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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正한 大舶’을 꿈꾸는 사람들의 興夫奇行|新東亞

‘眞正한 大舶’을 꿈꾸는 사람들의 興夫奇行

‘親環境·나눔·이노베이션을 實踐하는 興夫가 살아 있다’

  • 이명재| 저널리스트 promes65@gmail.com

    入力 2011-04-21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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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龍仁 閑宅植物園, 韓國 와인의 메카인 嶺東 와인코리아, 將星 축령산 扁柏나무 숲, 無所有 삶을 實踐하는 將帥 좋은 마을에 興夫 精神을 좇는 一團의 사람들이 모였다. 親環境 精神, 이노베이션에 立脚한 大박 實現 精神, 나눔과 不有(不有)의 精神을 實踐해가며 ‘大舶’을 터뜨린 사람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진정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흥부기행

    興夫紀行에 參加한 사람들이 축령산 扁柏나무 숲에서 숲解說家로부터 說明을 듣고 있다.

    #1 4月9日 아침 7時40分頃. 一行 90餘 名을 태운 버스가 서울 양재역 西草區廳 앞을 떠나자 金映豪 유한대 總長이 마이크를 잡고 人事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昨年에 왔던 제비들 이렇게 다시 만났네요. 우리 時代 興夫들을 만나러 또 떠나봅시다.”

    #2 1泊2日의 日程이 모두 끝난 이튿날 午後 全南 長城郡 축령산 入口 금곡마을 어귀. 紀行에 參加한 이들이 버스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는 興夫紀行이 아니라 놀부紀行도 가봅시다.” 누군가 弄談처럼 말하자 다른 사람이 이를 받아 얘기했다.

    “興夫紀行이 곧 놀부奇行이죠. 우리 마음속에 興夫와 놀부가 다 있을 테니까요. 天使와 惡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天使와 惡魔가 共存하듯이 말이에요.”



    4月의 둘째 週末인 9,10日 이틀間 있었던 ‘興夫奇行’의 처음과 끝 場面이다. 이들은 누구이고, 또 ‘興夫奇行’은 무엇인가? 每年 4月 初에 興夫紀行이라는 이름으로 全國을 찾아다니는 이 旅行 프로젝트는 올해로 13回째. 이제는 文化踏査度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특별한 主題를 갖고 떠나는 旅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興夫紀行은 여느 旅行과 다른 特別한 奇行이다. 旅行이기도 하고, 文化 踏査이기도 하고, 세미나이기도 한 이 紀行은 이 時代의 興夫 찾기를 통해서 韓國 資本主義, 韓國 社會의 바람직한 發展을 摸索하는 奇行이다.

    金映豪 總長은 “21世紀는 以前과는 또 다른 時代다. 天然資源의 枯渴, 環境汚染, 金融危機 等이 實際로 우리 삶을 威脅하는 狀況에서 興夫는 이러한 時代 狀況에 맞춰 다시 解釋되어야 한다”고 說明했다.

    왜 興夫인가?

    興夫紀行은 글字 그대로 興夫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왜 이 時代에 저 옛날의 小說 속 人物인 興夫를 찾는 것일까? 이들에게 興夫는 착한 資本家이며, 生態主義者이며, 博愛主義者다. 제비의 生命을 살린 善行으로 큰 財物을 얻었지만 그걸 혼자 차지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도운 博愛主義者이고,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 ‘착한 資本家’의 圓形이며, 제비를 해치려 한 구렁이조차 죽이지 않고 놓아준 ‘生命運動家’다. 그와 같은 興夫의 삶과 哲學을 實踐하는 이 時代 興夫의 後裔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興夫紀行은 무엇보다도 興夫의 名譽를 復權시키는 것이다. 우리 社會에선 한때 興夫를 새롭게 보려는, 아니 正確히 말하면 興夫를 格下하고 놀부를 높이 再評價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歷史的 人物에 對한 再評價를 하듯 興夫傳을 새롭게 解釋하면서 놀부를 資本主義 精神의 具現者로 肯定的으로 評價한 反面 興夫는 못난 人間으로 보는 視角이 擡頭됐다. 卽 興夫는 게으르고 惰性에 젖었으며 責任도 지지 못하면서 子息만 無條件 많이 낳은 否定的인 人間型으로 批判받았다. 이 같은 論理는 꽤 그럴싸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적잖은 共感을 불러일으켰다. 興夫奇行을 主導한 金映豪 總長이 當時 놀부 再評價에 앞장섰던 이라는 點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그는 “내가 興夫를 깊게 發見하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興夫의 再發見은 이에 對한 反省에서 나왔다. 아니 嚴密히 말하면 興夫를 ‘제대로 알기’ 爲한 努力이다. 그건 우리가 興夫를 알기도 前에 그를 죽여버렸다는 自覺이었다. 興夫의 人間像을 제대로 알기도 前에 그를 못난 人間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를 몰아낸 자리에 놀부를 불러들이고 놀부型 人間을 바람직한 人間像으로 높여 놓았다. ‘이웃 間에 和睦하고, 親舊에게 믿음이 있는(신재효 版本 ‘興甫歌’ 中)’ 興夫를 몰아내고 ‘남의 先山에 墓地 쓰고, 一年 품팔이 外相 死境(私耕)에 농사지어 秋收하면 옷을 벗겨 내쫓은’ 놀부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理想的인 人間型으로 받든 것이었다.

    ‘진정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흥부기행

    興夫紀行에 同行한 판소리꾼 임진택氏가 創作 판소리 ‘남한산성’을 試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에서 興夫를 몰아낸 것은 但只 興夫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人間性과 德性을 버린 것이며, 配慮심을 버린 것이며, 착한 心性을 몰아낸 것이었다. 놀부를 바람직한 人間型으로 받아들인 것은 곧 우리 안의 貪慾과 이기, 無限 競爭, 無限 消費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興夫의 追放은 우리 안의 貪慾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 貪慾은 無限 競爭의 利己主義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無限 競爭은 우리 안의 怪物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그런 反省이 興夫를 다시 發見하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事實은 只今도 興夫는 如前히 否認되고 있다. 우리가 事實 興夫보다는 놀부가 되고자 하는 內心은 “富者 되세요”라는 낯 뜨거운 人事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우리 社會의 風景 속에서 고스란히 發見할 수 있다. 그러므로 興夫를 眞情으로 復權시키는 것은 곧 우리 안의 興夫를 찾는 것이며 우리 안의 참人間을 回復하는 것일 때야 可能하다. 그런 點에서 ‘모든 古典은 新刊’이라는 말이 있듯, 興夫의 再評價는 但只 過去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現在를 보여주는 것이다. 興夫를 찾아 떠나는 興夫奇行을 마련한 뜻이 여기에 있다.

    새로운 社會를 꿈꾼다

    興夫의 再發見, 바로 알기는 우리의 過去 잘못에 對한 反省과 覺醒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아가 새로운 삶, 새로운 社會, 우리의 未來像에 對한 摸索이다. 興夫의 稟性과 人間性, 삶의 態度에 只今 우리 社會의 問題를 解決할 答, 未來의 展望이 있다는 發見이다. 金融危機 等 歷史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未來는 貪慾이 아닌 興夫의 配慮에 있으며, 殺傷과 破壞가 아닌 生命의 尊重에 있음을, 緻密한 利器가 아니라 넉넉한 興夫의 마음에 있음을 提示하고 있다.

    “이웃 間에 和睦하고, 親舊에게 믿음이 있어, 굶어서 죽을 사람 먹던 밥을 덜어주고, 얼어서 병든 사람 입었던 옷 벗어주기, 老人이 짊어진 짐 自請하여 져다주고, 장마 때 큰 물가에 삯 안 받고 건네주기, 남의 집에 불이 나면 세간살이 지켜주고, 길에 寶物이 빠졌으면 지켜 섰다 임자 周忌, 淸算에서 白骨을 보면 깊이 파고 묻어주며, 守節 寡婦 褓쌈하면 쫓아가서 빼어놓기, 어진 사람 謀陷하면 代身 나서서 辨明하고, 불쌍한 사람의 橫厄을 보면 달려들어 救援하기, 길 잃은 어린아이는 저의 父母 찾아주고, 酒幕에 병든 사람 本집에 奇別 傳하기, 막 깨어난 벌레를 죽이지 않고 자라는 草木을 꺾지 않는(신재효 版本 ‘興甫歌’ 中에서)” 興夫의 마음에서 우리 社會의 未來, ‘오래된 未來’가 있음을 提示하는 것이다.

    金映豪 總長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王子’ 얘기를 꺼내며 “어린 王子에 나오는 잃어버린 薔薇에 對한 責任보다 興夫의 ‘제비 다리’에 對한 責任이 ‘社會責任經營’을 더욱 잘 說明해주는 發展된 事例”라고 말했다.

    興夫紀行은 金映豪 總長의 主導로 만들어졌지만 또한 여러 名의 産婆가 함께했다. 1990年代 後半 金映豪 總長(當時 경북대 敎授)을 中心으로 박중구 서울과학기술대學 敎授(當時 産業硏究院 硏究員), 興夫의 고장인 南原이 故鄕인 김재성 前 대한매일 論說委員, 良心的 企業人의 代名詞 格인 柳一韓 博士가 創業한 유한 킴벌리의 문국현 前 社長 等이 興夫奇行 初期 段階에서 함께 論議했다. 박중구 敎授는 “當時 우리의 關心은 賤民 資本主義에 對한 反省에 있었다”고 말했다. 興夫紀行이 닻을 올리자 적잖은 ‘同志’가 모여들었다. 髙銀 詩人, 環境運動家 최열, 박원순 辯護士, 도법 스님, 김용택 詩人 等이 興夫紀行에 함께했다. 次 1代로 始作한 紀行은 6回부터는 2臺로 늘어났다.

    興夫奇行 올해로 13年째

    올해 興夫紀行의 主題는 ‘숲과 나무-生命이 숨 쉬는 現場’이었다. 숲과 나무와 關聯해 興夫精神을 實踐해나가는 地域 現場을 찾아갔다. 每年 5,6個의 訪問地를 찾아가는 빡빡한 旅行 日程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民間 植物園의 맏兄뻘인 京畿 龍仁 閑宅植物園과 韓國 와인의 메카인 忠北 嶺東 와인코리아, 全南 將星 축령산 扁柏나무 숲, 無所有 삶을 實踐하는 全北 長壽 좋은 마을이 올해 興夫奇行팀이 찾아간 곳이었다. 訪問地를 決定하는 것은 ‘興夫經營’에 立脚한 事業 方式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點을 基準으로 한다. 양민호 興夫奇行 運營委員長은 “興夫經營이란 親環境 精神, 이노베이션에 立脚한 大박 實現 精神, 나눔의 實踐과 不有(不有)의 精神 等 興夫精神을 實踐해나가며 이를 통해 ‘大舶’을 터뜨린 經營方式”이라고 說明했다.

    ‘진정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흥부기행

    興夫奇行 參加者들이 全北 南原 人月曜業의 展示場을 구경하고 있다.

    13年間 興夫紀行이 다녀간 곳은 50곳을 훌쩍 넘는다. 다시 찾아간 곳도 間或 있지만 大體로 每年 새로운 곳을 찾는다. 最近 다녀온 곳을 列擧해보면 全南 谷城의 發芽玄米 專門業體인 ㈜迷失란(美實蘭), 蟾津江 汽車마을, 自活 共同體인 새벽營農組合, 健康힐링體驗 마을인 안덕 파워빌리지, 世界 最初 ‘물고기마을’, 光陽의 홍쌍리 梅實農場, 智異山 野生花에서 世界 最高級 香水를 開發한 事例, 生態農法으로 大舶을 터뜨린 槐山郡, 나비로 大舶을 터뜨린 咸平郡 等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아름답게 맺자는 뜻의 迷失란 마을, 全羅線 鐵道 以前으로 無用之物이 된 蟾津江邊의 廢鐵道를 引受해 많은 觀光客을 불러 모으고 있는 蟾津江 汽車마을, 有機農 農産物인 새벽상추를 栽培하는 ‘循環營農’ 方法으로 低所得階層의 自立을 摸索하는 새벽營農組合 等은 모두 興夫經營에 立脚한 革新과 나눔의 精神을 보여주는 곳이다.

    휴머니즘 있어야 眞正한 大박

    여기서 ‘大박’이라는 말에 對해 說明이 必要하다. 그러지 않으면 흔히 얘기하는 벼락富者를 의미하는 大舶으로 誤解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興夫紀行에서 大박의 意味는 제비가 가져다준 박씨에 담긴 意味처럼 여러 가지 面에서 볼 수 있다. 興夫紀行이 말하는 大박은 單純히 돈을 많이 벌고 못 버는 게 基準이 아니다. 무엇보다 興夫의 마음처럼 그 바탕에 휴머니즘이 살아 있어야 한다. 또한 大박은 世間에서 말하는 成功과 失敗의 基準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黑字를 내고, 큰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를 基準으로 成功 아니면 失敗로 區分 짓는 二分法을 따르지 않는다. 그 事業이 보여주는 可能性, 우리 社會가 지켜주고 키워줘야 할 價値가 있느냐, 只今은 어렵고 失敗한 듯 보여도 북돋워주고 應援을 보내주면 相當한 成就를 보여줄 수 있는 可能性에 注目한다.

    올해 찾아간 全北 長水郡 번암면 유정리 멍덕골의 ‘좋은 마을’이 그 좋은 事例다. 이곳에는 7年째 無所有의 삶을 實踐해오고 있는 以南曲 代表가 살고 있다. 서울大 法大에 다니던 靑年 時節 反獨裁 運動으로 獄苦를 치르고 나온 以後 人間의 삶, 人間의 進步에 對해 끊임없이 摸索하고 있는 그는 간디가 꿈꾸었던 작은 마을에서 共同體的 삶을 具現해보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서는 生産者의 ‘마음 씀’을 第一의 技術로 한다. 이곳의 自然條件은 밭作物과 杖流를 生産하는 데 最適이지만 아무리 좋은 沃土라도 사람이 아니면 이루어낼 수 없는 要素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眞心으로 對하듯 生産物 하나하나에 온 精誠을 다한다. 이곳에서 在來 方式으로 生産되는 된醬과 朝鮮간醬, 고추醬, 淸麴醬, 장아찌, 고추, 마늘 等에는 添加物이나 化學肥料, 農藥을 一切 使用하지 않는다. 家畜의 糞尿와 쌀겨, 깻묵 等으로 만든 者가 肥料를 쓰는 이곳의 年間 賣出은 1億5000萬원 程度. 經濟的 採算性이 걱정스러웠던 듯 一行 中 하나가 收支가 맞느냐고 묻자 以南曲 代表는 “이 程度면 大박이죠”라고 말한다. 採算性과는 別個로 좋은 마을의 한 可能性을 보이고 있다는 點에서 充分히 大舶이라는 意味였다.

    宿所로 자주 利用하는 인산가(仁山家)도 하룻밤 잠을 자고 가는 곳 以上의 意味가 있는 곳이다. 慶南 咸陽郡 三峯山 기슭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인산가는 民俗 한醫學者인 因山 김일훈 先生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다. 許浚의 스승으로 알려진 山淸 유의태 議員의 現身이라고 불린 因山 先生이 難治病 患者를 맞아주며 활人口世(活人救世)의 큰 뜻을 펼치던 곳이다. 김일훈 先生은 1909年에 태어나 16歲 때부터 光復運動에 加擔, 日本 警察의 追擊을 避해 다녔는데, 그 渦中에도 가는 곳마다 病者들을 治療했다고 한 傳說的인 名의(名醫)였다. 그를 찾아온 患者들은 大部分 가난하고 疏外된 이들이었다. 그의 仁術과 印本 精神, 그의 삶 自體야말로 興夫 精神의 한 具現이었다.

    배움으로서의 奇行

    興夫紀行에서는 恒常 첫날 저녁 時間에 세미나가 열린다. 興夫精神을 큰 主題로 한 다양한 內容에 對해 發題와 討論이 벌어진다. 예컨대 ‘興夫精神과 構造調整의 對案에 對한 摸索’ 式이다.

    그러나 興夫紀行이 學習 紀行인 것은 이처럼 세미나가 열려서만이 아니다. 事實 길을 떠나는 것은 그 自體가 배움이다. 冊 아닌 冊을 읽는 것이다. 그건 길을 떠난 이가 마음이 열려 있고 배울 意志가 있다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問題意識을 만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便으로는 自身의 問題意識과 생각을 더욱 벼리고, 한便으론 다른 이의 問題意識과 眼目을 接하게 된다. 興夫紀行은 바로 배움으로서의 旅行의 한 模範을 보여준다. 興夫紀行에서는 늘 討論하고 論議한다. 韓國 社會의 다양한 問題에 對한 勤策(根策)과 勤策(近策), 原因(原因)과 原因(遠因)에 對한 意見 交換이 活潑히 이뤄진다.

    양춘승 社會責任投資포럼 常任理事에게는 興夫紀行이 熾烈하게 살았던 1970年代의 苦悶을 더욱 깊게 하는 時間이다. 企業의 社會的 責任을 높이는 일을 하는 그에게는 興夫紀行이 自身이 하는 일의 살아 있는 實例들을 볼 수 있는 貴한 機會다. 慶北大 엄창옥 敎授(經濟學)는 最近 數年間 地方과 地方大의 疏外 問題에 對해 硏究해왔다. 그는 지난해 地域 人材의 流出에 따른 地域의 經濟的 損失을 調査한 結果에 對해 얘기를 꺼냈다.

    “地域 人材들이 서울의 大學에 入學해 地域을 떠남으로 인해 빚어지는 損失이 地域內 總生産의 1.6%나 되더군요.”

    深刻해하는 嚴 敎授에게 知識PD 씽크넷이라는 社會的 싱크탱크를 運營하고 있는 임진철 代表가 “全國의 國立大들을 네트워킹으로 묶고 序列化를 막을 수 있는 代案을 講究해야 한다”는 方案을 내놓았다. 一村共同體 임영희 理事는 血緣的 家族制度가 崩壞하는 狀況에서 地域社會를 單位로 새로운 家族制度人 社會的 家族, 卽 一寸 運動에 對해 얘기했다.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라도 오랫동안 사귄 사람처럼 關心事를 놓고 眞摯한 對話를 나누는 걸 보면 ‘論語’에 나오는 ‘四海지내 個兄弟(四海之內 皆兄弟)’라는 말이 떠오른다. 피를 나눈 兄弟之間이 아니더라도 뜻과 생각이 같으면 누구든 다 兄弟間이라는 말이다.

    世代 間 壁 허물어

    또한 興夫紀行은 世代 間의 對話가 活潑히 이뤄지는 機會다. 先後輩 間 傳承과 敎育, 刺戟을 주고받는 것이다. 相互 敎學을 통한 上場(敎學相長)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올해 奇行에서도 老年에서부터 壯年과 靑年까지, 또 어린아이까지 나이를 잊고 한데 어울렸다. 김경희 지식산업사 代表, 元老 出版人 김종규 博物館協會 會長, 장만기 人間開發硏究院 院長 等 七旬을 넘긴 이들이 20, 30代의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함께했다. 이들은 元老로서 旅行에 參與한 게 아니라 學生으로 온 것이었다. 孔子나 茶山 丁若鏞이 平生 學生이었던 것처럼 이들이 旅行에 參與하는 모습에서 學生을 發見할 수 있었다. 그런 點에서 興夫紀行은 學校를 어디를 나왔건, 다만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서 眞正한 同門 關係를 맺게 해주는 셈이었다.

    一行을 태운 버스가 長城에 進入하려고 할 때였다. 장만기 人間開發硏究院腸이 자리에서 일어나 將星에 對해 說明했다. 張 院長은 1975年 2月부터 36年 동안 1600回가 넘는 朝餐모임을 열고 있다. 그는 36年 동안 한 番도 거르지 않고 朝餐會를 開催하고, 延人員 約 30萬名이 參與해 ‘朝餐모임의 代父’ ‘미스터 스터디’로 불리는 이다. 그리고 將星은 人間開發硏究院이 ‘將星 아카데미’를 열어서 因緣을 맺은 곳이다. 그는 將星에 對한 자랑을 하고는 “將星은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내 故鄕”이라고 告白하듯 말했다. 各種 ‘年(緣)’으로 얽히고설킨 우리 社會에서 어쩌면 張 院長의 말이야말로 眞正한 因緣의 模範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건 學緣 地緣 血緣이 아닌 眞正한 同門 關係, 旅行이 맺어준 참 東門의 因緣이었다.

    特히 올해 紀行에 아이들이 많이 參與한 건 旅行의 活力을 더욱 높여 주었다. 25名에 達하는 興夫의 茶山(多産)을 생각하더라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함께한 것은 그의 茶山이 갖는 生命力을, 低出産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나라의 狀況에서 未來의 活路는 어디에 있는지를 어린이들의 그 天眞한 웃음과 싱싱함으로 생생하게 일깨워줬다. 이 아이들은 또한 어른들에게 가르침을 줌으로써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임을 보여줬다. 一行 中에 가장 人事를 잘한 사람은 일곱 살 된 동욱이었다. 동욱이는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허리를 숙여 버스 技士에게 고마움을 表示했다. 그것이 父母의 敎育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르나 그 절을 眞心으로 꽉 채운 것은 동욱이의 어진 마음이었다. 많은 어른이 이 어린이에게서 ‘스승’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自然을 敬拜하다

    興夫紀行은 13年間 進化하고 發展하면서 變化도 꽤 있었다. 旅行地圖 每年 다르고, 參席者도 每年 多少 差異가 있으며, 旅行의 主題도 每年 새롭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變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興夫奇行 一行을 맞아주는 꽃과 나무들, 自然의 변함없는 態度다. 山水 좋은 곳을 찾아가는 旅行은 旅行客에게 算數紀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甫吉島, 南道의 蟾津江邊 모래톱, 진도와 順天灣 等 南道의 絶景을 맛보는 紀行은 눈이 奢侈를 부릴 수 있는 幻想的인 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山水紀行은 團地 景致 좋은 곳을 찾아 다니는 閑暇로운 行樂은 아니었다.

    ‘진정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흥부기행

    올해로 13回째인 興夫紀行에 參加한 사람들.

    景致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茶山 丁若鏞은 빼어난 算數를 찾아가는 것에 對해 ‘하늘은 1年을 한 樂章으로 싹트고 蕃盛하는’ 循環의 秩序를 이루고 있음을 얘기하면서 그 自然과 算數를 찾아가는 것은 敬虔한 自然의 秩序에 禮儀를 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옛 선비들이 自然 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修養한 뜻이 거기에 있었다. 이들에겐 現實과 自然이 다르지 않았다. 自然으로 돌아가는 것은 선비들에게 逃避가 아닌 熾烈한 삶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歸去來辭’의 陶淵明이 全혀 現實逃避의 隱遁者가 아니라 누구보다 熾烈한 戰鬪的 知識人이었다는 點을 想起해볼 만하다.

    興夫紀行이 멋진 自然을 찾아다니는 것은 興夫가 自然의 攝理에 謙虛하게 스스로를 낮췄던 것처럼 自然의 順理를 배우는 것이다. 꽃을 피우고 싹이 트며, 죽음 속에 誕生을 準備하는, 自然의 勤勉과 誠實을 배우는 것이다. 享樂과 遊興으로서가 아닌, 自然에서 배우고, 自然을 爲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곧 人間 自身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임을 배우는 것이다. 그럴 때야 興夫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興夫紀行의 自然紀行은 結局 國土紀行이며, 그 國土紀行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完成된다. 그런 意味에서 全國의 땅과 섬, 山과 江을 찾아다니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이를테면 ‘新(新) 擇里志’를 쓰는 것이다. 박태순은 1980年代 初에 쓴 ‘國土紀行’에서 ‘國土는 그냥 땅이 아니다. 自己 삶을 얹어놓고 있는 人生의 터가 된다. 國土는 國家의 땅이라는 意味가 아니다. 國民의 땅, 민토(民土)라는 意味이다. 民衆이 그 속에서 삶을 營爲하는 땅이 곧 國土이다’라고 썼다. 그는 그래서 國土는 ‘人文地理의 事實에 依해 認識되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自身의 삶에 依해 積極的으로 認識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므로 興夫紀行의 自然 巡禮, 國土紀行은 2008年에 興夫紀行이 찾아갔던 조태일文學觀에 걸려 있던 그의 詩 ‘國土 序詩’가 얘기하듯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의 意味가 있는 것이다.

    文化紀行

    興夫紀行에서는 恒常 豐盛한 文化公演이 벌어진다. 이番에는 어느 해보다 묵직한 公演이 펼쳐졌다. 創作 판소리인 ‘남한산성’의 첫 試演이 열린 것이다. 재야 판소리꾼인 임진택氏는 自身이 曲을 만든 이 판소리의 첫 試演 觀客으로 興夫奇行 參加者들을 選擇했다. 旅行 첫날 저녁 豫定時刻보다 遲延된 9時가 넘어서야 始作된 판소리 公演은 勞困한 하루의 疲勞를 달아나게 할 만큼 觀客들을 흠뻑 빨아들였다. ‘남한산성’이라는 題目에서 쉽게 聯想되듯 決定的인 대목은 三田渡에서 仁祖가 淸나라에 降伏하는 場面이었다.

    ‘내려간다 내려간다 南漢山城을 내려간다/ 푸른 옷을 걸쳐 입고 흰 말에 올라타고/ 序文 밖으로 내려갈제/ 三政丞과 判書 承旨들이 賃金 뒤를 따라가고/ 世子 소현이 그 뒤를 따라간다/ 性에 남은 臣下들은 가슴을 치고 痛哭하고/ 百姓들은 목놓아 우는데… 朝鮮 賃金이 무릎을 꿇고 淸나라 皇帝에게 降伏을 하는데/ 한 番 절하고 세 番 머리 조아리고/ 또 한番 절하고 세 番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또 한番 절을 하고 또다시 세 番 머리를 조아리니/ 三拜 舊고두례라’

    痛恨의 場面에 觀客들은 歎息을 吐해냈다. 속으로 흐느끼고 뭉클해지더니 이어지는 대목에서 一部는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임금이 황망히 都城으로 들어갈 제/ 길가에는 죽은 百姓들 屍體가 널려 있어 慘酷하기 그지없거늘/ … 賃金이시여 어데로 가십니까?/ 불쌍한 百姓들을 버려두고, 可憐한 民草들을 이냥 두고/ 賃金이시여 어데로 가십니까?/ 戰爭의 慘禍는 結局 無辜한 百姓들과 軍士들 애꿎은 女人들과 아이들, 神聖한 집과 땅, 논과 밭이 유린당하는 것뿐일러니/ 수많은 男女 百姓들의 울부짖는 아우聲에 山川도 흐느끼고 草木도 우는구나’

    事實 저녁의 文化 公演만이 아니라 移動 中 버스 안에서도 때때로 여러 가지 形態의 文化 公演이 自然스레 펼쳐지는 것이 興夫紀行의 特徵이다. 時調唱을 하는 國立國樂院 團員 門玄氏는 前날 公演에서 黃眞伊의 ‘冬至달 기나긴 밤을…’의 時調唱을 悠長한 呼吸으로 들려주더니 이튿날 歸京길 버스 안에서 時調唱에 對한 簡單한 敎習까지 해 줬다.

    詩를 쓰는 정영옥氏는 自作詩 ‘自由’를 읊었다.

    ‘내 球速은 목 짤리운 것이 아니다/ 안으로 안으로 精製되는 아우聲/ 永劫보다 偉大한 刹那의 죽음을 딛고/ 白旗 흔들며 降伏할/ 그대 사랑 기다리는 것은/ 그대의 自由보다/ 나의 拘束이/ 더 敬虔하기 때문이다’

    生態主義的 노래를 普及하는 이기영 호서대 敎授는 奇行 때마다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 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라는 自作 노래를 들려준다. 韓國人의 遺傳子에 흐르는 歌舞, 風流의 멋을 다들 멋들어지게 發散했다.

    扁柏나무 香보다 津한 香

    1泊2日의 마지막 日程은 將星 축령산 扁柏나무 숲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全北 高敞과 全南 將星 間의 境界를 이룬 축령산(621m) 一帶에는 40~50年生 扁柏과 삼나무 等 늘 푸른 常綠樹林이 1148㏊에 造成돼 있다. 執念의 조림家 임종국 先生의 畢生의 業績으로 널리 알려진 이 森林의 鬱蒼한 扁柏나무 杉나무는 보기만 해도 壯快했다. 이곳의 水腫이 自生 數종이 아닌 日本에서 輸入된 扁柏나무라는 것에서 多少 不滿을 가진 이들도 있는 듯했으나 이렇듯 훌륭하게 자라서 사람들에게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으니, 나무에 國境을 따질 必要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이 廣闊한 森林 속 어느 한便에 임종국 先生의 樹木葬地(樹木葬地)가 있다. 意外이던 건 樹木葬에서 흔히 聯想되는 높고 큰 나무가 아닌 어른 키 높이를 조금 넘길 程度의 작은 느티나무 아래 묻혀 있다는 事實이다. 처음엔 뜻밖이었으나 곧 그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 작은 나무가 自身의 피와 살을 먹고 크기를 바라는 希願을 담고 있는 듯했다. 오히려 높은 키의 나무를 심은 것보다 그 뜻이 더욱 높아 보였다.

    그가 이 숲에 쏟은 執念과 精誠에 對해 生前에 그에 맞는 補償, 特히 經濟的 補償을 받지 못한 것에 對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숲 解說死因 김인숙氏를 만난 것이 축령산에서 가장 記憶에 남는 일이 된 건 이런 아쉬움에 對한 그의 對答 때문이었다.

    “많은 이가 이 숲을 통해 그를 記憶해주니 그는 眞正으로 잘 산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이 말에서 그가 眞情으로 이 숲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축령산의 또 다른 이름인 ‘문수산’의 起源이 된 文殊菩薩의 智慧가 그에게 깃들어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멀리서 온 사람들을 眞心으로 歡待하며 온 精誠을 다하는 김인숙氏의 마음 씀씀이에서 임종국氏가 키운 건 나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런 어진 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興夫가 제비를 돌보고 이웃들을 돌보고 나그네들을 對한 것도 저랬을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扁柏나무들은 凜凜했다. 그 風貌에는 威嚴이 넘쳤다. 그 나무들이 堵列한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온몸을 淸凉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바람은 또한 따뜻했다. 김인숙氏처럼 사람을 眞心으로 對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기에 薰薰했다. 扁柏나무 숲의 香보다 그 香氣가 더욱 津했다. 거기에서 또한 興夫의 마음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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