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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獨] “文 訪日 發表 直前 스가 總理 最終 사인 안 해 決裂”|新東亞

[單獨] “文 訪日 發表 直前 스가 總理 最終 사인 안 해 決裂”

강창일 前 週日大使가 밝힌 韓日關係 飛火

  • 고재석 記者, 이슬아 記者

    jayko@donga.com, island@donga.com

    入力 2022-07-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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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는 元來 反韓 아니었지만…

    • 정의용 電話에 回信 안 한 모테기

    • 當初 스가 만나기로 約束돼 있었다

    • 文 訪日, 아베 側近들이 비토한 듯

    7월 4일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강창일 전 주일대사. [지호영 기자]

    7月 4日 ‘신동아’와 인터뷰 中인 강창일 前 駐日大使. [지호영 記者]

    한 個人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始作한다. 이어지는 네 個의 文章에는 어떤 感情도 解釋도 들어 있지 않다. 7月 8日 午後 5時 3分 아베 新潮 前 日本 總理가 死亡했다. 이날 午前 11時 30分 前職 海上自衛隊원 야마가美 데쓰야는 나라縣 야마토사이다이지 驛 近處에서 아베 前 總理를 向해 6發을 하나의 캡슐에 묶은 散彈銃을 두 次例 쐈다. 發射된 12發 中 2發이 아베 前 總理에게 命中했다. 享年 67歲다.

    제아무리 堅固한 現實도 豫期치 못한 事件 앞에선 龜裂한다. 곱씹을수록 이 죽음은 歷史的 偶然이라 할 만하다. 이 글의 序文을 이렇게 쓰리라고 想像해 본 적이 없다. 7月 4日 서울 양재동에서 강창일(70) 前 駐日大使를 約 100分間 인터뷰했을 때, 그는 ‘過去의 아베’ 만큼이나 ‘現在의 아베’를 說明하는 데 긴 時間을 割愛했다. 그의 說明은 크게 세 가지로 要約할 수 있다. ① 아베 前 總理는 如前히 幕後 實力者다 ② 기시다 후미오 總理는 ‘아베派’의 입김을 無視할 수 없다 ③ 7月 10日 參議院 選擧가 分水嶺이다.

    姜 前 大使는 ‘過去의 아베’와 적잖게 交流했으나 ‘現在의 아베’와는 連結고리가 끊어졌다고도 했다. 그를 만나고 나흘 뒤 ‘現在의 아베’가 사라졌다. 質問은 달라져야 한다. 아베 前 總理의 葬禮式을 하루 앞둔 7月 11日 姜 前 大使와 追加로 나눈 問答을 먼저 紹介한다.

    “쇼크 받았다”

    아베 前 總理 死亡 報道를 接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쇼크 받았다. 日本에서는 第2次 世界大戰 終戰 以後 最大의 政治的 事件이다. 本來 아베는 반한(反韓)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朴槿惠 政府 때는 韓國과 親해지려 몇 次例 만남을 請했는데 朴 前 大統領이 拒絶했다. 以後 慰安婦 裁判, 徵用 裁判 때문에 感情的으로 (韓國을) 不信하게 됐다. 日本에서는 國家 間 條約이나 協定에 對해 最高裁判所가 行政府 意見을 듣게 돼 있다. 그러니 慰安婦, 徵用 裁判이 文在寅 政府가 司法府에 시킨 結果라고 誤解하는 거다. 그래서 아베가 韓國에 對한 半導體 部品素材 輸出規制의 길로 가버렸다.”

    아베 前 總理와는 여러 次例 만난 것으로 아는데.

    “總理 되고 나서도 여러 番 만났다. 韓國 政治人 中 가장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2018年 즈음부터 확 바뀌었다. 한일의원연맹 所屬 議員이 日本에 가면 으레 總理를 만났는데, 2018年부터는 時間 없다고 안 만나더라.”



    ‘아베派’는 90席 넘는 자민당 內 最大 派閥이다. 이제 求心點이 사라진 것인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後繼者가 없다. 아베가 後繼者를 안 키웠다. 自己가 永遠히 할 줄 알았겠지. 90餘 名이 모두 아베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베라고 하는 큰 나무 밑에서 全部 빌붙어 있던 立場이다. 求心點이 없어졌으니 漸次 遠心力이 作用할 것이라고 본다.”

    이番 일이 韓日關係에는 어떤 影響을 미칠까.

    “韓日關係에 當場은 큰 影響이 없을 것이다. 韓日關係는 漸次 正常化의 길로 나아가리라고 본다. 美國의 壓力도 있고 韓國 政府도 積極的이다. 日本 處地에서도 (韓日關係 惡化를 통해) 德 볼 일이 없다. 問題는 日本이 큰소리치면서 高壓的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尹錫悅 政府가 (關係 正常化를) 願해도 國民들이 못 받아준다. 求乞 外交나 屈辱 外交는 할 수 없다. 우리 國民이 簡單치가 않다. 當場 아베 弔問 關聯 記事 댓글을 보면 險惡하지 않나. 日本이 協助해 줘야 하는데, 協助하는 모습을 보이기에는 아직 時間이 조금 이르다.”

    아베 前 總理 死亡과는 別個의 問題인가.

    “기시다度 韓國이 解決策을 갖고 와야 한다고 公開的으로 말했다. 日本에도 反韓 感情을 갖고 있는 國民이나 政治人이 있다. 아베가 없어도 그들을 神經 쓰지 않을 수 없다.”

    參議院 選擧에서 자민당이 壓勝했다. 아베 前 總理에 對한 同情票라고 봐야 하나.

    “아니다. 野黨이 粥 쑤는 탓에 자민당이 勢를 좀 더 불리고 (右翼 性向의) 日本維新回 議席도 늘어나리라는 展望이 있었는데, 豫想대로 나왔다. 아베에 對한 同情票가 作用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기시다 總理의 長期 執權 可能性이 열렸다는 解釋도 있다.

    “政治는 生物이어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番에 大勝하면서 3年은 保障됐다고 봐야 한다.”

    總理였지만 아베派의 눈치를 보던 기시다 總理가 이제는 主導權을 쥐게 될까.

    “기시다가 3~4個月 지나면서 슬슬 自己 목소리를 내겠지.”

    冷却期에 大使로 간 知日派

    7月 4日 인터뷰로 돌아간다. 이날 그를 만난 理由는 이렇다. 姜 前 大使는 歷代 駐日大使 中 손꼽히는 ‘知日派’다. 그는 도쿄대에서 東洋史學으로 碩·博士 學位를 받았다. 歸國 後 培材大 日本學科 敎授로 在職하다 17代 總選 때 濟州市甲 地域區에서 當選됐다. 아베 內閣이 韓國을 相對로 半導體 部品素材 輸出規制 措置를 取한 뒤에는 한일의원연맹 會長 身分으로 日本 側과 물밑 對話를 벌였다. 그런 그가 臺詞로 在職하던 期間(2021. 1~2022. 6)은 韓日 사이의 溫度가 가장 冷冷했던 時期다. 日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듣지 않으면 歷史에 어떤 記錄도 남지 않는다.

    總理는 못 만났고 外務相은 歸國 前에야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

    “大使가 赴任하면 外務省 次官한테 信任狀 寫本을 주고, 나오면서 長官室에서 (外務相과) 握手한다. 나는 모테기 都市마쓰 當時 外務相은 못 만났다. 나중에 公使한테 물었더니 그쪽서 時間이 없다고 말했다기에 介意치 않았다. 駐日大使로 任命된 날(2021. 1. 8) 慰安婦 裁判 結果가 나왔다. 日本 政府 內에서 ‘一切 韓國 사람 만나지 말라’ 했다는 말이 나왔다고 들었다. 前任 남관표 臺詞가 歸任할 때도 總理와 外務相을 못 만났다. 歸任할 때는 當然히 만나야 하거든. 정의용 前 國家安保室長이 外交部 長官이 되고 모테기 外務相에게 電話했는데 3個月 동안 回信이 없었다. 큰 缺禮다. 나는 그것 갖고는 辱을 많이 했다.”

    姜 前 大使는 國會議員 時節 한일의원연맹에서 幹事長, 首席副會長, 會長을 지냈다. 日本은 議員內閣制를 採擇하고 있어 韓日 間 疏通 窓口로 國會가 重要하다.

    “因緣이 있는 모리 요시로, 간 나오토, 하토야마 유키오, 후쿠다 야스오, 노다 요시히코 前 總理는 다 만났다. 그때 (만난) 前職 外傷 中 기시다 總理도 있다.”

    기시다 總理가 就任하기 前에 만난 건가.

    “就任 直前 만났지. 慰安婦 問題에 對해 투덜투덜하더라고. 論爭도 좀 했다. 돌아오기 前 니카이 도시히로 前 自民黨 幹事長과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代表도 봤고, 하야시 요시마다 外務相과도 오래 對話했다. 歸國 2週 前에 議員 60~70名이 호텔에서 送別會를 해줬다.”

    니카이는 代表的 知韓派로, 스가 前 總理를 1人者로 만든 킹메이커다. 자민당 歷代 最長壽 幹事長이기도 하다.

    스가 前 總理는 안 만났나.

    “事實 스가 前 總理가 再選되면 만나기로 約束돼 있었다. 그런데 再選에 失敗해서 못 만난 것이다.”

    大統領室에 따르면 기시다 總理는 6月 28日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北大西洋條約機構(나토) 頂上會議에서 尹錫悅 大統領에게 “韓日關係가 더 健康한 關係로 發展할 수 있도록 努力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정작 이틀 뒤 日本 政府는 “알지 못하는 일”이라는 立場을 내놨다.

    大統領室이 發表한 內容을 日本 政府가 否認했다.

    “日本이 失手한 것이다. 加害者가 被害者가 되고 被害者가 加害者가 된 꼴이다. 나는 줄곧 ‘輸出規制는 풀고 協商 테이블에 앉아라. 當身들의 말을 傾聽할 準備가 돼 있다’고 했다. 大使로 가고 나서도 그렇게 主張했다.”

    자민당 內에서 共感帶가 있나.

    “大部分은 그렇다. 反對하는 몇몇이 있는데, 그들이 權力을 掌握한 거지. 被害者인 우리에게 解決策을 갖고 오라고 한다. 外交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大使 때 政務公使를 包含해 (大使館 職員들을) 다 불러서 絶對 求乞 外交, 屈辱 外交 하지 말라고 했다.”

    스가, 기시다 政權으로 넘어와서도 아베 前 總理 側近들이 總理 官邸에 남았나.

    “나는 그렇게 본다. 主로 아베가 執權할 때 컸던 警察이나 外務省 出身 官僚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總理 官邸에 繼續 布陣했다.”

    文 訪日 霧散의 顚末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생전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찍은 사진. [강창일 전 주일대사]

    강창일 前 週日大使가 生前의 아베 新潮 前 日本 總理와 찍은 寫眞. [강창일 前 駐日大使]

    그는 2019年 7月 日本의 輸出規制가 本格化할 當時 議員總會에서 “아베 政權은 奸巧하고 稚拙하다”면서도 “韓國 政府도 原則과 名分에 執着하다 보니 時機를 놓쳐버린 部分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李海瓚 當時 민주당 代表가 손가락으로 ‘엑스(X)’ 表示를 하는 일이 있었다.

    文在寅 靑瓦臺의 强勁派 목소리가 커서 大使로서 活動 空間이 制約됐던 게 아닌가.

    “盧(No) 노(No). 文在寅 政府가 처음에는 强勁派 原則主義로 나갔지만, 問題를 풀려고 靑瓦臺 市民社會首席이 (慰安婦) 被害者들과도 對話를 했다. 나는 (關係를) 풀기 위해 大使로 갔다. 2020年에 韓日 간 많은 네트워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올스톱됐다. 또 내가 任命된 날 慰安婦 判決이 나왔다.”
    外交部가 姜 前 大使 任命을 發表한 2021年 1月 8日, 서울중앙지법 民事合議34部는 慰安婦 被害者 12名이 日本 政府를 相對로 提起한 損害賠償請求訴訟에서 ‘原告들에게 1人當 1億 원씩 支給하라’는 原告 勝訴 判決을 내렸다.

    “大使로 赴任하니 雰圍氣가 冷冷했지만 日本 政治人들을 만나 (韓日 間 對話의) 파이프를 復元해 놨다. 2021年 5月의 일이다. 雰圍氣가 좋았다. 그래서 文在寅 大統領이 도쿄 올림픽 때 오기로 했던 거다.”

    도쿄 올림픽 때 門 前 大統領의 訪日을 스가 總理 官邸에서 막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具體的인 것까지 얘기하면 안 되고…. (暫時 뜸들이다) 나는 文 大統領이 日本에 와서 망신당하기라도 하면 韓日關係가 더 惡化할 수 있다고 봤다. 判斷이 안 섰다. 日本의 親한 議員들, 知韓派 學者, 在日同胞 學者들한테 물어봐도 쉽게 ‘오라’ ‘오지 말라’ 얘기를 못 하겠다고 하더라. 가와무라 다케오 한일의원연맹 幹事長한테도 물었다. 스가 總理가 어떻게 나오겠냐고.”

    가와무라 다케오는 스가 當時 總理의 側近이다. 가와무라의 發言에 스가의 意中이 실려 있었을 公算이 크다. 다시 姜 前 大使의 證言이다.

    “(가와무라가) 조금 기다려보라 한 뒤 한 時間도 안 돼 電話가 왔다. ‘아주 歡待한다’고. 韓國에 緊急 打電을 했다. 오시는 게 좋겠다고. 그래서 文 大統領이 오기로 했다. 飛行機는 어디서 내리고, 오게 되면 (올림픽으로 訪問하는 各國 頂上 中) 마지막 順番으로 스가 總理와 對話하기로 했다. 警護 準備도 했고. 그때 蘇摩 公使의 헛소리가 나온 거지.”

    날짜를 中心으로 復棋해 보자. 靑瓦臺가 文 大統領의 訪日이 霧散됐다고 發表한 날은 7月 19日이다. 7月 16日 JTBC는 前날 日本大使館 高位關係者와 午餐을 겸한 자리에서 이 關係者가 文 大統領을 向해 不適切한 性的 表現을 썼다고 報道했다. 이 關係者가 駐韓 日本大使館 ‘序列 2位’이던 蘇摩 히로히사 總括公使다. 이어지는 姜 前 大使의 말이다.

    “요미우리新聞이 그날(7. 19) 文 大統領이 訪日한다고 特報를 냈다. 요미우리는 日本 外務省에 (取材가) 다 돼서 그 情報를 갖고 톱기사를 냈는데, 總理 官邸에서 (文 大統領 訪日을) 反對했다고 했다. 記事가 난 건 아니고, (요미우리가) 그렇게 主張했다. 總理 官邸에 아베 側近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아베 쪽에서) 비토를 해서 스가가 最終 사인 안 했다는 얘기지. 靑瓦臺가 (文 大統領 訪日을) 發表하려 기다리다가 午後 2時인가 3時頃에 (스가의) 最終 사인을 못 받았다니까 文 大統領이 窓밖을 보면서 혼잣말로 ‘아쉽다’는 말을 세 番이나 했다더라. 참 안타깝다. 나는 內容이 없더라도 日本에 왔다 가면 兩國 國民의 마음이 便해질 거라 생각했다. (다만) 靑瓦臺에서 ‘韓日 政府는 頂上會談 開催 可能性을 念頭에 두고 ‘意味 있는 協議’를 나눴다’고까지 發表했다. 그러니 씨는 뿌려져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기시다는 實用主義者”

    文 前 大統領은 ‘도쿄 올림픽과 關聯해 해야 할 役割이 있으면 어떤 役割도 마다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나한테 ‘스가 總理도 만나고 싶고 日本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여러 次例 公言했다. 文 前 大統領은 率直한 사람이다. 自己가 한 約束은 지키려 한다.”

    蘇摩 工事 탓에 訪日이 霧散됐다는 解釋이 있고, 스가 總理 官邸의 아베 側近들이 비토했다는 다른 解釋이 있다. 勿論 總理 官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알 수 없지.”

    蘇摩 工事가 重要한 人物이긴 하지만, 그 發言 하나 때문에 그렇게 됐을까.

    “막 겹쳐버린 거지.”

    아베 側近 사이에 訪日에 對한 否定的 氣流가 있었다 해도, 아베는 現職 總理가 아니었는데 無理數를 둘 理由가 있었을까.

    “輸出規制는 아베의 政治的 商標였다. 1965年 韓日協定 以後 韓日 間에 늘 歷史 問題는 있어왔다. 그렇지만 투 트랙으로 歷史는 歷史대로, 現在나 未來는 또 그것대로 나눠서 對話해 왔다. 그런데 아베 政權 때 와서 歷史 問題가 經濟·政治·安保 問題로까지 戰線이 擴大됐다. 輸出規制는 아베의 얼굴이다. 그것을 풀자고 하면 아베 處地에서는 예스 할 理가 없던 거지.”

    이제부터는 直前 駐日大使이자 平生을 日本通으로 살아온 그를 통해 韓日關係의 未來를 가늠해 볼 것이다.

    기시다 總理의 캐릭터는 어떤가.

    “實用主義者다. 地域區인 히로시마가 우리나라와 關係가 깊은 곳이다. 기시다가 이끄는 고치카이 派閥은 經濟中心注意를 標榜하고 리버럴(自由主義者)李 많다.”

    尹 大統領과 기시다 總理가 ‘톱다운’으로 問題를 解決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느닷없이 풀 수가 없다. 親日, 賣國奴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政權이 옴짝달싹 못한다. 民官合同委員會를 만들어 輿論을 收斂해야 한다. 2018年 12月 李洛淵 總理를 委員長으로 하는 民官合同委員會가 있었다. 그걸 이제 다시 始作하는 것이다.”

    日本 戰犯 企業이 徵用 被害者에게 賠償해야 한다는 大法院 判決에 따른 現金化 節次가 다가오고 있다. 尹錫悅 政府는 日本 企業이 내야 할 賠償金을 第3의 機關 等이 于先 支給한 뒤 日本 企業에 求償權을 請求하는 代位辨濟를 折衷案으로 考慮하고 있다.

    代位辨濟에 拒否感을 가진 徵用 被害者가 많다.

    “代位辨濟는 4~5年 前 내가 처음 얘기했다. 모두 說得하기 어렵지만 充分히 說明해야 한다. (被害者가) 한 분씩 돌아가시는데, 國民 保護 次元에서 賠償金을 支給한 뒤 日本 企業에 請求하라는 거다. 求償權 請求에 對해 日本 政府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日本 政府가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國內에선 포스코·KT&G·韓國道路公社 等 1965年 韓日 請求權 協定을 통해 받은 資金으로 惠澤을 본 企業·機關이 代位辨濟의 主軸이 될 수 있다.

    企業이 自發的으로 하는 模樣새여야 하지 않나.

    “그게 ‘文喜相안’(基金 造成에 兩國 企業과 國民이 參與하는 方案)이다. 韓日 企業이 韓日關係 正常化를 위해 基金을 募金하겠다고 해야지. 다 株式會社 아닌가. 포스코에도 外國 資本이 엄청나게 들어와 있다. 政府 쪽에서 얘기가 나오면 나중에 强要나 背任이 된다. 미쓰비시, 신일본제철 모두 韓國에도 投資하는 큰 會社다. 돈 내야지. 미쓰비시는 얼마든지 할 意志가 있었다. 그런데 아베 政權 때 못 하도록 해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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