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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化의 颱風, 中國 ‘돈맛’ 이겨낼까|신동아

한 글字로 본 中國 | 臺灣

變化의 颱風, 中國 ‘돈맛’ 이겨낼까

受難의 ‘半쪽 國家’

  • 글 · 寫眞 김용한 | yonghankim789@gmail.com

    入力 2016-03-03 13: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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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臺灣 사람들이 “나는 차이니즈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自身들은 中國人과 달리 先進 經濟, 優雅한 社會, 高尙한 文化를 누린다는 自負心이 깔려 있다. 臺灣은 지난 總統選擧에서 차이잉원(蔡英文)을 選擇함으로써 中國 依存 一邊倒에서 벗어나려는 意志를 비쳤다. 토네이도 같은 兩岸關係는 다시금 試驗臺에 올랐다.
    臺灣 男子와 中國 女子가 만나 마음을 통하고 몸을 통하고 情을 통하게 됐다(三通). 둘이 처음 關係를 맺는 瞬間, 臺灣 男子가 感激에 겨워 외쳤다. “臺灣이 大陸을 統一했어!” 그러자 中國 女子가 맞받아쳤다. “천만에. 臺灣은 中國에 完全 包圍됐고, 두 個의 작은 섬 진먼(金門)과 마쭈(馬祖)만 가까스로 包圍를 면했지.”
    가장 私的인 戀人關係度 쉽게 政治 關係로 變하는 곳. 中國人은 ‘中華人民共和國의 23番째 性’인 대만성(臺灣省)으로 여기고, 臺灣人은 쑨원의 嫡統을 이어받은 中華民國으로 여기는 곳. 臺灣이다.



    政治·文化史的 이름 ?

    臺灣의 略稱은 ‘땅 이름 臺(台, 繁體者는 臺)’다. 폴리네시아人 等 多樣한 原住民이 살던 臺灣에 네덜란드의 東印度會社가 찾아왔다. 시라야족 原住民은 稀罕하게 생긴 네덜란드人을 ‘他이오안’(外國人)이라 불렀고, 네덜란드人은 이를 땅 이름이라 여겼다.
    사람은 가도 이름은 남았다. 後날 네덜란드人을 몰아낸 中國人은 이 이름을 音借해 中國式 名稱 ‘타이완(臺灣)’을 만들었다.
    臺灣이라는 이름엔 많은 事緣이 담겼다. 原住民과 네덜란드人의 만남에서 만들어진 이 이름은, 臺灣이 다양한 사람과 文化가 만나는 섬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이 이름이 原住民의 말에서 네덜란드人의 로마字 表記로 옮겨졌다가, 다시 中國人의 漢字로 바뀐 것은 섬의 主導權을 잡은 勢力의 變遷史를 보여준다. 卽 ‘타이완’은 政治史的, 文化史的 이름이다.
    臺灣 섬은 韓半島처럼 中國 大陸과 하나였다. 1萬 年 前 海水面이 上昇하면서 韓半島는 黃海가 생겨 半島가 되고, 臺灣은 臺灣海峽이 생겨 섬이 됐다. 海水面이 上昇해도 가라앉지 않은 데서 보듯 全體 面積의 64%가 山이다. 100個가 넘는 山은 平均海拔 3000m이고, 最高峯인 胃酸(玉山)은 3952m의 높이를 자랑한다. 環太平洋 火山帶라 地震이 잦지만 溫泉도 많다. 北回歸線은 臺灣 北部를 溫帶濕潤 地域, 南部를 亞熱帶 地域으로 가른다. 작은 섬이지만 植生이 豐富하고 다양한 作物을 기르기 좋다.
    180km의 臺灣海峽 德分에 臺灣은 中國과 密接한 關係를 맺으면서도 나름의 獨自性을 지킬 수 있었다. 太平洋圈이라 日本, 東南亞 等과 往來하기도 좋다. 섬인 만큼 臺灣은 뱃사람들과의 因緣을 떼려야 뗄 수 없다. 臺灣의 歷史는 바다를 건너온 征服者들이 交替돼온 歷史였다. ?
    ‘太平洋의 王子’ 폴리네시아人은 바닷물에 손을 담그기만 해도 水平線 너머 섬까지의 距離와 防衛를 알 程度로 航海術이 뛰어났다. 이들의 大洋 航海는 오늘날의 宇宙旅行에 맞먹는 스케일이었다. 폴리네시아人은 臺灣은 勿論 필리핀, 말레이시아, 濠洲, 뉴질랜드, 하와이, 통가 等을 두루 누볐다. 이들의 痕跡은 言語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스트로네시아어(Austronesian Languages)足 또는 南道어(南島語)족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 통가, 東南亞의 말레이語, 타갈로그語(필리핀 原住民 言語) 等 廣範圍한 地域에 퍼져 있다. 特히 臺灣은 모든 種類의 南道魚族이 다 살고 있다.



    最初의 征服者

    바다에 살던 海洋民族은 臺灣에서 定着 生活을 하며 平地에 사는 平鉋族과 山에 사는 高山族으로 變했다. 여기에 中國人들도 찾아와 더러는 定着해 農事를 지었고, 더러는 日本과 中國을 오가며 臺灣을 據點으로 密貿易과 海賊질을 했다.
    이때만 해도 臺灣에는 確固한 支配者가 없었다. 臺灣의 첫 公式 支配 勢力은 생뚱맞게도 멀고먼 나라 네덜란드였다. 大航海時代를 연 유럽은 中國과 印度 貿易을 위한 據點 마련에 熱을 올린다. 先發走者 포르투갈은 中國 最大의 貿易港 광저우와 가까운 마카오에 일찍 터를 잡았고, 後發走者 네덜란드는 臺灣을 據點으로 삼았다. 臺灣은 푸젠과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中國과 日本을 잇는 中間 地點으로서 中일무역에도 적합했다.
    1624年 네덜란드 東印度會社가 臺灣을 占領한 뒤부터 中國人들이 本格的으로 늘어났다. 臺灣 原住民은 數도 적고 生産力도 낮았기에 駐屯軍은 必要한 만큼의 食糧을 充分히 確保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中國人들에게 農土와 農器具를 支援하며 移住를 奬勵했다. 때마침 明末淸楚 凶年과 戰爭에 시달리던 中國人이 大擧 臺灣으로 건너왔다.
    타고난 일꾼인 中國人은 잠자던 臺灣을 깨웠다. 占領 初期 東南亞, 日本에서 食糧을 輸入하던 臺灣은 곧 沙糖수수, 쌀 等을 輸出했다. 臺灣의 急速한 農業生産力 發達은 中國人의 急速한 移住와 맞물렸다. 따라서 歷史가 토니오 안드레이드는 臺灣 사람이 ‘中國人’李 된 것은 네덜란드가 臺灣을 植民地로 삼은 德分이라고 主張한다.
    太平洋에 놓인 臺灣은 中繼貿易으로서도 最適地였다. 네덜란드는 中國, 日本, 東南亞, 中東과의 中繼貿易으로 莫大한 收益을 올렸다. 當時 東印度會社? 社員 中 漂流하다 朝鮮까지 흘러들어온 사람이 우리에게도 親熟한 벨테브레(朴堧)와 하멜이다. 네덜란드의 活潑한 海上貿易 活動이 엿보인다.



    鄭成功 牽强附會

    그러나 네덜란드의 統治는 오래가지 않았다. 푸젠의 實力者 鄭成功은 半晴復命(反?復明) 戰爭을 일으켰다가 淸나라에 敗했다. 鄭成功은 바다로 隔離돼 淸의 攻勢를 避할 수 있으면서 언제라도 다시 大陸으로 쉽게 갈 수 있는 臺灣을 據點化하기로 했다. 1661年 鄭成功은 ‘홍모귀’(紅毛鬼, 네덜란드人)를 물리치고 마침내 臺灣의 王이 된다.
    後날 中國 共産黨은 鄭成功을 稱頌한다. 鄭成功은 푸젠성 出身으로서 外勢를 물리치고 臺灣을 征服했으니, 大陸이 臺灣을 征服한 模範事例다. 臺灣 國民黨도 鄭成功을 떠받든다. 鄭成功은 臺灣을 根據地로 大陸 本土의 야만스러운 政府에 屈하지 않고 抗爭을 펼친 만큼 臺灣이 大陸을 征伐해야 한다는 當爲性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日本 植民統治者 亦是 鄭成功을 좋아했다. 鄭成功은 中國人 아버지와 日本人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臺灣을 征服한 最初의 ‘日本人’이기도 하다. 그래서 1898年 日本의 臺灣總督은 赴任하자마자 鄭成功의 祠堂을 參拜했다. 中國人 아버지와 日本人 어머니 사이의 아들, 海賊 家門의 後裔이며 海上貿易上이던 鄭成功의 複雜한 背景은 臺灣의 複雜 微妙한 歷史를 反映한다.
    鄭成功은 한결같이 半晴復命을 꿈꿨지만, 淸과 臺灣의 勢力車는 너무나 컸다. 鄭成功의 아들 情景은 淸의 霸權을 認定하되 臺灣의 獨立性을 지키는 現實主義 路線을 擇했다. 情景은 使臣을 보내 “朝鮮의 例를 따라 削髮하지 않고 다만 臣下를 稱하며 貢納을 바치는 線에서 關係 維持를 希望”했다. 그러나 淸은 이를 拒否하고 萬株式 辮髮을 하고 投降하기를 願했다. 朝鮮은 丙子胡亂 敗戰 後 屈辱的인 三軌勾股두례(三?九叩頭禮)를 했으되 請에 協力하자 獨立性을 維持할 수 있었다. 청은 臺灣이 朝鮮과 달리 中國의 領土임을 못 박았다.
    다만 청은 叛亂者의 集合所인 臺灣을 討伐하고자 한 것이지, 臺灣 섬 그 自體에 對해서는 興味가 없었다. 卓越한 水軍提督 侍郞이 臺灣을 征服했을 때 請은 臺灣人을 移駐시켜 섬을 아예 비워버릴 생각을 했다. 그러나 侍郞은 臺灣의 價値를 꿰뚫어보고 反對 上疏를 올렸다. 臺灣은 土地가 肥沃하고 物産이 豐富해 經濟的 價値가 높을 뿐만 아니라 中國의 장쑤, 貯藏, 푸젠, 광둥 等 沿海地域을 지키는 戰略的 要衝地로 緊要하다는 內容이었다. 侍郞의 말은 正確했다. 먼 後날 이 땅에 눈毒을 들여 病弱한 淸나라 代身 臺灣을 차지한 것은 新興 列强으로 浮上하던 日本이었다.


    ‘Chinese ≠ Taiwanese’

    臺灣은 面積 3萬6193㎢로 벨기에(藥 3萬㎢)보다 크고, 2014年 基準 名目 GDP(國內總生産) 5300億 달러로 벨기에와 거의 비슷하다. 人口는 2300萬 名으로 벨기에(1100萬 名)보다 훨씬 많고 濠州와 엇비슷하다. 웬만큼 넓은 領土, 强한 經濟力, 많은 人口를 갖췄지만 國際社會에서 國家로 인정받지 못한다. 닉슨은 1972年 “7億5000萬 名을 排除하고는 世界平和를 이룩하기 어렵다”며 中國을 유엔에 加入시키고 臺灣을 退出시켰다. 臺灣은 反共 資本主義 政權, 빠른 經濟成長으로 自由 陣營의 ‘模範生’으로 통했지만, 美國은 덩치 큰 中國을 選擇했다.
    이때부터 臺灣은 國家로 인정받지 못했다. 以後 國際社會에서 臺灣이 겪은 受難은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릴 程度다. 國際機構에 參與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不利益을 가져온다. 一例로 世界氣象機構(WMO)를 살펴보자. 颱風(颱風)이란 말이 ‘臺灣의 바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데서 보듯, 臺灣은 颱風이 頻繁히 몰아닥치며 被害도 매우 크다. 周邊國들과의 圓滑한 氣象情報 交流가 切實한 臺灣은 WMO의 創設 會員國이지만, 유엔 逐出과 함께 WMO에서도 除名됐다. 現在도 재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筆者는 2003年 캐나다에서 語學硏修를 할 때 外國 親舊를 여럿 사귀었다. 當時만 해도 中國의 經濟가 充分히 發展하지 않은 때라 中國人은 보기 힘들었고 臺灣人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를 中國人(Chinese)이 아니라 臺灣人(Taiwanese)으로 일컬었다. 그들이 中國人에 對해 가진 引上은 매우 좋지 않았다. “中國人들은 利己的이야(Chinese are selfish).”
    當時는 中國人들을 만난 적이 없던 터라 잘 理解되지 않았지만, 後날 直接 經驗해보고 알았다. 中國人은 公共秩序와 에티켓 觀念이 稀薄하고, 남에게 弊 끼치는 것을 操心하지 않아 매우 利己的으로 보인다. 當時 臺灣 親舊들은 先進 經濟, 優雅한 社會, 高尙한 文化를 누리고 있어 自身들이 淺薄하고 利己的인 中國人과는 다르다고 線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臺灣의 自信感은 오래가지 못했다. 臺灣은 每年 ‘올해의 한 글字(台灣年度代表字)’를 選定한다. 이 글字들의 變遷史를 보면 臺灣의 苦衷과 民心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2008年은 ‘어지러울 난(亂)’의 해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事態로 世界經濟가 큰 打擊을 입자 輸出 依存度가 높은 臺灣 經濟도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中國은 베이징 올림픽을 열며 世界를 삼킬 듯한 大陸崛起의 氣勢를 보여줬다. 더욱이 中國은 臺灣 獨立論을 主張하는 民進黨을 곱게 보지 않아 經濟制裁를 取했고, 이에 臺灣 經濟는 二重苦를 겪었다. 兩岸關係의 危機와 獨立 贊反論의 熾烈한 對立은 큰 混亂을 일으켰다. 臺灣 國民은 國民黨의 마잉주(馬英九)를 總統으로 뽑아 一旦 兩岸關係를 안정시키도록 했다.
    兩岸關係의 回復은 바로 效驗을 보여 臺灣은 2010年 經濟成長率 10.8%, 2011年 國民所得 2萬 달러를 達成했다. 그러나 民生은 오히려 惡化됐다. 設問調査에서 應答者의 93%가 所得不平等이 深刻하다(2009년)고, 80.5%가 貧富葛藤이 深刻하다(2010년)고 答했다. 2009年엔 不安한 現實을 지켜봤지만(盼, 바랄 分), 2010年 社會 雰圍氣는 冷淡했다(淡, 싱거울 담). 2011年 雰圍氣 反轉을 꾀했지만(讚, 稱讚할 찬), 2012年 다시 걱정에 휩싸였다(憂, 근심할 禹). 賃金은 낮아지는데 物價와 不動産은 올라 兩極化는 심해져만 갔다.



    換! 차이잉원 當選의 숨은 뜻

    2013年은 ‘假짜 가(假)’였다. 假짜 食用油 波動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는 臺灣人들을 公憤케 했다. 中國料理는 기름을 많이 使用하는데 기름에 問題가 있다면 뭘 安心하고 먹을 수 있겠는가. 臺灣人은 中國의 經濟와 國際的 位相이 아무리 莫强해도, 文化 水準과 倫理意識만큼은 臺灣이 中國보다 더 낫다는 自負心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는 中國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自愧感에 빠진 것이다.
    假짜 食用油 이슈는 곧바로 食品安全, 環境汚染 問題를 거쳐 社會 紀綱과 倫理 問題로까지 波及됐다. 經濟發展을 내세워 再執權에 成功한 國民黨은 經濟를 발전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社會까지 병들게 만들었다는 批判이 쏟아져 나왔다. “百年腐敗政黨 國民黨은 臺灣을 1949年으로 되돌리고 있다.” “마잉주는 장징궈와 리콴유의 能力도, 쑹추위의 부지런함도, 리덩후이의 民主憲政에 對한 信念도 없다.”
    2014年은 ‘劍을 黑(黑)’이었다. 臺灣은 ‘시커먼 마음과 假짜 商品, 검은 돈 等 모든 것이 다 暗澹하다(黑心?,黑心商品?,黑錢?。 什?都黑?!)’는 絶望에 빠졌다. 그러나 가장 暗澹한 瞬間에 變化의 希望이 생기는 法이다. 臺灣은 그 어느 때보다도 變化를 願했다.
    2014年 11月 29日, 타이베이 旅行의 첫날이라 隨時로 宿所를 들락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런데 宿所 女主人은 하루 終日 TV로 地方選擧 開票結果만 지켜보고 있었다. 國民黨이 꽤나 剛한 줄 알았는데 意外로 民進黨이 壓勝을 거두고 있었다. 靑色 代身 綠色이 臺灣을 덮었다. 傳統的으로 國民黨 强勢인 北部에서도 아주 保守的인 一部 地域 빼고는 다 野黨의 勝利였다. 傳統的으로 野黨色이 剛한 南部는 말할 必要도 없었다.
    “臺灣 사람들이 正말 火났군요.”
    “아니, 우리는 正말 아주아주 화난 거지.”
    “천수이볜 다음에 國民黨의 마잉주가 當選돼서 國民黨이 如前히 剛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거죠? 都大體 6年 동안 國民黨은 뭘 한 건가요?”
    “아주 나쁜 일들.”
    다음 날 臺灣 親舊 슈를 만났다. 그는 選擧 前 페이스북에 이番 選擧를 잘 치러야 한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고, 이番 結果에 洽足한 듯했다.
    “놀랐어. 이番 選擧 結果 보니 온통 綠色이더라.”
    슈의 女子親舊는 내 말을 弄談으로 받았다. “그런데 넌 왜 파란色 셔츠를 입고 있니? 操心하라고.”



    中國이라는 ‘돈맛’

    國民黨이 都大體 뭘 한 거냐는 質問에 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 女主人은 國民黨이 아주 나쁜 일을 했다고 말하고, 슈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한다. 綜合해보면, 臺灣人들이 보기에 國民黨은 좋은 일이라곤 아무것도 안하고, 나쁜 일들만 잔뜩 한 것이다. 民心의 離叛이 놀라웠다. 며칠 後, 마잉주는 選擧 대패에 對한 責任을 지고 國民黨 代表에서 辭退했다.
    變化의 기운이 넘치는 臺灣답게 2015年의 代表文字는 ‘바꿀 患(換)’字였다. 2016年 1月 16日 民進黨 차이잉원(蔡英文)의 總統 當選은 이때 이미 豫告된 셈이다.
    ?이제껏 臺灣을 支配한 勢力은 모두 外部에서 왔고, 주된 關心事 亦是 臺灣 自體가 아닌 外部에 있었다. 臺灣은 언제나 貿易基地나 中國 進出의 手段으로 여겨져왔다. 오랜 陣痛 끝에 臺灣은 드디어 스스로의 손으로 指導者를 뽑게 됐다.
    그러나 마음대로 方向을 決定할 수 있을까. 中國과 臺灣의 隔差는 너무도 懸隔하며, 中國은 臺灣을 決코 抛棄하지 않는다. 中國은 臺灣에 貿易黑字를 讓步한 代身, 臺灣의 大衆 依存度를 심화시켰다. 中國이라는 ‘돈맛’을 보고나면 臺灣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란 計算이다.
    中國의 로맨틱 코미디 映畫 ‘愛嬌 있는 女子가 最高(撒嬌女人最好命)’에서는 상하이 女子와 臺灣 女子가 中國 男子를 놓고 사랑戰爭을 벌인다. 臺灣 女子는 매우 奸巧하고 僞善的인 내숭덩어리이고 상하이 女子는 매우 眞實한 사람인데, 結局 상하이 女子가 苦難을 딛고 勝利한다. 中國이 臺灣에 꼭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나한테는 안 되거든.”
    쯔위 事件에서 보듯 兩岸關係는 平常時에는 아무 問題도 없어 보이지만 些少한 일로 瞬息間에 큰 緊張을 낳기도 한다. 兩岸關係는 平穩해 보이다가 느닷없이 불어닥치는 토네이도를 닮았다.



    金 龍 한
    ● 1976年 서울 出生
    ● 연세대 物理學科, 카이스트 Techno-MBA 專攻
    ● 前 하이닉스반도체, 國防技術品質院 硏究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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