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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年 ‘主從關係’에서 ‘水平關係’로”|新東亞

“2002年 ‘主從關係’에서 ‘水平關係’로”

朴槿惠-정윤회 미스터리

  • 허만섭 記者 | mshue@donga.com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取材本部長 song@yeongnam.com

    入力 2014-12-16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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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민이 정윤회에게 朴槿惠 付託했다”
    • “10餘 年 前 鄭이 털어놔”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한 新聞社가 ‘VIP側近(정윤회) 動向’이라는 靑瓦臺 文件을 暴露했다. 많은 사람은 文件 內容이 事實일 것이라고 믿는 雰圍氣다. 反面 大統領과 靑瓦臺는 “찌라시”라고 强力히 主張한다. 檢察 搜査는 보나마나일 거라는 이야기가 많다.

    國政壟斷과 文件 流出이라는 투 트랙으로 많은 뉴스가 쏟아진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關心은 이미 그 段階를 넘어선 듯하다. 三三五五 만난 자리에선 “文件 題目처럼 정윤회가 朴槿惠의 側近? 둘은 正말 무슨 關係일까?” 이런 궁금症을 交換한다.

    靑瓦臺 文件 作成者는 정윤회 氏가 ‘大統領祕書室長 逐出’을 指令한 ‘밤의 秘線室長’이라고 主張한다. 文件 作成者의 相關은 信憑性이 60%를 넘는다고 했다. 鄭氏 夫婦 側 注文에 따르지 않은 文體部 國·課長을 大統領이 콕 찍어 問責했다는 趣旨로 當時 主務 長官은 證言한다. 大統領의 男동생은 鄭氏 側에게 미행당했다고 한다. 鄭氏는 이른바 ‘靑瓦臺 門고리 權力 3人坊’과 全혀 接觸한 일이 없다고 했다가 通話 事實이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朴 大統領은 鄭氏를 “이미 떠난 사람”이라고 했으나 鄭氏는 “2年 前 大統領으로부터 監査 電話를 받았다”고 버젓이 公開한다.

    하지만 檢察 搜査內容에 따르면 鄭氏의 國政介入 疑惑은 事實이라고 볼 만한 證據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朴 大統領과의 關係에 對한 世間의 疑惑도 根據없는 헛所聞일 可能性을 排除할 수 없다. 이를 報道한 산케이신문 記者는 起訴가 돼 裁判을 받는다. 公訴狀에 따르면 이 記事는 虛僞일 可能性이 크다. 檢事가 搜査를 제대로 했고, 이것이 眞實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過去 親分 關係와는 別個로 말이다.

    ‘신동아’는 朴 大統領과 鄭氏, 두 사람의 關係를 集中 照明했다. 박근혜와 정윤회, 두 人物을 論할 때 최태민과 최순실을 빼놓을 수 없다. 與圈 人士 A氏는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모르지만 十字架를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세로軸이 최태민-정윤회-朴槿惠이고 가로軸이 정윤회-최순실-朴槿惠라는 것이다. 前者는 丈人과 사위와 大統領의 特殊關係를, 後者는 男便과 아내와 大統領의 特殊關係를 나타낸다고 한다.



    “‘韓國의 라스푸틴’李 朴槿惠 支配”

    고(故) 최태민 牧師의 딸이 최순실 氏다. 崔氏의 男便이 정윤회 氏였다. 이 夫婦는 2014年 初 離婚했다. 朴 大統領은 이 세 사람 모두와 特別한 關係를 맺었다. 최태민은 社會運動 同伴者였고, 최순실은 말벗이었다 하고, 정윤회는 祕書였다. A氏는 “朴 大統領이 세 名을 감싸 안는 對應方式이 數十 年째 똑같다”고 말한다.

    먼저 최태민. 朴正熙 前 大統領은 1977年 崔 牧師를 親鞠(親鞫)했다. ‘신동아’가 入手한 中央情報部 ‘최태민 報告書’는 崔 牧師에 對해 “1965年 有價證券 僞造 嫌疑로 立件돼 4年 逃避生活, 71年 佛敎·基督敎·天主敎를 複合한 ‘靈魂合一法’ 創業, 74年 ‘太子마마’ 自稱”이라고 썼다. 또 報告書는 橫領·詐欺·辯護士法 違反·利權 介入 等 44件의 疑惑을 列擧했다.

    維新時節 大統領祕書室長을 지낸 김계원·김정렴, 5共和國 實勢 이학봉度 “問題 많은 人物”이라고 했다. 崔 牧師는 1975年 꿈에 陸英修 女史를 봤다며 박근혜에게 接近해 歡心을 산 뒤 새마음奉仕團을 함께 이끈 것으로 報告書에 적혀 있다. 그러나 김계원의 證言에 따르면, 當時 20代의 朴槿惠는 “아주 선량한 사람인데 中央情報部가 謀略한다”고 줄곧 崔 牧師를 斗頓했다.

    朴 大統領이 育英財團 理事長日 때인 1986年 3月 최순실 氏는 이 財團 附設 幼稚園 院長이 됐다. 1987年과 1990年 育英財團에선 “최태민의 專橫을 反對한다”는 內部 反撥이 터졌다. 1990年 8月 男동생 박지만과 女同生 박근령은 當時 노태우 大統領에게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언니를 救해달라”는 歎願書를 보냈다.

    2007年 大選 當時 알렉산더 버시바우 駐韓 美國大使가 本國에 보낸 박근혜 候補 關聯 外交專門은 以後 ‘위키리크스’에 해킹됐다. 버시바우 大使는 이 電文에 “‘韓國의 라스푸틴(制定 러시아 때 皇室을 壟斷한 괴승)’인 최태민이 박근혜를 支配해왔고 그 結果 최태민의 子女들이 엄청난 富를 蓄積했다’는 所聞이 蔓延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최태민 一家의 育英財團 專橫 論難에 對해 2007年 박근혜 候補는 한나라당 大選候補 競選 聽聞會에서 “崔氏는 財團 일에 關與하지 않았다. 純全히 誤解다”라며 積極 保護했다.

    한결같은 對應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고(故) 최태민 牧師

    최순실 氏의 前 男便 정윤회 氏의 國政壟斷 內容을 담은 靑瓦臺 文件이 報道되자 靑瓦臺 關係者들은 新聞社 記者들을 告訴했다. 檢察이 搜査에 나선 가운데 朴 大統領은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얘기들…”이라며 文件 內容을 虛僞事實로 斷定했다. 大統領이 檢察 搜査에 가이드라인을 提示한다는 論難까지 甘受하면서 鄭氏 쪽을 편든 것이다. A氏는 “過去 映像을 다시 돌려 보는 느낌이 든다. 朴 大統領의 對應은 큰 영애 때나 2007年 때나 只今이나 初志一貫 같다. 崔氏 一家에 對한 ‘無條件的 사랑’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勿論 崔氏 一家가 抑鬱하게 非難을 받는다는 視角도 적지 않다. 崔 牧師는 大韓예수敎長老會 綜合總會에서 牧師 按手를 받은 ‘正式 牧師’라고 한다. 그는 1990年 “나의 ‘陸英修 現夢’ 이야기가 따님에게 먹히겠는가”라고 中庭 報告書를 反駁했다. 정윤회 氏는 “최태민의 嫌疑가 김재규의 造作이었다”는 최필립 全 淨水場學會 理事長의 ‘신동아’ 인터뷰 記事를 매우 좋아한다. 최순실 氏는 育英財團이나 朴 大統領 德에 財産을 불린 게 아니라고 反駁한다.

    정윤회 氏는 1974年 보인상고를 卒業한 뒤 1981年 大韓航空 保安乘務員으로 入社했다. 聲明 不詳의 大學(本人이 未公開)을 나와 1993年 경희대에서 觀光經營學 碩士學位를 받았다. 그는 1998年 朴 大統領의 政界 入門 選擧를 도와 議員에 당선시켰고 祕書室長이 됐다. 사람들은 1995年 結婚한 그의 夫人 최순실 氏와 박근혜 議員이 잘 아는 사이라 그가 夫人을 媒介로 朴 議員 쪽에서 勤務하게 된 것으로 推定한다.

    그러나 鄭氏는 結婚 以前부터 別途로 朴 大統領과 因緣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최태민 牧師의 祕書 兼 運轉技士 노릇도 했다는 風聞이 있다. 몇몇 사람은 그가 1990年代 ‘박근혜 育英財團 理事長 祕書室長’ 名銜을 갖고 다녔다고 證言했다. 이 證言은 說得力이 있다. 鄭氏가 박근혜 議員室에서 ‘祕書室長’이라는 職銜을 쓴 것도 이 延長線이었다고 한다. 朴 大統領도 2007年 ‘월간조선’ 書面 인터뷰에서 鄭氏에 對해 “育英財團 때부터 일을 도왔다”고 밝혔다.

    이와 關聯해 中央日刊紙 政治部 記者 出身의 某 大企業 任員 B氏는 鄭氏가 朴 大統領과 因緣을 맺게 된 契機를 證言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鄭氏는 최태민 牧師의 付託에 依해 朴 大統領을 돕기 始作했다는 것이다. 崔 牧師는 鄭氏와 최순실 氏가 結婚하기 1年 前인 1994年 世上을 떠났다. B氏는 “저, 정윤회 잘 알아요”라면서 2000年代 初 鄭氏와 朴 大統領의 關係, 鄭氏와 現 門고리 3人放의 關係가 어떠했는지 이야기했다. 다음은 B氏와의 一問一答이다.

    “朴 電話 늘 정윤회가 받아”

    ▼ 정윤회 氏랑 어떻게 만난 거죠?

    “제가 中央日刊紙 記者로 한나라당 出入할 때 박근혜 議員 마크맨이었어요. 그때 정윤회 氏가 박근혜 議員 祕書室長이었어요. 脫黨해서 한국미래연합 創黨하기 前에요.”

    ▼ 初選議員日 때?

    “네. 제가 박근혜 議員의 携帶電話로 連絡하잖아요? 그러면 늘 鄭 室長이 받아요. 제가 ‘○○○ 氣者니다. 朴 議員과 이러이러한 理由로 通話 좀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겠죠? 그러면 鄭 室長은 ‘아, 只今 行事 中이신데 나중에 電話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죠.”

    ▼ 鄭 室長이 朴 大統領의 ‘援助 門고리 權力’이었던 셈이네요.

    “‘公主’라 콜백 안 오겠거니 했는데 제겐 해왔어요. ‘저, 朴槿惠입니다’ 이런 式으로. ‘이회창 大勢論’ 時節이었어요. 先輩 記者가 ‘이회창 까는 內容으로 박근혜 코멘트 받아오라’고 시켜서 電話한 건데, 意外로 取材가 잘 됐어요. 以後 鄭 室長을 議員室에서 자주 봤고 食事도 몇 次例 했고….”

    ▼ 어떻던가요.

    “엊그제 檢察 出頭할 때 모습 그대로.”

    좀 異常하게 나온 ‘中央日報’ 인터뷰 寫眞과 比較하면 檢察廳舍에 出頭한 鄭氏의 實物은 훨씬 세련돼 보였다. 意圖的으로 이미지를 가꾼 듯했다. 그는 머리를 染色했고 뿔테 眼鏡을 着用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浮刻했다. 날씬한 體型을 强調하는 洋服을 입었다. 타고 온 求刑 에쿠스 乘用車는 ‘信賴感’과 同時에 ‘튀지 않는 느낌’을 줬다. 全體的으로 ‘大學 學長’ 같은 印象을 풍겼다.

    ▼ 그분, 自己管理를 잘한 것 같네요.

    “잘한 거죠. 그런데 市中에서 떠도는, ‘박근혜의 戀人’이니, 그런 건 捏造라고 생각해요.”

    ▼ 왜요?

    “정윤회 氏는 主從關係로 朴 大統領을 對했어요. 當時 그는 私席에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최태민 牧師가 自己에게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付託했다고. 鄭氏가 나중에 崔 牧師의 사위가 되잖아요. 그前에 崔 牧師한테서 도와주라는 말을, 도와줘야 한다는 그런 指示 같은 걸 받았대요.”

    ▼ 崔 牧師의 命令이 정윤회 씨를 朴 大統領과 宿命的으로 連結했다?

    “내가 받은 느낌은…. ‘박근혜를 도와주라’는, 分明한 그걸 받고 왔기 때문에 徹底한 主從關係이고….”

    B氏의 말에 따르면, 崔 牧師는 自己 代身 朴 大統領을 獻身的으로 도와줄 사람으로 鄭氏를 指目한 것으로 보인다.

    ▼ 朴 大統領도 鄭氏가 崔 牧師로부터 그런 靈的 啓示 乃至 命令 비슷한 걸 받아 自己를 도우러 왔으니 鄭氏를 누구보다 信賴한 거라는 얘깁니까.

    “丁氏는 正말 몸操心을 했어요. 어디 나대고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림자 같았어요. 있는 듯 없는 듯. 當時엔 軍人 出身인줄 알았죠. 워낙 깍듯해서.”

    ▼ 主從關係라는 게, 例를 들면….

    “저희 政治部 記者 네댓 名이랑 박근혜 議員이랑 食事할 때면 늘 정윤회 室長이 朴 議員을 모셔 와요. 그리고 鄭 室長은 房 밖에서 待機하고.”

    “이 사람, 眞짜 수하네”

    ▼ 食事 자리에 同席하지 않고?

    “(손을 저으며) 아이…. 다른 議員室에선 補佐官이 同席하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는 絶對 그런 일 없어요. 朴 議員이 나가면 딱 앞에 있어요. 바로 朴 議員 챙기고. ‘야, 이 사람 眞짜 수하네’ 이런 느낌?”

    司正機關 關係者 C氏는 “祕書室長 정윤회는 法的으론 ‘無報酬 立法補助員’이었다. 鄭氏가 直接 只今의 靑瓦臺 門고리 3人坊을 박근혜 議員室 補佐官·祕書官으로 採用해 이들을 거느렸지만 鄭氏 本人은 月給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C氏의 말이다.

    “한창 旺盛하게 일할 나이에 6~7年(1998~2004) 동안이나 ‘無報酬 풀타임’으로 박근혜 한 사람을 섬긴다는 게 普通 마음가짐으로 되는 일이 아니죠. 政治판에서 이런 事例를 본 적이 없어요. 2004年 祕書室長職을 그만둔 것도 ‘최태민 사위’라는 自身의 타이틀이 朴 大統領 大選 街道에 妨害가 될까봐 그런 거죠. 隱遁한 뒤에도 繼續 朴 大統領을 몰래 도왔을 거예요. 안 그랬을 理由가 없잖아요. 그래서 박근혜와 정윤회, 두 사람의 關係는 不可思議하게 느껴지는 거죠.”

    ‘최태민의 말씀’은 이 不可思議를 어느 程度 풀어줄 解答이 될 듯했다. 최태민-정윤회-朴槿惠 세 사람을 이어주는 脈絡에 對한 ‘內在的 接近’이 있어야 現象을 穩全하게 理解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朴 大統領은 2007年 競選 때 “大統領이 돼도 崔 牧師 家族과 繼續 關係를 가질 것인가”라는 質問에 이렇게 答했다.

    “정윤회 祕書는 能力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고 實務 도움을 받았다. 法的으로 罪를 지은 것도 아니고 實力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는 것이다.”

    朴 大統領은 當時 言論 인터뷰에서도 “그(정윤회 氏)는 성실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과의 因緣을 많이 맺는 便도 아니지만 여간해서 因緣을 끊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鄭氏에 對한 朴 大統領의 信賴가 어느 程度 깊은지 充分히 읽힌다. 또한 周邊의 視線만 아니면 얼마든지 드러내놓고 사람을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다른 한便으로 朴 大統領이 鄭氏와 繼續 接觸해온 것 같은 뉘앙스도 感知된다. 數年間 完全히 因緣을 끊은 사람에겐 하기 힘든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B氏와의 對話 內容이다.

    ▼ 그러나 적지 않은 議員이 當時 ‘박근혜 議員과 通話가 잘 안 된다, 鄭 室長이 다 자른다’고 鄭 室長을 非難했다던데….

    “當時 한나라당 出入記者들도 다들 ‘朴槿惠랑은 通話가 안 된다’고 투덜거렸죠. 그러나 저는 잘 됐어요.”

    ▼ 鄭 室長 밑에 있던 이재만 補佐官과 안봉근·정호성 祕書官이 只今 靑瓦臺 門고리 權力 3人坊으로 불리는데.

    “政治部 記者들이 겉멋이 좀 들었잖아요. 저는 박근혜 議員 쪽과 連絡할 일이 있으면 鄭 室長 하고만 相對했죠. 그 밑에 保佐陣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정호성 祕書官은 기억나요. 딱 봐도 또릿또릿했거든요. ‘이 親舊 똑똑한 親舊네’ ‘참 有能하다’ 싶은. 이재만·안봉근, 이쪽은 특별한 記憶이 없어요.”

    한나라당 黨職者 出身인 與圈 人士 D氏는 “정윤회와 門고리 3人 間 位階秩序는 어마어마했다. 鄭氏가 軍紀를 確實히 잡더라”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D氏의 說明이다.

    “門고리 3人 中 이재만 氏가 補佐官으로 序列이 第一 높았죠. 박근혜 議員이 2002年 한나라당에 復黨한 뒤로 鄭 室長과 이 補佐官 두 사람이 朴 議員을 遂行했어요. 朴 議員이 假令 이회창 總裁 執務室에 들어가면 鄭 室長은 附屬室에 앉아서 保佐陣이랑 수다를 떨어요. 이재만은 門밖 複道에 待機하게 해요. 空間으로써 朴槿惠, 本人(정윤회), 門고리 3者 間에 隔差를 두는 거죠.”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최순실 氏 名義의 서울 江南區 新沙洞 빌딩.



    꼬리 잡힌 ‘정윤회 江南팀’?

    D氏는 어느 때부터인가 朴 議員과 鄭 室長이 主從關係에서 水平的 關係로 移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例를 들어, 朴 議員이 2002年 脫黨해 한국미래연합 代表가 되고 鄭 室長이 代表 祕書室長을 할 때부터 鄭 室長은 朴 議員 옆자리에 앉아 外部 人士들과 함께 食事를 하기 始作했다고 한다. D氏는 “朴 議員이 執務室 안에 있는데 鄭 室長이 노크도 없이 門을 열고 들어간다든지, 鄭 室長이 國會 內 知人들과 談笑하면서 ‘朴 議員과 鄭 室長이 거의 水平的 關係구나’라는 印象을 줄 程度의 表現을 스스럼없이 쓴다든지…”라고 說明했다.

    2004年 以前 鄭氏를 자주 봤다는 한나라당 黨職者 出身 E氏는 “丁氏는 門고리 權力의 發生 原理를 體得했고 이를 保佐陣에게 물려준 것 같다. 이들은 公開 活動이 어려운 鄭氏와 朴 議員을 이어주는 구실을 해왔을 可能性도 있다”고 했다. E氏는 “只今도 이러고 있느냐가 모든 問題의 核心 아니겠냐”고 했다.

    朴 大統領과 3人坊은 鄭氏와의 接觸을 强하게 否認한다. 그러나 反對 情況을 言及한 證言도 적지 않다. 朴 大統領이 理事長으로 있던 한 團體의 關係者는 記者에게 “2000年代 中盤 朴 大統領에게 ‘최태민 사위 정윤회 氏와의 絶緣’을 建議했다가 關係가 疏遠해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진우 創造經濟硏究院 副院長은 ‘브레이크뉴스’라는 인터넷 媒體를 運營하다 2007年 박근혜 競選 캠프에서 온라인 弘報 參謀로 活動했다. 이 副院長은 2008年頃 인터넷에 “박근혜 候補의 議員室 保佐陣이 삼성동을 오가며 정윤회 氏를 만난 뒤 캠프 내 公論이 180度 修正되는 것을 目擊하며 三成洞팀의 威力을 實感했다”고 썼다. 그는 얼마 뒤 이 글을 削除했다. 그와의 一問一答이다.

    ▼ 정윤회 氏나 該當 保佐陣이 그 글에 問題를 提起했나요.

    “全혀. 갓 마흔이 된 時節, 血氣가 남아 있을 때 썼어요. 그러나 같이 苦生한 同僚들이고 戰友들이기도 해서 글을 내렸어요. 選擧 하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건데 하나하나 따져 잘 했네, 못 했네 그럴 狀況은 아니라고 봤죠.”

    ▼ 글에서 事實을 捏造한 건 아니라는 건가요.

    “選擧 敗北는 共同 責任이죠. 제가 그 글을 쓸 資格이 없죠. 캠프에 있었던 期間도 짧았고.”

    2007年 한나라당 大選候補 競選 때 現職 議員으로 李明博 캠프에 있었던 F 前 議員은 “정윤회 氏가 運營하는 박근혜 候補의 祕密 大選 캠프가 신사동 ‘韓國文化財團’이다. 朴 候補의 主要 公約과 各種 政治 懸案이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主張했다. 朴 候補는 이 財團에 國會 職員 2名과 淨水場學會에서 給與를 받는 職員 2名 等 5名을 常住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정윤회 江南팀(新沙洞팀·論峴洞팀·三成洞팀) 버전’의 一部가 露出된 것으로 비쳤다.

    政治權 人士 G氏는 “이상렬 前 EG建設 會長은 鄭氏와 함께 朴 大統領이 가장 信賴하는 사람으로 꼽히는데 두 사람은 가끔 술을 마셨다. 이들은 숨은 實勢들이 드나든 新沙洞팀과 關聯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F 前 議員은 2007年 “‘박근혜 候補의 執權은 최태민 一族의 執權이 아니냐’는 憂慮가 나온다”고도 했다.

    F 前 議員은 最近 記者에게 “캠프 내 法務팀과 네거티브對應팀이 檢證하고 걸러준 情報들을 갖고 이야기했다”고 說明했다. 이어 “‘정윤회 氏 周邊에 江南팀? 거기서 박근혜 候補와 關聯된 重要한 決定을 하는 것 아니냐’ ‘朴 캠프 내 議員들조차 都大體 어디서 決定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도 傳해 들었다”고 했다. F 前 議員은 “정윤회 氏 件을 暴露한 뒤 告訴를 當하거나 制裁를 받은 事實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윤회 氏는 2014年 7月 言論 인터뷰에서 “2007年 祕書室長을 그만둔 以來 7年間 野人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鄭氏가 ‘2004年’을 ‘2007年’으로 錯覺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뒤이어 “7年 前 나는 ‘잘린 것’이다”라며 ‘2007年’임을 再確認했다. 그의 이런 述懷를 보면, 그가 對外的으로 朴 大統領 곁을 完全히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2007年에도 實際로 祕書室長 노릇을 한 것으로 推定된다.

    하인리히의 法則

    朴 大統領이 “이미 떠난 사람”이라고 한 것과 달리, 鄭氏는 言論 인터뷰에서 “2012年 大選 直後 朴 大統領 當選人으로부터 ‘監査 電話’를 받았다”고 했다. 脈絡으로 보면 ‘大統領에 될 수 있게 도와준 功勞’에 對한 監査로 읽힌다. 當時 當選人에게서 監査 電話를 받은 이는 極少數. 鄭氏의 功勞가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鄭氏가 2012年 大選 때도 陰地에서 朴 大統領을 積極 도운 것으로 비칠 수 있다.

    結局 모든 問題는 就任 後 狀況으로 歸結된다. 鄭氏는 인터뷰에서 “門고리 3人과 接觸이 없다. 人間的 正義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連絡하는 게 道理인데 섭섭하다”고 했다. 門고리 3人 中 한 名인 이재만 總務祕書官도 國會에서 “2003年엔가, 2004年엔가 鄭氏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조응천 前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의 證言으로 鄭氏가 門고리 3人 中 이재만 總務祕書官과 두 次例, 안봉근 第2附屬祕書官과 한 次例 通話한 事實이 드러났다. 박지만 氏 尾行 件으로 鄭氏가 趙應天 當時 祕書官에게 電話했으나 조 祕書官이 받지 않자 이 祕書官이 조 祕書官에게 電話해 “정윤회 氏 電話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靑瓦臺의 ‘VIP側近(정윤회) 動向’ 文件이 暴露된 後 鄭氏는 이·安 祕書官에게 電話해 “이제는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그쪽 3人坊도 이제 3人坊이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했다고 한다.

    與黨 黨職者 出身 D氏는 “鄭氏가 趙應天 祕書官의 電話番號, 調査擔當者가 박관천 行政官이라는 事實, 朴 行政官의 電話番號를 靑瓦臺 側과 連絡하지 않고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겠나. ‘하인리히의 法則’이 適用될 事案 같다”고 말했다. 하인리히 法則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300個의 事件이 있어야 비로소 1個의 事件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또 D氏는 “公務員 專擔 靑瓦臺 祕書官에게 民間人의 電話를 받으라고 한 건 不當한 要求다. 鄭氏가 그런 不當한 要求를 해도 이재만 祕書官이 그대로 履行할 程度로 두 사람이 如前히 ‘上命下服 關係’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3人坊이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丁氏의 말이 命令처럼 들리기도 한다. 實際로, 鄭氏 말대로 3人坊이 言論을 告訴했다”고 덧붙였다.

    靑瓦臺 文件이 처음 暴露됐을 때 민경욱 靑瓦臺 代辯人은 “報道에 나온 內容은 市中에 根據 없는 風說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證券街 情報誌)에 不過한 것”이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나 數十餘 企業과 有料 供給 契約을 맺은 證券街 情報誌 生産業體의 G 代表는 記者에게 “‘정윤회 氏와 靑瓦臺의 십상시(十常侍)가 모여 金淇春 辭退說 擴散을 論議했다’는 點을 비롯한 靑瓦臺 文件의 모든 內容은, 斷言컨대 市中에 配布된 어떤 찌라시에도 나온 적이 없다. 찌라시엔 單純히 ‘김기춘 辭退說’만 떴는데 이는 오히려 文件 內容의 信憑性을 높이는 傍證일 뿐”이라고 말했다.

    “찌라시에 난 적 없다”

    G 代表는 “最近 10餘 年間 찌라시 團束이 이어졌다. ‘정윤회와 십상시 會同’ 같은 內容은 (作成者가) 拘束을 覺悟하지 않으면 찌라시에 못 싣는다. 그런데도 무슨 일만 터지면 찌라시 탓을 한다”고 했다. 이와 關聯해 李宗勳 時事評論家는 記者에게 “‘찌라시’ ‘珍島개’ ‘섭섭’ 等 朴 大統領과 정윤회 氏, 門고리 3人坊이 時差를 두고 特定 表現들을 共有해 쓰는 點이 注目된다”고 말했다.

    事實 與圈에선, ‘정윤회 氏 夫婦 側 注文에 따르지 않은 文體部 國·課長을 朴 大統領이 콕 찍어 問責했다’는 趣旨의 劉震龍 前 長官 證言을 靑瓦臺 文件보다 더 걱정한다. ‘鄭氏와 門고리 3人坊 連結’ 論難에서 ‘門고리 3人坊을 媒介로 한 鄭氏 夫婦와 朴 大統領 連結’ 論難으로 飛火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連結이 國政壟斷인지 아닌지는 且置하고 말이다.

    李宗勳 時事評論家는 “午餐 자리에서 朴 大統領이 ‘世上이 끝나야 苦悶이 끝난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이 밥 먹다 ‘헉’ 하고 체했을 것 같다”고 했다. 大統領이 直接 國·課長을 更迭한 것이나 檢察 搜査 中에 鄭氏 쪽 便을 들어 特檢의 빌미를 준 것이나 ‘平素의 朴槿惠答紙 않다’는 이야기다. 이 評論家는 “事實이 아니겠지만, 정윤회·최순실 氏 日에 大統領이 唯獨 平靜心을 잃은 건 아닌지 憂慮되기도 한다”고 했다.

    靑瓦臺는 檢察에서 ‘文件 內容이 根據 없다’는 式의 搜査結果가 나오면 問題가 鎭靜될 것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최병렬 前 한나라당 代表는 記者에게 “靑瓦臺 文件? 어떤 놈이 그런 장난을 치는지…김기춘 祕書室長만큼 단단하게 일하는 사람을 못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靑瓦臺가 願하는 搜査結果가 나오더라도 일이 다르게 흘러갈 可能性 또한 없지 않다. 尹汝雋 前 長官(박근혜 한나라당 代表 時節 汝矣島硏究所 所長 歷任)에게 連絡했더니 “요즘 인터뷰 안 한다. 그러나 電話가 왔으니 몇 마디 하겠다”며 말門을 뗐다.

    ▼ 朴 大統領은 文件 內容을 ‘찌라시’ 水準이라고 했는데요.

    “찌라시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니…. 民主主義 國家에서는 大統領이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大統領이 初盤부터 前面에 나섰기 때문에 檢察이 어떤 搜査 結果를 發表해도 國民이 안 믿을 겁니다. 野黨은 攻擊할 거고요. 그러면 檢察도 公信力을 잃고. 長期化하면 (大統領이) 아무것도 못해요. 賢明하지 않은 일이에요. 萬若 疑惑이 事實이면 國政遂行이 어려워져요.”

    “物證은 없지만 情況이…”

    ▼ 3人坊이 물러나야 합니까.

    “勿論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3人坊이란 사람들이 오랫 동안 大統領을 補佐했죠. 정윤회 氏가 그들을 뽑았다면 鄭氏가 大統領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사람들이 鄭氏와 이야기하고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物理的 距離가, 大統領과 떨어져 있느냐가 重要하지 않아요. 3人坊이 大統領과 가까이 있으면 그들을 통해서 鄭氏가 影響力을 行使할 수 있지 않을까요? 物證은 없지만 情況上 그렇다는 겁니다.”

    ▼ 人事 波動이 많았죠.

    “人事 때마다 별 所聞이 다 돌아다녔어요. ‘靑瓦臺 參謀들도 몰랐다고 하더라’ 이런 式으로요. 그러니 大統領의 權威가 없어지죠. 權威는커녕 3人坊, 秘線 實勢라는 말이 붙어 다니면 알 길 없는 사람들은 事實이라고 믿어버려요.”

    朴燦鍾 辯護士는 記者에게 “최경락 警衛가 靑瓦臺 文件 流出 嫌疑로 搜査 받다 自殺한 건 無理한 搜査가 招來한 結果”라고 말했다. 朴 辯護士는 “反對便은 自殺하고, 金 室長과 3人坊은 자리 지키고, 檢察은 ‘虛僞’라고 結論내고. 이러면 大統領의 權威 喪失, 公務員의 不服從, 靑瓦臺의 空洞化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朴 辯護士는 特히 정윤회 氏를 非難했다.

    “檢察 出頭할 때 보라고. ‘불장난’ 같은 말은 金淇春 室長이나 박지만 氏를 겨냥한 건데 結局 大統領에게 直擊彈을 쏜 거예요. 繼續 口舌을 일으켜요. 이런 部類는 宏壯히 危險합니다. 朴 大統領이 人福이 없는 게, 아무도 扈衛武士로 안 나서요. 金 室長이 물러나면 저쪽(3人坊)도 물러날 텐데 金 室長도 몸을 사리는 것 같아.”

    靑瓦臺 司正에 밝은 與圈 人士 E氏는 “靑瓦臺 內部의 視角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批判論者들이 主導하는 ’정윤회와 門고리 非難 攻勢에 따라가야 하나?’라는 게 그쪽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E氏와의 對話 內容이다.

    “別일 없지 않나 싶어요”

    ▼ 정윤회 波紋이 너무 커져버린 것 아닐까요.

    “別일 없지 않나 싶어요. 劉震龍 件은 조금 꺼림칙하지만, 그것 外엔.”

    ▼ 박지만 氏와 정윤회 氏가 權力鬪爭을 벌이는 樣相도 드러났는데.

    “박지만 氏도 좀 웃긴 게, ‘怨恨에 사무친 듯한 態度’를 보이는데, 그 自體가 ‘정윤회가 세다’ 이걸 國民에게 刻印하는 거잖아요. 그게 누나를 위하는 길일까요? 지만 氏는 ‘나, 그 사람 잘 몰라요’ 이래야죠. 지만 氏가 ‘정윤회=秘線實勢’ 等式을 성립시켰어요. 그리고 정윤회 氏가 正말 大選功臣이라면 男동생 눈치를 왜 보겠어요. 지만 氏에게 ‘내가 當身 누나랑 한나라당 脫黨해 풍찬노숙할 때 當身은 뭐했는데?’라고 하지 않겠어요? ”

    ▼ 萬若 정윤회와 門고리 3人坊 間 核心 連結고리가 있다면 3人坊 中에서도 누굴까요.

    “아마 第一 選任인 이재만 祕書官이겠죠. 정호성 祕書官은 無關한 것 같고. 3人坊도 朴 大統領과 疏通이 잘 안 된다고 해요. 엄청 눈치 봐가면서 이야기해요. 幸여 찍힐까봐. 정윤회 氏가 言論 인터뷰하는 거 한番 봐요. 누가 높아 보여요? 鄭氏는 正말 自己가 그 程度는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비쳐져요. 仔細히 觀察하면 보여요. 꼭 房門을 열지 않더라도.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었어요. ‘國會議員은 公薦 따내는 재주가 있고, 정윤회는 박근혜 마음 얻는 재주가 있고.’ 좋은 뜻에서 나온 말이에요.”

    ▼ ‘門고리 3人坊 물러나라’고 亂離인데요.

    “무슨 不法을 저질렀죠? 朴 大統領 스타일로 볼 때 귓등으로 듣고 말 걸요. 3人坊이 요즘 戰戰兢兢하는 건 事實인데, 아무 일 없을 것 같네요.”

    ▼ 그러나 秘線實勢와 3人放의 國政壟斷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只今 헤매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데, 國政이 없는데 어떻게 壟斷하죠?”

    ▼ 정윤회 氏는 요즘 어떻게 生計를 이어갑니까.

    “그게 미스터리이긴 해요. 離婚할 때 祕密維持 條件으로 全 財産 줬다는데.”

    ▼ 文件에 登場하는 門고리 3人坊 外 나머지 靑瓦臺 祕書官·行政官들은.

    “門고리 以外엔 國政壟斷 論難에서 다 ‘列外’죠. 實務者들日 뿐이고요. VIP와 連結되는 사람들이 아니죠. 百番을 讓步해, 이들이 정윤회 氏와 中國집에서 만났다고 해도 別問題 안 된다고 봐요. 鄭氏가 ‘밑에 애들도 데려와, 밥 한 끼 사줄게’ 이런 次元일 테니. 세 名이면 다 되는데 열 名씩 거느릴 理由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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