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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化 胎動地? 膨脹主義 發源地!|新東亞

東아시아 激戰場을 가다

近代化 胎動地? 膨脹主義 發源地!

日 二重性의 뿌리 야마구치

  • 전계완 | 時事評論家, ‘日本, 다시 侵略을 準備한다’ 著者 jkw68@daum.net

    入力 2016-03-07 14: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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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시다 쇼인 ‘征韓論’ 本産, 유네스코 世界遺産 登載
    • 總理 8名 排出…아베로 繼承
    • 慰安婦 合意 말 바꾸기…‘신념’으로 韓日關係 接近
    • ‘日 歷史는 不可避한 狀況’ 自慰…客觀的 評價 失踪
    야마구치(山口)縣은 日本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本州) 地方 西南쪽 끝에 있다. 地理的으로는 邊方이지만 强大國 日本의 出發지다. 人口 140萬 名으로 日本 全體 人口(1億2800萬餘 名)의 1%를 조금 넘는 이곳에서 歷代 總理 57名 中 8名이 輩出됐다. 그中에서도 人口 5萬 名의 하기(萩)시는 지난 150年間 日本 近現代史를 裝飾한 歷史의 發源地다. 이토 히로부미가 태어난 곳이자, 아베 신조 總理 집안도 이곳을 基盤으로 成長했다. 아베 總理의 衆議院選擧 地域構圖 야마구치다.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 그렇게 有名한 사람들이 輩出됐을까. 當然하면서도 흥미로운 質問이 튀어나온다. 2月 初 筆者는 大學敎授, 言論人 等과 함께 하기를 찾았다. 都市 곳곳에 내걸린 크고 작은 懸垂幕들은 ‘世界文化遺産 登載’를 祝賀하고 있었다. 메이지維新을 背景으로 한 NHK 大河드라마 ‘하나母乳(花燃ゆ, 꽃 타오르다)’의 세트場度 있어 全國에서 觀光客이 몰려든다.



    쇼카손주쿠(松下村塾) 精神

    하기의 자랑인 社說 書堂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지난해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에 登載됐다. 유네스코는 植民地 侵奪 論難에도 日本 메이지維新(1868) 時期의 제철, 鐵鋼, 造船, 石炭産業을 文化遺産으로 登載했다. 産業施設이 아닌데도 쇼카손주쿠를 文化遺産으로 登載할 수 있느냐는 指摘이 나왔다. 韓國 歷史 團體들은 “朝鮮 侵略을 正當化한 征韓論(征韓論) 思想의 뿌리인 만큼 文化遺産 登載는 不可하다”고 主張하며 反對運動을 벌였다. 유네스코 精神이 ‘平和主義’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基本이다. 그런데도 日本은 自己 뜻대로 밀어붙였고, 結局 쇼카손주쿠는 아베 總理의 意志대로 ‘堂堂하게’ 유네스코 流産이 됐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이 ‘産業’이라는 이름의 遺産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베 政府가 ‘끼워 넣기를 해서라도’ 世界遺産으로 만들어야 하는 意圖는 읽을 수 있었다. 아베의 精神 世界에 쇼카손주쿠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쇼카손주쿠는 우리말로 ‘소나무 아래 工夫房’이다. 1858年 沒落해가던 封建 幕府時代의 列島 끝자락 시골에서 體制 顚覆을 꿈꾸는 革命家가 나왔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그는 理論家이면서 同時에 實踐家였다. 嚴格한 身分 社會였지만 그는 出身 成分을 따지지 않고 弟子를 모아 革命精神을 불어넣었다. 天皇을 앞세우고 西洋을 排斥하면서 幕府 體制를 무너뜨리자는 게 核心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朝鮮時代에 地方의 書院에서 革命思想을 키우고 王朝를 무너뜨리려 逆謀를 꾀한 것과 같다. ?
    요시다 쇼인은 無能한 執權勢力(幕府政權)李 1853年 美國 페리 艦隊에 屈服해 强制 開港을 當하는 光景을 봤다. 同時에 그는 西洋의 힘을 客觀的으로 읽었다. 이듬해 西洋을 배우려고 海外 密航을 試圖하다 잡혀 監獄에 갇혔을 때 ‘유수록(幽囚錄)’을 썼고, 몇 年 뒤 自由의 몸이 되자 1857年 쇼카손주쿠를 열어 弟子들을 불러모았다. 10代와 20代 靑年이 大部分이었다.
    그는 體制 全鰒은 勿論 西洋으로부터 받은 被害를 이웃 나라에서 되찾아와야 한다고 가르쳤다. 홋카이도(北海島) 開拓, 류큐(琉球, 오키나와)와 朝鮮 征伐, 滿洲와 필리핀 鹵獲 等을 指針으로 내렸다. 帝國主義 侵略을 正當化하는 征韓論과 大東亞共榮론(大東亞共榮論)을 說破했다. 요시다 쇼인은 自身의 體制 顚覆(幕府 打倒) 計劃이 發覺돼 1859年 30歲 젊은 나이에 刑場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의 死後 9年 만에 日本 下級 武士들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메이지革命을 성공시켰다.


    요시다 쇼인의 弟子들

    쇼인은 쇼카손주쿠에서 2~3年 동안 弟子들에게 自身의 思想을 깊숙하고도 徹底하게 刻印시켰다. 只今도 原形이 保存돼 있는 쇼카손주쿠 30㎡ 다다미방에서 日本 初代 總理와 朝鮮 初代 總督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 賣國奴 李完用과 함께 韓日倂合에 圖章을 찍은 데라우치 마사打케, 美國과 함께 필리핀과 朝鮮을 各各 나눠 먹은 가쓰라-태프트 密約의 當事者 가쓰라 故로, 淸日戰爭 當時 朝鮮 第1司令官을 지내고 아시아 膨脹主義를 主導한 야마가타 아리토모 等이 工夫했다. 작은 漁村 마을 ‘소나무 工夫房’에서 日本을 뒤집고 아시아를 帝國主義 侵略戰爭의 恐怖로 몰아넣은 ‘怪物’들이 誕生한 것이다.
    그래서 쇼카손주쿠는 日本 帝國主義 思想의 本山으로 불린다. 學堂 앞 大型 碑石에는 아베의 작은外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 前 總理가 直接 쓴 ‘메이지維新 胎動支持(明治維新胎動之地)’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歷史는 解釋’이라고 했던가. 우리 一行에게는 革命의 胎動地가 아니라 아시아 膨脹主義의 發源地로 읽혔다.


    아베 總理는 2013年 8月 쇼카손주쿠 뒷山에 있는 요시다 쇼인의 墓所를 찾았다. 集團自衛權 問題로 周邊國과의 關係가 最惡으로 치달을 때였다. 美國의 警告에도 日本은 ‘剛한 日本’을 외치며 ‘戰爭할 수 있는 國家’를 向해 進擊하고 있었다.
    아베 總理는 自身이 가장 尊敬하는 人物이 요시다 쇼인이라고 했고, 무덤 앞에 무릎 꿇고 “決心을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그 決心이 무엇인지는 具體的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를 본 이들은 아베의 움직임이 尋常치 않다고 判斷했다. 그해 12月 아베 總理는 야스쿠니 神社를 電擊 參拜했다. 가고시마에 뿌리를 둔 고이즈미 준이치로에 이어 歷代 日本 總理로는 두 番째 參拜였다. 韓國과 中國이 크게 反撥했지만 이미 狀況이 끝난 뒤였다. 아베의 參拜 以後 日本 極右 政治人의 야스쿠니 神社 參拜는 日常이 됐고, 最近에는 參拜 自體가 뉴스가 되지 않을 程度다. 太平洋戰爭 A級 戰犯 位牌가 있는 곳이 國家 公認 參拜地로 바뀐 셈이다.




    ‘再解釋’韓 피의 歷史

    요시다 쇼인의 墓所 뒤쪽에는 下級武士로서 騎馬兵 負袋를 만들어 傳說的으로 戰爭을 遂行한 弟子 다카스키 神社쿠의 무덤이 있다. 아베 總理의 집안이 아베 新潮(安倍晉三)의 ‘新(晉)’ 者를 다카스키 神社쿠(高衫晉作)의 ‘新(晉)’ 字를 따서 지었을 程度라니 그 尊敬心의 크기를 斟酌할 수 있다. ?
    지난 1月 末 筆者 一行이 요시다 쇼인 墓所를 찾았을? 때, 墓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覺悟를 다지는 듯한 悲壯함이 느껴졌다. 家族 單位로 墓所를 찾은 사람도 있고, 同好會 모임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觀光客이었다. 普通의 日本 사람은 요시다 쇼인을 近代思想家, 日本을 일으킨 革命家로 記憶한다. 帝國主義 思想과 侵略 歷史를 說破한 人物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그들은 쇼인에 對해 日本을 近代化한 人物로만 敎育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베 總理를 비롯한 日本 極右派의 ‘요시다 쇼인 讀法(讀法)’은 다르다. 요시다 쇼人이 기초한 帝國主義 思想을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軍國主義者들이 이어받고, 軍國主義者들에게 敎育을 받은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前 總理로 連結된다. 기시 노부스케는 典範으로 監獄에 있었지만 無罪로 풀려나 總理를 지냈고, 그의 동생도 總理를 지내며 노벨平和賞을 받았다.
    기시 노부스케의 外孫子인 아베 總理는 憲法 第9條(平和憲法)의 永久的인 戰爭 抛棄 文句를 ‘再解釋’하며 日本을 戰爭 可能 國家로 만들어버렸다. 아베 政權은 近代化-帝國主義-軍國主義-植民地 侵略-太平洋戰爭으로 이어진 피의 歷史를 ‘解析’이라는 이름으로 再構成하고 나섰다.
    ‘아픔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只今 日本은 剛한 國家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世界 平和를 위한 不可避한 選擇이다.’
    이것이 아베 總理가 요시다 쇼인 墓所 앞에서 다진 決心일지도 모른다.


    軍國主義는 休火山

    메이지維新 以後 帝國主義 歷史에 對한 歪曲은 오늘날 韓日關係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美國은 韓日 兩國이 慰安婦 問題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자 關係 改善을 要求했다. 中國이 急速度로 膨脹하는 가운데 그런 韓日關係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結局 한일 兩國은 美國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慰安婦 問題 合意書를 發表했다. 그런데 合意서마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破裂音을 일으켰다.
    “日本 內閣總理大臣으로서 다시 한 番 마음으로부터 謝罪와 反省의 마음을 表示한다.”(2015년 12月, 韓日外交長官 共同記者會見文)
    “軍 및 官憲에 依한 强制連行은 確認되지 않았다.”(2016년 1月, 日本 外務相의 유엔 答辯)
    日本 政府의 말이 바뀌자 兩國 關係는 以前보다 더 꼬여버렸다. 그래놓고 日本은 慰安婦 問題에 對한 兩國 合意를 ‘永遠히 건드릴 수 없는(불가역적)’ 合意라고 主張했다.
    아베 總理는 過去事 問題를 未來 志向的으로 풀어갈 意思가 없다는 點을 分明히 하고 있다. 特히 韓國과 關聯한 問題에는 더욱 斷乎한 態度를 取한다. 그는 暴力에 依해 左右된 지난 ‘黑歷史’를 그대로 繼承하고 발전시키겠다는 信念을 지녔다. 그것이 ‘쇼인 精神’이고, 自身의 外祖父 精神이며, 剛한 日本을 만들려는 아베의 時代精神이다.
    筆者는 日本을 오갈 때마다 아베 執權期 동안 韓日關係 改善은 不可能하다고 느꼈다. 우리와 달리 아베는 韓日關係를 ‘國益’의 觀點이 아니라 ‘信念’을 基準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의 精神世界에는 自身과 日本 歷史의 ‘不可避한 狀況’만 存在할 뿐 ‘客觀的인 評價’는 없다. 保守 자민당이 50年 以上 大部分의 獨占的 地位를 누려온 政治 現實과도 無關하지 않다. 審判받지 않는 政治를 해왔기 때문에 自己信念을 더욱 잘 지키는 側面도 있다. 그래서 그는 過去事에 對한 謝罪나 反省 없이 遺體離脫 水準의 話法을 驅使했다.
    “釜田(不戰)의 盟誓를 하기 위해 야스쿠니 神社를 參拜했다.”(2013년 12月 26日)
    “21世紀에도 紛爭地域에서 女性의 性的 蹂躪이 恣行되는 것에 憤怒를 禁할 수 없다.”(2013년 9月 27日)
    太平洋戰爭 戰犯 合絲 問題나 慰安婦 問題를 알면서도 이런 發言을 했다는 것은 아베 總理의 ‘計算’이 아니다. 아베 總理를 들여다볼수록 이런 發言이 ‘眞心’이라는 事實에 筆者는 크게 놀랐다. 日本 軍國主義는 언제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戰爭의 꽃, 平和의 꽃

    下記를 둘러본 一行은 발길을 도쿄로 돌려 야스쿠니 神社를 찾았다. 지난해 11月 23日 韓國人이 야스쿠니 神社 南쪽 化粧室에 私製 爆彈을 터뜨린 以後 狀況이 어떻게 變했는지 궁금했다. 當時 筆者는 日本 警察이 야스쿠니 神社 周邊 韓國人 事務室을 例外 없이 搜索했다는 在日 民團 關係者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神社 周邊 警備가 森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月 末 다시 찾은 紳士는 豫想外로 조용했다.
    神社 正門에서 本錢으로 이어지는 50m 幅의 벚꽃(사쿠라)길은 을씨년스러웠지만, 봄에 꽃이 피면 長官을 이룬다. 筆者는 이 벚꽃을 볼 때마다 꽃말을 생각했다. 日本에서 벚꽃은 平和를 象徵한다. 日本 敗亡을 앞둔 1945年 自殺爆彈을 싣고 美國 航空母艦으로 날아간 가미카제(神風) 特攻隊의 歡送式에도 어김없이 ‘사쿠라’가 登場했다. 어린 初等學生들이 滑走路에 길게 늘어서 사쿠라를 흔드는 場面엔 죽음으로 向하는 마지막 非行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야스쿠니 神社를 둘러보고 神社 오른쪽에 있는 展示館을 찾았다. 日本 歷史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마련한 展示館에는 太平洋戰爭(大東亞戰爭) 展示室도 마련해놓았다. 日本語와 英語로 說明하는 展示館을 둘러보고 筆者를 除外한 一行은 모두 놀란 表情을 지었다.
    “太平洋戰爭이 美國의 日本 石油禁輸措置로 인한 結果라는 一方的인 說明을 보며 말門이 막혔다. 日本은 잘못이 없고, 現在의 日本이 存在하는 것도 오직 戰爭 德澤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마치 또 다른 戰爭을 準備해야 한다는 認識을 준다. 日本은 무서운 나라다.”(이정태 경북대 敎授)
    “展示館을 보면 帝國主義 侵略 當事者가 日本이라고 생각하는 日本人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神社 參拜를 反對하는 韓國과 中國을 異常한 나라로 볼 수밖에. 앞으로 過去事를 둘러싼 認識差가 더 벌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박영식 聯合뉴스TV 앵커)
    도쿄에서 보면 西南쪽 끝 작은 마을인 야마구치에서 帝國主義 思想이 싹을 틔웠다. 요시다 쇼인은 死刑場에서 “日本의 魂(大和魂, 야마토 다마視)은 永遠하다”며 죽어갔다. 이 말을 들은 弟子들이 革命을 성공시키고 도쿄를 掌握했다. 그러면서 야마구치 出身은 歷代 最多 總理 자리를 차지하면서 아직도 日本을 左之右之하고 있다.
    疑問이 든다. 요시다 쇼인의 ‘對話魂’은 眞實로 150年 동안 日本을 支撐해준 精神일까. 그럴 수 없다. 共存과 繁榮을 버리고 남을 밟고 나를 키우는 精神은 決코 한 나라의 魂(魂)이 될 수 없다. ‘正常 國家’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帝國主義 復活을 노리는 日本 右翼은 아직도 이를 有效하다고 믿는다. 그 中心에 아베 신조 總理가 있다. 답답하지만 儼然한 現實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共存해야 하는 우리는 어떤 精神으로 나라를 지켜갈 것인가.
    사쿠라는 平和의 꽃이기도, 戰爭의 꽃이기도 하다. 사쿠라는 生命의 꽃이기도, 피의 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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