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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大 受惠者 安熙正 ‘集團 힐링’ 主導할까?|신동아

最大 受惠者 安熙正 ‘集團 힐링’ 主導할까?

‘이완구 衝擊’ 大戰·忠南 民心

  • 大戰·扶餘·靑陽=지명훈 | 동아일보 社會部 記者 mhjee@donga.com

    入力 2015-05-2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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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完九 落馬에 喪失感, 虛脫感
    • 國費 確保 難望? “비빌 언덕 사라졌다”
    • ‘忠淸 트로이카’ 崩壞…安熙正만 웃는다?
    • “안희정 道政 評價 ‘글쎄요’ 水準”
    최대 수혜자 안희정 ‘집단 힐링’ 주도할까?

    野圈의 次期 大權 走者 中 한 사람으로 꼽히는 安熙正 忠南知事.

    지난해 5月 28日 忠南 洪城에서 열린 정진석 새누리당 忠南道知事 候補 支援 遊說. 當時 새누리당 院內代表 資格으로 選擧 支援에 나선 이완구 前 國務總理는 ‘待望論’을 앞세워 票心(票心)을 刺戟하는 새政治民主聯合 安熙正 候補를 겨냥해 한마디 날렸다.

    “安 候補가 大權 候補라는 德談 몇 마디에 붕 떠 있는 것 같다. 中央의 政治 舞臺에는 대단히 嚴格하고 嚴重한 檢證 過程이 있다. 수많은 檢證 過程을 거쳐 決定되는 게 大權 候補다.”

    한마디로 ‘안희정이 大權 候補라는 게 可當하느냐’는 말이었다. 李 前 總理는 그러나 이 말이 1年도 되지 않아 自身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2012年 10月 病床을 걷어차고 나온 지 2年 4個月 만에 總理에까지 올랐다가 70日 만에 落馬함으로써 中央 政治 舞臺의 높고 단단한 壁을 實感해야 했다. 그는 血液癌의 一種인 多發性 骨髓症으로 2012年 1月 入院해 鬪病生活을 했다.

    성완종 前 京南企業 會長에게서 3000萬 원을 받은 疑惑으로 窮地에 몰린 李 前 總理가 4月 21日 及其也 辭退 意思를 밝혔다. 이 消息을 接한 忠淸圈은 안타까움과 虛脫感, 背信感, 失望感 等 複雜한 反應을 드러냈다.

    “忠淸道 말套가 핑계라니…”



    總理 認准 聽聞會에서 이 前 總理를 둘러싼 各種 疑惑이 提起됐을 때만 해도 忠淸道民들은 ‘그럼에도 不拘하고 忠淸 總理를 지키자’는 反應이었다. 當時 忠淸圈에는 ‘이완구 落馬하면 다음 總選, 大選 두고 보자!’는 懸垂幕이 여럿 내걸렸다. 一部 團體가 이런 懸垂幕을 組織的으로 내건 것 같았지만 忠淸道民의 當時 情緖를 어느 程度 反映했다고 보는 게 옳다. 輿論調査機關 리얼미터가 當時 忠淸地域 輿論調査를 했더니 ‘總理로 適合하다’는 應答 比率이 65.2%로 나타나 다른 地域보다 크게 높았다.

    하지만 總理 就任 뒤 星 前 會長의 메모와 言論 인터뷰에 李 前 總理가 登場하자 忠淸道民들의 情緖는 當惑感으로 바뀌었다. 大田에서 便宜店을 運營하는 金某(42) 氏는 “이거, 이 總理는 안 걸리는 데가 없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如前히 아쉬움을 表示하는 사람들도 있다. 李 前 總理의 故鄕인 忠南 靑陽의 姨母(52) 氏는 “性 前 會長이 이 前 總理에게 줬다는 돈은 金額이 比較的 적을 뿐 아니라 돈의 性格도 後援金 名目인데 苛酷하리만치 攻擊이 集中됐다”며 안타까워했다. 李 前 總理의 地域區(扶餘-靑陽)인 忠南 扶餘의 한 老人亭에서 만난 한모(70) 氏는 “그래도 이 前 總理만한 人物이 忠淸道에 어디 있느냐”고 감쌌다.

    하지만 이 前 總理의 잦은 말 바꾸기가 地域民에게 失望感을 준 게 事實이다. 忠淸道 말套를 핑계로 대자 批判的인 輿論은 더욱 沸騰해졌다. 扶餘郡의 公務員은 “李 前 總理가 危機에 몰리자 忠淸道 말套 云云하면서 故鄕 사람들을 마치 語訥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처럼 置簿한 것은 卑怯했다”고 不快해했다.

    무너진 待望論

    최대 수혜자 안희정 ‘집단 힐링’ 주도할까?

    이완구 前 總理가 4月 27日 政府서울廳舍에서 열린 國務總理 離任式에서 人事하고 있다.

    문창기 大戰參與自治市民連帶 事務處長은 “檢察은 李 前 總理의 金品 收受 疑惑은 勿論, 解明 過程의 거짓말과 證據湮滅 試圖에 對해서도 嚴正하게 調査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그는 “李 前 總理가 認准 過程에서 여러 疑惑을 드러냈는데도 忠淸道民들이 地域 出身이라는 理由로 그를 지켜내려고 너무 執着했던 것 같다. 이제 地域 出身이 아닌 大韓民國 總理로서 國民을 위해 일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强調했다.

    地域 發展의 好機를 놓쳤다는 아쉬움도 있다. 김용찬 忠南道 企劃調整室長은 4月 30日 追更豫算案 브리핑에서 “비빌 언덕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李 前 總理 辭退로 國費 確保가 多少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記者들의 質問에 對한 答辯이었다. 육동일 忠南大 敎授(自治行政學)는 “忠淸圈이 相對的으로 政治·經濟的으로 疏外받고 逆差別을 받았다고 생각해왔다. 李 前 總理가 이런 不均衡을 많이 잡아줄 것으로 期待한 게 事實인데 아쉽다”고 傳했다.

    하지만 이番 事態를 바라보는 忠淸道民들의 ‘喪失感’과 ‘虛脫感’은 다른 어떤 情緖보다 强하다. 李 前 總理의 退陣이 單純히 地域 出身 總理의 落馬가 아니라 ‘忠淸圈 대망論의 崩壞’를 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광기 대전대 敎授(政治學)는 “疑惑 攻防의 主體인 성완종 前 會長이나 이 前 總理 모두 忠淸道 사람이라 地域民들이 큰 傷處를 받았다. 于先 忠淸圈 元老들이 나서 民心을 추스르고 和合을 다져야 한다”며 ‘集團 힐링’의 必要性을 提起했다. 集團 힐링은 忠淸圈 待望論 崩壞로 인한 衝擊을 治癒하는 데에도 必要해 보인다. 人物 不在의 忠淸圈에서 그나마 大權에 近接한 政治的 리더가 어렵게 나타나 限껏 부풀었던 期待感이 一擧에 무너지는 데서 오는 衝擊이다.

    그렇다면 이 前 總理는 果然 忠淸道民에게 어떤 存在였을까. 最年少(31歲) 警察署長(홍성경찰서)과 最年少 忠北警察廳長, 2線 國會議員, 自由民主聯合 院內代表 等을 거친 그는 號機 넘치는 人物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2年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黨籍을 옮기는 過程에서 2億 원의 ‘移籍料’ 波紋(한나라당에 入黨한 뒤 支援金 名目으로 不法 資金을 받은 嫌疑로 起訴됐으나 無罪 判決을 받았다)에 휩싸이자 2004年 總選 不出馬를 宣言한 뒤 美國으로 건너갔다.

    그런 그가 忠淸道民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2006年 忠南道知事 選擧에 出馬하면서다. 以後 이 前 總理의 一擧手一投足은 忠淸道民의 關心거리가 됐다.

    “이완구 보면 속 후련했는데…”

    忠南道知事 時節에 그가 내건 口號는 ‘强한 忠南’이었다. 忠淸道民들은 ‘핫바지’ 같은 極端的 卑下와 露骨的인 忽待 發言이 나와야 비로소 憤慨할 程度로 自己 感情 表出을 抑制하는 性向을 지녔다. 더구나 오랜 嶺湖南 大權 霸權社(史)에서 늘 政治的 아웃사이더였다. 李 前 總理는 當時 忠淸圈 리더이던 심대평 地方自治發展委員長(前 忠南道知事)과는 完全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줬다. 愼重하고 기다리는 沈 委員長과는 달리 表出(表出)하고 鬪爭的이었다.

    忠南道知事 時節 首都圈 規制緩和를 둘러싸고 그가 김문수 京畿道知事와 各種 討論 프로그램에서 舌戰을 벌이던 光景을 忠南道民들은 아주 印象 깊게 바라봤다. 그 무렵 택시를 타면 “地域의 利益을 위해 다른 地域과 팔을 걷어붙이고 싸우는 李完九 知事를 보면 속이 후련하다”고 말하곤 했다. 가장 忠淸道답지 않은 方式으로 忠淸道를 代辯해 응어리진 마음을 잘 어루만져 줬다고나 할까.

    2008年 世宗市 原案(源案) 貫徹을 要求하며 道知事 자리를 집어던지면서 그의 人氣는 頂點을 찍었다. 李 前 總理는 道知事를 그만두면서 2010年 忠南道知事 不出馬도 宣言했지만, 地域 言論은 그를 變함없이 豫想 候補에 包含시켰고 그때마다 50%에 肉薄하는 支持率을 記錄했다. 斷然 先頭였다. 2013年 4·24 補闕選擧에서 李 前 總理는 이 地域에서 김종필(JP) 前 總理나 記錄할 법한 80% 가까운 得票率로 當選돼 ‘포스트 JP’의 立地를 確固하게 굳혔다.

    올해 初만 해도 忠淸圈 言論의 紙面에는 ‘이완구 臺 安熙正’이라는 式의 忠淸 待望論 分析 記事가 洑물을 이뤘다. 故(故) 盧武鉉 前 大統領의 嫡統(嫡統)을 自任하는 安 知事는 全國的인 知名度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大權走者로 分類돼왔다. 여기에다 潘基文 유엔 事務總長이 本人의 意思와는 關係없이 次期 大選走者 支持도 輿論調査 1位를 차지하면서 세 사람은 忠淸圈 待望論의 트로이카를 形成했다.

    하지만 이番 事態로 李 前 總理가 忠淸圈 指導者의 리더십을 回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一部 言論에서는 李 前 總理를 過去의 政治人으로 分類하듯 ‘포스트 李完九’라는 表現을 使用하고 있다. 육동일 敎授는 “이제 冷靜하고 客觀的인 視角에서 새로운 人物을 發掘해야 할 때이며 地域民들도 새로운 指導者들에게 關心을 기울이기 始作할 것”이라고 展望했다. 엄태석 서원대 敎授(政治學)는 具體的으로 次世代 人物들을 指目했다. “이番 問題는 李完九 個人의 問題이지 忠淸의 問題는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潘基文 유엔 事務總長과 安熙正 忠南知事 等이 大權走者로 象徵性을 維持해 나가느냐가 與否가 關心거리”라는 것.

    潘基文度 傷處

    忠淸圈 리더 가운데 성완종 게이트의 가장 큰 受惠者는 누가 뭐래도 安熙正 忠南道知事다. 그는 全國的인 知名度를 確保하고도 이 前 總理를 제치고 忠淸圈 盟主라고 불리기에는 어딘가 不足한 點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젠 狀況이 달라졌다. 반기문 總長도 이番 事態로 커다란 政治的 打擊을 입은 것이 分明하다. 班 總長은 星 前 會長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實狀은 동생이 京南企業 任員이었던 事實이 드러났다.

    大田의 한 인터넷 新聞은 이처럼 微妙한 狀況에 對해 “地域 政治權 人士들 사이에는 ‘安 知事는 가만히 있는데 自動으로 交通整理가 이뤄진 模樣새’라는 말이 나온다”고 傳했다. 여기에다 강창희 前 國會議長도 20代 總選 不出馬를 宣言하고 事實上 政界 隱退 手順에 들어가면서 世代交替의 불씨를 당겨 이래저래 安 知事에 對한 關心은 最高潮에 達하고 있다.

    安 知事와 李 前 總理는 政治 經歷과 스타일 等에서 사뭇 다르다. 安 知事는 民主化 鬪爭 經歷을 바탕으로 盧武鉉 前 大統領 캠프에 參與하면서 政治에 入門했다. 李 前 總理는 行政考試를 거쳐 經濟企劃院 官僚를 지내다 警察로 前職했고, 治安監(忠南地方警察廳長)을 마지막으로 政界에 投身했다. 安 知事는 2010年부터 맡은 忠南道知事職이 公的 組織을 指揮하는 리더로서 맡은 첫 公職이다.

    保守 텃밭 뚫은 安熙正

    최대 수혜자 안희정 ‘집단 힐링’ 주도할까?

    潘基文 유엔 事務總長은 동생이 京南企業 顧問이던 事實이 드러나 '成完鍾 리스트'의 流彈을 맞았다.

    安 知事를 酷評하는 政治權 人士들은 “道知事職 두 番 다 與圈이 당선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2010年 選擧 때는 앞서 紹介한 대로 不出馬 宣言에도 不拘하고 50%의 支持를 얻었던 李 前 總理와의 對決을 避할 수 있었다. 當時 地域 基盤 政黨이던 自由先進黨은 이태복 前 保健福祉部 長官을 公薦했다가 中途에 탈락시키고 박상돈 前 議員을 다시 公薦하는 迂餘曲折을 겪었다. 朴 前 議員은 이 前 總理의 不出馬 與否를 最終的으로 確認하느라 出馬를 늦춰 不過 한 달밖에 選擧運動을 하지 못했다. 當時 한나라당은 이 地域에 生疏한 박해춘 候補를 公薦해 保守 性向의 票를 自由先進黨과 나눠 가졌다.

    2014年 選擧도 與黨의 戰略 失敗 德分이라는 分析이 있다. 安 支社의 最大 弱點 가운데 하나는 自治行政에 서툴다는 點이었는데, 當時 與黨은 行政 經驗이 없는 정진석 前 國會事務總長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鄭 前 總長은 選擧 내내 ‘충남도 淸廉度 評價 꼴찌’ 이슈 하나에 依存하다시피 했다. 安 知事 캠프에서는 鄭 前 總長을 가장 손쉬운 相對, 行政에 精通한 이명수 議員을 가장 버거운 相對로 公公然히 꼽아왔다.

    그러나 安 知事의 두 次例 當選이 穩全히 相對方의 失手 德分이라고 貶下하기에는 너무도 값진 勝利라는 評價가 적지 않다. 그는 2006年 첫 忠南道知事 選擧 때 1年 前부터 忠南의 市郡 곳곳을 돌며 차분히 票밭을 다졌다. ‘忠南은 保守勢力의 텃밭’이라는 한나라당과 自由先進黨의 傲慢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緻密함과 성실함 德分이었다.

    또한 安 知事는 2012年 總選 때 自身의 選擧 캠프에 있던 4名을 出馬케 해 그中 2名을 당선시킴으로써 保守 텃밭에 野黨 旗발을 세웠다. 그는 지난해 6·4地方選擧에서 再選에 成功하면서 大權의 現實的 代案으로 擧論되기에 이르렀다. 安 知事는 選擧 當時 “地方政府 運營을 통해 나름의 確信이 생긴다면 大韓民國 指導者가 되겠다는 宣言을 하겠다”며 ‘待望論’에 한발 더 다가섰다.

    劇團의 評價

    그는 젊고 好感 가는 이미지에다 忠淸圈 次世代 政治 리더라는 評價를 利用해 忠淸 民心을 파고들고 있다. 그는 누군가 忠淸圈 리더의 脈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忠淸道民의 輿望과 期待를 잘 捕捉했다. 지난해 地方選擧에서 安 知事 側이 가장 注力한 것은 次世代 리더 이미지 浮刻. 다음은 當時 票心의 포인트를 놓고 苦悶하던 安 知事 캠프 關係者의 말이다.

    “選擧를 앞두고 現場 民心을 調査했다. 선술집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살펴 民心의 흐름을 捕捉하는 作業이다. 어느 술집에서 安 知事에 對한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肯定과 否定의 評價가 팽팽했다. 하지만 무리 中 한 사람이 ‘어쨌든 忠淸道에 次世代 政治 指導者가 必要하지 않으냐. 안희정이 그 役割을 擔當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너나없이 同意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安 知事에 對한 評價는 中央 政治權과 言論에서 훨씬 더 좋은 便이다. ‘東亞日報’ 政治部의 한 中堅 記者는 “서울에서는 安 知事에 對한 評價가 매우 좋다. 하지만 異常하게도 地方 人士들을 만나보면 評價가 極端的으로 엇갈린다”고 말했다.

    安 知事는 道政 運營에서 全幅的인 支持는 받지 못하는 듯하다. 一角에善안 知事가 政治에 埋沒된 나머지 地方 行政을 챙기기보다 이미지와 人氣 管理에 餘念 없다고 批判한다. 安 知事는 2010年 就任 以後부터 2013年 6月까지 外部 特講을 62回 했다. 이 가운데 相當數는 勤務時間에 道政 質疑나 國政監査에서 砲火를 맞기도 했다. 같은 黨의 文喜相 議員도 2013年 10月 忠南道 國監에서 “特講이 道政 弘報와 住民 疏通, 비전 提示 等을 위해 意味가 있지만, 可能한 限 行政首班 役割에 充實해달라”고 注文했다.

    安 知事가 外部 特講에 나서기보다 道議會와 關係 改善부터 해야 한다는 注文도 있다. 새누리黨이 多數를 占한 어려운 狀況이긴 하지만, 安 知事가 道議會와의 關係를 매끄럽게 풀어냈다는 말은 들어보기 어렵다.

    “‘訓手 政治’밖에 더해봤나”

    安 知事가 推進하는 三農(三農)革新과 行政革新 地方分權 等의 道程 目標와 課題가 多少 抽象的인 데다 너무 廣範圍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指摘도 있다. 그렇다보니 “安 知事 德分에 忠南道 公務員들은 便安하다. 明確하게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設令 잘못한다 해도 책임지지 않는 雰圍氣”라는 批判도 나온다. 이런 評價를 意識한 듯 이 前 總理는 지난해 4月 정진석 前 事務總長 支援 遊說 過程에서 이런 말을 했다.

    “安 知事가 自身 있게 1等 했다고 한 것이 있느냐. 있으면 내놓아보라고 해라. 只今까지 後輩 道知事라서 말을 아꼈는데 이대로 가서는 忠淸道가 後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安 知事에 對한 否定的 評價는 地方自治團體長에 對한 傳統的 認識 때문이라는 反論도 만만치 않다. 不過 몇 年 後면 必要 없게 되거나 問題點이 드러날 많은 일을 短期 成果만을 노리고 展示的으로 施行해 稅金을 浪費하는 境遇가 그間 非一非再했기 때문. 충남도의 한 關係者는 “安 知事 時節에는 적어도 그처럼 成果 自體만을 위한 일들은 없을 것”이라며 “그의 道程 目標는 當場의 成果는 期待하기 어렵지만 窮極的으로 누군가 推進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說明했다.

    충남도의 外資 誘致 事例를 보면 內實을 위해 苦悶하는 安 知事의 스타일이 보인다. 충남도 關係者는 “李 前 總理의 知事 時節보다 外形的인 外資 誘致 成果는 多少 떨어지지만, 投資 誘致가 中途에 霧散되는 事例도 적고, 雇傭 創出과 高度技術 誘致 等을 통해 內實을 期한다고 評價하고 싶다”고 말했다.

    安 知事는 適切한 時點마다 國家的 話頭와 國政運營 哲學을 드러내며 戰略的으로 次期 大權走者로서의 力量을 보여줬다. 하지만 公的 組織을 指揮한 經驗이 많지 않은 그의 리더십에 對한 1次的 評價는 ‘작은 政府’인 道政 運營 成績에서 내려질 可能性이 높다. 成功的인 道程은 그만큼 重要하다.

    大權으로 바로 가기에는 政治的인 經歷이 日淺하다는 指摘도 적지 않다. 地域 政治權 關係者는 “安 知事가 外郭에 있는 廣域團體長으로서 ‘訓手 政治’를 하고 있지만, 長官 等 直接的인 政策 擔當者나 黨職을 맡은 國會議員으로서 政治 이슈를 이끌어본 經驗은 全無하지 않으냐”고 反問했다. 安 知事가 忠淸圈을 代表하는 리더로 浮上할 수 있을지는 向後 政治 리더로서의 걸음걸이를 얼마나 잘 消化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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