用館을 하나씩 만드는 것도 積極 周旋하려고 합니다.”

    ▼ 좀 强하게 誘導하겠다?

    “强하게 하려고 그래요, 하하. 强하게 協助를 求하려고 합니다.”

    ▼ 制度化하겠다는 건가요?

    “그것을 制度化할 部分은 아니고요. 몇몇 關係者와 만나 意見을 나누니 기꺼이 專用館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군요. 共生하겠다고….”

    鄭 長官은 濠洲 日程을 마무리하고 런던 스포츠어코드(Sport Accord)에 參加해 2018 冬季올림픽 誘致 活動을 폈다. 스포츠어코드는 國際競技聯盟總聯合(GAISF)·夏季올림픽國際競技聯盟聯合(ASOIF)·冬季올림픽競技聯盟聯合(AIOWF) 等 3個 世界스포츠聯合機構가 共同으로 主催하고 國際올림픽委員會(IOC)가 後援하는 行事다. 冬季올림픽과 關聯해서는 앞으로 5月에 있을 候補都市 브리핑, 7月 IOC 總會에서 열린 候補都市 프레젠테이션 等의 課題가 남았다.

    ▼ 7月6日 2018 冬季올림픽 開催地가 決定되는데, 國內 誘致를 위한 關鍵은 무엇인지요?

    “于先 우리가 失手하지 않아야 합니다. 候補都市들 間에 競爭이 熾烈하기 때문에 結局 작은 失手가 誘致 作業을 어렵게 할 수가 있습니다. 110名 IOC 委員의 마음을 사야 하는데, 或 失手로 한두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면 그게 發端이 될 수 있습니다. 只今까지는 잘 해왔습니다만 끝까지 徹底하게 對備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冬季올림픽의 歷史에서 1972年 삿포로와 1998年 나가노 두 次例를 빼고 나면 아시아에선 冬季올림픽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平昌 誘致는 유럽 中心의 洞契 스포츠를 아시아 地域으로 擴散할 수 있는 契機가 된다는 點에서 强力한 名分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綜編과 地上波 構圖

    年末 綜合編成채널(以下 綜編) 出帆에 맞춰 文化部는 콘텐츠 振興을 위한 施設과 制度를 構築하기 위해 努力하고 있다. 大田의 HD드라마센터(885億원, 2014年), 一山의 디지털放送콘텐츠志願센터(2276億원, 2012年), 드라마펀드(600億원), 글로벌 프로젝트 펀드(800億원), 優秀 放送콘텐츠 製作支援(55億원), 融合型 放送콘텐츠 製作支援(90億원) 等이 代表的이다.

    ▼ 從便의 登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綜編은 地上波 放送의 매너리즘과 獨寡占을 解消하고 放送콘텐츠의 需要를 높여 ‘스마트 미디어’ 時代를 이끄는 重要한 구실을 할 것으로 期待됩니다. 勿論 우리나라 放送 및 廣告市場의 規模, 媒體間 競爭 深化 等으로 軟着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憂慮도 있습니다. 地上波는 이미 많은 콘텐츠를 構築하고 있으므로 綜編이 어떻게 差別化된 콘텐츠를 만들어내느냐가 從便의 成功 與否를 판가름할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이番 綜編 事業者들이 다 新聞社를 갖고 있으므로 新聞이 가진 長點을 어떻게 映像으로 連結해내느냐 하는 硏究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地上波를 凌駕하는 킬러 콘텐츠를 하나씩만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종편에 對한 國民의 認識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差別化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地上波든 綜編이든 放送도 이젠 하나의 舊時代的 媒體입니다. 只今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時代로 轉換되고 있습니다. 放送이 이것을 어떻게 連繫해낼 것인가 하는 點이 重要합니다. SNS를 통해 無窮無盡하게 生産되는 콘텐츠를 어떻게 안房으로, 映像으로 具現해내느냐 하는 部分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거라고 봅니다. 放送局에서 記者들이 取材할 수 있는 部分은 制限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等의 登場으로 누구든 取材할 수 있는 時代입니다. 中東의 재스민 革命 때, 日本 大地震이 났을 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큰 몫을 擔當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效果的으로 活用하느냐가 참으로 重要한 問題라고 생각합니다.”

    鄭柄國 長官이 如前히 國會議員을 兼職하고 있기 때문에 1年만 長官을 하고 來年 總選에 出馬하는 것 아니냐는 憂慮가 있는 게 事實이다. 그를 政治人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政治人 정병국 議員을 짚어보려면 過去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社會學을 專攻했고 연세대학교에서 行政學 碩士學位, 성균관대학교에서 政治學 博士學位를 取得했다. 大學에서 學生運動하다 强制徵集 對象이 돼 軍隊에 끌려갈 狀況이 되자 그는 海兵隊에 支援했다.

    “海兵隊에서 호되게 담금질을 當했지요. 그러면서 世上을 다시 배우는 契機가 됐습니다. 그러나 民主主義에 對한 熱望은 變하지 않아서 復學 後에도 學生運動을 繼續하다가 拘束됐고 그때 YS 側과 連結됐습니다.”

    ▼ 監獄까지 갔다 온 學生運動圈 出身인데 保守政黨인 한나라당 所屬이어서 언뜻 理解가 잘 안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保守主義者들이라고 學生運動과 民主化運動을 안 했습니까? 뭔가 誤解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本來부터 保守였습니다. 保守의 價値를 지키기 위해서 半(反)軍事獨裁鬪爭을 한 겁니다. 不當하게 政權을 奪取한 軍事獨裁와 政經癒着 等으로 大韓民國 政治와 經濟를 壟斷한 不道德한 集團과 맞섰던 겁니다. 그리고 軍事獨裁와 尖銳하게 맞섰던 統一民主黨과 YS도 保守 아닙니까? 그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所屬인 李在五, 박계동, 金文洙 等의 政治人들은 그 누구보다 民主化鬪爭의 先鋒에 섰던 분들입니다.”

    차분하게 얘기하던 鄭 長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높아졌다. 保守와 進步의 眞正한 意味에 對해서 오랫동안 얘기했고, 그 過程에서 保守槪念의 歪曲 때문에 한나라당이 크게 損害 본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作心한 듯 大韓民國의 保守와 한나라黨 批判도 서슴지 않았다.

    “3黨(民主正義黨, 統一민주당, 新民主공화당) 合黨 때문에 只今도 保守와 한나라당이 이미지 側面에서 크게 損害를 보는 겁니다. 5共 勢力인 민정당 出身들과 함께하다 보니 이미지의 歪曲이 생겼습니다. 實際로 只今 한나라당은 무척 健康해졌는데 이미지의 덫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는 거지요.”

    민주당의 正體性

    ▼ 3黨 合黨이 保守大聯合이었다면 평화민주당으로 始作해서 政權을 創出한 국민회의와 열린우리당, 現在 第1野黨인 민주당을 進步로 보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民主化 以後에 保守와 進步로 나뉘기는 했지만, 過去 국민회의나 現 민주당을 進步政黨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多數의 保守와 少數의 進步가 婚材돼 있을 뿐입니다. 다만 盧武鉉 前 大統領과 열린우리당이 進步的인 性向을 띠었지만 只今은 떨어져 나가서 國民參與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시민 前 長官을 認定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論難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돌이켜보면 眞正한 意味의 進步政黨 出現은 17代 國會에 민주노동당이 比例代表로 國會에 進出한 歷史的 事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이 스탠스를 잡기가 힘들어서 保守도 進步도 아닌 第3의 形態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거지요.”

    “한나라당 이대로는 재집권 어렵다”

    鄭柄國 長官이 4月4日 시드니에서 文化弘報館 會議를 主宰하고 있다.

    ▼ 그럼 大韓民國 第1黨인 한나라당과 第2黨인 민주당이 똑같은 報酬라는 結論이 나오는데요.

    “노무현 前 大統領 彈劾事態 後에 치러진 選擧에서 민주당(當時의 열린우리당)李 壓勝을 거두었습니다. 當時 민주당이 保守라고 할 것인지, 進步라고 할 것인지를 놓게 크게 苦悶했습니다. 進步라고 하면 民主勞動黨처럼 될 것 같으니까, 雪嶽山에 들어가서 워크숍을 하고 나오면서 ‘우리는 實用主義다’라고 發表했습니다. 理念의 價値를 志向하는 政黨에서 그게 말이나 됩니까? 實用主義는 保守性이 剛한 路線인데, 민주당은 只今도 그런 狀況의 延長線上에 놓였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민주당 손학규 代表를 進步로 分類할 수 없잖아요.”

    ▼ 민주당의 正體性을 相當히 批判的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正體性의 混亂이 大韓民國 政治發展을 沮害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當選 爲主로 그때그때 黨籍을 달리하고 地域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國民이 容納하겠습니까. 有權者들이 理念과 價値를 明確하게 實現할 수 있도록 政治風土를 바꿔야 합니다.”

    ▼ 民政黨 이미지 때문에 한나라당이 큰 損害를 본다는 主張을 여러 番 했습니다.

    “그게 事實입니다. 只今 민정당 出身의 한나라당 議員은 한 名도 없습니다. 直間接으로 連結된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이 대목에서 강재섭 議員 이름이 擧論됐다) 그분들한테 물어보면 當時에는 國會議員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게 事實이고요. 또한 민정당 時節에 在職했던 判檢事나 高位 公職者들은 뭐가 됩니까. 다만 3黨 合黨하면서 내려온 歷史性 때문에 민정당의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는 겁니다. 一種의 錯視現象이지요.”

    한나라당의 이미지 汚染

    ▼ 그게 그토록 抑鬱합니까? 現在 한나라당은 아주 깨끗하다는 主張으로 들리는데요.

    “抑鬱하지요. 現代政治에서 이미지 傳達이 얼마나 重要합니까. 더욱이 한나라당은 報酬를 代辯하는 政黨이기 때문에 報酬 全般에 對한 歪曲의 責任도 져야 합니다. 實際로 2011年 現在 한나라당은 민주당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過去에 蓄積된 否定的 이미지로 인해 實際보다 덜 깨끗하게 보일 뿐입니다. 이미지 次元에서 바이러스에 汚染됐다는 뜻입니다.”

    ▼ 한나라당을 大韓民國 報酬의 全體인 것처럼 整理하는 것은 조금 無理인 것 같은데요.

    “同意합니다. 資本主義와 市場經濟를 擁護하고 志向하는 大企業도 保守의 한 部分이고, 한나라당을 支持하지 않지만 保守的 價値를 높게 評價하는 國民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 側面에서 한나라당은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歷史가 過去 軍事獨裁에 脈이 닿아 있어서 保守는 나쁜 것이라는 認識이 심어졌으니까요. 그러나 濠洲를 包含한 政治先進國에서 保守主義者와 保守政黨이 그런 式으로 罵倒당하지는 않습니다.”

    ▼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깨끗하다는 主張에 무슨 客觀的인 根據가 있습니까?

    “한나라당은 黨憲黨規에 前科者를 公薦할 수 없도록 制限했습니다. 前科者를 公薦한 事例도 없고요. 그러나 最近에 前科者 公薦禁止가 憲法裁判所에서 違憲 判決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基準이 지켜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을 보세요. 當選됐다가 물러나는 政治人도 있고 前科가 있어도 얼마든지 公薦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客觀的인 根據입니다. 事實 한나라당은 깨끗한 政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눈물겨운 努力을 繼續했습니다.”

    ▼ 언제, 누가 그런 努力을 했다는 겁니까?

    “쑥스럽지만 저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한 名이었습니다. 한나라당 改革派의 努力은 保守라는 特性 때문에 相對的으로 더 높게 評價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例를 들면 남·元·政(남경필·元喜龍·정병국)으로 불렸던 少壯派, 或은 改革派들은 가시밭길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初選議員 때는 한 先輩議員이 ‘저놈들은 한나라당을 假裝한 빨갱이들’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敢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努力이 없었다면 한나라당이 더 깨끗하다는 主張을 할 수 없겠지요.”

    ▼ 南·元·政 改革派는 只今도 存續되고 있습니까?

    “當時와 比較하면 只今은 세 사람 모두 머리가 너무 커졌습니다. 남경필 議員은 國會 外交通商統一委員會 委員長이고, 원희룡 議員은 한나라당 事務總長이며, 저는 長官입니다. 그러다보니 當時에 志向하던 共同의 目標價 줄어들었고 各自 志向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한목소리로 黨의 改革을 剛하게 主張할 立場은 못 됩니다. 그러나 黨을 革新해야 한다는 基本的인 생각은 똑같습니다. 保守 全體가 危機를 맞고 있는 只今, 한나라당 안에서 그런 젊은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SNS가 進步 擴散’

    ▼ 保守의 危機를 유난히 强調하시는데 어떤 側面에서 危機로 診斷하시는 겁니까?

    “요즘 젊은이들을 相對로 設問調査를 해보면, 自己가 進步를 志向한다는 答辯이 70% 以上입니다. 報酬를 志向한다는 答辯은 20%가 채 안되고요. 그러나 理念의 價値基準으로 테스트해보면 60% 程度가 保守 性向으로 나옵니다. 儼然한 歪曲이고 正體性의 混亂이지요. 人間의 心理가 變化보다는 安定을 希求하기 때문인데요. 그것 못지않은 또 하나의 理由는 保守政黨을 自任하는 한나라당의 메신저 이미지가 汚染됐기 때문입니다.”

    ▼ 그게 全部일까요? 保守와 한나라당의 危機가 이미지 歪曲 때문이라는 主張은 說得力이 不足합니다. 다른 理由는 없을까요?

    “많이 있습니다. 그中에서도 道德性의 危機로 評價받는 게 너무 아픕니다. 保守가 지녀야 할 가장 重要한 價値가 道德性인데, 國民의 立場에서 보면 道德的이지 않은 保守를 保存할 必要性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엄청난 危機가 닥쳐오고 있는데 危機感을 느끼지 못하는 한나라당 議員이 많다는 겁니다. 더욱이 얼마 前까지는 40代까지 保守 支持層에 包含시킬 수 있었는데, 只今은 40代 以下의 新主流層이 報酬에서 빠르게 離脫하고 있습니다. 그 原因을 알아보니까 SNS 時代에 접어들면서 40代 年齡層까지 20~30臺와 連帶하는 現象이 나타난 겁니다. 進步의 擴散人 셈이지요.”

    ▼ SNS가 進步를 擴散시킨다는 主張은 論理의 飛躍으로 들리는데요.

    “國民이 政治人보다 한 발짝 앞서 있습니다. 現實的으로 20~30代는 進步 性向이 剛할 수밖에 없고요. 게다가 40代 年齡層이 SNS의 影響으로 進步 쪽으로 移動하는 겁니다. SNS 時代를 따라가지 못하는 政治人이 한나라당에 많습니다. 그래서 保守의 危機라고 診斷하는 겁니다.”

    ▼ 아까 代表的인 保守를 擧論하면서 市場經濟를 擁護하는 大企業을 包含시켰는데 SNS는 大企業에서 普及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大企業을 包含한 保守 性向의 企業에서 SNS 機器들과 運用 시스템 및 콘텐츠를 生産하고 普及합니다. 그런데 그런 機器와 콘텐츠가 社會의 進步를 强化하고 있습니다. 結局 保守가 生産한 것을 活用해서 社會는 進步로 變하는 아이러니(irony·逆說)를 낳는 겁니다.”

    한나라당의 不便한 眞實

    ▼ 그것을 保守와 한나라당이 認識하지 못한다고 判斷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이런 狀態가 繼續되면 한나라당의 再執權이 不可能하다고 말하는 理由가 거기에 있습니다. 한나라당 立場에서 보면 ‘不便한 眞實’이지요.”

    ▼ 이대로라면 正말 한나라당이 再執權하는 게 어렵다고 봅니까?

    “어렵다고 봅니다.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社會 環境이 크게 變했는데 한나라당은 제대로 適應하지 못하고 앞날에 對한 對備도 아주 未洽합니다. 保守의 危機를 放置하고 한 사람의 人氣로 再執權한다는 것은 不可能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一大 革新 없이는 百戰百敗입니다.”

    “한나라당 이대로는 재집권 어렵다”

    6·25戰爭 參戰勇士, 未亡人들과 함께한 鄭柄國 長官.



    ▼ 個人의 人氣에 依支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或是 박근혜 前 代表를 의식한 發言입니까?

    “그건 아니고, 우리나라 政治 地形을 잘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政治構造學的으로 分析해보면 個人의 人氣로 選擧에서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最終走者가 決定되면 支持 勢力의 兩分現象이 나타나고, 結局 中間地帶의 5%를 어느 쪽에서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勝敗가 갈리는 거지요. 個人의 人氣로 決判이 난다면 한나라당이 이기는 것은 明若觀火하지 않겠습니까(4월 中旬 現在 各 言論의 輿論調査에 따르면 次期 豫備 大選候補들 가운데 박근혜 前 代表가 不動의 1位를 달리고 있다). 決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不安한 거고요.”

    過去 南·元·政이 活潑하게 改革을 推進하면서‘친박계’와 많이 부딪쳤기 때문에 던진 質問이었는데 鄭 長官이 直答을 避했다.

    ▼ 現役 3選 議員이고 長官인데 그 다음 目標는 무엇인지요?

    “只今까지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村놈이 長官까지 됐는데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每 瞬間 저에게 주어진 일에 最善을 다할 뿐입니다. 國會議員으로 最善을 다하다보니 長官이 됐고, 長官으로 最善을 다하다보면 또 다른 役割을 맡을 수도 있겠지요.”

    濠洲 加平大隊가 준 感動

    ▼ 시드니에 到着해서 6·25戰爭 參戰勇士와 戰爭未亡人들을 만났는데요.

    “저는 機會 있을 때마다 參戰勇士들의 恩功에 感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特히 昨年이 6·25 勃發 60周年이어서 많은 분을 招請해서 慰勞하고 韓國의 發展相을 보여주었습니다. 參戰勇士 스파이徐氏가 그러더군요. 언제부턴가 韓國戰爭이 ‘잊혀진 戰爭(Forgotten War)’이 됐는데 韓國人들이 잊지 않는다는 걸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요. 그리고 韓國의 發展相을 지켜보면서 自身들의 犧牲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確認한다면서 韓國이 正말 고맙다고 말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 濠洲에 있는‘가평대대’를 訪問한 所感이 어떠한지요?

    “事實 저는 濠洲에 ‘加平大隊’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신동아’에서 보내온 書面質疑書에 ‘加平大隊’內容이 있어서 알아보았는데, 京畿道 加平 一帶에서 큰 功을 세운 部隊가 한글 이름을 붙이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시드니에서 1時間 距離에 있는 部隊를 訪問했더니 太極旗가 揭揚돼 있고 兵士들이 堵列해서 저를 맞이했습니다. 參戰勇士들과 戰爭未亡人들을 만나고 ‘加平大隊’를 訪問하면서 濠洲에 깊은 連帶感을 느꼈습니다.”

    鄭 長官은 시드니에서도 돋보이는 東洋人이었다. 멋을 아는, 옷 입는 센스가 아주 뛰어난 멋쟁이였다. 그가 2010年에 베스트 드레서(政治人 部門)로 뽑힌 게 偶然이 아니었던 듯하다.

    “이 옷이 25萬원짜리입니다. 大學同氣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紳士服業體를 運營하는데요, 그 親舊가 學校 다닐 때는 工夫를 熱心히 하지 않았지만 社會에 나가서 正말 熱心히 살았습니다. 더욱이 障礙人에게 남다른 配慮를 해주고 있어서 큰 感銘을 받고 있습니다. 그 親舊도 만날 兼 그 會社에 몇 番 가봤더니 自閉兒 障礙人을 30% 以上 雇用하고 있더군요. 아마 내 옷이 좋게 보인다면 그런 事緣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政治人도 臺中한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端正하게 보이려고 努力합니다.”

    이 대목에서 남을 配慮할 줄 알고 實用性을 追求하는 政治人, 그리고 藝術的이고 觀念的인 아우라가 묻어나는 文化部 長官의 이미지가 겹친다. 鄭 長官이 아름다운 保守 이미지를 줄곧 維持할지 지켜볼 일이다.

    시드니 바다에 띄운 韓國文化의 배

    4月5日子 濠洲 有力 日刊紙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소프트파워의 攻勢(Soft-power offensive)’라는 타이틀의 記事를 크게 실었다. 이 新聞은 韓國이 濠洲에서 自國 文化의 攻勢를 始作했다고 分析하면서 ‘IT 强國의 面貌를 遺憾없이 보여주는 公演場을 겸한 멀티미디어 展示室 및 갤러리, 圖書館, 言語敎育室, 寒食 調理室 等으로 꾸며진 한국문화원이 濠洲를 攻掠하는 據點이 됐다’고 報道했다.

    이어 ‘韓國이 先進國으로 進入하는 順坦한 길을 걷고 있다. 21世紀 文化가 韓國 未來의 發展을 圖謀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믿는다’는 鄭柄國 文化體育觀光部 長官의 開院式 演說을 紹介했다. 記事 右側 上段에는 韓國 古典舞踊手의 寫眞이 크게 실렸다.

    4月4日 저녁에는 시드니타운홀에서‘우리 깊은 因緣(Celebrating Mateship)’이라는 題目의 開院 祝賀公演이 現地人과 韓人同胞 等 1500餘 名의 歡呼 속에 盛況裏에 치러졌다. 지난해 末 構成된 G20 頂上會議 公演團(송승은 藝術監督)李 國樂 재즈, 現代舞踊과 傳統衣裳 퍼포먼스, 안숙선 名唱의 판소리 等의 레퍼토리로 公演場을 感動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로빈 이얀슨 濠洲詩人協會 會長은 “衣裳 퍼포먼스와 안숙선의 公演을 보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내 生涯에 觀覽한 傳統公演 中에서 最高였다”고 말했다.

    金映洙 시드니韓國文化院 初代院長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文化院 開院을 앞두고 집을 왜 짓는지 집에서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苦悶했다. 期待해달라”고 抱負를 밝혔다. 김진수 시드니總領事의 다짐도 決然했다.

    “시드니韓國文化院 開院 以前과 以後가 크게 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地球 反對便에 있는 먼 나라인 濠洲가 마치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진다. 空間的인 거리를 單숨에 좁혀놓는 文化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濠洲에서 韓國文化가 활짝 꽃필 수 있도록 最善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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