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稱讚에 춤추는 고래는 果然 幸福할까?|신동아

稱讚에 춤추는 고래는 果然 幸福할까?

自私高 廢止 論難에서 失踪된 것

  • 허태균 | 고려대 心理學科 敎授 taekyun.hur@gmail.com

    入力 2015-05-21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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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 靑年들은 名門大에 進學하지 못해서, 願하는 職場에 就業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世俗的 成功 外엔 삶을 評價할 다른 價値를 갖지 못해서 失敗者요 被害者다. 
    칭찬에 춤추는 고래는 과연 행복할까?

    지난해 5月 11日 서울 진선여고에서 열린 特目高·自私高 入試說明會

    韓國 敎育이 正常이 아니라는 데 同意하지 않을 學父母가 거의 없는 것 같다. 現 敎育體系의 問題點을 指摘하며 다른 敎育 機會를 찾아 代案學校, 홈스쿨링, 早期 留學을 選擇하는 積極的 學父母나, 韓國 敎育에 徹底히 順從하며 入試敎育에 沒入해 그 나름 成功的으로 適應하는 또 다른 積極的 學父母, 아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右往左往하거나 自暴自棄한 學父母 모두 現在의 敎育은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入試에 陷沒한 韓國 敎育의 問題點은 언제나 政治 論爭 및 公約의 主題다. 特히 廣域自治團體의 敎育首長을 選出하는 敎育監 選擧 때는 現 制度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놓고 競爭한다. 勿論 그 어떤 敎育監도 公約을 제대로 實行하지 못했고, 實施했더라도 實效性이 없었기에 韓國 靑少年 大部分은 아직도 地獄 같은 敎育體系 안에서 苦痛받는다. 

    敎育 兩極化 主犯이 自私高?

    最近에는 2014年 敎育監 選擧에서 選出된 多數 敎育監이 就任하자마자 ‘自律型私立高等學校(自私高) 廢止’를 推進하면서 論難이 일어났다. 이들이 내세운 自私高 廢止 根據는 只今의 自私高가 敎育의 多樣性과 建學 理念을 제대로 實現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實際로는 最近 大學入試에서 外高와 自私高가 一般高에 비해 엄청난 成功을 이뤄내는 것이 論難의 根本 原因이라는 게 너무나 明確하다. 相對的으로 비싼 登錄金을 받는 外高와 自私高에 相對的으로 富裕한 家庭 出身이면서 成績이 優秀한 中學校 卒業生이 進學하면서 社會 兩極化와 敎育 兩極化를 深化했으며 一般高를 荒廢하게 했다는 것이다. 一般高를 荒廢化했다는 論理의 根據는 一般高에 進學한 學生이 相對的 烙印效果 탓에 挫折하고 그래서 大學 進學에 더욱더 失敗한다는 것이다. 

    自私高를 廢止하겠다는 이러한 論理의 大部分은 最小限 部分的으로 事實이면서 一理가 있다. 自私高가 없었다면 一般高의 授業 雰圍氣가 只今보다는 좋았을 것이고, 優秀한 大學에 進學한 學生이 더 많았을 것이다. 一般高에 進學한 學生에 對한 烙印效果度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推定은 自私高에 進學했을 上位圈 中學校 卒業生이 一般高로 進學했을 境遇를 假定하면 當然히 나타날 結果다. 이들이 一般高에 進學하니 勉學 雰圍氣가 造成돼 下位圈 中學校 卒業生 中에도 工夫에 專念하는 學生이 相對的으로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現在 一般高에서 上位圈인 學生들은 自私高에 進學했을 學生들과 같은 學校에서 3年 동안 더 熾烈하게 競爭해야 하며, 結果的으로 더 낮은 內申點數를 받을 可能性도 높다. 下位圈 學生이 校內에서 더 下位圈으로 밀리게 되는 셈이다.

    요즘 大學入試에선 修學能力試驗을 重要視하는 定時보다 內申을 重要視하는 隨時의 比重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內申에서 不利한 自私高 學生들은 定試로 大學 進學을 하는 境遇가 더 많고, 一般高 學生들은 다양한 隨試 制度에서 相對的으로 惠澤을 본다. 自私高에 進學했을 優秀한 學生들이 一般高에 進學했을 때 現在 一般高 學生들이 大學入試에서 相對的으로 더 유리해질지 不利해질지는 매우 複雜한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結論이 날 수도 있다. 그러니 自私高 廢止가 現在 韓國 敎育이 直面한 敎育 兩極化와 社會 兩極化 問題를 解決하는 最適의 方法인지에 對해선 좀 더 신중한 分析이 必要할 듯하다.

    ‘一般高 全盛時代’의 길

    앞에서 살펴본 自私高 廢止 論難이 適切하지 않은 큰 理由는, 論理의 核心이 大學入試와 入試 成跡만을 考慮한다는 것이다. 兩極化 主張의 基準도 上位圈 大學 進學率이며, 烙印效果의 根據도 入試成跡이고, 勉學 雰圍氣도 結局 入試 工夫를 얘기한다. 결론적으로 一般高에서 좋은 大學에 進學하는 學生 數를 늘리겠다는 게 自私高 廢止 論難의 核心인 것이다. 모두가 創意性이니 入試敎育 止揚이니 敎育의 多樣性을 외치지만, 結局 모든 政策은 大學 進學과 入試敎育만을 判斷의 基準으로 삼고 있다. 韓國 學父母와 學生 大部分이 그것을 願하니 어쩔 수 없다는 辨明은 敎育哲學의 不在를 보여주면서 結局 人氣迎合主義(포퓰리즘)의 本質을 드러낸다.

    問題는 自私高를 廢止하든 안 하든 一般高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學生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學生이 輩出되며, 敎育의 成功을 무엇으로 評價할 것인지에 對한 論議가 없다는 點이다. 全國 高校生의 3%에 不過한 自私高 學生보다 97%의 一般高 學生의 學力이 뒤처진다는 事實보다, 97%나 되는 一般高 學生에게 무엇을 가르칠지가 더 重要한 問題다.

    사람들 大部分이 主張하듯 入試 爲主 敎育이 人性을 破壞하고 窮極的으로 제대로 된 人材를 輩出할 수 없다면 入試 爲主로 敎育받은 自私高 卒業生은 窮極的으로 人生에서 失敗할 可能性이 높을 것이다(결코 그러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아니다. 論理的 矛盾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眞짜 重要한 問題는 97%의 一般高 學生이 現在 무슨 敎育을 받는지, 다시 말해 自私高를 廢止하면 100%에 肉薄할 一般高 學生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다. 一般高 學生에게 가르칠 (入試敎育이 아닌) 무언가와 人性을 갖춘 眞正한 人材를 키울 方法을 안다면 自私高를 廢止하건 안 하건 時間이 지나면 절로 一般高 全盛時代가 올 것이다.  

    97%에게 必要한 것

    누구나 國語·數學·英語 點數로 當落을 決定하는 大學入試가 問題라고 말한다. 韓國 社會의 지나친 敎育熱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도 한다. 部分的으로는 맞다. 70%가 넘는 大學 進學率, 子女의 學業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犧牲도 치를 準備가 된 韓國의 父母를 보면 問題의 根源에 지나친 敎育熱이 있는 것도 事實이다.

    하지만 韓國의 父母는 戰爭의 廢墟에서 資源도 없이 어찌 보면 人的 資源만으로 類例를 찾기 어려운 經濟 發展을 이뤄낸 歷史를 살아왔다. 그 過程에서 相對的으로 ‘知識權力’을 先占하는 事實, 卽 敎育받은 사람이 社會的으로 成功하는 事實을 目擊한 學父母의 敎育熱은 充分히 理解할 수 있고 나무랄 수만도 없다. 問題는 ‘敎育學閥’의 힘이 弱해지고 있으며 未來에는 知識權力의 內容과 形態가 바뀐다는, 避할 수 없는 現實을 大部分의 國民이 잘 알지 못한다는 點이다. 이러한 警告를 들어도 100% 理解하거나 過去 自身이 經驗한 事實을 廢棄할 만큼 勇敢하지도 않다. 따라서 敎育의 變化는 平凡한 個人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敎育課程의 變化를 통해 國民의 認識을 바꾸고 未來 時代에 적합한 人材를 排出하는 方案을 마련하는 게 敎育의 使命이고 機能이다. 

    入試 爲主의 敎育이 앞서 說明한 側面에서 問題가 많다는 點에는 專門家 大部分이 同意한다. 國語·英語·數學 中心의 敎育이 問題라는 것은 다 알고 修能의 難易度와 內申의 國英數 比重을 낮추려고 努力하지만, 그 代身 무엇을 가르칠지 現實的 對案은 나오지 않는다. 現在와 未來에도 國語·英語·數學 같은 傳統的 側面에서 知的으로 뛰어난 人材는 必要하다. 그러한 敎育에 적합한 이들이 正確히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靑少年의 70%는 絶對 못되고 아마 50%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傳統的인 指摘 側面의 資質을 갖지 못한 50% 넘는 靑少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들에게 國英數를 全혀 가르칠 必要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只今처럼 모두에게 거의 같은 敎育을 提供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똑같은 것을 가르쳐 놓고 資質에 따라 點數 差異가 난 것에 問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詐欺다. 또한 그런 差異가 있더라도 傷處 받지 말라는 것은 變態에 가깝다. 

    國英數 같은 學業 分野에서 下位 50%에 該當하는 이들에게 잘할 수 있는 ‘무엇’을 가르치거나 다른 機會를 주고 있는가. 모든 學生에게 國英數에서 좋은 點數를 받을 機會를 준다는 것이 果然 社會正義의 實現일까. 그렇게 하는 것은 國家的 浪費일뿐더러 窮極的으로 多數가 失敗할 確率이 높다. 國英數가 아닌, 그들이 眞짜 잘할 수 있는 領域이 敎育에 包含돼야 한다. 그게 바로 敎育의 多樣性이다.

    敎育의 多樣性 問題는 學業 上位圈學生이 몰려 있는 3%의 自私高 問題가 아니라, 어찌 보면 相對的으로 學業에 資質이 不足할 可能性이 높은 97%의 一般高 問題다. 事實 傳統的 知的 領域에서 優秀한 人材의 價値가 漸漸 줄어들고 있다. 韓國 社會에서 名門大 卒業生, 各種 考試 合格生의 삶이 예전처럼 確固하게 保障되지 않는다는 現實, 그리고 創意性이나 人性, 多樣性을 强調하는 社會 雰圍氣를 보면 앞으로 社會가 어떻게 흘러갈지 豫測할 수 있다. 國英數 工夫를 쉽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敎育體系 안에 國英數를 代身하는 뭔가를 넣어줘야 한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方法

    캔 블랜차드의 ‘稱讚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冊이 한때 話題가 됐다. 稱讚보다는 處罰에 익숙한 우리 社會에 肯定的 人間關係의 重要性을 新鮮한 內容으로 紹介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冊의 內容에 反對할 생각도 없고 이 冊이 우리 社會에 寄與한 바도 크다고 믿지만, 이 冊의 題目은 韓國 社會의 또 다른 限界를 보여준다.

    이 冊은 稱讚 때문에 춤추는 고래는 元來 춤추고 싶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든 이 고래를 춤추게 해야 한다는 것을 前提로 삼는다. 元來 춤추고 싶어하는 고래에게는 稱讚이 必要 없다. 춤추고 싶지 않거나 춤출 理由가 없는 고래를 춤추게 할 때만 稱讚과 같은 外在的 動機(外部에서 주어진 補償이나 處罰)가 必要하다. 調鍊師가 願하는 時點, 願하는 場所에서 춤을 춰야 하는 動物院 돌고래에게는 稱讚이 必要하다. 하지만 넓은 바다에서 혼자 헤엄치는 自由로운 고래가 춤추고 물위로 뛰어오르는 것은 누군가 옆에서 稱讚해서가 아니다. 바다의 고래는 춤추고 싶을 때 춤춘다. 바다의 고래에겐 稱讚이 아니라 아마도 그들만이 들을 수 있는 ‘音樂’이 必要할 것이다. 

    韓國 敎育은 發展하고 있다. 過去에 비해 稱讚과 補償을 늘리려고 한다. 如前히 商店보다는 罰點이 흔하고, 많은 先生님이 恐怖, 不安, 處罰로 學生을 다루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變한다. 問題는 如前히 모든 고래를 춤추게 하려 한다는 點이다. 世上에는 춤추고 싶은 고래와 춤추기 싫어하는 고래가 있는데, 모든 고래를 춤추게 하려고 稱讚하거나 채찍질한다. 學生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서 너무나 다양한데, 敎育은 모두 비슷한 것을 하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强한 稱讚과 强한 處罰이 必要하다. 춤을 좋아하는 고래라도 아무 때나 춤추지 않는다. 그래서 ‘音樂’이 必要하다. 韓國의 敎育體系엔 ‘音樂’이 있을까. 國英數 같은 傳統的 學業을 좋아하는 學生에겐 必要한 ‘音樂’을 틀어준다. 하지만 다른 것을 좋아하는 學生들에겐 果然 무엇을 주고 있을까.

    더욱 本質的인 問題는 춤추고 싶은 고래가 춤추기 爲해 必要한 것은 ‘音樂’이지만, 춤추는 理由는 ‘音樂’이 아니라는 것이다. ‘音樂’은 그저 環境的 要因이지 根本的 理由는 아니다. 춤추는 理由는 ‘재미’라는 內在的 動機다. 다른 理由는 없다. 敎育體系에서 가장 不足한 것이 바로 재미다. 學生 大部分에게 學校 自體는 재미있을 것이다. 敎育이나 學業 때문이 아니라 親舊 德分이다. 親舊와 수다 떨고, 함께 間食 먹고, 蹴球하고, 音樂 듣고, 게임하는 건 너무나 재미있다. 하지만 工夫를 재미있어하는 學生은 少數다. 督勵해주면 그나마 工夫에 재미를 붙여볼 學生도 絶對 多數는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工夫하는 孃은 世界 最高 水準이지만 工夫에 對한 興味는 世界 最下라는 건 여러 調査에서 確認된 바다.

    이들을 춤추게 하려면 學業과는 다른 ‘音樂’을 틀어줘서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 韓國의 敎育體系는 재미를 傳染病이나 되는 듯 置簿하는 것 같다. 똑같은 敎育이라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지, 새로운 재미있는 敎育을 追加할지를 別로 苦悶하지 않는다. 每日 國英數를 얼마나 쉽게 할 것인지만 苦悶한다. 國英數만 쉬워지면 가만히 있어도 靑少年들이 즐거워서 춤을 출까. 재미있을 理由가 없는데도 춤추는 고래는 미친 고래다.  

    最近 여러 報道에 따르면 韓國 靑年들이 過去와 달리 악착같지 않다고 한다. 就業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이 時期에, 좋은 職場에 就業해도 今方 그만두는 靑年이 늘고 있다고 한다. 就業할 努力을 하지 않고 意志도 없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族이 增加한다는 內容의 報告書도 있다. 勤務 强度가 높은 正規職보다 條件이 나쁘더라도 出退勤 時間이 正確한 職場을 選好하고, 甚至於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靑年이 늘어간다는 資料가 쏟아진다.

    靑年의 抛棄는 나쁜 걸까?  

    많은 旣成世代는 이러한 現象을 걱정한다. 相對的으로 어려움을 모르고 풍요롭게 자랐으며 入試 工夫에만 매달린 靑年들이 就業難에 直面해 너무 쉽게 抛棄하고, 無意味하고 小小한 재미만을 찾아 利己的 삶을 산다고 非難한다. 極甚한 經濟的 不況으로 지난 20年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日本에서 일어난 現象과 비슷하다면서 이런 靑年들 때문에 韓國 經濟가 더 나빠진다는 듯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靑年들의 抛棄(實際로 뭘 抛棄하는 것인지 確實하지 않지만)가 果然 나쁜 것일까. 이들이 抛棄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면 社會가 이들을 堪當할 수 있을까. 就業, 돈, 名譽 等 世俗的 成功을 絶對 抛棄하지 않고 努力하기만 하면 經濟가 發展해 善循環에 들어가 이들에게 새로운 機會가 주어진다는 根據가 뭔지 모르겠다.

    低成長 經濟構造에 들어가 있어 實際로 많은 靑年이 世俗的 成功에 相對的으로 덜 매달리고 살아가는 先進國은 잘못되고 있는 걸까. 相當한 經濟發展을 이룩한 先進國 大部分은 低成長 問題를 일찌감치 經驗했다. 이런 나라의 靑年들이 個人 時間을 重要視하는 現象은 오래前부터 있어왔고, 世俗的 成功을 抛棄한 삶을 選擇한 靑年들도 오래前부터 있어왔다. 後루이치 노리토市가 쓴 ‘絶望의 나라의 幸福한 젊은이들’이라는 冊은 얼마나 많은 日本 젊은이가 抛棄하면서 사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抛棄한 젊은이들이 決코 不幸하지 않다는 事實이다. 

    世俗的 成功을 抛棄한 靑年 比率로만 보면 先進國들이 韓國에 決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但只 差異는 그들은 아주 體系的으로 世俗的 成功을 抛棄할 機會를 제공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自暴自棄로 살지 않는다. 世俗的 成功을 代替할 만한 수많은 다른 價値를 社會가 提供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宗敎든 文化든 藝術이든 奉仕든 어떤 것이든 어려서부터 世俗的 成功이 아닌 다른 價値를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이들은 抛棄한 게 아니라 다른 삶을 選擇한 것이다. 어찌 보면 平凡하지만 幸福한 小市民의 삶을 營爲한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韓國은 靑年 大部分에게 世俗的이면서 똑같은 成功의 삶을 勸하고 强要한다. 敎育의 거의 唯一한 價値는 世俗的 成功과 그것을 위한 學業이다. 그래서 韓國 靑年들은 다른 價値를 모른다. 韓國 靑年들의 抛棄는 眞짜 抛棄다. 아무런 對案 없이 그냥 失敗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社會는 如前히 抛棄하면 안 된다, 그러면 永遠히 失敗하는 것이라고 注入한다. 마치 그들 때문에 韓國 社會가 어려운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失敗자면서 被害者다. 就業을 못해서, 成功을 못해서가 아니라 自身의 삶을 評價할 다른 價値를 갖지 못했기에 失敗者요, 被害者다. 

    ‘재미’를 가르치자  

    韓國 敎育에서 가장 不足한 것이 재미다. 靑少年, 젊은이가 재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니 每日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感覺的이고 一時的인 快樂만 追求한다. 大學 祝祭에 가보면 學生들이 大槪 ‘술장사’를 한다. 學科別로 가장 重要한 祝祭 活動이 酒店 運營이다. 自身들의 祝祭인데도 놀지 않고 돈벌이에 專念한다. 大學 祝祭뿐 아니라 韓國 祝祭 大部分이 이렇다. 全國에 700個가 넘는 祝祭가 있는데, 成功的인 것은 손꼽을 程度다. 왜? 住民은 아무도 안 즐기고 돈벌이만 하기 때문이다. 住民은 장사만 하고 觀光客이 뭔가를 한다. 祝祭의 가장 큰 目的 또한 地域經濟 活性化다.

    外國의 많은 成功的 祝祭는 住民들이 實際로 參與하는 形態다. 觀光客 有無에 相關없이 每年 또는 每달 代代로 내려온 自身들을 위한, 自身들의 行事를 치른다. 商人이나 運營者가 아닌 參與者로서 直接 主人公이 되고, 觀光客은 그것을 구경하거나 가끔 運이 좋아 그들 사이에 끼어 뭔가를 해보면서 즐거워한다. 韓國 社會와 韓國人은 재미를 너무나도 모른다.

    칭찬에 춤추는 고래는 과연 행복할까?
    허태균

    1968年 出生

    고려대 心理學科 卒業, 美國 일리노이 주립대 文學碩士(一般心理學)·노스웨스턴대 哲學博士(社會心理學)

    著書 : ‘가끔은 제精神’


    敎育의 多樣性은 自私高 廢止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才能과 關心을 가진 靑少年에게 各自의 才能과 關心에 適切한 敎育을 提供할 때 이뤄낼 수 있다. 入試 成功 與否가 重要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수많은 重要한 基準 中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工夫라는 춤을 추려는 靑少年에겐 그에 맞는 ‘音樂’을 주면 된다. 그러면 自然스럽게 稱讚할 일이 생긴다. 하지만 다른 춤을 추려는 靑少年에게 稱讚을 통해 억지로 工夫 춤을 추게 하지 말자. 그들은 工夫를 抛棄할 權利, 다른 춤을 출 權利를 가졌다. 各自 願하는 춤을 출 때 가장 재미있어할 것이고 社會는 幸福해질 것이다. 우리 敎育의 義務는 그들이 願하는 ‘音樂’을 提供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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