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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人技보다 팀워크가 優勝 原動力”|新東亞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個人技보다 팀워크가 優勝 原動力”

김승기 安養 KGC人蔘公社 監督

  • 이영미|스포츠 專門記者

    入力 2017-05-11 18: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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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L 史上 첫 選手-코치-監督으로 優勝 앞둬
    • 優勝하는 꿈 많이 꿔 優勝 確信
    • 株式으로 10億 날려 離婚 危機 겪기도
    • “내 몸엔 전창진의 피가 흐른다”
    2016-2017 KCC프로籠球 正規리그 優勝팀인 安養 KGC人蔘公社의 김승기 監督(45). 現役 時節 ‘터보 가드’로 불릴 만큼 스피드가 卓越했던 金 監督은 隱退 後 2006年 原州 동부 코치를 始作으로 釜山 KT 首席코치 그리고 安養 KGC 首席코치를 맡았다. 그의 指導者 生活에 가장 큰 影響을 미친 이는 전창진 前 監督이다. 原州 東部에서부터 10年 가까이 監督과 코치의 緣을 맺었기 때문이다.

    2015年 安養 KGC 팀을 맡자마자 터진 前 監督의 勝負造作 스캔들(證據 不充分으로 不起訴 處分)로 金 監督은 首席코치에서 監督代行으로 選手團을 이끌었고, 正規리그 4位에 오르며 指導力을 인정받았다. 結局 球團은 2015年 12月, 그를 正式 監督으로 昇格시켰고, 金 監督은 올 시즌 創團 最初 正規리그 優勝이란 華麗한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2011-2012시즌 正規리그 2位로 플레이오프에 進出, 챔피언決定戰에서 原州 동부를 4勝2敗로 물리치고 챔프戰 優勝을 차지한 적은 있다).

    이제 統合챔피언이란 宿題가 남아 있는 김승기 監督. 그가 올해 챔피언決定戰 頂上에 오르면 KBL 史上 最初의 選手-코치-監督으로 優勝을 거머쥔 事例가 된다. 플레이오프를 準備하고 있는 金 監督을 지난 3月 29日 安養體育館에서 만났다.



    신기한 豫知夢

    3月 27日 2016-2017 KCC 프로籠球 正規리그 施賞式에서 監督賞을 受賞한 김승기 監督은 受賞 所感으로 꿈 얘기를 꺼냈다. “優勝하는 꿈을 많이 꾸다 보니 優勝할 것 같았다”는 內容이었다. 金 監督과의 인터뷰는 이 꿈 얘기로 始作했다.



    -꿈에 籠球 패턴이 나오고, 꿈에서 가진 優勝 半指가 10個도 넘었다는 內容이 印象的이다. 正말 그런 꿈을 꾼 건가.
    “事實이다. 꿈을 아주 많이 꿨다. 꿈에서 너무 뛰어다녀 살이 찔 틈이 없을 程度였다. 올 시즌을 準備하면서도 꿈을 꿨고, 시즌 내내 優勝하는 꿈을 많이 꿨다. 籠球 패턴이나 作戰 等을 꿈에서 본 것도 事實이다. 그게 現實로 이뤄지기도 했고.”

    -率直히 믿기지 않는다.
    “正말이다. 作戰이 그대로 進行될 때에는 나도 소름이 돋을 程度였다. 競技 中 우리 팀 選手의 골이 成功해도 拍手를 잘 안치는 便이다. 그런데 꿈에서 나온 作戰이 氣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면 拍手 칠 때가 있다. 그리고 이건 正말 말이 안 되는 꿈이었는데….”

    -어떤 꿈인데 그런가.

    “2015年 3月, 釜山 KT 球團이 전창진 監督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通報한 後 나를 包含해 코치들의 去就 問題가 불거졌을 때다. 그날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내가 오세근, 李貞鉉, 양희종 等 現在 KGC 選手들을 바로 이곳(安養體育館)에서 훈련시키는 場面이 나왔다. 더 흥미로운 것은 平素 全혀 因緣이 없는 KGC 人蔘公社 김성기 事務局長도 그 꿈에 나타났다. 體育館 골대 밑에서 金 局長이랑 繼續 얘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주 생생한 꿈이었다. 只今도 正確히 記憶이 날 程度로. 꿈에서 깨고 난 後 氣分이 妙했다. 갑자기 왜 KGC 選手들과 事務局長이 꿈에 登場했는지 궁금할 程度였다.”

    -무슨 豫知夢인가. 內容이 漸漸 興味津津하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꾸며낸 말로도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當時엔 ‘개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正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安養 KGC에서 전창진 監督에게 監督 提議를 해왔고, 前 監督이 受諾하면서 나랑 손규완 코치가 모두 KGC와 契約을 맺게 된 것이다. 꿈이 現實로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選手빨’은 없다

    -神奇한 건 전창진 前 監督이 勝負造作 連累 嫌疑를 받으면서 監督職을 내려놓은 일이다. 以後 檢察 搜査에서 證據 不充分으로 不起訴 處分을 받았다. 前 監督으로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金 監督에겐 새로운 機會였다.
    “當時 나도 같이 그만두려 했다. 그러나 選手들과 非시즌 동안 訓鍊하며 苦生한 일들이 떠올랐고, 시즌을 앞두고 無責任한 決定을 하기 어려웠다. 監督代行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選手들이 잘 따라주면서 조금씩 安定感을 찾아갔다.”

    -當時 팀이 內外部敵으로 相當히 어수선했다. 무엇보다 前任 監督 問題로 衝擊받은 選手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게 어려운 宿題였을 텐데 팀을 4强으로 이끌었다.
    “監督님이 계실 때는 心的으로 믿고 依支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갑자기 안 계시니까 唐慌했던 게 事實이다. 코치였을 때는 選手들의 몸 狀態를 살피면서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는데 監督代行을 하면서는 躁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서두른 것도 事實이다. 그때 손(규완) 코치가 ‘왜 안 하던 行動을 하느냐’며 걱정하더라. 처음부터 內心 優勝을 욕심낸 模樣이다.”

    -그런 經驗이 올 正規시즌을 이끈 背景으로 作用한 模樣이다. 優勝 監督이 듣기 싫은 얘기 中에 ‘選手빨’이란 말이 있다. 選手 德으로 優勝했다는 말인데, 金 監督도 優勝 前後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國內 最古 슈터 李貞鉉, 韓國 籠球의 自尊心 오세근, 主張 양희종, 外國人 選手 키퍼 사익스와 데이비드 사이먼으로 이뤄진 前歷은 한마디로 ‘넘사壁’ 아닌가.
    “그건 監督이 되어보지 않은 以上 說明하기 어려운 部分이다. 實力이 뛰어난 選手가 많다는 건 分明 큰 힘이 된다. 多樣한 作戰을 驅使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個個人 모두 뛰어난 實力을 갖추고 自尊心 剛하고 個性 넘치는 選手들을 한데 어우르는 게 決코 쉽지 않다. 正規시즌 優勝을 앞두고 오세근과 이정현이 MVP 候補였다. 率直히 그 둘 中 누가 MVP를 받아도 全혀 異常할 게 없었다. 競爭이 熾烈해지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 사이가 語塞해졌고, 그로 인해 選手團 全體에 좋지 않은 影響을 미쳤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選手團을 발칵 뒤집어놨다.”


    팀워크가 優勝의 힘

    -어떤 方法으로 選手團을 흔든 것인가.
    “正規시즌 優勝까지 가장 힘든 고비였던 瞬間이 5라운드 마지막 두 競技로 2月 25日 오리온展, 26日 釜山 KT前이었다. 그 두 競技를 내리 지면서 三星, 오리온과 共同 1位가 됐을 때였다. 繼續 單獨 1位를 달리다 그 競技들로 인해 발목이 잡히는 瞬間 選手들과 미팅을 했다. 나 나름의 D-데이였던 셈이다. 오세근, 이정현의 對立과 繼續 1位를 해오는 過程에서 選手들이 조금씩 懶怠해지는 것 같아 監督 되고 2年 만에 처음으로 辱을 하며 火를 냈다. 30分 동안 엄청난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동안 苦生한 게 아깝지 않으냐, 優勝이 눈앞에 있는데 사사로운 感情으로 팀을 망칠 것이냐고 火를 냈다.”

    -效果가 있었나.
    “그런 狀況이 처음이라 選手들이 받은 衝擊이 꽤 컸을 것이다. 남은 6라운드에서 9連勝을 해야 優勝에 到達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以後 거짓말처럼 9連勝으로 6라운드 全勝을 거두며 일찌감치 優勝을 確定지었다. 9連勝하며 引上 한番 안 썼다. 選手들이 시원하게 競技를 풀어갔다. 選手들도 9連勝하는 過程에서 느낀 게 많았다고 하더라. 아무리 實力이 뛰어난 選手라고 해도 팀워크가 무너지면 競技에서 이길 수 없다는 事實을 깨달은 것이다. 內紛이 일어나면 選手들만 바보 된다는 事實도 주지시켰다. 周圍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세근, 李貞鉉, 양희종에 사이먼, 사익스까지 뛰는 우리 팀을 相對하기란 決코 쉽지 않다. 團合만 되면 거칠 게 없는 팀이다. 팀워크가 가장 重要하던 瞬間에 그 미팅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로 뭉쳤다. 그 힘으로 優勝에까지 이른 것이고.”

    結局 MVP는 有效票 101票 中 65票를 얻은 오세근한테 돌아갔다. 이정현은 35票를 받아 2位에 올랐다. 오세근은 2011-2012시즌 新人賞, 그해 챔피언決定戰 MVP에 오른 적은 있지만 正規리그 MVP는 이番이 처음이었다. 最近 두 시즌 동안 負傷으로 苦戰한 오세근은 올 시즌 負傷 없이 52競技에 빠짐없이 出戰해 골밑의 버팀木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平均 33分 3秒를 뛰며 平均 14.1得點 8.4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活躍했다. 가드 이정현도 52競技 모두 出戰했고, 平均 33分 28秒를 消化하면서 平均 15.4得點 3리바운드 5.1어시스트 1.8스틸로 빼어난 活躍像을 보였다. 이정현은 國內 選手 平均 得點 1位에 올랐고, 오세근은 國內 選手 리바운드 先頭를 차지한 바 있다.



    古參의 힘

    -아주 絶妙한 時點에 팀 미팅을 가졌고, 그때 選手들의 마음을 제대로 흔들어준 게 神의 한 首였다고 본다.
    “萬若 내가 每日 火내고 辱하는 監督이었다면 그 미팅이 별다른 效果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2年間 單 한 番도 選手들에게 火를 내지 않았다. 내가 剛하게 밀고 나가면 부러질 거란 생각도 들었다. 처음 KGC 選手들과 만났을 때의 내 位置는 首席코치였고, 選手들한테는 監督 김승기보다는 코치 김승기가 훨씬 便하고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監督 됐다고 해서 목에 힘주고, 選手들을 强하게 내몰았다면 選手들이 나를 信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가 古參들이다. 팀을 이끌려면 베테랑 選手들과 呼吸을 맞추는 게 重要하다. 古參들이 中心을 잡아줘야 後輩들이 따라간다. 그래서 많이 참았다(웃음).”

    -코치 經歷만 9年이다. 코치 生活의 노하우가 監督으로 팀을 이끌 때 도움이 된 건가.
    “當然하다. 코치하면서 참는 法을 배웠다. 運動만 熱心히 한다면, 팀에 도움이 된다면, 古參들의 要求를 大部分 受容했다. 後輩들은 監督보다 先輩들을 보고 배운다. 그래서 KGC를 이끌 때 베테랑 選手들과의 疏通을 重要하게 생각했다. 萬若 古參들이 내 意圖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나로선 그런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監督을 해보니까 때로는 惡役을 맡아야 할 때도 있더라. 그걸 選手들이 理解해주느냐, 못하느냐의 差異에 따라 팀 雰圍氣가 달라진다고 본다.”

    -시즌 初盤에는 球團에서조차 올 시즌 成跡에 對해 悲觀的인 豫想을 했다고 들었다.
    “外國人 選手들과 國內 選手들과의 呼吸이 자꾸 엇拍子를 냈다. 오세근度 몸 狀態가 좋지 않았다. 選手들을 뭉치게 하려고 많은 努力을 기울였는데 그게 잘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 우리 團長님이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한다(웃음). ‘只今 우리 팀 하는 거 보면 9位는 맡아놓은 것 같아’라고. 主戰 選手들의 몸 狀態가 正常이 아니니 팀 成跡을 期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團長님한테 ‘眞짜 9位 같아요? 한番 지켜봐주세요. 올해는 꼭 優勝할 겁니다’라고 말씀드렸다. 1라운드에서 4勝1敗로 1位를 차지했다. 以後 業 앤 다운이 있었지만 優勝에 對한 自信感을 버리진 않았다. 어려운 危機를 맞이해도 ‘그래도 優勝한다’고 생각하며 밀어붙였다.”


    미운 오리새끼 키퍼 사익스

    -뛰어난 팀 成績에도 口舌이 많았다. 特히 키퍼 사익스의 退出 問題를 놓고 오락가락 行步를 보였다는 指摘도 있었다.
    “그건 나도 할 말이 있다. 사익스를 交替하려 했던 건 우리가 唯獨 三星, 동부 等 언더사이즈 빅맨(프로籠球는 2名의 外國人 選手 中 1名은 長身을, 또 다른 한 名은 193cm 以下의 短信을 둘 수 있다. ‘單身 테크니션’의 活躍 속에 多得點 競技를 誘導하기 위해서다. 178cm의 키퍼 사익스는 언더사이즈 빅맨이 아닌 ‘單身 技術者’다)이 있는 팀에게 弱한 面貌를 보였기 때문이다. 優勝을 위해선 작은 身長의 사익스 代身 언더사이즈 빅맨이 必要했기 때문에 交替를 苦悶한 건데 選手들이 사익스를 願해 끝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사익스한테는 人間的으로 未安하다는 얘기를 傳했다. 이 또한 팀을 위해 苦悶이지, 사익스에 對한 私的인 感情이 介入된 게 아니었다. 또 한 名의 外國人 選手인 데이비드 사이먼은 나와 많은 部分에서 交感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는 어떤 狀況에서도 내 말을 傾聽하고, 내가 要求하는 作戰을 코트에서 遂行해낸다. 그 背景에는 人間的인 信賴가 자리한다. 사익스의 退出 問題로 苦悶하고 있을 때도 사이먼은 내가 어떤 決定을 내려도 理解하겠다고 말했다. 及其也 自身의 에이전트에게 ‘우리 監督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얼마나 고마운 얘기인가. 사이먼과 사익스의 活躍이 우리 팀에 좋은 시너지 效果를 낸 건 否認할 수 없는 事實이다.”

    한때 미운 오리 새끼로 轉落했던 키퍼 사익스는 2016-2017 KCC 프로籠球 6라운드 MVP에 選定되며 華麗한 白鳥로 復活했다. 사익스의 猛活躍 德分에 KGC는 6라운드 全勝을 이룰 수 있었다. 두 次例 退出 危機를 딛고 實力으로 存在感을 드러난 사익스는 4月 10日 펼쳐진 蔚山 모비스와의 4强 플레이오프 1次戰에서도 拔群의 活躍을 선보이며 팀이 勝利하는 데 貢獻했다.



    ‘난 네가 第一 무섭다’

    -플레이오프에 오른 蔚山 모비스의 유재학 監督과 高陽 오리온의 추일승 監督보다 後輩이다. 이런 先後輩 關係가 競技할 때 影響을 미친 적이 있나.
    “競技力에 影響을 받진 않지만 先輩 監督과의 競技를 풀어가는 게 어려운 건 事實이다. 코치 生活을 오래해서 그런지 나보다 나이 어린 監督들과의 競技는 負擔이 덜한 便이다. 유재학 監督한테는 두 番이나 ‘말렸다’. 우리 팀 戰力에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그걸 絶對 놓치지 않는다. 그런 틈을 發見해내는 것도 베테랑 監督의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나이 어린 監督은 거기까진 미처 神經을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萎縮되거나 緊張되는 건 없다. 얼마 前 추일승 監督을 만났는데 날 보고선 ‘난 네가 第一 무섭다’고 말씀하시더라. 稱讚으로 氣分 좋게 받아들였다.”

    -監督 되고 나서 너무 힘든 나머지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거의 每日이었다. 전창진 監督님의 不在로 내가 이 자리에 空짜로 앉게 된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正常的으로 進行됐어도 코치 經歷만 놓고 보면 언젠가는 監督이 될 수 있는 狀況이었다. 그동안 監督님과 함께 좋은 成績을 냈었고, 選手들의 潛在力을 이끌어내며 코치 以上의 役割을 했다는 걸 周圍에선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前 監督님의 不幸한 일로 因해 幸運을 거머쥔 것처럼 말하는 籠球人들로 인해 心的 苦痛이 컸다. 내가 監督님을 몰아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다. 心的 負擔을 내려놓고 便하게 지내고 싶었다. 勿論 選手들의 信賴와 應援 德分에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 지난 2年의 時間은 내게 많은 苦痛을 안겨주었다.”

    監督代行 時節, 김승기 監督은 10年의 時間 동안 바늘과 실처럼 움직이던 전창진 前 監督의 空白으로 힘든 時間을 보냈다. 그는 全 前 監督의 下車는 自身의 下車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自身이 專 前 監督의 뒤를 이어 팀을 맡는 게 模樣이 좋지 않다고 判斷했다. 그만둘 決心을 하면서 가장 未安했던 사람이 自身과 함께 시즌을 準備하던 選手들이었다. 그 때문에 葛藤을 했을 뿐 다른 欲心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周圍 籠球 先輩들이 내게 應援을 보내주셨다. 그만두는 것만이 能事가 아니라고 挽留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選手들 앞에 서기까지 時間이 좀 걸렸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런 過程에서 選手들도 보이지 않는 傷處를 받았다. 팀의 存廢가 擧論될 程度였기 때문이다. 治癒의 時間이 必要했고, 시즌 開幕을 앞둔 狀態에서 서로에 對한 理解와 配慮가 切實했다. 金 監督은 지난 시즌을 떠올리며 “最惡의 狀況에서 시즌을 맞이했고, 選手들과 함께 그 어려움을 이겨나갔다”고 說明한다.

    -選手 時節 얘기를 해보자. ‘터보 가드’로 名聲을 날렸지만 무릎 負傷으로 隱退한 履歷이 있다. 當時 무릎 負傷이 甚한 狀態였나 .
    “1年이라도 더 뛰고 싶었지만 到底히 選手 生活을 이어가지 못할 程度가 됐다. 只今도 그 무릎이 좋지 않다. 날씨가 궂으면 시큰거리는 느낌도 들고. 當時 年俸이 깎일까봐 負傷을 숨기고 뛰었다. 집안 形便이 어렵다 보니 年俸이 깎이면 經濟的 打擊이 커 負傷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漸漸 몸이 망가졌고 어쩔 수 없이 隱退를 決定하게 됐다. 내 經驗에 비추어 選手들에게 부상당하면 망설이지 말고 手術하거나 再活에 集中하라고 얘기해준다. 年俸은 걱정하지 말고 治療하는 데 神經 쓰라고 하면서 말이다. 부상당한 選手들을 볼 때마다 選手 時節의 내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참아준 아내에게 고마워

    -隱退 以後 곧장 코치 生活을 했기 때문에 經濟的인 負擔은 덜 수 있었겠다. ?
    “그렇지 않았다. 株式에 손을 댔다가 10億 원假量의 빚을 졌다. 離婚 危機까지 갔다가 참고 기다려준 아내 德分에 10年 동안 그 빚을 거의 다 갚았다. 처음에는 아내가 걱정할까봐 숨기고 지냈는데 나중에 모든 걸 알게 된 後 아내가 큰 衝擊을 받았다. 그때는 自殺을 떠올릴 程度로 人生의 밑바닥으로 주저앉은 時期였다.”

    -헤어지지 않고 自身의 자리에서 忍耐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겠다.
    “正말 結婚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아내가 없었다면 只今의 김승기度 存在하지 않는다. 아들만 둘인데 高3, 中3이다. 모두 籠球를 한다. 한 아이의 籠球 實力이 뛰어난 便이다. 與件이 된다면 ‘籠球人 2歲’로 잘 키워볼 생각이다(웃음).”



    籠球가 살려낸 아버지

    -籠球를 始作한 以後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
    “처음 프로팀에 갈 때 스카우트費와 年俸, 契約金 包含해서 2億5000萬 원을 받았다. 아버지가 當時 腎臟이 좋지 않았는데 그 돈 德分에 治療를 잘 받았고, 只今 健康하게 지내신다. 萬若 내가 프로팀에 가지 못했더라면 아버지는 治療를 받지 못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우리 팀이 正規리그 優勝을 차지했을 때 아버지가 ‘내 아들이 偉大해 보인다’는 內容의 文字를 보내주셨다. 그 文字 보고 많이 울었다. 事實 正規리그 施賞式에서 監督賞을 받을 때 家族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傳하고 싶었다. 苦生하신 父母님, 날 믿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切切한 마음을 表現하려 했는데 눈물이 쏟아질까봐 꾹 참았다. 그 人事는 統合챔피언을 達成한 以後로 暫時 미뤄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김승기 監督은 平素 傳하지 못한 전창진 前 監督에 對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내가 指導者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모두 監督님 德分이다. 移轉 記者會見을 통해 내 몸에는 ‘그분’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監督님 밑에서 코치 生活하며 많은 걸 보고 배웠다. 힘들 때마다 監督님 생각을 많이 한다. 나를 이끌어주신 그 마음 잊지 않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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