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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獨] 김무성 “黃敎安, 親朴 ‘劉承旼 비토’ 默殺하고 統合 밀고 가야”|신동아

[單獨] 김무성 “黃敎安, 親朴 ‘劉承旼 비토’ 默殺하고 統合 밀고 가야”

國會 떠나는 金武星 自由韓國黨 議員의 作心 吐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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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1-17 14: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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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安哲秀, 愛國心 있다면 反文으로 뭉치자

    • 黃 周邊 親朴 得勢, 自己 리더십 밀고 가는 힘 弱해

    • 朴은 不通, 李秉岐 祕書室長과도 獨對 딱 두 番

    • 文在寅은 露骨的 獨裁者…말을 못 붙이게 한다더라

    • 左派들 ‘주린 自家 배를 채우듯’이 막 처먹고 있다

    • 紛亂 생길까 참아왔는데 親朴이 歷史 歪曲하고 있어

    • 分裂된 右派가 살기 위해 ‘닥치고 統合’해야

    • 朴 下達 6人 뺀 比例 公薦, 현기환·崔敬煥·서청원이 해

    • 公薦 波動 責任 金泰浩, 이番에 ‘컷오프’해야

    • 박근혜와 和解할 方法만 있다면 和解하겠다

    • 總選 不出馬 飜覆 없다…나 하나라도 約束 지켜야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서울 汝矣島 國會 議員會館에 寂寞感이 흐른다. 議員과 保佐陣이 民心(民心)을 渴求(渴求)하러 地域 구석구석 발품을 팔고 있던 참이다. 불 꺼진 채 닫힌 門이 未來에 對한 焦燥함을 오롯이 드러낸다. 어느 房 앞에는 A4 用紙 한 張만이 외로이 나부낀다. 흰 바탕 위에 새겨진 ‘010-XXXX-XXXX’ 따위의 數字만이 아스라이 보인다. 選擧가 幕을 내리면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 새로 房 한 자리 꿰찰 사람이 定해질 터다. 

    706號의 主人은 벚꽃이 떨어지면 스스로 정든 會館을 떠난다. 風雲兒(風雲兒) 金武星(69) 自由韓國黨 議員. 한때 28週 連續 大權 支持率 1位를 記錄했던 그는 只今의 李洛淵 前 國務總理보다 더 强力한 大權走者였다. 그런 그가 2018年 6月 “새 保守 再建을 위해 바닥에서 獻身하겠다”면서 總選 不出馬를 宣言했다. 零下의 날씨에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던 1月 10日 午前 10時. 기다란 卓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마자 그가 特有의 低音으로 韻을 뗀다. 

    “나도 이제 政治를 마감하고 決算하는 立場에 있다. 모처럼 하는 인터뷰이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제대로 나가길 바란다. 公人이 삶에서 追求하는 結論은 結局 愛國이다. 어떻게 해야 愛國的인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가 關鍵이지.”

    “이 室長, 當身 大統領과 獨對 몇 番 했소?”

    -朴槿惠 政府는 權力을 恣意的(恣意的)으로 行使하다가 무너졌다. 文在寅 政府를 두고도 같은 問題를 指摘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國民은 民主的 節次에 依해 大統領을 뽑았는데, 뽑힌 大統領은 自身을 王으로 錯覺한다. 完全히 王政(王政)이다. 나는 民主化 鬪爭을 하다 政治에 入門했다. 아무리 尊敬하는 指導者더라도 하는 行動이 非民主的으로 흐를 때는 抵抗意識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朴 前 大統領과 나 사이도 그것 때문에 틀어졌다. ‘當身은 우리의 代表이지, 우리 위에 君臨하는 사람이 아니다. 當身과 나는 政治的 同志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朴 前 大統領이 우리를 對하는 態度는 ‘賞과 下’의 槪念이었다. 거기서부터 나하고 悲劇이 始作된 거다.” 



    朴 前 大統領에 對해 말할 때면 그는 悲劇이라는 單語를 자주 썼다. 

    “朴 前 大統領은 ‘下剋上’이나 ‘索出하라’는 말을 잘 썼다. 思考의 非民主性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런 悲劇이 온 거고.” 

    金 議員은 오랫동안 權力 分散을 위한 改憲을 力說해 왔다. 問題 認識의 起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993年, 그러니까 그가 靑瓦臺 民政祕書官이던 時節에 다다른다. 

    “靑瓦臺 있을 때 國精院, 檢察, 警察, 기무사 等 우리나라 最高 情報機關에서 온 情報報告書를 다 봤다. 權力者가 거기에 길들면 큰일 난다. 한군데 빠져들지 않으려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朴 前 大統領은 그걸 一切 안 했어. 不通이야 不通. 黨 代表인 내가 아무리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줬고.” 

    그는 이 대목에서 “不通이 어느 程度였는지 알아요?”라고 反問하며 이렇게 敷衍했다. 

    “祕書室長 獨對를 안 했다. 李丙琪(前 祕書室長) 拘置所 面會 가서 ‘이 室長, 當身 大統領과 獨對 몇 番 했소?’ 물었더니 ‘祕書室長 되고 들어가는 날 한 番, 그만두고 나오는 날 한 番’ 이렇게 두 番 했다고 下臺. 믿어지나? 李丙琪만 그랬나. 金淇春(前 祕書室長)도 못 만난 거요.” 

    -金淇春 室長은 朴 大統領의 가장 가까운 側近으로 알려져 있는데. 

    “李秉岐가 側近 아니면 祕書室長 시켰겠나? 金淇春度 全部 電話(指示)였지. (大統領으로부터) 電話가 하루에 數十 통 떨어진다는 거요. ‘이러세요. 저러세요’ 一方的인 指示地. 雙方向 對話가 아니고.” 

    金 議員은 “朴 前 大統領은 潔癖症이 있을 程度로 깨끗한 사람”이라면서도 “하지만 帝王的 權力의 그늘에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 寄生했다. 權力者가 모르는 새 不正이 싹트는 것이 帝王的 權力 構造”라고 一喝했다. 이내 그는 말머리를 文在寅 大統領으로 돌렸다. 

    “文 大統領이 執權하기 前에 만나서 ‘大統領 되면 當身 손으로 帝王的 權力構造를 改憲하라’고 助言했다. 그런데 (文 大統領이) ‘사람의 問題지, 시스템의 問題는 아니다. 내가 하면 다르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래? 當身 大統領 되면 3年 안에 權力型 不正 터지고 레임덕이 올 것이다. 두고 봐라’라고 豫言했다. 그게 ‘曺國 事態’다. 조국이 그렇게 凶測한 X인 줄 大統領이 알았겠나? 

    나는 事業하다가 民主化 鬪爭을 했다. 나 때문에 軍事獨裁 政權下에 집안 會社가 被害 보면 안되겠다 싶어 株式을 싹 다 팔아 現金化해서 定期預金 해놓았다. 그 後 只今까지 30餘 年 동안 定期預金 해놓은 돈의 利子 收入 以外에는 다른 건 一切 생각도 안 했다. 名色이 事業韓 사람인데 그 돈으로 三星前者 株式 사면 오른다는 걸 몰랐겠나? 曺國은 公職者 財産 實態를 管理하는 民政首席으로 있으면서 다른 짓을 했잖아. 그런 祖國을 保護한다고 大統領부터 始作해 柳時敏, 正義黨, 또 民主黨 議員들까지 얼마나 寒心해. 그中 가장 寒心한 게 朴智元이요. 왜 다른 黨에 있으면서 祖國 辯護한다고 自己 名譽를 팔아먹느냐 이거야. 正말 嘔吐症을 느낄 程度다.”

    “文 大統領은 完全히 露骨的인 獨裁者”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연설을 마친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 두 번째)와 원유철 원내대표(오른쪽 첫 번째),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왼쪽 첫 번째) 등과 함께 국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朴槿惠 當時 大統領이 2016年 2月 16日 서울 汝矣島 國會 本會議場에서 國會 演說을 마친 뒤 김무성 새누리당 代表(왼쪽 두 番째)와 원유철 院內代表(오른쪽 첫 番째), 현기환 大統領政務首席祕書官(왼쪽 첫 番째) 等과 함께 國會를 나서고 있다. [뉴스1]

    金 議員은 “左派들은 執權하면 깨끗이 할 것처럼 말해대더니 ‘주린 自家 배를 채우듯’이 막 처먹고 있다”고 했다. 

    그의 表情이 자못 深刻해졌다. 

    “文 大統領은 내 생각만 옳다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 퍼주기 복지는 되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亡한 게 아르헨티나, 그리스, 이탈리아, 베네수엘라다. 大韓民國이 베네수엘라 꼴로 간다는 걸 믿을 사람이 누가 있나. 共産主義 國家인 中國과 베트남은 市場經濟 政策을 써서 저렇게 經濟 發展을 했는데, 市場經濟 政策으로 奇跡的으로 發展한 大韓民國은 거꾸로 左派 社會主義 經濟政策을 써서 나라를 망쳐놓고 있으니 氣가 막힐 노릇 아닌가.” 

    -經濟 問題를 宏壯히 深刻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文 大統領이 막 퍼주고 있다. 지난 70年間 父母보다 子息 世代가 잘살았다. 그런데 文 政府 들어와 子息 世代가 父母보다 못사는 나라로 꺾여버렸다. 國家 負債, 年金 不渡, 醫療保險의 急激한 引上에 따른 財政 赤字를 누가 負擔하겠나. 우리는 다 살았잖아. 나 죽을 때까지 年金이 부도나리라 생각 안 한다. 이제 未來 世代가 살아갈 때는 年金 부도나게 생긴 거요.” 

    史跡으로 金 議員은 文 大統領의 경남중학교 1年 先輩다. 두 사람이 같은 時期에 巨大 兩黨 代表(새누리당, 새政治民主聯合)를 한 因緣도 있다. 

    “自己가 政治人이라면 國政 運營이 어려울 때 ‘金 代表, 한番 봅시다’ 해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을 수 있는 거 아이가? 그러면 나도 國民의 代表인 大統領이니 虛心坦懷하게 ‘이 政策은 좋은 뜻으로 하는 거 아는데, 絶對 해서는 안 된다’고 助言할 수 있지 않겠나. (文 大統領은) 그런 모습이 없다. 脫原電 그게 말이 되는 소리가. 韓秉道(前 靑瓦臺 政務首席), 姜琪正(現 靑瓦臺 政務首席)이 내 이야기 듣고 싶다고 해서 食事할 때 그 말 했다. ‘所得主導成長, 脫原電만 大統領이 생각 바꾸면 支持率 올라간다’고. 메모는 하던데, 말은 그래 안 했지만 表情이 그런 말 傳達 못 한다는 式이더라고. 말을 못 붙이게 한대.” 

    -文 大統領이 말인가? 

    “그 두 사람한테 들은 말은 아니고, 민주당 重鎭 中에도 나와 親舊 많잖아. 朴 前 大統領은 조용한 獨裁者였다. 獨裁的 思考를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表現은 그렇게 안 했지. 反面 文 大統領은 完全히 露骨的인 獨裁者다.” 

    -朴 前 大統領이나 文 大統領이 ‘飯(反)議會主義者’라는 點에서는 똑같다는 말까지 돈다. 

    “‘飯(反)議會主義者’地. 朴 前 大統領은 與黨 議員들도 안 만났다. 親朴 實勢란 사람들 만나서 ‘當身 大統領 몇 番 만났나’ 물어보라.” 

    -누나라고 불렀다는 議員도 있었는데. 

    “親朴 實勢라고 하는 議員들이 아무도 朴 前 大統領을 못 만났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彈劾이 어쩌고 무슨…. 아휴 寒心해가지고. 彈劾이라는 게 갑자기 通過된 게 아니라 여러 節次를 다 거쳤잖아. 수많은 議總을 열고 甚至於 本會議 票決하러 갈 때도 議總을 열었다. 그때 한 名도 나한테 (彈劾하지 말자고) 말한 사람 없다. 親朴을 만든 사람이 나다. 최경환도 내가 親朴에 包攝한 사람이다. 나한테 ‘彈劾하지 말자’고 電話 한 通 없었다. 只今 와서 彈劾을 主導한 김무성이 逆賊이고, 劉承旼과는 統合 안 된다? 그게 大體 말이 되는 소리요?”

    “李X들 해도 너무해”

    保守陣營은 汝矣島 안팎에 널따랗게 퍼져 있다. 自由韓國黨과 새로운保守黨, 우리共和黨, 保守 性向 市民團體가 各各의 利害關係에 따라 陣營 안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韓國黨 議員들 個個人에게도 親朴과 非朴 或은 殘留派와 復黨波 같은 다양한 라벨이 붙어 있다. 한便에서 이들은 ‘飯(反)文在寅’이라는 連結고리로 끈끈한 紐帶를 誇示한다. 또 다른 한便에서 이들은 ‘彈劾’이라는 리트머스 試驗紙를 通過하지 못한 채 破片처럼 흩어진다. 그 한복판에 ‘政治人 金武星’이 있다. 

    -2016年 當時엔 相當數가 彈劾에 贊成하지 않았나? 

    “(卓子를 내리치며) 새누리당 國會議員 中 贊成 62票, 反對 57票로, 贊成이 反對보다 5票 많았고 거기에 棄權이 7票, 無效가 2票였다. 棄權과 無效는 贊成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이 反對할 줄 몰라서 反對 안 했겠나? 贊成하려 하는데 우리가 뽑은 大統領이라는 것 때문에 棄權, 無效 擇한 거지. 최경환은 票決 안 하고 退場했잖아. 退場할 時間 있으면 나한테 찾아와서 ‘中斷하자’고 이야기해야지. 每週 土曜日 光化門에 數十萬 名이 모이고 集會가 全國으로 擴散되고 있었다. 大統領 指導力은 完全히 喪失되고 國政은 痲痹돼 있는 狀況인데 大統領이 下野하는 게 옳은가, 法的 節次(彈劾)를 밟는 게 옳은가?”
     
    -節次를 밟아서 秩序 있게 退陣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렇지. (卓子를 내리치며) 大統領이 下野했으면 民衆蜂起에 依한 憲政 中斷 아니가? 그런데 2016年 11月 28日에 親朴 8名이 모였다(당시 言論 報道에 따르면 이날 서청원, 鄭甲潤, 崔敬煥, 홍문종, 유기준, 鄭宇澤, 尹相現, 조원진 議員이 서울 麻布의 한 食堂에서 非公開 午餐 會同을 했다). 8名이 討論 끝에 내린 結論이 ‘到底히 收拾이 안 되고 大統領이 彈劾의 不名譽를 안게 할 수는 없으니 下野를 建議하자’는 거였다. 8名이 헤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허원제 當時 政務首席한테 電話를 한다. 모여 있는 사람 名單 불러주고 ‘下野를 建議한다’고(당시 8人은 이를 ‘名譽退陣을 建議하자’고 主張했다). 

    그래놓고 只今 와서 김무성이 逆賊이고 背信者다? 누가 背信者요? ‘當身 이제 大統領 못 하니까 當場 그만두시오’가 背信者가, 아니면 ‘法的 節次를 밟자’가 背信者가? 내가 말을 할 줄 모르나, 머리가 나쁜 X이가. 왜 그間 이 말을 안 했겠나. 내가 그 말을 하면 黨에 紛亂이 생기니까 只今까지 참아왔다. 그런데 이X들 해도 너무해. 歷史를 歪曲하고 있잖아요.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또 朴 前 大統領을 批判해야 해. 監獄에 들어앉아 있는 女性 大統領을 밖에서 사내大丈夫가 批判하는 것이 싫어서 只今까지 말을 안 했던 거요.(큰 한숨)” 

    이 대목에서 그는 “自身보다 金振泰 議員이 먼저 彈劾을 主張했다”고 强調했다. 

    “11月 3日에 金鎭台가 ‘國政이 痲痹됐으니 法대로 彈劾 節次를 밟으면 自己는 彈劾에 反對하겠다’고 했다. 그 열흘 뒤(11月 13日) 내가 彈劾을 主張했고.” 

    한便 金振泰 議員은 1月 10日 MBC 라디오에 나와 “黃敎安 代表가 (유승민 議員 側의) ‘彈劾의 江을 건너자’는 要求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나중에 큰 後患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總選 캐스팅보트人 中道 有權者들은 彈劾에서만큼은 進步 有權者와 意見을 같이한다. 保守가 彈劾에 對한 立場을 明確히 整理하지 않으면 이들은 無黨派로 남아 있을 可能性을 排除할 수 없으니 피 터지는 論爭을 통해서라도 整理해야 한다는 主張도 있는데. 

    “늦었다. 나는 (彈劾 論爭을) 避할 생각은 없는데, 彈劾은 歷史에 맡기고 묻어놓고 가야 한다. 彈劾에 對해 더는 言及하지 말고 國民의 判斷에 맡기자는 거지. 우리共和黨에서 彈劾을 되돌릴 수가 있나? 아니면 彈劾된 大統領을 다시 불러서 大統領 시킬 수가 있나?”

    “살기 위해 統合해야지 무슨 方法 있노”

    -民心(民心)은 政權과 與黨도 싫지만 韓國黨은 더 싫다고 한다. 젊은 世代 사이에서 韓國黨에 對한 反感이 唯獨 甚하다. 

    “結局 親朴이라는 朱紅글씨 때문에 그런 거요. 2017年에 朴 前 大統領만이 아니라 새누리黨과 親朴이 彈劾당한 것이다. 그런데 黃 代表 周邊에 親朴이 다 得勢하고 있잖아. 國民들은 그게 꼴 보기 싫은 거지.” 

    -黃 代表의 리더십은 어떻게 評價하나? 

    “黃 代表 처음 만났을 때 ‘當身이 親朴한테 身世 진 일 있느냐. 非朴하고 원수진 일 있느냐. 國民的 期待가 當身한테 있으니 自信感을 갖고 堂堂하게 하라’고 어드바이스했다. 그런데 아직 自己 리더십을 밀고 가는 힘이 弱하다. 國民들은 汝矣島 政治하는 놈 꼬라지 보기 싫어 安哲秀를 擇했다가, 이番에는 황교안을 擇한 것 아닌가. 黃 代表가 그런 輿望을 제대로 담아내질 못하니 支持率이 빠지는 거지.” 

    그러면서 金 議員은 “分裂된 右派가 ‘닥치고 統合’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敷衍했다. 

    “選擧가 다가오면 彈劾 이야기 안 하겠지 하고 기다려왔는데, (卓子를 내리치며) 只今도 黃 代表가 統合하려 하니 (親朴이) ‘劉承旼하고 왜 統合하느냐, 안 된다’ 해서 멈칫거리고 있잖아. 黃 代表가 默殺하고 밀고 가야지. 選擧 紙面 黃敎安이건 劉承旼이건 그걸로 끝이요. 살기 위해서 두 사람이 統合해야지 무슨 方法이 있노.” 

    1月 9日 MBN은 “한 親朴系 議員은 “유승민 議員과 統合하면 脫黨하겠다”고 했고, 또 다른 議員은 “大邱에선 暴動이 일어날 것”이라며 “黃 代表가 民心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는 趣旨로 報道했다. 

    -유승민 議員과 統合하면 脫黨하겠다는 親朴 議員들도 있는데. 

    “어떤 X이야? 脫黨하라 그래.” 

    -우리共和黨으로 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그 X 죽는 거지. 누군지 모르지만.” 

    -黃 代表 리더십이 弱하다 보니 이런 일이 빚어지는 것 아닌가? 

    “黃 代表가 그런 主張을 하는 사람 앉혀다가 說得하고 눈물로 呼訴하면 안 흔들리겠나? 黃 代表 單一 指導體制高 公薦權을 갖고 있다. 또 未來 權力이 될 可能性이 現在 右派 中엔 1等이다. 밀어붙일 땐 밀어붙여야지.” 

    -保守 統合의 對象을 어디까지로 보나? 유승민 議員 勢力에 더해 安哲秀 前 議員 勢力을 아우르는 統合인가? 

    “다 해야지.” 

    -다 해야 한다면 李貞鉉, 이언주 議員까지 包含하는…? 

    “이정현, 李彦周까지 當爲的으로는 右派가 다 統合해야 한다. 그런데 果然 그게 되겠느냐 하는 데에는 나도 疑問이다.” 

    -‘中道保守 大統合을 위한 革新統合推進委員會’ 委員長인 박형준 동아대 敎授는 우리共和黨은 只今 當場 統合 對象은 아니라면서 線을 딱 그어버린 模樣새던데. 

    “아니 저쪽(공화당 側)에서 彈劾 勢力과 같이 못하겠다고 하니까 朴亨埈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 彈劾은 묻고 가자고 다 合意를 봤는데, 공화당에서 저렇게 나오니까. 文 大統領도 40%만 보고 政治하는데, 여기(右派)도 40%만 結集하면 이길 수 있단 생각을 하고 있다. 그 中間地帶를 安哲秀가 파고 들어가려 하는 거고. 安哲秀도 愛國心을 가졌다면 이番 選擧에서는 이쪽(右派)과 손잡아야 한다. 그다음에 自己 大權 競爭을 해야 한다. 安哲秀에게 ‘愛國心으로 反文連帶의 길을 같이가자’고 呼訴하고 싶다.” 

    -韓國黨이 ‘强性 市民團體’처럼 가는 게 아니냐는 指摘도 있다. 韓國黨 안에서도 ‘場外集會 疲勞症’을 呼訴하기도 하는데. 

    “場外集會 이제 그만해야 한다. 地域 事情을 모르는 짓이다. 1月 1日에 黨舍에서 團拜式을 했다. 이튿날 國會 앞마당에서 國民께 歲拜하는 行事를 했다. 그러고 다음 날에 光化門 가서 集會했다.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半(半) 죽는 거요. 釜山서 올라오려면 새벽 5時 車 타야 한다. 또 내려가면 새벽 1~2時다. 이걸 사흘 連續 한다고 생각해 봐라. 무슨 짓인가. 이젠 地域密着으로 가야지.”

    “6名 빼고 比例 公薦 누가 했느냐 이거야”

    2016년 3월 20일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20대 총선 후보 경선 지역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마친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2016年 3月 20日 李漢久 當時 새누리당 公薦管理委員長이 서울 汝矣島 黨舍 記者室에서 20代 總選 候補 競選 地域 輿論調査 結果 發表를 마친 뒤 黨舍를 나서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記者]

    20代 總選을 두 달餘 앞둔 2016年 2月 4日. 새누리黨은 李漢久 當時 議員을 公薦管理委員長(公管委院長)으로 임명했다. 金武星, 李漢久 두 사람은 惡緣(惡緣)이다. 當事者인 ‘前 새누리당 代表 김무성’의 回顧를 들어볼 時點이다. 

    “靑瓦臺에서 李漢久를 公管委院長 시키겠다고 해서 내가 反對했다. 서청원은 票決하자고 하고. 票決하면 뻔히 내가 지는데.” 

    다음은 金 議員이 傳한 현기환 當時 靑瓦臺 政務首席과의 對話 한 토막. 

    金: “李漢久는 絶對 안 된다. 느그度 컨트롤하기 어려울 거다. 大統領 만나야겠다.” 

    現: “兄님, 왜 이러십니까. 다 아시면서” 

    金: “(大統領과) 電話라도 하자. 票決하면 내가 지게 돼 있는데 무슨 方法이 있나. 電話로라도 (大統領에게) ‘이한구 아니면 누구라도 받겠다’고 말하겠다.” 

    그는 “그랬는데 電話도 안 바꿔줬다. 다들 나보고 ‘왜 그때 못 싸웠느냐’ 그러는데, 靑瓦臺 壓力을 받는 最高委員들이 票決하자 하면 무슨 方法이 있나. 當時 最高委는 代表 包含 9人이 한 票씩 行使했는데 7名은 靑瓦臺 뜻만 따랐다”고 했다. 

    20代 總選 當時 새누리당 公薦과 關聯해 떼놓을 수 없는 單語가 ‘殺生簿’다. 2016年 2月 24日. 金武星 當時 代表는 ‘靑瓦臺의 뜻’이 담긴 殺生簿 40餘 名의 名單이 있다는 事實을 確認했다. 李在五, 유승민, 정두언, 金鎔泰, 金世淵, 金學容, 김성태, 朴敏植 等 非朴系 議員들과 親朴 重鎭인 서청원, 이인제가 包含된 名單이었다. 

    하지만 홍문종 우리共和黨 代表는 지난해 11月 ‘中央日報’ 인터뷰에서 “殺生簿는 없었다”면서 “當時 김무성 前 代表는 大統領이 되고자 하는 나름 巨大한 計劃이 있었다. 그 計劃의 目的으로 지라시를 動員했다고 疑心할 여러 情況이 있다”고 主張했다. 

    -洪 議員은 金 議員이 있지도 않은 殺生簿를 利用했다는 趣旨로 인터뷰했던데. 

    “지라시 아니다. 신동철(前 朴槿惠 靑瓦臺 政務祕書官)이로부터 받은 情報다. 當時 현기환이 靑瓦臺 政務首席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신동철한테 依存을 많이 했다. 신동철이 事實上 實務 總責任者였는데, 自己와 兄弟 같은 사이인 A한테 名單을 쭉 불러주면서 이야기한 거다. 그래서 그 情報가 우리한테 들어온 거지. 親朴 政治人도 자른다고 돼 있으니 신동철이가 ‘이 XX들 眞짜 나쁜 X들이다’라고 말한 거고. 그 말인즉슨 신동철이 아닌 다른 데서 名單이 만들어졌단 것 아니겠나. 그게 누구겠노? 현기환한테서 왔겠지.” 

    이와 關聯해 金 議員의 補佐官 出身인 張性哲 共感課論爭 政策센터 所長은 ‘신동아’ 1月號에 “2016年 靑瓦臺가 比例代表 候補 選定에도 깊숙이 關與했다. 朴 大統領의 뜻이라며 반드시 當選돼야 할 比例代表 候補로 李漢久에게 傳達된 名單은 總 6名이었다. 그中 當選된 사람은 姜孝祥, 庾敏鳳, 최연혜, 申普羅, 김현아 等 5名”이라고 밝혔다. 

    -6名의 比例代表 公薦 名單을 當時 靑瓦臺에서 下達했다는 건 事實인가? 

    “靑瓦臺에서 名單을 6名밖에 안 보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事實이지. 그렇다면 또 疑問이 생기지. (黨 代表였던) 나는 처음부터 比例代表에 내 사람 한 名도 안 심겠다고 宣言했다. ‘슈스케’ 方式으로 分野別로 公薦 申請을 받아 討論 붙여 點數 매기고 候補를 選定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 計劃이 깨져버리고 李漢久 손에 넘어간 거다. 그래서 나는 只今까지 (當時) 比例代表는 靑瓦臺가 다 내려보낸 줄 알았다.” 

    -6名뿐 아니라 全體 모두를? 

    “그렇다. 그럼 6名 말고 나머지 比例代表 公薦은 大體 누가 했느냐 이거야. 黨 代表 빼고 다 갈라 먹었다는 말 아니요? 그때 누가 實勢였는지 보면 다 알지. 현기환, 崔敬煥, 서청원 等이 다 해먹었다는 소리요. 그러니 더 氣가 막힌 거지.” 

    當時 새누리黨은 總 44名을 比例代表 候補로 公薦했다. 政治權에서는 새누리黨의 支持率을 勘案해 22番 안팎까지 當選 安定圈으로 展望했다. 하지만 最終 得票率은 33.50%에 그쳐 17番까지 當選됐다. 

    그러면서도 金 議員은 “강효상, 庾敏鳳, 최연혜, 申普羅, 김현아 公薦은 잘했다고 본다. 다 한가락 하는 사람들 아니가”라고 덧붙였다.

    “김태호, 무슨 낯짝으로 故鄕 出馬하나”

    -張 所長이 金 議員 補佐官이었으니 當然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意外다. 

    “이 말(比例代表 名單 下達)은 그前에도 나왔었다. 성철이가 前에도 말을 했지. 그렇다면 성철이는 누구한테 들었느냐? 그건 想像에 맡기겠다.” 

    記者는 金 議員과 인터뷰한 直後 張 所長과 通話했다. 張 所長은 “(比例代表 名單 下達과 關聯해) 나는 알고 있었지만 金 議員은 그前까지 몰랐다”라고 했다. 當時 最高委員會에는 金 代表를 비롯해 서청원, 金泰浩, 李仁濟, 金乙東, 李貞鉉, 안대희 最高委員과 원유철 院內代表 김정훈 政策위 議長 等이 있었다. 金 議員은 “最高位에서 上向式 公薦을 主張하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김을동 議員 한 사람뿐이었다. 票決하면 7:2街 될 수밖에 없는 構造”라고 했다. 

    -最近 페이스북에 “20代 總選 敗北에 責任이 있는 當時 最高委員과 公管委員들, 그리고 黨이 이 地境이 된 데 責任 있는 重鎭들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主張했던데. 

    “只今 右派의 危機가 彈劾에서부터 始作된 게 아니다. 朴 前 大統領의 불桶에서 始作됐다. 그 뒤 公薦 波動 탓에 우리가 第2黨이 돼버려 빚어진 일이다. 公薦 잘못해서 이렇게 됐으니 여기에 責任 있는 사람들이 不出馬로 謝罪(謝罪)해야 할 것 아닌가. 最高委員 中 안대희를 뺀 나머지 8名은 不出馬해야 한다(안 前 大法官은 總選을 3個月餘 앞둔 2016年 1月 21日에야 指名職 黨 最高委員으로 任命됐다). 公薦 申請하더라도 公薦 주면 안 된다. 當時 公管委員들은 只今 大部分 出馬할 狀況이 못 된다. 딱 한 사람, 洪文杓가 問題다. 홍 議員 地域區가 洪城·豫算인데, 이 사람 아니면 當選될 수 없는 地域이다. 그게 苦悶이야. 안 주면 뺏기는데.” 

    -그럼 當時 最高委員 8名만 不出馬하면 되는 셈인가? 

    “그렇지. 單, 首都圈 險地에 가서 떨어지더라도 한番 붙어보겠다면 (公薦) 줘야지. 金泰浩가 거기에 該當이 돼.” 

    -金 前 議員은 이미 故鄕인 慶南 居昌에서 出馬를 宣言했는데. 

    “(居昌에) 公薦 주면 안 된다. 20代 때 公薦 그렇게 망쳐놓은 張本人이 무슨 낯짝으로 故鄕 가서 出馬하나.” 

    -平素 主張대로 輿論調査를 통해 競選하면 金 前 議員의 勝利 可能性이 높지 않나? 

    “그러니 ‘컷오프’ 해야지.” 

    -大邱·慶北(TK) 議員들의 不出馬 宣言은 全無한 狀態다. 도리어 ‘나갈 사람은 搖之不動이고, 남을 사람만 나간다’는 評價가 나온다. 

    “김세연, 金榮宇, 金度邑 이런 親舊들은 앞으로 黨을 끌고 나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다 그만두고 그만둬야 할 사람들은 안 그만두니까 氣가 막힐 노릇 아이가. 이 親舊들이 왜 그만두겠어. 그만둬야 할 놈들이 안 그만두니까 보란 듯이 ‘쇼크 받아라’ 하고 그만둔 거거든. 그걸 왜 모르느냐 이거지.” 

    -公薦에 關與한 重鎭뿐 아니라 當時 ‘公薦 波動’에 依해 當選된 ‘親朴 初選’ 議員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主張에 對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뭐 그까지는 번지게 하고 싶지 않다. 朴槿惠 政權 沒落에 責任이 있던 사람들, 뭐 이程度 하면 되지.”

    “박근혜와 和解할 方法만 있다면야…”

    김무성 의원은 “황교안·유승민이 살기 위해서라도 통합해야지 무슨 방법이 있나”라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김무성 議員은 “黃敎安·유승민이 살기 위해서라도 統合해야지 무슨 方法이 있나”라고 말했다. [조영철 記者]

    ‘政治人 金武星’李 權力 分散型 改憲과 兩 갈래로 主張해 온 政治改革 方案이 바로 ‘上向式 公薦’이다. 

    “내가 黨 代表 할 때 與黨의 무덤이라는 補闕選擧에서 全部 이겼다. 上向式(輿論調査)으로 公薦한 德이다. 某 實勢가 特定人을 强力히 推薦한다는 건, 事實 自己 ‘꼬붕’ 심으려는 거 아니가. 거기다 플러스 要因이 돈이다. 나는 與黨 代表 在任 中 公薦하면서 내 사람 하나도 안 심고 돈 1원도 안 받았다. 그냥 妥協해서 ‘大統領 다 推薦하시오. 나 다 받아줄게. 나도 좀 심어야겠다.’ 그러면 내 사람 數十 名 챙겼지. 돈 갖고 오는 거 받았으면 數百億 챙겼을 거다.” 

    公薦은 保守統合 過程에서 가장 重大한 變數다. 金 議員은 “統合에는 持分 이야기가 必然的으로 나오게 돼 있다”면서 自身이 構想한 對案을 紹介했다. 열쇳말은 亦是 ‘上向式 公薦’이다. 

    “韓國黨 울타리를 없애고 黨名도 바꿔야 한다. 外部 人士가 障壁 없이 들어와 希望 地域에 公薦 申請하고, 公薦權은 住民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只今까지는 黨員 50%, 國民 50% 比率로 公薦했는데 이番에 한해서는 黨員께는 未安하지만 國民에게 決定權을 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新黨 만들 必要도 없다. 언제 新黨을 만드노. 時間도 없다.” 

    이 대목에서 그는 “그쪽(새保守黨)에서도 그걸(신당을) 꼭 願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朴亨埈 敎授는 1月 9日 ‘韓國日報’ 인터뷰에서 2月 10日 以前에 新黨을 創黨하고 統合 合意 以後 兩黨이 公薦審査위를 함께 構成하는 게 맞다고 했다. 

    “新黨 꾸리려면 黨 解體부터 해야 하는데, 解體하려면 또 全黨大會 열어야 한다. 贊成만 하겠나? ‘왜 우리가 黨을 解體해야 하느냐, 彈劾에 贊成한 놈들이 뭔데 들어오게 하느냐’ 이렇게 싸움 일어난다. 그前에 이런 方法을 통해 合意하는 게 좋다. 컷오프할 사람은 하고. 그래야 世代交替가 되지. 同僚 議員들한테 未安한 얘기지만 이젠 靑·壯年 中心으로 黨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컷오프를 누가 하느냐의 問題로 다시 歸結되는데, 結局 公薦審査를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 黨에서 먼저 컷오프해야지. 저쪽(새保守黨)은 컷오프할 만큼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保守統合을 위해 黃 代表가 물러난 後 統合 非對委가 꾸려져야 한다는 主張도 있다. 

    “黃敎安 體制는 維持돼야 한다. 非對委는 黃 代表 그만두란 소리 아니가. 그만두면 黃 代表는 그걸로 끝나는데…. 非現實的인 主張이다. 只今 생긴 統推委가 이거(非對委)와 마찬가지다. 이걸로 代替하면 된다.” 

    -統合을 위해 葛藤의 골이 깊은 親朴·非朴이 和解해야 하고, 象徵的 제스처로 金 議員과 朴 前 大統領 間 和解가 必要하다는 主張에 對해 어떻게 생각하나? 

    “朴 前 大統領과 만나서 和解할 수 있는 方法이 있다면 和解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 만나주니까 可能하겠나.” 

    -與圈이 保守 分裂을 目的으로 朴 前 大統領 赦免을 推進할 것이라는 展望이 數個月째 膾炙되고 있다. 文 大統領이 朴 前 大統領을 赦免하리라 보나? 

    “大法院 判決만 나면 無條件 赦免하리라 본다.” 

    -바른政黨은 ‘반기문 大統領 만들기’ 實驗이기도 했지만, ‘改革保守 政黨’ 實驗이기도 했다. 바른政黨에서 너무 이르게 撤收해 버린 것 아닌가? 

    “地方選擧 때 韓國당하고 바른政黨하고 各各 公薦해서 이길 수가 있나. 그러니 ‘돌아가자’ 이래 된 거지. 우리는 失敗했으니까. 유승민은 ‘盧’해서 折半은 잘라서 왔고. 그렇게 해서 地方選擧 이겼으면 괜찮았을 텐데 洪準杓가 망쳤잖아.”

    “國會議員 6番 했는데 한 番 더 하면 뭐하노”

    -그 뒤의 유승민 議員 行步는 어떻게 評價하나? 

    “유승민은 改革保守로 自己 브랜드를 만들었지. 劉承旼하고 합쳐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價値가 높아졌고. 유승민은 折半의 成功을 한 거지.” 

    -韓國의 保守 勢力은 建國과 産業化에 寄與했다. YS界는 民主化의 主役 中 하나였다. 하지만 2008年 以後 保守右派가 指導者 中心 離合集散, 系派主義 等으로 危機를 自招했다. 

    “民主化 鬪爭 勢力과 産業化 勢力이 統合한 3黨 合黨 精神을 理念化했어야 했다. 그런데 YS契가 JP(김종필 前 總理)를 쫓아내 버렸다. 거기서부터 右派 分裂이 始作됐다. 只今 생각하면 잘못한 거지. JP 勢力만 나갔나. 忠淸道가 完全히 떨어져 나갔다. 우리 國民이 兎死狗烹(兎死狗烹)을 가장 싫어하잖아.” 

    이 대목에서 金 議員은 “자꾸 나보고 系譜의 首長이라고 하는데, 非朴은 言論에서 붙인 用語로 實體가 없다”면서 이렇게 說明했다. 

    “國會議員 個個人은 正義感이 透徹한 最高의 知性人이다. 그런데 集團化되면 개판이 돼버려. 사람 中心 朋黨政治를 해왔기 때문이요. 親朴, 親文, 親李 다 後進的 用語다. 只今 選擧 公報에 ‘나는 親朴입니다’ 할 사람 누가 있노. 붙이면 떨어지게 돼 있는데. 이番 選擧 끝나면 親朴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돼 있다. 現役 議員들이 있으니까 言論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現役 아니면 報道가 되겠나. 그런데도 아직까지 ‘박근혜. 朴槿惠’. 完全히 朴槿惠의 政治的 奴隸 아닌가.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 價値 中心으로 轉換해야 한다.” 

    -保守統合과 革新을 成功裏에 이뤄내면 總選 不出馬를 飜覆하고 電擊的으로 首都圈 險地에 出馬할 수 있나? 

    “나 한 名이라도 約束을 지킨 政治人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고 國會議員 6番 했는데 한 番 더 하면 뭐하노.” 

    6選의 高地에 오르는 동안 그에게는 浮沈이 많았다. 李明博 大統領 執權初人 2008年 18代 總選 때는 ‘親朴’이라는 理由로 公薦에서 탈락했다. 朴槿惠 當時 새누리당 非常對策委員長이 未來權力으로 불리던 2012年 19代 總選 때는 ‘親朴이 아니다’라는 理由로 亦是 公薦에서 排除됐다. 그 自身이 黨 代表가 돼서는 事實上 ‘왕따’를 當했다. 

    “極히 非民主的인 思考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政治 指導者가 돼 우리 政治가 退步해온 點이 나는 正말 한스럽고 悲痛하다. 나는 民主化運動 하던 사람이라 權力에 阿附하고 싶지 않아 어찌 살다 보니 非主流가 됐다. 只今은 最高峯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쓸쓸하게 떠난다 생각하니 마음 아프지. 그러나 그건 뭐 내 運命이지. 남을 怨望할 것도 없고.”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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