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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北에서 1名이라도 國會議員 만들어내는 게 目標”|新東亞

“慶北에서 1名이라도 國會議員 만들어내는 게 目標”

‘嶺南 民主黨’ 임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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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記者

    sejoonkr@donga.com

    入力 2022-07-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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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民主化 抗爭 때 이화여대 學生會長, 突然 農村行

    • 어머니會 活動하며 地域 일꾼으로 成長

    • 學校 給食 問題 解決하다 다시 政治人의 길로

    • 旣得權 내려놓는 方式으로 選擧制度 고쳐야



    作品이 끝났고 俳優는 舞臺에서 내려왔다.

    民主化 抗爭을 거쳐 1987年 大統領 直選制가 始作되자 이화여대 總學生會長이던 23歲 임미애는 學生運動의 中心에서 내려왔다. 抗爭을 이끌던 다른 大學生 代表들이 大擧 政治權에 進出한 것을 생각하면 異例的 行步다. 1988年 大學 卒業 後 김현권 京畿에너지振興院長을 만났다. 1992年 結婚 後 突然 男便의 故鄕인 慶北 義城郡으로 向했다. 그러곤 十 數年을 農夫로 살았다.

    農夫이던 그는 어느새 다시 政治를 始作했다. 2006年 義城郡議員을 始作으로 2018年에는 慶北道議員이 됐다. 올해 6月 地方選擧에는 慶北道知事에 挑戰했다. 林 前 議員은 이 選擧에서 22.04%를 得票했다.

    “於此彼 政治를 할 것이었으면, 그대로 서울에 남는 便이 낫지 않았을까요”라고 묻자 林 議員은 “20代의 華麗한 經歷은 제가 努力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라며 말門을 열었다.



    “當時 時代的 狀況이 있었고, 同僚들이 도와준 德에 暫時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입니다. 이 經驗을 바탕으로 바로 政治를 始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設使 그때 政界에 入門했더라도 20代에 쌓아온 이미지를 消費하는 모습만 보였을 것 같아요.”

    임미애 전 경북도의원이 6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임미애 前 慶北道議員이 6月 23日 서울 西大門區 동아일보 忠正路社屋에서 記者의 質問에 答하고 있다. [지호영 記者]

    ”政治 잊으려 서울과 連絡도 끊었다“

    林 前 議員은 서울을 떠나며 學生運動을 하던 同僚들과 連絡을 끊었다. 그는 “그때 第 當面 課題는 義城에서 農夫로 제대로 定着하는 것이었어요.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現實의 壁은 높았다. 平生 都市에서만 살았던 사람이 農夫가 되긴 如干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生涯 첫 農事의 結果는 어땠나요.

    “1992年 첫 謝過 農事를 지었는데 當時 沙果 값이 많이 떨어졌어요. 農事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 없을 水準이었습니다. 먹고살아야 하니 收穫한 沙果를 따서 트럭에 싣고, 全國 坊坊曲曲을 돌며 沙果를 팔았습니다.”

    林 前 議員은 “두 아이가 태어나고도 狀況은 나아지질 않았어요. 아이 둘을 트럭에 태워 沙果를 팔러 다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糊口之策으로 1990年代 末 義城에 補習學院을 하나 열었습니다. 多幸히도 學院이 잘됐어요. 10年 程度 運營하다 學院을 접었습니다.”

    잘되던 學院을 왜?

    “農事를 지으러 내려온 사람이니까요. 農事를 다시 지으려 그만 뒀습니다.”

    沙果 栽培로 始作한 農事는 規模가 꽤 커졌다. 只今은 沙果밭이 자두밭이 됐다. 소도 키운다. 林 前 議員은 “男便이 京畿道로 가게 되니 혼자는 堪當이 안 되더라고요. 只今은 規模를 조금 줄였습니다”라며 웃었다.

    農事를 지으며 살다 2006年 突然 다시 政治를 始作했습니다.

    “아이들 다니던 學校에서 어머니會長을 하다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어떻게 어머니會長이 됐나요.

    “어느 날 學校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給食이 너무 맛없다고 不平하더군요. 마침 아이들 다니던 學校에서 ‘어머니 敎室’이라는 行事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校長先生님이 學父母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虛心坦懷하게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給食의 質을 높여달라 要求했습니다. 이때 다른 學父母들이 나를 有心히 본 것 같아요. 다음해에도 같은 行事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學父母들의 推薦으로 어머니會長이 됐습니다.”

    給食 問題 解決하다 다시 始作한 政治

    어머니會長이 郡議員까지 이어진 건가요.

    “正確히는 給食 問題를 解決하다 보니 郡議員이 됐습니다. 當時 義城郡의 給食 材料는 거의 輸入産 農産物이었습니다. 地域에서 좋은 農産物이 나는데도 아이들이 그것을 먹지 못한다는 것을 理解할 수 없었습니다. 調査해 보니 單價가 問題였습니다. 給食 單價를 올리려면 行政的 支援이 必要했습니다. 給食 單價 支援 條例를 만들어보고자 2006年 郡議員에 出馬했습니다.”

    當選을 自信했나요.

    “當時 義城郡에는 基礎議員 자리가 세 자리였어요. 學父母들과 慶北 地域 민주당 支持者들이 도와준다면 選擧에 나가 3等은 할 수 있겠다는 計算이 섰습니다.”

    2006年 地方選擧부터 基礎議員에 한해 中大選擧區制가 適用됐다. 小選擧區制에서는 한 地域黨 한 名의 議員이 選出된다. 特定 地域에 議席이 3個 있다면 地域區를 셋으로 나눠 各各 한 名씩 議員을 뽑는 方式이다. 中大選擧區制는 特定 地域 全體를 對象으로 投票를 實施해 1等부터 3等을 議員으로 選出하는 式이다. 따라서 得票率 3位였던 林 前 議員도 郡議會에 入城할 수 있었다. 以後 再選에 成功해 8年間 郡議員으로 活動한 林 前 議員은 2018年에 慶北道議員이 됐다. 單純히 살던 地域의 問題를 解決하는 水準에서 本格 政治人이 된 셈이다.

    道議員에 挑戰한 理由가 궁금합니다.

    “道議員, 道知事 選擧 모두 나갈 사람이 없어서 제가 出馬했습니다. 候補 자리를 비워두면 다른 基礎議員 候補者들의 選擧運動에 惡影響을 미치게 됩니다. 한 候補라도 더 당선시키자는 마음으로 出馬했죠.”

    그런데 道議員에 當選이 됐습니다.

    “郡議員 經歷이 좋게 作用한 것 같아요. 住民들이 저를 ‘民主黨 임미애’보다는 ‘地域 일꾼 임미애’로 보신 것 같습니다.”

    祕訣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民願에 對한 正確한 피드백人 것 같아요. 住民들 民願을 條例로 만들고, 通過가 안 됐다면 어떤 問題로 안 됐는지 透明하게 說明드리거든요. 그만큼 住民들을 자주 만나기도 하고요.”

    林 前 議員은 只今도 義城郡 中心街에서는 車를 타지 않는다. 더 많은 住民을 만나기 爲해서다. “中心街가 작아서 10分이면 郡廳에서 中心街 끝까지 걸어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住民들 만나서 人事하다 보면 그 짧은 길을 걸어가는 데 50分이 넘게 걸립니다.”

    中央黨 失策이 地方選擧에도 惡影響

    이제 道知事 選擧 이야기를 해볼까요. 22.04%로 落選했지만 열세 地域에서 잘 싸웠다는 評價가 主를 이룹니다.

    “좋은 結果를 내진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경북도에서 民主黨이 20年이 넘는 歲月 苦生한 成績表라기엔 너무 초라합니다.”

    出馬할 때 目標는 當選이었나요?

    “當選은 바라지 않았죠. 그래도 25~30% 程度는 得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不足했던 거죠.”

    只今까지의 地方選擧와 이番 選擧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慶北은 投票率이 너무 낮았어요. 저희가 25% 以上 得票하려면 投票率이 65%는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番에는 投票率이 52%에 그쳤어요. 민주당을 支持하는 분들이 投票場에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民主黨 支持者들이 왜 投票를 抛棄했을까요.

    “郡이나 地方政治에도 理由가 있을 테지만 민주당의 問題도 컸습니다.”

    中央黨의 失策이 있었다는 건가요.

    “慶北 같은 민주당 열세 地域에서는 ‘地域 일꾼’으로 選擧를 치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黨과 無關하게 地域을 위해 일해 줄 사람을 뽑자는 雰圍氣가 造成돼야 하죠.”

    그렇지 못했다?

    “選擧運動 初盤에는 狀況이 좋았죠. 그런데 李在明 議員의 仁川 桂陽乙 出馬와 송영길 前 代表의 서울市長 出馬 等이 이어지며 有權者의 關心이 黨 公薦의 正當性으로 옮아갔습니다.”

    敗着 있었다면 糖이 謝過해야

    민주당은 이 議員과 宋 前 代表의 出馬를 두고 ‘不可避한 決定’이라고 했는데요.

    “黨 次元에서는 不可避한 選擇일지 몰라도 有權者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黨의 決定에 失望해 투표하러 나오지 않는 분도 많았습니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內容의 分析이 나왔다. 民主黨 싱크탱크 民主硏究院이 7月 4日 發表한 輿論調査 結果에 따르면 민주당이 地方選擧에 慘敗한 原因으로 ‘李在明, 宋永吉 等 公薦 正當性 未洽’(23.2%)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두 사람이 選擧에 나오지 않았다면 더 좋은 成果를 낼 수 있었을까요.

    “地方選擧 敗北 責任이 두 분에게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黨은 責任을 져야 합니다. 糖이 誤謬가 없는 存在는 아니잖아요. 誤判이었으면 謝過하고 反省해야죠.”

    黨內에서는 繼續 刷新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非常對策委員會가 構成됐으니 全黨大會를 準備하며 다양한 刷新安易 나오겠죠.”

    非對委 合流 提議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

    “地方選擧 끝나고 慶北道當委員長職에 挑戰하겠다고 公言했습니다. 저는 제 일을 해야죠.”

    中央政治를 하는 便이 政治 經歷에는 더 좋지 않을까요.

    “非對委員이 되더라도 運身의 幅이 크지는 않았을 것 같았어요. 오히려 險地에서 버텨온 제 이미지를 黨이 쓰게 되겠죠. 그런 式으로 政治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政治人이라면 旣得權 내려놓아야

    地方選擧를 치른 政治人으로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部分을 指摘한다면?

    “選擧制度죠. 이番 地方選擧만 봐도 508名이 相對 候補가 없어 無投票 當選됐습니다. 慶北 地域만 봐도 道議員의 40%가 無投票 當選입니다. 이런 狀況에서 嶺南 地域 젊은 政治 志望生들에게 민주黨員으로 政治를 繼續하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無投票 當選을 줄이고 더 다양한 목소리가 基礎議會에 反映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暫時 말을 멈추고는 “저는 黨內 旣得權이라고 불리는 86世代예요. 民主化 過程에서 注目받으며 政治的으로 수혜를 본 世代입니다. 86世代의 宿題는 ‘87年 以後 體制’의 問題를 克服하는 것이라고 봐요. 選擧制度度 마찬가지죠, 이를 고치지 않는다면 地域 構圖는 永遠히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라고 말했다.

    選擧制度를 고칠 때 가장 먼저 할 일이 뭘까요.

    “旣得權을 내려놓아야죠. 민주당과 國民의힘은 選擧制度를 바꾸고 싶지 않을 겁니다. 쉽게 議席을 얻을 수 있는 方便이니까요. 民主黨이 2021年 國會 多數黨이 됐을 때, 이 選擧制度를 고쳐야 했다고 봅니다.”

    兩大 政黨이 旣得權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旣得權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社會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이를 내려놓는 過程에서 政黨과 政治人의 眞情性이 드러납니다.”

    向後 目標는요.

    “徒黨委員長이 돼 2年 뒤 國會議員 總選擧에서 慶北 地域 中 한 군데에서라도 國會議員을 내고 싶습니다. 그 以後 道知事에 재도전할 생각입니다.”

    다음 道知事 選擧 勝算은?

    “政治는 모르는 일이죠. 一旦은 熱心히 準備해 볼 作定입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記者

    1989年 서울 出生. 2016年부터 東亞日報 出版局에 入社. 4年 間 週刊東亞팀에서 世代 葛藤, 젠더 葛藤, 勞動, 環境,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等 多樣한 分野를 取材했습니다. 2020年 7月부터는 新東亞팀 記者로 일하고 있습니다. 90年代 生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年代 生으로 靑年 問題에 깊은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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