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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想劇場] 베트남 호이안 港口의 슬픈 奇跡|新東亞

[幻想劇場] 베트남 호이안 港口의 슬픈 奇跡

  • 윤채근 단국대 敎授

    入力 2022-02-0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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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근 단국대 敎授가 우리 古典에 記錄된 敍事를 現代 感性으로 脚色한 짧은 이야기를 連載한다. 歷史와 小說, 過去와 현대가 어우러져 讀者의 想像力을 刺戟할 것이다.

    皮膚 하얀 西方의 船員들과 깜보쟈(캄보디아) 王國 僧侶들 사이에 벌어진 거친 몸싸움이 끝나자 火가 잔뜩 난 酒店 主人은 남은 손님들을 내쫓기 始作했다. 구석에서 싸움 구경을 하던 明나라 商人들은 主人에게 조금 더 머물겠다고 哀乞해야만 했다. 무리 가운데 아무도 南越(晉(秦) 말에서 한(漢) 初에 걸쳐 광둥(廣東) · 광시(廣西) 및 베트남 地域에 걸쳐 있던 나라) 言語를 할 줄 몰랐기에 唯一하게 漢文에 能通했던 朝鮮 出身 최척이 붓과 종이를 빌려 商人들의 意思를 主人에게 傳했다. 최척은 그렇게 한참 동안 相對와 筆談을 주고받았다.

    “뭐라 하는가?”

    明나라 上段 우두머리 장건봉이 최척에게 물었다.

    “더는 騷動을 일으키면 안 된답니다. 조용히 마시다 나가라는군요.”



    明나라 말로 대꾸한 최척이 窓 밖에 펼쳐진 港口 風景으로 눈길을 돌렸다. 南越 東部 호이안 港口를 밝은 달빛이 마치 探鳥하듯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봄밤의 따스한 微風이 椰子나무를 스치고 그의 얼굴을 向해 불어왔다. 낮에 막 入港해 술에 목말랐던 明나라 商人들은 코코넛 술에 차츰 醉해 갔지만 최척의 가슴은 異常한 豫感으로 울렁거려 同僚들의 雜談에 集中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다른 時間 다른 곳을 맴돌며 定處 없이 떠돌았다. 이젠 아주 먼 前生처럼 아득히만 여겨지는 壬辰年 朝鮮戰爭과 그의 故鄕 全羅道 南原이 그 背景이었다.

    열여섯 桐甲 新婚夫婦의 悲劇

    壬辰年에 始作된 倭亂은 해를 넘겨도 그칠 줄을 몰랐다. 朝鮮半島 全體가 戰亂의 慘酷함에 휩싸였지만 全羅道 남원성이 겪은 慘狀에는 미치지 못했다. 南原 성민들의 折半 以上이 城이 陷落되며 虐殺됐고, 쓸 만한 生存者 大部分은 捕虜로 끌려가야만 했다. 멀쩡했던 城 하나가 뭉개지고 짓밟혀 사라진 形局이었다.

    倭兵들이 쳐들어오기 直前 結婚한 어린 최척 夫婦는 부산진에서 벌어진 騷動을 처음 接하고도 멀리 避難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흔한 倭寇의 侵略일 거라고 斟酌했기 때문이었다. 鳥銃 소리가 亂舞하고 明나라 救援兵들이 남원성을 버리고 달아날 地境이 돼서야 夫婦는 달콤한 新婚의 꿈에서 깨어났다. 萬一의 事態를 對備해 一部 나이 어린 聖民들과 함께 南原 外郭의 酸性에 미리 待避해 있던 그들은 불타는 남원성을 내려다보며 絶望에 빠져들었다.

    兩家 父母의 安危를 確認하기 爲해 최척이 홀로 下山하려 할 때, 아내 이옥영이 말했다.

    “安否만 確認하고 꼭 돌아와야 해. 於此彼 너 혼자 求할 수 없을 테니, 그냥 抛棄하고 바로 이리로 와야 해.”

    열여섯 同甲인 아내 玉纓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척이 斷乎한 목소리로 對答했다.

    “걱정 마. 난 南原에서 第一 빨리 달려. 우리 집과 너희 집이 無事히 避難했는지 멀리서 엿보기만 할게. 狀況 봐서 工夫하던 冊도 좀 챙겨 오고.”

    최척의 두 손을 急히 움켜쥔 옥영이 懇切한 音聲으로 말했다.

    “冊 따위는 神經 꺼! 過去 工夫는 亂離 끝나고 해도 돼!”

    고개를 끄덕인 최척은 凜凜한 表情으로 웃은 뒤 날렵하게 下山하기 始作했다.

    수풀에 몸을 숨기며 남원성으로 다가갈수록 최척에게 남아 있던 一抹의 希望은 漸漸 사라져갔다. 잿더미가 된 城안에 살아남은 者가 있을 理 없었고, 設令 살아남았다 한들 倭兵의 촘촘한 包圍網을 뚫고 脫出하는 건 不可能해 보였다. 憤怒와 落膽이 뒤섞인 탓인지 그는 放心해 倭兵 哨所에 지나치게 가까이 接近했다. 마침내 哨兵의 눈에 뜨인 최척은 本能的으로 自身이 왔던 酸性 方向으로 逃走했다. 하지만 그건 最惡의 選擇이었다. 그의 誤判 탓에 倭兵들은 山城 위의 避難民들 位置를 把握했다.

    山城 위를 向해 내달리던 최척은 귓가를 스치며 날아드는 彈丸들을 避하려다 길을 잃었다. 精神 줄을 놓은 그는 오직 살려는 本能에 玉詠의 存在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온몸이 피와 땀에 젖은 채 山野에 쓰러진 그의 腦裏로 아내 얼굴이 떠오른 건 初저녁달이 떠오를 무렵이었다. 그는 痛哭하고 또 痛哭했다.

    부끄러움과 罪意識에 自決하려던 최척은 언뜻 옥영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想念에 젖어들었다. 누구보다 强靭하고 꾀가 많았던 옥영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自身도 살고 볼 일이었다. 젊고 健康한 德인지 山과 江을 떠돌던 그는 結局 살아남아 回軍하던 名君에 依해 救助됐다. 그런데 穩全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생기자 玉纓을 찾아야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豫期치 않은 다른 두려움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아내가 倭軍에게 貞操를 잃고 捕虜가 됐다면 그女를 어찌 對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少年 최척은 어떤 自主的 決定도 抛棄한 채 名君을 따라 이리저리 移動했다. 그러다 名君 主力이 기병인 北軍에서 水兵 中心의 南軍으로 交替됐고, 최척은 歸還하는 北軍을 따라 明나라로 흘러들어 갔다.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廢人처럼 살던 그는 明나라 南方의 한 港口에서 장건봉이라는 貿易商을 만나 배를 탔다. 明나라 말도 잘하고 漢文도 能熟해 누구와도 筆談이 可能했던 최척은 文字를 모르던 件棒에게도 꼭 必要한 存在였다.

    새벽녘 퉁소 소리의 主人公

    中年의 酒店 主人은 自身을 탕롱이라 불러달라고 했다. 南越의 수도 탕롱 出身에 儒學에도 造詣가 깊었던 그는 꽤나 自負心이 넘치는 人物이었다. 새벽녘 倭人 한 무리가 몰려들어 왔을 때 그는 流暢한 日本語를 驅使해 최척을 놀라게 했다. 젊은 時節 日本 列島의 港口들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탕롱은 自身도 學問을 抛棄하고 한때 貿易船을 탔었다는 說明을 긴 筆談으로 덧붙였다.

    규슈 出身 日本 商人들은 夜自 술을 홀짝이며 明나라 商人들 쪽을 힐끔거리며 훔쳐보았다. 예로부터 호이안 港口는 倭國 商人으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朝鮮戰爭의 渦中에 그 數가 確然히 줄어 있었다. 戰爭은 비록 協商으로 마무리됐으나 國際戰爭의 挑發者에 屬했던 倭商들로선 操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퉁소 소리가 들려온 건 그 瞬間이었다.

    최척은 처음에 自身의 귀를 疑心했다. 은은히 울려 퍼지는 그 소리의 主人公은 틀림없이 옥영이었다. 結婚하기 前 옥영은 ‘梅花 노래’를 直接 지어 퉁소로 불러주곤 했더랬다. 씩씩하고 豁達해 사내 같았던 그女는 최척이 마음에 들자 먼저 接近해 自身의 마음을 告白했다. 그때 시집가고 싶은 處女의 마음을 梅花꽃에 빗대 노래한 ‘詩經’의 한 句節을 낭랑히 읊조리고 나서 이를 퉁소로도 연주했다. 최척이 自己도 모르게 퉁소 가락에 맞춰 이렇게 흥얼거렸다.

    “梅花꽃 가지를 꺾어 그대에게 드리노니, 그대여 내 마음을 아는가.”

    최척의 속삭이는 소리를 엿들은 倭商 가운데 한 名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日本말로 뭐라고 물었다. 탕롱이 이를 漢文으로 종이에 적어 보여줬다. 최척이 方今 한 것과 똑같은 朝鮮語 노래를 하는 船員이 自己 上段에 있다는 內容이었다. 急한 마음이 든 최척은 朝鮮語와 明나라 말이 뒤섞인 質問을 相對에게 쏟아냈다. 탕롱이 다시 中間에 끼어들어 倭商과의 긴 筆談이 이어졌다. 梅花 노래를 부르며 퉁소를 부는 朝鮮 出身 사내가 규슈 上段에 있으며, 只今 그가 홀로 배에 남아 퉁소를 불고 있다는 對答이 돌아왔다.

    벌떡 일어선 최척은 한참 동안 온몸을 떨며 제 자리에 멈춰 있었다. 自初至終을 묻는 件棒에게 그가 천천히 對答했다.

    “제 아내 얘기를 했었지요? 朝鮮 땅 南原이란 곳에서 헤어진.”

    크게 고개를 끄덕인 件鳳이 다시 물었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요. 살아 있었나 봅니다. 저 樂器 音律은 제 아내가 만든 겁니다. 世上에 우리 둘만 아는 音律입니다.”

    최척의 말을 들은 件鳳이 豪快하게 웃으며 拍手를 쳤다. 同僚 商人들도 다들 떠들썩하게 祝賀 人事를 건네기 始作했다. 최척이 이를 中止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男子라는군요, 저 演奏者가.”

    酒店 안에 갑작스러운 靜寂이 감돌았다. 최척은 탕롱을 통해 규슈 上段의 배가 碇泊한 位置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달리기 始作했다. 퉁소를 부는 自家 옥영이든, 아니면 옥영과 함께했던 다른 사내든 그건 重要치 않았다. 그는 自身이 잃어버린 時間을 되찾기 위해 死力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규슈 사쓰마번 上段의 朝鮮人 船員

    酸性 아래로부터 鳥銃 소리가 울리자 唯一한 女子였던 옥영은 품에 지니고 있던 가위로 긴 머리카락부터 잘랐다. 最惡의 境遇를 豫想한 그女는 망설이지 않고 避難民 中 한 男子아이의 옷을 빌려 갈아입었다. 倭軍들에게 抵抗하지 않고 조용히 降伏한 酸性의 待避者들은 大部分 젊은이들이어서 殺害되지 않고 部隊 幕舍 建立에 動員됐다.

    男便의 生死를 確認할 수 없었지만 옥영은 樂天的인 사람이었다. 그女는 自身의 運命을 스스로 開拓하고 그게 如意치 않으면 倭兵들과 싸우다 죽기로 決心했다. 그러자 漠然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살아만 있다면 男便도 찾아낼 수 있다는 勇氣도 샘솟았다. 틈틈이 筋力을 鍛鍊하며 眞짜 男子처럼 行動한 그女는 가끔 스스로도 한때 女子였다는 事實을 잊곤 했다.

    熟鍊된 勞動者가 돼 倭軍 捕虜로 살아남은 옥영은 고니시 유키나가 麾下 쓰시마番 部隊에 配屬돼 半島 곳곳을 옮겨 다녀야 했다. 마침내 日本軍이 照明聯合軍에 依해 南海岸으로 쫓기며 守勢에 몰리자 쓰시마番 部隊가 退却하는 日本軍 本震의 安全을 圖謀하는 後尾 部隊가 됐다. 쓰시마 出身의 많은 倭兵이 바다에 닿기도 前에 戰死했다. 不幸히도 脫出할 機會를 얻지 못한 옥영은 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져 쓰시마섬 이즈하라에 到着할 수 있었다.

    이즈하라 시미즈山城에서 土豪人 소 家門의 몸종으로 지내던 그女는 外交 業務로 釜山을 向하다 偶然히 酸性에 묵은 규슈 出身 장수의 눈에 들었다. 幕府의 實力者였던 장수는 朝鮮과 終戰 協商을 벌이고 歸國하는 길에 다시 酸性에 들러 玉纓을 自身의 侍從으로 삼았다. 규슈 地域 自身의 邸宅에 當到한 첫날 저녁, 그가 옥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널 왜 寵愛하는지 아느냐? 勿論 우리말을 잘 驅使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理由가 있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던 옥영이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널 通譯으로 쓰는 일은 없을 거다. 그저 뭐랄까, 넌 내 隱密한 戰利品 같은 것이다.”

    “戰利品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이 몸이 朝鮮半島에서 벌였던 行動에 對한 산 證據라고나 할까? 난 朝鮮人들을 主로 죽여버려야만 했었다. 코나 귀를 베는 건 相對를 더 侮辱하는 게 아니었을까? 차라리 죽여 없애주는 것이 相對에 對한 眞짜 禮儀일 수 있지. 그래야 빨리 다음 生으로 輪廻해 제대로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눈을 게슴츠레 뜬 將帥가 한 마디 덧붙였다.

    “넌 男子로서 美貌가 뛰어나다. 마치 朝鮮의 陶瓷器처럼 玩賞하기 참 좋다.”

    치미는 憤怒를 가슴 깊이 與民 옥영은 어쩌면 머잖아 自決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前에 長壽가 먼저 世上을 떠나버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反對해 徐君에 加擔했던 규슈의 다이묘 시마즈 家門이 東君에 敗北한 뒤 相對에게 내놓은 戰利品 가운데 麾下 장수들의 목들度 包含된 것이다. 主君을 잃은 장수의 副官과 몸종들은 모조리 시마즈 家門 所有物로 編入됐고, 옥영은 새로 세워진 규슈 사쓰마번의 無關 始終에 任命됐다.

    도쿠가와 幕府에 屈服한 사쓰마번은 오히려 繁昌을 거듭했고, 번주인 시마즈 家門은 南方 進出 政策을 통해 富를 쌓고자 했다. 옥영이 番의 官屬으로서 오래 奉仕한 點을 認定받아 自由의 몸으로 上段 船員이 된 건 그 무렵이었다. 비록 番移 驅使한 巧妙한 方式의 人力 再活用이었지만 歸還을 熱望하던 옥영에게는 가슴 뛰는 새로운 可能性이 펼쳐진 셈이었다.

    萬一 그대가 나의 사람이라면

    [GettyImage]

    [GettyImage]

    사다리를 타고 倭船의 宣敎 쪽으로 올라 퉁소 소리가 나는 이물 쪽을 向해 내달리던 최척의 눈에 달빛을 바라보며 欄干에 기대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마침내 눈에 들어왔다. 體軀는 작았지만 어깨는 단단한 筋肉으로 다져져 있었고, 차림새나 머리 模樣 어디를 봐도 女性의 자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최척이 가늘게 떨리는 音聲으로 물었다.

    “當身이 朝鮮人이라 들었소. 或是 어디 出身이오?”

    천천히 몸을 돌린 相對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최척을 찬찬히 뜯어보기 始作했다. 가늘게 한숨을 내쉰 그가 거칠고 퉁명스럽게 朝鮮語로 對答했다.

    “그게 무슨 所用이람? 宅은 어디 出身인데?”

    몇 걸음 더 다가가며 최척이 말했다.

    “나? 나는 全羅道 南原 사람 최척이라 하오. 그 퉁소 소리, 내 아내 이옥영이 불던 音律이오. 이옥영이라고 들어봤소?”

    멈칫한 相對가 퉁소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相對 바로 코앞에까지 이른 최척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다시 물었다.

    “或是 當身은 玉詠의 새 男便이오? 옥영이 살아 있소?”

    최척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相對가 갑자기 설움에 복받친 듯 흐느끼기 始作했다. 强靭하게만 보였던 그의 어깨가 차츰 무너져 내리더니 더는 서 있기 힘든 사람처럼 비틀대다 結局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고 相對 얼굴을 가만히 觀察하던 최척이 悲鳴처럼 소리쳤다.

    “或是 當身 女子 아니오? 그렇다면 자네가 옥영이로군! 그렇지?”

    對答도 듣기 前에 相對를 와락 끌어안은 최척은 달빛을 우러르며 웃다가 痛哭하기를 反復했다. 自身의 感情이 무엇인지 正確히 갈피를 잡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所重한 걸 되찾은 者의 幸福이 그의 가슴에 복받쳐 올라왔다.

    “酸性으로 돌아간단 約束을 못 지켜 未安했어. 내가 잘못했어. 너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어. 容恕해 줘, 옥영아!”

    다시 10代 少年으로 돌아간 최척은 相對를 옥영이라 斷定한 自身의 믿음이 다른 證據로 인해 무너질까 너무 怯이 났다. 반드시 옥영이어야 하는 相對는 自身의 품안에서 이미 틀림없는 女性임이 確認됐고, 여기서 다른 疑問은 더 必要 없었다. 그가 깨지기 쉬운 그릇을 쥐듯 相對 손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살아줘서 고맙다! 그런데 손은 어쩌다 이리 거칠어진 거야?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어서 이 배를 떠나자. 우리 朝鮮으로 같이 돌아가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최척을 올려다본 相對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옥영일 것만 같은 그女가 뭐라 말하려 하자 이를 急히 制止하며 최척이 속삭였다.

    “그대가 나의 사람이라면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아.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야.”

    탕롱의 마지막 質問

    酒店으로 돌아온 최척은 件棒 一行에게 玉纓을 紹介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 옥영입니다. 그동안 男裝을 하고 버틴 것 같습니다.”

    件棒과 同僚 商人들은 眞心으로 최척 夫婦의 奇跡 같은 邂逅를 祝賀해 줬다. 이를 옆에서 바라보던 倭商 一行도 덩달아 拍手 치며 祝賀 行列에 同參했다. 明나라 말과 日本 말이 뒤섞인 祝杯辭가 길게 이어진 탕롱의 酒店은 暫時 戰爭의 傷痕을 잊은 곳이 됐다. 玉纓을 지긋이 바라보며 최척이 읊조리듯 흥얼댔다.

    “梅花꽃 가지를 꺾어 그대에게 드리노니, 그대여 내 마음을 아는가.”

    슬픈 表情으로 그를 마주 본 옥영이 힘껏 웃으며 和答했다.

    “담牆 넘어가 남의 檀香木 망친 罪 크지만 다 그대 탓이라오.”

    둘은 번갈아 주고받으며 노래했다. 퉁소를 꺼낸 옥영이 演奏를 始作하자 明과 日本의 商人들이 다투어 自己 나라 돈을 두 사람 발아래로 던졌다 件鳳이 최척에게 외쳤다.

    “그대들은 이제 다시 婚禮를 올리는 셈이니, 우리가 오늘 賀客이 돼주겠네.”

    眞짜 婚禮式처럼 떠들썩한 時間이 지난 새벽녘, 최척 夫婦는 탕롱이 周旋한 한 民家에서 잠을 請했다. 두 손을 마주 잡은 최척이 玉詠의 얼굴을 凝視하며 말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絶對 묻지 않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옥영이 對答했다.

    “나도 묻지 않을게.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지난 일들일랑 다 잊고 살면 돼.”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다독이며 各自 通過했던 쓰린 記憶들을 어루만졌다. 自身의 팔을 베고 누운 玉纓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던 최척이 뭔가 말하려다 문득 멈췄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옥영이 속삭였다.

    “할 말이 있으면 只今 해. 마음에 담아두면 더 힘들어.”

    침을 꼴깍 삼킨 최척이 稀微한 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다.

    “亂 明나라 軍隊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었어. 죽을 생각도 여러 番 했었지. 널 찾을 생각은 차마 못 했어. 너무 두려웠거든.”

    “내가 죽었을까 봐?”

    “응. 그리고 말이야, 實은 더 생각하기도 싫었던 건, 그건 네가 倭놈들에게, 그놈들에게.”

    “倭놈들에게, 뭐?”

    “더럽혀질까 봐 너무 무서웠어. 널 지키지 못한 내가 너무 미웠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은 옥영이 최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女가 濕氣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난 여태 男子로 살아왔어. 좀 前에 봤잖아?”

    고개를 끄덕인 최척이 다시 玉纓을 와락 껴안고 울었다. 옥영이 최척 등을 쓸며 속삭였다.

    “酒店에 퉁소를 놓고 왔어. 가져올래?”

    옷을 입은 최척은 탕롱의 酒店으로 되돌아가 퉁소를 찾았다. 밤을 새우려는 船員들과 商人들로 酒店은 如前히 북적이고 있었다. 밖으로 나서려던 최척을 불러 세운 탕롱이 종이를 가지고 오더니 筆談을 하기를 願했다. 탕롱이 적은 글을 默默히 읽던 최척의 눈빛이 흐릿해져 갔다.

    酒店 밖을 나온 최척은 하늘에서 달을 찾았다. 갑자기 달이 보이지 않았다. 탕롱은 최척에게 質問 하나를 던졌다. 그는 倭商들이 떠나기 前 수군거리는 소리를 엿들었다고 했다. 잔치 雰圍氣를 깨지 않으려 沈默했지만 배에는 옥영 以外에 또 한 名의 朝鮮人 商人이 있었으며, 퉁소는 元來 그의 것이었다는 內容이었다. 퉁소를 같은 朝鮮 出身 벗에게 물려준 그는 한 달 前 바다에 뛰어들어 自決했다고 했다. 탕롱은 물었다. 그女가 眞짜 너의 아내냐고.

    그날 밤 바다에서

    류큐 王國에서 出發한 규슈 上段의 배는 南越을 向해 移動하고 있었다. 甲板에 서서 퉁소를 불던 옥영은 自身과 똑같은 處地에서 男裝을 하고 살아남은 井邑 出身 配定向에게 속삭였다.

    “정향아, 나 이제 지쳤어.”

    定向은 늘 自身보다 굳세고 樂天的이었던 親舊 옥영이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옥영아. 난 너만 보며 버티고 살아왔어. 규슈의 微賤한 奴隸였던 날 네가 番의 武官에게 힘을 써서 풀어줬잖니?”

    定向을 돌아보며 微笑를 띤 옥영이 힘없이 말했다.

    “나도 더 살아야 할 理由가 必要해서 그랬을 뿐이야.”

    유난히 쓸쓸해 보이던 옥영은 다시 애써 웃으며 활기차게 말했다.

    “먼저 船室로 돌아가. 아참 그리고 이 퉁소는 너에게 줄게. 더 연주하고 싶지 않으니 가끔 네가 代身 연주해 줘. 노래와 州法은 이미 다 알고 있지? 마지막으로 梅花 노래나 혼자 실컷 부르고 싶어.”

    뭔가 不吉한 마음이 들었지만 定向은 玉詠의 씩씩함을 믿기로 했다. 옥영은 비록 얼마 前 貿易 일로 들른 故鄕 南原에서 一家붙이나 男便의 痕跡을 全혀 찾을 수 없어 괴로워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살아만 있다면 世上 어디선가 奇跡처럼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고, 또 옥영은 그런 작은 希望의 끈을 決코 놓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랫소리는 갑자기 그쳤고, 그 뒤로 옥영은 船室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이 作品은 조위한이 實話에 基盤해 지은 ‘崔陟傳’ 一部를 모티프로 創作됐다.


    윤채근
    ● 1965年 忠北 淸州 出生
    ● 고려대 國語國文學 博士
    ● 檀國大 漢文敎育學科 敎授
    ● 著書 : ‘小說的 主體, 그 誕生과 轉變’ ‘漢文小說과 欲望의 構造’ ‘神話가 된 天才들’ ‘論語 感覺’ ‘每日같이 明心寶鑑’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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