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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못한 사람 생각하며 欲心 내려놔야 答이 나온다”|주간동아

週刊東亞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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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

“나보다 못한 사람 생각하며 欲心 내려놔야 答이 나온다”

인터뷰 | 天台宗 總務院長 春光스님

  • 對談 서정보 記者 suhchoi@donga.com, 整理 윤융筋 記者 yunyk@donga.com

    入力 2017-03-17 18: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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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苦痛과 混亂을 速히 治癒하고 새 時代를 열어야 합니다. 只今 가장 必要한 것은 和合과 團結입니다. 그동안의 葛藤은 모두가 國家 앞날을 걱정하는 愛國心의 發露였다고 봅니다. 이제 排他的인 생각과 主張을 버리고 和合과 相生의 智慧를 모아야 합니다.”

    대한불교天台宗 總務院長인 春光스님(寫眞)은 오늘날 葛藤과 分裂의 根源的 原因은 貪慾과 利己心이라고 診斷하며 社會構成員 모두 조금씩 내려놓는 姿勢가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3月 13日 서울 서초구 牛眠山 관문사에서 만난 春光스님은 “相對 尊重은 나에 對한 尊重이고, 相對 破滅은 나의 破滅”이라며 “家庭과 이웃, 國家를 위해서라도 나 自身이 얼마만큼 이바지했는지 反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어떤 因緣으로 出嫁했나.

    “어린 時節부터 父母를 따라다녀 절집에 익숙했다. 어느 날 忠北 丹陽 救仁寺에서 天台宗을 重唱한 상월圓覺 大調査를 親見하고 가슴이 마구 뛰기 始作했다. 요즘 말로 한눈에 반한 것이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마음은 恒常 救仁寺에 가 있었다. 그러니 工夫가 제대로 될 理 없었다. 出家 因緣이 되려고 그랬는지, 工夫보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父母의 反對를 무릅쓰고 집을 나섰다. 그때가 열여섯 살이었다.”



    ▼ 行者 時節을 어떻게 보냈나.

    “天台宗 總本山 救仁寺는 只今 훌륭한 度量의 모습을 갖췄지만, 내가 出嫁했을 當時에는 度量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程度로 草家집 몇 채가 全部였다. 當時 다 어려웠지만, 特히 먹는 것이 형편없었다. 쌀밥은 一 年에 서너 番 먹을 程度로 자주 못 먹고 보리, 兆, 옥수수 等 雜穀밥을 主로 먹었다. 天台宗 ‘주경夜船(晝耕夜禪)’ 傳統에 따라 낮에는 農事를 짓고 밤에는 工夫를 했다. 밤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졸음이 몰려왔지만 내가 家族까지 버리고 왔는데 ‘자는 것이 무엇이냐’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只今 돌아보면 形便은 어려웠지만 發心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고 歡喜心이 넘치던 時節이었다.”



    ▼ 곁에서 본 상월圓覺 大調査 모습은 어땠나.

    “눈빛이 恒常 炯炯했고 얼굴의 機가 매우 밝게 느껴졌다. 當時 年歲가 높고 오랫동안 農事일을 많이 했는데도 손과 皮膚가 깨끗하고 좋으셨다. ‘이것이 成人의 모습이구나’ 생각했다.”

    ▼ 大調査로부터 들은 말 가운데 平生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戒律이 生命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修行者는 戒律을 徹底히 지켜야 한다. 戒律 안 지키고 修行 안 하려면 뭐 하러 절에 들어오나. 상월圓覺 大棗社는 때로는 宏壯히 嚴하면서도 때로는 따뜻하게 對해준 좋은 스승이었다.”

    ▼ 遂行 中 많은 고비가 있었을 텐데.

    “修行者는 마음을 잘 챙겨야 한다. 다리가 아프다는 것도 마음이 다리에 가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遂行에 빠져들면 아픈 것도 잊어버린다. 저녁때 잠깐 精進을 하다 ‘한 時間이 지났나’ 싶었는데 날이 훤하게 밝은 때가 많았다. 熱心히 遂行할 때는 禁줄을 쳐 一般人은 못 들어오게 하고, 한 달이든 백일이든 매달렸다. 때때로 우물에 가서 찬물 한 대접 들이켜 遂行할 힘을 얻곤 했다. 그때는 죽고 사는 생각조차 없었다.”

    ▼ 요즘은 어떻게 遂行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은 隨行 밥값을 제대로 못 한다. 핑계 같지만 所任을 맡다 보니 안 되는 部分이 있다. 스스로 反芻해보고 ‘내가 너무 懶怠했구나’ 생각한다. 所任을 내려놓는다면 다시 修行에 精進할 것이다. 所任을 맡으면 所任을 熱心히 하고 遂行할 때는 修行을 熱心히 할 생각이다.”

    ▼ 김도용 宗正과는 어떤 因緣이 있나.

    “제가 尊敬하는 스님이시고 修行力과 願力이 대단하셔서 宗徒들이 부처님처럼 모시는 분이다. 終端에 들어오신 뒤 只今까지 장좌불와(長坐不臥)를 繼續하고 계신다.”

    ▼ 天台宗 寺刹은 都心에 있는 境遇가 많다.  

    “天台宗은 救仁寺를 中心으로 全國 160餘 直轄 寺刹을 두고 있다. 比丘, 比丘尼 스님이 500餘 名이고 佛子는 250餘萬 名이다. 天台宗의 모든 査察은 都心에 建立한 것이 特徵이다. 法堂을 24時間 開放해 佛者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査察이 生活圈 안에 있어 新行과 布敎가 圓滑히 이뤄지는 것이다. 天台宗은 ‘愛國佛敎’ ‘生活佛敎’ ‘大衆佛敎’를 3大 指標로 삼고 있다.”

    ▼ 天台宗은 ‘在家信徒’의 구실이 크다고 들었다.

    “僧俗一切 天台宗은 在家信徒가 가장 큰 힘이다. 우리 宗團은 單位 寺刹은 勿論, 中央行政 機關까지 四部大衆이 함께 運營한다. 宗團 代議機構인 種議會 議員 折半이 在家信徒다. 모든 査察의 財政도 信徒會가 直接 管理하는 시스템이다.”



    ▼ 最近 信徒 數가 줄고 있어 苦悶이 큰 것으로 안다.

    “只今까지는 절로 찾아오는 信徒들을 相對했다면 이제는 信徒를 찾아가야 한다. 또한 時代 變化에 맞게 宗敎界도 變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佛敎界가 時代 變化에 安易하게 對處한 部分이 있다. 社會와 疏通하면서 같이 苦悶하고 問題를 積極 풀어갈 수 있는 時間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宗敎界의 새로운 任務가 무엇인지 摸索하고 있다. 査察 따로, 社會 따로가 아니다.”

    ▼ 信徒를 찾아간다는 게 어떤 意味인가.

    “1988年 釜山에서 住持를 맡고 있을 때 한글學校를 열었다. 周邊에서 절이 무슨 그런 일까지 하느냐고 했지만, 불자 與否와 關係없이 어릴 적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을 對象으로 門을 열었다. 600名이나 몰렸다. 當時 한글學校를 卒業한 어느 老母가 美國에 있는 아들에게 便紙를 보냈다. 까막눈 어머니가 한글을 배워 便紙를 보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들은 老母의 便紙를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 아들이 찾아와 고맙다고 몇 番이고 머리를 숙였다. 只今도 한글學校를 運營하고 있다.”

    ▼ 出家者도 줄고 있다고 한다.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天台宗은 3年間 行者 過程을 거쳐야 한다. 悸慄이 嚴해 그 3年이 宏壯히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平生 遂行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을 출가시키기보다 正말로 遂行精進을 할 少數만을 출가시킬 생각이다.”

    ▼ 慈悲 實踐은 어떻게 하나.

    “우리 佛子에게만 關心을 쏟는 것이 아니라 國民 福祉 實踐이 곧 慈悲 實踐이다. 스님과 在家信徒가 하나 돼 社會 곳곳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福祉를 追求하고 있다. 우리 社會의 빛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 낮은 姿勢로 다가가는 것이 眞正한 慈悲다.”

    ▼ 大衆이 쉽게 할 수 있는 遂行方法이 있나.

    “‘노는 입에 念佛하기’라고, 念佛은 男女老少가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 大衆이 스님처럼 遂行하기는 어렵다. 目的地는 하나라도 가는 길이 다르듯, 遂行도 根氣에 따라 달라야 한다. 틈나는 대로 念佛을 하면 쓸데없는 雜생각이 들어오지 못한다. 이는 내 집을 내가 管理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집 管理를 못 하면 煩惱의 奴隸가 된다. 奴隸가 別것 아니다. 내 人生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면 奴隸인 것이다. 精神 똑바로 차리고 主人 노릇 제대로 하려면 念佛 修行이 좋다.”

    ▼ 日常에서 무엇을 實踐하면 좋을까.

    “慈悲와 사랑이다. 모두의 가슴속에 慈悲와 사랑의 農事를 지었으면 좋겠다. 慈悲가 充滿해야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 내 가슴이 메마르면 아무리 주고 싶어도 못 준다.”

    ▼ 요즘 하고 있는 不死로는 어떤 것이 있나.

    “11世紀 77年에 걸쳐 만들어진 ‘初雕大藏經’ 木版本 復元事業을 一次的으로 進行하고 있다. 먼저 天台宗의 宵衣經典(所依經典·基本이 되는 經典)인 法華經부터 復元하려 한다. 20年 前부터 念頭에 두고 있었는데 이番에 ‘時節 因緣’이 맞아 始作한다. 日本에 있는 影印本을 가져와 그에 맞게 나무를 깎을 것이다. 이미 建造된 나무 等도 準備해놓았다. 法華經은 來年 完成이 目標다.”  

    ▼ 마지막으로 國民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欲心을 조금씩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돌아보면 世上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 數없이 많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위만 바라보면 答이 안 나온다. 모든 問題는 自身에게 있다. 智慧가 不足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自己가 아닌 남 탓을 한다. 한 생각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열리고 世上이 아름다워 보인다. 마음의 窓에 때가 낀 사람은 世上이 아무리 좋아도 더럽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곧 부처인 셈이다.”  


    대한불교天台宗 總務部長 月刀스님이 말하는 春光스님은…원장 스님은 한 番도 놓치고 가는 部分이 없으시다. 修行도 빠짐없이 하시고, 佛敎 發展을 위해 必要한 德目을 두루 갖추셨다. 우리 宗團의 念佛 意識 部分에서 先驅者 구실을 하셨고, 文化장르와 宗團博物館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文化에 눈을 뜨고 實行하셨다. 한 番도 누구를 非難하거나 火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中衣 根本은 참고 理解하는 것이므로 火 내지 마라. 火를 내면 業을 짓는다”고 말씀하셨다. 院長 스님이 아니라 菩薩을 모신다는 마음이 든다.
        
         
    春光스님은 1971年 忠北 丹陽 救仁寺에서 상월圓覺 大調査를 恩師로 出嫁해 서울 관문사, 釜山 삼광사 住持와 總務院 敎務部長, 種議會 議員, 監査院長 等을 지냈다. 現在 한국불교종단協議會 首席副會長, 學校法人 금강대 副理事長, 天台宗福祉財團 代表理事, 錦江新聞 代表理事, 佛敎TV 理事 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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