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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신동아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리얼해서 슬픈 게임 ‘내 꿈은 正規職’ 大박 이진포 퀵터틀 代表

  • 강지남 記者 | layra@donga.com

    入力 2015-05-22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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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써 19番째 勸告辭職이다. 業務에 바빠 上司 呼出을 놓쳤다가, 하루 接續 안 해 ‘無斷缺勤’으로, 眞짜 熱心히 일했는데 會社가 亡해서…. 題目부터 슬픈데 直接 해보면 더 슬픈 모바일게임, ‘내 꿈은 正規職’ 얘기다. 이 게임의 目標는 인턴으로 始作해 契約職, 正規職을 거쳐 社長이 되는 것. 입所聞을 타고 한 달 만에 50萬 다운로드를 突破, 인디게임 業界에 波瀾을 일으켰다. 게임 開發者 이진포 퀵터틀(Quick Turtle) 代表는 “엉금엉금 기었더니 생각外로 빨리 有名稅를 타게 됐다”고 말한다.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이진포(28) 氏는 게임 및 인터넷 會社가 櫛比한 서울 九老디지털團地에 산다. 요즘도 거의 每日 밤새워 패치(patch·게임의 一部 파일이나 소스코드 等을 修正하는 것) 作業을 한다는 그를 4月 30日 이 洞네 카페에서 만났다. 게임을 出市한 지 正確히 한 달 되던 날이다.

    # “TV에 내 게임이 나오네…?”

    “只今도 이게 꿈이 아닐까, 잠에서 깨면 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걱정해요. 몇 億씩 마케팅 費用을 쏟아부은 게임도 成功하기 힘든 게 요즘이거든요.”

    李氏는 自炊房에서 女子親舊와 둘이서 ‘내 꿈은 正規職’을 만들었다. 두 달間 李氏가 企劃, 스토리, 디자인 等 모든 리소스를 準備했고, 한 달間 프로그래머인 女子親舊가 코딩을 했다. 自營業 水準도 안 되니 마케팅 餘力이 있을 理 없다. 李氏는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게임 情報 웹사이트에 “처음 게임을 만들어봤다”고 글을 올렸다. ‘應援한다’는 答글이 1時間 만에 60餘 個 달렸다. 以後 다운로드 數字가 쑥쑥 올라가고 使用者 問議가 殺到했다. 一週日이 지나자 言論에서 인터뷰 要請을 해왔고, 2週次에 구글스토어 無料게임 人氣順位 8位에 올랐다. 가장 荒唐한 經驗은 自炊房에서 저녁밥 먹으며 TV 뉴스를 보는데, “靑年失業 世態를 다룬 게임이 나왔다”며 ‘내 꿈은 正規職’이 登場한 거다. “‘헉’ 했죠. 大邱에 계신 父母님께 아직 게임 事業 始作했단 얘기도 안 했는데….”

    # 始作은 ‘개복치’



    2014年 12月 31日, 李氏는 會社 隣近 橫斷步道 앞에서 箱子 하나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前 勸告辭職을 받고 짐을 챙겨 나온 참이었다. 벌써 세 番째 勸告辭職. 그는 2010年부터 게임會社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浮沈(浮沈)李 甚한 業界 特性上 會社가 廢業하거나 팀 自體가 없어지는 바람에 反復해서 ‘짤리는’ 身世가 됐다.

    “다른 業種도 그런가요? ‘애니팡’李 뜨니까 애니팡 같은 게임을 만들래요. ‘이게 뭔가’ 싶지만 어쩌겠어요. 週末도 없이 日해야죠. 그러다 經營 事情이 어려워지면 會社는 모질어지고 職員들은 괴로워져요. 누가 봐도 일 잘하는 職員을 불러다놓고 辱도 하고 火도 내다가 ‘너 나가!’ 하는 社長도 봤어요.”

    # ‘슬로 터틀’ 人生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이진포 氏는 3個月 만에 게임을 完成했디. ‘버틸’ 돈이 딱 3個月値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그는 문득 當時 流行하던 日本 게임 ‘살아남아라! 개복치’를 떠올렸다. 게임 속 개복치는 플랑크톤을 먹으면서 쑥쑥 자라나다가 어느 瞬間 갖가지 理由로 突然死한다. ‘내 處地가 개복치와 다를 게 뭔가’ 곱씹던 中 반짝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느낌이 왔다’. 別의別 理由로 勸告辭職 當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社長이 되는 것이 目標인 게임. 李氏는 바로 다음 날인 2015年 새해 첫날부터 게임 開發에 突入했다.

    李氏는 ‘요즘 보기 드문 靑年’이다. 인턴 經歷도, 海外硏修 經驗도, 甚至於 그 ‘흔한’ 大學卒業狀度 없다. 어려서부터 게임이 좋아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家庭形便 탓에 남서울대 애니메이션學科를 1年 다니고 中退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入隊했고, 轉役 後 다시 生業 戰線에 뛰어들어 同時에 두세 個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장 벌이가 좋았던 건 病院 物理治療室에서 몸이 不便한 患者들을 들어 나르는 일. 그렇게 除隊 1年 만에 300萬 원을 모았다.

    “그 돈을 種子돈 삼아 집에 틀어박혀 1年間 그림만 그렸어요.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다섯 군데 面接을 본 끝에 會社에 처음 들어갔지요.”

    李氏는 늘 直接 게임을 開發하고 싶었다. 그래서 會社에서 어깨너머로 게임 企劃, 開發 等을 배웠고, 月給에서 每달 10萬~20萬 원을 떼 모은 돈으로 脈(Mac) 컴퓨터 本體, 모니터, 게임 開發用 소프트웨어 等을 하나씩 사 모았다.

    마지막 會社를 退社하고 집에 오니 그렇게 모아온 ‘裝備’가 具色을 갖췄고, 通帳 殘高는 300萬 원이었다. 九老디지털團地에서 살려면 알뜰하게 生活한다는 前提下에 房貰 包含 月 100萬 원이 든다고 한다. 그는 딱 석 달 동안 미친 듯이 게임을 開發해보고, 안 되면 다시 就職하든 故鄕에 내려가든 하자고 맘먹었다. 이때까진 ‘퀵 터틀’이 아니라 ‘슬로 터틀’이었다.

    記者는 職場生活 14年次다. 그런데 ‘내 꿈은 正規職’ 게임에선 數도 없이 勸告辭職 當하며 ‘인턴’ 身世를 면치 못했다. ‘성실한 職場人의 標本은 이런 것 아니겠나’ 하며 商社들이 일을 주면 재빨리 받아왔다. 그런데 밀린 業務가 많아 더는 일을 받아오지 못하는 狀況에서도 呼出이 쏟아졌다. ‘나 보고 어쩌라고…’를 되뇌다가 勸告辭職 當했다. 思惟는 ‘勤務怠慢’.

    # 비타500은 건들지 말아요

    “일을 재빨리 받아오는 게 能事가 아니에요. 相對가 懇切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아와야죠. 성실하면 다인가요, 눈치가 있어야지.”

    이 게임은 現實 世界의 文法을 녹여 갖가지 退職 思惟를 만들었다. 書類에 0 하나 잘못 記入하면(업무미숙), 졸고 있는 部下職員을 放置하면(관리소홀), ‘알바’ 하다 걸리면(겸업금지), 正規職 轉換에 두 番 미끄러지면(‘최장 2年’의 非正規職法에서 靈感 받은 설정)…‘짤린다’. 會社 任員이 週末에 다 같이 登山 가자는데, 部下職員이 ‘登山 가기 싫으니 빼달라’고 하면 어떻게 處身해야 할까. ‘내가 責任지겠다’며 빼주면 昇進確率이 떨어진다. ‘네 責任이다’ 或은 ‘體力 기르는 셈 치자’고 하면 昇進 確率이 올라간다.

    上司로부터 ‘돼지를 한番에 굽는 方法이 뭔지 아나? 돼지코에 플러그를 꽂으면 된다네, 하하하’ 類의 ‘核노잼’ 弄談을 들었다면? 正色은 禁物.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社長이 ‘땅콩 좀 가져오라’고 할 땐 접시에 담아가는 게 좋다. 封紙째 가져가면 ‘이게 어느 나라 매뉴얼인가!’ 하는 호통을 듣고 짐을 싸야 한다.

    李氏는 얼마 前 TV 뉴스가 ‘비타500’ 箱子 얘기로 塗褙가 된 날, 비타500 패치를 追加했다. 事務室에 비타500 한 箱子가 놓인 것을 봤다. 마침 목마르던 참이라며 箱子를 열어도 될까. 열면 退社당한다. 李氏는 “뉴스만 틀면 每番 새로운 얘기가 나오니까 追加 所在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갖가지 事由로 數도 없이 勸告辭職 當해야만 인턴에서 契約職, 正規職 巡으로 昇進할 수 있다.



    # “都大體 왜?!”가 듣고 싶다

    李氏는 이 게임을 企劃하면서 또래 職場人 10餘 名을 찾아가 會社 生活에 對해 인터뷰하고 그 內容을 게임에 녹였다. 게임 플레이어는 辭表 낼 自由가 없다. 그렇게 設計한 理由에 對해 李氏는 “내가 그랬으니까”라고 했다.

    “게임 主人公이 ‘더 以上 面接 보러가기 싫은데 學資金 貸出 보면 意志가 생긴다’란 말을 해요. 제 또래들이 딱 그렇거든요. 會社를 관두고 싶어서 관두는 境遇는 거의 없어요. 저는 學資金 貸出은 없었지만, 처음 서울 올라올 때 신협에서 500萬 원을 貸出해 月貰 保證金을 마련했어요. 初俸이 月 150萬 원이었거든요. ‘1年 안에 500萬 원 갚으려면 絶對 짤려선 안 된다’ 싶었죠. 덜컥 怯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職場人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한 가지 疑問이 들었다. 왜 다들 “會社라는 게 元來 다 그런 것”이라고 하는 걸까.

    “‘元來 그렇다’는 말이 무서웠어요. 다들 會社에서 不當한 待遇를 받아도, 他意로 會社를 나가게 돼도 諦念하더라고요. 아무런 疑心 없이 不合理함을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게임에 各種 荒唐한 退職 事由를 집어넣고 숱하게 勸告辭職 當하도록 設計한 意圖에 對해 李氏는 “‘都大體 왜 또 짤린 건데?!’라는 플레이어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게임 유저가 세 部類더라고요. 職場人, 就業準備生, 그리고 그 父母들. 여러 世代가 이 게임을 하면서 靑年 失業과 職場 生活에 對해 얘기하다보면 問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 如前한 ‘未生’…그래도 天職 찾았다

    世界 모바일게임 市場은 올해 303億 달러 規模로 成長할 展望이다. 每年 成長勢는 가파르지만 競爭이 熾烈한 탓에 成功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도 數十 個 게임이 새롭게 쏟아지고, 거의 大部分이 빛도 못 보고 사라진다. 韓國콘텐츠振興院에 따르면 다운로드한 게임을 한 달 以上 즐기는 國內 利用者가 全體 利用者 中 5.5%에 不過하다. 이제 겨우 한 달. 다른 無料 게임처럼 廣告 露出과 아이템 販賣로 賣出을 올리는 ‘내 꿈은 正規職’은 李氏에게 持續 可能한 밥줄이 돼줄까. 그는 “처음 目標價 ‘다음 게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벌자’였는데, 多幸히 한 달 만에 그만큼은 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유저들로부터 ‘내 꿈은 結婚’ ‘내 꿈은 育兒’ 等을 만들어달라는 注文이 들어온다”며 “早晩間 ‘내 꿈은 正規職’을 아시아 國家들에 론칭하고, 여름에는 새로운 게임을 開發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 막 獨立 게임開發者로 나선 李氏의 ‘職級’은 인턴과 社長 사이 어디쯤일까.

    “아직 인턴이고 未生(未生)이죠. 요즘엔 3個月만 人氣를 維持해도 롱런했다고 할 程度거든요. 제 꿈은 繼續 새로운 게임을 만들면서 사는 건데, 앞으로 잘 안 되면 다시 알바 뛰어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番에 正말 신나게 일했어요. 게임 開發이야말로 제 天職(天職)이란 걸 알게 됐죠. 이 程度면 꽤 많이 남은 거 아닐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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