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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의 아픔은 어떻게 歷史가 됐나|주간동아

週刊東亞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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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

삼풍백화점의 아픔은 어떻게 歷史가 됐나

記憶蒐集家들이 遺家族, 警察, 記者 等 100餘 名 證言 모아…동대문, 2002 월드컵도 對象

  • 전유승 프리랜서 sherpacks@gmail.com

    入力 2016-06-17 17: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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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個人的인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서울 뺀질이다. 본적은 龍山區, 태어난 곳은 中區, 幼年期에는 내내 종로구에서 살았고 住民登錄證 發給을 위해 生涯 첫 엄지 指紋을 門댄 곳은 江南區였다. 只今은 景氣 一山 작은 오피스텔로 밀려나 있지만, 家族은 如前히 서울 성동구에 산다. 어림잡아 35年 程度를 서울에서 살았다.

    幼年期 記憶은 생생하다. 昌德宮 앞(當時에는 비원 앞이라 불렀다) 韓屋에 살던 初等學生 時節, 北村으로 올라가는 샛길 자리에 警察廳 機動巡察隊 駐車場이 있었다. 當時 콘크리트가 덮여 있던 昌德宮 앞 너른 마당은 내 또래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다. 自轉車를 타고, ‘짬뽕’을 하고, 땅따먹기度 했다. 그러다 가끔 오토바이 옆에 相關을 태우는 座席이 붙어 있는, 一名 ‘사이드카’가 들어올 때면 우리 모두 歡呼聲을 질렀다.

    권농동에 살던 나는 경운동에 位置한 初等學校와 가회동 聖堂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와룡동, 益善洞, 운니동, 季冬, 재동, 원서동, 팔판동, 삼청동, 사간동, 인사동 等이 ‘나와바리’였다. 曹溪寺 마당이나 樂園아파트 等에서 여러 親舊와 어울려 놀던 記憶도 난다. 只今도 가끔씩 부러 권농동 옛집에 가보곤 한다. 내가 살던 집터엔 벌써 두 番이나 헐고 새로 지은 建物이 번듯하게 들어서 있지만, 골목골목 如前히 남아 있는 옛날式 집과 가게 等을 보며 記憶을 더듬는다. 그리고 只今도 鍾路通에 사는 親舊들과 술 한盞 할 때면 어김없이 이 黑白의 記憶을 召喚한다. 좋은 술按酒다.



    記憶을 記錄하는 사람들

    이처럼 記憶은 바람처럼 슬며시 왔다 暫時 옛 情緖를 되살린 뒤 사라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것을 錄音器 안에 넣어 復活시키는 職業이 있다. 最近 出刊된 冊 ‘1995年 서울, 삼풍’의 著者인 ‘記憶蒐集家’다. 이 冊 表紙에는 ‘서울문화財團 企劃,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記憶蒐集家 씀’이라고 적혀 있다. 류진아, 홍세미 氏 等 著者 15名은 1995年 6月 29日 發生한, 6·25戰爭 以後 單一 事件으로 最大 死傷者를 낳은 ‘삼풍백화점 崩壞 慘事’의 記憶을 모았다. 遺家族, 生存者, 自願奉仕者, 救助隊員, 記者, 檢査 等을 만나 그들 앞에 操心스레 錄音器를 내려놓았다. 21年 만에 입을 연 當時 道峰消防署 救助隊長 경광숙 氏는 記憶蒐集 過程에서 數次例 목이 메었다고 했다.



    ‘제가 心的으로 힘들고, 그분에게 조금 죄스럽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분 陰性이 제 귀에 또렷이 들려요. ‘아저씨 살려주세요’ 하는…(울먹임)…제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색소폰을 배우고 있거든요. 그분한테 죄송스러운 마음에 배우기 始作했어요. 한 番씩 慰靈碑 쪽 가는 일이 생기면 색소폰을 들고 가서 못 부는 거라도 그래도….’

    바로 이런 이야기를 모았다. 이들은 이 밖에도 崩壞 兆朕에 對한 記憶을 提供한 當時 삼풍백화점 職員과 西草警察署 强力班長을 만났고, 犧牲者 親舊의 口述과 한 名의 生命이라도 더 求하려고 死力을 다한, 그러면서도 如前히 自愧感에 시달리는 民間救助隊와 鑛夫救助隊, 消防本部 關係者들의 이야기를 記錄했다. 그 結果物로 지난해 6月 삼풍백화점 崩壞事故 20周年 企劃展示 ‘이젠 저도 사랑을 始作할 수 있는 나이예요’를 선보였다. 이番에 出刊된 冊 ‘1995年 서울, 삼풍’은 프로젝트의 마침標人 셈이다. 記憶蒐集家 류진아 氏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20年 前 그곳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20年 뒤 只今과 같은 後悔를 하지 않도록 저희가 만난 사람들을 그리고 그곳에 사람이 있었음을 記錄하고 記憶하겠습니다.’

    또 다른 記憶蒐集家 홍세미 氏는 ‘記憶의 무게’를 言及했다.

    ‘記憶을 들려주는 일은 살아남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살아남은 누군가는 이야기하고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記錄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짊어진 ‘記憶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나누어지기를 바랍니다. 記憶 提供者분들께 ‘잊지 않고 있다. 함께 記憶하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記憶蒐集家 養成 및 運營은 서울문화財團(財團)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의 一環이다. 財團은 2013年 ‘빠르게 變化하는 서울의 發展 속에서 無心히 흘려보냈을 過去를 當事者 목소리를 통해 共感하는 歷史로 만들겠다’는 趣旨로 이 프로젝트를 企劃했고, 志願者를 對象으로 記憶蒐集敎育을 했다. 2013年 1期 25名으로 始作한 記憶蒐集家 養成 프로그램은 2014年 37名, 2015年 39名으로 成長했다. 다큐멘터리 監督, 藝術講師, 演劇俳優, 文化企劃者 等 다양한 職業人이 支援했으며 올해도 3月 末 4期 記憶蒐集家 30餘 名이 選拔돼 5月 末까지 素養敎育, 取材敎育, 서울 歷史敎育 等 各種 訓鍊을 받았다. 이제 이들은 거리로 나가 先輩들과 같이 서울의 記憶을 蒐集할 豫定이다. 鉏琴瑟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擔當은 이 프로젝트의 意味를 이렇게 定義했다.

    “個個人의 事緣이 모여 서울의 歷史가 된다는 생각으로 市民들의 記憶을 蒐集했다. 過去 經驗과 反省을 통해 더 나은 未來를 苦悶하자는 趣旨다. 더불어 스토리텔링 아카이브를 構築해 여러 藝術家에게 다양한 素材와 靈感을 提供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

    이에 따라 記憶蒐集家들이 모으는 記憶 內容은 다양하다. 2014年부터 2年間 財團이 注力한 건 ‘서울을 記憶하는 세 가지 方法’이란 主題로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 ‘서울의 追憶, 東大門’ ‘서울의 환희, 2002 월드컵’에 對한 記憶을 蒐集하는 作業이었다. 이규승 서울문화財團 弘報팀長은 “삼풍 關聯 企劃의 目的은 ‘쉽게 忘却의 길로 들어서지 말자’는 것”이라며 “이 프로젝트가 歷史를 共有하는 同時에 ‘社會的 記憶’의 敎訓이 擴散되는 契機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收集量이 1500餘 件에 이르는 財團의 記憶 아카이브 안에는 至極히 個人的인 이야기도 담겨 있다. 麻布나루로 들어오는 새우젓배를 기다리던 1950年代 女人, ‘뺑뺑이’ 속 銀杏알로 進學할 中學校를 配定받던 60年代 少女, 용산電子商街에서 워크맨 싸게 사는 노하우를 깨쳤던 90年代 靑年, 돌을 깨 板子집을 만들어 살던 월곡동 아이 엄마 等 많은 이의 記憶은 저마다 다른 模樣을 가진 서울의 조각들이다.  

    3期 記憶蒐集家로 活動한 권효진 氏는 “記憶蒐集家는 提供者가 記憶을 操心스레 불러올 수 있게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면서 “인터뷰할 땐 錄音器를 除外하곤 아무것도 꺼내놓지 않고 但只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고 말했다. “平素 內省的이던 性格이 記憶蒐集 活動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는 權氏는 4期 記憶蒐集家로도 活動할 豫定이다.

    鉏琴瑟 擔當은 “蒐集한 記憶을 아카이빙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文化的 循環과 寄與를 할 수 있을지 苦悶하고 있다”면서 “世代를 잇고 共感帶를 擴散하는 意味 있는 作業을 통해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를 擴大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서울에 對한 記憶이 있다면 누구나 ‘記憶提供者’가 될 수 있다. 郵便이나 서울문화財團 인터넷 홈페이지에 申請해 ‘記憶蒐集家’를 自身이 있는 곳으로 招待하면 된다. 直接 나설 수도 있다. 서울圖書館 1層에 자리한 ‘메모리스튜디오’를 訪問해 그곳에 있는 記憶蒐集家와 함께 서울에 對한 記憶을 목소리로 남기는 것이다. ‘記憶 엿듣기’도 可能하다. 메모리스튜디오 옆 聽取부스에 가면 그동안 蒐集된 記憶들을 檢索해 들어볼 수 있다. 이 記憶들은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도 確認할 수 있다.
    問議 서울문화財團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02-3290-7043, www.sfac.or.kr/memoryi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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