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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黃敎安의 ‘사즉생’ 鬪爭|新東亞

크리스천 黃敎安의 ‘사즉생’ 鬪爭

“每番 ‘목숨 건다’ 했는데… 責任은 안 지고” “殉敎에 對한 熱望, 運動圈 벤치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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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1-20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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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關聯한 單語 頻繁히 꺼내

    • 스스로 救援者로 여기는 ‘메시아主義’ 批判 招來

    • “總理 때 가뭄에 祈禱하니 비 내렸다” 干證 集會도

    • MB는 江南 大型敎會 長老, 黃은 少數 浸禮敎會 傳道師

    • ‘막말’ ‘神聖 冒瀆’ 全光焄 有名 人士 되는 데 寄與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24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 비닐 천막을 치고 자리에 누워 닷새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黃敎安 自由韓國黨 代表가 지난해 11月 24日 靑瓦臺 앞 噴水臺 廣場에 비닐 天幕을 치고 자리에 누워 닷새째 斷食鬪爭을 이어가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記者]

    1979~90年 英國 總理를 지낸 마거릿 對處를 다룬 映畫 ‘鐵의 女人(The Iron Lady · 2011)’에는 이런 臺詞가 나온다. 

    “생각을 操心해. 생각은 말이 되니까. 말을 操心해. 말은 行動이 되니까. 行動을 操心해. 行動은 習慣이 되니까. 習慣을 操心해. 習慣은 人格이 되니까. 人格을 操心해. 人格은 運命이 되니까.” 

    여기, 반복해 ‘목숨 걸겠다’고 決然히 외치는 政治人이 있다. ‘決死抗戰’ ‘죽음에 맞서’ 따위의 單語가 그의 입을 徘徊한다. 날 선 말 속에 我軍과 敵軍이 나뉘고, 審判 對象이 可視化한다. 거리에서 吐해내는 獅子吼(獅子吼)에는 憤怒가 그득하다. 時代 背景과 發話의 主體를 지우고 나면 軍部 政權에 맞서는 運動圈 鬪士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2月 27日이면 第1野黨의 黨權을 거머쥔 지 1周年을 맞이하는 황교안 自由韓國黨 代表 얘기다. 


    100字當 한 番꼴로 死卽生 覺悟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510자 안팎 짧은 글에 죽음과 관련한 단어가 다섯 차례 등장한다. [황교안 대표 페이스북 캡쳐]

    黃敎安 自由韓國黨 代表가 지난해 11月 22日 페이스북에 올린 글. 510字 안팎 짧은 글에 죽음과 關聯한 單語가 다섯 次例 登場한다. [黃敎安 代表 페이스북 캡쳐]

    始作은 出馬宣言文이었다. 2019年 1月 29日. 黃敎安 當時 前 國務總理는 自由韓國當 黨 代表 選擧 出馬를 宣言하면서 “나라를 救하고 國民을 살리는 길이라면 제 한 목숨이라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했다. 같은 해 4月 23日, 黃 代表는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열린 議員總會에서 “목숨을 걸고 自由民主主義를 지키기 위해 싸우자”고 했다. 韓國黨을 除外한 與野 4黨이 選擧法·公搜處法 等을 패스트트랙(迅速處理案件 指定)에 올리는 合意案을 모두 追認한 뒤다. 

    이로부터 約 3週 뒤인 5月 13日에는 慶北 洛東江 龜尾洑에서 열린 現場 最高委員會議에 參席해 “저는 戰爭보다 平和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平和가 지켜질 수 없다면 戰爭할 수밖에 없다. 韓國黨이 이 政府의 暴政에 對해 반드시 목숨을 걸고 막아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亦是 3週가 지난 같은 해 6月 4日에는 自身의 페이스북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挑戰하고 또 挑戰하겠다. (中略) 國民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반드시 成功으로 報答하겠다”고 썼다. 黨 代表 就任 100日(2019年 6月 6日)을 앞두고 낸 聲明이다. 



    그 뒤에는 驅使하는 言語가 더 殺伐해졌다. 黃 代表는 지난해 11月 20日 ▲ 지소미아 破棄 撤回 ▲ 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 抛棄 ▲ 公職選擧法 改正案 抛棄 等 3大 條件을 要求하면서 電擊的으로 斷食에 突入했다. 그러면서 “죽기를 覺悟하겠다”고 했다. 이틀 뒤인 11月 22日에는 페이스북에 510字(字) 안팎 짧은 글을 올렸다. 여기에는 “죽기를 覺悟했다” “死生決斷할 수밖에 없다” “暴力에 죽음을 覺悟하고 맞서야 한다” “지켜야 할 價値를 잃은 삶은 죽음이기에 죽어서 사는 길을 갈 것이다” 等 죽음과 關聯한 單語가 다섯 次例나 登場한다. 100字當 한番꼴로 ‘사즉생(死卽生)’의 覺悟를 다진 셈이다. 

    같은 해 12月 11日, 黃 代表는 더불어民主黨과 一部 野黨이 前날 2020年度 豫算案을 强行 處理하자 “決死抗戰의 覺悟로 맞서 싸워나가겠다” “政權의 暴政에 맞서 正말 목숨을 걸고 決然히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殺伐한 그의 말을 두고는 批判이 적잖다. 大衆 政治人의 言語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理由에서다. 大選走者級 政治人들은 메시지를 擔當하는 參謀를 둔다. 그런데 죽음을 擧論하는 黃 代表의 메시지를 두고는 “訓鍊받은 參謀의 言語가 아니다”(한국당 A 重鎭議員室 補佐官)라거나, “保守의 價値와 동떨어진 메시지”(韓國黨 B 重鎭議員室 祕書官)라는 坪이 黨의 밑바닥에서부터 나온다. 

    汝矣島에서 公報 業務에 잔뼈가 굵은 張性哲 共感課論爭 政策센터 所長(前 새누리당 代表室 副室長)은 “‘목숨을 걸겠다’거나 ‘生命을 바치겠다’는 말은 政治人이 쉽게 내뱉어선 안 될 表現”이라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黃 代表는 政治人의 말이 가진 무게感을 認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목숨을 바쳐 패스트트랙 法案을 막아냈나?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政治的 責任을 져야 하는데, 責任도 안 진다. 말은 아주 세게 하는데 行動은 卑怯한 것이다. 말의 盛饌이다. 목숨 걸겠다고 결氣를 보인 政治人이 그間에도 몇 있었지만, 黃 代表처럼 結果物을 못 낸 사람은 처음인 것 같다. 아마추어다. 政治人으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

    “黃 代表가 메시아主義 批判 빌미 줘”

    黃 代表의 말을 理解하기 위한 열쇠는 信仰이다. 잘 알려졌듯 黃 代表는 篤實한 크리스천이다. 이 때문에 그의 精神世界를 理解하는 데 宗敎를 빼놓을 수 없다. 黃 代表는 司法硏修院 敎授 時節 서울 首都浸禮神學校를 夜間으로 다니면서 神學을 專攻했다. 檢事로 在職할 當時에는 “赴任하는 廳마다 새로 신우회를 組織하거나, 이미 신우회가 만들어져 있는 곳에서는 함께 參與하여 職場福音化 活動을 펼쳐나가곤 했다”고 한다. 黃 代表 本人이 法務部 政策企劃團長으로 在職 中이던 2007年 7月 5日 ‘국민일보’에 쓴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에 담긴 內容이다. 

    2012年에는 ‘敎會가 알아야 할 法 이야기’라는 著書를 出刊하기도 했다. 이 冊에서 그는 “憲法裁判所가 週日에 公務員試驗人 司法試驗을 치르는 것이 合憲이라고 決定한 것은 遺憾”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와 關聯해 黃 代表는 1月 1日 記者懇談會에서 “우리나라에 敎會法 解說書 낸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自負心을 드러냈다. 

    黃 代表의 아내인 최지영 氏는 연세대 英文科를 卒業한 뒤 같은 大學 神學大學院에서 牧會相談學으로 博士學位를 받았다. 以後 나사렛대에서 敎授로 일했고, ‘偉大한 遺産’이라는 題目의 福音聖歌(CCM)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런 背景을 考慮해 ‘목숨 건다’는 黃 代表의 말을 되짚어보자. 한 改新敎人은 이를 두고 “强力한 召命意識의 表現”이라고 解釋했다. 卽 예수의 뜻에 따라 世上을 求해야 한다는 認識의 發露라는 것이다. 그런 意味에서 黃 代表가 認識하는 反對 陣營에는 ‘結社해 맞서야 할 惡(惡)의 勢力’李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一種의 善惡 二分法이다. 政治權 안팎에서는 그의 言語를 두고 스스로를 救援者, 殉敎者로 여기는 ‘메시아主義(messianism)’에 가깝다는 指摘을 내놓는다. 張性哲 所長은 “그間 黃 代表가 써온 表現이 그런 批判(메시아主義)의 빌미를 줬다”고 評했다. 

    이택광 慶熙大 글로벌커뮤니케이션學部 敎授는 “黃 代表의 正體性을 構成하는 重要한 核은 基督敎的 信仰心이다. 이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善惡 二分法의 뿌리”라고 解釋했다. 文化評論家이기도 한 이 敎授는 ‘韓國 社會의 近代性과 基督敎’ 等의 論文을 통해 基督敎의 政治性에 對해 探究해 왔다. 그의 말이다.

    “이와 같은 世界觀에서 빚어진 善惡 二分法은 無條件 相對便 全體를 惡으로 規定하는 게 아니다. 相對便에 特定한 危險 勢力이 섞여 있고, 그와 같은 特定 少數 그룹을 容納할 수 없다는 것이다.” 

    信仰은 홀로 存在하는 獨立變數가 아니다. 絶對 命題와 不可分의 關係를 맺고 있어서다. 李 敎授는 “黃 代表가 가진 絶對 命題는 ‘國家 保安’, 卽 國家를 지킨다는 것”이라고 解釋했다. ‘國家保安法’(2011) ‘國家保安法 解說’(1998) 等을 執筆하며 ‘미스터 國保法’으로 불린 黃 代表의 ‘公安檢事’ 履歷을 念頭에 둔 說明이다.

    “祈禱를 始作했는데 2週 後 비가 내렸다”

    2015년 5월 24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가 서울 양천구 목동 성일교회를 찾아 예배를 보고 있다. [동아DB]

    2015年 5月 24日 黃敎安 當時 國務總理 候補者가 서울 陽川區 木洞 성일敎會를 찾아 禮拜를 보고 있다. [東亞DB]

    信仰의 觀點에서 보자면 苦難은 ‘열매’를 위해 견뎌야 할 試鍊이 된다. 黃 代表는 靑瓦臺 앞에서 엿새째 斷食 籠城을 하던 지난해 11月 24日 페이스북에 “苦痛은 고마운 同伴者다. 肉身의 苦痛을 통해 나라의 苦痛을 떠올린다”고 썼다. 그는 公職 業務조차 宗敎的 意味로 解釋한다. 다음은 黃 代表가 2017年 10月 22日 競技 남양주시의 한 敎會에서 열린 ‘干證 集會’에서 했다는 말이다. 

    “믿는 者는 苦難을 이길 수 있다. 2013年 法務長官 候補者 當時 野黨(現 더불어民主黨)의 엄청난 攻擊에도 人事 聽聞 經過報告書가 採擇됐다. 落馬 1號로 꼽혔는데, 奇跡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恩惠다. 法務長官 時節 成果도 거뒀다. 憲法裁判所에 自由民主主義를 破壞하는 통합진보당 解散 請求 審判을 냈다. 結局 統進黨은 解散됐다. 또 法律 惠澤을 못 받는 住民을 위해 ‘마을 辯護士’ 制度도 導入했다. 하나님이 意味 있는 열매를 주셨다.”(‘뉴스앤조이’ 2017年 10月 22日子, ‘“요셉 같은 總理” 黃敎安 干證 集會’) 

    黃 代表는 이듬해 12月 9日 江原 춘천시의 한 敎會에서 열린 干證 集會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論難의 素地가 多分하다. 

    “2015年 國務總理로 있을 때 가뭄이 極甚했다. 함께 董役하는 분들과 祈禱를 始作했는데 2週 後 비가 내렸다. 生命을 살리는 法案인 테러防止法과 北韓人權法이 10餘 年이 지나도 通過가 안 돼 祈禱를 始作했는데 두 달 後 通過가 된 일도 있었다.”(‘가스펠 투데이’ 2018年 12月 11日子, ‘黃敎安 前 國務總理, “大韓民國,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 

    一角에서는 黃 代表가 改新敎의 支援을 밑바탕 삼아 第2의 MB를 꿈꾸는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敎授에 따르면 韓國에서 “敎會는 네트워크 資本, 緣줄 資本이라는 社會的 資本을 蓄積하고 再生産할 수 있는 場所”(김진호 外, ‘權力과 敎會’ 中)다. 政治人과 關聯해 가장 注目받은 敎會는 서울 江南의 大型 敎會들이다. 김영삼 前 大統領은 서울 江南區 역삼동에 位置한 충현교회를, 李明博 前 大統領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소망교회를 다녔다. 所望敎會는 MB 政府의 人脈 産室로 注目받았다. 

    朴槿惠 政府 時節에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사랑의敎會가 世間의 耳目을 끌었다. 大統領 本人은 敎人이 아니지만 이 敎會를 다니는 主要 人士들이 政府 要職에 登用돼서다. 세 敎會 사이에는 位置(江南圈)와 敎人이 數萬 名 臺에 이르는 메가處置(mega church)라는 共通分母가 있다. 또 세 敎會 共히 國內 最大 改新敎 敎團인 長老敎에 屬한다.

    “마이너韓 宗派일수록 信仰心으로 더 뭉쳐”

    하지만 黃 代表가 걸어온 삶의 軌跡은 서울 江南 大型 敎會의 長老였던 김영삼 前 大統領이나 李明博 前 大統領과 뚜렷하게 區別된다. 그는 서울 牧童에 있는 성일浸禮敎會 聖徒다. 只今도 성일敎會 홈페이지에는 黃 代表가 傳道師로 紹介돼 있다. 美國에서는 남浸禮敎(SBC)가 最大 敎團이지만, 韓國에서 浸禮敎는 長老敎에 比해 相對的으로 少數派다. 성일敎會는 1970年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始作해 1973年 麻浦區 孔德洞, 1976年 中區 만리동을 거쳐 1978年에 牧童으로 옮겼다. 黃 代表는 만리동에 있는 봉래초등학교를 다닐 때 성일敎會와 緣을 맺었다. 성일교會議 規模는 앞선 ‘메가處置’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택광 敎授는 “所望敎會 等은 江南 上流層 네트워크의 中心이기도 하다. 反面 黃 代表가 다닌 敎會의 境遇 이와는 결이 다르다”면서 “마이너(minor)韓 宗派일수록 信仰心을 中心으로 더욱 더 뭉쳐 있다”고 說明했다. 

    다시 ‘鐵의 女人’으로 論議를 되돌려보자.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行動이 된다. 行動은 習慣이 되고, 習慣은 人格과 運命으로 이어진다. 黃 代表의 ‘習慣的 場外集會’ 亦是 信仰의 틀 속에서 理解할 수도 있다. 黃 代表의 認識대로라면 ‘죽음을 무릅쓴 거리 鬪爭’이기 때문이다. 이택광 敎授는 “殉敎에 對한 熱望”이라면서 多少 길지만 흥미로운 說明을 덧붙였다. 

    “斷食과 場外集會는 保守右派가 해왔던 行動이 아니다. 1980年代의 旣視感이다. 當時 많은 學生이 自己 몸에 불붙이면서 犧牲을 했다. 普通 宗敎人들이 그렇지, 學生들이 그렇게 하진 않는다. 韓國만의 特異한 事例다. 當時 學生運動 組織에 많은 影響을 미친 게 開拓敎會다. 初期 運動圈 歌謠 中에 讚頌歌 비슷한 게 많았다. 卽 (只今 保守의 行動은) 1980年代 벤치마킹이다. 相當數 保守 政治人의 큰 政治的 缺損(缺損)은 民主化에 寄與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文 政府는 保守가 缺損을 메울 絶好의 機會다. 歷史的으로 보면 民主的 權威가 守勢에 몰릴 때 獨裁的 手法을 쓰게 돼 있다. 이番 秋美愛 法務長官의 ‘檢察 人事’가 그런 境遇다. 卽 文 政府를 相對로 民主主義를 외칠 수 있는 狀況이 됐다. 이에 必要한 게 信念인데, 黃 代表는 그걸 갖고 있다.” 

    問題는 黃 代表의 發言과 行步가 極右의 燃料로 活用될 憂慮가 있다는 點이다. 이 空間을 파고들어간 사람이 全光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代表會長이다. 그는 “문재인은 하나님이 廢棄處分했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等 막말과 ‘神聖 冒瀆’ 論難으로 口舌에 오른 바 있다. 前 牧師는 改新敎 안에서 ‘說敎 잘하는 牧師’로 불렸지만 極右 行步 탓에 酒類에는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人物이다. 

    이와 關聯해 지난해 10月 30日 (寺)韓國基督敎社會問題硏究院이 改新敎人 1000名과 非(非)改新敎人 1000名을 對象으로 進行한 ‘2019 主要 社會 懸案에 對한 改新敎人의 認識調査’에 따르면 改新敎人 64.4%는 ‘前 牧師가 韓國 敎會를 代表하지도 않고, 基督敎 位相을 深刻하게 毁損하고 있다’고 應答했다. 22.2%는 憂慮를 표했다.

    洪準杓조차 “宗敎的 信念으로 政治 보지 말라”

    그런 前 牧師가 一躍 有名 人士로 떠오르는 데 寄與한 사람이 有力 大權走者인 黃 代表다. 그는 靑瓦臺 앞 噴水臺 廣場에서 이틀째 斷食 中이던 지난해 12月 20日 前 牧師가 꾸린 이른바 ‘曠野敎會’를 찾았다. 1月 1日에는 前 牧師를 두고 “아이디어가 많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剛한 분”이라고 評했다. 政治權에서는 黃 代表의 大權街道에 何等 도움 될 게 없는 行步라는 指摘이 提起돼 왔다. 前 牧師가 1月 2日 유튜브를 통해 “黃 代表 側으로부터 앞으로 함께할 수 없다는 通報를 받았다”고 主張했지만, 黃 代表가 이를 公式 確認한 적은 없다. 

    이러자 黃 代表의 前任人 洪準杓 前 韓國黨 代表조차 1月 4日 自身의 페이스북에 “(皇 代表가) 政治的 信念으로 政治하지 않고, 宗敎的 信念으로만 政治하면 政治가 제대로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느냐”고 批判했다. [신동아 2月號]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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