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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이 平和를 지킨다”|신동아

東아시아 激戰場을 가다

“記憶이 平和를 지킨다”

‘屈曲의 中國史 壓縮版’ 난징(南京)

  • 전계완 | 時事評論家, ‘日本, 다시 侵略을 準備한다’ 著者 jke68@daum.net

    入力 2016-05-18 1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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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容恕하지만, 잊지 않는다(可以寬恕, 但不可以忘却)”
    • 大虐殺, 東洋 最大 慰安所…유네스코 登載
    • ‘平和 守護者’ 强辯하는 日本과 ‘歷史戰爭’
    • ‘不可逆的 合意’ 韓國, 돌고래의 智慧 必要
    4月 22日, 金海空港에서 장쑤(江蘇)省 난징(南京)으로 가려던 大韓航空 旅客機가 離陸 直前 操縱席 램프 故障으로 出國場으로 되돌아갔다. 出發이 2時間 遲延됐지만 不滿을 드러내는 乘客은 거의 없었다. 飛行便이 적어 或是 못 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多幸히 飛行機는 1時間50分을 날아 난징 루커禹(祿口) 空港에 着陸했다.

    난징은 人口 800餘萬 名의 大都市이지만, 人口로만 位相을 따진다면 中國 內 30位 都市다. 난징은 廣闊한 丘陵地 德分에 天惠의 要塞에 안긴 都市다. 黃海와 양쯔江은 난징을 物産과 交易 中心地로 키웠다. 三國時代의 吳나라 孫權이 都邑을 定하고, 10個의 王朝와 政府가 이곳을 首都로 삼았다. 그러나 19, 20世紀를 거치면서 난징은 屈曲으로 얼룩진 中國 近代史의 壓縮版이 됐다. ?

    歷史冊에 빠지지 않고 登場하는 굵직굵직한 事件 大部分이 난징에서 일어났다. 阿片戰爭으로 因한 난징條約(1842), 太平天國의 亂(1850~1864), 辛亥革命(1911), 中華民國 臨時政府 樹立(1912), 國民黨 政府 樹立(1927), 난징 大虐殺(1937) 等이 그것이다. 重要性을 따져 順次的으로 列擧할 수 없을 程度의 엄청난 事件들이다.

    社會主義 中國 建設(1949) 以後 난징은 베이징(北京)보다 注目받지 못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改革·開放 政策(1978) 以後 다시 産業과 交易 中心地域으로 탈바꿈했다. 오늘의 난징은 中國 崛起(?起)의 主要 現場이면서 아시아를 휘감았던 侵略과 戰爭의 歷史를 오롯이 담고 있다. 日本이 中日戰爭(1937~1945) 때 運營한 東洋 最大의 慰安所를 그대로 保存하며 歷史戰爭을 遂行하는 現場이기도 하다.

    비가 제법 내리는데도 觀覽客이 끝없이 늘어섰다. 西洋人이 間或 보이긴 했지만 大多數가 中國人이었다. 記念館을 둘러보던 觀覽客 中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中國판 홀로코스트

    난징 大虐殺은 1937年 12月 當時 中華民國 首都 난징을 占領한 日本軍이 6週 동안 中國人 30萬 名을 殺害한 稀代의 事件이다. 나치 政權의 홀로코스트에 뒤지지 않는다. 1985年 中國 政府는 虐殺 當時의 狀況과 資料, 生存者 證言 等을 모아 集團虐殺 埋葬地 위에 記念館을 만들었다.

    日本軍은 中國軍 捕虜와 男性을 索出해 양쯔江 河口와 都心 外郭에 모아놓고 機關銃을 亂射했다. 한 곳에서 1萬 名이 죽은 境遇도 있고, 日本軍의 銃劍術과 목 베기 訓鍊의 犧牲物이 된 被害者도 많았다. 日本軍은 銃알을 아끼려고 사람을 生埋葬하거나 칼로 亂刀질해 죽였다. 女性과 어린아이들은 石油를 뿌리고 機關銃을 亂射해 불태웠다. 虐殺에 加擔한 日本軍 兵士는 ‘산 채로 묻거나 長斫불로 태워 죽이며 無聊함을 달랬다’는 日記를 남기기도 했다.

    日本軍의 性暴行 記錄은 齒를 떨게 한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70代 老婆까지 닥치는 대로 强姦하고 殺害했다. 妊娠한 女性을 集團 性暴行하고 殺害한 뒤 胎兒를 끄집어냈다는 記錄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被害 女性은 5萬 名으로 推定된다. 1946年 난징 戰犯裁判에서 當時 民間人에 對한 殘酷 行爲를 具體的으로 證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以後 聖職者, 歷史學者, 外交官 等에 依해 새로운 事實들이 밝혀졌다. ?

    中國은 虐殺이 始作된 (1937年) 12月 13日을 追慕日로 定하고 國家 次元에서 大大的인 行事를 열고 있다. 中國 政府는 關聯 資料를 蓄積하고 記念館을 擴大 增築하면서 지난해 16件의 記錄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登載했다. 厖大한 資料에 比하면 登載 件數가 크게 不足하지만 日本의 거센 反對 속에 이뤄낸 成果였다. 大虐殺 記念館에는 記憶만이 平和를 지킬 수 있다는 語錄이 곳곳에 붙어 있다.



    난징과 야스쿠니

    “容恕하지만, 決코 잊지는 않는다(可以寬恕, 但不可以忘却).” 問題는 日本이 大虐殺을 認定하지 않는다는 點이다. 日本은 난징 大虐殺을 單純히 ‘난징사건’으로 表現한다. 戰爭 中 不可避하게 民間人 被害가 생겼지만, 日本 政府의 公式 命令에 따라 恣行된 일이 아니고 被害者 數도 크게 부풀려졌다고 主張한다. ?



    지난해 10月 난징 大虐殺 資料의 世界記錄遺産 登載에 對해 아베 신조 日本 總理는 유엔에 거칠게 抗議하며 “日本이 유네스코 分擔金을 削減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세 히로시 日本 文部科學商度 “記錄遺産을 政治的으로 利用하지 못하도록 유네스코 政策을 바꿔야 한다”고 反撥했다. 그는 “虐殺 證據가 確實하지 않고, 該當國의 反論 機會가 保障되지 않았다”며 問題를 提起했다. 이 같은 主張은 ‘侵略’의 正義가 不確實하다거나, 確認된 歷史的 事實을 오히려 造作했다는 日本 極右의 歷史 修正主義와 脈을 같이한다. ?

    하지만 筆者는 난징 大虐殺 記念館을 둘러보면서 虛構를 眞實로 包裝하거나, 特定 事實을 부풀려 可恐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客觀性을 維持하기 위해 當時 事件을 報道한 外國 및 日本 言論, 外交官의 記錄 等을 充實하게 모아놓았다. 더하거나 빼려고 애를 쓴 痕跡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慰安婦 記錄管 세운 氣槪

    比較하자면, 日本 도쿄의 야스쿠니 神社 戰爭記念館에서 받은 느낌과는 確然하게 달랐다. 야스쿠니 神社의 ‘大東亞戰爭 記念館’은 戰爭을 平和 維持 手段으로 보고, 日本人이 天皇과 祖國을 위해 스스로 목숨 바쳤다고 알리고 있다. 帝國主義 時節 수많은 戰爭 犧牲者가 侵略者가 아니라 平和 守護者로서 목숨을 잃었다는 論理였다. 또한 1945年 終戰 直後 極東 戰犯裁判에서 “日本에 모든 責任을 물을 수 없다”며 少數 意見을 낸 印度 出身 라다비노드 팔 判事의 胸像을 세우고 그를 推仰하는 것도 客觀的 飼料를 모아놓은 난징 記念館과는 對照的이었다. 난징 大虐殺 記念館과 야스쿠니의 大東亞戰爭 記念館은 같은 歷史를 全혀 다르게 解釋하고 결론짓는 ‘不一致 現象’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眞實한 歷史 위에 韓中日 關係의 再正立이 切實한 時點임을 떠올리면 向後 歷史 問題 解決 努力은 險難한 길을 걸어야 할 듯하다.

    난징 市內 理智샹(利濟巷) 거리의 慰安婦 記錄管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5名의 택시 技士에게 記錄管 이름을 보여줬지만 모두 位置를 몰랐다. 지난해 12月 門을 연 이곳의 正式 名稱은 ‘利濟巷慰安所舊址陳列館’. 우리말로 옮기면 ‘理智샹 慰安婦 記錄管’이다. 스마트폰 구글 地圖로 位置를 檢索해보니 ‘軍隊’라는 標示가 나와 그前엔 軍事 關聯 施設이었음을 斟酌할 수 있었다.

    1937年 日本은 난징 占領 過程에서 30萬 名을 集團虐殺한 뒤 自國 軍人들을 위해 40餘 곳에 慰安所를 만들었다. 規模가 가장 큰 곳이 國民黨 將校 居住지던 ‘理智샹 慰安所’다. 强制로 끌려온 中國, 朝鮮, 東南亞 女性들이 이곳의 8個 建物에서 慰安婦로 苦痛을 겪었다. ‘妊娠한 慰安婦’ 寫眞으로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北韓에 居住하다 2006年 작고)가 2003年 이곳을 訪問해 眞實을 證言했고, 以後 中國 안팎에서 保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文化財로 指定됐다. 未成年者 出入과 寫眞撮影이 禁止된 記錄管 안에는 悽慘한 모습의 慰安婦와 各種 檢査器, 出産 施設과 道具, 注射器, 콘돔 等이 展示돼 있다.

    慰安婦 記錄官은 난징 大虐殺 記念館에 이어 2017年 유네스코 登載를 앞두고 中國과 日本의 葛藤을 豫告하고 있다. 지난해 中國은 日本軍 慰安婦 實態를 세계기록유산으로 登載하려 했으나, 日本의 反撥과 유네스코의 勸告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네스코가 中國, 日本, 韓國 等 關聯國의 共同申請을 奬勵한다고 했지만, 이는 世界에서 두 番째로 유네스코 分擔金을 많이 내는 日本의 눈치를 본 結果라는 分析이 많았다. 中國은 2017年에 다시 登載를 推進하기로 했고, 日本 政府는 이에 反對하고 있어 兩國은 또 한 次例 ‘歷史戰爭’을 벌일 판이다.? ?

    이런 渦中에 中國과 日本 사이에 낀 韓國은 한마디로 ‘딱한 處地’에 놓였다. 지난해 末 우리 政府는 ‘不可逆的 事案’으로 韓日의 慰安婦 問題 妥結을 宣言했다. 慰安婦 被害者 할머니들은 勿論 政治權에서도 再協商을 要求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政府는 默默不答이다. 政府가 美國의 壓力 때문에 어쩔 수 없이 圖章을 찍었다면 이것도 있는 그대로 昭詳하게 밝히고 國民의 理解를 求할 일이다. 허약한 國力 때문인지, 아니면 政府의 認識 不足 탓인지 國民은 緣由를 알 수 없어 더 답답하다.?? ?

    난징 慰安婦 記錄管 關係者는 筆者에게 “日本의 殘虐上을 世界에 알리고 眞實을 숨기려는 試圖가 더 以上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서 分明히 確認할 수 있다”고 强調했다. 보란 듯이 慰安婦 記錄管의 門을 여는 中國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同時에 韓國人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9月에는 日本 觀光客이 많이 찾는 臺灣 타이베이(臺北) 市內 中心街에도 慰安婦 記念館이 門을 연다고 한다. 서울의 日本 大使館 앞 少女像 撤去를 둘러싸고 韓國과 日本 政府가 딴소리를 하고 있는 現實과는 너무나 對照的이다.

    筆者가 난징을 訪問 中이던 4月 23日, 韓國과 中國의 學術團體가 난징臺에서 領土主權 關聯 심포지엄을 열었다. 韓國의 獨島財團과 난징臺 南海硏究所가 非正常的인 領土紛爭을 整理하고 東아시아 國家의 發展을 圖謀하자는 內容이었다. 韓國은 獨島 問題를 集中 擧論했고, 中國은 댜오위다오(釣魚島, 日本名 센카쿠列島)의 領土主權을 主張했다.



    社會主義 價値觀 强調

    中國은 난징 大虐殺, 慰安所 運營 等 帝國主義 日本이 저지른 蠻行을 世界에 알리면서 댜오위다오와 같은 領土紛爭에서는 韓國과 步調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로선 댜오위다오 紛爭의 前後, 左右 事情을 잘 살펴야 하겠지만, 中國으로서는 國益 觀點에서 效果的인 戰術을 驅使하고 있는 것이다.?? ?

    이를 두고 中國이 歷史的 眞實을 尊重하고 周邊國과 共同繁榮을 위해 未來 志向的 行步를 한다고 評價할 수는 없다. 오히려 最近에는 莫强한 經濟力을 바탕으로 對外的으로 ‘힘’을 誇示하고 內部的으로 ‘國家主義’를 强化하고 있다. 日本이 憲法을 再解釋해 ‘戰爭 可能 國家’로 變身하고 軍事 大國化를 志向하며 東北亞 平和를 威脅할 때, 中國은 中華主義를 내세우며 人民의 一致團結을 외친다. 兩國이 自國 利益을 爲해 霸權的 行步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진핑 中國 主席이 强調하는 社會主義 核心 價値觀의 實踐과 强化는 中國의 未來를 걱정스럽게 한다. 난징을 비롯해 中國 全域에는 芙江(富强), 民主(民主), 文明(文明), 自由(自由), 平等(平等) 等의 單語로 始作하는 ‘社會主義 核心 價値觀’李 곳곳에 붙어 있다. 高等學校 敎科書에도 收錄돼, 學生들은 點數를 받기 위해 24字를 달달 외워야 한다. 우리가 1968年 發表한 國民敎育憲章을 學生들에게 暗記하도록 强要하던 것과 비슷하다.

    主要 內容은 ‘國家, 社會, 人民이 中國 社會主義를 성공시키기 위해 5000年 歷史와 傳統에서 時代精神을 찾고, 中華民族 發展에 必要한 精神 力量을 키운다’는 것이다. 中國 共産黨에 依한 支配力 强化, 國家主義 이데올로기 擴散이 必要하다는 意味다. 이는 오히려 中國 社會主義가 危機에 直面했거나 早晩間 그럴 수도 있다는 ‘自己告白’李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지난해 시진핑 主席은 “國家와 民族은 思想과 行動이 完全히 一致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黨과 社會 全體가 中國 特有의 社會主義 建設을 위한 宣傳敎育을 깊이 展開할 때”라고 强調했다. 곧바로 中國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는 ‘社會主義 價値觀 담기’가 下達됐고, 온라인 空間에선 檢閱과 統制가 强化됐다.

    自律的 選擇을 排除한 注入式 社會主義 敎育이 얼마나 效果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社會體制의 柔軟性을 키우지 않고, 精神敎育으로 國家를 발전시켜야 할 程度라면 中國의 未來도 그렇게 밝지는 않아 보였다. 韓國은 이런 政策이 惹起할 副作用의 被害를 直接 받을 수 있는 周邊國이다. ?

    2016年 中國은 歷史와 戰爭하고, 國家를 强化하며, 市場을 키우는 세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特히 장쑤省 난징은 過去를 품고, 現在를 뚫으며, 中國의 未來를 開拓하는 巨大 産業都市로 變身하고 있다.? ?



    새우등과 돌고래

    5月 6日 스타이펑 장쑤成長이 韓國을 訪問했을 때 現代車, LG, SK그룹 總帥가 모두 그를 만나 經濟協力 方案을 論議했다. 장쑤省의 位相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장쑤省의 面積은 中國 全體의 1%에 不過하지만, 國內總生産(GDP)은 中國 31個 省·市·自治區 中 2位다. 韓國 4大 그룹이 이미 輸出 前進基地를 만들고 大陸 消費市場 進出의 突破口로 삼은 곳이다.

    ‘사람 있는 곳에 市場 있고, 市場 있는 곳에 돈이 넘쳐난다’는 난징에서 生存과 發展, 이웃과 함께 繁榮하는 方法을 찾을 수는 없을까. 韓國이 中國과 日本의 고래싸움에 낀 새우 身世로 轉落하지 않고, 英敏한 돌고래처럼 날렵하게 游泳(遊泳)할 수는 없을까. 日本이 右翼의 本色을 읽고 새로운 길을 摸索했듯, 우리는 中國의 激變 現場에서 中華의 實體를 꿰뚫고 國運 開拓의 機會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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