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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案 不在論’ 按酒(安住) ‘勝利 方程式’ 안 보인다|신동아

‘代案 不在論’ 按酒(安住) ‘勝利 方程式’ 안 보인다

2012 文在寅 vs 2015 文在寅

  • 장은숙 | 政治評論家, ‘아름다운 選擇, 2017年’ 著者

    入力 2015-05-21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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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明博 政府 審判論 等으로 政權交替 熱望이 컸던 2012年 大選에서 文在寅은 48%의 支持를 얻었지만 敗北했다. 2年餘 뒤 第1 野黨 代表로 再登場했지만 ‘질 수 없는 게임’이라던 4·29 再補選에서 慘敗했다. 2012年에 提起된 問題點과 限界를 如前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黨權 掌握-總選 勝利-大選 勝利’라는 그의 大權 로드맵은 實現될까.
    ‘대안 부재론’ 안주(安住) ‘승리 방정식’ 안 보인다

    48% 支持에도 不拘하고 大選에서 敗한 문재인 代表는 산적한 難題를 克服하고 次期 大權을 잡을 수 있을까.

    #1 이완구 總理 辭退 後, 노무현 政府 時節 2次例에 걸친 성완종의 赦免·復權 問題가 話題로 登場했다. 17代 大選 後 李明博 政府에서 ‘끼워넣기’를 했다는 둥 論難이 커지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代表에게 記者들의 質問이 쏟아졌다.

    “노무현 政府 時節, 성완종 會長 赦免·福券에 直接 介入했습니까?”

    그는 이렇게 答했다.

    “그건 法務部 所管이죠. 그걸 묻기 前에 親朴 側近들이 돈 받은 게 于先 調査돼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뭐 잘못했는데?’ ‘너나 잘해’라는 式의 表情과 말套로 느껴지는 그의 東問西答은 以後에도 한참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이를 두고 ‘발뺌하고 辨明한다’면서 “‘노무현 大統領式’이 아니다. 盧 大統領은 堂堂한 사람이었는데 門 代表는 辨明으로 一貫한다”(이진복 새누리黨 戰略企劃本部長)고 批判의 날을 세웠다. 盧 前 大統領과 견주어 文 代表를 批判하는 건 꽤 效果的인 戰術이었다. 綜合編成채널에서도 여러 保守 패널이 이 모듈을 가지고 문재인을 攻擊했다. 빌미를 준 것이다.



    이 場面은 鷄卵 投擲 事件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은 세 次例 鷄卵 投擲을 當했다. 그中에서도 農民大會에서 얼굴에 鷄卵을 맞고도 끝까지 演說을 이어간 場面은 많은 國民에게 ‘堂堂한 노무현’으로 어필했다. 그는 “政治人은 (이렇게) 좀 맞아줘야 民心을 달랜다”는 나름의 膽大함을 基盤으로 大統領까지 될 수 있었다. 盧 前 大統領은 “나는 문재인을 내 親舊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盧武鉉이 없었다면 政治판에 뛰어들지 않았을 文在寅에게 겹쳐지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런 노무현도 退任 後 檢察 調査를 받으러 갈 때 버스 窓門으로 날아든 鷄卵 洗禮엔 적잖이 唐慌했다. 文在寅은 그런 곤혹스러움을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只今 그에게 必要한 것은 노무현이 大統領이 되기 前의 그 堂堂하던 얼굴이 아닐까.

    文 代表가 光州 訪問 때 警察에 身邊保護 要請을 했다는 데 對한 論難도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光州空港에서 천정배 議員 支持者 20餘 名이 抗議示威를 한 건 事實이며 文 代表가 VIP 通路로 空港을 빠져나간 것은 事實인 듯하다. 이 場面이 또 한 番 盧武鉉과 對比된다. 別것 아닌 듯하지만 이런 些少한 行動 패턴에서 사람과 力量에 對한 評價가 내려진다. 이미지 管理가 제대로 되질 않고 있다. 18代 大選에서도 그랬지만 그 後에도 마찬가지다.

    #2 ‘서울의 光州’라 불리는 관악구는 4·29 再·補闕選擧의 最大 激戰地였다. 選擧 直前 金曜日인 4月 24日 저녁 문재인 代表는 鄭泰浩 새政治民主聯合 候補와 그 地域 中心部인 宸臨四거리 食堂街를 돌면서 이른바 ‘불금우락’(불타는 金曜日 동무와 함께(友樂))의 戰略的 選擧運動을 하는 中이었다. 다음은 어느 食堂의 風景이다.

    食堂에 들어선 鄭泰浩 候補가 먼저 외친다.

    “문재인 代表 오셨습니다. 여러분! 人士들 나누시죠!”

    문재인이 테이블을 돌면서 人事한다. 어떤 이는 足발이나 수肉 等을 쌈에 싸서 드시라 勸하기도 한다. 文 代表가 이를 넙죽 받아먹자 좋아라 서로 웃는다. 人事가 대충 끝나자 다시 鄭泰浩 候補가 외친다.

    “자! 文 代表님과 寫眞 찍으실 분은 밖으로 나오세요!”

    俳優 문재인이 主人公이고 鄭泰浩는 監督 노릇을 했는지 코디 노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場面에서 冠岳乙 地域區 國會議員 候補 鄭泰浩는 없었다.

    獨斷的 判斷과 行動

    #3 4·29 再補選 光州 西區乙에서 無所屬 천정배 候補가 壓勝을 거두자 바로 湖南 新黨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화들짝 놀란 文 代表가 選擧 後 一週日도 안 된 5月 4日 光州 西區乙을 訪問, 老人亭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改革과 革新을 强調하며 支持를 呼訴했다. 落選 人事次 간 것치고는 꽤 搖亂했다. 시큰둥한 光州 民心은 且置하고, 이 일로 새政治民主聯合 內部가 시끄러웠다.

    “代表가 光州 간다는 얘기를 最高委員들에게도 한마디 한 적이 없고 그냥 혼자 決定하고 가서 저렇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익숙한 場面이기도 했다. 이완구 總理任命안 國會 同意 與否를 앞두고 文 代表는 난데없이 ‘輿論調査 決定論’을 꺼냈다가 뭇매를 맞았다. 選擧로 構成한 立法機關이 버젓이 있는데, 주어진 任務를 다할 생각은 않고 난데없이 輿論에 期待는 건 都大體 무슨 發想이냐는 非難이 쏟아졌다. 그 震源地를 찾는 이들도 생겨났다. 문재인이 親盧(親盧武鉉) 브레인의 말을 듣고 行動하는 俳優가 아니냐는 疑懼心은 4·29 再補選 以後에도 2012年 大選의 데자뷰처럼 野圈 內에 擴散됐다. 전병헌 最高委員은 5月 7日 라디오에 出演, 아예 문재인 體制의 問題點에 對해 ‘牌’를 다 까보였다.

    “大選에서 失敗한 政務的 判斷力을 가진 사람들이 如前히 門 代表를 補佐하고 있다면, 文 代表가 黨 代表로도 成功하지 못할 수 있다. 이番 機會에 代表가 確實하게 黨의 公組織 中心으로 運營해야 한다. 敗北 以後 落選 人事次 光州를 간다고 한 것은 獨斷的인 判斷이었다. (最高委員會에서) 全혀 論議되지 않았고, 問題 提起를 하려 했을 때는 이미 記者들한테 日程이 알려져 거둬들일 수도 없는 狀況이었다. 매우 重要한 時期엔 代表의 行步 하나하나가 相當한 衝擊과 메시지를 줄 수 있으니 最高 議決機關이자 論議機關인 最高委員會에서 論議를 거쳐 나가야 한다. 이 過程을 거치기도 前에 一方的으로 (文 代表의 行步가) 알려지고 있다. 이런 式의 意思決定 構造라면 繼續 問題가 惹起될 수밖에 없다.”

    批判일까, 非難일까. 前 最高委員이 누워서 침 뱉기를 했다 해도 過言은 아니지만, 內容을 차분하게 살펴보면 한 가지는 確實해진다. 문재인 代表 體制에 對한 否定的 視角이 깊어지는 中이란 事實이다.

    4·29 再補選에서 4對 0으로 完敗하고 천정배의 登場으로 湖南政治 復活論이 提起되면서 文 代表의 立地가 急激하게 흔들리는 듯하지만 湖南이 單獨으로 떨어져 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5月 6日 동교동으로 이희호 女史를 찾아간 천정배의 입에서 바로 ‘黨을 만들 생각은 없다’는 말이 나왔다. 千正培는 무슨 말을 들었던 것일까. 一部가 흘러나왔다.

    “最近 (千 議員이) DJ 精神을 繼承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監査하긴 하지만 내 男便 이름이 政爭에 오르내리지 않게 해달라. 特히 墓域 參拜에서 그런 말과 동교동系를 擧論하는 건 옳지 않다. 政治 指導者는 책임질 때 책임지는 게 必要한데, 國民은 野圈 分裂도 바라지 않는다.”

    金大中 前 大統領의 實質的 브레인이었던 李 女史의 發言은 새政治民主聯合이라는 黨을 흔드는 동교동系 一角과 ‘뉴DJ’를 言及한 千正培에게 모두 自制하고 野圈 團合에 힘쓸 것을 注文한 것으로 읽혔다. 그래서 文在寅은 如前히 野圈의 第1位 次期 大選 候補로 일컬어진다. 그의 立地는 純全히 ‘代案 不在論’에서 나왔다. 本人도 ‘나 말고 對案을 내놓아보라’고 대놓고 말하며 黨 代表가 됐다. 再補選 敗北 後 黨 代表에서 물러나는 水準의 果敢한 革新이 必要하다는 主張이 살짝 나돌다가 멈칫한 理由도 ‘如前히 代案이 없다’로 壓縮된다.

    ‘플러스 알파’는 어디에?

    5月 5日 어린이날, 微妙한 뉴스 하나가 政治판 話題에 올랐다. 總選에서 敗北한 後 政界 隱退를 宣言하고 蟄居하던 손학규가 傳貰집을 文 代表의 집 近處로 옮긴 것. 이를 두고 一角에선 ‘文在寅 一線 後退-孫鶴圭의 大選 街道 登場’이란 推測까지 내놓았다. 이는 批判 水準이 아니라 非難이었다. 文 代表의 限界를 認定해야 한다는 것이다. 代案을 찾아야 한다는 注文도 섞였다. 그러나 文在寅은 이미 ‘黨 代表-總選 勝利-大選 勝利’라는 3段階 政治 日程表를 이마에 새긴 지 오래다. 더 正確하게 말하면 이는 親盧勢力의 戰略的 接近法이며 公式이다. 이를 깨는 건 許容되지 않는 時點이다.

    問題는 바로 ‘文在寅’이란 人物의 限界다.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하지만, 文在寅-安哲秀 單一化 以前까지 文在寅 單獨으로는 支持率이 20%臺를 넘지 못했다. 엎치락뒤치락 했으나 2012年 10月頃 문재인과 安哲秀의 支持率은 둘 다 22~26%線을 오갔다.

    그러나 單一化를 통해 박근혜 候補와의 兩者 對決에서 48%라는 높은 支持率을 얻었다. 重要한 것은 이 數値가 文 代表의 順 支持率이 아니라는 點이다. 그 속에는 安哲秀의 票도 있고 甚至於 作故한 김근태의 票, 金大中·노무현의 票가 모두 뒤섞여 있다. 純粹한 文在寅 票는 如前히 20% 初盤이다. 2·8 全黨大會에서 黨 代表가 된 以後 大選 候補 選好度에서 30%臺에 肉薄하며 1位에 오른 바 있다. 그런데 그 以上 올라갈 수 있을까. 이를 놓고 論爭이 繼續되지만 只今으로선 限界를 克服할 만한 ‘플러스 알파(+α)’가 보이지 않는다.

    ‘위버섹슈얼’ 이미지는 敗着

    個人의 캐릭터 分析은 評價 基準의 全部는 아니어도 無視할 수 없는 要素다. 計量化는 쉽지 않으나 現象으로는 加工할 만한 威力으로 登場하기도 한다. 人物 中心의 大統領選擧에서는 特히 그렇다.

    ‘위버섹슈얼(ubersexual)’은 2012年 大選에서 문재인이 追求한 캐릭터다. 부드러운 듯 거친 男子, 거친 듯 부드럽게 相對를 對할 줄 아는 男子는 魅力이 있다. 위버(uber)는 ‘~議 위에’ ‘~를 超越한’이란 뜻이다. 家父長的이고 마초(macho)的 男性과는 다른 스타일의 男性的 魅力 要素가 多分히 있다.

    그러나 그는 女性 候補들(박근혜, 李正姬) 사이에 끼여 이 캐릭터의 政治的 파워 維持에 失敗했다. 長點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男性的 마초와 女性的 趣向의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어느 쪽에도 가깝게 다가서지 못했다. 特戰司 出身을 强調하며 마초 이미지를 前面에 내세우기도 했지만, 정작 속살을 드러낸 그는 마초가 아니었고 大選 TV討論에서 이정희 候補에게 오히려 男性性을 빼앗긴 듯한 場面도 演出됐다.

    曖昧한 캐릭터로는 選擧에서 勝利할 수 없다. 韓國 社會와 多數의 有權者는 政治的 리더라면 보여줘야 하는 ‘일정한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渴求한다. 18代 大選에서도 누군가 强力하게 이끌어주는 指導者를 바라는 마음이, 曖昧한 女性性을 가진 男性을 支持하는 것보다 더 剛하게 影響을 미쳤다. 政治 指導者의 正體性을 잘 表現하지 못하는 건 政治人으로는 致命的인 弱點이 되기도 한다. 民主的이고 잘 疏通하는 指導者를 바라는 한便으로는 剛한 指導者에 對한 期待感이 우리 社會엔 强하게 存在한다.

    大選이 끝난 뒤엔 어땠을까. 한番 이미지 設定에 失敗한 狀態에서(수권 能力을 갖춘 有能한 政治人의 이미지를 基準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文在寅은 그 後에도 連續的으로 自身의 缺陷 많은 性的 正體性을 드러낸 바 있다. 活動할 때나 안 할 때나 마찬가지였다. 男性性의 極端인 마초와는 全혀 다른 女性的 要素가 加味된 文在寅의 行動 패턴은 韓國 社會에서 ‘卑怯함’ ‘머뭇댐’ ‘氣가 弱함’ 甚至於 ‘좀생이’ 이미지로 評價됐다. 18代 大選과 그 後 一連의 時期 동안 벌어진, 文在寅이란 人物에 對한 社會의 一般的 評價 事例 몇 가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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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在寅은 大選에서 敗北한 지 2年餘 만인 2月 8日 黨 代表로 選出되며 大權 再挑戰에 本格的으로 나섰다.

    ‘이런 文在寅은 아니다’

    그는 國會議員職을 辭退하지 않고 18代 大選에 나선 것부터 非難을 받았다. 背水陣을 치지 않고 나왔다는 點에서 選擧 前에 이미 敗北를 感知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安哲秀와의 單一化에서 ‘桶 큰 兄님론’을 내세웠지만, ‘꼼수’ 論難이 提起되면서 오히려 통이 작은 걸로 評價된 것도 批判거리였다. 決코 成功한 單一化가 아니란 건 文在寅 側도 알고 있었다.

    大選 敗北 後 大選 結果를 受容한다고 했으면서도 大選 不服 이슈에 슬그머니 기댄 채 1年 以上을 보낸 것도 民心의 外面을 불렀다. 安哲秀와 민주당의 第3地帶 統合이란 形式으로 誕生한 ‘새정치민주연합’李 2014年 두 次例 選擧에서 敗北하고 안철수-김한길 體制가 물러난 狀態에서 展開된 一連의 黨 再建 過程에서도 文在寅은 指導者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 朴映宣 非對委 體制에서 李相敦 迎入에 同意해놓고 論難이 일자 슬쩍 빠진 것은 ‘卑怯하다’는 認識을 낳았다.

    歲月號 事態에 便乘해 近 1年 歲月을 보내면서 벌어진 이런 일들은 그가 다시 政治 前面에 登場하는 게 果然 可能할까 하는 疑懼心마저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2·8 全黨大會를 통해 다시 華麗하게 登場했다. 朴趾源과 薄氷 勝負를 벌이며 湖南과 親盧의 葛藤을 豫告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文在寅에 對한 期待가 弱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代案 不在論’을 앞세워 黨 代表가 된 後 大選走者 選好度 1位에 政黨 支持率도 높아가던 時點에 마치 깨진 쪽박에서 물 새듯 事件이 끊이지 않았다. 이완구 總理候補 任命同意案 國會 議決을 앞두고 ‘輿論調査 決定論’을 들고 나왔고, 李 總理候補가 內定됐는데도 湖南을 巡廻하면서 ‘湖南 總理論’ 云云하며 뒷북을 치자 湖南에서도 批判이 터져나왔다.

    4·29 再補選은 文在寅으로서는 最上의 選擧로 만들 수 있는 機會였다. 성완종 前 京南企業 會長의 遺書가 親朴(親朴槿惠) 核心 人士들을 擧論했기에 政權의 不道德性을 겨냥하는 選擧 戰略은 有效하게 먹힐 수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湖南 民心은 選擧가 始作되기도 前에 文在寅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痕跡이 歷歷했다. 동교동系 支援 없이 光州에서 選擧를 이길 수 있는 動力이 文在寅 個人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서울 관악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冠岳乙은 원的, 본적이 湖南인 住民이 60%가 넘는 곳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운 鄭泰浩 候補는 湖南票를 吸收할 威力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湖南을 代表하는 黨이 아니었다. 또한 政權 打倒를 외치는 巨大 談論은 ‘開發 後進論’을 들고 나와 地域的 이슈로 接近한 새누리黨의 戰略 앞에 脈없이 무너졌다.

    문재인이 2年餘 前에 얻은 48%의 支持率은 이番 選擧에서 作動하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湖南을 잃은 第1 野黨’이라는 致命的 弱點도 있지만, 그보다는 ‘唯一 代案論’에 對한 累積된 疑懼心, 親盧 獨走에 對한 反感으로 黨이 內部的으로 瓦解된 게 가장 큰 原因으로 봐야 한다. 이는 結局 文在寅의 政治 力量 問題로 歸結된다.

    野圈 支持者들에겐 再補闕選擧보다도 大選에서의 勝利 方程式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問題였다. 이 點이 지난 大選과 이番 再補闕選擧에서 문재인에게 드러난 問題의 差異일 수 있다. 그때는 安哲秀와의 單一化 以後 漠然하게나마 이명박 政權을 斷罪하고 새로운 政治를 펼 수 있는 政權交替의 ‘唯一한 代案’이었지만, 이番 選擧를 통해선 ‘(이런) 文在寅은 아니다’라는 雰圍氣가 急速度로 擴散됐다.

    文在寅은 只今 野圈에서도 懷疑的인 代案으로 評價되고, 社會的으로도 뭔가 不足한(그것이 몇 %이건 間에) 不實한 代案으로 定義되는 段階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 그 出發點은 ‘不信’이다. 그의 캐릭터는 韓國 社會가 期待하는 男性性과 大選 候補의 調和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强性으로 向하는 그의 政治가 4·29 再補選에서 1次 民心에 依해 評價받은 것이라는 分析도 나온다. 말로만 剛한 게 아니라 眞짜 ‘政治的으로 剛함’이 뭔가를 묻는 質問 같은 것이다. 政權의 政策에 事事件件 反對한다고 해서 ‘剛한 指導者’ 이미지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批判이기도 하다. 그것은 如前히 强勁 對應 爲主의 政治的 勢몰이로 一貫하는 野黨의 行態에 國民이 크게 共感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不實한 매듭질

    좀 더 들어가보면, 文在寅의 限界는 여러 곳에서 確認된다. 사람들은 문재인이 辯護士 出身인데도 ‘知的 能力이 월등하게 뛰어난’ 指導者감으로 分類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무현 政權에서 祕書室長을 지낸 行政的 經驗을 强占으로 본다. 그러나 성완종 赦免 論難에서 보듯, 2012年 大選 때 西海 NLL(北方限界線) 抛棄 論難에서 보듯 國家 行政에서도 그의 態度는 맺고 끊는 매듭質이 분명하지 않았다.

    政治人 文在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政治人으론 보지 않는다. 初選 議員에 不過하고, 盧武鉉 事後 社會의 要求에 依해 大選 街道에 登場했지만 安哲秀와의 單一化에서 그의 貪慾을 봤고, 여러 事案을 決定할 때 親盧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確認했다. 이 때문에 第1 野黨을 强力하게 이끌 政治 指導者는 아니란 認識이 커졌다.

    하지만 그가 버틸 수 있는 게 오히려 이런 虛點 때문이라는 逆說도 나온다. 黨 代表가 된 後 이렇다 할 허니문 期間도 못 가진 채 憲法裁判所의 통합진보당 解散 決定으로 4·29 選擧판이 만들어졌다. 그는 黨 代表로서 自己 政治를 設計할 時間 餘裕도 없이 選擧에 내몰렸고 敗北했다. 그래서 一角에선 문재인이 力量을 제대로 펼 수 있는 機會를 當分間 좀 더 줘야 하지 않으냐는 主張도 나온다. 文在寅 스스로도 이를 헤쳐나가겠다는 剛한 意志를 갖고 있다.

    그를 戱畫化하는 表現이 많다. ‘門罪人’ ‘문제인’ 같은 말들이다. 政治人이라면 이런 程度의 비아냥은 늘 듣고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實際 그의 캐릭터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가 只今 19代 大選이라는 勝負의 世界에 果然 몸을 담을 것인지 아닌지를 決定하라는 社會的 要求에 直面해 있다는 事實이다. 果然 그는 힘을 길러 이 勝負 世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첫머리에서 性格을 指摘받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權力意志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個人의 權力에 對한 欲望이자 그것을 追求하는 性格的 强弱, 장단을 말하는 것이다. 政治人 文在寅은 더 冷徹해져야 하지만 如前히 그는 曖昧한 위버섹슈얼에 머물고 있는 듯 보인다. 2012年 大選 즈음에 드러낸 바로 그 캐릭터와 한 치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進退兩難, 四面楚歌

    19代 大選에서 ‘桶 큰 兄님론’은 다시 登場하기 어렵다. 한番 失敗한 口號인 데다 朴元淳 等 다른 野圈 走者들에게 ‘내가 兄님’ 하고 나설 만한 狀況도 아니다. 黨 代表 以後 받은 成績表도 답답하다. 이미 한 次例 中間考査(4·29 再補選)에서 落第點을 받았다. 戰線에는 離脫하려는 者들이 수두룩하고 親盧勢力은 如前히 그에게만 기댄다. 進退兩難 程度가 아니라 四面八方이 꽉 막힌 狀態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正體性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새政治’도 ‘民主’도 ‘聯合’도 그렇다. 흔들리는 原因의 中心에 문재인이 쌓아온 履歷이 累積돼 있다.

    文在寅은 스스로에게 質問하는 中이다. ‘果然 나는 이 難關을 克服할 수 있을까. 나의 무엇이 變해야 이 不信의 壁을 깰 수 있을까. 나는 이 過程에서 어떤 選擇을 할 수 있을까….’

    政治人이라면 이 質問에 맞서 對應해야 한다. 그렇게 政治人 文在寅은 成熟해가겠지만, 주어진 時間이 그에게 餘裕로운 機會를 保障해줄 것 같진 않다. 그와 親盧勢力의 시나리오 3段階에서, ‘문재인 黨 代表’까지는 왔지만, 中間考査 失敗로 인해 總選에서 勝利하고 歡呼하는 문재인을 보는 것은 버거운 일이 될 듯싶다. 當場 큰 意味를 갖는 건 아니지만, 2·8 全黨大會 以後 줄곧 1位를 달려온 大選走者 候補 選好度에서도 새누리당 김무성에게 1位 자리를 내줬다.

    野圈의 支離滅裂이 朴槿惠 政府와 與圈을 相對的으로 돋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毒杯(毒杯)일 수도 있다. 與黨이 잘해서 이긴 選擧가 아니라는 건 2012年 大選부터 2015年 4·29 再補選까지 다 마찬가지다. ‘도긴개긴’ 狀況에서 現在 權力이건 未來 權力이건 國民에게 信賴를 줄 만한 要素는 아직 없다. 政治가 不信을 받는 마당이라 모든 것이 不透明한 狀態가 이어진다. 이 渦中에도 大權走者들의 臺(對)國民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文在寅도 마찬가지다. 그가 새롭게 거듭나 國民의 信賴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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