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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투아네트’ 政策에 애덤 스미스가 高喊|新東亞

‘빵투아네트’ 政策에 애덤 스미스가 高喊

[노정태의 뷰파인더⑫] ‘經濟學의 아버지’가 본 文 不動産政策

  • 노정태 哲學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入力 2020-12-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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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만들겠다”

    • 前政府 탓이니 賃貸住宅 주겠다고?

    • ‘國富論’에 登場하는 푸줏間과 빵집 主人

    • 生産·所有·交換·去來는 人間 本性 發現

    • 他人의 經濟的 必要와 欲求 判斷 禁物

    뷰파인더는 1983年生 筆者가 陣營 論理와 묵은 觀念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時代 診斷書’입니다.

    11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11月 30日 서울 永登浦區 汝矣島 國會에서 열린 國土交通委員會 全體會議에서 金賢美 國土交通部 長官이 議員들의 質疑에 答辯하고 있다. 金 長官은 이날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동아일보 記者]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 金賢美 國土交通部 長官이 11月 30日 國會 國土交通委員會 懸案質疑에 參席해 내놓은 發言이다. 스스로는 奇拔한 比喩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國民 大多數는 荒唐하다고 느끼고 있다. 12月 1日 陳重權 前 東洋代 敎授는 페이스북에 그림 兄弟의 童話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菓子로 만든 집 揷畵를 揭示하며 “金賢美 長官님이 마련해주신 집이야”라고 썼다. 市民들도 ‘玄米 빵투아네트’ ‘玄米가 쌀이라면 當場 바꿀 것’ 같은 패러디로 和答하는 모습이다. 

    12月 4日 文在寅 大統領이 斷行한 改閣으로 金 長官은 곧 자리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의 말이라고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다. 金 長官이 이 말을 꺼낸 脈絡 때문이다. 그는 “2021年과 2022年 아파트 供給 物量이 줄어드는데, 그 理由는 5年 前 아파트 認許可 物量이 大幅 줄었고 公共宅地도 相當히 많이 取消됐기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하다 問題의 ‘빵 發言’을 내놨다. 住宅 價格 上昇, 前·月貰難 等 只今의 亂離통이 朴槿惠 政府 탓이라는 소리다.

    金 長官은 不過 얼마 前까지만 해도 아파트 供給은 充分하다고 했다. 이제 와서 아파트 供給이 不足하다고 慇懃슬쩍 認定하면서 화살을 前 政權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對策으로 “(아파트 代身) 多世帶나 빌라 等을 質 좋은 品質로 供給하겠다”고 했다. 金 長官 發言 이튿날인 12月 1日, 韓國土地住宅公社(LH)가 公開한 ‘觀光호텔 리모델링 賃貸住宅’(‘安岩生活’)은 文在寅 政府의 不動産 政策 指向點이 어디인지 잘 보여주는 듯하다 

    왜 아파트를 빵에 比喩했는지 그의 속내를 모두 알 수는 없다. 本人도 正確한 理由를 대지 못할 可能性이 크다. 하지만 金 長官의 發言은 資本主義, 더 나아가 人間 社會의 本質에 對해 省察해볼 機會를 提供해준다. 工巧롭게도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國富論’(The Wealth of Nations)에 登場하는 아주 重要한 洞察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푸줏間 主人, 釀造業者, 빵집 主人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7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청와대 영빈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文在寅 大統領이 2月 27日 金賢美 國土交通部 長官으로부터 業務報告를 받기 위해 靑瓦臺 迎賓館으로 入場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記者]

    “우리가 저녁食事를 期待할 수 있는 것은 푸줏間 主人, 釀造業者, 빵집 主人의 자비로운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利益을 考慮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人間的 溫情이 아닌 그들의 自己愛에 呼訴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必要가 아니라 그들의 利益을 이야기한다.” 

    讀者 여러분도 한 番쯤 接해봤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人間의 利己心을 讚揚했으며, 그것이 市場 經濟의 本質이라고 主張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引用하는 文章이기 때문이다. ‘利他心보다 利己心이 社會에 더 도움이 된다.’ ‘利他心을 讚揚하는 共産主義보다 利己心을 肯定하는 資本主義가 더 優越하다.’ ‘國富論’은 이런 內容을 담은 資本主義 體制의 弘報物로 看做되곤 한다. 

    18世紀 스코틀랜드 啓蒙主義者 애덤 스미스가 19世紀의 共産主義에 同調했을 理는 없다. 그러니 ‘共産主義보다 資本主義가 優越하다’는 解釋이 全的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옳다고 말하는 것도 多少 不適切하다. 이는 經濟學者이기 以前에 哲學者였던 애덤 스미스의 思想 體系를 狹小하게 解釋하는 結果로 이어진다. 위에 引用된 文章이 나온 脈絡을 살필 必要가 있다. 

    ‘國富論’은 總 다섯 卷으로 이뤄진 大作이다. 위에 引用된 文章은 그 中 第1卷에 나온다. 第1卷은 分業을 主題로 삼는다. 內容은 이렇다. ‘群集生活을 하는 다른 動物과 달리 人間은 複雜한 方式으로 社會를 構成하고 分業을 한다.’ ‘그 結果 오늘날의 文明을 이루게 됐다. 分業의 樣態가 精巧해지면서 資本主義가 꽃을 피우게 됐다.’ 애덤 스미스는 分業이 必然的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루소의 ‘社會契約論’을 聯想시키는 筆致로 說明한다. 

    “너무도 많은 優位를 提供해주는 勞動의 分化는 앞날을 豫測하며 全般的인 豐饒의 增進을 꾀하고자 하는 人類의 智慧 中 무언가의 影響 下에 나온 産物이 아니다. 分業은 얼핏 보기엔 그리 廣範圍한 效用을 지니고 있지 않은, 人間 本性이 지닌 特定한 屬性이, 느리고 漸進的인 過程을 통해 發現되어 나온 必然的인 結果物이다. 무언가를 쌓아두고, 맞바꾸고, 去來하고자 하는 傾向이 낳은 結果가 分業人 것이다.” 

    分業은 人間 本性의 結果物이다. 어떤 賢者가 떠올리고 퍼뜨린 發明品이 아니다. 人間이라면 누구나 物件을 쌓아두고, 남는 것을 남과 맞바꾸고, 市場을 열어 다양한 品目을 去來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니 社會라는 것을 構成했다. 社會의 規模가 커지면서 더욱 촘촘한 分業이 이루어진다. 이내 우리가 익히 아는 國家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人類學과 歷史學을 넘나드는 人文學的 洞察이다.

    市場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人間은 社會的 動物이다. 모여 살고, 各自의 才能과 趣向 等에 따라 서로 다른 일을 한다. 市場에서의 活動을 위해 貨幣를 비롯해 다양한 制度와 機構 等이 誕生한다. 卽 市長은 團地 돈벌이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國富論’ 1卷 2張을 ‘自由 競爭에 對한 禮讚’으로 解釋하는 것은 不當하다. 그 대목에서 애덤 스미스는 金氏네 푸줏間과 朴氏네 푸줏間의 競爭에 對해 말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農事를 짓고, 다른 이는 屠畜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술을 담그고 그 옆에서는 하루 終日 반죽을 치대며 火덕에 빵을 굽는 共同體 生活을 論하고 있다. 代替 社會는 왜 存在하는가? 왜 사람들은 各其 다른 職業을 갖고 協力하며 살아가는가? 이 모든 것이 人間 本性의 産物이자 只今 우리가 아는 市場經濟의 바탕을 이룬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다. 

    애덤 스미스가 前提하고 있는 人間觀은 무엇일까. 그는 ‘스코틀랜드 啓蒙主義’라는 哲學 思潮의 一員이었다. 1707年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合倂했다. 스코틀랜드 知識人과 中産層은 以前과 달리 中央 政治로의 進入이 어려워졌다. 過去에는 에딘버러(스코틀랜드)가 中心地였지만 하루아침에 낯선 런던(잉글랜드)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政界에서 疏外된 그들은 프랑스 革命을 憧憬하며 클럽에 모여 討論을 이어갔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애덤 퍼거슨 같은 思想家뿐 아니라 蒸氣機關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 小說家 월터 스콧 等도 스코틀랜드 啓蒙主義의 一員으로 評價받는다. 

    이들은 初期 資本主義의 活氣를 온 몸으로 具現했다. 人間은 運命을 自己 힘으로 開拓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할 道德的 義務를 지니고 있다는 게 스코틀랜드 啓蒙主義의 暗默的 前提였다. 그런 精神은 ‘國富論’의 바탕에도 到底하게 깔려 있다.


    乞人도 市場의 構成員이다

    푸줏間 및 釀造場과 빵집 主人, 各自의 利益을 圖謀하는 市民들의 分業에 對해 이야기한 直後, 애덤 스미스가 다루는 네 番째 職業이 있다. 職業이라는 말이 多少 不適切할 수 있지만, 正答은 ‘乞人’(beggar)이다. 他人의 好意에 全的으로 期待 生計를 維持하는 乞人에 對한 論議가 푸줏間, 釀造場, 빵집 主人의 뒤를 이어 곧바로 登場한다. 內容은 이렇다. 

    “乞人이 아닌 다음에야 그 누구도 同僚 市民의 寬大함에 自身의 삶을 主로 依託하지는 않는다. 甚至於 乞人마저도 그의 삶 全體를 同僚 市民에게 기대고 있지는 않다. 여유로운 사람들은 乞人이 必要로 하는 모든 것을 줄 수도 있겠으나, 實際로는 乞人이 必要로 하는 것을 願할 때 줄 수도 있고 못 줄 수도 있다. 따라서 乞人은 그의 必要를 다른 이들과 같은 方式으로 充足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좀 어렵다. 무슨 뜻일까? 남에게 積善을 받아 生活하는 乞人이라고 해도, 分業을 통해 이루어진 촘촘한 社會的 經濟의 그물網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假令 어떤 乞人이 어제는 추워서 毛布를 必要로 했지만 오늘은 추위가 가셔서 毛布를 願치 않는다고 해보자. 寬大한 慈善團體는 어제와 오늘 모두 乞人들에게 毛布를 나눠줬다. 이 境遇 乞人은 두 張의 毛布를 손에 넣는다. 둘 다 쓸 수도 있겠으나, 한 張은 自身이 쓰고 다른 하나는 保管할 수도 있다. 或은 다른 이와 맞交換하거나 市場에 팔아 그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購入할 수도 있다. 

    여기서 核心 原理는 두 가지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代身해 그 사람의 經濟的 必要와 欲求를 判斷할 수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慈善家라 해도 乞人이 必要로 하는 모든 것을 直接的인 形態로 곧장 提供할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經濟的으로 가장 脆弱한 位置에 놓인 理라 해도 社會的 存在로서 經濟 活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바 人間의 모든 經濟 活動은 契約, 物物交換, 去來로 나뉜다. 乞人들 亦是 남과 約束을 하고 願하거나 願치 않는 物件을 서로 바꾼다. 求乞을 통해 얻은 돈으로 이것저것 購入하기도 한다. 그 어떤 人間이 모든 判斷과 行動을 他人 或은 國家 等에 依存해 살아간다는 건 不可能하다. 

    故로 애덤 스미스의 ‘빵집 主人’ 이야기를 ‘最善을 다해 競爭하자’는 式으로 解釋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뜻을 외려 偏狹하게 만드는 結果를 낳기 때문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乞人의 經濟生活에 對한 대목과 함께 吟味할 때 애덤 스미스의 ‘빵집 主人’은 비로소 穩全한 脈絡을 갖춘다. 스스로 돈을 벌지 않고 他人의 積善에 依存해 사는 사람도 如前히 社會의 一員이자 市場 經濟의 構成員이다. 人間 存在의 바탕으로서 社會가 存在한다. 그 社會는 곧 어떤 形態의 市場이다. 매우 根源的 次元의 論議라고 읽어내야 마땅하다.


    食堂과 메뉴를 스스로 고를 權利

     12월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뉴스1]

    12月 2日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團地. [뉴스1]

    2020年의 大韓民國으로 돌아와 보자. 金賢美 長官은 아파트는 빵이 아니고, 밤을 새서라도 더 만들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며, 따라서 賃貸住宅을 늘리겠다는 ‘奇跡의 論理’를 提示했다. 文在寅 政府의 ‘묻지마 支持者’가 아닌 大部分의 市民들은 本能的인 不快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일까? 왜 저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氣分이 나빠지는 걸까? 

    自身들이 벌였던 온갖 無責任한 政策에 對해 謝過는 고사하고 言及조차 하지 않으며 지난 政權을 辱하는 뻔뻔한 모습에 火가 날 수도 있다. 國民 情緖와 동떨어진 比喩를 들이대는 話法에 어딘가 우롱당하는 氣分이 들 수도 있을 터다. 베이킹파우더를 쓰지 않고 이스트를 利用해 發效시키는 빵을 만들 境遇, 한 걸음 더 나아가 天然 發效種을 만들어서 빵을 굽는 境遇, 적잖은 時間과 努力이 必要한데 그것을 無視하는 듯한 印象을 받을 지도 모른다. (萬若 더불어民主黨이 野黨일 때 政府 關係者가 저런 말을 했다면, 민주당은 ‘全國製빵士協會’ ‘빵 만드는 엄마들’ 같은 正體不明의 團體를 앞세워 들고 일어났을 거다. 第1野黨의 力量 不足을 實感한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本質的인, 經濟的인, 或은 ‘人文學的인’ 理由를 알고 있다. ‘國富論’의 한 대목을 꼼꼼히 읽었으니 말이다. 애덤 스미스가 잘 看破했다시피 모든 人間은 社會的 動物이며 同時에 經濟的 動物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生産하고 所有하고 交換하고 去來하는 그 모든 行爲는 人間的 本性의 發現이다. 어떤 製品이나 서비스의 生産과 去來 等은 公益的 目的을 위해 制限될 수 있지만, 그런 制約은 最少化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人間이고, 人間에게는 經濟的 活動의 自由가 곧 人權이기 때문이다. 

    이 原理는 住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適用된다. 우리 社會에는 住宅을 賣買의 對象이 아닌 居住의 對象으로만 바라보는 게 옳다고 보는 이들이 적잖다. 不幸하게도 現 政權의 醫師決定權者들 사이에 그런 이들이 大擧 布陣해 있는 듯하다. 집은 ‘사는 것’(賣買 對象)李 아니라 ‘사는 곳’(住居 場所)이라는 그럴듯한 캐치 프레이즈가 그들의 世界觀을 잘 보여준다. 長長 3年 5個月 間 國土部 長官을 지낸 金賢美, 그 任命權者인 文在寅 大統領 亦是 같은 思考方式을 共有하고 있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볼 때 이런 思考方式은 非人間的이다. 人間이 지니고 있는 가장 重要한 本能, 市場을 形成하고 去來를 하며 社會的 存在로서 살아가고픈 本能을 否定하기 때문이다. 政府에서 施惠的인 손길로 ‘지어준’ 집에 貰 들어 사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쁘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自身의 能力으로 집을 購入하고 價格의 騰落에 따라 賣買도 하는 모습이 훨씬 더 ‘人間的’이다. 이는 마치 나누어주는 食單 外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乞人이나 收容者보다는, 食堂과 메뉴를 스스로 고를 수 있는 大部分의 사람이 훨씬 人間的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빵과 人間的 삶의 否定

    金賢美 長官은 아파트를 나라에서 다 만들어주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제때 願하는 만큼 供給할 수 없는 理由는 지난 政府 탓이라고 화살을 돌리며, 代身 賃貸住宅을 提供하겠다는 式으로 말했다. 그의 發言은 여러 모로 問題的이다. 金賢美와 그를 앞세운 文在寅 政府는 우리의 人間的 삶에서 重要한 部分을 否定하고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所有하고 스스로의 判斷에 따라 市場에서 去來할 때 비로소 穩全한 사람이 된다. 所有와 賣買가 可能한 아파트 代身 賃貸住宅을 주겠다던 金 長官은 或如 우리를 사람 以下의 存在로 바라봤던 건 아닌가. 우리가 人間임을 證明하기 위해서는 憤怒할 수밖에 없다.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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