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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板 卒 노릇 안 돼”… 日에 ‘러브콜’ 活路 摸索|新東亞

特輯| 搖動치는 東아시아

“체스板 卒 노릇 안 돼”… 日에 ‘러브콜’ 活路 摸索

臺灣 視角에서 본 美·中 霸權다툼

  • 최창근|代만 專門 著述家, 한국외국어대 博士課程 caesare21@hanmail.net

    入力 2017-05-04 12: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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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손에 쥔 ‘協商用 칩’
    • 中, ‘經濟 報復’으로 臺灣 壓迫
    • 美·中 틈바구니 벙어리 冷가슴
    • ‘同病相憐’ 韓은 野俗한 存在
    2009年 電波를 탄 KBS 드라마 ‘꽃보다 男子’의 原作은 臺灣 CTS의 ‘유성화원(流星花園)’. 平凡한 집안 딸 山差異(杉菜)가 貴族學校에 入學해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트렌디 드라마다. 女主人公 山差異로 扮한 쉬시위안(徐熙媛)과 財閥 2歲 靑年 그룹‘F4(Flower 4)’가 登場한다. 山差異는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울지 않는’ 캐릭터다.

    ‘對流(臺流)’ 드라마의 代表作으로 자리매김한 ‘유성화원’의 산차이를 보면 妙하게 다른 臺灣 女性이 떠오른다. 2016年 5月 20日, 臺灣 總統으로 就任한 차이잉원(蔡英文). 드라마와 달리 그는 富者집 딸로 태어나 國立臺灣大學, 코넬大學을 거쳐 런던政治經濟大學(LSE)에서 博士學位를 받았다.

    芳年(芳年) 27歲에 國立政治大學 敎授가 됐으며 政界 入門 後 乘勝長驅해 長官, 立法委員, 副總理, 野黨 註釋을 거쳐 中華圈 첫 女性 最高指導者가 되었다. 다만 總統 就任 後 그의 處地는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 山差異를 떠올리게 한다. 山差異가 ‘F4’에 둘러싸인 것처럼 美國·中國·日本·韓國 等 周邊 네 나라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臺灣의 狀況도 妙하게 드라마와 포개진다.

    ‘유성화원’에서는 산차이를 둘러싸고 F4街 三角關係를 形成한다. ‘사랑과 戰爭’이 그렇듯 葛藤과 緊張이 反復된다. 臺灣을 둘러싸고 周邊 네 나라는 밀고 당기기를 持續한다. 드라마 속에는 ‘꽃 같은(華樣)’ 男子들이 登場하지만, 現實에는 ‘스트롱맨’들만 存在한다는 點이 다르다.


    中, 追加 報復 措置 準備

    臺灣과 차이잉원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存在는 ‘F1’ 中國이다. ‘臺灣 獨立’ 性向의 民進黨은 2016年 1月 總統·立法院 同時選擧에서 壓勝하며 行政府와 立法府를 掌握했다. 中國은 不便한 心氣를 감추지 않았다. 같은 해 5月, 차이잉원 總統 就任 以後부터 壓迫 水位를 높여오고 있다. 民進黨이 첫 執權한 2000~2004年 大陸委員會(統一部 該當) 主任委員으로 일한 차이잉원은 兩岸關係 專門家다.



    그는 急進的인 臺灣 獨立을 追求해 中國·美國과 摩擦을 빚은 천수이볜((陳水扁) 執權期의 經驗을 敎訓 삼아 兩岸問題에 對한 ‘戰略的 模糊性(strategic ambiguity)’을 維持해왔다. 獨立과 再統一 問題에서 어느 한쪽도 아닌 ‘現狀 維持(status quo)’를 表明한 것이다. 臺灣 獨立을 渴望하는 有權者의 支持를 얻으면서 中國도 刺戟하지 않겠다는 戰略이었다.

    總統 就任 後 狀況은 달라졌다. 차이잉원에게 模糊함은 더 以上 許容되지 않았다. 中國은 兩岸問題에 關한 國民黨·共産黨의 合意인 1992컨센서스(92共識)의 日中各票(一中各表·하나의 中國이나 中國에서는 ‘中華人民共和國’李, 臺灣에서는 ‘中華民國’이 各各의 ‘中國’을 代表) 遵守를 要求했다. 지키지 않을 境遇 全方位 報復이 따를 것이라는 壓迫도 加했다.

    드라마 ‘파리의 戀人’ 박신양의 臺詞를 빌리자면 “왜 말을 못해? 中國은 하나다, 臺灣도 中國의 一部分이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傳하고 있다. 이에 對해 차이잉원은 笑而不答(笑而不答)으로 一貫하며 애를 태우는 形局이다. 曖昧模糊한 態度의 臺灣에 對해 中國은 實力行使에 나섰다.

    첫 措置는 經濟報復이었다. 2016年 5月 차이잉원 總統 就任 直後 中國 當局의 ‘旅行禁止令’ 속에서 臺灣을 찾는 中國 旅行客이 크게 줄었다. 延人員 100萬 名 以上 急減해 500億 新타이완달러(1條8500億 원)의 經濟 損失이 發生했다. 臺(對)臺灣 交涉機構 海峽兩岸關係協會腸 千더밍(陳德銘)은 2017年 3月 “中國을 相對로 事業하는 臺灣人들은 ‘하나의 中國’ 原則을 認定하는 것이 基本條件”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中國은 다음 報復 措置도 準備 中이다. 어떤 手段이 되건 臺(對)中 貿易依存度가 40%에 達하는 臺灣 處地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臺灣海峽에서 中國의 武力示威는 年例行事처럼 벌어진다.



    “臺灣이 일으킨 장난질…”

    臺灣도 손을 놓고 있진 않다. 차이잉원은 리덩후이(李登輝) 總統 在任 時節 推進한 ‘南向(南向)政策’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新(新)南向政策’ 推進으로 맞서고 있다. 目標는 東南아시아와 經濟·貿易·觀光 紐帶關係를 强化해 中國에 對한 依存度를 낮추는 것이다.
    외롭고 어려운 處地에 놓인 차이잉원에게 ‘救援의 빛’을 던진 것은 ‘F2’ 美國의 새로운 大統領 도널드 트럼프다.

    ‘異端兒’ ‘아웃사이더’로 評價받아온 그의 登場은 臺灣 處地에서는 ‘期待 半, 不安 半’이었다. 트럼프가 兩岸關係에 어떤 變化의 바람을 몰고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就任 前부터 “왜 하나의 中國 政策을 尊重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자주하며 中國을 刺戟했다. 臺灣은 期待에 부풀었다.

    첫 만남은 期待 以上이었다. 2016年 12月 2日 大統領 當選者 트럼프와 차이잉원은 10餘 分間 電話通話를 했다. 1979年 1月 1日 美·中 修交, 美·臺灣 斷交 以後 37年 만에 이뤄진 兩國 頂上 間 通話였다. ‘當選 祝賀 人事’를 名分으로 이뤄진 通話에서 두 사람은 政治·經濟·外交·安保 懸案을 主題로 深度 있는 對話를 나눴다.

    ‘아닌 밤의 홍두깨’에 中國은 當惑感과 憤怒를 감추지 않았다. 外交部 公式 聲明에서 “차이잉원과의 通話는 ‘하나의 中國 政策’을 흔드는 것이다” “總統 呼稱을 쓴 것도 容納 못한다”며 反撥했다. 臺灣을 向한 칼날은 더 매서웠다. 왕이__30 外交部長은 “臺灣이 일으킨 ‘장난질’로 國際社會에 이미 形成된 ‘하나의 中國’ 原則이 바뀌는 것은 不可能하다”고 쏘아붙였다. 官營誌 환추(環球)時報는 괘씸한 臺灣에 對한 斷乎한 膺懲을 注文했다.

    中國의 抗議에도 美國의 歡待는 이어졌다. 지난해 12月 트럼프 當選人 外交·安保 顧問 스티븐 예이츠 아이오와 州 공화당 議長이 타이베이를 訪問했다. 1987~89年 臺灣 가오슝(高雄)에서 宣敎師로 活動한 그는 사람들의 눈을 避해 차이잉원을 豫防했다. 2017年 1月 차이잉원은 온두라스·니카라과·과테말라·엘살바도르 等 中南美 4個 修交國 巡訪에 나섰다. ‘美國 經由外交’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가 탄 에바항공 傳貰機는 1月 7日 텍사스 州 휴스턴 國際空港에 내려앉았다. 가오스타이(高碩泰) 週美國 臺灣代表, 제임스 모리아티 美재대協會(美在臺協會, AIT) 代表 等이 機內 迎接했다. 國務部 儀典팀은 警察 모터사이클 10餘 臺로 차이잉원이 搭乘한 專用車를 先導했다. 宿所에는 臺灣 國紀 靑天白日滿地紅旗(靑天白日滿地紅旗)가 揭揚됐다. 國家 頂上에 準하는 禮遇였다. 中國은 첫 航空母艦 랴오닝(遼寧)號 傳單이 臺灣을 한 바퀴 도는 武力示威로 應酬했다.


    트럼프가 쥔 ‘高額 칩’

    2017年 2月 샤오메이친(蕭美琴) 執權 民進黨 立法委員을 團長으로 한 國會 代表團이 美國을 訪問했다. 손튼(Susan A. Thornton) 美國 國務部 東아시아太平洋 擔當 次官補가 國務部 廳舍에서 代表團을 맞았다. 臺灣 立法委員, 高位 官吏가 國務部 廳舍에 발을 디딘 것도 史上 처음이었다.

    結果的으로 臺灣海峽 量案(兩岸)을 뒤흔든 ‘트럼프 風(風)’은 臺灣에는 薰風(薰風), 中國에서 볼 때는 朔風(朔風)이었다. 臺灣은 美國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持續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트럼프는 事業家였다. 베스트셀러 ‘協商의 技術’ 著者이기도 하다. 그는 兩岸關係에서 ‘치고 빠지기’ 戰術을 謳歌하며 ‘國益 極大化’를 圖謀한다. 트럼프가 손에 든 에이스 카드는 ‘하나의 中國 政策’, 高額 칩은 ‘臺灣’이었다. 에이스 카드와 칩을 兩손에 쥔 트럼프는 協商의 代價로서 面貌를 보이기 始作했다. 臺灣을 ‘지렛대’ 삼아 中國을 牽制할 것을 豫告한다는 展望도 提起됐다. 



    歷史가 남긴 트라우마

    트럼프가 펼친 첫 카드는 테리 브랜스테드 前 아이오와 州知事의 駐中大使 地名이었다. 시중쉰(習仲勳)·시진핑 富者(父子)와 30年 넘는 友誼를 持續해온 그는 시진핑의 ‘切親’이다. 親中國派 大使 地名은 시진핑에게 내미는 和解 카드였다. 트럼프의 두 番째 카드는 렉스 틸러슨 國務長官이었다. 就任 後 아시아 첫 巡訪地로 日本을 찾은 틸러슨은 “日本이 第一 重要한 友邦, 韓國은 파트너”라는 말로 서울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어 韓國을 찾은 그는 外交部 長官과의 晩餐도 省略한 채 베이징으로 날아가버렸다. 왕이, 시진핑을 연달아 만난 틸러슨은 美·中 關係 發展과 關聯해 ‘相互尊重’이라는 表現을 使用했다. 兩國이 相對方의 ‘核心利益’을 尊重한다는 것은, 美國이 中國의 ‘內政’인 臺灣·홍콩·티베트 問題, 나아가 南中國海 問題에도 關與하지 말아야 한다는 含意(含意)로 받아들여졌다.

    中國 外交家는 틸러슨의 이 表現을 好評했다. 兩岸關係로 焦點을 좁히면 ‘內政問題’이자 ‘核心利益’인 臺灣 問題에 있어 美國은 中國의 原則과 意思를 尊重하겠다는 뜻이라는 解釋이 붙었다. 問題는 4月의 트럼프·시진핑 會談이었다. 틸러슨의 訪中(訪中)은 事前 整地作業이었다.

    트럼프가 ‘去來의 技術’로 가져갈 最大 利益은 臺(對)中國 貿易赤字 解消다. 就任 前부터 ‘하나의 中國’이라는 中國의 敏感한 部分(核心利益)을 건드리던 트럼프가 ‘協商用 칩’으로 臺灣을 活用할지 모른다는 不安이 臺灣 政家·外交街를 掩襲했다. 2017年 3月 20日, 臺灣 立法院 對政府 質疑에 出席한 章샤오웨(張小月) 大陸委員會 主任委員은 “우리는 체스板의 卒이 될 순 없다. 아니, 돼서는 안 된다”고 抗辯했다. 章샤오웨는 臺灣의 臺(對)美國 外交窓口 北美事務協助委員會(北美事務協助委員會) 主任委員을 지낸 ‘美國通’이기도 하다.

    4月 7日 頂上會談을 開催한 트럼프와 시진핑은 ‘共同聲明’도 ‘共同記者會見’도 없이 첫 만남을 마무리했다. ‘하나의 中國’ 等 臺灣 問題와 關聯해서도 특별한 言及은 없었다. 臺灣 關係 當局은 安堵感을 表示했다. 두 ‘스트롱맨’의 첫 對面을 앞두고 臺灣 國家安全回(NSC)는 시뮬레이션 技法까지 動員해 ‘萬若의 境遇’를 對備하던 터였다.

    고비는 넘겼으나 問題가 解決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에게 臺灣 카드는 如前히 有效하다. ‘模糊性’ 持續으로 인한 臺灣의 不安은 持續될 展望이다. 美·中 關係 改善은 臺灣엔 惡夢이다. 歷史가 남긴 트라우마도 깊다. 1970年代 以來로 美國은 늘 中國과 臺灣을 兩손에 쥐고서 저울질해왔다.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쪽은 늘 臺灣이었다.

    序幕은 1971年 7月 헨리 키신저의 中國 訪問이다. 이 訪問을 起點으로 ‘죽(竹)의 帳幕’이 걷히고 美·中 데탕트 時代가 펼쳐졌다. 키신저의 ‘폴로(Polo)作戰’ 3個月 後 ‘臺灣의 中華民國(中華民國在臺灣)’은 유엔總會 第2758號 決議案에 따라 創設 멤버로 參與한 유엔에서 退出됐다.


    北核 解決하려 臺灣 버린다?

    이듬해 2月 리처드 닉슨은 美國 大統領으로서 처음 中國 땅을 밟았다. 마오쩌둥(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를 만난 그는 상하이코뮈니케를 發表했다. 코뮈니케에서 美·中 頂上은 臺灣 問題에 對해 다음과 같이 合意했다. “中華人民共和國 政府는 前(全) 中國 唯一 合法 政府이며 臺灣은 本土에 歸屬돼야 할 一介 性(省)에 不過하다. 臺灣 解放은 어느 나라도 干涉할 수 없는 中國 內政問題다.”

    6年 後인 1978年 12月 15日, 1979年 1月 1日附로 美·中 修交를 發表한 美國은 “中華人民共和國만이 中國 唯一 合法 政府이며 臺灣은 中國의 一部라는 中國의 立場을 認定한다”고 再次 確認했다. 以後 1982年 ‘8·17코뮈니케(第2次 상하이코뮈니케)’에서도 ‘하나의 中國’ 原則을 거듭 確認했다.

    3가지 코뮈니케를 통해 ‘새로운 親舊’ 中國의 손을 들어준 美國은 ‘옛 親舊’ 臺灣에 對한 配慮도 잊지 않았다. 美·中 修交 直後인 1979年 4月 10日 美國 上·下院은 ‘臺灣關係法(TRA)’을 통과시켰다. 美國 ‘國內法’ 形式을 따랐지만 對外關係를 規定하는 特異한 法律이다. 法에는 臺灣으로의 武器 輸出과 戰略·戰術 提供, 美國 內 臺灣 資産 問題, 斷交(斷交) 後 非公式 外交關係 問題 等이 明示돼 있다. 

    1982年 8·17코뮈니케 發表 直前 레이건 行政府는 ①美國은 臺灣으로의 武器 輸出에 關해 期限을 定하지 않는다 ②美國은 臺灣으로의 武器 輸出에서 中國과 事前 協商을 進行하지 않을 것이다 ③美國은 臺灣海峽 量案 間의 仲裁者 役割을 擔當하지 않는다 ④美國은 ‘臺灣關係法’을 修正하지 않는다 ⑤美國은 臺灣의 主權에 對한 一貫된 態度를 變更하지 않는다 ⑥美國은 臺灣으로 하여금 中國과 協商토록 强要하지 않는다는 ‘6個 組 保障(Six Assurances)’을 闡明했다. 흔히 ‘3코뮈니케 1法’에 더해 6個 組 保障은 美國의 對(對)中, 臺(對)臺灣 關係의 基礎가 돼왔다.

    트럼프는 50年 가까운 歲月 동안 金科玉條로 여겨온 原則을 뒤흔들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것은 臺灣의 希望일 뿐, 트럼프의 目的은 中國의 레드라인(red line·限界線)李 어디까지인지 確認해보자는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쉽게 말해 中國의 아킬레스腱인 臺灣 問題를 찔러보면서 “너 어디까지 참을 수 있니?”라고 試驗해보는 것이다. “中國, 네가 鄭 抛棄하지 못하겠다면 우리는 兩岸問題가 네 집안 問題(內政問題)라는 건 認定할게”라는 無言의 메시지도 더해진다.

    이렇듯 美國은 臺灣에 ‘우리는 親舊’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면서도 決定的 瞬間에 빠져버리는 ‘썸남’ 같은 存在다. 臺灣으로서는 野俗하지만 ‘힘의 論理’가 支配하는 國際舞臺에서 相對的 弱小國이 겪어야만 하는 悲哀다. 트럼프가 ‘異端兒적 氣質’을 좀 더 發揮한다면 이제껏 理論的 論議만 돼온 ‘臺灣·北韓 빅딜’을 成事시킬지도 모른다. 오바마 行政府 時節 ‘北核 問題 解決을 위해 臺灣을 抛棄한다’는 要旨의 워싱턴 싱크탱크가 만든 報告書 한 篇이 臺灣을 발칵 뒤집어놓은 記憶도 생생하다.



    日本에 求愛하는 臺灣

    美·中과의 複雜多端한 三角關係 속에서 臺灣이 關係를 敦篤히 하고 싶은 또 다른 相對는 ‘F3’ 日本이다. 50年間 臺灣을 植民 支配恨 日本은 1972年 斷交 以後 經濟·社會·文化的으로 緊密한 交流를 持續해오고 있다. 中國과 센카쿠列島(尖閣列島·中國名 댜오위다오)를 두고 領土 紛爭을 벌이는 日本 處地에서 反中(反中)·親日(親日)·獨立 性向의 民進黨 政府 出帆은 好材다.

    2011年 9月 6日 아베 新潮(安倍晋三)는 타이베이 한 호텔에서 民進黨 主席 차이잉원을 만났다. 總理에서 물러나 있던 時期임에도 그의 政治的 位相에 비춰볼 때 破格이었다. 아베는 2012年 12月 다시 總理로 復歸했다. 차이잉원은 2016年 總統이 됐다. 臺灣·日本의 하모니는 豫見된 일이었다.

    차이잉원이 조각(組閣)과 더불어 在外公館長 人事를 斷行할 때 斷然 눈길을 끈 것은 셰창팅(謝長廷)을 駐日本 代表者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는 名實相符한 民進黨 元老다.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 黨名(黨名)도 셰창팅의 머리에서 나왔다. 立法委員, 民選 가오슝 市場, 行政院長, 民進黨 主席을 거쳐 2008年 總統 候補로 立候補한 셰창팅의 駐日本 代表 任命 自體가 日本을 向한 求愛 메시지였다. 그는 日本 赴任 前 記者懇談會에서 “臺灣과 日本은 運命共同體가 돼야 한다”고 했다. 차이잉원度 任命狀 授與式에서 ‘代表’가 아닌 ‘大使’라 呼稱하며 힘을 실어줬다.

    日本은 차이잉원 就任 直後 NHK 交響樂團을 보내는 것으로 和答했다. 6月 3日 타이베이에서 열린 公演은 1971年 2月 以後 45年 만이었다. 公演場에는 아베의 어머니 아베 요코(安倍洋子)가 자리했다. 2017年 3月에는 아카마 지로(赤間二郞) 總務省 副大臣(次官)李 ‘公務上’ 타이베이를 찾았다. 그는 斷交 後 45年 만에 公式 訪問한 現職 最高位 管理다.


    “空짜는 없다”

    아베 內閣은 臺灣의 宿願도 解決해줬다. 1972年 9月, 臺灣·日本 斷交 以後 非公式 ‘代表部’ 役割을 해온 交流協會(交流協會)의 名稱 變更이 그것이다. 從來 名稱만으로는 機構의 性格도 役割도 알 수 없는 問題가 있었다. 2017年 1月, 協會 名稱은 ‘日本·臺灣’交流協會로 바뀌었다.

    臺灣 側 臺(對)日本 外交機構인 兒童關係協會(亞東關係協會) 名稱을 臺灣·日本關係協會(臺灣日本關係協會)로 바꾸고, 도쿄 駐在 代表部 名稱도 從前 ‘타이베이’經濟文化代表處에서 ‘臺灣’經濟文化代表處로 改名하는 方案을 推進 中이다. 中國은 ‘臺灣’ 名稱 使用은 容納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中國이 國際社會에서 容認하는 名稱은 中華民國, 臺灣도 아닌 ‘中華타이베이(中華臺北, Chinese Taipei)’다.

    겉보기에 和氣靄靄한 臺灣·日本의 蜜月關係 裏面에는 國益을 둘러싼 熾烈한 暗鬪가 자리하고 있다. 日本은 浮上하는 中國을 牽制하기 위한 均衡錘로 臺灣 카드를 積極 活用한다. 이는 臺灣 處地에서도 나쁘지 않다. 다만 空짜는 없는 法, 치러야 할 代價는 있다. 代表的인 것이 日本 食品 禁輸(禁輸)措置 解除다.

    2011年 후쿠시마(福島) 大地震 以後 臺灣은 軍馬·도치기·이바라키·지바 等 東(東)日本 4個 縣(縣) 食品 輸入을 禁止해왔다. 2016年 11月 臺灣 衛生服嫠婦(韓國 保健福祉部 該當)는 該當地域 農産物 禽獸措置 解除를 發表했다. 臺灣 市民社會는 ‘國民의 먹거리 安全을 파는 處事’라며 거칠게 抗議했다. 基本的으로 中國과 再統一을 主張하는 國民黨 等 野圈의 反撥도 차이잉원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차이잉원이 功을 들이는 마지막 ‘F4’ 韓國은 늘 野俗한 存在였다. 韓國에는 愛憎(愛憎)李 交叉한다. 韓國은 1992年 8月 갑작스레 ‘離別通報’ 後 中國과 修交해버렸다. 언젠가 헤어질 줄은 알았지만 配慮가 없었다. 處事도 지나쳤다. 지난날 ‘血盟’ ‘兄弟의 나라’로 불릴 만큼 緊密한 關係를 維持했기에 背信感이 컸다.

    斷交 以後 韓國이 보여준 處事는 臺灣을 더 화나게 했다. 徹底히 中國 便만 들고 臺灣은 無視하고 疏外하는 것으로 一貫했다. 2013年 2月 李明博 大統領 就任式場에 祝賀使節로 派遣한 立法院長과 國家安全回(NSC) 祕書長을 行事場 入口에서 쫓아낸 前歷도 있다. 國際 舞臺에서 韓國은 늘 中國 역성을 들었다. 臺灣 處地에서 더 火가 나는 건 살림살이도 逆轉된 것이다. 韓國보다 形便이 나아 ‘兄의 나라’라고 自負해왔으나 2006年을 起點으로 經濟力에서 뒤집혔다.

    韓國과 臺灣은 同病相憐(同病相憐) 處地다. 世界的 經濟强國이지만 美國·中國·日本 等 强大國 틈에서 氣를 펴지 못한다. 經濟는 中國에, 안보는 美國에 기대는 處地도 비슷하다. 中國 눈치 보느라 대놓고 가까이 지내기도 힘들다. ‘共通의 植民 母國’ 日本과 關係 改善도 必要하지만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다른 그들을 無酌定 믿기도 어렵다.



    韓國-臺灣 關係 改善 中

    斷交 後 韓國과 公式 外交關係는 回復하지 못했지만 經濟·文化·觀光 等 非(非)政治 分野를 中心으로 實質 關係는 改善되고 있다. 2016年 統計 基準으로 韓國은 臺灣의 6番째 輸出 對象國이자, 7番째 輸入 對象國이다. 觀光 部門에서 2014年 相互 訪問客 100萬 名을 突破한 以後 增加勢를 이어가고 있다. 사드(THAAD·高高度미사일防禦體系) 配置를 빌미로 中國의 臺(對)韓國 報復이 始作된 後 中國 觀光客을 代身하는 存在가 臺灣人들이다.

    政治·外交 部門 關係도 改善 中이다. 2014年 7月 赴任한 스딩(石定) 週韓國臺灣代表部 代表는 外交部 政務次長을 지냈다. 1992年 斷交 以後 赴任한 代表 中 最高位級 人士다. 韓國의 政治 變動도 臺灣에는 機會다. 2017年 5月 9日 韓國 大選을 앞두고 차이잉원 總統은 執權 民進黨 次元의 韓國 訪問團 構成을 指示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年 發刊한 ‘巨大한 체스板’에서 유라시아 大陸을 巨大한 체스板으로 描寫했다. 그의 觀點에서 臺灣이나 韓國이나 체스板의 卒(卒)이기는 매한가지다. 碌碌하지 않은 ‘F4’ 때문에 벙어리 冷가슴 앓는 臺灣의 처지는 韓國人에게도 旣視感을 느끼게 한다. ‘美國優先主義’ ‘保護貿易’을 내세운 트럼프노믹스 最大 被害國은 中國에 이어 韓國·臺灣이 될 것이라는 觀測도 意味深長하다.‘영원한 親舊도 永遠한 적도 없는’ 國際 關係에서 우리는 ‘옛 親舊’ 臺灣의 事例에서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최창근
    ● 1983年 慶南 固城 出生
    ● 韓國외국어대 新聞放送學科 卒業, 臺灣 國立政治大 碩士
    ● 韓半島先進化財團 硏究院, ‘월간중앙’ 타이베이 通信員
    ● 現 한국외국어대 行政學 博士課程, 東아시아學通涉 포럼 總務理事
    ● 著書 : ‘臺灣 : 우리가 暫時 잊은 가까운 이웃’ ‘ 臺灣 : 巨大한 歷史를 품은 작은 幸福의 나라’ ‘타이베이 : 素朴하고 느긋한 幸福의 都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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