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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體部 國·課長 交替 背後 따로 있다”(靑 關係者) “確認할 方法이 없다”(靑 代辯人)|新東亞

“文體部 國·課長 交替 背後 따로 있다”(靑 關係者) “確認할 方法이 없다”(靑 代辯人)

‘정윤회 文件’ 流出 波紋 새 疑惑

  • 한상진 記者 | greenfish@donga.com

    入力 2014-12-16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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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件 作成者·監察 背景 情報까지 세계일보에 流出
    • ‘7湮晦’와 다른 ‘박지만-趙應天 라인’ 定期會同 있었다
    • “안봉근이 ‘박관천 내보내라’ 趙應天에 要求”
    • 靑 “安 祕書官이 朴 警正 人事措置 要求한 事實 없다”
    세계일보가 公開한 ‘정윤회 文件’ 內容은 實體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門고리 3人坊’(이재만 總務祕書官, 정호성 第1附屬祕書官, 안봉근 第2附屬祕書官)과 秘線 實勢 疑惑을 받는 정윤회 氏와의 定期的 만남은 確認되지 않았다. 오히려 大統領의 동생인 박지만 EG 會長과 조응천 前 公職紀綱祕書官을 中心으로 한 그룹이 關心을 모은다.

    이제 남은 일은 文書의 流出 經路를 把握하는 것이다. 檢察도 여기에 搜査 焦點을 맞춘다. 鄭氏 關聯 疑惑으로 始作된 事件의 中心은 이미 朴 會長 쪽으로 旋回했다.

    內部 文書 流出 事件을 監察한 靑瓦臺는 最近 “조 前 祕書官, 朴 會長 側近, 言論社 幹部, 檢察 職員, 靑瓦臺 前 行政官 等이 모인 ‘7湮晦’가 靑瓦臺 文件 流出에 干與했다”고 보고, 監察 結果를 檢察에 傳達했다.

    檢察은 이番 文書 流出 事件이 2014年 2月까지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室에서 勤務한 박관천 警正과 서울警察廳(서울廳) 情報紛失 職員 2名의 作品으로 事實上 結論 내렸다. 朴 警正이 靑瓦臺에서 빼낸 文件을 崔某, 한某 經緯 2名이 任意로 複寫해 그中 一部를 言論과 大企業 情報팀에 流出했다는 것이다. 한 經緯는 朴 警正이 빼내온 文書를 複寫해 그中 一部를 崔 警衛에게 傳達했다고 嫌疑를 是認했다. 그러나 文件 流出의 張本人으로 指目된 崔某 警衛는 12月 13日 抑鬱함을 呼訴하며 自殺했다.

    崔 警衛의 潔白 主張을 떠나 靑瓦臺와 檢察의 判斷이 事實과 다르다고 볼 만한 情況이 없지는 않다.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일보가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室 文件을 公開한 것은 이番이 처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3次 公開다.



    “文件에 없는 內容 流出”

    “문체부 국·과장 교체 배후 따로 있다”(靑 관계자) “확인할 방법이 없다”(靑 대변인)

    秘線 實勢 疑惑을 받은 정윤회 氏, 조응천 前 公職紀綱祕書官, 박관천 警正(왼쪽부터).

    세계일보는 公職紀綱祕書官室 文件을 土臺로 2014年 4月 2日부터 3日에 걸쳐 朴槿惠 政府 靑瓦臺 行政官 10名이 非違가 드러나 更迭된 事實을 報道했다. 7月엔 靑瓦臺 中小企業祕書官을 지낸 최수규 現 中小企業廳 次長의 非違 疑惑을 報道했다. 이 報道는 ‘신동아’ 2013年 7月號가 報道한 記事(‘映畫界 미다스 손’의 殊常한 投資)와도 關聯이 있다. ‘신동아’ 報道 以後인 그해 10月頃,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 A氏는 ‘신동아’ 記事와 關聯, 崔 前 祕書官 等을 相對로 監察을 벌였다. A氏는 11月頃 監察報告書를 作成했는데, 그 文件이 세계일보에 들어간 것이다. 세계일보는 監察 文書와 함께 崔 前 祕書官을 相對로 調査한 結果를 整理한 文書까지 入手해 報道한 것으로 確認됐다.

    記者는 세계일보가 記事를 報道한 直後인 7月 中旬 靑瓦臺 文書를 入手한 世界日報 조某 記者를 만난 적이 있다. 當時 조 記者는 文件만으로는 알 수 없는 文件의 作成者와 作成 背景, 關聯者들의 主張과 相互關係까지 比較的 詳細히 알고 있었다. 文書를 作成한 公職紀綱祕書官室 關係者를 相對로 取材를 進行한 事實도 說明했다. 이 文件을 作成한 A氏도 最近 記者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作成한 文件이 어떻게 流出됐는지 모르겠다. 文件에는 作成者인 내 이름이 없다. ‘신동아’와 關聯된 內容도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도 當時 世界日報 記者는 報道 直前 내게 電話를 걸어 文件 內容에 對해 取材를 試圖했다. 난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電話를 끊었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事實은 서울警察廳 情報分室 關係者가 任意로 文件을 複寫해 빼내 記者에게 줬다는 檢察 主張에 疑問을 갖게 한다. 朴 警正 或은 文件에 對한 正確한 情報를 가진 第3者가 取材에 積極 協助했을 可能性이 있기 때문이다. A氏는 “崔 前 祕書官 監察 當時 朴 警正의 도움을 받았다. 朴 警正은 監察 內容을 어느 程度 알고 있었다. 그래서 文件을 言論에 流出한 것도 朴 警正日 可能性이 높다고 推定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와 大企業 等으로 빠져나간 文件의 量이 正確히 얼마나 되는지는 確認되지 않는다. 沙果箱子 몇 個 分量이라는 말도 나온다. 2014年 5月 조 前 祕書官이 周旋해 세계일보 記者와 박지만 會長이 만난 後 回收된 文書는 總 128쪽 分量이다. 이것은 世界日報가 確保한 公職紀綱祕書官室 文書의 一部로 推定된다. 조 前 祕書官은 이렇게 確保한 文書를 最近 靑瓦臺를 辭職한 오모 行政官을 通해 정호성 第1附屬祕書官에게 傳達했다고 밝힌 바 있다.

    前·現職 靑瓦臺 人士들을 통해 確認한 結果, 세계일보에 흘러들어간 文件은 複數의 公職紀綱祕書室 職員이 作成한 것이었다. 세계일보가 4月 報道한 靑瓦臺 行政官의 非違와 關聯된 여러 文件에는 最少 3名 以上의 監察 職員이 參與했다. 앞서 說明한 최수규 前 祕書官의 非違 疑惑과 關聯된 文書를 作成한 A氏는 檢察 搜査官 出身 事務官이다.

    조 前 祕書官이 在職하던 當時 公職紀綱祕書官室에는 6~7名의 監察 職員이 있었다. 警察에서 派遣된 朴 警正 外에도 檢察 出身 事務官, 海洋警察廳 出身 警正, 政治人 出身 人士, 國稅廳 出身 人士 等이다. 이들은 祕書官으로부터 直接 指示를 받고 報告하는 體系로 움직였다.

    “朴 警正이 文件 回收 主導”

    그렇다면 靑瓦臺 밖으로 文書를 流出한 朴 警正은 어떻게 同僚들이 作成한 文件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이에 對해 靑瓦臺 關係者는 “公職紀綱祕書官室에서 職員들이 서로의 文件을 共有하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同僚의 文件을 入手할 수 없는 構造다. 그런 點에서 朴 警正이 同僚들이 作成한 文書를 入手한 經緯 自體가 犯罪行爲일 수 있다”고 指摘했다.

    그러나 조 前 祕書官은 事件 初期부터 줄곧 朴 警正이 아닌 第3者에 依한 流出 可能性을 主張했다. 그는 言論을 통해 “5~6月 民政首席에게 올라간 文件에는 朴 警正이 아닌 第3者가 犯人으로 指目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前 祕書官은 12月 11日부터 13日까지 여러 番에 걸쳐 記者와 文字메시지를 주고받으며 文件 流出에 對한 自身의 意見을 傳했는데, 12月 12日 보낸 文字메시지에서도 朴 警正이 文件을 言論에 流出했다는 疑惑에 剛한 疑問을 表示했다. 다음은 조 前 祕書官과의 問答이다.

    ▼ 朴 警正이 어떻게 다른 職員이 作成한 文件을 갖고 있었나.

    “朴 警正이 다른 職員 文件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朴 警正이) 國會 答辯을 專擔했기에 다른 職員 所管에 對한 答辯書를 作成할 目的으로 받을 수 있다.”

    ▼ 檢察은 朴 警正이 빼낸 文件을 서울廳 情報紛失 職員이 言論에 流出했다고 判斷한다.

    “流出 經緯는 全혀 모른다. 文件이 어떻게 나갔는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막았을 것이다. 朴 警正은 文件 回收 作業을 主導했다. 萬若 (本人이) 流出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 본다.”

    ▼ 言論에 流出된 文件은 모두 公職紀綱祕書官室에서 作成한 것인가.

    “親姻戚 關聯 非理를 미리 遮斷하기 위해 朴 會長 內外에 接近하려는 사람들(에 對해 作成한) 動向報告 等 우리 房(公職紀綱祕書官室)에서 作成한 文件으로 안다.”

    ▼ 세계일보에 靑瓦臺 文件이 大量으로 流出된 事實은 어떻게 알게 됐나(조 前 祕書官은 4月 12日頃 靑瓦臺 文書 流出의 責任을 지고 靑瓦臺를 떠났다. 그는 세계일보에 靑瓦臺 文書가 大量으로 流出된 事實을 5月頃 確認했다고 여러 言論을 통해 밝혔다. 以後 文件 回收를 위해 世界日報 記者와 朴 會長의 만남을 周旋했다는 것이다).

    “5月 世界日報 記者가 ‘流出 文件을 大量 갖고 있고 流出 意圖가 異常해 回收해줄 意思가 있다’고 連絡해왔다. 그래서 世界日報 記者와 박지만 會長을 連結해줬다. 朴 會長과 關聯된 文書 寫本을 提供하면서 靑瓦臺에 調査 要請을 하도록 했으나 朴 會長은 默殺했다. 그래서 不得已 오모 行政官에게 付託해 정호성 祕書官에게 傳達했으나 또 默殺됐다. 그래서 김영한 民政首席에게 就任 人事次 電話를 드리며 이 같은 事實을 알린 것이다.”

    “祕書室長이 ‘박관천 자르라’ 指示”

    조응천 前 祕書官은 2014年 1月 問題의 ‘정윤회 文件’을 民政首席과 金淇春 祕書室長에게 報告했다. 그 直後 靑瓦臺는 文件의 作成 經緯에 對해 調査를 벌였다. 그리고 文件 內容이 相當部分 虛僞라고 判斷한 뒤 文件을 作成한 박관천 警正에 對한 人事措置 要求를 조 前 祕書官에게 傳達했다. 朴 警正은 2月 靑瓦臺를 떠났다. 한 靑瓦臺 關係者는 當時 狀況에 對해 이렇게 말했다.

    “文件을 報告한 뒤 조 祕書官이 首席과 祕書室長에게 剛한 叱責을 들었다. 當時 이런 事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안봉근 第2附屬祕書官이다. 文件 作成 經緯와 關聯된 靑瓦臺 內部 調査 過程에 安 祕書官이 一定 部分 役割을 했다. 조 祕書官에게 朴 警正 人事措置를 直接 要求한 사람도 安 祕書官이다.”

    이 靑瓦臺 關係者의 證言은 “안봉근 祕書官이 警察 人事에 干與했다”는 조 前 祕書官의 最近 主張과도 脈을 같이 한다. 조 前 祕書官은 12月 1日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主張한 바 있다.

    “昨年(2013年) 10月 말인가 11月 初인가, 靑瓦臺에 들어올 豫定인 警察官 한 名에 對해 檢證을 하다가 ‘負擔(스럽다)’ 判定을 내렸다. 쓰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안봉근 祕書官이 電話해서 ‘이 일을 責任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은) 問題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 2附屬室에서 왜 警察 人事를 갖고 저러는지 異常했는데, 한 달 뒤쯤 民情首席室 所屬 警察官 10餘 名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指示가 떨어졌다. 더 氣가 막힌 것은 後任들이 다 單數로 찍어서 내려왔다. (名單은 民政)首席이 나한테 줬는데, 結局 제2부속실 아니겠나. 當時 警察 人事는 2附屬室에서 다 한다는 所聞이 있었다.”

    그러나 最近 조 前 祕書官은 檢察 調査에서 “지난 1月 ‘정윤회 文件’을 金淇春 室長에게 報告했다. 보고 며칠 뒤 金 室長이 直接 電話를 걸어 ‘박관천을 자르라’고 指示했다”고 陳述한 것으로 알려졌다(12월 15日 CBS노컷뉴스).

    安 祕書官이 박관천 警正에 對한 人事措置를 直接 要求했다는 證言에 對해 靑瓦臺 側은 ‘신동아’에 “安 祕書官은 監察에 干與할 位置에 있지 않다. 趙應天 祕書官에게 朴 警正에 對한 人事와 關聯된 通報나 要求를 한 事實도 없다”고 알려왔다.

    알려진 바와 같이 靑瓦臺는 4月 世界日報 報道 以後 文件 流出과 關聯된 本格的인 監察에 着手했다. 監察을 맡은 곳은 民政祕書官室 特別監察班(特減)이었다. 特減은 調査過程에서 朴 警正이 靑瓦臺 文書를 流出한 事實을 確認하고 이를 조 祕書官에게도 알렸다. 그러나 조 前 祕書官은 끝까지 朴 警正을 庇護했다고 傳한다.

    當時 事情을 잘 아는 靑瓦臺 關係者는 “조 前 祕書官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行動했다. 그러면서 朴 警正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끝까지 斗頓했다. 조 前 祕書官의 庇護 때문에 朴 警正을 懲戒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關係者는 “조 前 祕書官은 文件 流出 事件을 調査한 特減에 좋지 않은 感情을 가졌다. 特監 職員이 公職紀綱 文件을 竊取해 流出했다고 疑心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對해 조 前 祕書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民政 特減은 처음부터 朴 警正이 文書를 流出한 걸로 생각했던 것 같고, 내게는 管理 責任을 지게 하는 걸로 (方向을) 定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文體部 人事 眞짜 背後는?

    앞서 紹介한 靑瓦臺 關係者는 論難을 낳은 大統領의 文體部 國葬·課長 更迭 過程에 對해서도 注目할 만한 證言을 했다. 그는 “大統領이 劉震龍 長官에게 直接 文體部 局長과 課長의 更迭을 要求한 것은 이미 事實로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데 大統領에게 그 要求를 한 사람은 정윤회 氏가 아니라 鄭氏의 前 否認 최순실 氏다. 平素 朴 大統領과 姊妹처럼 지내는 崔氏가 付託한 것이다. 崔氏는 3人坊 等을 거치지 않고 大統領과 바로 通한다”고 主張했다.

    그러나 一般人이 大統領에게 特定 公務員에 對한 人事 措置를 要求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정윤회 文件’ 波動을 놓고 對立하는 두 勢力의 力學關係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을 可能性도 排除할 수 없다. 鄭氏는 12月 2日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文體部 國·課長 人事 介入 疑惑에 對해 “나는 모르는 사람들” 이라고 否認했다. “딸의 일이니 夫人이 했을 수도 있느냐”는 質問에는 “그거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直接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했다.

    崔氏가 大統領에게 文體部 關係者의 人事 措置를 要求했다는 證言에 對해 민경욱 靑瓦臺 代辯人은 “최순실 氏에게 물어봐야 할 問題다. 달리 確認할 方法이 없다. 當事者(최순실)가 直接 陳述하지 않은 狀況에서 大統領께 묻기 어렵다”고 答辯했다. 記者는 崔氏의 反論을 듣기 위해 다양한 經路로 알아 봤지만 當事者와 連結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便 이番 事件과 關聯된 取材 過程에서 조 前 祕書官과 함께 일해 온 人士 B氏가 박지만 會長의 最側近 C氏를 定期的으로 만나온 事實을 確認할 수 있었다. C氏는 朴 會長의 祕書室長으로 불리는 人物로 過去 育英財團 運營 等 朴 會長과 關聯된 各種 事業에 깊이 干與해온 人物이다. 이 모임은 靑瓦臺가 그동안 밝힌 7人 모임과는 全혀 다른 것으로, 參席者는 여러 名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性格은 確認되지 않았다.

    萬若 이 모임이 조 前 祕書官, 朴 會長의 意中이 담긴 것이라면 새로운 論難이 불거질 수 있다. ‘정윤회-3人坊 vs 박지만-趙應天’ 對立構圖의 한 軸이 될 수도 있기 때문. 그러나 조 前 祕書官은 이 모임에 對해 문자메시지를 통해 “B氏와 C氏가 서로 만나는 사이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B氏는 이 모임에 對해 “個人的인 모임이다. 조 前 祕書官에게는 얘기한 적이 없다”고 說明했다. C氏는 連絡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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