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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番은 喜劇, 한番은 悲劇 歷史는 反復된다”|신동아

“한番은 喜劇, 한番은 悲劇 歷史는 反復된다”

呂不韋와 성완종의 政經癒着

  • 金映洙 | 史學者, 中國 史記 專門家

    入力 2015-05-20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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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완종 리스트’가 온 나라를 뒤흔든다. 우리 政治와 財界의 淺薄한 水準과 민낯이 드러났다. 醜聞의 結末이 어떻게 나든지 國格(國格)은 致命傷을 입었다. ‘詐欺’ 속 人物 하나가 떠올랐다. ‘政經癒着의 援助’라 할 수 있는 呂不韋다. 그의 行跡과 最後는 성완종 前 京南企業 會長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哲學’은 全혀 달랐다.
    “한번은 희극, 한번은 비극 역사는 반복된다”

    中國 歷史上 最高의 政治 賭博에 成功한 呂不韋.

    呂不韋(呂不韋)는 中國 春秋戰國時代 때 組(趙)나라 出身의 對象인(大商人)이다. 國境을 넘나들며 장사를 하면서 巨金을 모은 大富豪로 手腕이 뛰어나고 理財에 밝았다. 中國 ‘戰國策’에는 呂不韋가 아버지와 나눈 對話 한 토막이 記錄돼 있는데, 그가 本格的으로 政治的 賭博을 敢行하기 直前의 對話로 推測된다.

    呂不韋 : 아버지, 農事를 지으면 利潤이 얼마나 남겠습니까.

    아버지 : 잘하면 10倍쯤 되겠지.

    呂不韋 : 寶石 따위를 팔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 : 100倍쯤 남지 않겠니.



    呂不韋 : 누군가를 王으로 세우면요?

    아버지 : 그야 따질 수가 없지.

    當時 呂不韋는 事業次 조나라 首都 邯鄲(邯鄲)을 찾았다가 偶然히 秦나라에서 人質로 온 自招(子楚)를 發見한다. 自招의 身分을 確認한 瞬間 呂不韋는 엄청난 事業을 構想했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그도 商人)에게 가르침을 請하면서 이런 對話를 나눴다.

    “當身을 키워주겠소”

    呂不韋가 自招를 發見하고 어떤 遠大한 計劃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確認되는 건 그가 自招를 ‘미리 차지해 둘 만한 奇異한 物件’이란 뜻의 ‘奇貨可居(奇貨可居·‘氣化’의 由來)’로 表現했다는 것이다. 只今 사두거나 投資하면 언젠가는 큰돈이 되거나 큰 役割을 해낼 投資 對象으로 본 것이다.

    自初는 秦나라의 다음 王位 繼承者인 太子 안國軍(安國君)의 20餘 名에 말하는 아들 中 한 名이다. 秦나라와 조나라 사이의 人質 交換에 따라 조나라에 와 있었다. 自招의 序列은 中間 程度였고, 어머니 하희(夏姬)는 안國軍의 寵愛와는 距離가 먼 女子였다. 字草家 人質로 잡혀 있는 동안에도 秦나라는 여러 次例 조나라를 侵犯했고, 그 때문에 조나라 王은 몇 次例 自招를 죽이려 했지만 그때마다 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졌다. 儼然히 秦나라 王室의 핏줄인 自初는 自己 나라에서조차 외면당한 채 조나라 首都 邯鄲을 떠도는 身世로 轉落해 있었다.

    呂不韋는 그런 自招에게 投資하기로 決心했다. 그리고 그 投資를 擔保할 만한 有用한 情報 하나를 얻었다. 안國軍, 卽 自招의 아버지가 寵愛하는 楚나라 出身의 太子妃 華陽(華陽)夫人에게 아들이 없다는 事實이다. 呂不韋는 이 情報가 갖는 重要性을 直感했다.

    眼目 있는 장사꾼이라면 商品의 可能性에 確信을 가진 以上 具體的인 經營 戰略을 세우는 것이 當然하다. 呂不韋는 自招를 찾았다. 다음은 두 사람의 對話다.

    呂不韋 : 내가 當身을 키워주겠소.

    者 初 : 먼저 當身이 커야 내가 크지 않겠소?

    呂不韋 : 잘 모르시는군요. 저는 當身이 커짐에 따라 커진답니다.

    自初는 呂不韋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자리를 勸하고 密談을 나눴다. 呂不韋는 안國軍과 華陽婦人을 擧論하며, 現在 안國軍의 아들 20餘 名 中 아무도 안國軍의 눈에 들지 않은 狀況이기 때문에 自招에게도 얼마든지 機會가 있다며 希望을 주었다. 뜻하지 않은 後援者를 만난 自初는 計劃이 成功하면 晉나라 땅을 함께 나누겠노라 約束했다.

    呂不韋는 次期 王位 繼承者인 안國軍이 寵愛하는 華陽婦人을 最大限 利用하기로 計劃을 세우고는 晉나라 首都 涵養으로 向했다. 이에 앞서 自招에게 500금에 達하는 充分한 ‘品位維持費’를 提供해 趙나라의 有力 人士들과 두루 交際하도록 했다. 조나라 朝野(朝野)에 自招의 存在感을 확인시키려는 意圖였다.

    “美貌가 시들면 사랑도…”

    貴한 佩物 等을 갖고 咸陽에 들어온 呂不韋는 사람을 넣어 火洋婦人의 언니를 찾았다. 火洋婦人의 언니를 만난 呂不韋는 珍貴한 佩物을 華陽夫人에게 傳해달라고 付託하며 自招의 近況을 알렸다. 그러면서 字草家 아버지 안國軍과 華陽婦人을 늘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傳했다. 또한 字草家 趙나라의 有力者들은 勿論 各 諸侯國에서 온 賓客들과 두루 사귀며 名聲을 높이고 있다는 近況도 덧붙였다. 呂不韋는 火洋婦人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려 언니에게 “美貌로 (男子를) 섬기던 사람은 그 美貌가 시들면 (男子의) 사랑도 시드는 法”이라며 안國軍의 사랑이 아직 健在한 只今 後날을 위해 듬직한 養子를 들여야 할 것이라고 華陽婦人을 說得게 했다.

    火洋婦人의 언니는 呂不韋의 佩物과 말을 傳했고, 華陽夫人은 全的으로 共感했다. 華陽夫人은 안國軍이 閑暇한 틈을 타서 눈물을 흘리며 子息 없는 自己 身世를 恨歎하다가 自招 이야기를 꺼냈다. 華陽婦人을 寵愛하는 案國軍인지라 自招를 養子로 삼겠다는 火洋婦人의 請을 들어줬고, 華陽夫人은 기쁨과 同時에 養아들 自招를 어떻게 하면 歸國시킬 수 있을지 근심에 싸였다. 안國軍과 華陽夫人은 呂不韋에게 自招를 잘 보살피라고 當付하는 한便 넉넉하게 物品까지 딸려 보냈다.

    自招를 알리기 위해 涵養을 찾은 呂不韋가 華陽婦人을 直接 만나지 않고, 代身 그의 언니를 利用한 데는 다 理由가 있었다. 自身이 直接 物件을 갖고 가거나 紹介하는 것보다 ‘購買者’가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을 통해 物件을 紹介하는 쪽이 物件의 價値를 더 높이는 것은 勿論, 그 物件에 對해 神祕感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高度의 商術이 숨어 있었다. 더욱이 當時에는 商人은 그다지 信賴받는 身分이 아니었다. 呂不韋는 이처럼 商人에 對한 先入觀을 避해 가려는 노림數까지 念頭에 뒀다. 이렇게 해서 自初는 眞과 兆, 두 나라는 勿論 諸侯國 全體가 注目하는 要因(要人)이 됐다.

    “죽을罪를 지으셨습니다”

    다음 手順은 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自招라는 商品을 선보이고 눈圖章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自招를 한時라도 빨리 歸國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다음 王位 繼承者인 안國軍을 利用했다. 그런데 豫想과 달리 소양왕의 反應이 冷冷했다.

    呂不韋가 그 代案으로 選擇한 타깃은 王后다. 華陽婦人을 끌어들일 때와 마찬가지로 直接 王后를 찾아가지 않고 中間에 사람을 넣었다. 呂不韋가 찾은 仲介人은 王后의 동생 양천군(陽泉君). 呂不韋는 양천군을 찾아가 單刀直入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對話를 들어보자.

    呂不韋 : 양천군께선 죽을罪를 지으셨는데 알고 계십니까.

    양천군 : (멍한 表情을 지으며) 내가 죽을罪를 지었다니 무슨 말인가.

    呂不韋 : 양천군께서는 王后의 동생으로 높은 자리에 넘치는 祿俸, 그리고 구름같이 몰려드는 美人들을 願 없이 누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太子 안國軍께서는 正말 暗澹한 身世라 차마 눈뜨고 못 볼 地境입니다. 양천군께선 大體 누구의 福을 누리고 계시며, 누구의 利益을 얻고 계시며, 누구의 權勢에 依支하고 계시며, 누구의 돈을 쓰고 계시며, 누구의 權威로 뻐기고 다니십니까. 바로 只今 王과 누이이신 王后가 아닙니까. 모름지기 일이란 豫測하면 成事되지만, 豫測하지 못하면 쓸모없게 됩니다. 이는 아주 簡單한 理致입니다. 只今 王께서는 年老하십니다. 早晩間 太子께서 王이 되시면 양천군께서 只今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놔두시지 않을 겁니다, 絶對로! 하루 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목숨까지 걱정해야 할 겁니다.

    양천군 : (잔뜩 怯을 먹고는) 先生께서 제때 잘 이야기하셨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오?

    呂不韋는 조나라에 人質로 가 있는 自招를 火洋婦人이 養아들로 삼은 事實과 안國軍의 心境을 傳했다. 그리고 只今 字草家 諸侯國들 사이에서 어떤 名聲을 얻고 있는지 조나라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정작 秦나라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면서, 後날을 위해 소양왕 앞에서 自招를 稱讚하고 그의 歸國을 要請하라고 일렀다. 그 일이 成事되면 나라도 없이 떠돌던 自招에게 나라가 생기고, 子息 없던 안國軍 夫婦에게 子息이 생기니 모두가 양천군 當身에게 感謝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죽을 때까지 只今과 같은 福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懷柔했다.

    “한번은 희극, 한번은 비극 역사는 반복된다”

    허난省 洛陽時 東쪽으로 20km쯤 떨어진 言辭視(偃師市)에 남아 있는 呂不韋 무덤.



    妊娠한 愛妾 걸고 賭博

    呂不韋의 脅迫性 說得에 넋이 나간 양천군은 누이인 太后에게 달려가 工作을 벌였고, 太后는 다시 소양왕에게 工作을 벌였다. 소양왕은 이番에도 별다른 反應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前보다는 態度가 훨씬 부드러워져 조나라 使臣이 오면 自招의 歸國을 要求하겠다고 했다.

    呂不韋는 이쯤에서 目標를 조나라 王으로 돌렸다. 呂不韋는 竈王의 側近 實勢들에 對한 로비 活動을 펼치기로 했다. 또 한 番 巨金이 必要한 時點이었다.

    그런데 이 瞬間, 그동안 呂不韋가 들인 공이 效果를 發揮하기 始作했다. 呂不韋의 생각을 傳해 들은 안國軍과 華陽夫人은 勿論 王后까지 나서 로비 資金을 마련해줬다. 自招의 일이 이미 多數의 共同 關心事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제 自招의 未來에 따라 自身들의 利害關係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關係로 確實하게 엮였다. 呂不韋는 한 사람의 關心事를 여러 사람의 關心事로 만들고, 이들 間에 利害關係를 엮는 일에서는 他의 追從을 不許하는 高手였다.

    秦나라와 조나라 調整에 對한 로비를 成功的으로 마친 呂不韋는 自身의 商品을 再點檢했다. 自招를 보다 確實하게 掌握하기 위한 方法을 苦悶하기 始作한 것이다. 呂不韋는 已往에 始作한 冒險이라면 판을 좀 더 크게 벌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自己 商品의 含量을 높이고 利潤 獲得을 위한 空間을 極大化하는 새로운 戰略을 樹立했다. 自招의 몸집을 더 불리되, 呂不韋가 더 쉽게 操縱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를 爲해 呂不韋는 놀랍게도 妊娠 中이던 自身의 愛妾 조희(趙姬)를 自招에게 넘기는 奇想天外한 冒險을 敢行했다. 勿論 字草家 呂不韋의 妾에게 눈毒을 들인 탓이 크긴 했지만, 自己 씨를 孕胎한 妾을 다른 男子에게 넘긴다는 건 누가 봐도 人倫은 勿論 一般의 常識과도 크게 어긋나는 行動이었다. 呂不韋는 天下를 놓고 賭博을 한 것이다. 조희의 배 속에 든 아이까지 考慮한 어마어마한 賭博이었다.

    自招에게 肝 嘲戱는 한 달 뒤 自招에게 그의 아이를 妊娠했다고 알렸고, 얼마 後 사내아이(事實은 呂不韋의 아들)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바로 後날 秦始皇으로 불리는 影幀(英政)이다. 天下를 건 呂不韋의 두 番째 賭博이 成功하는 瞬間이다. 하지만 呂不韋 自身도 이 아이가 自身에게 얼마나 큰 利潤을 남겨줄지 알 수 없었다. 이 아이가 어떤 人物이 되고, 呂不韋의 人生에 어떤 意味를 가질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이 아이는 萬若을 위해 들어둔 保險과도 같은 存在였다. 어쨌거나 只今 急한 것은 自招를 秦나라로 歸國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안國軍이 王座에 올라야만 可視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격한 感情에 “내 아들아!”

    歲月은 빠르게 흘렀다. 影幀은 벌써 세 살이 됐고, 呂不韋의 天下를 건 賭博은 별다른 進展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危機가 여기저기서 感知됐다. 秦나라가 조나라에 對한 攻勢를 늦추지 않았기 때문에 自招의 身邊이 더욱 不安해진 것. 字草家 죽는 날에는 모든 것이 다 虛事였다. 限껏 높아진 自招의 名聲과 比重이 오히려 危險度를 높이고 있었다. 商品을 市場에 내보내기도 前에 市場에 變化가 發生했으니 如干 큰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呂不韋가 세운 戰略 全體가 흔들릴 수 있는 危機 狀況이었다.

    여기서 呂不韋는 또 한 番 冒險을 決心했다. 城을 지키는 將帥를 買收해 조나라를 脫出하기로 한 것이다. 呂不韋는 “장사를 위해 조나라에 왔는데, 秦나라가 조나라를 攻擊하는 통에 不安해서 장사를 할 수 없으니 故鄕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巨額의 賂物을 건넸다. 그러고는 自招를 侍從으로 扮裝시켜 조나라 首都 邯鄲을 빠져나왔다. 賂物을 먹은 장수는 별다른 疑心 없이 呂不韋와 自招를 通過시켰다.

    呂不韋는 晉나라 將帥 王訖의 軍營으로 가서 몸을 맡겼고, 王訖은 소양왕에게 呂不韋와 自招를 案內했다. 自招의 느닷없는 出現에 소양왕은 多少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반갑게 맞이한 다음 수레를 마련해 涵養으로 보냈다.

    字草家 마침내 歸國했다. 天下의 ‘氣化’ 自招의 登場으로 市場은 요동쳤다. 呂不韋는 먼저 自招에게 楚나라 服裝을 입혀 華陽婦人을 만나게 했다. 楚나라 出身인 火洋婦人의 心氣를 考慮한 細心한 按排였다. 故鄕 사람 服裝을 하고 나타난 自招를 본 華陽夫人은 격한 感情을 참지 못하고 “내 아들아!”라고 외쳤다.

    紀元前 251年 가을, 年老한 소양왕이 世上을 떠나고 안國軍이 뒤를 이었다. 그가 효문王(孝文王)이다. 華陽夫人은 王后가 됐고, 自初는 太子로 冊封됐다. 狀況이 이렇게 되자 조나라는 한단에 남아 있던 조희와 影幀(秦始皇)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효문王(안國軍)李 소양왕의 喪을 마치기도 前에 갑자기 世上을 뜨는 突發 狀況이 터졌다. 다음 手順에 따라 字草家 卽位했으니 그가 바로 장양왕(莊襄王)이다. 이 기 막힌 現實 앞에 自初는 自身의 눈을 疑心할 수밖에 없었다. 他鄕에서 거지꼴로 轉轉하던 自身이 不過 몇 年 만에 超强國 秦나라의 國王이 되다니….

    呂不韋는 丞相이 돼 文身後에 封해졌다. 洛陽 땅 10萬 號가 封紙로 따라왔다. 賭博은 大舶을 낳았다. 一生 最大의 投資家 計算이 不可能할 程度로 엄청난 收益을 거두는 瞬間이었다.

    呂不韋는 그 뒤 秦始皇이 成人이 돼 親庭을 始作하면서 權力에서 排除되고, 끝내는 秦始皇의 便紙를 받아들고 自決했다. 하지만 이미 呂不韋가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린 뒤였다. 그리고 ‘親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죽음을 選擇했을 것이다.

    돈으로 義理 산 성완종

    “한번은 희극, 한번은 비극 역사는 반복된다”

    呂不韋가 春秋戰國時代에 當代 最高의 知識人들을 動員해 編纂한 ‘呂氏春秋’ 版本.

    呂不韋의 政治 賭博에 比하면 성완종 前 會長의 그것은 좀 엉성했지만 비슷한 側面이 많다. 두 사람 모두 人脈 擴張에 熱을 올렸다. 呂不韋는 食客을 3000名 以上 거느렸고, 성완종은 忠淸포럼을 통해 外延 擴張을 꾀했다. 呂不韋의 食客 中에는 當代 最高 知識人이 수두룩했다. 呂不韋는 이들을 動員해 當代 最高의 百科事典인 ‘呂氏春秋(呂氏春秋)’를 編纂했다. 冊이 完成되자 呂不韋는 이 冊의 목간을 城 앞에 걸어놓고 누구든 한 글字라도 고치거나 잘못을 바로잡으면 千金을 주겠다고 豪言壯談했다. 그는 이 文化事業에 限껏 自負心을 드러냈다. 성완종은 奬學財團을 運營했지만, 純粹한 敎育·文化事業이라기보다는 自身의 政治的 立地를 다지기 위한 발板이었다. 忠淸포럼度 마찬가지다.

    呂不韋는 投資의 對象을 고를 줄 알았고, 投資 時機도 正確하게 豫測했다. 變數가 發生하면 問題의 核心이 어디에 있는지를 考慮해 第2, 第3의 投資 對象도 正確하게 골랐다. 萬若을 위한 對備策 마련에도 疏忽하지 않았으며, 危機는 果敢하게 突破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徹底한 準備의 結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危機는 準備된 사람에게는 機會로 轉換되어 成功을 앞당기는 原動力으로 作用하며, 幸運도 準備된 사람만이 感知할 수 있다. 天下를 건 呂不韋의 賭博은 準備에서 판가름이 났다. 하지만 성완종은 오로지 돈으로만 모든 것을 解決하려 했고, 또 그것이면 될 것이라고 確信했다. 그러고는 義理를 들먹였다. 돈으로 산 義理가 果然 眞正한 義理일 수 있을까.

    要컨대 두 사람의 處地와 目的, 그리고 最後는 비슷했는지 몰라도 그 過程이나 哲學은 判異했다. 政治的 狀況이 全혀 다른 오늘날이지만 적어도 呂不韋의 政治 賭博에서는 배울 것도 적지 않아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에 對한 檢察 搜査의 칼날은 그가 ‘義理 없는 者’들이라고 指目했던 이들을 向해 徐徐히 죄어들어가고 있다.

    秦始皇은 呂不韋의 自決로 全權을 掌握하고 天下統一에 拍車를 加할 수 있었다. 韓國 政治판은 성완종의 自決로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또한 큰 差異가 아닐 수 없다. 歷史的 事件은 이처럼 비슷해 보이면서도 全혀 다르다. 카를 마르크스의 名言 中에 이런 말이 있다.

    “歷史는 두 番 反復된다. 한 番은 悲劇으로, 또 한 番은 喜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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