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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導體는 産業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느냐”|신동아

“半導體는 産業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느냐”

[經濟思想家 李健熙 探究?] K-半導體 基盤 닦은 5共 政權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2-01-0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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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MD램, 政府·硏究所·企業 共同 開發

    • 三星·金星·현대가 모인 靑瓦臺 晩餐

    • 진대제가 冊에 記錄한 또 다른 視線

    • 日本 때문에 對外公開 時點까지 考慮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980년대에 마련된 정보통신 인프라 덕분이고, 이 기반을 닦은 정부가 바로 5공 정권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반도체 사업에 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삼성전자 초창기 시절인 1983년 10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삼성전자 부천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이건희 회장(왼쪽에서 첫 번째)과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왼쪽에서 두 번째)도 보인다. [정부기록 사진집]

    大韓民國이 오늘날 世界 最高 水準의 情報通信 革命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980年代에 마련된 情報通信 인프라 德分이고, 이 基盤을 닦은 政府가 바로 5共 政權이었다. 전두환 當時 大統領은 半導體 事業에 關한 支援을 아끼지 않았다. 寫眞은 三星電子 草創期 時節인 1983年 10月 전두환 當時 大統領이 三星電子 富川工場을 視察하는 모습. 李健熙 會長(왼쪽에서 첫 番째)과 김광호 半導體事業本部長(왼쪽에서 두 番째)도 보인다. [政府記錄 寫眞集]

    “半導體는 우리 産業의 쌀과 같다. 반드시 우리 힘으로 開發하라!”

    “半導體 技術이 없는 나라는 先進國이 될 수 없다.”

    “半導體는 우리나라가 先進國이 되느냐 못 되느냐를 가름하는 核心的 技術이다. 各 長官은 半導體 開發 事業에 積極 協助하라.”

    이렇게 말한 이는 얼마 前 世上을 떠난 전두환 前 大統領이다. 專 前 大統領은 執權 初期부터 大韓民國이 半導體를 積極的으로 開發해야 한다며 이를 一貫되게 밀고 나갔다. 大韓民國 情報通信(IT) 革命의 살아있는 傳說이라고 할 수 있는 汚名 前 副總理 兼 科學技術部 長官은 冊 ‘30年 後의 코리아를 꿈꿔라’(2009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遞信部(現 情報通信部)가 半導體를 開發해야 한다고 나섰을 때 가장 甚하게 反對한 곳은 經濟企劃院이었다. 半導體는 高度의 尖端 技術과 莫大한 資本이 必要한 産業이라 우리나라처럼 勞動 集約的 産業構造를 지닌 나라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美國이나 日本에 비해 技術이 10年이나 뒤져 있으며, 技術 壽命이 2~3年에 不過해 하나를 開發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와 開發費用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러나 전두환 大統領은 ‘半導體는 産業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는다는 거냐?’며 經濟企劃院의 反對意見을 一蹴했다. 大統領의 意志가 確固하니 經濟企劃院도 더 以上 反對하지 못하고 遞信部에 協助하기 始作했다.”



    ‘李健熙 會長과 半導體’篇을 始作하면서 전두환 前 大統領 이야기를 序頭로 꺼낸 까닭이 있다. 5共 政權의 功過에 對해 均衡 잡힌 評價를 해보자는 一環이기도 하지만 三星을 비롯한 國內 半導體業界가 뿌리를 내릴 때 전 前 大統領과 大韓民國의 未來를 내다보며 獻身했던 官僚들의 役割이 컸다는 點을 짚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三星電子를 爲始한 ‘K-半導體’ 神話는 뭐니 뭐니 해도 準備된 者만이 거머쥘 수 있는 機會 捕捉 能力을 가진 오너와 任職員의 피와 땀의 結實이다. 더불어 옆에서 북돋우고 도와줬던 政治 指導者와 國民의 聲援이 있었다는 點도 業界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든, 大韓民國이 오늘날 世界 最高 水準의 情報通信 革命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980年代 마련된 情報通信 인프라 德分이고, 이 基盤을 닦은 政府가 바로 5共 政權이었다.

    “64MD램 開發하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겠다”

     1982년 11월 4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검사시험과정을 살피고 있다. [동아DB]

    1982年 11月 4日 전두환 當時 大統領이 夫人 이순자 女史와 함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訪問해 半導體檢査試驗課程을 살피고 있다. [東亞DB]

    1983年 湖巖 이병철 會長은 半導體 事業에 進出한다는 ‘도쿄 宣言’을 내놨다. 以後 三星이 1MD램까지 單獨으로 밀고 나가던 메모리 半導體 開發은 4MD램 開發 過程에서 政府와 硏究所, 企業이 힘을 합치는 共同 開發 形態로 轉換됐다. 전두환 前 大統領은 1986年 4月 전학제 科學技術處 長官이 報告한 ‘半導體 共同硏究開發 推進計劃’을 바로 受諾한 뒤 태스크 포스팀을 構成하라고 指示했다. 이어 4個月 뒤인 그해 8月 經濟企劃院, 商工部, 遞信部, 科技處 等 4個 部處가 共同으로 企劃한 ‘超高集積 半導體技術 共同開發案’을 最終 決裁했다. 이로써 4MD램 共同 開發計劃이 政府 方針으로 最終 確定된다.

    마침내 4MD램 開發에 成功한 날, 專 前 大統領은 開發 主役을 모두 靑瓦臺로 불러 盛大한 晩餐을 베푼다. 當時 자리에 參席한 이들의 後날 證言을 綜合해보면 專 前 大統領은 매우 들떠 있었고 硏究員들에게 激勵와 應援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晩餐이 열리던 날은 專 前 大統領이 退任을 不過 10餘 日 앞둔 時點이었다.

    汚名 前 副總理로부터 直接 들은 回顧다.

    “1988年 2月이었습니다. 전두환 大統領은 바로 며칠 뒤 退任을 앞두고 있었지만 수많은 雜音을 떨치고 成功을 거둔 4MD램 開發 主役들을 만나 勞苦를 致賀하고 싶다며 모두 靑瓦臺로 불렀습니다. 韓國電子通信硏究所 硏究員들을 비롯해 三星, 金星(現 LG), 現代그룹 會長들과 各 會社에 所屬된 硏究員들, 商工部·科技處·遞信部 長官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큰 行事였습니다. 始終一貫 氣分이 좋았던 專 前 大統領은 硏究員들에게 一一이 술을 따라 주면서 ‘이런 것(4MD램)을 開發하는 사람은 自家用 飛行機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거요’라는 말까지 하며 氣를 살려주었고 大統領의 이런 말들에 參席者들은 모두 飛行機를 탄 것 같은 氣分이 들었습니다. 特히 開發主役人 硏究員들에게는 그동안의 땀과 눈물이 보람으로 바뀌는 瞬間이었을 것입니다. 當時만 해도 軍事獨裁의 서슬이 퍼랬던 時節이었는데 大統領이 便安하게 雰圍氣를 잡아가니 술 한 盞 씩을 받은 硏究員들이 번갈아가며 大統領께 술을 勸하기도 했으니까요.

    參席者들의 술盞을 모두 물리치지 않고 받은 大統領은 ‘政府가 繼續 支援해줄 테니 64MD램은 世界에서 第一 먼저 開發해내시오. 그때는 내가 大統領이 아니겠지만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한턱 내겠소’ 하는 弄談까지 했고 參席者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킥킥 웃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大統領이 ‘當身네들이 내 머리카락이 없다고 웃는 模樣인데 이게 몇 가닥 안 남아서 아주 비싸게 팔릴 거요’라고 하자 晩餐場이 그야말로 웃음바다로 變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全 前 大統領은 退任 以後에도 半導體 事業이 持續될 수 있도록 細心하게 챙겼다고 한다. 다시 그의 말이다.

    “晩餐 行事를 마치고 며칠 뒤였습니다. 그야말로 退任이 코앞이었던 날이었지요. 갑자기 저를 靑瓦臺로 부르시기에 달려갔더니 ‘半導體 開發은 대단히 重要한 事業이니 吳 長官이 盧泰愚 當選者를 찾아뵙고 直接 報告를 드려서 64MD램까지 繼續 開發할 수 있도록 하시오. 내가 當選者에게 別途로 時間을 內시도록 말해두겠소’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正말 그로부터 며칠 뒤 盧 當選者 側에서 만나자는 連絡이 와 경상현 電子通信硏究所長과 함께 찾아가 報告를 드렸던 記憶이 있습니다. 전두환 大統領은 이처럼 5共和國에서 始作된 半導體 開發이 中斷되지 않고 6共和國까지 繼續 이어지길 바랐고 그것이 實現되도록 적잖이 애를 썼습니다. 그 結果 韓國은 1992年 64MD램을 美國과 日本보다 더 빨리 世界 最初로 開發해낼 수 있었습니다.”

    “靑瓦臺에서 처음으로 살아서 나가는 大統領이 돼봐야겠다”

    當時 晩餐場 모습을 또 다른 記錄으로 남긴 이가 있으니 三星電子 半導體 神話를 일군 主役 中 하나인 진대제 前 情報通信部 長官이다. 그의 冊 ‘熱情을 記憶하라’에는 當時 晩餐場의 雰圍氣를 또 다른 앵글로 傳하는 視線이 담겨있다.

    晉 前 長官의 記憶을 듣다보면 專 前 大統領이 半導體開發과 科學技術에 얼마나 큰 熱情과 意志를 갖고 있었는지 다시 한 番 알게 된다. 權威主義 政權 時節 財閥 會長들을 말 한마디로 쥐락펴락하는 獨裁者의 모습도 생생히 傳해진다. 故人이 生前에 好不好가 분명했고 이를 表現하는 데 거침이 없었던 直線的 性格의 所有者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 많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느껴져 晉 前 長官의 글을 多少 길게 引用해본다.

    소리 所聞 없이 進行되던 4MD램의 完全動作 칩이 첫 房에 나와 버린 1988年 1月 말은 三星뿐만 아니라 나라 全體가 떠들썩했다. 그리고 2月 中旬頃에는 三星, 錦城, 현대 等 半導體 3社의 經營陣, 技術者, 國策 硏究 責任者 等 相當히 많은 사람들이 韓國 半導體産業 發展에 많은 關心과 支援을 해준 전두환 大統領의 招待로 靑瓦臺로 갔다.

    어렵사리 保安절치를 通過해 迎賓館에 들어가니, 테이블이 數十 個 늘어서 있었고 鳳凰으로 裝飾된 大統領 자리는 壇上 위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 豫定 時間을 30分 程度 넘겨 전두환 大統領이 들어서서는 떡하니 壇上에 앉았다. 三星 이건희 會長과 현대 정주영 會長, 럭키금성(現 LG)의 具滋暻 會長도 參席해 있었다. 大統領은 앉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硏究員 여러분! 4MD램 開發 成功을 眞心으로 祝賀합니다. 者, 우리 乾杯합시다! 원 샷입니다.”

    그때가 ‘마주앙’이라는 葡萄酒가 처음 나온 때였다 모두 마주앙을 한 盞씩 들고는 바로 원샷을 했다. 사이클이 얼마나 빠르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이 벌개졌다.

    前 大統領은 自己가 얼마나 積極的으로 半導體 事業을 支援했는지 眞談 半 弄談 半으로 자랑했다. 그건 事實이었다. 半導體 裝備를 輸入할 때 關稅를 免除해 주고 首都圈에 工場을 세우도록 土地買入을 許可해 주는 둥 많은 支援을 해주었다.

    專 前 大統領은 4MD램이 나왔다는 消息에 누구 못지않게 좋아했다면서 이런 弄談도 했다.

    “硏究員 여러분, 앞으로 半導體가 잘 되면 제가 커미션 좀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모두 異口同聲으로 對答했다.

    “맞습니다! 많이 도와주신 겁니다.”

    前 大統領이 滿面에 웃음을 띠고 다시 乾杯를 提案했다. 乾杯가 끝나자 갑자기 현대그룹 정주영 會長을 불렀다.

    “그런데 鄭(주영)會長!”

    “예!”

    “그, 鄭 會長은 하룻밤 술값으로 1000萬 원씩 쓴다면서요?”

    當時 新聞에 나기도 했던 財閥 會長들의 飮酒文化에 對한 가십을 두고 한 말이었다.

    “아이구, 그럴 理가 있겠습니까? 우리 正말 돈 안 쓰고 삽니다. 하도 안 쓰고 살아서 具滋暻 會長은 別名이 두쇱니다. 구두쇠라고 합니다.”

    參席한 사람들이 모두 拍掌大笑했다. 氣分이 좋아진 前 大統領이 다시 술盞을 번쩍 들었다. “사랑합니다. 硏究員 여러분.”(中略) 專 前 大統領의 弄談은 새로운 技術에 對한 關心으로 이어졌다.

    “아, 그, 요새는 컴퓨터니 이런 게 無知하게 많이 나와서 世上이 달라지고 있다는데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도 배우면 됩니까? 나 같은 사람은 그거 얼마나 배워야 쓸 수 있을까요?"

    “閣下, 아닙니다. 한 두어 달만 배우시면 잘 쓰시게 됩니다.”

    “에이, 난 안 돼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내가 隱退하면 컴퓨터나 좀 배워볼까 봐. 하하하.”

    前 大統領의 弄談에 ‘사랑하는 硏究員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하지만 深刻한 얘기도 있었다.

    “제가 말입니다. 靑瓦臺에서 처음으로 살아서 나가는 大統領이 돼봐야겠습니다. 只今 나한테 大統領 더 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말이죠.”

    어쨌든 그 자리에서는 大統領의 科學者들에 對한 愛情을 誇示하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科學者 여러분, 戰爭 나도 여러분은 걱정 없습니다. 戰爭 나면 科學者들 全部 大田 以南으로 紹介시킬 特別計劃度 다 마련돼 있습니다.”

    實際로 전두환 大統領은 科學者들에게 神經을 많이 써주기도 했다. 그때 내가 살던 남현동 집에는 警察에서 只今의 歲콤같은 特殊保安裝置를 設置해 주었으며, 定期的으로 집 周邊을 巡察하고 異常이 없는지 訪問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日本이 알면 안 된다

    1983년 10월 29일 삼성전자 부천 공장을 방문해 직접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전두환(가운데) 당시 대통령.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왼쪽 서 있는 인물)도 함께 있다. [동아DB]

    1983年 10月 29日 삼성전자 富川 工場을 訪問해 直接 職員들과 이야기하는 全斗煥(가운데) 當時 大統領. 李健熙 會長(오른쪽에서 두 番째)과 김광호 半導體事業本部長(왼쪽 서 있는 人物)도 함께 있다. [東亞DB]

    다시 汚名 前 副總理에 따르면 全 前 大統領은 半導體 開發과 關聯한 對外 公開 時點까지 神經을 썼다. 그의 回顧다.

    “4MD램 開發에 成功하자 參與 企業들은 大大的으로 弘報할 準備를 했습니다. 그런데 報告를 받은 大統領이 ‘우리가 完全히 生産할 準備를 마칠 때까지 保安을 維持하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消息을 傳해들은 三星의 이병철 會長은 ‘아니, 事業을 모르는 大統領이 이런 것까지 干涉하면 되겠느냐’며 露骨的으로 不平을 터뜨릴 程度였습니다.

    얼마 後 大統領이 걱정했던 것처럼 日本이 우리 半導體 會社들을 죽이려고 값을 내리기 始作했습니다. 정작 被害를 當한 나라는 美國이었습니다. 日本의 價格 引下를 견디지 못하게 된 美國 企業들이 問題를 提起해 日本이 물러서면서 어려운 局面을 넘길 수 있었지요. 나중에 듣자하니 이병철 會長은 ‘大統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로구만’ 했다고 하더군요.”

    이와 비슷한 證言을 하는 이가 또 한 사람 있다. 草創期 三星 半導體를 일군 主役인 김광호 前 三星前者 副會長이다. 그는 2011年 10月號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專 前 大統領이 4MD램이 나오기 5年 前인 1983年에 三星이 64KD램 開發에 成功했을 때도 對外的으로 緘口 指示를 내렸다고 했다. 인터뷰 中 一部를 引用한다.

    “1983年 12月 1日 강진구 社長이 64KD램 開發을 發表했습니다. 아주 歷史的인 날이었습니다. 美國·日本에 이어 世界에서 세 番째로 開發했으니 대단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事實 64KD램은 發表 한 달 前에 開發된 狀態였어요.”

    -發表를 미뤘다는 얘긴데 왜 그랬습니까.


    “日本 業體가 牽制하면 被害를 받을지 모른다는 憂慮 때문이었죠.”


    -政府도 몰랐나요?


    “勿論 알았습니다. 大統領에게도 報告했습니다.”


    -전두환 前 大統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1983年 11月 전두환 大統領이 아웅산 事態 以後 처음으로 産業 視察에 나섰는데 三星 半導體 富川工場을 訪問했어요. 그때 제가 브리핑을 하면서 64KD램을 開發했다고 報告했습니다. 그런데 日本 業體에서 牽制가 들어 올까봐 아직 發表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요.


    “前 大統領은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러면 絶對 發表하지 마라. 發表하려면 나한테 꼭 許可 맡고 해라’고 했어요. 前 大統領 德分에 우리는 64KD램 開發을 政府에 公式的으로 報告하면서도 發表는 늦추게 됐어요. 그 사이 日本의 牽制에 對備할 時間도 벌었습니다.”


    그는 當時 인터뷰에서 “三星 半導體가 初期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건 전 前 大統領의 功이 크다”며 “前 大統領을 여러모로 評하지만 半導體인의 立場에서 볼 때 그의 도움은 決코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具體的으로 어떤 寄與를 했느냐”는 記者의 質問이 이어지자 앞서 진대제 前 長官이 言及한 半導體 裝備 輸入 關稅에 對한 이야기를 한다. 다시 인터뷰에 나오는 말이다.

    “正確한 時期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1980年代 中盤이었을 겁니다. 前 大統領이 (삼성반도체) 富川工場을 訪問했을 때 ‘隘路事項이 있으면 얘기하시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半導體 會社에서는 大部分 設備를 外國에서 輸入해야 되는데, 이中 日本에서 輸入하는 프로젝션 얼라이너(Projection Aligner)라는 部品의 關稅가 50%나 돼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問題를 解決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大統領은 처음에는 ‘稅金? 當然히 내야지’라며 付託을 들어주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問題가 解決되지 않았군요.


    “아닙니다. 大統領이 제 말을 제대로 理解하지 못한 듯해서 제가 다시 說明을 덧붙였습니다. 日本에서 輸入하는 部品에 對한 높은 關稅는 對日貿易 赤字에서 비롯된 것인데 事實 對日貿易 赤字를 解消하려면 窮極的으로는 우리가 事業을 잘해서 日本에 輸出을 많이 해야 解決된다, 그런데 部品에 對한 높은 關稅 負擔 때문에 半導體 事業에서 利益을 내기 힘들다면 到底히 日本을 이길 수 없다고 했지요.”


    -理解하시던가요.


    “그제서야 前 大統領은 ‘그래? 그러면 안 되지. 日本을 이겨야지. 내가 없애주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後 프로젝션 얼라이너에 붙던 關稅가 사라졌어요. 正말 놀라운 일이었죠. 前 大統領이 關稅를 없애준다고 約束했지만 實現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곧 退任한다고 우물쭈물 미루다가는…”

    金 前 副會長에 따르면 앞서 紹介된 4MD램 晩餐場에서도 半導體 事業에 對한 全 前 大統領의 具體的인 支援策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그날 晩餐場 자리에서도 언제나 그렇듯 隘路事項부터 묻더군요. 저는 業界 懸案이던 日本 山 部品輸入과 關聯한 ‘外貨貸付(外貨貸付 輸入業者에게 外貨를 빌려주는 것) 條件을 緩和해 달라’고 付託했어요.”

    -亦是 對日貿易 赤字 때문에 쉽게 들어주기 힘들었을 텐데요.

    “맞습니다. 當時만 해도 日本産 部品이나 設備를 輸入하는 業體들은 貸出이 안돼 100% 自己 資本으로 해야 했습니다. 美國産을 輸入할 때에는 50%를 貸出해주면서 말이지요. 當時에는 半導體 世界最高 나라가 日本이었기 때문에 半導體 生産 裝備는 大部分 日本 裝備가 좋았습니다. 輸入業體들이 大部分 日本 山(産)을 選好했던 理由지요.”

    -大統領 反應은요.

    “제가 이런 事情을 說明하자 晩餐 現場에서 대번에 김윤환 祕書室長을 부르더니 ‘사공일 오라고 해’ 하더군요. 한 15分쯤 지나서 사공일 財務長官이 왔어요. 前 大統領은 ‘半導體 設備를 日本에서 輸入하려는데, 왜 貸出을 안 해주느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財務長官 立場은 어땠습니까.

    “사공일 長官은 ‘閣下, 對日 貿易赤字가 深刻한 水準입니다. 半導體 産業을 育成하려고 外貨 貸出을 許容해주면 다른 業界가 反撥할 것이고 對日 貿易赤字 減縮도 不可能합니다’라고 答辯했어요.”

    -全 大統領이 그 말을 받아들였나요.

    “아니에요. 前 大統領은 固執을 꺾지 않았죠. ‘시끄러워. 해줘. 當身, 내가 곧 退任한다고 우물쭈물하면서 미루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 無條件 一週日 안에 해줘’라고 했습니다.”

    -正말 一週日 안에 外貨貸付가 緩和되었나요.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의 一週日 안에 大統領의 指示가 履行된 것은 분명해요. 그 德分에 三星은 勿論이고 현대電子(現 SK하이닉스)와 금성사(現 LG電子)가 한결 수월하게 半導體 裝備를 輸入해 生産 規模를 늘릴 수 있었어요.”


    大統領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이뤄지던, 只今 時代에는 想像할 수 없는 權威主義 時節 文化를 엿볼 수 있는 證言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未來 産業을 키우겠다는 大統領의 確固한 意志가 三星을 비롯한 韓國 企業들이 半導體 開發에 수월하게 나설 수 있도록 한 支援策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逸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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