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累積된 時間 속에서 記憶을 生産한다|신동아

累積된 時間 속에서 記憶을 生産한다

仙遊島公園의 羅牧(裸木)

  • 정윤수│文化評論家 prague@naver.com

    入力 2014-12-19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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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서 海邊을 散策한다. 차디찬 海邊에 선, 그저 그런 나무 한 그루 아래 무릎을 꿇고는 한참을 운다. 그 場面을 못 잊어, 積層된 時間의 켜를 오롯이 記憶하려 나는 仙遊島公園에 갔다.
    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映畫를 보았다. 홍상수 監督의 ‘옥희의 映畫’. 예전에는 劇場에서 映畫를 놓치면 洞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을 텐데, 그 무렵이라 해도 홍상수 監督의 映畫비디오테이프를 備置해놓은 가게는 드물었을 것이다. 인터넷 基盤의 注文型 多媒體 時代가 됐다. 願하는 映畫를 클릭 몇 番으로 보게 된 것이다. 實際로 리모컨 버튼을 몇 番 누르고 나니 금세 畵面에서는 奇異한 이야기가 물고 물리는 ‘옥희의 映畫’가 始作됐다.

    ‘옥희의 映畫’는 네 個의 章으로 나뉘어 흘러간다. ‘呪文을 외울 날’에는 진구, 卽 이선균의 支離滅裂한 하루가 흐른다. ‘키스王’에는 옥희, 卽 정유미가 登場한다. 옥희는 진구와 ‘썸 타는’ 中인데 예전에는 宋 敎授, 卽 문성근과도 因緣이 있어 보인다. ‘暴雪 後’로 넘어가면 문성근의 順序다. 그는 只今 이 時代에 二重的으로 살아가는, 아니 虛僞意識 안에서 眞實을 살아가는 人間이다. ‘옥희의 映畫’의 마지막 章 ‘옥희의 映畫’는 정유미의 視線에서 두 男子가 交叉한다. 옥희, 卽 정유미는 두 男子와 서로 다른 時間帶에 서울 東部의 아차산에 간다.

    정유미의 視線에서 마무리되는, 이 세 사람의 돌고 도는, 물고 물리는, 꼬리가 머리가 되고 머리가 꼬리가 되는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서로가 서로의 記憶에 侵入하고 서로가 서로의 記憶을 自己 것인 양하는 假짜 記憶과 眞짜 記憶 사이의 따스한 僞善과 날카로운 眞實 사이의, 虛僞意識과 眞情性 사이의, 그 모든 記憶 속에서 서성거리는 只今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神仙이 노니는 風光

    映畫의 끝部分, 겨울 峨嵯山 風景에서 옥희는, 그리고 두 男子는, ‘잘생긴 나무’를 바라본다. 事實 그 場面에 보이는 나무는 茂盛했던 잎을 다 떨어뜨리고 추위에 떠는 別 볼일 없는 나무였지만 映畫의 主人公들에게 그 나무는 ‘잘생긴 나무’였다. 그 場面을 보면서 나는 겨울나무를 보러 가기로 決心했다.



    …그래서 仙遊島公園으로 갔다.

    매서운 추위가 갑자기 몰아쳤다. 12月이 始作되는 첫날, 추위가 豫告되더니 다음 날 眞짜로 氣溫이 零下로 떨어지고 거기에 무서운 바람까지 몰아쳤다.

    漢江 둔치 仙遊島公園 駐車場에 들어서는데, 駐車 管理하는 분이 왜 오셨냐? 묻기까지 했다. 公園 구경 왔어요, 對答했더니, 正말인가 하는 疑訝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駐車場은 텅 비었고 그래서 나는 아무렇게나 車를 세운 後 默默히 걸었다. 내 앞에서, 또 한참 後에는 내 뒤에서 두꺼운 外套에 帽子를 깊게 눌러쓴 사람들이 이 칼바람에도 自轉車를 타면서 지나갔고 나는 그 自轉車길을 버리고 仙遊島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 올라섰다.

    漢江을 縱橫無盡하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쳐서 하마터면 눌러쓴 帽子를 저 蒼空 위로 날려 보낼 뻔했다. 아무도 없었다. 아니, 公務 때문에 그리고 公園 안에서 카페를 運營하느라 오가야 하는, 結局 몇 사람을 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零下의 날씨에 구경 삼아 仙遊島公園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多幸이다.

    봄가을처럼 季節이 참 좋은 때는 散策하는 사람, 나들이 나온 家族, 데이트하는 戀人, 寫眞 찍으러 몰려나온 아마추어 寫眞家 等으로 仙遊島公園은 늘 북적이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神仙이 노닌다는 ‘宣諭(仙遊)’라는 이름처럼 秀麗한 風光의 섬이다. 讓寧大君이 이곳에 영복情(榮福亭)을 지었다고 한다. 陽川 縣監으로 在職하면서 楊花渡, 仙遊島 一帶를 많이 그린 謙齋 鄭敾과도 因緣이 깊다. 日帝强占期의 大洪水와 汝矣島 飛行場 建設을 위한 建設 資材 充當 等으로 인해 謙齋의 그림에 나오는 仙遊島의 情趣는 오래前에 사라졌으며 淨水場이 들어서 있었다.

    淨水場은 1978年 完工돼 2000年 12月까지 市民에게 水道물을 供給했다. 그 施設의 規模가 相當했다. 濁한 江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淨水하는 作業은 高度의 技術과 集約된 勞動과 相當한 裝備를 要求한다. 게다가 일의 强度와 條件도 힘들었다. 首都 서울의 食水를 責任지는 作業이었기 때문에 技術的 集中과 緊張이 要求됐으며, 그 位置 또한 韓江의 한복판이면서도 都心의 日常生活이 不可能한 외딴 섬에 들어섰다. 그 宣諭淨水場에서 수많은 사람이 늘 맑은 물을 만들기 위해 고되게 일했고 때로는 洪水 같은 非常 狀況에 對處하고자 緊張을 늦추지 않았다.

    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積層된 時間의 켜

    2002年 4月 이 淨水場이 市民을 위한 公園, 그것도 生態公園으로 거듭났을 때 市民은 勿論 專門家 그룹에서도 稱讚과 激勵를 아끼지 않은 것은 바로 그 記憶을 되도록 毁損하지 않으면서 餘暇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空間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過去의 記憶과 現在의 日常이 어우러져 素朴한 未來를 비추는 곳, 仙遊島公園이 그렇게 變했다.

    비슷한 事例로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서서울湖水公園이 있다. 京仁高速道路 신월 인터체인지 옆에 位置해 있다. 美國造景家協會(ASLA)가 주는 專門家 部門 優秀賞을 受賞했다. 1959年부터 신월淨水場이 稼動돼 하루 平均 水道물 12萬t을 供給하다가 2003年 10月 ‘서울市 淨水場 整備計劃’에 따라 稼動이 中斷됐다. 그 後 한동안 버려져 있었으나 大大的인 리모델링을 통해 2009年 公園으로 再誕生했다. ‘물’과 ‘再生’이라는 主題에 따라 直徑 1m에 達하는 水道管 等 옛 淨水場施設이 물놀이場, 100人의 食卓, 놀이터 等과 어우러졌다. 녹슨 沈澱槽 構造物과 이를 支撐해온 오랜 콘크리트 壁體가 公園을 찾는 사람들에게 時間의 痕跡과 記憶을 膳物한다.

    서서울公園의 施設物 中에서 매우 이채롭고 神奇하면서도 複合的인 感情을 자아내는 것이 ‘소리 噴水’다. 이 一帶의 上空으로 하루 平均 360餘 臺의 飛行機가 날아다닌다. 가까운 곳에 金浦空港이 있기 때문이다. 午前 6時부터 밤 11時까지만 飛行이 可能한데도 3分에 1臺꼴로 離着陸하는 셈이다. 航空機 騷音 基準을 웨클(WECPNL)로 標示하는데 이는 單純히 소리 크기만을 表現하는 데시벨(dB)과 달리 運航回數, 時間帶, 騷音의 最大値 等에 일정한 加重値를 둬 測定하는 方式이다. 國際民間航空機構(ICAO)가 設定한 單位다. 金浦空港 一帶의 2013年 航空機 平均 騷音은 84.3웨클로 騷音影響 地域 基準인 75웨클보다 높다. 신월동, 공항동, 방화동은 勿論 富川의 고강동 사람들도 오랜 歲月 飛行機 騷音에 시달렸다.

    記憶을 담은 空間

    ‘소리 噴水’는 바로 그 航空機 소리 및 軌跡과 關聯한 施設이다. 蹴球場 두 個 面積보다 큰 湖水에서 噴水가 솟구치는데 그 方向이 41個다. 航空機 路線을 따라 設置된 것이다. 上空으로 飛行機가 지나가면 그 軌跡에 따라 該當 分數가 自動으로 물을 뿜어낸다. 神奇한 구경거리지만 同時에 錯雜한 생각이 들게도 한다.

    이 같은 일들, 그러니까 産業化 時代의 施設을 公園이나 文化 空間으로 탈바꿈하는 作業이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 獨逸 에센 炭鑛地帶의 公演場과 美術館들, 그리고 仁川 群山 大邱 釜山 等地에서도 벌어지거니와 只今 내가 서 있는 이곳, 매서운 칼바람이 漢江을 스치며 날아와서 餘地없이 겨울 外套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이곳, 仙遊島公園에서 相當한 水準의 成就를 이뤄냈다.

    東亞日報 2013年 2月 5日子 記事는 仙遊島公園이 專門家들 사이에서 얼마나 높은 評價를 받는지 잘 보여준다. 東亞日報와 建築專門 月刊誌 ‘공간 SPACE’는 2000年代 以後 지어진 建築物 中 最高와 最惡을 選定하는 共同 設問調査를 벌였다. 이 調査에 따르면 建築家 조성룡이 設計한 꿈마루, 依在美術館, 仙遊島公園이 20位 안에 모두 包含됐다.

    광진구 能動의 꿈마루는 이 나라 中年의 追憶이 담긴 어린이大公園의 管理事務所 建物을 撤去하지 않고 오히려 記憶이 內藏된 空間으로 改造한 곳이다. 仙遊島公園 또한 그런 脈絡에서 이뤄진 凱歌다. 記憶과 痕跡을 깡그리 지우고 우람한 콘크리트와 華麗한 琉璃로 都市的 建物을 치솟게 하는 傾向과 달리 조성룡의 두 作品은 ‘空間의 持續可能性’에 對한 일정한 解答으로 評價된 것이다. 그 밖에 우규승의 환기미술관, 이타미 준의 濟州道 葡萄호텔, 승효상의 웰콤시티 等이 베스트 建築物로 꼽혔다.

    한便 세빛둥둥섬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各各 ‘展示性 建築 行政의 銓衡’ ‘記憶의 場所를 지워버리는 建築의 暴力’ 等의 理由로 워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밖에 종로타워, 敎保生命 光化門 社屋, 江南 아이파크타워 等도 場所의 意味를 無視하며 威勢騰騰하게 君臨하는 建築的 傲慢함의 事例로 꼽혔다.

    같은 脈絡의 技士가 2011年에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그해 6月 29日子 記事에서 建築家와 建築學科 敎授 等 專門家 30名(23名이 應答)을 對象으로 ‘韓國을 代表하는 建築物’을 設問調査했는데, 仙遊島公園이 13票로 最高의 建築物로 꼽힌 것이다. 이 調査에서는 원서동 空間 社屋, 仁寺洞 쌈지길, 慶州 선재미술관, 全北 茂朱 公共施設 프로젝트 等이 베스트 目錄에 올랐고, 光化門廣場, 藝術의殿堂, 타워팰리스, 淸溪川, 獨立記念館 等이 워스트로 指目됐다. 앞서 言及한 바와 같이 ‘該當 場所의 記憶과 該當 空間의 脈絡’李 判斷의 大體的인 基準이었다.

    建築家 조성룡과 造景 專門家 정영선이 함께 만든 仙遊島公園은 歷史的 遺産을 어떻게 保存하고 그것을 當代에 어떻게 實質的으로 活用할 수 있을지에 對한 答案紙와 같은 곳이다. 2004年 美國造景家協會가 授與하는 ‘2004 Professional Award’에서 專門家 部門 最高賞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韓國 造景 分野의 劃期的인 里程標로도 評價받는 空間이다.

    이 空間에 흐르는 것은 時間이다. 設計者들도 그 點을 最大限 考慮해 着床하고 設計하고 造成해냈다. 累積된 時間, 堆積된 記憶, 積層된 痕跡이 이 仙遊島公園에는 海邊의 모래밭처럼 펼쳐져 있다. 設計 公募 過程에서 淨水場 施設을 完全히 밀어버리고 흔하디흔한 都心型 公園 乃至는 慰樂 中心의 테마파크 等을 造成하는 아이디어들도 提出됐으나 淨水場의 施設은 勿論 廢棄物까지 最大限 活用하려는 조성룡의 提案이 結局 選擇됐다.

    完工 以後 이 公園을 管理하는 쪽에서 誇示的으로 보이는 各種 弘報物을 附着해 놓기도 했으나, 2013年 바닥材의 石綿을 除去하고 여러 施設을 安全하게 補强하는 리모델링 作業을 10個月假量 進行하면서 이러한 弘報性 裝置들을 모조리 떼어내고 現在의 모습처럼, 卽 옛 施設들과 記憶들이 現在의 空間 안에 游泳하는 方式으로 補完한 것도 特記할 만한 일이다.

    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옛 水道물 生産施設의 밸브와 樹冠.



    人間의 勞動, 機械의 動力, 그 時間들

    나는 찬바람을 위로 삼아 걷는다. 길쭉하게 造成된 空間을 따라, 오래된 콘크리트 施設物과 한때 猛烈하게도 엄청난 機械 裝置를 돌렸을 巨大한 밸브와 녹슨 수官들 사이를 걷는다. 그렇게 걸어가다보면 큼직한 기둥들이 마치 記念碑처럼 서 있는 空間을 마주하게 된다. 여러 기둥에는 植物들이 달라붙어 生命力을 드러냈고, 그 한가운데 있는 기둥은 오로지 콘크리트 그 自體로 起立해 있었다. 이곳의 時間들, 卽 人間의 勞動과 機械의 動力이 結合한 記憶들을 雄辯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 말고 또 다른 散策者가 들어선 模樣이다. 그나마 햇볕이 한 줌 깃든 곳에 앉아서 소리의 方向을 찾아보니, 젊은 戀人이 淨水場 施設 사이를 걷고 있었다. 스물네댓 살쯤 돼 보이는 男女였다.

    男子아이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있었다. 요즘 같은 스마트폰 大勢 時代에 큼직한 카메라를 따로 장만한 걸 보니 나름대로 셔터 누르는 快感을 아는 親舊처럼 보였다. 女子아이는, 두툼한 겨울 점퍼를 걸쳤지만 치마는 아주 짧았다. 바람이 치마를 흔들곤 했다.

    女子는 스스럼없이 포즈를 取했다. 그러면 男子가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女子는 겨울 점퍼의 지퍼를 다 내리고 팔을 활짝 펴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 걸음 앞으로 가서 콘크리트 壁에 기대면서 몸을 조금 비틀었다. 男子는 그女의 周邊을 돌면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女子는 몸은 그대로 둔 채 視線만 男子에게로 돌렸다. 女子는 포즈를 取할 줄 알았고 男子는 셔터를 눌러야 할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

    쇼핑몰 撮影 나왔나? 于先 그렇게 생각했다. 홍대 앞이며 西村이며 이곳 仙遊島公園度 온라인 衣類 쇼핑몰의 有名한 撮影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옷 가방이 따로 없었고 女子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男子의 카메라는 쇼핑몰에 올릴 寫眞을 찍을 程度로 近似한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바람 사이를 떠돌면서 그들은 記憶을 生産하고 있었다. 나는 記憶의 場所에서 벌어지는 記憶의 生産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둘은 戀人이었다.

    事實 흘러간 時間, 곧 過去에 對해 一貫된 單一 記憶은 存在하지 않는다. 다양하고 相異한 複數의 記憶이 存在한다. ‘옥희의 映畫’는 세 名의 主人公이 同一한 事件과 關係를 서로 다르게 記憶하는 映畫다. 세 사람 모두 아차산의 ‘잘생긴 나무’를 記憶하지만 서로 다르게 記憶한다. 記憶은 選擇的日 수밖에 없는데 누가 어떻게 記憶을 지우는지, 或은 記憶하는지 하는 問題가 남게 된다.

    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옛 淨水場 施設 기둥에 植物이 달라붙어 살다 추위에 말라붙었다.

    記憶은 記憶돼야 한다

    이 ‘忘却/記憶’은 社會的 次元에서 볼 때 하나의 重要한 싸움이 된다. 社會學者 정진성의 言及처럼 ‘누가, 어떤 것을, 어떻게, 왜 記憶(忘却)하는가’의 問題는 民族, 國家, 階級, 權力, 젠더 等을 둘러싼 政治的 葛藤과 맞물렸다. 社會的 記憶, 卽 集團 記憶은 個人的 記憶의 總合이나 但只 歷史的 證據의 集合이 아니며 社會的으로 配分 및 共有된 象徵的 이미지에 依해 媒介됨으로써 일정한 權力과 談論 作用, 多樣한 主體의 實踐 等과 같은 介入에 依해 社會的으로 再構成된다.

    大體로 社會的 次元에서의 記憶은 國家가 獨占한다. 國家의 特定 이데올로기와 談論, 權力關係 等이 특정한 形態의 記憶을 生産한다. 올림픽, 特히 그 開幕式 같은 巨大한 行使는 國家가 過去의 歷史와 記憶을 獨占的으로 解釋하고 强化하는 場이 된다.

    一例로 1964年 도쿄 올림픽은 ‘日本의 記憶 鬪爭’結果였다. 아테네 算定을 出發한 올림픽 聖火가 日本이 强制로 服屬하려고 한 오키나와에 到着하는 것으로 企劃한 點, 日本 列島를 여러 갈래로 巡廻한 聖火가 도쿄의 메이지 神宮에서 집化된 點, 올림픽 聖火의 最終 走者가 히로시마 被爆 2歲 少年이라는 點, 日王이 開幕을 宣言할 때 第2次 世界大戰 當時 軍國主義 軍歌를 多數 作曲한 考試키 유우지의 曲이 울려 퍼지게 한 點 等은 올림픽을 통해 日本이 ‘敗戰의 記憶’을 지우거나 全혀 다른 方向에서 새로 意味를 附與하고 强化하려는 高度의 象徵 政治였던 것이다.

    記憶을 둘러싼 이 같은 試圖와 冒險은 個人에게나 集團에 자주 벌어지는 鬪爭의 한 樣相이다. 記憶이 穩全하게 記憶되고 評價되지 않으면 어떤 剛한 힘에 依해 記憶이 亡失되거나 歪曲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記憶은 반드시 記憶돼야’ 한다.

    記憶은 過去의 時間을 凝結시킨다. 그러나 그렇게 凝結된 記憶은 過去를 가리키지 않고 未來를 보여준다. 重要한 것은 어떻게 記憶하느냐 하는 點이다. 그에 따라 未來의 무늬와 方向이 달라진다.

    2014年 韓國 社會가 치른 가장 커다란 悲劇이요 슬픔인 ‘4月 16日, 歲月號 慘事’에 對해 ‘記憶하라’고 서로들 다짐하는 것 또한 바로 이런 理由에서다. 제대로 記憶하고 이로써 무엇이 問題였는지 確認한다는 것은, 그 傷處를 통해 過去를 어루만지면서 同時에 未來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未來를 살아갈 것인가. 萬若 누가 이런 質問을 던진다면 그에 對한 解答은 未來에 對한 어떤 想像으로 可能한 게 아니라 過去의 記憶을 또렷하게 되새기는 過程에서 導出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社會 全體的인 次元에서나 個人의 次元에서나 同一하게 適用되는, 의식하는 主體만의 힘이다.

    누적된 시간 속에서 기억을 생산한다

    벤치 앞에 落葉이 쌓였다.

    仙遊島의 겨울나무

    仙遊島公園에는 옛 施設物만 있는 게 아니라 오래前부터 있어온 自然과 公園 造成 過程에서 덧대어진 自然도 더불어 있다. 나는 그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 차가운 벤치에 앉아서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나무, 헐벗은 겨울나무. 나무들은 제 잎을 다 떨어뜨렸지만 저 蒼白한 줄기 안에는 來年 봄의 잎들이 內裝돼 있다.

    ‘옥희의 映畫’에서 본, 그 마지막 場面의 ‘잘생긴 나무’가 생각났다. 더불어 기억나는 홍상수 監督의 또 하나의 映畫는 ‘海邊의 女人’이다. 김승우와 고현정, 김태우와 송선미가 出演한 映畫다. 조금은 쌀쌀한 海邊에서 벌어지는 男女들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통해 支離滅裂한 삶에 떨어진 隕石 같은 衝擊을 담았다.

    이 映畫 속에서 映畫監督으로 나오는 重來, 卽 김승우는 문숙(고현정)과 선희(송선미) 사이에서 썸을 타다가, 혼자서 海邊을 散策한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잔뜩 찌푸린 얼굴로 걷던 重來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선다. 그러곤 暫時 숨을 고른 後 천천히 걸어가서 갑자기 무릎을 꿇는다.

    나무 한 그루!

    차디찬 海邊에 서 있는 그저 그런 나무 한 그루 밑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는 얼굴까지 파묻고 운다. 울음을 抑制하면서 운다. 한참을 그렇게 운다. 잊을 수 없는 場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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