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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民主乾達들이여 進步를 僭稱하지 마라”|신동아

홍세화 “民主乾達들이여 進步를 僭稱하지 마라”

  • 金賢美 記者

    khmzip@donga.com

    入力 2020-12-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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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임금님 그만두고 大統領으로 돌아가라

    • 國政 哲學 없는 大統領, 善意의 約束과 沈默의 政治

    •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民主乾達들

    • 公搜處는 더 큰 權力일 뿐… 民主的 統制 아니다

    • ‘우리가 曺國이다!’와 象徵暴力

    • 都大體 어떤 멘탈이기에 秋美愛를 守護하나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조영철 기자]

    홍세화 장발장銀行 銀行長. [조영철 記者]

    文在寅 大統領의 ‘謝過’를 놓고 解釋이 紛紛했다. 2020年 12月 7日 靑瓦臺에서 열린 首席·補佐官會議에서 “혼란스러운 政局이 國民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大統領으로서 매우 罪悚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對해 누군가는 ‘마침내 沙果’라고 했고, 누군가는 ‘沙果 같지 않은 沙果’라고 했다. 混亂의 原因이 무엇인지 省略된 ‘수수께끼 같은 沙果’라고도 했다. 

    홍세화(74) 氏는 文在寅 大統領의 模糊한 話法과 處身을 ‘착한 임금님’에 比喩했다. 25年 前 ‘나는 빠리의 택시運轉士’라는 冊으로 話題를 일으킨 바로 그 홍세화다. 

    “一方的으로 自身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는 不便하지 않다. 임금님은 不便한 質問을 받지 않아도 되고 不便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大統領은 그렇지 않다. 朴槿惠 前 大統領이 彭木港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大統領이었기 때문이다. 不便한 質問, 不便한 자리를 避한다는 點에서 文 大統領은 大統領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靑瓦臺 國民請願 揭示板으로 百姓한테서 ‘上疏文’을 받는다는 點도 그렇다.”(한겨레 2020年 11月 20日子 寄稿). 


    “헛소리 그만두고 택시 運轉이나 해라”

    2020년 2월 25일 민갑룡 경찰청장과 홍세화(오른쪽) 장발장은행장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2020年 2月 25日 민갑룡 警察廳長과 홍세화(오른쪽) 장발장銀行長이 서울 미근동 警察廳舍에서 協約書에 署名하고 있다. [警察廳 提供]

    그럼 왜 ‘착한 임금님’일까. 不便한 자리는 被害도 善意의 約束을 하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歲月號 慘事 遺家族을 만나 慰勞하면서 眞相糾明을 約束하고, 김용균 氏 遺家族을 만나 慰勞하고 김용균法을 約束한다. 問題는 그다음이다. 歲月號 慘事 眞相糾明이 遲遲不進하고 ‘김용균이 適用되지 않는 김용균法’이 制定되자 大統領은 沈默한다. 不動産 問題, 公職者들의 미투 事件, 落胎 合法化, 性小數者 問題 같은 不便한 자리에서 大統領은 質問을 받는 代身 沈默을 選擇했다. 무엇보다 國民과 熱心히 疏通하겠다는 約束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홍세화 氏는 現在 ‘장발장銀行’ 銀行長이다. 2015年 2月 25日 設立된 ‘장발장銀行’은 法 違反으로 罰金刑을 받은 사람들 中에 罰金을 낼 形便이 못 돼 矯導所에 갇혀 强制奴役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罰金을 빌려주는 銀行이다. 利子도 없고 擔保도 없고 信用照會度 하지 않는다. 貸出限度는 300萬 원, 6個月 据置 後 1年 동안 分納 償還하는 條件이다. 장발장銀行은 只今까지 8900餘 名이 보내준 11億6000萬 원의 誠金으로 864名이 矯導所에 가지 않도록 支援했다. 罰金을 내지 못해 矯導所에 가서 强制奴役을 하는 사람이 年間 3萬5000名에 이르는 現實에서 ‘가난의 代물림’을 끊는 작지만 意味 있는 試圖다. ‘가난은 나라도 救濟하지 못한다’는 通念부터 깨야 한다던 그가, 이番엔 民生을 外面하는 이 政府에 단단히 火가 났다. 



    용산구 孝昌園路에 있는 人權連帶 事務室에서 洪 代表를 만나자마자 ‘우리 大統領은 착한 임금님’ 題下 칼럼의 後暴風에 對해 물었다. 

    “平生 먹을 辱 다 먹었습니다. 나이 七十이 넘은 내게 ‘헛소리 그만두고 (파리로) 가서 택시 運轉이나 하라’더군요. 自身들의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니까 이젠 神經 안 씁니다. 다만 그 글을 쓴 意圖가 便한 임금님 노릇 그만하고 大統領이라는 嚴重한 자리로 돌아가라는 바람이었는데 只今 大統領을 보면 제 뜻이 잘 傳達되지 않은 것 같네요.”

    說得하기는 어렵고 煽動하기는 쉬운 社會

    -다른 사람의 생각과 行動에 同意하지 않더라도 認定해 주라는 ‘톨레랑스(寬容)’ 槪念을 韓國에 傳播했는데, 陣營 論理에 따른 甇톨레랑스(不寬容)가 활개를 치는군요. 

    “豫想했던 反應이긴 하지만 只今 우리 社會는 合理的 思考가 陣營 論理에 完全히 갇혀버렸다고 할까요. 진영이 블랙홀이 돼버렸어요. ‘論理의 힘’이 아니라 ‘힘의 論理’가 支配하고 있죠. 그 危險性은 여러 學者가 指摘했어요. 社會心理學者인 어빙 재니스 敎授가 集團事故를 ‘凝集力이 剛한 集團이 어떤 決定을 내릴 때 滿場一致를 이루려고 하는 思考의 傾向’이라고 했고, 哲學者 마이클 린치는 ‘知的 傲慢함은 派閥的日 때 가장 致命的이다’라고 했어요. 우리는 여기에 ‘빠’와 ‘양념’의 政治, 工作 政治가 더해져 眞짜 政治는 失踪된 거죠. 그래서 제가 說得하기는 어렵고 煽動하기는 쉬운 社會라고 한 겁니다. 旣存에 갖고 있던 생각을 修正하거나 變化시키는 說得보다 旣存에 갖고 있던 생각을 더 極端으로 몰아가는 煽動이 더 쉽거든요.” 

    -國民 사이에 葛藤을 일으키는 懸案에 大統領이 沈默으로 一貫한다고 指摘했는데요. 

    “文在寅 大統領이 왜 執權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國政 哲學을 갖고 있고, 무슨 政治哲學을 갖고 있는지, 무슨 未來 靑寫眞을 갖고 있는지 보이질 않잖아요. 國政 最高指導者라면 國民 사이에 意見이 分裂돼 있는 懸案에 對해 自身의 뜻을 披瀝하고 討論하고 說得하고 推進하고 突破해야죠. 욕먹을 覺悟를 해야죠. 안간힘이라도 써야죠. 그런데 政治가 팬덤化되다 보니 批判的 목소리는 아예 外面합니다.” 

    -檢察改革에 對한 大統領의 意志는 여러 次例 確認됐습니다. 

    “大統領이 繼續 檢察改革, 公搜處를 붙들고 있는데 只今 만들려는 公搜處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더 큰 權力일 뿐이죠. 이것은 民主的 統制가 아니에요. 例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檢察이 起訴를 獨占하지 않고 犯罪 被害者가 直接 訴追할 수 있는 私訴權(私訴權)을 認定함(사인소추제도)으로써 檢察의 公訴權 濫用을 制限하고 있어요. 이처럼 市民的 統制가 可能한 制度를 만드는 것이 民主的 統制이고, 國會가 할 일이고, 檢察改革人 거죠. 그런데 只今은 尹錫悅만 除去하면 된다, 싫으면 내 便에 서라가 檢察改革이 돼버렸어요.”

    ‘우리가 曺國이다!’와 象徵暴力의 政治

    -추미애 法務部 長官과 尹錫悅 檢察總長의 葛藤이 모든 國政 이슈를 삼켜버렸습니다. 

    “國會에서 벌어지는 興味津津하고 低級한 工房이 人民의 삶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世上을 가려주는 스펙터클이 된 거죠. 不動産, 일자리, 敎育처럼 우리 삶을 改善하는 重要한 問題는 뒷전이고 絢爛한 權力다툼에 視線을 빼앗긴 거죠. 大統領과 市民이 아니라 임금님과 臣民(臣民)인 거죠. 臣民이 他律性으로 服從하는 存在라면, 市民은 自律性을 가진 主體的 存在입니다.” 

    그는 現 政治 狀況을 ‘象徵暴力’으로 說明했다. 社會學者 피에르 부르디외가 槪念化한 象徵暴力은, 被支配者들로 하여금 社會的 位階를 政黨하거나 當然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支配者들에게 服從하도록 이끄는 支配 機制다. 

    그는 韓國 社會에 퍼진 ‘象徵暴力’의 實相을 太極旗 部隊의 光化門 集會와 “우리가 曺國이다!”를 외치는 瑞草洞 集會에서 確認했다. 陣營 論理가 政策과 理念을 失踪시켰고, 政治人에 對한 호오 感情에 따른 팬덤 政治가 옳고 그름에 對한 理性的 判斷을 흐리게 했다. 

    “이 憤怒의 感情은 論理的이지 않다 ‘曺國이 무너지면 문재인이 무너진다’고 飛躍하고, 盧武鉉 前 大統領을 잃었던 지난날의 鬱憤과 連結시켜 두 달 前까지 積弊 勢力 淸算의 主役이라고 拍手를 쳤던 檢察에 憤怒의 화살을 集中的으로 보냈다. 及其也 檢察은 적잖은 사람들에게 惡魔의 化身이 돼야 했다. 檢察이 改革되어야 한다는 點을 누가 否定할까마는 自己들에게 同參하지 않으면 守舊 勢力과 한牌인 양 몰아붙인다. 憤怒의 感情이 論理的 思惟의 可能性을 없앤 탓이다.”(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결: 巨浸에 對하여’ 中 ‘象徵暴力’)


    守舊勢力과 保守勢力의 權力 요요게임

    그는 ‘文在寅 政權은 무엇으로 進步인가’라는 題目의 글에서 質問을 던졌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著者 조지 레이코프가 ‘自由戰爭’에서 ‘自由를 빼앗기는 것도 危險한 일이지만, 自由 槪念을 빼앗기는 것은 더 危險하다’고 했는데, 進步 槪念을 빼앗기는 것 또한 危險한 일이다. 그래서 묻는다. 文在寅 政權은 무엇으로 進步인가?” 

    -스스로 進步라고 생각하는 國民의 多數가 민주당을 支持하는데, 文在寅 政府가 眞짜 進步가 아니라고 하는 理由는 뭡니까. 

    “只今의 報酬는 報酬가 아니듯, 進步도 進步가 아닙니다. 分斷體制에서 守舊勢力, 卽 極右的인 反北 國家主義者들이 保守를 僭稱했고, 反日 民族主義를 앞세운 自由主義 保守勢力이 進步를 僭稱한 겁니다. 저는 現實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權力다툼을 ‘어제까지 아주 좋았는데 오늘 그런대로 괜찮은 勢力’(守舊勢力) 代 ‘어제까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오늘 아주 좋은 勢力’(保守勢力) 間에 더 좋은 來日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場이라고 말합니다. 事實 進步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保守가 中心을 잡아줘야 하는데 只今 報酬는 自身들이 지켜야 할 保守의 價値가 무엇인지도 몰라요. 그냥 旣得權이라 부르는, 어제가 좋았던 것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守舊와 保守의 權力다툼에 進步의 자리는 없어요. 進步란 어제도 오늘도 劣惡했던 사람들을 爲해 더 좋은 來日을 열어가는 것이에요. 只今 與黨이 그런 進步인가요? 守舊勢力이 엉겁결에 保守가 되니, 保守勢力이 엉뚱하게 進步 行世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權力의 요요게임을 하는 構圖가 서로에게 윈-윈이니까. 겉으로는 티격태격하는데 內容上 別般 差異가 없어요. 包括的差別禁止法, 重大災害處罰法 等에 對해 두 黨 모두 關心이 없잖아요. 日本 製品 못 쓰게 하는 게 進步인가요. 一齊 附逆者 찾아낸다고 竹槍까지 登場하더니 이제는 政府가 日本과 關係 改善한다고 하니까 立場이 싹 바뀌죠. 놀랍고 우스운 일입니다. 이런 일에 過去 社會主義者였던 사람들까지 加勢하고 있어요. 相對를 否定하는 것으로 正體性을 삼는 勢力이 進步일 수 없어요.” 

    그가 定義하는 進步 政治는 이런 것이다. 

    “오늘날 더욱 激甚해지는 不平等主義 體制의 克服이 進步(政治)의 核心 課題라면, 토마 피케티가 摘示한 賃金勞動者의 議決權 및 權力 粉乳(分有), 强力한 累進小遊說, 基本所得을 넘어선 普遍的 資本 支援, 炭素 排出의 集團的 規制, 實質人 平等主義 敎育權 等 가볍게 넘길 事案은 하나도 없다.” 

    피케티가 말한 “資本主義와 私的 所有를 넘어서서 參與社會主義와 社會聯邦主義를 基盤으로 한 정의로운 社會를 樹立하는 것은 可能하다”는 것을 韓國 社會라는 現實 속에서 摸索하는 政治. 그것이 곧 進步政治라는 것이다. 그 基準으로 볼 때 企業이 0順位이고, 勞動이 1順位인 政權이 進步일까. 理念은 陣營 속에 묻은 채 檢察과 言論 한두 곳에 正照準하는 政權이 進步일까. 

    “박근혜 大統領 때 ‘親朴’ ‘瞋縛’ 하는 게 우스웠는데 이 政權에선 ‘曺國 守護’라니. ‘나라를 守護한다’는 말도 한물간 얘기인데 왜 한 사람을 守護하나요. 그것도 하면 안 되는 일까지 包含해 할 수 있는 모든 手段을 總動員해 ‘機會의 사재기’를 한 家族을 위해 ‘우리가 鄭慶心이다!’라고 외쳐요. 이제는 秋美愛를 守護한답니다. 都大體 이런 일을 支持하는 40%가 어떤 멘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생각의 座標’ 以後 11年 만에 사회비평집 ‘결: 巨浸에 對하여’를 펴낸 動機는 무엇입니까. 

    “‘결’은 最近 10年間 제 생각을 整理한 冊이에요. ‘이 땅의 旣得權 勢力이 저지른 倫理的 犯罪行爲 中에서 가장 앞선 것은 自由의 意味를 돌이킬 수 없을 程度로 더럽혔다는 것이다’라고 했죠. 가까운 例로 우리가 코로나19 防疫을 잘 해왔다고 評價하지만 그 過程에서 우리는 果然 個人의 自由, 人權의 問題에 對해 얼마나 考慮했는지, 이 모든 걸 그냥 덮고 가도 되는 것인지. 進步라면 그런 問題를 提起할 수 있어야죠. 國家主義와 集團主義에 依해 個人의 自由가 制限되는 問題를 苦悶해야죠.”


    빼앗긴 自由, 버림받은 自由를 위하여

    -分斷國家라는 現實에서 自由라는 槪念이 유린당했다고 指摘했습니다. 

    “分斷國家에서 ‘共産世界’에 對立하는 ‘自由世界’라는 想像의 共同體가 있었고 旣得權 勢力은 反對派를 親北 左傾, 빨갱이로 몰아가며 權力을 强化했고 自由를 蹂躪했죠. 當時 우리에게 自由란 李承晩의 自由黨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資本主義와 自由市場이 登場해 또 自由의 槪念을 가져갔죠. 自由의 이름으로 自由를 빼앗긴 代身 民主化를 외쳤어요. 自由의 價値를 前面에 앞세우기가 버거워 民主化라는 防牌 뒤에 숨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民主共和國은 자유로운 市民들을 主體로 하지 않을 때 허울에 지나지 않아요. 勞動組合에서 組合員이 動員의 對象이고, 組織의 雨傘 아래 經濟的 利益을 保障받는 受惠者인 것은 自發的 服從이지 眞正한 自由가 아니죠. 

    민주, 正義, 平等, 平和에 비해 뒷전으로 밀려난 自由, 韓國 社會에서 自由가 얼마나 歪曲되고 貶下되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槪念이 됐는지. 金芝河 詩人이 엘뤼아르의 詩에서 靈感을 받았다는 ‘타는 목마름으로’에선 民主主義를 외치지만 元來 엘뤼아르의 詩 題目이 ‘自由’였어요. 個人의 自由와 社會의 民主化는 줄탁동視(?啄同時) 關係인데 우리는 個人의 自由를 얘기하지 못하고 民主化만 앞세운 거죠. 民主化가 되면 個人의 自由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不義와 沒常識 앞에서 沈默과 無關心을 拒否하고 奴隸 되기를 拒否하는 自由를 되찾아야 한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30年 前 民主化를 외치던 86世代가 只今 政治의 中心에 있습니다. 

    “2009年쯤 내가 한 얘기가 있어요. 이명박 政權은 守舊勢力이고 民主化運動 世代는 ‘民主乾達’이라고 했어요. 제대로 工夫를 한 것도 아니고 實際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民主乾達. 하지만 이들이 執權하는 이 時期도 한 番은 거쳐야 한다고. 조제프 드 매스트르가 ‘모든 民主主義 國家에서 國民은 自己 水準의 政府를 가진다’고 했잖아요.”

    그는 얼마 前 文 大統領의 就任辭를 다시 읽었다고 했다. 

    “좋은 內容은 다 있는데 大統領이 直接 作成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設令 다른 사람이 썼다 해도 내가 하고자 하는 方向, 내 意志와 一致하면 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에게 처음 인터뷰를 要請했을 때 “25年 만이네요”라는 答이 왔다. 1995年 3月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나는 빠리의 택시 運轉士’란 冊이 世上에 나오기도 前에 ‘신동아’ 記者가 直接 파리로 가서 그와 인터뷰했다. 正確히 말하면 25年 9個月 만이다. 新東亞 1995年 4月號에 ‘남민전(反維新과 民主化, 民族解放을 目標로 1976年 結成된 南朝鮮民族解放戰線準備委員會의 略稱이다.) 事件 홍세화, 파리 하늘 밑의 政治亡命者-分斷의 傷痕 세느강에 씻고…’라는 題目으로 當時 48歲의 홍세화가 登場한다. 1979年 10月 9日 發表돼 國民에게 恐怖를 심어줬던 ‘南朝鮮 民族解放戰線準備委’ 事件에 直接 關係한 洪氏가 오랜 政治 亡命生活 끝에 ‘갈 수 없는 祖國’을 向해 쏘아 올린 피맺힌 외침이라고 紹介했다. 그는 1999年 20年 3個月 만에 故國을 訪問했고, 2002年 永久 歸國해 現在 家族이 있는 프랑스를 오가며 살고 있다. 

    25年 前 記者가 그에게 물었다. 

    -스스로를 社會主義者라고 생각합니까? 

    “볼셰비키는 아니고 그런 意味에서는 社會主義者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社會主義者니까 親北이겠지’라고 말한다면 우습다는 거죠? 

    “그렇지요. 왜 그렇게 二分法的으로만 思考해야 합니까. 分斷에서 온 結果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二分法的 思考의 陷穽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社會 進步를 생각하기 어렵게 되고, 都大體 사람들의 事故가 限없이 矮小해지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땅, 사람, 社會에 對해 只今 當場 어느 하나를 選擇하라고 强要한다면 窒塞입니다.” 

    그는 한결같이 살았지만 그가 꿈꾸는 世上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의 에세이 ‘결’에서 찾은 文章이다. 

    “眞實은 消極的이고 正義는 언제나 知覺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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