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偉大한 精神이 태어나는 瞬間|新東亞

偉大한 精神이 태어나는 瞬間

  • 정여울 │文學評論家 suburbs@daum.net

    入力 2014-12-19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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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정신이 태어나는 순간

    精神分析이란 무엇인가<br>카를 구스타프 융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내가 追求하는 것은 實在하는 것도 아니고, 實在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無意識을 理解하고 싶다.

    人間이라는 種族이 지닌 本能의 미스터리 말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나는 恒常 絨으로 돌아온다. 心理學 自體는 魅力的이지만 心理學에 依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心理’라는 틀에 갇히기 싫어 다른 分野로 멀리 멀리 떠나갔다가도, ‘또 한 해가 가는구나’하는 생각 때문에 쓸쓸해지는 年末이 되면 나도 모르게 絨으로 돌아와 있는 나 自身을 發見한다. 心理學이라는 單語에 갖는 拒否感은 이토록 複雜하고 不可解한 마음을 科學으로 解剖한다는 것이 不可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내게 科學의 이미지는 아직도 조금은 차갑고 무섭고 攻擊的인 그 무엇이다. 科學은 所重하지만 科學으로 모든 것을 解決하려는 사람의 獨斷은 무섭다. 내 마음이라는 뜨거운 對象을 科學의 차가운 칼날에 베이기 싫은 마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내가 다른 心理學者보다 융을 特別히 여기는 理由는 그가 恒常 文學과 哲學과 神話를 이야기하며 心理學을 더 커다란 人文學의 張으로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는 차가운 心理學을 뜨거운 心理學으로, 科學의 領域에 갇혀 있던 心理學을 人文學으로 擴張한 사람이다.

    뜨거운 心理學

    心理學이 뭔가 커다란 社會的 影響力을 行使하며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의 苦悶 위에 대단한 存在로 君臨하는 現實이 썩 愉快하지는 않다. 우리가 心理學을 必要로 하는 理由는 但只 當場의 心的 苦痛을 解消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주 작은 部分에 不過하다. 내가 꿈꾸는 心理學은 人間의 마음을 探究할 수 있는 最尖端 顯微鏡으로서의 科學이 아니라, 아무리 探査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宇宙처럼 不可解한 人間의 마음에 對한 敬意를 담은 그 무엇이다.

    융의 마스터플랜은 但只 人間의 苦痛을 治癒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人類의 集團無意識을 神話라는 프리즘을 통해 解剖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傷處를 治癒하는 것이 全部가 아니라, 그를 통해 ‘人類의 無意識’을 探究하는 것이 그의 커다란 그림이었다. 事實 나는 ‘心理學’이 좋은 것이 아니라 ‘人間의 마음’을 探究하는 몸짓이 좋다. 그러려면 恒常 絨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이 冊은 카를 구스타프 융이 美國 포드햄 大學에서 한 精神分析 講義錄이다. 그가 이 講義를 맡았던 1912年은 心理學의 權威 自體가 크게 疑心을 받던 때였다. 게다가 융 自身도 스스로의 作業에 對해 끊임없이 質問을 던지던 時期였다. 그는 아직까지 精神分析의 發展 段階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講義 初盤부터 認定한다. 그는 精神分析의 眞正한 創始者인 프로이트에 對한 커다란 尊敬心을 품었지만 그의 學說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人間의 모든 리비도를 結局에는 性的인 것으로 還元해버리는 프로이트의 一元論을 넘어서기 위해 융은 끊임없이 奮鬪했다.

    이 冊의 草飯部에는 젊은 時節의 융이 프로이트 理論을 넘어서기 위해 프로이트 理論의 盲點을 하나하나 反駁하는 內容이 나와 ‘카를 구스타프 융다운 莊嚴함과 品格’을 期待했던 讀者는 조금 失望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융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山이었다. 프로이트를 넘어선다는 것은 但只 프로이트는 틀리고 융 自身은 옳다는 式의 二分法에 몸을 담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業績을 最大限 尊重하면서 프로이트 思想의 盲點을 공정하게 파헤치고, 마침내 프로이트와 對抗하면서 융 自身이 ‘思想의 自己다움’을, 自己만의 特異性을 꽃피워내는 過程이다. 우리는 이 冊을 통해 ‘카를 구스타프 융의 史上’이라는 꽃봉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올라 마침내 滿開하는 過程의 아름다움을 目擊할 수 있다.



    여기서 리비도라는 用語에서 ‘成績’ 意味를 빼버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프로이트가 ‘性慾에 關한 3篇의 에세이’에서 이 用語에 附與한 成績 正義를 확 없애버리고 싶은 誘惑을 느낀다. (…) 初期 幼兒期의 아이도 熾烈하게 살고 있다. 苦痛도 받고 快樂을 즐기기도 한다. 問題는 이것이다. 이 아이의 苦痛과 즐거움이 性慾 리비도 때문인가?

    內面의 分裂이 始作되는 瞬間

    이 冊이 眞情으로 흥미로워지는 瞬間은 융이 自身의 患者들이나 實際 事例들을 說明하기 始作하는 部分이다. 人間이 自身의 缺點을 認定하지 않으려는 데서 ‘內面의 分裂’이 始作된다는 것이다. 精神疾患이 始作되는 最初의 瞬間을 프로이트는 幼兒期의 成跡 트라우마에서 찾곤 하지만, 융은 于先 各自가 處한 現在의 欲望과 行動에서 찾고자 한다. 人間의 自己 分裂이 始作되는 瞬間은 어떤 瞬間일까.

    예컨대 平生 알프스를 登攀하는 것이 所願이었던 사람이 自身의 能力 不足을 깨닫고 抛棄하는 瞬間. 그는 岐路에 直面한다. 그는 正直하게 自身의 能力과 勇氣가 不足한 것을 認定함으로써 다음 行路를 準備할 수 있다. 하지만 ‘내 탓이 아니라 惡天候 때문이야’ ‘同僚들이 도와주지 않아서야’ ‘내 周邊 狀況이 나를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핑계를 대는 方法도 있다.

    率直하게 自身의 缺乏을 認定하는 사람은 언젠가 알프스에도 오를 수 있고, 自身에게 맞는 다음 行步를 準備할 수도 있다. 하지만 自身의 不足함을 認定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프스에 오르는 사람들’을 이솝寓話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의 逸話처럼 ‘巨大한 新葡萄’로 만들어버린다. 끝없이 ‘外部 狀況’ 탓으로 돌리며 自身의 眞正한 問題로부터 逃避하기 始作한다.

    이것이 精神分析의 重要한 話頭인 ‘退行’이다. 事實 自身의 缺點을 認定하지 못하고 오히려 애꿎은 남을 탓하거나 嫉妬하는 것은 幼兒的인 行動이라는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알고 있지만, 그는 一旦 ‘나의 勇氣가 不足하다’는 衝擊的인 事實로부터 逃避하기 위해 스스로를 欺瞞한다는 것이다.

    이런 行動을 통해 잠깐 ‘自身이 작아지는 苦痛’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實은 自身의 眞짜 自我와 맞서게 된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제 두 가지 自我가 싹트고 分裂하기 始作한다. 마음 깊은 곳에는 狀況을 正確히 理解하는 本來의 自我가 있고, 다른 한便으로는 ‘나는 勇氣 있는 사람이지만 狀況이 좋지 않아 只今 山을 오를 수 없다’는 式으로 스스로를 欺瞞하는 또 하나의 自我가 誕生한다. 융은 말한다. 이런 自己欺瞞과 自己矛盾의 結果로 리비도가 둘로 쪼개져, 各各의 리비도가 서로 對立한다고. 남에게 보이는 自我와 本來의 自我가 不調和를 이루는 狀態, 그것이 바로 內面의 葛藤으로 번져나간다.

    더 나쁜 것은 리비도가 이런 쓸모없는 戰鬪에 매달리면서, 그는 어떠한 冒險도 할 수 없게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가 끊임없이 自身을 속이는 限, 山을 오르려는 元來의 所望을 決코 實現할 수 없게 되고, 다른 모든 일에 對해서도 漸漸 自信感과 意欲을 잃게 될 것이다. 勇敢하게 現實과 맞서고, ‘아직 내가 能力과 勇氣가 不足함’을 認定하고, ‘다음 挑戰’을 向해 熱心히 準備하는 健康한 리비도의 길을 버린 채, 자꾸만 애꿎은 外部 環境을 탓하며 幼兒的인 反應을 보이는 것. 이것이 바로 心理學에서 말하는 ‘退行’이다.

    그의 리비도는 克服할 수 없는 障礙로부터 撤收하고 眞짜 行動을 幼兒的 幻想으로 바꿔놓는다. 융은 神經症 患者 中 많은 사람이 바로 이런 ‘退行’을 겪음을 發見한다. 卽 大部分의 精神 疾患이 發生하는 最初의 原因 中 하나는 ‘自身에게 正直하지 못한 또 하나의 自我가 誕生’함으로써 우리는 本來의 自我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退行과 抵抗

    退行의 가장 否定的인 效果는 제대로 된 挑戰, 새로운 삶을 向한 冒險을 妨害한다는 것이다. 退行을 經驗한 患者는 自身의 記憶을 차근차근 說明하거나, 冷徹하게 自身의 記憶을 再生하는 데 剛한 ‘抵抗’을 보인다. 이 抵抗이 治療를 어렵게 하는 原因이 된다. 하지만 逆說的으로 患者의 이 强한 ‘抵抗’을 통해서만 醫師는 患者의 트라우마에 接近할 수 있다. 自身의 傷處를 제대로 直視할 수 있기 前까지, 患者들은 트라우마의 原因이 自身의 ‘正直하지 못함’과 ‘스스로의 게으름’에 있다는 것을 認定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융은 이 ‘退行’이나 ‘抵抗’李 神經症 患者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에 注目한다.

    융의 冊을 읽는다는 것은 뛰어난 醫師에게 우리 精神의 主導權을 맡겨버리는 受動的인 體驗이 아니라, ‘내 無意識의 眞正한 發見者와 治癒者’는 바로 나 自身임을 깨닫기까지의 指摘 同伴者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自己 運命을 스스로 徹底히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匠人이다. 내 運命이라는 作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는 自己 自身의 無意識과 意識을 얼마나 제대로 統合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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