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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盟은 强者의 選擇 ‘安美經中’은 卓上公論|新東亞

同盟은 强者의 選擇 ‘安美經中’은 卓上公論

搖動치는 東北亞 체스板

  • 丈量(張良) | 中國靑年政治學院 客座敎授 · 政治學博士

    入力 2015-05-20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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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宗主權에 挑戰한 楚 莊王과 시진핑의 中國夢
    • 淸 · 日에 良俗(兩屬)된 류큐, 滅亡한 오스만투르크의 敎訓
    • 왔다갔다 하다 亡한 楚나라와 鄭나라
    • 비스마르크, 에마뉘엘레 2歲의 勇氣와 智慧 배워야
    • 反省할 줄 모르는 아베 信條의 ‘戰爭할 수 있는 日本’의 꿈이 實現될 길이 열렸다. 美國과 日本이 18年 만에 美·日 防衛 가이드라인을 改正하고 太平洋을 東西로 나눠 支配하자며, 霸權 意志를 드러낸 中國에 맞섰다. 海洋勢力과 大陸勢力이 衝突하는 地點에 선 韓國의 오늘을 ‘外交의 눈’으로 들여다볼 새 連載 ‘世界는, 韓國은’을 이番 號부터 揭載한다. 韓國의 外交 專門家인 筆者는 政治學博士로 中國靑年政治學院 客座敎授度 맡고 있다. 이 글에선 ‘丈量(張良)’이라는 筆名을 쓰기로 했다. <편집자>
    戰士不忘 後嗣知事(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말이 있다. 積極的으로 解釋하면 ‘過去를 잊어버리는 자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는 意味다. 1392年 朝鮮 建國 以後 우리나라는 隣近 最强大國, 卽 17世紀 初까지는 名(明), 17世紀 中葉부터 19世紀 末까지는 靑(淸), 19世紀 末부터 1945年까지는 日本, 1945年부터 21世紀 初 現在까지는 世界帝國(world empire) 美國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主體(主體)를 내세우는 北韓도 例外가 아니다. 北韓은 1945年 以後 蘇聯과 中國, 1990年代 初 蘇聯 崩壞 以後에는 中國에 期待 生存해왔다. 中國을 縱走(宗主)로 보는 朱子學(朱子學)李 國家 理念이 된 朝鮮 建國 以後 우리나라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하기보다는 最强大國을 追從해 國家 安保를 維持하려 해온 것이다.

    ‘國家 危機’ 感知한 日本

    壬辰倭亂 때 日本軍이 大同江 流域의 平壤, 豆滿江 流域의 會寧까지 蹂躪하는 狀況에 處하자 國王 宣祖가 明나라로 亡命하려 하는 等 明나라에 期待 政權을 維持하려 한 것이 代表的인 事例다. 17世紀 初 名→靑 交替期에는 明나라에 對한 義理를 앞세운 國王 仁祖를 비롯한 庶人 支配層의 過誤로 淸나라의 侵攻을 두 次例나 當한 끝에 數十萬 名의 國民이 殺害되거나 捕虜로 잡혀가고 國王이 降伏하는 苦痛과 數値를 겪었다.

    이러한 渦中에도 洪翼漢, 尹集, 오달제 等 三學士(三學士)와 金尙憲을 包含한 多數의 朱子學者는 明나라 皇帝에 對한 변함없는 忠誠과 淸나라 排擊을 主張했다. 그들은 淸나라를 排擊하는 것만이 政治 · 社會的으로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20世紀 初에는 利己的이기까지 한 王室과 老論僻派(老論僻派) 支配層의 無能과 腐敗로 인해 亡國의 恥辱을 當했다. 日帝의 壓制를 겪으면서 우리 스스로의 視角으로 우리 問題를 觀察하고 解決해보려는 意志와 能力은 한層 더 弱化했다.



    2015年 現在는, 中國의 持續的 浮上(浮上)과 美國의 漸進的 衰退, 日本의 再武裝(rearmament)이라는 勢力 轉換(power shift)李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歷史的 激變期다. 第2次 世界大戰(1939~1945) 以前부터 緩慢히 進行되던 英美 간 勢力 轉移와는 달리 美中 간 勢力 轉移는 文化的 · 人種的 背景이 다른 나라 間, 그리고 바로 우리 옆에서 벌어진다는 點에서 意味가 매우 크다.

    世界帝國 美國의 衰退 現象은 到處에서 感知된다. 美國의 世界 支配 기둥 中 하나인 經濟 · 金融 部門은 中國이 主導하는 아시아인프라投資銀行(AIIB)에 英國, 獨逸, 프랑스, 濠洲 等이 加入하는 것으로 結論 나면서 崩壞의 轟音을 내기 始作했다. 美國은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 半島를 奪取함은 勿論 돈바스 地域 內戰에 介入하는데도 强力하게 對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3年 12月 中國이 東中國海 上空에 韓國 日本과 겹치는 防空識別區域을 宣布했는데도 中國이 威脅으로 느낄 만한 어떠한 措置도 取하지 못했다. 中國이 中國版 먼로주의(Monroe Doctrine), 卽 ‘아시아人에 依한 아시아’를 主張하면서 “太平洋은 美中 두 나라를 모두 受容할 수 있을 만큼 넓다”고 말하는 狀況에까지 이르렀다.

    우크라이나 事態와 함께 中國의 東中國海 防空識別區域 宣布 및 太平洋 分割 要求 發言은 아베 신조 總理를 비롯한 日本 指導部로 하여금 過去와는 完全히 다른 次元의 對應을 하게 만들었다. 美國의 衰退와 中國의 負傷이라는 國家 次元의 危機를 感知한 日本은 아베의 主導 아래 再武裝으로 對應에 나선 것이다.

    日本의 政治 · 社會 엘리트는 日本을 요시다 쇼인, 다카스키 神社쿠 等 日本 民族主義者들이 主導하던 19世紀 末 메이지 時代로 되돌려놓으려 한다. 日本은 中國이 댜오위다오(센카쿠 列島)와 大韓海峽으로 東進하는 現 狀況을 러시아가 랴오둥半島의 뤼순커우만(旅順口灣)과 韓半島의 원산만, 領導로 南進하던 19世紀 말과 類似하다고 보고, 이에 對應하고자 美國의 後援下에 國家 安保 體制의 根幹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Great Republic of Korea

    美國은 旣存 世界 秩序를 바꿀 中國의 負傷을 沮止하고자 2009年 2月 힐러리 클린턴 前 國務長官의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 演說을 통해 아시아 復歸(pivot to Asia)를 宣言했다. 하지만 經濟力이 뒷받침되지 않는 狀況에서 우크라이나, 이라크, 시리아 等 世界 到處에서 挑戰을 받는 터라 單獨으로는 中國의 동진을 沮止할 수 없음을 明確하게 認識하고 있다.

    美國은 中國의 負傷에 對處하고자 셰일가스를 活用한 製造業 再建 等 經濟 活性化와 함께 韓國, 日本, 濠洲 等과 同盟을 强化해나가고 있다. 러시아 帝國의 南進에 맞서 日本의 힘을 빌리려 한 19世紀 末의 영미와 마찬가지로 21世紀 初의 美國도 中國의 東進에 맞서 特히 世界 第3位 經濟大國 日本과 同盟을 强化하려는 것이다. 中國의 負傷에 對處해야 하는 美國 處地에서 韓國은 必要하기는 하지만, 日本보다는 相當히 比重이 떨어지는 나라다. 半島國家인 韓國은 中國과 大陸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日本과는 地政學的 利害關係가 다를 수밖에 없고, 極端的 狀況에서는 美國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나라로 美國은 보고 있다.

    韓國은 中堅國(middle power) 水準의 軍事力과 經濟力을 가졌지만, 安保 側面에서는 美國, 經濟 側面에서는 中國에 過多하게 依存하고 있다. 힘과 힘이 부딪치는 ‘颱風의 눈’에 자리해 있으며, 北으로는 敵對하고 있는 北韓, 南洞으로는 日本, 西로는 中國이라는, 언제든지 敵으로 바뀔 수 있는 나라와 延接(連接)해 있어 活動 空間이 極度로 制限돼 있다. 그렇기에 國家的 危機는 상시화할 것이며, AIIB 加入과 사드(THAAD · 高高度미사일防禦體系) 시스템의 韓國 配置 問題 等에서 나타난 것처럼 美中 사이에서 選擇을 강요받는 事案은 繼續 늘어갈 것이다.

    危機의 幅이 나날이 擴大되고, 强度도 强해지는 深刻한 危機를 克服하려면 過去와는 完全히 다른 次元으로 對應해야 한다. 特히 무엇보다 必要한 것은 우리 社會 엘리트들의 革命에 가까운 認識 및 態度의 變化다. 朝鮮時代 以後 늘 그래온 것과는 다르게 政治, 外交 · 國防, 財界, 言論 等 各界 엘리트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姿勢를 確固히 해야 한다. 正말 必要한 것은 統一을 達成해 高句麗 以後 처음으로 强力한 經濟力과 軍事力을 가진 ‘大韓民國(Great Republic of Korea)’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決心을 確固히 하는 것이다. 또한 內政의 混亂과 腐敗를 一掃해야 한다.

    過去에서 배우지 못하고, 最强大國에 安保를 依存한 先祖들의 行態를 되풀이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國家와 民族 消滅의 運命을 맞게 될 수도 있다.

    强大國의 卒로 남을 것인가

    國內外 一部 外交 專門家들이 美中 勢力 轉換期에 對處하는 方法으로 主張하는 ‘均衡外交’는 ①앗시리아, 神(新)바빌로니아, 이집트 사이에서 時計錘 外交를 한 유다 王國(BC 10世紀~BC 6世紀) ②中國 春秋戰國時代 南方 强國 初(楚)와 北方 强國 陳(晋) 사이에서 苦痛을 겪은 情(鄭) ③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사이에 끼여 있던 폴란드 ④靑(淸)과 日本(사쓰마번)에 良俗(兩屬)되고 萬 류큐(琉球) 等 수많은 歷史的 事例가 證明하듯, 短期的으로는 어느 程度 效果가 있다.

    그러나 鄭나라와 폴란드가 隣近 强大國에 持續的으로 侵奪당한 끝에 結局 分割되거나 滅亡하고 말았다는 點에서 알 수 있듯 均衡外交는 根本的인 方策이라고 할 수 없다. 著名한 國際政治學者 한스 모겐소에 따르면 “過去 數世紀 동안 韓半島의 運命은 大陸勢力과 海洋勢力 간 勢力均衡에 依해 左右돼왔다”고 한다. 均衡外交는 根本的 解決策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南北으로 分斷돼 있다. 强大國 政治의 卒(卒)로 繼續 남아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南北統一을 해야 한다. 그래야 强力한 國家를 만들 수 있다.

    國家 安保 最後의 手段은 軍事力이다. 軍事力은 經濟力과 武器의 水準 · 體系와 함께 軍(軍) 指導者들의 精神 姿勢와 能力에 依해 決定된다. 그렇기 때문에 軍 人士들은 美軍에만 依存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意志를 確固히 해야 한다. 그리고 指導層 人士들은 北韓을 統合해 더 以上 무시당하지 않는 强力한 國家를 만들겠다는 信念을 가져야 한다.

    指導層 人士들이 더 以上 美國과 中國 等 强大國만을 바라보지 않고 戰爭터 같은 가장 危險한 곳에 自己 子息을 먼저 보내는 等 指導者로서의 責務를 다할 때 國家安保는 盤石 위에 놓일 것이다. 로마帝國, 大英帝國, 美國, 獨逸 第2帝國, 日本帝國 等은 興盛기에 例外 없이 指導層 人士들이 먼저 犧牲해 國家를 지키고 발전시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者를 돕는다’고 했다. 中國의 鄭나라나 朝鮮, 우크라이나처럼 스스로를 지킬 意志가 없는 나라는 제대로 된 親舊도, 甚至於 敵(敵)조차 될 수 없다. 우리는 敵軍 앞에서 먼저 逃亡친 先祖나 仁祖 같은 指導者가 아니라, 危險을 무릅쓰고 敵陣까지 들어간 을지문덕, 아들과 조카까지 從軍시킨 李舜臣 같은 有能하고 國民에 對한 忠誠心이 剛한 指導者에게 나라를 이끌 機會를 줘야 한다. 乙支文德이나 李舜臣 같은 指導者가 國家社會를 統合 · 組織化할 때 統一外交는 순조롭게 推進될 것이며 5000萬 人口의 韓國이 統一은 勿論, 13億5000萬 人口의 中國, 1億2000萬 人口의 日本에 맞서 國家와 民族을 持續的으로 성장시키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偉大한 指導者는 國家와 民族의 運命조차 바꿀 수 있다. 12世紀 칭기즈 칸은 가진 것이라고는 量과 말밖에 없던 몽골을 유라시아 大帝國으로 創造해냈다. 19世紀 비스마르크는 몇 百 個의 小國(小國)으로 分裂돼 있던 獨逸을 統合해 强大國으로 再탄생시켰다.

    “九鼎의 무게는 얼마인가”

    동맹은 강자의 선택 ‘安美經中’은 탁상공론

    李舜臣 같은 偉大한 리더는 國家의 運命을 바꾼다.

    칭기즈 칸이나 비스마르크 같은 英雄的 指導者의 出現을 期待하는 것은 只今 같은 狀況에서는 現實的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 周圍에도 英明한 人物은 얼마든지 있다. 指導者 選出 시스템을 더욱 精巧하게 만들고, 有權者가 눈만 똑바로 뜬다면 그런 指導者를 選出할 수 있다.

    앞서 다뤘듯 現 國際 秩序는 中國의 負傷과 美國의 相對的 衰退, 日本의 再武裝 試圖 等으로 인해 混沌으로 빠져들고 있다. 2008年 美國發 世界經濟危機와 最近 英國, 獨逸, 프랑스 等의 AIIB 加入은 美國 主導의 世界 秩序가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象徵的 事件이다. 中國은 世界經濟危機 以後 開發途上國에서 强大國으로의 轉換을 宣言했다. 中國은 오래前부터 美國이 英國으로부터 霸權을 移讓 받은 過程과 方法을 硏究해왔으며, 하나하나 實行에 옮기고 있다.

    春秋時代 中院 國家들에 依해 南方 오랑캐로 取扱받던 初(楚)의 莊王(莊王)은 宗主國 週(周)에 統治의 象徵인 舊正(九鼎)의 무게를 물었다. 이는 注意 宗主權을 뺏어올 수도 있다는 宣言으로 注意 宗主權에 對한 正面 挑戰이었다. 시진핑의 “太平洋은 美中 두 나라를 모두 收容할 만큼 넓다”는 發言 亦是 中國이 앞으로 美國의 太平洋 霸權에 正面 挑戰하겠다는 뜻으로 解釋된다.

    世界帝國 美國과 挑戰國인 中國 間 競爭의 深化와 함께 日本의 再武裝, 알카에다와 이슬람國家(IS)를 비롯한 이슬람 極端勢力의 擡頭 等 世界 秩序가 根本的으로 變化한다. 變化의 颱風 속에 東北아시아에서 가장 國力이 弱하고 分斷돼 있는 우리나라는 選擇을 잘못하면 亡國滅種(亡國滅種)의 危機에 處할 수도 있다.

    득실 曖昧한 外交 · 安保

    이러한 絶體絶命 時代의 指導者는 乙支文德이나 李舜臣처럼 ①自身을 먼저 犧牲할 準備가 돼 있고 ②國民의 信賴를 한 몸에 받으며 ③매우 有能하고 ④葛藤과 分裂의 治癒(治癒)라는 時代精神(Zeitgeist)에 忠實해야 한다. 指導者는 △透徹한 歷史意識 △民主主義에 對한 確固한 信念 △經濟와 社會, 外交 · 安保 分野에 對한 知識과 洞察力도 갖춰야 한다. 이와 함께 判斷力과 決斷力도 갖춰야 한다.

    指導者는 蹤跡(縱的)으로는 歷史, 橫的(橫的)으로는 只今 이 땅에 살고 있는 國民에게 無限한 責任을 진다. 指導者는 進步와 保守, 嶺南과 湖南, 貧富를 하나로 묶는 國民統合도 이뤄내야 한다. 또한 只今의 國民은 勿論 그들의 後孫이 安全하고 풍요로운 環境에서 살아갈 與件도 마련해줄 責任을 지녔다.

    우리나라는 ①强大國에 둘러싸인 ②分斷된 ③中堅 國家로 外勢로부터 影響을 많이 받는 國家다. 外交가 特히 重要한 理由다. 大統領制 國家인 우리나라에서는 最高指導者인 大統領이 外交 · 安保政策의 基本 方向을 決定하며, 醬 · 次官의 進退는 大統領의 決定에 左右된다. 이런 理由 等으로 인해 張 · 次官과 그 麾下 官僚들은 大統領의 말을 金科玉條(golden rule)처럼 받드는 傾向이 있다. 指導者가 外交 · 安保政策의 方向을 잘못 잡으면 挽回가 거의 不可能하며 深刻한 後遺症이 惹起된다. 따라서 指導者는 外交 · 安保 分野에 對한 相當한 水準의 知識과 判斷力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6 · 25戰爭과 1997年 經濟·金融危機, 資源協力外交 等 現代史를 통해 無能하고 我執으로 가득한 指導層이 어떻게 國家的 危機나 大規模 經濟的 損失을 불러왔는지 잘 안다.

    指導者가 外交政策의 方向을 제대로 操舵(操舵)해나가지 못하면, 韓國은 急浮上하는 中國, 美國의 支援을 등에 업고 再武裝에 나선 日本 사이에서 存亡의 危機에 處할 수 있다.

    實物(實物)을 다루는 經濟와 달리, 外交 · 안보는 得失이 바로 드러나지 않으며, 國民 個個人에게 미치는 影響도 短期間 內에는 感知할 수 없다. 世界體制가 急變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러시아의 크리미아 倂合이나 中國의 東中國海 防空識別區域 宣布, 2010年 11月 23日 發生한 北韓의 延坪島 砲擊 挑發 事件마저 該當 地域에 居住하던 住民을 除外한 나머지 國民은 거의 被害를 입지 않았다. 그래서 大多數 國民은 自由貿易協定(FTA) 締結이나 쌀 · 自動車 協商, 領事 · 僑民 保護 等 實生活에 直接 影響을 미치는 分野를 除外하고는 外交 · 安保의 重要性을 제대로 理解하지 못하고 있으며, 關心도 적다.

    우리는 甲 아닌 乙

    戰爭이나 大規模 戰鬪, 海外派兵 같은 重大 事案이 發生하면 結晶子는 結局 指導者 自身이 될 수밖에 없다. 朝鮮 建國 以後 잘못된 判斷으로 因해 나라를 망치고, 國民을 塗炭(塗炭)에 빠뜨린 指導者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朝鮮王朝 말 廳과 러시아, 日本, 美國 等 强大國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時計錘 外交에 沒頭한 高宗과 閔氏 一家를 包含한 老論僻派 執權層이 代表的 例다. 19世紀 末 高宗을 包含한 老論 執權層의 우물 안 개구리式 ‘時計錘 外交’는 朝鮮을 亡國滅種의 危機로 몰아넣었다.

    一部 白面書生이 말하는 ‘韓美同盟을 强化하면서 同時에 中國과의 關係도 緊密히 하라’는 矛盾된 注文에 따라 美國과 中國 사이를 時計錘처럼 왔다갔다 하는 外交政策을 取하면 다시 20世紀 初와 같은 亡國의 悲劇을 當할 可能性이 있다. 同盟은 弱者가 아닌 强者의 選擇이다. 韓美同盟의 性格과 强盜, 用途도 韓國이 아닌 美國의 判斷에 따라 決定될 公算이 크다. 美中 勢力 轉換期에 相對的으로 弱한 우리나라가 韓美同盟 强化와 함께 中國과의 關係도 더 密接히 하는 것은 決코 쉽지 않다.

    안미경中(安美經中·安保는 美國, 經濟는 中國)은 한마디로 持續 可能性이 없는 外交政策이다. 많은 專門家가 危機 打開 方案으로 美中 間 均衡外交와 함께 용미(用美), 用中(用中)을 提示한다. 그러나 相對的으로 弱한 우리나라가 큰 代價를 支拂하지 않고, 美國이나 中國과 같은 强大國을 活用할 方法은 事實上 없다. 우리는 甲(甲)李 아닌 을(乙)의 處地에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重要한 것은 臺(對)北韓 政策을 비롯한 對內外 政策을 두고 只今과 같은 極端의 國論 分裂이 持續되어서는 決코 안 된다는 것이다. 中國 戰國時代 末期 長江(長江) 流域의 初(楚)나라는 親盡(親秦)이냐 親弟(親齊)냐, 卽 陳(秦)나라와 聯合하는 連衡(連衡)이냐, 秦나라를 排除하는 合從(合縱)이냐를 두고 指導層 人士들 間 內紛에 가까운 權力鬪爭을 벌인 끝에 國力을 消盡하고 끝내 秦나라에 竝呑(倂呑)당하고 말았다. 權力鬪爭 過程에서 웅氏(熊氏) 王族 中心의 親盡파는 屈原(屈原)을 包含한 親제파를 敵國인 秦나라보다 더 憎惡하고, 抹殺하고자 했다. 春秋時代 楚나라와 陳(晋)나라 사이에 끼여 있던 情(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親初(親楚)와 親盡(親晋)을 왔다갔다 하다가 陳(晋)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한(韓)에 滅亡당하고 말았다.

    “차라리 히틀러를…”

    第1次 世界大戰 때 오스만투르크 帝國 指導部는 聯合國(英 · 불 · 러)과 同盟國(독 · 오스트리아) 中 어느 쪽에 서느냐를 두고 親寧波와 親獨派 間 政爭을 벌였다. 터키의 國富가 된 케말 파샤는 親迎的, 主櫝大使館 無關(武官)을 지낸 엔베르 파샤는 親獨적 位置였다. 政權 1人者 엔베르 파샤는 獨逸이 勝利할 것을 確信하고 獨逸 便에 서기로 決定했다. 이는 結局 第1次 世界大戰 敗戰과 함께 오스만투르크 帝國의 解體로 이어졌다. 左右 對立이 極甚하던 1936年 프랑스에서 人民戰線의 執權이 臨迫해 보이자 一部 右派는 “차라리 히틀러를…”이라고 외친 적도 있다. 韓國에서도 親美派와 親中派의 政爭으로 인한 混亂이 빚어질 수 있다.

    이에 反해, 19世紀 末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피에몬테의 에마뉘엘레 2世 같은 指導者들의 勇氣와 智慧는 獨逸과 이탈리아의 統一을 가져왔다. 그리고 1990年 헬무트 콜 當時 西獨 總理의 決斷力은 獨逸 統一의 새 時代를 열었다. 最高指導者의 決斷은 그만큼 重要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現代史만 놓고 보더라도 光復과 分斷, 6 · 25戰爭, 冷戰 終熄과 蘇聯 解體, 김일성 · 김정일의 死亡 等 重大한 事件이 많이 發生했다. 當時로서야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判斷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李承晩과 金永三, 이명박 等 當時 指導者들이 果然 올바른 判斷을 했는지에 對해서는 아직도 많은 批判이 提起된다.

    동맹은 강자의 선택 ‘安美經中’은 탁상공론

    2010年 11月 23日 北韓이 延坪島 砲擊 挑發을 敢行했다.

    ‘매뉴얼’이 必要하다

    1976年 8月 發生한 板門店 도끼 蠻行 事件이나 2010年 11月 일어난 延坪島 砲擊 挑發 事件 같은 極端的 狀況이 벌어질 때는 靑瓦臺 安保室長이나 外交長官, 國防長官, 國家情報院長도 結局 助言者 役割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延坪島 砲擊 挑發이나 2011年 2月의 口蹄疫 事態 等 큰 事件이 터졌을 때 우리 指導部는 政治(精緻)韓 解決 姿勢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1個 圖書가 아니라, 萬若 서울 釜山 같은 大都市나 浦項, 蔚山 같은 期間産業 都市에 北韓의 砲彈이 떨어진다면 一般 國民에 앞서 指導層 人士들이 먼저 패닉(panic)에 빠지고 말 것이다.

    2011年 3月 日本 東北地域 大地震 事例도 있다. 民主黨 出身 간 나오토 總理를 비롯한 日本 指導者들은 地震과 쓰나미에 이은 原子爐 事故가 發生하자 誤判에 誤判을 거듭한 끝에 日本 國民의 信賴를 完全히 喪失하고 말았다. 이는 민주당의 總選 大敗와 함께 日本 社會의 右傾化에도 寄與했다. 指導者가 危機의 瞬間에도 正確하고 올바르게 判斷할 수 있으려면 直觀뿐 아니라, 政治는 勿論 行政 等 多樣한 分野에 對한 豐富한 經驗과 함께 다양한 事件을 狀況에 따라 精密하게 分析, 對處 方案을 提示해놓은 매뉴얼을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

    - 2015年 5月 中國 랴오둥半島의 끝 뤼순 項이 내려다보이는 러일戰爭 激戰地 203高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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