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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살 確率 半半 다들 使命感으로 死鬪”|新東亞

“죽고 살 確率 半半 다들 使命感으로 死鬪”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退治 仁術(仁術) 신형식 國立中央醫療院 感染病센터長

  • 박은경 客員記者 | siren52@hanmail.net

    入力 2015-05-21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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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責任感, 使命感에 派遣 公告 前 自願 決心
    • 에볼라 退治 나선 各國 醫療陣 熱情에 ‘뭉클’
    • 治療 經驗 쌓고 國際社會 努力 同參 큰 보람
    • 傳染病 實時間 移動…‘高度隔離施設’ 갖춰야
    “죽고 살 확률 반반 다들 사명감으로 사투”
    1987年 美國 作家 로빈 쿡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素材로 한 小說 ‘아웃브레이크(Outbreak)’를 發表했다. 小說의 人氣에 힘입어 1995年 더스틴 호프만 主演의 映畫로도 만들어졌다. 致死率 100%의 致命的 바이러스를 가진 아프리카 원숭이가 美國으로 건너가 새로운 感染을 일으킨다는 內容. 映畫는 國內에서도 開封돼 큰 話題를 모았다.

    그로부터 꼭 20年 뒤, 映畫 속 虛構는 現實이 됐다. 지난해 3月 西아프리카를 始作으로 發病한 에볼라病(Ebola Virus Disease, 以下 에볼라)李 아프리카 地域을 벗어나 美國, 스페인 等으로 擴散될 兆朕을 보이면서 世界를 衝擊과 恐怖로 몰아넣었다.

    4月 13日 世界保健機構(WHO)에 따르면, 지난해 3月 以後 總 2萬5626名의 에볼라 바이러스 感染者가 發生했고 死亡者는 1萬0619名이다. 大部分의 感染·死亡者는 西아프리카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서 集中 發生했다. 시에라리온에서만 1萬2188名이 感染돼 3854名이 숨졌다.

    지난해 9月 유엔은 ‘에볼라 特別高位級 會議’를 열고 世界 各國에 醫療陣 派遣을 要請했다. 우리 政府도 지난해 12月부터 3個月에 걸쳐 民間과 軍 醫療陣 24名을 順次的으로 시에라리온에 派遣했다. 韓國 救護隊를 이끈 人物은 신형식(51) 國立中央醫療院 感染病센터長(醫學博士). 新 센터長은 醫療팀長을 맡아 救護隊를 이끌고 不安과 두려움에 떠는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두 손을 꼭 잡아줬다. 5月 4日 서울 中區 國立中央醫療院에서 神 센터長을 만났다.

    에볼라 患者 첫 對面 瞬間



    ▼ 致命的 疾病이 猖獗하는 地域에 가겠다고 自願한 理由는.

    “政府 次元의 일인 데다 우리 病院(國立中央醫療院)李 保健福祉部 傘下機關이에요. 제가 이곳 感染病센터長을 맡고 있어 一種의 責任感이 作用한 것 같아요. 醫師로서 갖는 使命感이죠.”

    ▼ 周邊의 反對로 支援을 抛棄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世界的으로 에볼라 恐怖가 擴散되던 때라, 그런 病을 診療하러 간다는데 걱정하는 건 當然하죠. 그런데 제가 우리나라에서 新種 感染病이 發生하면 가장 먼저 診療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아내도 理解해줬어요. 派遣 醫療陣 募集 公告가 나기 前에 自願하기로 決心했습니다.”

    ▼ 에볼라가 醫師라고 避해가진 않을 텐데….

    “지난해 10月 末 醫療陣 選拔 公告가 날 때, 이미 많은 海外 醫療陣이 現地에서 醫療支援 活動을 벌이다 感染돼 死亡한 狀況이어서 心的 負擔이 컸던 건 事實입니다. 더욱이 저는 1陣 팀長으로 派遣될 狀況이어서 팀員 安全에 더 큰 負擔感을 느꼈어요.”

    그가 팀員들의 安全 歸國 못지않게 두려움을 느낀 瞬間이 있었다고 한다. 시에라리온의 에볼라 治療센터(이탈리아 非政府機構가 運營하는 ‘가더리치 에볼라治療센터’)에 到着 後 처음 患者를 진료하기 위해 保護服과 保護裝具를 갖추고 統制區域人 2層 病床으로 들어가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때다.

    “2層에 올라가면 患者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막 뛰었어요. 그런데 막상 患者를 보니 只今까지 숱하게 봐온 여느 患者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便해졌습니다.”

    ▼ 에볼라 患者를 直接 본 건 처음이었나요.

    “그前에 우리 病院에 感染 疑心 患者가 內苑했어요. 시에라리온에서 入國한 두 살 男子아이와 기니에서 歸國한 韓國人 한 名이 診療를 받았죠. 기니에서 온 사람은 病院에 왔을 때 熱이 있었는데, 두 사람 다 ‘陰性’ 確診을 받았어요.”

    ▼ 臨床治療 經驗 없이 診療에 나선 거네요.

    “平素 病院에서 保護服 脫着用 練習 等 準備는 많이 했어요. 언제라도 感染 患者가 오면 診療해야 하니까요. 시에라리온 出國 前에는 國軍看護士官學校에서 사흘 동안 敎育을 받았어요. 美國의 에볼라 派遣 醫療陣 敎育 프로그램을 參考한 거죠. 지난해 12月 13日 出國해 英國에서도 一週日 敎育을 받았고, 現地 治療센터에서도 나흘間 適應 訓鍊을 받았습니다.”

    ▼ 醫師가 注射 놓는 法과 採血하는 法까지….

    “患者를 보려면 保護服과 保護裝具를 完璧하게 갖추고, 掌匣도 두 張씩 껴야 하니까 平素 診療와는 다르죠. 처음 經驗하는 診療 狀況에서 모든 醫療行爲에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保護裝具 때문에 無力感

    ▼ 實際 診療 때 어려운 點은 무엇이었나요.

    “保護裝具 때문에 診療를 제대로 할 수 없어 患者 한 名이 死亡했어요. 入院 하루 만에 狀態가 好轉되는가 싶어 한숨 돌렸는데, 이튿날부터 갑자기 狀態가 나빠져 結局 死亡했어요. 只今도 아쉬움으로 남아요. 保護服에다 顔面保護區, 마스크(때로는 電動式 呼吸裝置)까지 낀 狀態라 聽診器를 使用할 수 없고, 두 겹의 掌匣을 끼고 있으니 제대로 促進(觸診) 하기도 어려워요. 그러다보니 ‘이 症狀은 아마 이런 要因 때문일 거다’는 式으로 判斷하고 處置한 거죠. 治療에 앞서 患者에 對한 正確한 身體檢査 等 여러 臨床 情報를 통해 診斷을 내려야 하는데 그게 如意치 않았던 겁니다.”

    ▼ 患者 狀態는 어땠습니까.

    “한 달餘 진료하면서 우리 醫療陣이 본 患者가 57名인데, 그中 新規 患者가 43名이었습니다. 狀態가 比較的 좋은 患者는 熱만 나고 특별한 症狀 없이 잘 먹고 健康한 便이었어요. 重患者는 거의 쇼크 狀態가 돼 2~3日 뒤 死亡하는 境遇가 있었어요. 57名 中 22名이 死亡했어요.”

    ▼ 不安感이 컸을 것 같습니다.

    “醫師도 사람인데 當然하죠. 感染되면 죽고 사는 確率이 半半씩이니 不安할 수밖에요. 그래도 現地에서 醫療陣이 感染되면 美國이나 유럽 國家로 後送해 治療한다는 政府 指針이 마련돼 있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요.”

    ▼ 짧은 期間에 20名이 넘는 死亡者를 봤으니 衝擊的이었겠네요.

    “에볼라 致死率이 워낙 높다는 걸 아니까 생각보다 衝擊은 덜했어요. 代身 ‘醫師도 못 고치는 病이 있다’는 걸 또 한 番 切感했죠. 致死率이 높은 疾病임에도 保護服과 保護裝具 때문에 患者들에게 最善의 治療를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無力感이 컸습니다.”

    한瞬間 벌어진 ‘事故’

    醫療陣의 感染 防止를 위한 裝備는 여러모로 不便함과 어려움을 안겼다. 新 센터長 一行이 現地에 머물 때 시에라리온은 乾期(乾期)여서 낮에는 氣溫이 31~32℃까지 치솟고, 밤에도 25℃를 웃돌아 熱帶夜가 氣勝을 부리는 韓國의 한여름을 彷彿케 했다.

    그는 “保護服과 保護裝具를 着用하고 診療를 하다보면 마스크 때문에 숨 쉬기도 힘들고, 옷은 空氣가 통하지 않아 10分만 지나도 땀이 줄줄 흘렀다. 保護服을 벗으려면 診療 區域을 벗어나야 해서 如干 不便하지 않았다”고 했다. 診療 環境은 劣惡했지만 現地 醫療陣이 不足하다보니 그의 팀은 한 달 넘는 醫療支援活動 내내 쉬는 날 없이 12時間 交代勤務를 해야 했다.

    ‘언제든 우리도 感染될 수 있다’는 憂慮는 現實이 됐다. 1陣 醫療陣 中 한 名이 診療 中 突發狀況으로 感染 疑心 患者가 돼 獨逸로 緊急 後送된 것이다.

    “心身을 안정시키기 위해 患者에게 安靜劑를 投與하거든요. 우리 醫療陣이 安靜劑 注射를 놓으려는 瞬間 患者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注射바늘이 醫師의 掌匣을 뚫고 들어간 거죠. 잠들어 있던 患者가 注射바늘 때문에 깨어난 거 같아요. 豫想치 못한 狀況이었죠.”

    ▼ 潛伏期(21日)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겠군요.

    “걱정 많이 했죠. 우리 팀員이 繼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連絡을 取하면서 狀態를 체크했습니다. 檢査 結果(陰性)는 獨逸 現地 言論 報道를 보고 알았는데, 그제야 安堵했죠.”

    “죽고 살 확률 반반 다들 사명감으로 사투”

    病室에서 患者保護服과 保護裝具를 着用한 채 진료하면서 患者와 얘기를 나눈다.



    飛行機 가득 채운 同僚意識

    ▼ 突發 狀況에 對備한 訓鍊도 했을 텐데요.

    “에볼라 診療의 첫째 守則이 ‘醫療陣 安全’입니다. 每日 診療室에 들어가기 前에 自己가 해야 할 일을 熟知하고 마음속으로 水車 시뮬레이션을 한 뒤 診療에 臨하죠. 우리 팀員에게 가장 强調한 것도 그 部分이에요. 그럼에도 避치 못할 狀況이 發生한 거죠.”

    ▼ 治療劑가 없는 狀態에서 患者들을 어떻게 治療했습니까.

    “對症療法과 함께 當時 全 世界에서 試圖되고 있던 最新 治療法 等을 活用했습니다. 에볼라에 感染되면 初期엔 熱이 나고 吐하는데, 심해지면 出血을 일으키고 쇼크에 빠져 結局 死亡에 이릅니다. 熱이 나면 解熱劑를 投與하고 嘔吐抑制劑를 쓰고, 樹液을 靜脈注射하고 出血이 甚하면 輸血하는 式이죠.”

    ▼ 시에라리온에 발을 디뎠을 때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시에라리온에 갈 때 150席 規模의 飛行機를 탔는데 거의 모든 乘客이 世界 各國에서 온 醫療陣이었어요. ‘使命感을 안고 에볼라 患者를 治療하러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에 깊은 同僚意識을 느꼈습니다. 그 光景이 只今도 印象 깊게 남았습니다.”

    걸어서 7~8分 距離인 宿所와 治療센터를 每日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면서 24時間 緊張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 달을 보내고 國內 醫療陣 10名은 無事히 韓國 땅을 밟았다. 空港에서 그들을 기다린 건 ‘隔離施設’로 데려갈 버스였다. 바이러스 潛伏期를 거쳐 ‘陰性’ 判定이 날 때까지 一般人과 接觸이 制限됐기 때문이다.

    國際社會 努力에 同參

    ▼ 入國해서 곧바로 家族을 못 만났죠?

    “家族이 空港에 마중 나왔는데, 못 보고 나중에 隔離施設에서 만났어요. 空港에서 1次 몸 狀態를 檢査받고 隔離施設로 移動해 政府 關係者들과 미팅을 한 다음, 또다시 檢査를 받았어요. 특별한 異常 症狀이 없음을 確認한 뒤에야 ‘無事히 돌아와서 多幸’이라며 簡單한 歡迎 行事를 했어요. 그 後 家族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돌아와서 病이 난 사람은 없었나요.

    “隔離施設에 있는 동안 한 분은 알레르기性 鼻炎 때문에 苦生했고, 한 분은 설사하고 배가 아파서 苦生한 것 外에 特別히 아픈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도 健康한 便이었고요. 다만 平素 잘 줄지 않던 몸무게가 5㎏ 빠져 있었습니다.”

    ▼ 緊急救護隊 派遣 經驗이 國家的으로, 個人的으로 어떤 意味가 있었습니까.

    “에볼라가 流行한 나라들 自體 힘만으로 解決이 안 되는 狀況에서 여러 나라가 에볼라 終熄을 위해 함께 努力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努力에 同參했다는 點이 意味가 크죠. 德分에 國家 이미지도 좋아졌고요. 醫療陣이 實際로 診療를 해봄으로써 感染管理와 治療 等 醫學的 側面에서 經驗을 蓄積했다는 것도 큰 所得입니다. 에볼라 治療센터가 어떻게 運營되는지 볼 수 있었던 點도 意味가 있죠. 個人的으로는 感染病센터 醫師로서 國家가 하는 일에 自願해서 所期의 目的을 達成하고 安全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成果라고 생각합니다.”

    交通手段이 發達한 現代社會에서 新種 感染病은 實時間으로 옮겨 다닌다. 新 센터長은 新種 感染病에 對해 徹底한 對備와 國家的 次元의 ‘高度隔離施設’ 設置의 必要性을 强調했다.

    “高度隔離施設에서 가장 重要한 게 感染病 患者와 醫療陣의 出入 通路가 區分된 入院 施設을 갖추는 거예요. 患者가 安全하게 隔離돼 治療받을 수 있는 넓은 病室, 醫療陣이 保護服과 保護裝具를 탈·착용하기 便利한 空間, 患者에게서 나온 醫療廢棄物을 完全 滅菌할 수 있는 施設, 患者 診斷을 위한 檢査 施設 等을 다 갖춘 施設이 꼭 必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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