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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時節 選手 스카우트하면서 ‘바닥’ 배웠다”|신동아

“코치 時節 選手 스카우트하면서 ‘바닥’ 배웠다”

‘農神(籠神)’ 유재학

  • 이영미 | 스포츠專門記者 riveroflym22@maver.com

    入力 2014-12-23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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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치 時節 選手 스카우트하면서 ‘바닥’ 배웠다
    • 李尙玟, 문경은? 敵將들과는 밥도 같이 안 먹어
    • 歷代 베스트 5는 許載 이충희 徐章勳 김주성 신동찬
    “코치 시절 선수 스카우트하면서 ‘바닥’ 배웠다”
    유재학(52) 蔚山 모비스 監督은 좀처럼 빈틈을 許容하지 않는다. 코트 위에서 보이는 카리스마도 대단하다. 怠業을 하는 外國人 選手가 눈에 띄면 電力 損失을 甘受하고 곧장 내친다. 물을 흐리는 選手가 나타나면 主戰 非主戰 區分 없이 制裁한다. 勝利보다 더 重要한 게 選手團 紀綱이라고 생각한다.

    柳 監督은 歷代 2番째로 2年 連續 팀을 챔피언에 올렸으며 個人 通算 4回 優勝을 達成해 最多 優勝 監督이 됐다. 國家代表팀을 이끌고 2010年 광저우아시아競技大會 銀메달, 2014年 仁川아시아競技大會 金메달을 獲得했다. 1999年 指導者 生活을 始作한 以來 現役 最長壽 및 最多勝 監督이다. 歷代 監督 最初로 通算 500勝 達成을 눈앞에 뒀다.

    野球界에 ‘야신’ 金聲根이 있다면, 農具契에는 ‘農神’ 유재학이 있다고 할 만큼 그의 位相은 實로 대단하다. 2014~2015年 시즌에도 좀처럼 1位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柳 監督을 12月 3日 蔚山 모비스 體育館에서 만났다.

    ▼ 시즌 前 미디어데이 때 “6强 플레이오프만 進出해도 成功”이라고 말했는데, 엄살을 너무 부린 게 아닌가. 시즌 初 살짝 不安했지만 빠르게 제자리를 잡았다.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籠球월드컵과 아시안게임 代表팀 監督을 맡는 바람에 5個月 넘게 내가 팀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外國人 選手를 뽑고 選手들 轉地訓鍊을 시키며 시즌을 準備하는 동안 監督은 代表팀을 위해 存在했기에 올 시즌 戰略을 完成하는 部分에서 마이너스 要素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 팀 選手들이 正말 熱心히 해준다. 主戰 選手들이 負傷으로 빠진 狀態에서 백업 멤버, 젊은 選手들이 제몫을 다한다. 고마울 수밖에 없다.”



    팀의 中心을 맡은 양동근마저 代表팀에 差出되면서 모비스는 벤치와 코트에서 戰術의 核心이 자리를 비운 狀況이었다. 昌原 LG와의 시즌 開幕展을 1點 差 敗北로 始作했다. 初盤 5競技 成績이 3勝 2牌였으나 以後 11連勝을 내달렸다.

    優勝으로 이끈 기운

    ▼ 監督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식스맨 爲主로 構成한 選手團이 존스컵에 出戰해 優勝을 거머쥐기도 했다.

    “率直히 말해 2013年까지만 해도 존스컵에 出戰하는 팀들이 대단한 實力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番에는 世界選手權大會 等으로 1.5軍이 主로 出戰했고, 그런 가운데 모비스가 優勝을 차지한 터라 實力으로 이겼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팀은 外國人 選手 한 名을 除外하곤 모두 백업 멤버였고, 달랑 7名으로 選手團을 構成한 팀이었다. 7名이 10日 동안 9競技를 치렀다. 殺人的인 日程을 克服하고 優勝했다. 平素 主戰으로 뛰지 못하던 選手들이 이뤄낸 成果라 消息을 듣고 正말로 자랑스러웠다.”

    ▼ 2014年 가장 記憶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仁川아시아競技大會에서 金메달을 차지한 것 아닐까.

    “그렇다. 代表팀을 맡은 期間에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앞으로 代表팀 監督은 絶對 맡지 않겠다고 決心했는데, 아시안게임 金메달 獲得은 그 같은 苦生에 對한 報答이었다. 金메달 德分에 兵役 免除 惠澤을 받은 김종규, 오세근, 김선형, 이종현이 熱心히 하는 건 當然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熱心히 뛴 選手들이 있다. 양동근, 조성민, 양희종, 김주성이다. 古參들이 죽기 살기로 하니까 後輩들이 自然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代表팀을 위해 犧牲을 마다하지 않은 베테랑들에게 眞心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 아시안게임에서 어느 程度의 成跡을 豫想했나.

    “選手들에게 내色하진 않았지만, 果然 金메달 獲得이 可能할까 싶었다. 優勝하리라고 豫想하지 못했다. 다른 出戰國과 比較했을 때 電力 面에서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金메달은 實力과 努力 外에 運도 重要하다는 걸 다시 한 番 깨달았다. 優勝으로 이끄는 어떤 기운이 代表팀에 存在했던 것 같다.”

    ▼ 代表팀을 이끌며 여러 次例 고비를 맞았을 텐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김민구가 飮酒運轉 事故로 빠질 때만 해도 그 影響이 어느 程度일지 가늠되지 않았다. 그런데 練習 게임을 始作하면서부터 民具의 空白이 느껴졌다. 그때 ‘아, 이게 크구나’ 싶었다. 選手의 人生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일었고, 우리가 金메달까지 목에 걸면서 그 마음이 더 깊어졌다.

    그다음으로 힘든 일이 訓鍊 過程이었다. 訓鍊 스케줄이 나오면 選手團 모두가 計劃한 대로 하나둘씩 段階를 거쳐 完成된 그림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選手村 生活이 지루해 選手들이 힘들어 하다보니 選手團 全體가 처지는 狀況이 벌어졌다. 그걸 克服해가는 過程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外國人 選手 歸化가 正答”

    ▼ 2013年 8月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選手權大會에서 臺灣을 꺾고 16年 만에 籠球월드컵 出戰을 確定 지은 後 外國人 選手의 歸化를 主張했다. 勿論 現實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시아圈 팀들이 歸化 選手를 代表팀에 합류시키는 것이 普遍化해 있다는 것을 아시아選手權大會를 치르며 確認할 수 있었다. 韓國 籠球의 痼疾的 弱點인 높이와 파워를 解決하려면 外國人 選手의 歸化가 正答이었다. 그러나 現 放熱 籠球協會長 以前의 會長團 및 關係者들은 歸化에 積極的인 關心을 갖지 않았다. 言論과 인터뷰하면서 歸化 選手의 必要性을 力說했지만 結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또한 言論에서 우리가 外國 팀과 評價戰을 많이 치르지 않는 것과 關聯해 問題 提起를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다고 그런 評價戰이 꾸려지는 게 아니다. 行政은 協會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放熱 會長이 赴任한 後 많은 努力을 기울였다. 急造한 느낌이 들지만, 國內에서 外國 팀을 招請해 國際大會度 치렀다. 뉴질랜드로 轉地訓鍊을 가 뉴질랜드 代表팀을 招請해 競技를 치렀다. 그런 經驗이 籠球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좋은 影響을 미쳤다고 본다.”

    ▼ 2014年 8月 參加한 스페인 籠球월드컵에서 5戰 全敗의 아픔을 맛봤다. 강팀과의 對決을 통해 韓國 籠球의 現實을 切感한 選手 中 一部가 運動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냐며 挫折했다는 얘기도 들리더라.

    “結果는 慘澹했지만, 그 大會의 經驗은 코칭스태프와 選手 모두에게 永遠할 것이라고 믿는다. 월드컵 出戰을 앞두고 言論에서 ‘아시안게임을 爲한 前哨戰’이란 表現을 쓰더라. 結團式을 앞두고 우리와 같은 組에 屬한 앙골라, 멕시코의 競技 映像을 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籠球월드컵에 올인하는데 우린 아시안게임 前哨戰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率直히 猖披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籠球월드컵 出戰을 아시안게임을 위한 經驗 쌓기라든지 前哨戰으로 여기지 않고 最善을 다해 勝負를 걸기로 한 것이다. 選手들과 ‘꼴찌를 하더라도 世界舞臺에 섰다는 것을 榮光으로 생각하고 배운다는 姿勢로 뛰자’고 約束했다. 아시안게임은 생각하지 말고 월드컵에 集中하기로 한 것이다.”

    “KBL도 거친 몸싸움 許容해야”

    ▼ 籠球월드컵을 통해 얻은 成果가 있다면.

    “世界 籠球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는 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所重한 經驗이었다. 다만 成績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外國 팀과 맞붙을 때 前半戰까지 잘하다 後半에 虛無하게 무너지는 境遇가 잦다. 理由가 뭘까. 몸싸움이다. 體格이 좋은 選手들과의 몸싸움에 對한 練習과 準備가 덜 돼 있다보니 그런 狀況이 벌어지면 束手無策으로 當한다.

    相對 팀 選手들은 늘 그런 狀況에서 訓鍊하고 게임도 치르지만, 우리는 프로籠球聯盟(KBL) 룰에 依해 몸싸움을 많이 許容하는 競技를 못 하다보니 國際大會에서 相對 選手와 부딪치면서 뛰는 데 負擔을 갖는다. 5戰 全敗를 하며 悲慘함을 곱씹은 部分이 아시안게임 때 效果를 봤다. 어느 팀과 맞붙어도 選手들이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 아시안게임에선 全勝으로 퍼펙트 優勝을 達成했다.

    “가장 印象的인 競技가 필리핀前科 決勝에서 붙은 이란戰이었는데, 이란 前은 準備한 대로 競技가 흘러간 反面 필리戰은 競技 내내 變數가 많았다. 슛이 그런 式으로 들어간 것은 한마디로 ‘미친 得點’이었다. 필리핀戰을 치르면서 競技를 支配하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韓國은 필리핀의 빠르면서도 組織的인 플레이에 苦戰했다. 3點 슛만 16個를 許容하며 敗北 直前까지 몰렸다. 2쿼터까지 44-51로 뒤졌고 3쿼터에서는 戰意를 喪失한 모습도 보였지만, 猛追擊에 나섰다. 문태종이 終了 5分 35秒를 남기고 2得點에 成功해 84-82로 傳貰를 뒤집었고 88-89로 뒤지던 狀況에서 競技 終了 59.4秒를 남기고 양희종이 3點 슛을 꽂으며 勝負에 마침標를 찍었다.”

    ▼ 所屬팀에 5個月 넘게 자리를 비웠다. 監督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選手들이 訓鍊을 잘 消化한 것 같다.

    “난 選手들이 이렇게 잘해줄지 몰랐다. 내가 없는 사이에 籠球가 많이 늘었다. 김재훈 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非(非) 시즌 동안 내가 注文한 宿題를 完璧하게 해놓았다. 시스템을 다 만들어놓았기에 주어진 대로 宿題만 하면 됐지만, 코치들 處地에선 꽤 負擔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特히 代表팀 差出로 팀을 나온 양동근의 空白은 내가 없는 것보다 더 컸을 텐데 그 部分도 잘 對應한 듯하다.”

    ▼ 올 시즌 11連勝을 달리는 等 거침없는 行步를 펼쳐왔다. 祕訣이 뭔가.

    “챔피언이 되려면 여러 가지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올 시즌은 運이 따르는 便이기도 하다. 連勝 中에 敗할 뻔한 競技가 있었는데, 相對 팀의 主要 選手가 부상당하면서 雰圍氣가 우리한테 넘어온 적도 몇 番 있다.

    하지만 競技 內容은 늘 不滿足스럽다.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많지 않아서다. 다른 해와는 달리 올 시즌은 팀마다 連霸도 많고 連勝도 많다. 그만큼 起伏이 甚하다. 다른 팀의 準備 不足이 우리에게 좋은 影響을 미치는 것 같다.”

    “코치 시절 선수 스카우트하면서 ‘바닥’ 배웠다”
    ▼ 外國人 選手를 다루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나.

    “選拔할 때 人性부터 살펴본다. 그 다음에 우리 팀에 必要한 스타일의 選手인지 把握한다. 得點을 많이 하는 選手보다 팀에 힘을 보태주는 選手를 좋아한다. 卽 리바운드, 守備, 블록 等에서 도움을 주는 選手를 좋아한다. 訓鍊할 때도 그런 쪽에 重點을 둔다.”

    ▼ 只今까지 因緣 맺은 外國人 選手 中 가장 記憶에 남는 이는.

    “아무래도 破壞力에서 特出한 實力을 뽐낸 브라이언 던스톤과 多才多能한 才能을 선보인 크리스 윌리엄스, 그리고 現在 모비스에서 3시즌 동안 最高의 活躍을 보이는 라틀리프를 꼽고 싶다. 이 세 選手는 華麗한 技術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 다른 選手에게 좋은 影響을 미쳤고, 이들이 存在했기에 優勝이 可能했다. 特히 라틀리프는 8月 臺灣에서 열린 존스컵에도 出戰해 大會 MVP에 오르며 팀 優勝에 決定的 구실을 했다.”

    “유재학 籠球=守備 籠球”

    12月 10日 蔚山 모비스는 釜山 kt와 對決을 펼쳤다. 그런데 競技를 앞두고 라틀리프의 結腸 消息이 傳해졌다. 그날 午前 갑자기 甚한 腸炎을 呼訴한 바람에 出戰 名單에서 除外한 것. 라틀리프는 유니폼을 챙기지 않고 競技場에 왔는데, 3쿼터까지 kt와 51-51로 接戰이 이어지자 出戰 意思를 밝혔다. 유니폼이 問題였다. 球團 關係者가 基地를 發揮해 體育館 複道에 展示한 유니폼 中 라틀리프 것을 떼어내 입혔다.

    라틀리프는 4쿼터 初盤 出戰해 勝利(70-67)를 이끌었다. 8分 동안 4得點, 3리바운드를 記錄했는데, 存在感만으로도 kt 選手들을 흔들기에 充分했다. 모비스는 이날 競技에서 勝利하면서 가장 먼저 20勝(4敗) 高地에 올랐다.

    ▼ ‘유재학 籠球’에 對한 評價가 다양하다. 시스템 籠球, 壓迫 籠球 等 여러 解釋이 나오는데, 스스로는 어떤 스타일의 籠球를 驅使한다고 생각하나.

    “유재학 籠球는 守備 籠球다. 우리나라 選手들이 가진 技倆으로는 攻擊 籠球를 할 수 없다. 過去 우리가 選手로 뛸 때보다 只今 選手들의 技倆이 많이 떨어진다. 特히 外國人 選手가 프로에 合流하면서 攻擊은 外國人 選手에게 依存하는 境遇가 많다. 攻擊은 技倆으로 하지만 守備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守備 籠球를 擇했고, 技倆이 떨어지는 選手들에게 守備 能力을 갖추게 하려고 努力했다.

    守備는 訓鍊하면 境地에 오를 수 있다. 다만 스텝 같은 基本부터 다시 始作해야 한다. 選手들은 어린 時節 슛하는 法만 배운다. 入試를 위한 籠球를 했기 때문이다. 成人이 되기 前, 卽 幼少年이나 中·高等學生 때는 韓國 選手들이 어느 國際大會에 나가도 競爭할 만하다. 要領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成人이 돼 프로에 들어가면 外國 選手들과 技倆 面에서 큰 差異가 난다.

    監督職에서 隱退하면 幼少年 籠球를 爲해 일하고 싶다. 成人이 된 後 스텝부터 다시 배우는 어리석음을 犯하지 않으려면 어릴 적 基本技에 充實해야 한다. 韓國 籠球의 未來를 위해 餘力을 바치는 게 또 다른 目標다.”

    ▼ 28歲에 隱退했다. 隱退 後 연세대 코치로 최희암 監督 밑에서 指導者 生活을 始作했다. 한때 잘나가는 選手 아니었나. 코치 生活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4年 동안 母校에서 코치를 하면서 ‘指導者=苦生’이란 事實을 體得했다. 當時엔 選手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重要한 任務가 스카우트였다. 스카우트는 사람과의 關係가 무엇보다 重要했다. 高等學校 監督과 食事하러 가면 내가 그 監督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고, 그 監督의 가방을 들고 다녔다. 選手였을 때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懇切한 마음을 나타냈다. 侮辱을 줘도 꾹 참고 堪當해야 했다. 스카우트할 選手가 幸여 變心할까봐 몇 날 며칠을 選手 집 앞에서 監視한 적도 있다. 코치 하면서 바닥을 배운 것이다.”

    “코치 시절 선수 스카우트하면서 ‘바닥’ 배웠다”

    유재학(오른쪽) 監督은 독한 訓鍊을 시키는 것으로 有名하다.

    “‘學閥로 장난친다’ 謀陷 받아”

    ▼ 1997年 프로 出帆 元年 大宇證券(現 전자랜드) 코치를 맡고 이듬해 仁川 待遇(現 전자랜드) 指揮棒을 잡으며 監督 生活을 始作했다. 以後 新世紀, SK, 전자랜드를 거쳐 2004~2005年 시즌부터 모비스를 이끌고 있다. 1998~1999年 시즌, 그러니까 34歲의 나이에 監督이 됐는데, 當時로서는 最年少 監督이었다.

    “選手 生活을 일찍 끝냈으니 코치, 監督도 일찍 始作한 것이다. 當時 힘들었던 일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仁川 新世紀 빅스 時節 6强 플레이오프에는 種種 들었지만, 4强 플레이오프는 딱 한 番이었고, 꼴찌도 한 次例 記錄했다. 혼자 울기도 했고, 그만두려고 한 적도 몇 番 있다. 어떻게 해서든 成跡을 올리려고 하루 4番씩 훈련시키며 直接 가르쳤지만 結果가 좋지 않으니 自信感은 떨어지고 懷疑感만 掩襲했다. 成績이 좋지 않아 外出도 잘 안 했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오로지 籠球만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팀이 살아날 수 있을지만 硏究했다.”

    ▼ 球團에 辭職書를 낸 적도 있나.

    “辭職書를 내기 前에 球團에서 나를 내보내려 했다. 成績이 좋지 않다는 理由로 球團 關係者가 主導해 나를 쫓아내려다가 高位層에서 事由가 妥當하지 않다며 霧散시킨 일도 있다. 當時 球團 關係者는 내가 學閥 갖고 장난을 쳤다고 謀陷했다.

    대우증권이 創團됐을 때는 연세대 出身이 主軸을 이뤘고, 오리온스는 고려대 出身이 팀의 中心이었다. 연세대 出身 選手나 코치를 直接 뽑은 게 아니었는데, 내가 主導했다며 謀陷을 했다. 팀 成績이 꼴찌였으니 누군가 책임져야 했고, 事務局에선 그 責任을 내게 씌우려다 ‘연세대 出身들로 장난을 쳤다’고 高位層에 報告한 것이다.

    그만둘 생각으로 人事하러 올라갔더니 球團主가 물어보더라. 正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그래서 ‘成跡을 못 냈으니 監督이 물러나는 건 當然하다. 하지만 다른 事由로 물러나야 한다면 抑鬱하다. 난 絶對 그런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說明했다. 球團主는 ‘柳 監督을 믿는다. 그러니 팀을 일으켜달라’며 손을 잡아줬다. 新世紀 빅스에서 SK 빅스로 넘어가면서 팀 成績이 좋아졌다. SK 빅스가 다시 전자랜드로 팀명을 바꿨다. 2004年 4强 플레이오프에 進入한 後 팀과의 契約이 끝났는데, 그때 蔚山 모비스에서 連絡이 왔다.”

    ▼ 蔚山 모비스 司令塔에 赴任할 때만 해도 팀 成績이 꼴찌였다. 大部分의 指導者가 꼴찌 팀을 맡는 것에 負擔을 가질 텐데 왜 이 팀을 맡았나.

    “너무 오랫동안 한 팀에 머무르다보니 漸漸 停滯되는 모습을 發見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挑戰을 꿈꾸게 됐는데 때마침 모비스에서 提案이 온 것이다. 꼴찌 팀이니까 더는 내려갈 데가 없었다. 그 點이 마음에 들었다. 내 色깔을 제대로 입힐 수 있는 팀이라는 생각에 意欲이 넘쳤다.

    모든 걸 바꿨다. 選手도 바꾸고, 팀 色깔도 바꾸고. 當時 團長께서 내게 많은 權限을 주셨다. 干涉도 하지 않았다. 成績이 안 좋아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信賴가 큰 刺戟과 勇氣를 줬다. 2004年 赴任 後 只今까지 球團主가 다섯 番 바뀌었고 團長이 네 番 交替됐는데 成績과 關聯해 이러쿵저러쿵한 분이 없다.”

    ▼ 2005~2006年 시즌 크리스 윌리엄스와 양동근을 앞세워 正規리그 1位라는 異變을 演出했다. 챔피언 決定戰에서 서울 三星 썬더스에 敗했으나 農具契가 모비스의 刮目할 만한 成長에 注目했다. 2006~2007年 시즌에는 正規리그 1位는 勿論이고 챔피언 決定戰에서도 勝利했다. 말 그대로 꼴찌에서 一等까지 내달린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가 모든 팀의 타깃이 됐다. 우리만 만나면 다들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그래서 1位를 하고 있어도 放心할 수가 없다. 꼴찌 팀과 만나도 1位인 우리가 힘들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連續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독한 訓鍊을 選手들에게 시키고 있다.”

    모비스는 2007~2008年 시즌에는 6强에 들지 못했고, 2008~2009年 시즌에는 注目받지 못하던 김현중, 함지훈 같은 選手를 調鍊해 正規시즌에서 1位를 차지했다. 2009~2010年 시즌에 두 番째 統合 優勝을 차지했다. 2012~2013年에는 正規시즌 準優勝을 차지한 後 챔피언決定戰에서 SK를 4-0으로 무찔렀다. 2013~2014年에도 챔피언에 올랐다.

    “첫해 成跡은 選手빨”

    ▼ 籠球 指導者들은 因緣으로 얽혀 있다. kt 전창진 監督과는 初等學校·中學校 同窓이고 李尙玟 三星 監督, 문경은 SK 監督과는 연세대 先後輩 사이다.

    “가까울 수가 없다, 이 職業에서는. 창진이는 親舊, 문경은·이상민은 弟子지만, 코트에선 相對해야 할 監督이라 競技 前에 밥도 같이 안 먹는다. 來日 싸워야 할 사람과 어떻게 食事를 함께하겠나. 아주 특수한 狀況이라면 몰라도 일부러 그런 자리를 갖진 않는다.”

    프로籠球 監督 中에는 親分이 있는 다른 팀 監督과 競技 前날 따로 만나 食事하거나 가볍게 술盞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다.

    ▼ 올 시즌 李尙玟 三星 監督이 ‘初步’ 타이틀을 달고 酷毒한 시즌을 치렀다.

    “얼마 前 競技 끝나고 지나가면서 만났는데, ‘監督 첫해는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 있는 絶好의 機會’라고 말해줬다. 또 ‘첫해에 成績이 좋은 것은 自己 實力이 아니다. ‘選手빨’이다. 只今 成跡에 失望하지 말고 契機로 삼는 게 精神 健康에 좋을 것’이라고 助言했다. 꼴찌를 해봤기에 이 監督의 現在 心情을 누구보다 잘 안다.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 競技 때 相對 監督의 牌를 잘 읽는 便인가.

    “다른 건 몰라도 얼마나 準備하고 나왔는지는 보인다.”

    ▼ 野球는 韓國人 메이저리거, 蹴球는 韓國人 프리미어離居를 輩出했다.

    “體質을 改善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릴 적 基本技를 着實히 익혔다면 김주성 같은 選手는 充分히 NBA에 進出했을 것이다. 身長도 크고, 슛도 잘 쏘고, 패스도 빠르다. 다만 基本技가 不足한 탓에 몸싸움을 싫어한다. 다치지 않으려고 避하다가 오히려 부상당하는 狀況이 反復되더라. 韓國 籠球가 發展하려면 KBL이 거친 몸싸움을 許容해야 한다. 요즘 運營되는 것을 보면 자꾸 옛날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답답하다. 籠球人 出身 總裁께서 聯盟을 맡았으니 現場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國際大會 나가면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다. 몸싸움이 弱한 選手들은 國際大會에서 絶對 成功 못한다. 내가 누구보다도 强度 높게 協會나 聯盟을 向해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이다. 只今 韓國 籠球는 윗사람들이 다 망친다. 籠球人들이 籠球 發展 가로막는 것들을 앞세운다.”

    籠球에 最適化한 心身

    ▼ 이番 시즌 優勝하면 代表팀 監督을 또 맡을 수 있겠다.

    “더는 안 한다. 몸도 안 좋다. 지난 4年 동안 休息 없이 달려왔다. 家族이 美國에 있는데,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온갖 스트레스로 쓰러지기 一步 直前이다. 이젠 代表팀도 前任 監督制로 運營해야 한다. 世代交替를 念頭에 두고 모든 걸 바꿔야 한다. 양동근, 김주성 等 나이 많은 選手를 빼고 젊은 選手 爲主로 構成해 그들을 성장시켜야 한다.”

    ▼ 代表팀은 프로에서 第一 잘하는 選手들이 뽑히는 곳 아닌가. 키워서 성장시키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當場의 成績을 내기에 汲汲하기보다는 먼 未來를 보고 代表팀을 運營하자는 뜻이다. 來年에 올림픽 豫選戰이 있다. 大學生 爲主의 젊은 選手들을 뽑아 그들이 앞으로 5年, 10年 代表팀에서 活躍하게끔 해야 한다. 只今 中國이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 언젠가는 監督職에서 잘릴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

    “當然하다. 언제까지 좋은 成跡을 낼 수 있겠나. 世上에 永遠한 것은 없다.”

    ▼ 마지막 質問이다. 大韓民國 籠球社에 永遠히 記憶될 ‘베스트 5’를 꼽아달라.

    “第一 어려운 質問이다(웃음). 曖昧하긴 한데, 一旦 서장훈은 無條件 들어가야 하고, 이충희 허재도 이름을 올려야 한다. 김주성도 2002年의 全盛期 때라면 뽑힐 수 있다. 그리고 가드인데, 난 個人的으로 신동찬을 좋아한다. 于先 腎臟이 190㎝인 가드는 없었다. 박수교, 姜東熙, 李尙玟, 김승현 等 손에 꼽히는 가드들이 있지만, 그래도 신동찬이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본다. 許載, 이충희, 徐章勳, 김주성, 신동찬…. 이렇게 代表팀이 構成된다면 NBA도 부럽지 않을 듯하다.”

    “籠球란 무엇이냐”라는 愚問을 던지자 그는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答했다. 籠球 外에 다른 스포츠에는 關心조차 없다고 말한다. 籠球 監督들의 흔한 趣味인 골프도 치지 않는다. 그의 몸과 마음은 籠球만을 위해 最適化한 것 같았다. 유재학은 ‘優勝을 부르는 監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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