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二分法 思考, 言語의 墮落에 疏通과 發展 가로막혔다”|신동아

“二分法 思考, 言語의 墮落에 疏通과 發展 가로막혔다”

김호기 敎授가 만난 우리時代 知識人 / 小說家 金訓

  • 김호기 | 연세대 社會學科 敎授 kimhoki@yonsei.ac.kr

    入力 2014-12-18 17:16: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우리끼리 찔러 죽인 悲劇, 깊이 反省해야
    • 朴正熙, 땅을 덮는 業績과 하늘을 찌르는 罪惡
    • 人文學은 남의 苦痛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感性
    • 規制 緩和, 民營化는 ‘公正한 弱肉强食’
    2015年은 光復 70周年이다. 나라 세우기, 産業化, 民主化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70年이었다.

    밖의 視線으로 보면 우리 現代史는 産業化와 民主化를 模範的으로 일군 事例로 評價된다. 하지만 안의 視線으로 보면 우리 社會가 선 자리는 왠지 초라하고 不安한 느낌을 안겨준다.

    光復 70年은 榮光과 苦惱의 歷史였다.

    光復, 政府 樹立, 6·25戰爭, 李承晩 時代와 朴正熙 時代, 그리고 民主化 時代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우리 社會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歷史의 中心을 이루는 것은 亦是 사람이다.

    光復 70年을 맞아 우리 時代를 代表하는 知識人과 藝術家를 만나 우리가 걸어온 길과 선 자리, 그리고 걸어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進行은 김호기 敎授(연세대 社會學科)가 맡았다.

    첫 招請者는 小說家 金訓이다.

    김호기 光復 70年입니다. 1948年 大韓民國이 建國했을 때 태어나셨으니 先生의 삶은 光復 70年과 거의 一致합니다. 所懷가 어떠한지요.

    金 勳 左衝右突하면서 前進과 後退를 끝없이 反復했어요. 지나온 歲月을 돌아보면 革命的인 것은 없었죠. 光復, 6·25, 5·16度 全혀 革命的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過去로 돌아가는 決定的인 契機가 된 것이죠. 光復 以後 北韓의 土地改革人 無償沒收, 無償分配度 全혀 革命的인 게 아니에요. 土地의 主人이 地主에서 國家로 바뀌었을 뿐이고 農民은 준농노의 處地와 과히 다르지 않았어요. 4·19度 革命的인 것이 아니었어요. 高額課外, 入試地獄, 勞使葛藤의 問題는 내가 中學校 다닐 때부터 있었어요. 發展的으로 醇化하는 方向으로 展開된 게 아니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規模가 더 커진 것이지요. 오래前 넘어진 자리에 가서 다시 넘어지는 게 反復됐어요. 얼마나 더 前進과 後退를 繼續해야 하는지 답답한 생각입니다.

    光復·産業化·民主化를 보는 눈

    김호기 光復 70年은 先生과 저의 時代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時代이기도 합니다. 父親인 小說家 김광주 先生에 對해 쓴 글을 봤습니다. 金九 先生과 因緣이 각별했더군요. 김광주 先生에게 光復이란 무엇이었을까요.

    金 勳 아버지는 1910年生이에요. 태어나던 해 나라가 亡해서 없어진 거죠. 滿洲에서 靑春 時節을 보냈는데, 金九 先生을 欽慕하고 尊敬했어요. 아버지는 平生을 流浪民으로 살았어요. 그때 상하이에 모인 수많은 亡命 靑年은 流浪民 그 自體였어요. 아버지가 當時 쓴 글을 읽어봤더니 運命이라 할 수 있는 祖國을 詛呪하기도 했어요. 너무 힘들고 괴로우니까 曺國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씀도 했어요.

    解放된 祖國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 世代의 流浪은 繼續됐어요. 아버지는 共産主義를 憎惡했고 李承晩을 憎惡했어요. 朴正熙 獨裁를 憎惡하면서 北韓 共産政權度 憎惡했어요. 現實社會에서 발붙일 수 없는 知識人이 된 거죠. 解放된 祖國에 와서 오히려 더 悽慘한 모습으로 流浪이 다시 始作된 셈이에요. 아버지는 6·25 때 서울 殘留派였는데 共産主義에 反對하는 글을 썼어요. 戰爭이 그들의 流浪民 心性을 더 深化한 거지요.

    김호기 小說家 황순원度 ‘움직이는 性’에서 流浪民으로서의 韓國人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韓國人은 本質的으로, 歷史的으로 流浪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先生이 쓴 글을 보면, “山을 등지고 흐르는 물을 앞에 두르는 樂園에, 아버지와 우리는 한 番도 갈 수 없었다”(‘광야를 달리는 말’)는 句節이 나옵니다. 樂園을 現實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한 것 같습니다.

    金 勳 내가 자랄 當時 高等學校 때까지 國民所得이 100달러를 못 넘었어요. 中學校 때는 世界 最貧國이었어요. 필리핀의 援助를 받고 필리핀을 先進國으로 보았어요. 只今 4萬 달러 時代로 가자고 하니 놀라운 거죠. 아버지가 디아스포라의 遺産을 받고 태어났듯이 우리 世代는 野蠻的인 權力의 暴行과 무시무시한 가난을 遺産으로 받고 그 속에서 左衝右突하며 살아온 것이죠. 그리고 나는 그런 時代를 살면서 人間의 歷史가 民主的인 原則과 方式에 따라서 展開되리라는 信念이 別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仁王山 자락 서울城郭에서.



    김호기 父母 世代에게 ‘나라 세우기’란 課題가 주어졌다면, 저희 世代에겐 産業化와 民主化라는 ‘나라 풍요롭게 하기’가 課題로 주어졌습니다. 先生이 즐겨 쓰는 表現 가운데 ‘가난은 說話的인 것’이라는 句節이 무척 印象的이었습니다. 現實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逆說的으로 現實에 不在하는 說話라는 表現을 쓴 것으로 理解했습니다. 産業化와 民主化 時代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年報를 보니 軍隊를 갔다 온 다음 고려대에 復學한 게 아니라 한국일보에 就職했던데요.

    金 勳 내가 1973年 記者生活을 始作했는데 言論人이라기보다 記者職에 從事했다는 게 맞아요. 72年 維新體制가 登場하고 이어 緊急措置가 醉해졌어요. 野蠻的으로 統制하기 始作한 거죠. 朴正熙 時代는 그 業績이 온 땅을 덮는 同時에 그 罪惡이 하늘을 찌른다고 생각해요. 땅을 덮는 業績과 하늘을 찌르는 罪惡은 韓國 現代史에 刻印돼 있고, 또 至大한 影響을 미쳤어요.

    그리고 民主化는 事實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바꾼 거예요. 사람을 令狀 없이 끌어다 며칠씩 패고 不具로 만들어 내보내고 그랬잖아요. 그런 野蠻的 惡行이 더 以上 不可能하게 된 게 한 30年에 가까워오지만, 그 歷史는 日淺한 거예요. 가장 基本的인 人權을 侵害할 수 없게 된 게 얼마 안 된 거예요. 그것이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不安感을 갖게 되는 거죠.

    人文學의 危機

    김호기 作家로서 最近 人文學의 危機를 어떻게 보는지요. 人間에 對한 學問인 人文學은 모든 學問의 出發이자 基盤을 이룹니다. 이 基盤이 不實한 狀態에서 무엇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요. 先生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文學奇行 1·2’(박래부 記者와의 共著)였습니다. 우리말을 무척 사랑하고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言語는 存在의 집’이라는 哲學者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도 있듯이, 言語와 삶, 삶의 歷史와 哲學을 다루는 이 人文學의 危機를 어떻게 보는지요.

    金 勳 東西洋 古典을 읽는 것을 包含해 人間에 對한 理解와 事由가 人文學이겠죠. 남의 苦痛에 共感하고 그것을 眞正한 苦痛으로 받아들이는 感受性을 維持하는 게 人文學의 本質이라고 생각해요. ‘論語’를 보면 工夫하라는 말이 나와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게 冊 읽으라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孔子가 工夫하라고 말한 것은 冊을 읽으라는 게 아니고 네 마음을 똑바로 하라는 얘기죠. 마음을 똑바로 한다는 것은 남의 苦痛을 들여다보고 남의 아름다움을 穩全히 理解할 수 있는 感受性을 維持하는 것, 人間에 對한 完成을 摸索하는 것이에요. 이게 人文學의 本質이라고 생각해요.

    人文學이 衰退하게 된 理由 中 하나는 漢字(漢字) 敎育을 없애 古典을 읽지 못하게 된 데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冊 읽기로서의 人文學은 急速히 衰退한 게 아닌가 싶어요. 光復 以後 한글의 아름다움을 保存하고 한글을 科學化하는 것은 올바른 政策이었지만 漢字를 抹殺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野蠻的인 政策입니다. 漢字든 國語든 다 우리말이에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세월호’ 天幕이 있는 光化門에서.

    風景에 對한 느낌

    김호기 大學 안에서 보면 他者에 對한 共感, 慰勞, 配慮 等에 關한 것들을 學生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사랑과 慰安과 共感은 物質的 삶과 더불어 삶의 또 다른 中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慰安과 共感은 具體的인 것들인데, 抽象的인 西歐 理論들이 캠퍼스에 空虛하게 떠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 點에서 特히 印象的으로 읽은 게 ‘自轉車 旅行 1·2’입니다. 風景과 地理에 元來 關心이 많았습니까.

    金 勳 地理와 風景에 對한 느낌을 마음속에 貯藏하는 게 나한테는 宏壯히 重要해요. 글을 쓰는 하나의 바탕이 되는 것이죠. 다 言語로 表現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風景에 對한 느낌을 豐富하게 간직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김호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風景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萬頃江에 關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요.

    金 勳 風景은 다 똑같아요. 어느 게 特別히 아름답거나 特別히 醜惡하지는 않은데 季節마다 다르죠. 蟾津江 쪽이라든지 智異山 밑이 참 뛰어나게 아름다운데 다 特徵的인 表情을 갖고 있어요. 東海 바다는 일자(一字)밖에 없잖아요. 바다에서 해가 뜨니까 氣像이 가득 茶요. 얼마 前까지 蔚珍에 있다 왔거든요. 아침마다 새로 해가 뜨니까 東海 바다는 새로 創造된 새벽의 바다 같아요. 西海 바다는 갯벌이고 夕陽 해가 지니까 限없이 漠漠한 느낌을 주는 바다죠.

    萬頃江은 減潮河川이에요. 바다를 받아들이는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江 中流까지 올라가요. 또 萬頃江은 自由跛行 江이에요. 漢江은 兩쪽에다 道路를 만들고 上流에 댐을 만들어 只今은 巨大한 짐승을 잡아다가 우리에 가두어놓은 꼴이 됐어요. 萬頃江은 自由跛行이 됐는데 이제는 안 되죠. 안타깝습니다.

    김호기 先生이 가진 情緖 中 하나가 사라져가는 것들, 消滅돼가는 것들에 對한 아쉬움인 것 같습니다. 타고난 DNA인가요.

    金 勳 내 自身에 對한 慰安을 찾아가는 過程입니다. 살아가려면 나를 慰勞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人生이지요.

    獅子와 얼룩말의 共生

    김호기 무엇이 人文學의 危機를 가져왔을까요. 人文學의 危機는 精神의 危機이자 價値의 危機입니다. 왜 우리 社會는 精神과 價値를 제대로 尊重하지 않을까요. 김광주 先生이 지키려 했던 精神과 價値, 이런 것들이 1950~60年代 瘠薄한 現實에서 實現되지 못하고 挫折된 셈입니다.

    金 勳 아버지 時代는 戰爭에 依해 人間이 저지른 蠻行을 證明했어요. 特히 6·25戰爭은 强大國에 依한, 理念 間 戰爭의 側面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重要한 것은 同族相殘의 悲劇이에요. 그 同族相殘을 只今 거의 擧論하지 않잖아요. 우리끼리 찔러 죽인 거예요. 大檢으로 찔러 죽인 거지요. 그것이 理念에 依한 結果였다고 말하는 것은 無責任하다고 생각해요. 同族相殘의 問題에 對한 道德的 反省을 深化하는 게 必要해요.

    그리고 우리 時代를 支配하는 것은 돈이에요. 돈이라는 唯一神이 世界를 組織하고 秩序를 附與하는데 거기서 離脫하는 者는 다 죽게 돼 있어요. 돈의 힘이 支配하는 世上은 一種의 弱肉强食 世界인데, 動物 世界에서의 弱肉强食하고는 全혀 다른 거예요. 獅子는 얼룩말을 한 마리만 잡아먹어요. 獅子가 王이라고 해서 얼룩말 生態系 全部를 支配하는 게 아니에요. 얼룩말은 弱者이지만 그 弱者로서의 生態系를 穩全히 維持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돈이 世界를 支配하면 全體를 完全히 掌握하고 복종시키는 거예요. 人文學的 價値도 그런 支配力에 짓눌리는 것이죠. 그러면서 거기에 抵抗할 수 없게 된 셈이에요.

    물 속에 빠져 있는 아이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호기 社會學을 工夫하는 제가 보기에 우리 社會에는 特別한 섬김을 받는 세 神이 있습니다. 돈이 가장 重要한 것 같고요. 여기에 權力과 몸이 더해집니다. 欲望의 時代가 滿開한 것 같습니다.

    金 勳 몸이 이미지化하면서 政治도 아주 極端的으로 이미지化해서, 政治人들이 가끔씩 在來市場에 記者들을 데리고 가서 生鮮을 주무르잖아요. 煉炭을 나르고 시커먼 손을 내밀고요. 모든 게 이미지化하면서 삶의 敍事的인 로망 같은 게 무너져가는 것이죠.

    김호기 最近 한 輿論調査 結果 다시 태어나면 大韓民國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應答이 43%인 反面,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應答은 57%였습니다. 保守勢力은 産業化를 자랑하고 進步勢力은 民主化에 對해 自負心이 크지만, 産業化와 民主化의 顯在的 모습은 초라합니다. 入試에 시달리는 10代나 靑年失業에 直面한 20代, 構造調整을 걱정하는 30~40代나 老朽不安으로 憂鬱한 高齡世代를 보면 우리 社會가 일궈온 게 果然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重要한 것은 過去가 아니라 現在입니다. 얼마 前 先生은 彭木港에 다녀왔습니다. 歲月號 慘事는 우리 社會가 서 있는 자리를 생생하게 證據합니다. 保守勢力은 責任倫理를 强調하고 進步勢力은 制度를 重視했는데, 제가 보기엔 歲月號 沈沒은 制度와 倫理의 二重 沈沒人 것 같습니다. 팽목항을 찾아간 까닭은 무엇인지요.

    金 勳 제가 그런 일에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은 아니에요. 偶然히 모여 出版人과 作家들이 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제가 가는 사람들 가운데 第一 年長者였어요. 그 모임에 代表性을 가진 것은 아니었죠. 갈 자리가 아닌데 왜 갔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反問이 당황스러웠지만, 갈 사람이 따로 있고 안 갈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요.

    彭木港에 갔더니 물 속에 아이들이 빠져 있다는 게 너무나 큰 苦痛을 주더군요. 세월호는 過積과 無理한 增築 때문에 復元力을 喪失했어요. 船舶 關聯 冊을 봤더니 그것은 物理 法則을 어긴 거예요. 物理的 法則을 어기면 다 죽게 돼 있어요. 살길이 없어요. 무엇 때문에 物理的 法則을 어기게 됐느냐 하는 게 問題인 거죠. 여러 原因이 있을 거 아녜요. 船舶을 運航하면서 物理的 法則을 어긴다는 것은 죽으러 간 거죠. 元來는 賈舶을 안 했다는 거잖아요. 賈舶을 해놓고 쇠사슬로 묶어놓잖아요. 甲板員들은 그 배가 目的地에 닿기 前까지 繼續 巡察을 다니면서 이 줄이 늘어졌을 때 스패너로 조여야 된다는 거예요. 단단히 묶는 高朴이 重要하거든요. 컨테이너는 무거워서 조금이라도 허술하면 확 쏠리게 되니 단단히 묶어야 하는데 안 했다는 거예요.

    김호기 그뿐 아니라 坪型首都 뺐죠.

    金 勳 物理的 法則을 어기면 權力者라도 죽게 돼 있잖아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청계천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김호기 우리 社會 産業化와 民主化 時代를 특징지어온 原理는 弱肉强食, 速戰速決, 一網打盡입니다. 이 原理들과 訣別하지 않는 한 精神과 價値를 제대로 尊重하는 人間性이 待遇받는 社會를 이뤄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弱肉强食이라는 極端的인 現代性을 追求하는, 速戰速決로 問題를 解決하는, 多樣性을 否定하는 一網打盡의 社會입니다.

    金 勳 大統領이 提示한 經濟 問題의 解決 方式이 規制緩和, 民營化예요. 資本主義的인 價値 志向性을 極大化해서 問題를 解決하겠다는 거죠. 근데 規制緩和와 競爭化는 結局 같은 말이에요. 競技場에서 競技를 하는데 ‘공정한 競技’에 妨害가 되는 障礙物을 除去하겠다는 거죠. ‘공정한 게임’의 結果는 ‘公正한 弱肉强食’李 되겠죠.

    김호기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所重하게 생각되는 게 家族입니다. 제 아버지는 初等學校 敎師를 40年假量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삶을 反芻해보는 時間이 많아졌습니다. 또 高等學校 2學年 딸 하나를 뒀는데,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未來를 正말 걱정하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줘야 할까요.

    金 勳 家族은 社會의 基本 段위잖아요. 肯定的인 面과 否定的인 面이 맞물린 게 家族이에요.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政策과 豫算이 젊은이 中心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未來 世代를 中心으로 말이에요. 只今 地方에 가보면 有權者들이 大槪 老齡層이에요. 그래서 政策을 자꾸만 經路 政策 쪽으로 몰아만 가는 것 같아요. 只今 젊은이 就業難은 正말 끔찍하죠. 우리 世代는 나라 全體가 가난해서 먹고살기 힘들고 일자리가 不足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只今은 풍요로운 社會를 만들어놓고 또다시 젊은이가 疏外되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社會 시스템 안에 編入하지 못하고 社會 邊方에서 빙빙 돌다가 人生을 끝내는 거잖아요. 그런 面에서 悲劇的이구나, 생각하는 거죠.

    김호기 그렇다고 高齡 世代가 제대로 待接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老人 貧困率이 48%였습니다. 高齡 世代를 위한 나라도 아니고, 靑年 世代를 위한 나라는 더더욱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産業化 世代와 民主化 世代가 自己들 中心으로만 國家를 運營하지, 只今 막 커가는 아이들을 많이 配慮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인터뷰 場所인 레스토랑 庭園에서 마주 선 金訓과 김호기.(場所提供 : 忠情角)

    金 勳 旣成世代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조금은 정의롭고 公正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해요. 正義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弱肉强食이라든지 資本의 橫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希望을 젊은이들한테 줘야 하겠죠. 젊은이의 未來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없는 거죠.

    얼마 前에 非武裝地帶(DMZ) 쪽을 가 봤어요. 北韓 兵士들이 모여 있는데 내가 본 兵士는 못 먹어서인지 빠짝 말랐더라고요. 저놈이 우리 젊은이들의 的이잖아요. 새삼 우리는 都大體 뭔가, 어떻게 해서 이런 巨大한 敵對感과 軍事的인 對峙關係가 생기게 됐나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 北韓 兵士가 北韓 政權 全體를 代表하는 건 아니죠. 우리 南韓 兵士도 같을 거 아녜요. 이 두 젊은이가 서로 敵이 돼 있는 거예요. 그런 걸 보니까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답답한 거죠.

    김호기 光復 70年을 맞이해 우리社會가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第一 먼저 바뀌어야 할까요.

    金 勳 가장 問題가 되는 게 二分法的 思考와 言行이에요. 이런 것들이 社會 發展을 가로막는 惡人 것 같아요. 社會 到處에 깔려 있거든요. 二分法的 思惟와 言行에서 言語가 漸漸 墮落하는 거죠. 言語가 墮落하면 疏通이 不可能하게 되거든요. 言語를 疏通의 道具로 쓰지 않고 武器로 쓰기 始作하니까 言語가 結局 武裝을 하잖아요. 言語가 銃을 쏴대는 거죠. 社會 發展을 가로막는 것이죠. 全혀 疏通이 안 되고 서로 딴소리를 하는 거죠.

    김호기 共感합니다. 只今 高齡化, 低出産, 여러 가지 社會問題를 보면 理念의 對立이 아니라 理念의 通涉이 必要하다고 생각합니다. 保守가 進步의 價値를 尊重할 수도 있고, 進步가 保守의 政策을 借用해서 쓸 수도 있습니다. 理念의 戰線이 過度하게 對峙해 結局 우리 社會의 未來가 失踪돼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先生에게 文學이란 무엇인가요. 小說을 왜 쓰는지요.

    金 勳 젊었을 때는 小說家가 되겠다는 欲望이 없었어요. 學校를 卒業하고 財閥會社에 就職해 밥벌이를 하려는 아주 實用的인 目標를 가졌어요. 그런데 自身의 內面을 表現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小說을 쓴다는 것은 于先 나 自身을, 나의 內面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나의 內面에는 말하기 어려운 抑鬱함, 짓눌림, 슬픔, 苦痛 그런 게 있어요. 이 社會에서 살면서 抑壓된 것들이 있지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드러내보고 싶은 게 나를 小說家로 만들었어요.

    김호기 先生의 小說 ‘칼의 노래’ ‘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을 印象的으로 읽었습니다. 우리 歷史에 對한 先生의 웅숭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注目한 것은 이 小說들이 모두 過去의 이야기라는 點입니다. 光復 以後 우리가 살아온 現在의 問題에 對해 글을 쓰실 생각은 없습니까.

    왜 쓰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

    金 勳 ‘칼의 노래’는 壬辰倭亂 때 이야기잖아요. ‘남한산성’은 丙子胡亂 때고요. 朝鮮의 가장 慘酷한 戰爭에 對해 小說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뜻은 어느 程度 이룬 것이죠. ‘흑산’은 1801年 무렵 當代의 野蠻性에 對해 緻密하게 描寫했어요. 그럼 이제 當代의 問題, 나의 時代가 내 內面에 어떤 모습으로 貯藏됐는지, 그걸 드러내는 게 重要한 일인데, 더는 미뤄놓을 수 없을 程度로 時急한 일이 됐어요.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와 아버지의 時代에 對한 많은 會議와 憎惡感 같은 게 있어요. 한없는 憐憫도 있고요. 그런 것을 客觀化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서 津이 빠진 狀態죠.

    김호기 先生의 事由를 支撐하는 두 個의 기둥은 아버지 김광주 先生이 가졌던 中道的 民族主義의 以上과, 新聞記者와 小說家로 살아오면서 體得한 個人의 自律性과 想像力의 擁護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內面世界에서 繼續 緊張을 이뤄온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金 勳 아버지 世代와 民族陣營 분들은 解放된 韓國의 앞날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겠다는 비전이 明確하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現實을 制御하거나 시스템을 導入하는 것에 매우 弱했고 그런 것들이 아버지 世代를 流浪하게 만든 한 原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김호기 2015年 어떤 計劃을 세웠는지요. 先生의 作品을 기다리는 讀者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지요.

    金 勳 2015年에도 내가 생각하는 小說을 完成하지 못할 것 같아요. 좀 더 가야겠지요. 올해 우리나라에 對해 바라는 所望이 있다면, 南北韓이 都大體 왜 이런 敵對關係를 갖게 된 것인지 그것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거기에 對해 省察하는 時間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讀者 여러분도 뜻깊은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