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冷·溫湯 담금질하며 ‘그룹 再建’ 全力投球|新東亞

冷·溫湯 담금질하며 ‘그룹 再建’ 全力投球

박세창 錦湖타이어 副社長

  • 배수강 記者 | bsk@donga.com

    入力 2015-05-21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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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 會社, 반드시 살려내겠다”
    • ‘苦難의 行軍’으로 워크아웃 卒業
    • 스킨십 經營, 謙遜·疏脫 리더십 好評
    • “그룹은 아직 生死 갈림길…보람 찾을 겨를 없다”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박세창(41) 錦湖타이어 副社長은 金壺가(家) 3歲 中 맏兄이지만 一般人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不惑(不惑)을 갓 넘긴 新進이기도 하거니와, 最近 들어 다른 그룹의 ‘손위’ 3世 經營人들이 積極的으로 自己 色깔을 내는 것과 달리 金壺의 浮沈(浮沈) 속에서 그저 默默히 제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錦湖아시아나그룹을 創立한 故(故) 박인천 創業主는 膝下에 5男3女를 뒀다. 박세창 副社長의 아버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會長이 3男, 박찬구 錦湖石油化學 會長이 4남이다. 錦湖價의 3歲 中 아들은 長孫 박재영 氏(46·박인천 創業主의 長男인 故 박성용 2代 會長의 맏아들)와 朴 副社長, 38歲 同甲인 박철완(次男 박정구 3代 會長의 아들)·박준경(4男 박찬구 會長의 아들) 錦湖石油化學 常務다.

    長孫 박재영 氏가 2009年 錦湖 系列社 持分을 모두 팔고 美國으로 건너가 朴 副社長은 그룹 3歲의 맏兄이 됐다. 父親 박삼구 會長이 그룹을 經營하고 있는 만큼 財界 序列 25位 錦湖아시아나그룹의 有力 後繼者이기도 하다. 錦湖아시아나그룹은 한때 斗山그룹처럼 朴三求·饌具 會長의 ‘兄弟 經營’이 이뤄졌지만, 引受合倂을 둘러싼 葛藤으로 現在는 금호아시아나(금호산업, 錦湖타이어, 아시아나航空)와 錦湖石油化學으로 ‘事實上’ 系列分離가 이뤄졌다. 이 過程에서 그룹은 激浪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박세창 副社長에게 지난 5年은 ‘苦難의 行軍’이었다. 그룹 戰略經營本部에서 2010年 워크아웃에 突入한 금호타이어의 營業本部長(상무)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는 會社를 살려내야 하는 至上命令을 實踐할 求心點이 돼야 했다.

    비싼 授業料



    2009年 12月 債權團 管理를 宣言하고 이듬해 錦湖타이어 워크아웃(企業改善作業) 開始 決定이 내려졌지만, 債權團을 說得하지 못하면 워크아웃은 물 건너 갈 수도 있던 狀況. 會社를 어떻게 살릴지를 說明하면서 그는 “할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린 금호타이어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當時 提示한 條件은 ‘90% 元金保障, 10% 出資轉換’. 보기 드문 ‘元金保障’ 約束과 “목숨 걸고 살려내겠다”는 36歲 靑年의 眞情性에 債權團은 “一旦 믿어보자”며 圖章을 찍었다. 朴 副社長은 2010年 워크아웃에 突入하던 狀況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債權團은 ‘우리도 이만큼 犧牲할 테니 너희는 經營으로 步答하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 수밖에 없었다. 債權團 분들도 苦生 많으셨지만, 돌이켜 보면 워크아웃 卒業을 위해 우린 正말 뼈를 깎는 努力을 했다.

    금호그룹은 2006年 大宇建設(6兆6000億 원)과 2008年 大韓通運(4兆1040億 원)을 引受하며 한때 財界 7位(資産規模 24兆3000億 원)로 뛰어올랐지만, 引受金融과 大宇建設 풋백옵션에 발목이 잡혔다. 글로벌 金融危機에 따른 流動性 危機이자, 引受合倂(M·A) 主導 企業에 種種 따라붙는 이른바 ‘勝者의 詛呪’였다. 結局 2009年 12月 經營正常化 計劃을 發表하면서 錦湖産業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突入했고, 錦湖石油化學과 아시아나航空은 自律協約에 들어갔다. 流動性 危機를 부른 大宇建設과 大韓通運은 다시 賣却됐다.

    債權團의 同意를 받은 만큼 朴 副社長뿐 아니라 모든 任職員은 신발끈을 동여매야 했다. 2009年 當時 會社는 賣出額 1兆8900億 원, 營業利益 -2135億 원, 當期純利益 -7762億 원, 負債比率이 3636%였다. 워크아웃 時期도 定해져 있어 全力投球 말고는 方法이 없었다. 會社의 力量을 모두 投入하는 ‘攻擊 經營’ 속에, 朴 副社長은 먼저 營業 代理店主의 어려움과 要請 事項을 直接 듣고 問題를 푸는 ‘現場 스킨십’을 통해 ‘無條件’ 賣出과 營業利益을 끌어올려야 했다.

    格納庫 PT, 競技場 PT

    그는 2011年 特化流通店 ‘타이어 프로’를 앞세워 全國을 돌면서 代理店 政策 說明會를 열었고, 2012年에는 國內外를 總括하는 營業副社長이 돼 北美, 유럽, 中國 等 國內外 業務를 直接 챙겼다. 當時만 해도 新製品 說明會 프레젠테이션(PT)은 硏究所나 製品 關聯 部署가 主로 맡았지만, 朴 副社長은 新製品이 나오면 直接 PT에 나서 業界의 關心을 끌었다. 財界 關係者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朴 副社長이 直接 PT를 한 것은 오너 一家가 新製品의 品質을 책임진다는 意味도 있었고, 任職員의 本보기가 되는 效果도 있었다. 2012年 新製品 PT는 仁川國際空港 格納庫에서 했는데, 젊은 나이(38歲)에 負擔이 컸을 텐데도 眞摯하고 自信 있는 모습으로 PT를 했다. 그때는 허리띠 졸라매고 워크아웃 卒業하려고 애쓰던 때라 新製品 出市로 營業利益 垂直 上昇을 苦待했다. 職員 모두가 以心傳心으로 應援한 記憶이 난다.”

    그해 說明會長에서 朴 副社長은 新製品 ‘에코윙 S’를 紹介한 뒤 “금호타이어 品質은 最高 競爭力을 갖추게 됐다”며 ‘最高品質’ 宣言을 한다.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2013年 錦湖타이어 新製品 說明會에서 박세창 副社長이 新製品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2013年 5月 中國 상하이 國際서킷에서 마련한 新製品 說明會에도 直接 나섰다. 當時 新製品은 高性能 타이어 ‘엑스打 PS91’. 時速 240km가 넘는 高性能 車輛에 最適化한 슈퍼 UHP 타이어인 만큼 製品 性能을 極大化할 수 있는 레이싱 競技場을 新製品 說明會 場所로 잡은 것이다.

    안으로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朴 副社長은 그해에 ‘革新活動’ 旗발을 들어 올렸다. 原價革新, 營業革新 等 改善을 넘어 새로운 發想으로 革新을 하자는 運動이었다. 에너지 節約, 輕量化 商品 開發, 저原價 製品 開發 等 範圍도 全方位的이었다. 그가 나서서 外部 諮問을 求하거나 專門 業體를 紹介했는데, 금호타이어의 이 같은 革新活動은 2013年 韓國, 2014年 中國, 2015年 베트남 工場 等으로 擴大 適用되고 있다. ‘苦難의 行軍’을 함께한 錦湖타이어 任員의 回顧는 이렇다.

    “革新活動 成果報告會와 成果 褒賞은 朴 副社長이 直接 챙겼다. 國內外 事業場을 찾아 職員을 激勵하고 食事 자리를 마련하면서 全般的인 原價 要素를 낮추는 革新活動을 奬勵했다. 그 때 알았지만, 朴 副社長은 記憶力이 뛰어나더라. 報告를 하면 自身의 태블릿PC를 꺼내 2年 前 資料를 찾아내고는 比較하더라. 卽興的 判斷은 없었고, 혼자 생각하다가도 모르는 게 있으면 職員을 불러 하나씩 물어봤다. 무척 꼼꼼하고 緻密한 業務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苦盡甘來(苦盡甘來)라 하던가. 朴 副社長은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한 債權團과의 約束을 5年 만에 지켰다. 지난해 12月 ‘自體 信用으로 正常的 資金調達’ ‘主要 經營目標 2年 連續 達成’ ‘負債比率 200% 以下’ 等 債權團이 提示한 大部分을 충족시키면서 워크아웃을 卒業한 것이다. 2009年 末 3636%이던 負債比率은 2014年 末 141%(本社 基準)로 大幅 減少했고, 自己資本比率도 2009年 2.7%에서 41.4%로 뛰어올랐다. 賣出은 3兆4365億 원, 營業利益은 3585億 원(營業利益率 10.4%)을 記錄했다. 그러나 朴 副社長은 “기쁨은 컸어도 또 다른 挑戰이 기다리고 있기에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룹 命運이 걸린 해

    “워크아웃은 卒業했지만, 實際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어서 ‘보람 있다’고 말할 段階는 아니었다. 나는 2005年부터 그룹의 黃金기와 어려운 時期를 거치면서 담금질當했다. 우스갯소리로 授業料 많이 내고 많은 걸 배운 건 보람 있었다. 任職員이 一致團結했고, 職員이 苦生하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 率直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乖離에서 오는 괴로움도 컸다.”

    그는 지난해부터 錦湖타이어 企劃·管理 總括(副社長)로서 海外 投資 事業도 이끌고 있다.

    最近에는 뜻밖의 일로 言論에 오르내렸다. 지난 4月 朴 副社長은 이한섭 營業總括 副社長과 함께 錦湖타이어 代表理事로 選任됐지만, 株主協議會가 ‘事前 協議’라는 節次上 問題를 提起하면서 3日 만에 辭任했다. 相當數 言論媒體는 “오너 3歲의 經營 參與가 蹉跌을 빚게 됐다”고 分析했지만, 朴 副社長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單純 失手였다. 只今 會社는 사느냐 죽느냐의 瞬間이다. 經營權 承繼를 論할 때가 아니다”고 斷言했다.

    그의 말처럼 錦湖아시아나그룹은 올해가 그룹 命運이 걸린 해이기도 하다. 그룹 核心인 금호산업은 아시아나航空 持分 30.08%를 가진 最大株主인 만큼 금호산업의 經營權 持分 向方에 따라 아시아나항공과 10餘 곳의 子會社가 影響을 받는다. 5月 7日 錦湖産業 債權金融機關 運營委員會가 박삼구 會長과 隨意契約 形態로 금호산업을 賣却하는 案件을 想定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朴 副社長은 아버지와 함께 優先買收權을 行使해 會社를 되찾아야 한다. 資金 마련 等 풀어야 할 宿題도 많고, 그룹의 母企業인 금호고속 再引受에도 나서야 한다.

    따라서 그에겐 또 다른 ‘담금질’이 기다리고 있다. 財界 關係者는 “아버지와 함께 朴 副社長 特有의 ‘謙遜하고 疏脫한 리더십’으로 問題를 풀어갈 것”이라고 豫想한다.

    “朴 副社長은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깍듯이 人事하고, 職員들에게도 恒常 높임말을 쓴다. 事務室도 職員이 勤務하는 空間 옆에 조그맣게 마련돼 있다. 2013年 中國 상하이에서 열린 新製品 說明會를 마치고 歸國할 때는 혼자 백팩을 메고 이코노미席에 앉아 왔다.”

    그에 따르면, 朴 副社長은 當時 行事에 參席한 代理店主를 一一이 찾아 “代理店 社長님들은 會社가 어려울 때 함께해줬고, 우리 製品을 팔아주는 고마운 분들”이라며 人事했고, 行事를 準備한 實務陣에게는 “新製品 行事場에서 내가 注目받지 않도록 注意할 것”을 當付했다고 한다. 謙遜과 疏脫함을 앞세운 스킨십 經營은 朴 副社長의 强力한 戰略武器라 할 수 있다.

    “‘하라면 해’ 時代는 지났다”

    華麗한 혼맥을 자랑하는 錦湖價의 婚事 冠禮와 달리, 中學校 同窓生인 아내 김현정 氏와 7年 戀愛 끝에 結婚한 것도 그의 性格을 잘 보여준다는 評. 워크아웃을 卒業했지만, 요즘도 그는 全國의 代理店 開業式이나 懇談會, 職員 大小事에 直接 參席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번개’를 쳐 職員들과 燒酒盞을 기울이면서 스킨십을 한다. 每月 그달에 生日이 있는 職員들과 食事를 하며 激勵하는 것도, 每年 1泊2日 워크숍을 열어 組織文化 改善에 對해 밤샘 討論을 하는 것도 조용히 組織文化를 바꾸려는 朴 副社長의 痕跡이라고 職員들은 입을 모은다.

    “朴 副社長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組織文化를 챙긴다. 그는 ‘쉴 때는 쉬고, 會議는 結論이 나야 한다’고 强調한다. 報告를 하다보면 任職員들이 成果를 包裝해서 내기도 하는데, 그때는 어떻게 꿰뚫어봤는지 ‘報告나 形式이 重要한 게 아니다. 實質的으로 무엇을 했고, 어떤 成果를 냈는지가 重要하다’며 다독인다. 眞心 어린 그의 말을 듣다 보면 結局 받아들이게 된다. 그가 組織의 文化를 조용히 바꿔가고 있다.”

    이는 朴 副社長도 認定하는 대목이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요즘 내 머릿속에는 組織文化 改善이라는 생각이 大部分을 차지한다. 任職員의 視角을 一致시켜야 하는 게 내 宿題”라며 “‘하라면 해’ 時代는 이미 지났다. 천천히 準備해서 신바람 나는 組織文化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하나로 어울려 ‘신바람’을 내려는 그의 생각은 우리네 ‘人乃天(人乃天)’ 思想을 떠올리게 한다. 同時에 그의 타고난 天性이기도 하다는 게 親舊들의 大體的인 評價다.

    “朴 副社長은 어릴 때부터 親舊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그가 ‘財閥 3歲’라는 것도 뒤늦게 안 親舊가 많다. 그는 籠球, 野球 等 球技 種目과 스케이트와 스키를 즐겼는데, 스케이트와 스키 實力은 大會에 出戰할 程度로 水準級이다. 大學 時節에도 親舊들과 어울리면 燒酒 한두 甁은 거뜬히 마셨다.”

    ‘理科 適性 99%’

    朴 副社長은 學窓 時節 適性檢査를 하면 理科 適性이 99%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휘문고 卒業 後 연세대 生物學科로 進學했고, 大學 卒業 後 外國系 컨설팅 會社에 다니다가 2002年 아시아나항공에 入社하면서 經營修業을 始作했다. 以後 美國 MIT 經營大學院에서 MBA를 받은 뒤 會社로 復歸했다.

    金壺가 3歲의 맏兄이자 그룹의 冷湯 溫湯을 거듭 오간 보기 드문 젊은 經營人. 疏脫함과 謙遜의 리더십으로 조용히 組織文化 改善 作戰을 펼치는 그가 앞으로 錦湖아시아나그룹 再建에 어떻게 寄與할지 視線이 쏠린다. 1960年 光州의 작은 工場에서 하루 20個의 타이어를 生産하던 會社에서 國內外 8個 工場이 하루 18萬 個의 타이어를 生産하는 글로벌 企業으로 成長한 금호타이어의 앞날도 함께 지켜볼 일이다.

    ■ 인터뷰

    박세창 錦湖타이어 副社長 單獨 인터뷰

    “신바람 일으키는 따뜻한 經營者 되고 싶다”

    ● 雙方向 커뮤니케이션…過去 組織으론 未來 없어 ● 經營權 承繼 云云은 배부른 얘기 ● ‘能力’보다 ‘謙遜’ 보여주는 게 더 쉽다

    배수강 記者 | bsk@donga.com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박세창 錦湖타이어 副社長은 ‘신동아’와 한 單獨 인터뷰에서 “그룹의 黃金기와 沈滯期를 모두 겪으면서 任職員들과 同苦同樂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앞으로는 일하고 싶은 組織文化로 바꾸고, 따뜻한 經營者가 되기 위해 努力하겠다”고 말했다.

    ▼ ‘約束’대로 워크아웃을 卒業했는데.

    “참 힘들었다. 누구나 다 힘들었지만 職員들이 苦痛 받는 걸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債權團과 한 約束은 지켰지만 實際로는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2005年부터 그룹의 黃金기와 어려운 時期를 거치면서 數없이 담금질을 當했다. 授業料 많이 내면서 正말 많은 걸 배웠다.”

    ▼ 끝난 게 아니다? 금호산업 引受戰을 念頭에 둔 말인가.

    “會長님(아버지 박삼구 會長) 말씀대로 順理대로 잘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섣불리 豫斷하긴 어렵다. 現在로서는 論議 過程이니까. 모든 게 잘 됐으면 좋겠다. 다만 워크아웃 卒業이 가만히 있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감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4年間 賃金 凍結해가면서 뼈를 깎는 努力을 했다. 요즘 새삼 가슴에 새기는 말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待天命의 時期



    ▼ 요즘은 대천명하는 時期인가.

    “그렇다.”

    ▼ ‘담금질’이라고 했는데, 過去 大宇建設·대한통운 引受와 이른바 ‘兄弟의 난’ 等으로 危機管理 能力을 키운 側面도 있겠다.

    “딱 부러지게 ‘이건 좋았다’ ‘저건 나빴다’고 말씀드릴 순 없다. 다만 앞으로 어떤 問題든 더 苦悶하고 合心해서 危機를 克服해야 한다. 巨創하게 ‘先制的 危機對應’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 最近 錦湖타이어 代表 選任 過程이 問題가 됐는데.

    “第3者나 言論에서 보면 참 재밌는 얘기일 수 있을 거 같지만, 率直히 말씀드리면 그건 너무 작은 에피소드였다. 工巧롭게도 (금호산업 引受 等) 타이밍 때문에 가십거리가 됐지만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 經營權 承繼에 蹉跌을 豫想하는 分析이 나왔다.

    “나는 아들이고, 承繼를 한다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는 權利도 없다. 確實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只今 承繼를 論하고 말고 하는 그런 位置가 아니라는 거다. 사느냐 죽느냐의 얘기지, 이것(經營權)을 週냐 안주냐는 건 意味가 없다. 배부른 얘기이고, 誤解를 불러일으키게끔 일이 벌어지니까 그런 거다. 全羅道 말로 ‘換腸할’ 일이다(웃음).”

    ▼ 職員들과 스킨십을 强調하는 것 같다. 代理店 開業式이나 職員 大小事를 直接 챙긴다는데.

    “時間이 되면 代理店 開業式에 가고, 飛行機 이코노미席度 탄다. 그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내가 챙겨야 할 분들은 챙기는, 그저 내 所任日 뿐이다. 요즘은 業務 成果를 높이기 위해 組織文化를 많이 强調한다.”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어린 時節 아버지 朴三求 그룹 會長과의 즐거운 한때.

    ▼ 組織文化?

    “서로 雙方向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는 組織文化를 일구자고 얘길 한다. 요즘 經營에 關한 내 머릿속의 많은 部分을 組織文化가 차지한다. 會社가 職員들에게 이렇게 하는데 職員들은 그만큼 評價하고 있을까…. 좋은 會社일수록 會社나 職員이 보는 視角이 一致한다고 본다. 例를 들어 任員들이나 바로 밑 (幹部)職員들은 ‘會社가 이렇게 잘해준다’고 말하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完全 反對 얘길 한다. 어떻게든 任職員 視角을 一致시켜야 하는데, 내가 봤을 땐 그런 面에서 아직 우리 會社는 걸음마 段階다.”

    “組織文化 바꿔야 價値 創造”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故 박인천 금호그룹 創業會長(할아버지)과 故 이순정 女史(할머니)와 함께 찍은 돌 寫眞.

    ▼ 어떻게 풀어나갈 건가.

    “아직 時間이 많다. 多急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그런 것들을 다듬고 있다. 몇 가지는 實驗的으로 얘기해보고….”

    ▼ 그래서 職員들과 ‘번개’를 하나.

    “나보다 번개 모임을 더 自主하는 오너도 많다. 번개도 視線 一致가 돼야 한다. 部署別로 (번개모임 參席者를) 割當해서 參席하는 境遇도 種種 있더라. 負擔이나 强壓, 割當이 아니고 自發的으로 모임이 이뤄지면 나도 氣分이 좋고 一致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런 組織文化를 만들고 싶다.”

    ▼ ‘신바람 組織文化’를 만들겠다는 건데.

    “정용진 新世界 副會長은 人文學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가다보니까 어느 瞬間 壁에 부딪혔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方式으로 글로벌 競爭을 하기가 漸漸 힘들어지는 만큼 다른 價値를 創造해야 한다. 鄭 副會長은 人文學을 解決策 中 하나로 봤다. 나는 文化를 바꿔야 價値創造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말씀한 대로 組織文化는 ‘신바람’이 나야 한다.”

    ▼ 任職員 모두가 ‘박세창’이 되길 바라나.

    “그랬다간 큰일난다. 나보다 더 能力 있는 분들이 들어와야지(웃음). 누구나 다 오너같이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

    ▼ 謙遜하다는 評價가 많던데.

    “謙遜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에 對한 尊重이고, 現代社會가 階級이 定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君臨한다고 君臨할 수 있는 時代도 아니지 않나. 우리 製品 팔아주는 代理店主들에게 고맙다고 人事하는 게 내 能力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쉽다(웃음). 會社에 도움 된다면 90度 人事가 아니라 절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늘 ‘謙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내 아이들에게도 남을 配慮하고 自己 職分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 특별한 家庭敎育이 있었나.

    “할아버지(박인천 創業主)는 내가 初等學校 2學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父母님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모시는지 直接 지켜봤다. 正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孝를 實踐할 수 있다.”

    ▼ 父親으로부터 밥床머리 敎育을 받았나.

    “‘신동아’에서 鄭義宣 現代車 副會長, 정용진 新世界 副會長 記事를 봤는데, 두 분은 새벽에 父親과 食事를 함께하는 一種의 ‘룰’이 있더라. 내 境遇 그런 밥床머리 敎育은 없었지만, 父母님이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問安人事하고 出退勤하는 것을 지켜봤다. 只今의 나를 反省하게 한다.”

    ▼ 子女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됐으면 하나.

    “어릴 적부터 내가 어른이 되면 ‘親舊 같은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子女 苦悶에 귀기울이는.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까 그게 第一 어려운 거 같다. 그건 相互作用이 있어야 하니까.”



    親舊 같은 아버지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1983年 사내 體育大會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 學窓 時節은 어땠나. 經營人 外에 다른 꿈이 있었나.

    “처음엔 낯을 좀 가리는 便인데, 낯이 익으면 親舊들과 雙方向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努力했다. 親舊들과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좋아했다. 軍 臺도 親舊들과 날마다 어울려 다니다가 入隊하게 됐다. 어린 時節 日記帳을 보면 大統領, 事業家 等으로 꿈도 자주 바뀌었다. 어느 때부턴가는, 어떤 面에서든 價値를 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 親舊 때문에 入隊했다?

    “大學 時節 親舊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오니 父母님이 얼마나 한심스러워하셨겠나. 어느 날 父母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하시기에 ‘軍隊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入隊했다. 江原道 固城에서 服務하다가 山불로 部隊가 없어지면서 서울로 配置받고 服務하다 除隊했다.”

    ▼ 自身만의 스트레스 解消法이 있나.

    “스트레스 解消에 가장 좋은 方法은 ‘비움’이라고 생각한다. 스키를 타거나 親舊들을 만나거나, 아내와 散策하고 深夜 映畫를 본다. 지난 週末엔 밤에 애들 데리고 映畫 ‘어벤저스 2’를 봤다.”

    ▼ 그룹 入社 前에 外國系 컨설팅 會社에서 2年 동안 일했는데.

    “企業 戰略 컨설팅을 하는 會社였다. 大學 때 專攻이 生物學이어서, 企業에 對한 知識이 거의 없었다. 컨설팅 會社에 다니면서 企業을 볼 수 있었고, 다른 會社를 먼저 經驗한 것도 좋았다. 컨설팅이라는 게 CEO 觀點에서 會社를 바라보는 거라 醫師決定權者 觀點에서 볼 수 있었다. 一種의 ‘屬性 코스’였다(웃음).”

    ▼ 끝으로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따뜻한 經營者가 되고 싶고, 그렇게 되기 위해 努力할 거다. 그룹 任職員이 (내가) 얼마나 努力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터라, 이 인터뷰도 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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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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