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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去의 經驗과 未來의 挑戰 사이에서|신동아

過去의 經驗과 未來의 挑戰 사이에서

  • 배승희 │法務法人 太一 辯護士

    入力 2014-12-23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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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修能이 끝나고 또다시 大學入試戰爭 시즌이 다가온다. 새해 고3이 되는 學生들은 이제 새로운 世上과의 接觸을 試圖하게 된다. 이番 修能이 쉬워 入試에 混亂을 겪는 學生이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나도 高3 時節 修能이 쉬워 몇 問題 失手를 하다보니 가고 싶은 大學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理科에서 文科로 바꿔가며 再修를 했지만, 이番에는 修能이 어렵게 나왔다. 그래서 받은 點數에 맞춰 當時 갈 수 있는 大學에 願書를 넣었다.

    그러나 그곳은 理科生과는 全혀 關係가 없어 보이는 法大. “民法은 곽서地” “아니야 요즘은 김형배野” 하는 同期들의 이야기에 어리둥절하며 새 學期 봄을 맞이한 記憶이 난다.

    當時 法大 하면 無條件 ‘司法試驗 合格’李 最優先이었다. 그때 나는 司法試驗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時節이었는데, 몇 해 지나고 나서야 司法試驗이란 것이 꽤나 어렵고 우리나라 最高의 試驗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親舊들 中 몇몇은 司法試驗에 合格하지 못해 只今도 挑戰하고 있고, 趁卽 司法試驗을 抛棄하고 會社에 就職한 親舊도 있다. 또 로스쿨을 卒業하고 一般 會社員으로 일하는 親舊, 로스쿨에 入學했지만 辯護士 試驗에 合格하지 못해 辯護士가 되지 못한 親舊, 公企業에 就業한 親舊 等 다양한 길을 걸어간다.

    事實 나는 司法試驗에 어떤 科目이 있는지도 몰랐다. 法大에 들어와서 거의 6年이나 지나고 나서야 本格的으로 試驗 準備를 始作했다. 재미있는 事實은 同期들 가운데 가장 먼저 合格했다는 것이다.



    나는 司法試驗 工夫를 本格的으로 始作하기 前까지 海外旅行 다니는 것을 좋아해 放學이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學期 中에도 틈틈이 돈을 모아 東南亞로 旅行을 다니곤 했다. 이른바 날라리 法大生이었던 것이다.

    2004年 즈음 처음 泰國을 旅行했는데, 그 後 泰國의 魅力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서 每年 여름이면 거의 빠짐없이 泰國에 놀러갔다(아직도 泰國甁에 걸려 한 해 한 番씩은 다녀온다). 泰國 旅行 中 많은 일이 있었는데 偶然히 말레이시아에서 泰國으로 旅行 온 英國人(콸라룸푸르에서 事業을 하고 있었다)을 만나 말레이시아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番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라리 法大生의 挑戰

    그래서 별다른 苦悶 없이 콸라룸푸르를 가보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 여기는 泰國보다 잘살고 우리나라보다 物價가 낮으며 깨끗하고 飮食도 맛있고 해서 이곳이 天國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꼭 한 番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러나 마냥 旅行客으로 살 수는 없는 터, 旅行 經費로 마련한 돈은 떨어져가는데 어떻게 할까 苦悶하다 어쩔 수 없이 歸國했다. 며칠을 苦悶한 끝에 親한 親舊를 꼬드겨 서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300萬 원씩을 投資해 말레이시아에서 留學院 事業을 해보기로 했다.

    當時 東南亞로 語學硏修를 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필리핀의 境遇도 英國을 가기 前에 暫時 들르는 程度로 東南亞에서의 語學硏修는 많이들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直接 學院 現況을 알아본 結果 이미 韓人 타운이 있을 程度로 韓國 僑民도 많고, 韓國人 留學生도 많았다. 또 말레이시아는 英國의 支配를 받았던 터라 英國 英語를 가르치고 있었다. 留學院 市場이 아예 없는 狀況은 아니었다. 그래서 韓國人을 對象으로 英語 學院과 宿泊施設을 묶어 紹介해주고 手數料를 받는 작은 事業을 始作해보기로 했다.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도전 사이에서

    修能을 契機로 高3 學生들은 새로운 삶의 選擇 岐路에 선다. 試圖는 經驗을 만들고, 그 經驗이 쌓여 自身이 생각했던 未來로 가는 것이다.

    홈페이지를 만들 줄 알았던 親舊는 韓國에서 事業을 紹介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콸라룸푸르行 飛行機에 몸을 실었다. 空港에 내렸을 때 마땅히 우리가 갈 곳은 없었다. 但只 가진 것이 있다면 젊음과 인터넷, 그것이 全部였다. 우리는 背囊旅行客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 싼 호텔을 찾아 짐을 풀고 準備를 한 後 本格的으로 營業을 始作했다.

    當時 나는 25歲(大學校 3學年 2學期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休學도 많이 해서 普通의 女學生과 달리 꽤나 오랜 期間 學校를 다녔다)였는데, ‘왜 海外까지 나가서 그런 일을 하느냐’ ‘會社에 就職이나 해라’ ‘媤집이나 가라’는 周邊의 걱정과 非難을 들었다.

    그래도 親舊와 나는 “우리가 只今 아니면 海外에 가서 살 機會가 없을지도 몰라, 젊을 때 한番 가보자, 딱 1年만 있어보자” 하는 마음을 먹고 말레이시아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냥, 始作해보기로 한 것이다. 結果는, 親舊는 빚이 늘었고, 나는 韓國에 돌아왔으며 빚을 갚기 위해 司法試驗 準備를 始作했다.

    하지만 철없는 그 時節의 그 經驗은 以後 내 삶의 밑거름이 됐다. 무슨 일이든 一旦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갖는 習慣을 들인 것도 어렵게나마 海外에서 살아보려고 한 經驗 때문일 것이다.

    늦은 始作이란 없다

    經驗의 始作은 생각이고, 그 생각을 實踐하는 것이 經驗이 된다. 그런데 어떠한 試圖든 恒常 두려움과 같이 온다. 그래서 아예 始作을 못하거나 새로운 經驗 앞에서 躊躇하게 된다. 새로운 世上과의 接觸은 언제나 두려운 法이다. 그래도 그러한 試圖가 모여 새로운 經驗을 만들고, 그 經驗이 쌓여 내가 생각했던 未來로 가는 것이다.

    나도 이 經驗 德에 海外에서 살려면 韓國에서 職場이 있어야 하고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司法試驗 工夫를 끈氣 있게 할 수 있었다.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도전 사이에서
    배승희

    1982年生

    성균관대 法大 卒業, 2009年 司法試驗 合格

    法務法人 太一 辯護士, 채널A ‘新聞이야기 돌直球쇼’ 패널

    著書 : ‘當身도 性犯罪者가 될 수 있다!’ ‘보이스피싱’


    周邊의 視線이나 社會的 位置 때문에 躊躇하거나 經濟的 與件이 되지 않아 試圖조차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失敗가 두려워서 하지 못한 經驗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經驗조차 하지 못하고 남은 人生을 살아가는 것은 더 아쉬운 時間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느 境遇든 늦은 始作이란 없는 것 같다.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一旦 始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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