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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신동아

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大韓民國 國務總理室

  • 이상훈 | 동아일보 經濟部 記者 January@donga.com

    入力 2015-05-21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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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務總理室은 法的으로는 政府 各 部處를 統轄하는 莫强한 權限을 附與받았다. 하지만 ‘하는 것도 없고, 안 하는 것도 없는 組織’이란 汚名이 따르기도 한다. 只今 大韓民國 國務總理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5月 1日 政府世宗廳舍. 勤勞者의 날을 맞아 連休 첫날을 즐긴 私企業 職員들과 달리 公務員들은 ‘빨간 날’(公式 休務日)李 아니었기 때문에 平素와 다름없이 모두 出勤해 頂上 業務에 臨했다. 特히 世宗廳舍 1洞에 자리한 國務調整室·國務總理祕書室(以下 國務總理室)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갔다. 總理室 首長인 추경호 國務調整室長이 이완구 前 國務總理 退任 後 처음으로 세종청사에서 非常 擴大幹部會議를 主宰했기 때문이다.

    “總理가 안 계시다고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職員들은 緊張感을 갖고 各自의 자리에서 맡은 業務를 責任感 있게 챙겨야 합니다.”

    總理가 空席인 데다 總理 職務代行人 최경환 經濟副總理 兼 企劃財政部 長官도 아시아開發銀行(ADB) 總會 參席次 海外 出張을 떠나면서 國務調整室長이 主要 懸案 챙기기에 積極 나섰다.

    次官級 3名, 1級 10名

    國務總理室 局長級 以上 幹部 全員이 參席한 이날 會議는 팽팽한 緊張感 속에서 2時間 넘게 進行됐다. 連休 直後인 5月 6日 열릴 規制改革長官會議 準備 狀況에서부터 公務員 年金改革 等 主要 民生立法 推進 狀況에 이르기까지 政府가 重點的으로 챙기고 있는 國政 現況이 大部分 다뤄졌다. 會議 終了 直後 總理室 公報 擔當者들은 出入記者들에게 一齊히 電話를 돌렸다.



    “오늘 非常 幹部會議 열린 것 아시죠? 잘 다뤄주세요. 이럴 때일수록 빈틈없이 國政 챙기는 모습을 國民께 보여드려야지요….”

    하지만 정작 바깥에 알려진 것과 總理室 內部의 雰圍氣는 多少 달랐다. 이날 午後 記者가 總理室의 한 幹部를 만나 “오늘 會議 때문에 苦生이 많으셨겠다”라고 人事를 건네자 “다 아시면서…”라는 意外의 對答이 돌아왔다.

    “國政을 챙기는 것, 重要하죠. 그런데 우리가 오늘 非常會議를 했다는 事實을 아는 國民이 果然 있을까요. 이곳 세종청사에서 總理室이 開催한 會議에 關心을 갖는 公務員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이고,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소.”

    이 幹部의 吐露는 오늘날 總理室이 處한 現實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總理室의 또 다른 局長級 官僚는 “總理 落馬를 여러 番 겪다보니 이제는 이런 現實이 익숙하고 淡淡하다”는 말로 요즘 雰圍氣를 傳했다. 總理 없는 總理室은 大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總理라는 자리가 개그 프로그램의 素材로 轉落한 現實을 總理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國務總理의 職務를 補佐’ ‘各 中央行政機關의 指揮·監督’ ‘社會危險·葛藤·懸案課題의 管理’. 2013年 改正된 大統領令 第24429號에 規定된 國務調整室의 業務 範圍다. 法的으로는 政府 各 部處를 統轄하는 莫强한 權限을 附與받았다.

    行政府를 統轄하는 組織답게 總理室은 政府 내 어떤 組織보다 職員들의 ‘級數’가 높다. 長官級인 國務調整室長 밑에 次官級이 3名(國務 1·2次長, 國務總理祕書室長)이다. 靑瓦臺를 除外하면 政府 組織 中 次官級이 3名 있는 組織은 總理室이 唯一하다. 庭園은 235名으로 企劃財政部(970名)의 3分의 1에도 한참 못 미치지만 1級 高位 公務員만 10名에 達한다. 豫算과 稅制를 다루는 ‘莫强 파워’ 기재부의 1級이 6名에 不過한 것을 勘案하면 總理室의 ‘級’이 얼마나 높은지 實感할 수 있다. 定員 2萬 名의 國稅廳엔 1級이 고작 4名이다.

    “陰地서 일하고 陰地를 志向”

    總理室 組織圖를 보면 ‘當場 內閣制를 해도 問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體系的으로 꾸려져 있다. 財政, 産業, 環境, 雇傭, 文化 等 政府의 主要 業務를 管轄하는 室·국을 두루 갖췄을뿐더러 그 밑에 個別 部處를 擔當하는 國·課長들이 布陣했다. 세월호 被害者 支援 및 犧牲者 追慕事業부터 嬰幼兒 敎育·保育 統合은 勿論 駐韓美軍 再配置, 光復 70周年 記念事業 等 굵직굵직한 國政事業 相當數도 總理室이 實務를 도맡고 있다. 各 部處에 對해 點數를 매기는 政府業務評價度 總理室 所管이다. 總理室 高位 關係者는 “外部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늘 바쁘게 돌아가는 組織”이라며 “우리끼리는 ‘陰地에서 일하고 陰地를 志向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總理室의 이 같은 內部 評價에 對한 各 部處의 생각은 어떨까. 總理室에서 數年間 勤務한 바 있는 한 經濟部處 官僚는 “하는 것도 없고, 안 하는 것도 없는 組織”이라는 말로 總理室을 꼬집었다. 擔當하는 일이 많은 것 같지만, 實際로 總理室이 直接 政策을 만들고 執行하는 業務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各 部處에서 만들어온 報告書를 整理하고 部處 間에 부딪치는 部分을 調律하는 게 主 業務인 만큼, 一線 部處의 視角에선 總理室 特有의 業務 스타일을 理解하기 힘들다.

    18年 동안 總理室에서 勤務하며 ‘最高의 總理, 最惡의 總理’라는 著書를 펴낸 정두언 새누리黨 議員은 總理室의 속事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鄭 議員은 自身의 블로그에서 總理室에 對해 이렇게 說明했다.

    “總理室은 이름만 그럴듯하지 실은 춥고 배고픈 機關이다. 只今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아무런 利權도 없고 그 흔한 傘下機關도 없다. 靑瓦臺와 달리 實際 權限은 別로 없어 各 部處가 무서워하기보다는 귀찮아하는 上級機關이다. 일도 바쁘지 않아 日課 中에도 온갖 新聞을 다 通讀할 수 있을 程度다.

    元來 싫症을 잘 내고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便인 나는 이런 總理室 勤務가 無聊하기만 했다. 때문에 退勤 後면 노상 知人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歲月을 보냈다. 그러나 그 德에 젊은 날 내 나름의 人的 네트워크는 엄청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後날 政治를 하게 되면서 내게 所重한 資産이 된다.”

    企財部 等 經濟部處에서 오래 勤務하다가 總理室에서 官僚生活을 마친 前職 高位幹部는 總理室로 옮긴 뒤 뚝 떨어진 ‘言論 關心度’에서 總理室의 實相을 몸으로 體驗했다고 回顧했다.

    “財政經濟部 局長 時節, 많게는 하루에 100統 가까이 記者들의 電話를 받았다. 別생각 없이 한 마디 툭 던진 게 新聞 1面 헤드라인을 裝飾해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런데 總理室로 가니 그 잦던 電話가 딱 끊겼다. 옮긴 지 1年이 지나도록 같이 밥을 먹은 記者가 5名도 채 안 됐다.”

    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調整業務’의 두 얼굴

    實際로 言論社들은 國務總理의 同情이나 政治的 行步에는 關心을 둬도 總理室의 業務에 對해서는 그다지 神經을 쓰지 않는다. 熱心히 取材해도 쓸 만한 記事거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總理室을 드나드는 日刊紙 出入記者 大部分은 國會, 監査院, 一線 部處 等을 맡으면서 總理室 取材를 ‘加外일’로 맡는다. 檢察, 企財部 等에 여러 名의 專擔 出入記者를 두고 每日 事件과 政策을 取材하는 것과 對比된다. 總理室 勤務 經驗이 있는 한 前職 長官의 記憶도 크게 다르지 않다.

    “官僚로 일하면서 大統領과 靑瓦臺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는 神經을 써도, 國務總理와 總理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念頭에 두고 일한 적은 없다. 重要하다 싶은 業務를 하면 協議, 調整을 理由로 자꾸 報告書를 보내라고 付託하는 게 귀찮았던 생각이 난다.”

    一線 部處 職員들 中엔 總理室의 主業務인 ‘國務調整’의 實體를 알기 어렵다고 指摘하는 이가 적지 않다. 總理室 業務調整을 經驗해본 한 社會部處 官僚는 總理室의 調整業務에 對해 冷笑的인 反應을 보였다.

    “總理室 調整業務요? 意見을 달리하는 部處 關係者들한테 電話해서 불러 모으는 게 全部 아닌가요? 會議場 빌려주고 서로에게 말하라고 하죠. 그러고는 會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總理室이 하는 일이에요.”

    이러한 冷笑的 反應을 總理室이라고 모르는 건 아니다. 總理室 關係者는 이에 對해 “固有 業務가 많지 않은 組織이 겪어야 하는 宿命”이라고 表現했다.

    “調整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 안 풀리고 누구도 나서기 싫어하는 일이라는 意味다. 잘 풀리면 該當 部處들이 서로 自身의 功(功)이라고 主張하니 우리가 끼어들 餘地가 없다.”

    總理室의 存在感이 예전만 못하다는 朴槿惠 政府 總理室度 解決한 課題가 적지 않다. 15年間 葛藤을 빚던 蔚珍 新規 原子力發電所 建設에 合意한 것이나 密陽 送電塔 事態를 比較的 圓滿하게 解決한 것 等이 代表的이다. 總理가 直接 現場을 訪問해 住民과 部處를 說得하고 討論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좋은 結果를 가져왔다.

    總理 따라 位相 딴판

    수많은 業務가 있다지만 結局 總理室의 가장 重要한 業務는 總理를 補佐하는 것이다. 이는 總理가 누구냐에 따라 總理室의 位相이 180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政治的으로 힘 있는 總理가 오면 모두가 總理室에 注目하고, ‘무늬만 總理’가 오면 總理室度 있으나마나 한 組織으로 轉落한다.

    總理室 職員들이 꼽는 最高의 全盛時代는 김종필 總理(1998~2000)와 李海瓚 總理(2004~2006) 時節이다. 金 前 總理는 名實相符한 DJP(金大中-김종필) 共同政府의 한 軸이었고, 이 前 總理는 노무현 當時 大統領의 信任을 바탕으로 굵직굵직한 業務를 處理했다. 공교롭게도 이 時期에 總理室은 外形的 擴大도 이뤄냈다. 總理室腸이 次官級 行政調整室長에서 長官級 國務調整室長으로 昇格된 것이 1998年 3月이다. 國務調整室長 밑에 次官級 次長을 新設한 건 노무현 政府 時節인 2005年 3月의 일이다.

    이완구 前 總理가 就任하면서 總理室 職員들은 ‘第3의 全盛期’를 꿈꾼 게 事實이다. 與黨 院內代表 出身의 實勢 政治人이 모처럼 總理에 就任하면서 總理室이 다시 한 番 注目받을 수 있는 機會가 열릴 것으로 期待했다. 實際로 이 前 總理의 就任 後 行步는 이런 期待를 希望으로 바꾸기에 充分했다. 就任 直後인 설 連休, 李 前 總理는 서울 종로소방서를 訪問해 防火服 納品 問題點을 報告받으면서 “假짜 房禍福 問題는 國務調整室이 直接 챙기라”고 指示했다. 固有 業務가 不分明한 總理室에 國民的 關心이 쏠린 業務를 ‘直接 챙기라’고 指示한 것은 總理室의 位相 變化를 豫告할 만한 象徵的 事件이었다.

    李 前 總理의 行步엔 거침이 없었다. 幹部會議를 主宰한 자리에서는 “總理室이 名實相符한 國政 運營의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고 促求했다. 關係長官會議에 借款을 代身 보낸 윤병세 外交部 長官에게는 “누구는 閑暇해서 이 자리에 있느냐”며 直擊彈을 날렸다. 年間 3兆 원의 福祉 財政을 아끼겠다며 總理室이 直接 言論 브리핑을 主宰하면서 政策을 紹介하기도 했다. 李 前 總理의 政治的 라이벌이기도 한 최경환 經濟副總理를 向해서는 “副總理도 (總理 指揮를 받는) 長官”이라며 內閣 指揮權을 確實히 行使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大大的인 ‘公職 紀綱 잡기’ 亦是 總理室의 파워를 보여준 대목이었다. 總理室 公職服務管理官室은 直接 中央部處 職員의 賂物收受 事件을 摘發하고 勤務態度가 不實한 官僚들에 對한 大大的인 點檢 作業에 着手했다. 各 部處에서 外部 出張이 잦은 上位 20%에게 “最近 3個月 間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經緯書를 提出하라”고 指示하기도 했다.

    公職服務管理官의 서슬 퍼런 監察은 이番이 처음은 아니다. 現 組織의 前身인 公職倫理지원관室이 李明博 政府 時節 벌인 主要 政治人 및 言論人 査察이 代表的인 例다. 하지만 當時의 지원관 組織은 박영준 前 總理室 國務次長이 背後로 指目되면서 國務總理와 相關없이 靑瓦臺가 直接 움직인 게 아니냐는 論難이 컸다. 하지만 이番에는 狀況이 달랐다. 李 前 總理가 公職 紀綱 確立 意志를 表明한 以後 公職服務管理官室이 活潑한 活動에 나서면서 누가 봐도 總理가 組織의 中心에 있는 모습을 確實히 보여줬다.

    聽聞會 準備가 主業?

    總理室 官僚들은 겉으론 別로 내色을 하지 않는다지만, 까맣게 타버린 속내까지 감추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實勢 總理가 ‘성완종 리스트’라는 突發變數에 발목이 잡혀 慌忙하게 물러난 터라 아쉬움이 크다.

    “李 前 總理 같은 분이 中心을 잡고 1年만 確實히 자리를 지켰어도 總理室의 位相은 확 달라졌을 것이다. 靑瓦臺는 굵직한 課題에 神經 쓰고 日常的인 國政은 總理室이 챙기는 ‘希望’도 現實이 될 수 있었다.”

    總理가 떠난 後, 總理室이 자리한 世宗廳舍 1洞은 절間처럼 고요함이 감돈다. 外部에서는 總理가 불명예스럽게 떠났으니 뒤숭숭하지 않겠냐고 推測하지만, 정작 總理室 職員들은 이런 狀況이 그리 語塞하지 않다. 李 前 總理의 ‘불꽃같은 70日(在職期間 日數)’이 오히려 例外였다면 例外이지, 지난해 4月 세월호 事故가 터지고 鄭烘原 前 總理가 辭意를 表明한 뒤 1年이 넘도록 제대로 일한 날이 드물 만큼 總理室의 非正常的 狀況에 익숙하다.

    最近 總理室 職員들의 가장 큰 걱정은 早晩間 닥칠 人事聽聞會다. 朴槿惠 大統領 當選 以後 5名의 候補者가 指名되고 이 中 3名이 落馬하면서 總理室의 主業務는 ‘聽聞會 準備’가 돼버렸다. 모든 部處가 그렇듯, 새로 指名된 首長(首長)의 人事聽聞會가 끝날 때까지 한 달 가까이 業務는 事實上 ‘올스톱’ 된다고 해도 過言이 아니다. 候補者의 身上은 勿論 該當 部處의 政策 基調와 앞으로 나아갈 方向이 모두 聽聞會 提出書類에 녹아들어야 하기에 聽聞會 準備 外에 다른 業務를 건사한다는 것은 物理的으로 不可能하다. 總理室이 그처럼 酷毒한 通過儀禮를 2年間 5番이나 치렀다는 것은 다른 業務를 제대로 할 時間이 없었다는 意味이기도 하다.

    總理室의 눈은 ‘次期 總理’로 向해 있다. 當場 聽聞會를 準備해야 하는 데다 自身들의 去就가 決定되는 人事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李 前 總理는 物理的으로 時間이 없기도 했지만 就任 直後 “當分間 人事는 없다”고 宣言하며 大部分의 官僚를 留任시켰다. 李 前 總理의 忠南道知事 時節 行政副知事였던 최민호 氏를 祕書室長에 임명한 것 程度를 除外하면 局長級 陣容도 크게 흔들지 않았다.

    複雜한 人事 構圖

    235名의 단출한 組織이지만, 總理室 亦是 여느 行政機關 못지않게 人事 構圖가 複雜하다. 各 部處의 政策을 調律하는 特性上 外部에서 들어온 人士가 많다. 長官級인 秋慶鎬 室長은 企財部와 金融委員會에서 잔뼈가 굵은 經濟官僚 出身이다. 現職 次官級 中 洪允植 國務1次長은 內部, 조경규 國務2次長은 企財部, 최민호 祕書室長은 外部 出身이다. 最近에 國務調整室長을 거쳐간 김동연 아주대 總長, 任鍾龍 金融委員長은 모두 企財部 次官 出身이다.

    總理室 人事에 影響을 미치는 要因은 內部 變數보다는 外部 狀況이 크다. 當場 國務調整室長과 國務1·2次長은 靑瓦臺에 人事權이 있다. 失·局長級 人事는 各 部處의 人事 構圖와 맞물린다. 企財部 等 힘 있는 部處들은 人事 積滯 解消 方便으로, 內部 榮轉을 期待하기 힘들거나 갓 昇進한 官僚를 業務 經驗을 쌓게 하기 위해 總理室로 보내는 境遇가 많다. ‘끗발이 없다’고 評價받는 一部 機關은 總理室에 가는 것 自體를 ‘榮轉’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外部에서 치고 들어오는 人士가 高位 公務員團에 오르는 것에 對해 內部 出身들의 反撥이 크지만, 現 總理室의 位相이나 人事 構圖를 勘案하면 어쩔 수 없는 狀況이라는 解釋이 支配的이다.

    總理室로서는 이완구 前 總理의 强力한 公職 紀綱 드라이브로 인해 一線 部處들에 잃은 人心을 挽回해야 하는 負擔까지 지고 있다. “點心食事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 “가뜩이나 서울과 世宗乙 오가는 것도 힘든데, 出勤簿 圖章 檢査까지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批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李 前 總理 以上의 政治的 무게感을 가진 總理 任命이 現實的으로 쉽지 않다고 본다면, 次期 總理 就任 以後 總理室은 結局 보이지 않는 곳에서 葛藤을 管理하고 部處 間 業務를 調整하는 게 本業이 될 것이라는 觀測이 支配的이다.

    “結局 훌륭한 總理가 就任해 熱心히 國政을 챙겨야 풀리는 問題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새 總理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世宗廳舍 總理室 關係者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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