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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와 獨逸 가려던 김종인이 歸還한 眞짜 理由|新東亞

孫子와 獨逸 가려던 김종인이 歸還한 眞짜 理由

“‘經濟民主化’ 아니라 100兆 補償 實行案 내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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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1-12-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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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單獨者 金鍾仁’…金鍾仁界는 없다

    • “난 阿諂이란 걸 할 줄 모르는 사람”

    • 野 內部 牽制에 大選 不參할 생각도

    • 典範은 獨逸 招待 經濟長官 에르하르트

    • “2~3가지 核心 政策이면 된다고 생각”

    • “첫 판 金 이겼지만 ‘尹核關’도 反轉 노려”

    • 權力者 善意에 기대는 經世家의 運命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021년 7월 7일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김형우 기자]

    金鍾仁 國民의힘 總括選擧對策委員長이 2021年 7月 7日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김형우 記者]

    尹錫悅號(號)의 出港 準備는 쉽지 않았다. 國民의힘 選擧對策委員會 構成을 놓고 헤게모니 競爭이 熾烈했다. 부침 끝에 金鍾仁 總括選對委員長이 돛대 役割을 맡았다. 劇的 合流라는 드라마를 演出하긴 했는데, 事實 그의 歸還은 豫告돼 있었다. 主要 當事者 間 利害關係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尹錫悅 候補에게는 本選을 航海할 새로운 배가 必要했다. 船長으로는 金鍾仁만한 人物이 없다. 個性 剛한 김종인이 選對委 바깥에서 ‘인터뷰 政治’로 訓手를 두는 것도 負擔이다. 80代 金鍾仁에게는 主演이건 神 스틸러件 이番 大選이 마지막 機會다. 이를 아는 尹錫悅은 홍준표 議員을 지렛대로 活用해 김종인을 壓迫했다. 洪準杓에게 總括選對委員長을 맡길 수 있다는 시그널을 던진 거다. 黨權을 쥐었으나 舊主流와 척을 陳 李俊錫 代表는 金鍾仁이라는 防波堤가 必要했다. 李俊錫으로서는 外延 擴大라는 名分과 勢力 再編이라는 實利를 다 醉한 妙策이다.

    궁금症은 남는다. 김종인이 要求한 ‘實務型 選對委로의 再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데 왜 그는 ‘老慾’ ‘몽니’라는 嘲弄까지 받으며 汝矣島로 돌아갔을까. 上王(上王)을 하고 싶어서? 조 바이든 美 大統領처럼 차차기에 大權을 쥐려고? 이런 解釋은 陳腐하다. 김종인이 第1野黨 非常對策委員長을 맡을 때부터 膾炙된 ‘金鍾仁 待望論’의 反復이기 때문이다.

    孑孑單身의 單獨者

    2021年 初 記者는 ‘金鍾仁 待望論’이 퍼지는 理由에 關해 取材한 적이 있다. 그즈음 國民의힘 前身 政黨에서 黨代表를 지낸 巨物級 人士를 만났는데, 이런 對答을 들었다. 그는 그때나 只今이나 金鍾仁과 不和(不和)하는 사이다.

    “나도 그게(‘김종인 待望論’) 궁금했다. 그런데 大權을 꿈꾼다면 非對委員長을 하면서 自己 勢力을 만들어야 하는데, 黨 어디에도 金 (當時) 委員長이 勢力을 만든다는 痕跡이 없다. 政治에는 道人(道人)의 境地에 이른 사람인데, 몰라서 그랬겠나? 그 뒤 金 委員長의 大權 出馬說은 臆測이라는 判斷을 내렸다.”



    정작 近來 野圈에는 ‘金鍾仁 待望論’에 實體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國民의힘 選對委에 金鍾仁과 가까운 人士가 여럿 合流했다는 點을 根據로 댄다. 임태희 總括狀況本部長, 鄭泰根 政務對應室長, 琴泰燮 戰略企劃室長, 金根植 情勢分析室長, 金炳玟 選對委 代辯人, 윤희석 常任公報特報 等을 한데 묶어 ‘金鍾仁 師團’이라는 表現도 돈다.

    이에 對해 곽對中 칼럼니스트는 “全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전남대 總學生會長 出身인 그는 ‘金鍾仁 使用說明書’ ‘大韓民國 非常對策委員長 김종인’ 等의 冊을 썼다. 金鍾仁과도 頻繁히 交遊하며 자주 對話하는 사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김종인의 核心 側近 中 하나다. 그의 말이다.

    “내가 알기로는 먼저 그쪽(國民의힘)에서 人選을 해놓았다. 金 委員長이 ‘이 사람 넣자’ 한 게 아니라, 候補群을 마련해 놓고 ‘어떻습니까?’ 묻기에 (金 委員長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만 뺀 形態다. 임태희 本部長은 本人과 어긋날 사람이 아니라고 判斷해 받아들인 것 같다. 何如間 ‘金鍾仁界’라 할 만한 사람은 없다. (合流를) 決定하기 前 元喜龍 前 濟州知事를 만나지 않았나. 元 前 知事와 政策 이야기를 했을 테고,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說明대로라면 그는 孑孑單身으로 選對委에 合流했다. 그에게 ‘킹메이커’라는 別稱을 처음 안긴 2012年 大選 때와 比較해 政治的 位相이 훨씬 높아졌는데도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가 그에게 붙인 修飾語를 빌자면 ‘單獨者 氣質’이다.

    김종인이 맞이한 ‘별의 瞬間’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021년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대표, 김 위원장, 윤석열 대선후보.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金鍾仁 國民의힘 總括選擧對策委員長이 2021年 12月 7日 國會에서 열린 中央選對委 1次 會議에서 모두 發言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李俊錫 代表, 金 委員長, 尹錫悅 大選候補. [송은석 동아일보 記者]

    김종인이 國民의힘 非對委員長 任期 終了를 80餘 日 앞둔 時點에 그를 만나 ‘任期 延長설’에 關해 물은 적이 있다. 當時 野圈에는 그를 牽制하기 위한 目的으로 “김종인이 大權을 念頭에 두고 非對委員長 任期를 延長하려 한다”는 式의 黑色宣傳이 돌았다. 다른 懸案이 많아 記事에서 뺐던 內容인데, 只今 돌아보면 그의 單獨者 氣質이 잘 表現된 發言으로 읽힌다.

    “내가 任期 延長을 위해 뭘 한다고 하는데, 다 自己네 같은 줄 아는 거야. 나는 여태까지 누구한테 付託하거나 請託해서 人生을 산 사람이 아니다. 내가 率直히 말해서 只今까지 머리 하나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줬지, 어디 가서 ‘이거 해주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比例代表 國會議員을 5番 했으니까 宏壯히 阿諂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아는데, 나는 阿諂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그는 이番 大選에 不參할 생각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關聯해 아직 報道된 적이 없는 에피소드 하나. 當初 金鍾仁은 이番 겨울 高等學生인 孫子와 獨逸 旅行을 갈 計劃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외국어대에서 獨逸語를 專攻한 뒤 獨逸 뮌스터代로 留學해 經濟學 博士學位를 받았다. 外高에 在學 中인 그의 孫子 亦是 獨逸에 關心이 많다고 한다. 金鍾仁은 夫人 김미경 이화여대 名譽敎授와 膝下에 1女를 뒀는데, 그의 딸 亦是 외동아들을 뒀다.

    가인(街人) 김병로의 孫子인 그는 祖父 곁에서 當代 有力 政治人을 두루 만났다. 어릴 적부터 政治 感覺이 뼛속 깊이 刻印된 사람이다. 政治판 生理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尹錫悅이 ‘도와달라’ 말했다고 하나뿐인 孫子와의 旅行을 미루眞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權力慾이라 置簿해 버리면 說明되지 않는 要素가 너무 많다. 于先 單獨者 氣質을 理解할 수 없다.

    그間 數次例 그를 인터뷰하며 記者가 내린 結論이 있다. 金鍾仁은 權力 그 以上의 價値를 追求한다. 무슨 價値일까. 그와 反對 政派에 屬한 유인태 前 國會 事務總長이 2021年 11月 23日 KBS 라디오에 나와 꺼낸 發言에 答을 찾을 실마리가 있다.

    “그분은 서울市長 補闕選擧에서 다 죽어갔던 黨을 살려서 所謂 經世家로서의 ‘별의 瞬間’을 맞이한 분이고, 競選 過程에서도 尹錫悅 候補를 거들지 않았나. (中略) 그분으로서는 只今 별의 瞬間인데 저걸 놓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이 大選 판에 끼어들어야 하는데 어디 다른 데를 가겠는가? 거기 갈 수밖에.”

    ‘별의 瞬間’은 김종인이 大權 潛龍을 稱할 때 즐겨 쓰는 表現이다. 그는 2007年 大選 出馬說이 돌던 정운찬 前 서울대 總長을 두고 “人間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歷史에서 하나의 ‘별의 瞬間’이 있고 정운찬이라는 個人에게 그 瞬間이 到來했다”고 했다. 2021年 1月 12日 CBS 라디오에서 나와서는 尹錫悅 當時 檢察總長에 對해 “별의 瞬間이 只今 보일 것”이라고 했다. 유인태의 말대로라면 이番 大選은 尹錫悅뿐 아니라 金鍾仁에게도 별의 瞬間이다.

    “내가 그 사람 個人的으로 좋아하지”

    그가 經世家로서 戰犯(典範)으로 삼는 人物은 獨逸 招待 經濟部 長官(1949~1963年)이자 第2代 總理(1963~1966年)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다. 에르하르트는 ‘社會的 市場經濟’ 모델의 創始者로 꼽힌다. 이는 市場을 放任하는 代身 成長의 過失을 나누는 데 國家가 積極 介入하는 經濟哲學을 일컫는 말이다. 金鍾仁은 긴 時間을 割愛해 에르하르트에 關해 말한 적이 있다. 이 發言도 이番에 처음 公開하는 內容이다.

    “에르하르트가 元來는 純粹한 敎授였는데, 히틀러를 讚揚하는 敎授聯盟에 加入을 안 해 學校에서 쫓겨났다. 그 뒤 獨逸 經濟를 어떻게 復興시킬지에 對해 硏究하면서 肉筆 原稿를 썼다. 第2次 世界大戰 以後 美軍 司令部가 에르하르트에게 經濟 責任者를 맡겼는데, 官僚들의 갖은 謀略에 못 견뎌 그만두고 나가버렸다. 以後 뮌헨대 敎授를 하는데도 獨逸 經濟 復興에 對해서 繼續 생각했다. 1年 半쯤 있다가 英國, 美國이 合同 經濟委員會를 만들어 責任者를 찾을 때 다시 에르하르트를 데려왔다.”

    金鍾仁은 1994年 大法院에서 議員職 喪失 宣告를 받고 野人(野人)이 됐다. 그 뒤 서울 종로구에 大陸問題硏究所를 열었다. 에르하르트가 事實上 쫓겨난 뒤 홀로 硏究를 이어간 모습과 닮았다. 에르하르트가 前後 混亂相에 빠진 獨逸에서 機會를 잡았듯, 그는 1997年 IMF(國際通貨基金) 危機 以後 다시 政治權의 注目을 끌었다. 이야기는 다시 에르하르트로 돌아간다.

    “에르하르트가 貨幣改革을 發表하는 金曜日 저녁에 그間 構想해 온 獨逸 經濟의 나아갈 길까지 發表해 버렸다. 다음 週 月曜日에 美國 憲兵이 와서 잡혀간다. 그땐 軍政 時代니까. 에르하르트가 ‘6個月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내가 틀리면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했지. 結局 에르하르트 말대로 하니 經濟가 살아났다. 14年間 經濟長官을 할 동안에는 아데나워 總理하고 葛藤이 宏壯히 甚했다. 辭表를 낸 적도 있고. 所信이 뚜렷한 사람이다. 國民 支持가 높으니 아데나워가 내쫓지 못했지. 그 사람이 戰後 獨逸 經濟를 회복시켰는데, 그 基盤으로 오늘날 獨逸이 世界的 競爭力을 갖췄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을 個人的으로 좋아하지.”

    人物 評價에 깐깐한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稱하는 點이 눈길을 끈다. 곱씹다 보면 그가 에르하르트의 삶에 自身을 代入하고 있다는 點을 깨닫게 된다. 에르하르트가 1因子와 葛藤을 겪었다는 대목은 妙한 旣視感을 준다. 自己 所信이 剛한 金鍾仁 亦是 種種 摩擦과 衝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말이 끝난 뒤 ‘에르하르트는 左와 右에서 모두 攻擊받았는데, 그게 金 委員長의 運命과 비슷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金鍾仁은 卽答은 避한 채 “그 사람도 오직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니까”라고만 答했다.

    “問題를 푸는 黃金 열쇠 안다”

    그는 이番 大選에서 經世家로서 무슨 議題를 던지고 싶은 걸까. 最近 그의 입에서 ‘經濟民主化’라는 單語가 登場하지 않는 點을 눈여겨볼 必要가 있다. 實用主義者는 當面 課題를 푸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金鍾仁은 經濟民主化를 접은 게 아니라 뒤로 미뤄뒀을 뿐이다. 代身 “코로나 進行 狀況을 봤을 때 損失補償 基金이 50兆 원을 넘어 100兆 원이 必要할지 모른다”고 했다.(2021년 12月 9日 選對委) 김종인의 意中을 잘 아는 곽對中 칼럼니스트와의 問答이다.

    - 金 委員長이 새 政府에 어떤 經濟哲學과 政策을 덧입히기 위해 또 毒杯를 마셨을까.

    “코로나19 問題를 市場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財政의 役割이 가장 重要한 時期다. 金 委員長은 새로운 財源으로 100兆 원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 豫算 再調整을 主張하는 것 아닌가.

    “憲法에 ‘大統領緊急財政命令’ 權限이 있다. 金 委員長은 只今이 非常時局이라고 判斷한다. 不要不急한 豫算, 假令 現在는 600兆 원 슈퍼 豫算이니 10~15%를 調整하면 된다. 文 大統領은 그 權限을 안 쓰고 있고, 官僚들은 그런(豫算 調整을 할) 政治的 感覺이 없다. 그러니 國民의힘이 政權을 잡으면 바로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 大統領 命令으로 可能하니 國會 合意는 따로 必要 없는 셈이니까….

    “그렇다. 宋永吉 民主黨 代表가 4者 會談을 열어 協議하자 했던데, 文 大統領에게 (하자고) 말해야 할 性質의 內容이다. 金 委員長은 國民의힘의 執權 可能性이 높아진 狀況에서 캠프가 本人 마음에 안 든다고 그냥 내버려 두는 건 經世家로서 責任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自身의 마지막 責任이라고 생각하고 나선 게 아닌가 싶다.”

    - 金 委員長이 經濟民主化라는 單語도 안 쓰더라.

    “經濟民主化를 말할 狀況이 아니기 때문이다. 經濟民主化는 大企業 集團의 市場 秩序 攪亂을 問題 삼는 건데, 只今 問題는 바이러스 아닌가.”

    - 當面한 問題를 捕捉한 後 適切한 議題를 던지는 셈인가.

    “問題를 푸는 黃金 열쇠를 아는 거지. 金 委員長은 政策·公約이 複雜할 必要가 없다고 생각한다. 2~3가지만 解決하면 된다는 式이다.”

    - 百貨店式이 아니라 몇 個의 時急한 이슈만 提示한다?

    “특별한 公約을 꺼내진 않을 거다. 100兆 원 實行 方案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또 平素 私敎育 市場이 肥大하다는 點을 자주 擧論하는데, 이에 對한 積極的 對策도 나올 수 있다.”

    2021年 12月 中旬부터 匿名의 ‘尹錫悅 候補 側 核心 關係者(尹核關)’가 某 基督敎 系列 인터넷 媒體를 통해 김종인을 選對委에서 排除해야 한다는 趣旨의 主張을 쏟아냈다. 尹核關의 實體는 밝혀지지 않았다. 記者가 國民의힘 選對委 關係者, 黨 競選에서 敗한 캠프 人事, 黨 所屬 補佐官, 野圈 事情에 밝은 政治評論家에게 두루 물었을 때 3~4名의 이름이 나왔는데 딱 한 名이 共通的으로 擧論됐다. PK(釜山·慶南) 地域區 重鎭 議員이다. 勿論 當事者는 否認하는 狀態다.

    單獨者의 運命

    2016년 1월 2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2016年 1月 27日 當時 더불어民主黨의 문재인 代表와 金鍾仁 非常對策委員長이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열린 민주당 中央委員會 會議에 參席해 人事를 나누고 있다. [東亞DB]

    尹核關 論難과 關聯해 國民의힘 選對委 關係者는 “選對委 內部에 김종인을 찍어내려는 사람이 到處에 도사리고 있는데, 이들을 尹核關으로 統稱할 수 있다. 尹核關은 選對委에 合流한 ‘親(親)金鍾仁’ 人士들을 김종인이 다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첫 版 對決에서 김종인이 이겼지만 尹核關度 繼續 反轉을 노릴 것”이라고 했다.

    金鍾仁은 2012年 大選에서 經濟民主化 公約을 밀어붙이기 위해 ‘選對委 會議 不參’ 等 보이콧 戰略을 活用했다. 2016年 總選을 앞두고는 比例代表 候補 選定을 놓고 葛藤이 생기자 ‘辭退’ 카드를 꺼내 판을 통째로 흔들었다. 選擧를 앞두고 그가 必要했던 박근혜·文在寅 두 사람은 그의 意思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選擧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彭’을 當했다.

    張性哲 大邱가톨릭大 特任敎授는 ‘尹 候補 執權 뒤 金鍾仁票 政策이 維持되겠느냐’는 質問에 “안 될 것”이라 잘라 말했다. 이어 “(黨에) 그의 主張에 同調하는 그룹이 없다. 이제는 金 委員長도 알고 있을 거다. 다만 政權交替 輿論이 높고 大選에서 役割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 總括選對委員長職을 承諾했을 것”이라고 했다.

    金鍾仁은 著書 ‘金鍾仁, 對話’에서 “善한 權力은 善하게 作動하리라는 幻想을 버려야 할 때다. 人間의 善意에 지나치게 기대지 말고, 制度와 構造를 끊임없이 整備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改憲의 必要性을 强調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그러나 現行 大統領 中心制에서는 金鍾仁 自身도 經世家의 뜻을 펴기 위해 權力者의 善意에 기대야 한다. 韓國 政治의 아이러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다시 戰場으로 돌아간 것. 이것이 單獨者 김종인의 運命일지 모른다.


    #金鍾仁 #尹錫悅 #經世家 #尹核關 #100兆원 #新東亞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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