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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당’ 김어준은 憎惡 · 嫌惡 本能에 불붙인 放火犯인가|신동아

‘큰 무당’ 김어준은 憎惡 · 嫌惡 本能에 불붙인 放火犯인가

[강준만의 灰色地帶]

  • 강준만 전북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

    入力 2022-08-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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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政治評論은 참 더러운 일?

    • ‘陰謀’와 ‘遊戱’가 充滿한 政治 談論

    • ‘雜놈’ 이미지, 免責 위한 保護膜

    • 同盟 勢力 代表 人物 柳時敏

    • 民主主義 國家에선 類例없는 굿판

    • 公營放送 TBS 骨格 무너뜨린 朴元淳

    • 왜 金於俊 앞에만 서면 過激해지는가

    방송인 김어준 씨. [동아DB, Gettyimage]

    放送人 金於俊 氏. [東亞DB, Gettyimage]

    “내가 해온 政治評論家는 참 더러운 일이다.”

    政治評論家 유창선이 最近 出刊한 ‘나를 찾는 時間: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에서 한 말이다. 이 冊을 재미있게, 그리고 感銘 깊게 읽었다. 그런데 왜 ‘더러운 일’이라는 걸까. 政治評論家라는 職業이 어떤 政權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큰 影響을 받는 現實에 注目할 必要가 있겠다. 유창선은 “박근혜 政府가 들어서자 ‘박근혜 大統領’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였던 ‘親朴’ 評論家가 온갖 放送의 進行者 자리를 꿰차며 돈方席에 앉는 光景을 보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政府가 彈劾當해 물러나고 文在寅 政府가 들어서자 ‘문재인 大統領’ 만들기에 올인했던 ‘親文’ 評論家들이 마찬가지로 온갖 放送의 進行者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李明博 政府 때도, 朴槿惠 政府 때도, 文在寅 政府 때도 조금도 다르지 않게 똑같은 光景이 벌어졌다. 歷史의 코미디 같은 場面들이었다. 그런 環境에서 政治評論을 했으니 얼마나 自尊心이 傷했겠는가. 그래서 더러운 일이라고 表現한 것이다.”

    그렇다. 그게 現實이다. 政治評論家는 陣營 論理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表蒼園 前 더불어民主黨 議員은 “極端的, 一方的으로 自己便에 유리한 煽動을 하며 金錢的 利益을 챙기는 言論이나 유튜버 等 所謂 ‘陳永 스피커’들”을 가리켜 ‘政治軍修業者’라고 했는데, 그런 政治軍授業字形 政治評論家가 많다. 그 程度까지는 아니더라도 自己 陣營의 눈치를 보지 않는 政治評論家는 거의 없다고 봐도 無妨하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유창선은 그런 눈치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自己 陣營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進步的 政治評論家다. 그런데 우리 韓國 社會가 그렇게 獨立的인 評論家를 좋아하지 않는다. 政治權이건 一般 市民이건 偏頗性을 너무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獨立的인 評論家를 彈壓한다. 그러니 孤獨할 수밖에 없다. 그의 冊은 그런 孤獨에 關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反面 ‘陳永 스피커’ 노릇을 잘하면 돈은 勿論 名譽가 쏟아진다. 수많은 追從者도 거느릴 수 있다. 甚至於 政權의 實力者들마저 自身이 그의 追從者임을 밝히기 위해 안달한다. 그만큼 政治的 影響力이 莫强하다는 뜻이다. 韓國 現代 政治史에서 가장 莫强한 權力을 누린 政治評論家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金於俊을 꼽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게다. 그는 典型的 政治評論家는 아니지만 ‘陰謀’와 ‘遊戱’가 充滿한 새로운 類型의 政治 談論을 통해 自身의 權力 基盤을 構築해 왔다는 點에서 넓은 意味의 政治評論家로 봐도 無理는 없으리라.

    문재인과 金於俊의 共生關係

    最近 交通放送(TBS) ‘金於俊의 뉴스工場’과 TBS ‘支援中斷 條例’를 둘러싼 論難이 뜨겁다. ‘金於俊의 뉴스工場’은 文在寅 政權의 卓越한 宣傳·煽動 機構였지만, 2021年 4·7 서울市長 補闕選擧에서 오세훈이 박영선에 壓勝을 거둠으로써 그런 役割에 疑問이 提起됐다. 서울市 政府가 민주당에서 國民의힘으로 넘어간 狀況에서 서울市의 財政 支援을 받는 TBS가 文 政權의 宣傳·煽動 機構 役割을 繼續해도 괜찮으냐는 疑問이었다.

    교통방송은 이미 財團法人으로 獨立했다는 主張을 내세웠지만, 當時의 代表 選任(2018年 10月)은 獨立(2019年 12月) 以前에 이뤄진 것이었다. 交通放送 經營陣은 앞으로 어떻게 ‘政治的 中立’을 이루겠다는 靑寫眞을 밝혀야 했음에도 이에 對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民主黨이 壓倒的으로 掌握한 서울市議會라는 ‘든든한 빽’을 믿은 것인지 한番 붙어보자는 式으로 對應했다.

    그러다가 1年餘 後인 2022年 6月 1日 第8回 全國同時地方選擧 結果 國民의힘이 서울市長職은 勿論 서울市議會를 76代 36의 比率로 支配하게 되자 交通放送의 그런 ‘배 째라 戰略’은 破局을 맞았고, 서울市議會는 7月 4日 TBS에 對한 서울市 財政 支援을 中斷하는 內容의 條例案을 發議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은 이를 둘러싼 葛藤에 對해 論하려는 건 아니다. 이른바 ‘팬덤 政治’에 基盤한 金於俊의 宣傳·煽動 活動을 主要 事件 中心으로 記錄하고 論評함으로써 ‘팬덤 政治’의 메커니즘에 對한 理解를 높이자는 게 이 글의 目的이다.

    김어준은 누구인가. 그는 文在寅의 ‘大統領 資格’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熱心히 ‘文在寅 띄우기’를 實踐한 사람이다. 둘의 關係는 2009年 5月 29日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서울廣場에서 노무현 前 大統領의 永訣式이 열렸을 때, 李明博 大統領이 獻花하는 瞬間 白元宇 民主黨 議員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向해 “政治 報復 謝罪하라”고 외쳤다. 尙州 役割을 맡은 文在寅은 李明博에게 머리를 숙이며 謝過했다. 바로 이 場面에서 文在寅의 ‘타고난 애티튜드의 힘’을 捕捉한 김어준은 以後 ‘문재인 大統領 만들기’의 先鋒에 섰고, 大統領이 된 後엔 ‘文在寅 지키기’의 先鋒에 섰음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다.

    김어준은 그 後 2年間 文在寅은 充分히 競爭力이 있다는 主張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年 4月 27日 첫 放送을 始作한 팟캐스트 放送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大舶을 터뜨리기 始作하면서, 그리고 10月 5日 인터뷰 專門 저널리스트 지승호와 같이 出刊한 ‘닥치고 政治: 金於俊의 明朗市民 政治敎本’도 大舶을 치면서, 文在寅도 뜨기 始作했고다. 이는 金於俊의 무게感을 키워줌으로써 문재인과 金於俊 사이에 相互 共生關係가 形成되는 데 큰 役割을 했다.

    2011年 가을 나꼼수는 放送 1回當 平均 600萬 件의 다운로드를 記錄하는 ‘신드롬’을 만들어내면서 最高의 全盛期를 누렸다. 朴元淳이 當選된 10·26 서울市長 補選 때 가장 影響力이 컸던 미디어는 KBS도 MBC도 아닌 나꼼수였다. 나꼼수가 朴元淳 當選의 1等 功臣이라고 해도 過言이 아니었다. 11月 18日 全國言論勞組는 나꼼수를 第21回 民主言論賞 受賞者로 選定했는데, 이때 賞을 준 言論勞組 委員長 이강택은 後날(2018年 10月) 交通放送 代表로 金於俊과 다시 만나게 된다.

    나꼼수를 위해 4·11 總選을 망친 文在寅

    4·11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이틀 남겨둔 2012년 4월 9일 부산대 앞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왼쪽 세 번째)이 주진우 ‘시사IN’ 기자(왼쪽 첫 번째),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왼쪽 두 번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오른쪽 첫 번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4·11 總選의 公式 選擧運動 期間을 이틀 남겨둔 2012年 4月 9日 釜山大 앞에서 문재인 當時 민주당 常任顧問(왼쪽 세 番째)李 주진우 ‘시사IN’ 記者(왼쪽 첫 番째), 탁현민 성공회대 敎授(왼쪽 두 番째), 金於俊 ‘딴지일보’ 總帥(오른쪽 첫 番째)와 반갑게 人事를 나누고 있다. [뉴스1]

    2012年 1月 末 이른바 ‘나꼼수 비키니-코피 事件’이 터졌을 때 나꼼수를 攻擊的으로 擁護했던 정희준 동아대 敎授는 自身의 擁護 論據 中 하나로 “그들은 우리 社會 非主流들이다. 그들 表現대로 나꼼수는 ‘떨거지’ ‘雜놈’들의 놀이터다”라고 主張했다. 이런 이미지는 金於俊에게 免責의 機會를 提供하는 保護膜이 됐다.

    김어준은 深刻하고 眞摯한 政治評論家들을 壓倒的으로 凌駕할 程度로 政治에 큰 影響을 미치면서도 問題가 있는 發言으로 論難이 되면 ‘雜놈’ 이미지로 빠져나가곤 했다. 그는 엉터리 主張을 했다는 게 밝혀진 後에도 끝까지 謝過나 解明을 하지 않는 걸로 惡名이 높은데, 그래도 이게 큰 問題가 되진 않았다. 雜놈이니까! 그런데 또 妙한 건 이게 또 金於俊이 支持者들로부터는 無誤謬를 主張하는 ‘敎主’의 地位를 누릴 수 있는 强點이 됐다.

    김어준은 ‘進步的 非主流’나 ‘進步的 雜놈’으로 여겨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進步的 人士가 나꼼수를 肯定한 건 아니었다. 進步 陣營 一角에선 나꼼수의 談論化 方式을 問題 삼는 批判이 提起됐다. 이미 2011年 10月 27日 進步的 칼럼니스트 허지웅은 ‘시사IN’에 寄稿한 ‘내가 金於俊을 批判하는 理由’라는 글에서 ‘나꼼수의 宗敎畫’를 問題 삼았다.

    그는 “金於俊의 文章은 善과 惡이 對立하다가 結局 大體 왜 믿지 못하느냐라는 打撲으로 끝을 맺는다”며 “여기에는 明白히 宗敎的인 煽動이 存在하고 있다. 이에 抵抗할 最小限의 意志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市民의 힘 운운하는 건 當身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그러니까 ‘빠’가 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進步論客 陳重權도 2011年 10月 나꼼수 콘서트에서 李明博 大統領의 不倫과 私生兒 疑惑이 提起된 것과 關聯해 自身의 트위터를 통해 “限껏 들떠서 精神줄 놓고 막장까지 간 거다. 포르노라는 게 元來 露出 水位를 繼續 높여야 한다”면서 “제발 輕快하고 愉快하게 가라”고 一鍼을 加했다. 그는 “목숨 걸지 않으면 나꼼수 못 까요” “꼼진리교 信者들은 워낙 닥치고 讚揚이 아니면 다 나꼼수에 對한 嫉妬로 읽더라고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許志雄度 다음番 칼럼에서 “지난番 칼럼에서 金於俊을 둘러싼 信仰 干證 親衛部隊를 批判한 以後,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言及하면 ‘너 한나라당 便이냐’며 싸움이 난단다”며 어이없어했다. 돌이켜 보건대, 이들의 先見之明(先見之明)李 놀랍지만, 10餘 年의 歲月이 흐른 只今까지도 민주당 陣營엔 金於俊의 헤게모니가 如前히 살아 있어 이런 생각을 發說하는 건 如前히 危險한 일이다.

    文在寅의 ‘金於俊·나꼼수에 對한 愛情’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으며, 이는 2012年 4·11 總選에서 잘 드러났다. 나꼼수 멤버인 金容民은 民主統合黨 서울 노원甲 候補로 公薦을 받았는데, 그가 過去에 인터넷放送에서 “라이스(前 美國 國務長官)를 强姦해서 죽이자”라는 發言을 한 事實이 알려지고, 老人 卑下 發言까지 터져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4月 7日 韓明淑 民主統合黨 代表는 金容民의 막말 波紋과 關聯해 公式的으로 謝過하고 그의 辭退를 勸告했지만, 4·11 總選 直前의 週末 文在寅은 韓明淑에게 電話를 걸어 “김용민 氏에게 辭退를 要求해서는 안 된다”고 當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뉴스를 傳한 ‘東亞日報’는 이렇게 썼다.

    “實際로 문재인 顧問은 金氏의 막말 波紋에도 그를 擁護하는 態度를 보였다. 選擧 이틀 前인 9日 放送된 ‘나꼼수’에 민주당 朴趾源 最高委員, 統合進步黨 盧會燦 代辯人 等과 함께 出演했다. (…) 같은 날엔 부산대 앞에서 金於俊 ‘딴지일보’ 總帥, 주진우 ‘시사IN’ 記者 等 나꼼수 멤버들과 민주당 候補 支援 遊說를 벌였다.”

    그래서 金容民은 辭退하지 않았고, 4·11 總選에서 새누리당은 當初 豫想을 깨고 過半인 152席을 차지하는 勝利를 거두었다. 民主統合黨 敗北의 決定的 理由는 金容民의 ‘막말 波紋’인 것으로 分析됐다. 韓明淑은 總選 敗北의 責任을 지고 代表職을 辭退한 反面, 當時 文在寅의 責任論은 거의 불거지지 않았다. 이는 文在寅의 리더십과 關聯해 ‘工事(公私) 區分 意識’의 問題를 提起한 代表的 事件이다.

    김어준은 政治評論家이자 플랫폼 事業者

    2019년 5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오른쪽)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가운데) 민주연구원장이 방송인 김어준 씨의 사회로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스1]

    2019年 5月 18日 서울 光化門廣場에서 열린 故 盧武鉉 大統領 逝去 10周忌 市民文化祭에서 柳時敏(오른쪽) 盧武鉉財團 理事長과 楊正哲(가운데) 民主硏究院長이 放送人 金於俊 氏의 社會로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스1]

    金於俊이 나중에 ‘포스트 文在寅’으로 指名한 李在明과 關係를 맺게 된 것은 李在明이 城南市長으로서 本格的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政治’를 통해 全國的 注目을 받기 始作하던 때였다. 李在明은 그런 知名度를 업고 2015年 3月 27日 한겨레TV ‘金於俊의 파파이스’ 43火에 出演해 城南 醫療院 設置, 無償 産後調理 事業 等의 福祉事業에 關한 自身의 哲學과 앞으로의 비전을 說明해 나갔다. 이에 나꼼수 金容民은 李在明에게 “大統領이 되면 全國的인 無償 産後調理院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李在明은 “産後調理院뿐만이 아니라요. (…) 그前에 작살을 좀 내야죠”라고 말해 錄畫場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李在明의 發言에 金容民·김어준은 한동안 멍하니 李在明만을 바라보았고, 暫時 沈默이 흐른 뒤 拍手가 쏟아졌다. 이는 李在明의 여러 別名 中 하나인 ‘작살’이 생겨나게 된 事件이었지만, 熱誠的 팬덤을 構築하는 契機이기도 했다. 한 支持者는 “온몸에 戰慄이 일었다”며 歡呼했는데, 이렇게 戰慄한 支持者가 적지 않았다.

    김어준은 그 自身이 政治評論家인 同時에 自身이 主導하는 舞臺의 ‘雰圍氣’와 ‘脈絡’을 통해 다른 出演者들의 發言에 影響을 미치는 獨特한 플랫폼 事業者이기도 했다. 민주당 陣營의 팬덤을 만족시킬 수 있는 主要 人物들의 强性·過激 發言이 主로 金於俊과의 對談 形式을 통해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런 메커니즘 때문일 게다. 이른바 ‘팬덤 政治’에 强한 利害關係를 갖고 있는 김어준은 ‘팬덤 政治’의 受惠者가 될 수 있는 인플루언서들과 無言의 同盟關係를 維持했으며, 이런 同盟 勢力의 代表的 人物은 斷然 柳時敏이다.

    2017年 5月 5日 柳時敏은 ‘金於俊의 파파이스’에 出演해 “知識人이거나 言論人이면 權力과 距離를 둬야 하고 權力에 批判的이어야 하는 건 옳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大統領만 바뀌는 거지 大統領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 없는, 더 莫强한 힘을 行使하는 旣得權 權力이 四方에 布陣해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내가 正義黨 平黨員이지만 汎進步 政府에 對해 御用 知識人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柳時敏의 이 發言은 그해 5月 9日 치러진 大選에서 문재인 민주당 候補가 19代 大統領에 當選됨으로써 文在寅 支持者들에게 하나의 絶對的 座標가 됐다. 柳時敏이 旗발을 든 御用 知識人이 量産됐으며, 이들을 따르거나 保護하려는 ‘御用 市民’도 幅症勢를 보였다. ‘팬덤 政治’를 信奉하는 문재인이 우두머리가 된 가운데 韓國에선 名實相符한 民主主義 國家에선 그 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울 程度로 極甚한 ‘팬덤 政治’의 饗宴(또는 굿판)李 以後 5年間 攻擊的으로 展開됐다.

    교통방송은 朴元淳·金於俊에게 戰利品이었나

    ‘팬덤 政治’의 先頭엔 2016年 9月 26日부터 始作된 交通放送(TBS) ‘金於俊의 뉴스工場’이 있었다. 교통방송은 公營放送이었지만, 그 骨格을 무너뜨린 건 2011年 10月 27日부터 2020年 7月 9日까지 서울特別市長을 지낸 박원순 體制였다. 2011年 11月 박원순의 서울市長 就任 直後 ‘나꼼수’ 出身 金容民은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에서 “金於俊이 安哲秀·朴元淳 두 候補 모두에게 ‘市長 되면 저에게 交通放送을 달라’고 했다”고 썼다. 그는 “勿論 弄談이었고 朴 市長 當選 後 ‘그 欲望을 抛棄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며 “朴 市長이 (交通放送을) 戰利品으로 認識할 것인지 市民에게 돌려줄지 關心거리다”라고 했다.

    “交通放送을 달라”는 게 果然 弄談이었을까. 朴元淳 當選의 1等 功臣이었던 나꼼수에 對한 持分을 要求한 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박원순은 그 要求에 欣快히 應했으니, 朴元淳과 金於俊 모두 交通放送을 戰利品으로 여겼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反論도 可能하겠지만, 評價는 交通放送을 公營放送답게 運營했느냐의 與否에 달려 있는 걸로 봐야 할 것이다.

    KBS 記者 出身으로 2006年부터 5年間 交通放送 代表를 지낸 이준호는 就任 直後 中央 政治 이슈를 다루지 말고 서울市議會 뉴스만 다루라고 指示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公營放送은 政權이 主人입니다. 政權이 바뀌면 KBS·MBC 社長이 바뀌고 大規模 人事가 납니다. 閑職으로 밀려난 職員들은 5年 뒤를 기다리죠. 政權이 또 바뀌면 職員들도 다시 자리를 바꿉니다. 그런데 TBS는 記者와 時事 PD가 50名도 안 돼요. 閑職으로 밀려날 사람이 없습니다. 政治 뉴스를 다루면 政權 弘報 放送밖에 못 해요. 그래서 아예 汝矣島 쪽은 線을 끊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 겁니다.”

    朴元淳 市長 就任 두 달 後 任期 滿了로 退任한 이준호는 “내가 退任한 뒤부터 교통방송이 政治 放送이 되기 始作했다”고 말했다. 2017年 한 言論인 年末 모임에서 박원순을 만나 “딴지일보 하던 사람(金於俊)李 그때와 똑같은 方式으로 公營放送 프로그램을 進行하는 건 잘못이다. 公營性을 망가뜨리는 건 한瞬間이지만 그걸 回復하는 건 正말 어렵다”고 말했다. “10分 동안 얘기하는데 朴 市長은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내가 경기고 先輩여서 듣지 않을 순 없었을 겁니다.”(조선일보 2020年 11月 6日 인터뷰)

    ‘한겨레 절독’ 부르짖던 金於俊 팬덤

    이 글 첫머리에 引用한 “내가 해온 政治評論家는 참 더러운 일이다”는 유창선의 名言을 想起해 보시라. 때는 바야흐로 나꼼수의 全盛時代였다. 金於俊과 주진우는 텔레비전으로까지 進出했다. 文在寅 政權이 國政壟斷으로 인한 保守의 廢墟 위에서 執權한 탓인지 放送이 政派性으로 因해 不公正 放送을 하는 일이 벌어져도 言論界와 學界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國民의黨 最高委員이자 辯護士인 장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2018年 2月 9日 金於俊의 SBS ‘金於俊의 블랙하우스’ 進行과 주진우의 MBC ‘스트레이트’ 進行을 두고 “金於俊, 주진우 等 露骨的으로 親文 性向을 보여온 人士들이 續續 (地上波) 進行者로 登用되고 있다”며 “대놓고 御用 放送 한다는 人事가 公正性이 生命인 時事 프로그램에 出演者도 아니고 中立性을 지켜야 할 進行者로 登用된 例는 朴槿惠·李明博 政權에서도 없었던 일”이라고 批判했다.(김용민은 2018年 5月부터 退勤時間帶에 KBS1라디오 ‘金容民의 라이브’를 進行했다.)

    金於俊에겐 팟캐스트 ‘金於俊의 다스뵈이다’라는 第3의 武器도 있었다. 그는 2月 23日 當時 核心 이슈였던 性犯罪 미투 暴露를 政治工作의 一環으로 보는 衝擊的 發言을 해 뜨거운 論難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3月 9日엔 “安熙正에 鳳道士(性醜行 疑惑을 받던 前 議員 鄭鳳柱의 別名)까지. 李明博 街카(閣下)가 막 사라지고 있다”며 “제가 (미투) 工作을 警告했지 않았나. 그 理由는 이 미투를 工作으로 利用하고 싶은 者들이 分明히 있기 때문이다. 그건 明白한 건데”라고 主張했다.

    김어준은 3月 22日엔 SBS ‘金於俊의 블랙하우스’까지 動員해 自身과 特殊關係에 있는 鄭鳳柱 쪽에서 提供한 寫眞을 가지고 鄭鳳柱 쪽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하는 趣旨의 報道를 했다. 그로부터 6日 後 그間 熾烈한 攻防이 벌어졌던 鄭鳳柱 事件이 決定的 反轉을 맞았다. 鄭鳳柱는 그間 問題의 렉싱턴호텔에 간 적이 없다는 主張을 强力하게 펼쳐왔는데, 그곳에서 쓴 信用카드 決濟 內譯이 드러난 것이다. 블랙하우스 視聽者 揭示板에는 “金於俊 氏가 親舊를 求하기 위해 地上波放送을 利用했다”며 프로그램 廢止를 要求하는 批判이 줄을 이었다.

    4月 2日 鄭鳳柱가 “罪悚하다”며 모든 公的 活動 中斷을 宣言한 것과 關聯, 한겨레 記者 김지훈은 鄭鳳柱와 金於俊의 謝過를 要求하는 칼럼을 쓰면서 “두 사람을 批判하는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데, 나도 그의 支持者들에게 어떤 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칼럼에 쏟아진 惡플은 ‘한겨레 절독’을 들고나왔다.

    “참는 데도 限界가 있어 저는 30年 購讀 方今 끊었습니다. 第 購讀料가 이런 記者 俸給 나간다는 게 참을 수 없네요.” “이런 記事를 보려고 내가 한겨레를 10年 만에 다시 購讀했나. 自愧感이 드네. 그냥 끝내리. 내가 뭐 머리 아프게 이런 記레기 같은 글을 보고 있나.” “그동안 或是나 했지만 한겨레에는 이제 더 以上 期待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 購讀料는 안 들어가니까 廣告主 돈 받아서 쓰레기 記事를 쓰던 말던 血壓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

    이는 어떤 過誤를 저질러도 支持者들로부터는 오히려 뜨거운 支持를 받는 金於俊의 王國이 完成됐음을 말해 주는 작은 事件이다. 金於俊의 王國은 金於俊이 繼續 ‘킹메이커’ 役割을 해야 維持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가 이른 時點부터 ‘次期 大統領’에 눈을 돌리는 건 當然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月 4日 김어준은 ‘金於俊의 다스뵈이다’에서 當時 여러 疑惑에 휩싸여 있던 京畿知事 李在明을 ‘포스트 文在寅’이라고 稱하면서 李在明을 絶對惡으로 만드는 勢力이 있다는 陰謀論을 提起했다. 陰謀論은 그가 가장 愛用하는 宣傳·煽動의 最大 武器다.

    2019年 8月 27日 法務部 長官 候補者 祖國에 對한 人事聽聞會를 앞두고 檢察이 電擊的으로 祖國에 對한 押收搜索을 敢行했다. 민주당은 이를 ‘檢察 쿠데타’로 規定했다. 民主黨과 그 支持者들은 尹錫悅을 쿠데타의 ‘首魁’로 몰아가는 爆擊을 퍼붓게 되며, 그 先頭 그룹엔 金於俊이 있었다.

    김어준은 ‘曺國 守護 運動’ 總司令塔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일대에서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동아DB]

    2019年 10月 12日 서울 瑞草區 大檢察廳 一帶에서 ‘第9次 司法積弊 淸算을 위한 檢察改革 촛불 文化祭’가 열리고 있다. [東亞DB]

    9月 28日 서울 서초동 檢察廳舍 앞에서 ‘촛불 集會’가 열렸다. 親文 네티즌들은 MBC가 드론으로 集會 現場 上空에서 事前 許可 없이 不法 撮影한 映像을 인터넷에 퍼 나르며 “MBC가 돌아왔다”고 讚揚했다. 9月 30日 박성제 MBC 報道局長은 ‘金於俊의 뉴스工場’에 出演해 “100萬 名 程度 되는 數字가 어느 程度인지 느낌이 있다. (集會를 드론으로) 딱 보니까 ‘이건 그 程度 된다’”고 했다. 그는 “檢察이 言論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檢察을 批判하기도 했다. 異常한 일이었다. 왜 政治人이건 言論人이건 金於俊의 앞에 서기만 하면 自身의 本分을 잊고 過激해지는가.

    國會 國政監査에선 ‘金於俊의 뉴스工場’이 9月 全體 아이템 75個 中 50個를 ‘曺國 防彈’에 動員하는 式의 偏頗 放送을 했다는 指摘이 나왔지만, 눈 하나 깜짝할 金於俊과 교통방송이 아니었다. 김어준은 ‘曺國 守護 運動’의 總司令塔 役割을 하길 願했던 것 같다. 그는 11月 初旬 ‘金於俊의 다스뵈이다’를 통해 ‘曺國 報道白書’를 만들어야 한다고 主張했으며, 11月 13日 ‘金於俊의 뉴스工場’에선 “鄭慶心 氏에 對한 檢察 公訴狀은 虛僞 公文書”라고 主張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虛僞 公文書”라고 主張한 根據는 ‘檢察이 鄭氏에 對한 公訴狀 內容 一部를 變更했다는 것’이었는데, “公訴狀 變更은 隨時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法曹界의 衆論이다.

    김어준은 不正確한 事實과 無理한 解釋 等으로 事實上 親文 支持者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煽動에 忠實했다. 그의 放送은 親文 勢力 結集의 求心點이 됐다. 主要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檢察의 小說을 뉴스工場이 까발렸다. 이분들이 이 時代를 바꾸고 있다” “30日 500萬 촛불로 汝矣島를 占領하자”는 글이 쏟아졌다. 金於俊이 이런 煽動을 밥 먹듯이 하지만 않았어도 曺國 事態의 展開 樣相과 文在寅 政權의 運命은 달라졌으련만, 門 政權과 支持者들은 마치 金於俊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金於俊을 ‘무당’으로 부른 陳重權은 나중엔 ‘臺無黨’으로 昇格시켜 주었는데, 事實 김어준은 政治판에서 먹고사는 ‘政治 무당’으로선 그 類例를 찾기 어려울 程度로 成功한 人物이다. ‘딴지일보’ 時節 金於俊의 熱烈한 支持者였던 나로선 그의 무당 行爲가 엔터테인먼트나 個人의 私的 領域에 머무르기를 懇切히 願했다. 그는 韓國人의 삶에 明朗의 要素를 再發見하고 擴散시킨 先驅者로서 길이 推仰받아 마땅할 人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金於俊이 제발 政治 領域으로 뛰어들지 않기를 願했지만, 人間의 欲心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그는 卓越한 才能으로 잠재돼 있는 것으로만 알고 넘어가도 좋을 韓國人의 憎惡와 嫌惡 本能에 불을 지름으로써 政治를 善惡(善惡)의 對決 構圖로 몰아간 放火犯(放火犯)은 아니었을까. 以後의 이야기는 다음 好意 續篇에서 하기로 하자.


    康俊晩
    ● 1956年 出生
    ● 성균관대 經營學科 卒業, 美國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言論學 博士
    ● 現 전북대 新聞放送學科 名譽敎授
    ● 著書 : ‘발칙한 李俊錫: THE 人物과사상 2’ ‘싸가지 없는 政治’ ‘不動産 掠奪 國家’ ‘韓流의 歷史’ ‘江南 左派’ ‘노무현과 國民詐欺劇’ ‘김대중 죽이기’ 等 多數



    신동아 9월호 표지.

    신동아 9月號 表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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